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甲辰 - 處暑 ⸻ II

2024. 8. 28. 23:53 from 六十干支

 

그 여름 나무 백일홍은 무사하였습니다. 한차례 폭풍에도 그 다음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아, 쏟아지는 우박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습니다. 그 여름 나는 폭풍의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그 여름 나의 절망은 장난처럼 붉은 꽃들을 매달았지만, 여러 차례 폭풍에도 쓰러지지 않았습니다. 넘어지면 매달리고 타올라 불을 뿜는 나무 백일홍 억센 꽃들이 두어 평 좁은 마당을 피로 덮을 때, 장난처럼 나의 절망은 끝났습니다. 그 여름의 끝

웃비와 하화와 작달비, 고치장마와 뙤약볕과 소나기, 녹음방초와 돌개바람과 하운, 모래해변과 피치 Pang 망고 Pang과 수박, 팥빙수와 서늘맞이와 월하越夏, 그리고 월하정인月下情人의 눈빛같은 여름이 그대를 달갑게 껴안아 주었을까. 무덥지만 찬란하고, 무성하면서 요란스럽게도 변덕스런 그 여름에 마실간 구름은 무심하고 사라진 제피로스의 서풍은 무정하나 여우비 뒤 무지개가 그대를 마중하고 달빛아래 춤추는 반딧불이가 그대의 무더위를 식혀주던 그런 축제의 나날이였나. 봄비내리는 처마끝 차양아래 두 손모아 가슴에 새겨보던 당신의 바람들은 그대의 여름밤을 이끄는 목동과 처녀와 사자의 세모에서 동그-라미 마냥 대구루루 당신에게 가닿아 그대는 그렇게 낮선 여름을 마음껏 껴안았을까.

 

당신의 오늘을 특별하게 하는 건 그대의 오랜 바람들 때문입니다. 나의 오늘이 특별하지 못한건 낯설어진 그대의 모습 때문일까요, 혹 나비와 춤추던 그 서풍이 어느세 정원을 떠나버렸기 때문인가요. 양지바른 언덕에 올라온 유채꽃도, 벛꽃이 눈꽃처럼 휘날리던 그 거리도, 화단을 수놓던 배추꽃의 눈물같은 이슬도, 갓꽃의 작은 몸짓으로 꿈틀대던 소소한 동심도, 의외로운 장미정원에서의 수많은 pensee도, 이제 들판을 뒤덮은 코스모스는 아직 시들지 못하는 희망의 넋두리에, 그 은근한 하소연에 좌우로 실없이 나풀거립니다. 제법 꺽여버린 열기와 스미는 한기를 쫓으려 오늘은 그렇게 잔이 기울여 집니다. 

 

“주여, 때가 왔습니다.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 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 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하소서. 이틀만 더 남국의 날을 베푸시어 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 독한 포도주에는 마지막 단 맛이 스미게 하소서. 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 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 깨어서 책을 읽고, 긴 편지를 쓸 것이며, 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 「가을의 시」, R.M. 릴케”

 

춘화추월 春花秋月, 그 봄에 당신을 반기던 꽃은 잔향과 아쉬움으로 저물었으나, 가을의 문턱에 걸린 영롱한 달빛은 침침한 한밤중 그대의 마음을 오롯이 밝히고자 합니다. 등화가친 燈火可親의 계절, 등불에 친해지는 것이 여혹 허락된다면 출영 나온 이 하나없는 나는 수평선 넘어로 사라진 불타던 노을을 기억하여 그렇게 그대에게 일엽지추 一葉知秋가  몰고 올 수려한 계절의 물결을 기꺼이 적어보려 합니다. ‘지금 집이 없는 나는 이제 집은 짓지 않으나 달빛아래 혼자인 나는 오랫동안 깨어서 글을 쓰고, 어쩌면 당신에게 긴 편지를 적어보며 코모레비こもれび, 가로수 잎사귀로 스며든 달빛에 흔들리는 쓸쓸한 그림자를 감추며 정인情人의 마음을 헤아리려 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맬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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