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辰 - 處暑 ⸻ III

2024. 9. 13. 09:59 from 六十干支

 

청명한 계절의 선선함이 시냇물처럼 스산한 거리로 쏟아져 흐르면, 대기를 채워가던 맑고 투명한 가을의 여유로움은 허울 뿐이던 지난 여름의 잔상을 잠시나마 투영하고, 이제는 붉게 타버린 잎새의 부서짐에서 온세상은 야단스레 올긋볼긋한 온갖 오렌지 빛깔로 물들어 눈부신 기억의 허상을 차분히 덮어간다. 이제와 이런 가을의 미흡함이 나의 유일한 변명이라면 그 여름은 그토록 미덥던 너를 한결 화려하게 만들 것이고, 한창 시들은 너의 최초의 의문은 공허한 나의 최후의 여백 속으로, 허무한 기억의 초상은 빛나는 오늘에 묻혀 눈꽃같은 하얀 면사포의 배려를 그렇게 꿈꾼다. 몰지각한 나의 심장마냥 혼란스럽게도 촉박한 시계촉과 스쳐가는 수많은 경박한 일상의 분주함에 취한 나의 오늘에서 너는 안개 속에 감춰진 내일의 일탈을 비록 기약하나. 너의 어제는 그렇게 덧없는 나의 추억을 점-점 스치고, 너의 오늘은 톡-톡 부질없는 나의 헛된 슬픔을 부수고, 다시 나의 귓가에 웅-웅 퍼져나가는 우리의 내일은 어쩌면 너와 나에게 다시금 경이로운 생기를 불어 넣을까. 「봄이 온다면

 

가을에 유서를 쓰리라. 낙엽되어 버린 내 시작 노트 위에, 마지막 눈 감은 새의 흰 눈 꺼풀 위에, 혼이 빠져나간 곤충의 껍질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차가운 물고기의 내장과 갑자기 싸늘해진 애인의 목소리 위에, 하룻밤 새 하얗게 들어나 버린 양치식물 위에 나 유서를 쓰리라. 파종된 채 아직 땅속에 묻혀있는 몇 개의 둥근 씨앗들과 모래 속으로 가라앉은 바닷가의 고독한 시체 위에, 앞일을 걱정하며 한숨짓는 이마 위에 가을엔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장 먼 곳에서 상처처럼 떨어지는 벌똥별과 내 허약한 폐에 못을 박듯이 내리는 가을비와 가난한 자가 먹다 남긴 빵 껍질 위에, 지켜지지 못한 채 낯선 정류장에 머물러 있는 살아있는 자들과의 약속 위에 한 장의 유서를 쓰리라. 가을이 오면 내 애인은 내 시에 등장하는 곤충과 나비들에게 이불을 덮어주고 큰 곰자리에 둘러싸여 내 유서를 소리 내어 읽으리라. 「가을의 유서」, 파블로 네루다

 

나는 자유로이 한숨쉬고, 구속된 너는 어찌하여 탁한 먼지를 다급히 삼켜본다. 내가 죽음을 두려워 한다면, 너는 생을 두려워 한다. 한낮 나의 한숨이 너의 긴 날숨과 같을 수 없고, 미련한 나의 호흡이 너의 긴박한 들숨과 같을 수 없으리. 백만의 장미를 심는다한들 나는 너의 식탁을 약속할 수 없고, 무지한 나는 소금이 간절한 너를 위해 사치스런 장미과 사과향 고명은 언제고 마련할 수 없다. 향신료에 빠진 내가 소금행진하는 너를 위해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7공주가 바라는 것이 부디 잠자는 숲속의 난장이일까, 단지 너에게 작은 희망이 존재한다면 다만 나는 긴박한 너의 삶을 간절히 소망할 뿐. 나는 가인 너는 아벨, 에덴의 서쪽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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