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eju

2024. 4. 24. 09:48 from 旅行

 

낭만이란, 호접몽 마냥 시선을 사로잡는 푸른하늘로 부터 이어지는 수평선을 쫓으며 자연스레 자연과 흔쾌히 동화되어 방랑벽이 돋아나는 나다. 낭만이란, 현무암 돌담으로 이어지는 어느 구불구불한 골목을 돌며 춤추는 제비와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투덜대는 시골버스에 하루를 떠맡기는 천진난만한 너다. 낭만이란, 브람스의 이중 협주곡을 들으며 바다가 보이는 호텔방에 홀로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며 석양을 기다리는 오후와 함께 나른해지는 나다. 낭만이란, 뜻밖에 선물을 받고도 담배 한가치를 깨물고는 긴 한숨이 마술처럼 창백한 하늘의 구름조각으로 사라질 때 쉬이 오늘을 보내려는 너다. 낭만이란,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오래된 회색건물 숲에서 분주한 생명들의 들숨과 날숨을 헤집고 영감이 절실한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기원하는 나다. 낭만이란, 6개의 듀오 중 4번째의 기교에 세삼 환희에 빠져 또 한번의 앙코르를 원하는, 사슴같이 쫑긋한 두 귀가 제주의 숲을 들으며 일탈을 떠올리어 눈부신 은빛을 뽐내려는 플라테로와 같이 차분해지는 너다. 그럼으로 그리하여 두 강이 만난다면 우리의 낭만은 태평양으로 조용히 흐르리라. 

제주의 숨결이 바람이 된다면 

파도가 포말을 개워내고 갈매기의 꿈이 창공을 가르며 쇳물이 끓는 그런 어느 봄 오후, 셔? 왕 라면먹고 쉬영갑서.
곶 마냥 거친 파도로 내뻣은 갯바위에 올망졸망 둘러앉은 낚시꾼 무리 제주의 바람 가르고 - 점점이 흩어진 엽선에서 키를 잡은 율리시스 바다의 노래 부르면, 셔? 감시냐, 가시냐, 폭싹 속았수다, 혼저 라면먹고 갑서.
달의 깊은 애상에 매섭게 넘실거리는 파도의 춤시위 조르바의 열정으로 뭍머리를 달래고 - 올레길 담벼락에 수줍게 고개든 동백꽃 사랑의 인사 전하면, 셔? 옵서 - 라면갈랑갑서.
함바집에서 쏟아져 나오는 아주방들 장다리꽃 향에 눈 멀고 대지에서 스멀대는 유채의 앎에 귀 멀고 - 푸른 산빛 깨치고 아아 작고 좁은길 걸어 가노라.

제주의 봄

호-라이 숨비소리 3월애 달래니 봄과 베누스 지나가신다, 대야에 담겨 해감하는 홍합무리 어둠 속 깊은 잠에 빠져 식객의 삶은 분주하기 그지없다. 길라잡이 나신다, 플로라의 꽃길 서풍의 발자취 스쳐가신다, 그리하여 너희가 베일로 얼굴을 가린채 커다란 어머니의 뼈를 어깨 넘어로 던진다면 제주의 밤을 찾은 흥겨운 소주잔 입맞춤은 종달새 노래와 같으리.

제주의 밤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쇼팽의 빗방울 전주곡이 펼쳐지고, 탐라왕께서 계획하신 삼투압 현상 마냥 지면 위에 켜켜이 쌓인 지난날의 애증과 회한과 탄식과 또 그리도 기쁘고 노엽고 슬프고 즐거워던 수많은 찰라들이 모진 바람과 뒤섞여 조용히 대지에 스민다. 좀더 자나 좀더 조나 손을 모우고 좀더 눕나, 아니 우리 모두 숨을 죽이자 하여 우리의 빈궁이 강도가 되지말며 우리의 곤핍이 군사에 이르지 말도록 부족한 카페인을 채우자 하여 마당 앞 유채꽃을 감상하도록 하자.

April showers bring May flowers

대왕야자 사이에 우뚝선 오벨리스크는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토록 복될까. 우리는 우리의 기쁨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 2개월 29일 우리는 무슨 욕을 바라며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모든 슬픈 날에 잠못드는 우리 쑥대강 - 춘향가 쑥대머리를 틀고 브람스를 들으며 우리는 영주십경을 감상하고 주상절리를 토론하여 한 줄의 일기를 휘갈긴다. 그때 그 날카로운 첫키스의 추억을 우리는 절감하고 토로했는가. 아침이면 아침마다 나의 텀블러를 손바닦과 발바닦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차가운 얼음 사이를 휘젓고 유유히 배회하는 아메리카노의 쓴 맛이 기억난다.

Let's pretend that we are in Jeju (참회록 오마주)

 

적바림


망각은 고통을 지운다. 술은 망각을 부른다. 하지만 그들은 망각을 원하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의 쾌락과 희열이라는 앎을 목격하기 위에서이다. 아름다움으로의 과정은 각성가운데 열정과 노동을 동반한다. 그렇다면 삶은 늘 각성인가. 삶이 고통인 이유는 사과 때문이다. 잠은 휴식인 동시 망각이다. 노동은 사과로 인해 불가피하나 우리는 초과된 열량을 감당하지 못해 불필요한 성인병에 치다른다. 왜 풍년이 존재하여 곡주가 탄생하였는가. 혹 목적은 식초인가.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것이 더이상 중요하지 않다. 과식 후 좀더 다양한 디저트를 바랄 뿐이다. 총·균·쇠에는 그닥 관심이 없으나 미용과 병에는 집착에 가까운 집요함을 보인다. 뉴스는 오직 향신료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각성과 망각 사이 고해와 지각이 부재한다면 오늘도 우리는 종일 팝콘을 섭취하며 무의미한 콘텐츠와 텍스트로 소중한 하루를 낭비할 것이다. 와인 한잔에 커피 한잔이 당뇨의 원인이라 보는가. 결국 슬픔은 잊혀진 행복의 빈공간을 채운다.

각성할 수 없는 자에게 정의는 무의미하나, 각성하려 노력하지 않은 자에게 정의는 합당하다. 정의는 마음이 중요하므로 프로이트의 꿈은 타당하다. 꿈은 생각의 편린들의 집합체다. 환경은 생각을 지배하고 관계는 생각을 움직인다. 꿈은 나라는 욕망과 욕구에서 상극을 유동한다. 사유는 성찰이자 의식을 교정하지만 생각은 의식의 흐름의 작용이다. 따라서 심리는 의식을 지배하고 군중심리는 개인의 심리적 메커니즘을 좌우한다. 미디어와 교육의 중요성이다. 나라는 주체는 의·식·주라는 물감으로 표현되고 오감에 의해 정의되는 것이다. 이에 중요한 사실은 사유를 통한 6과 이어지는 정신, 즉 7이다.

쉬어가기

- 제주도의 생태계는 한라산, 오름(개개의 분화구를 가진 360개의 자그마한 산), 빌레(너럭바위), 곶자왈(화산활동 중 분출된 용암류가 만든 불규칙한 암괴지대), 벵듸(돌과 잡풀이 우거진 넑은 들판), 돌담으로 분류된다.
- 한라산은 다시 해안지대, 난대 식물대, 초원 지대, 활엽수림대, 침엽수림대, 관목대, 고산식물대로 나눈다. 정상에는 백록담이 있다.
- 좁은 길로만 알려진 올레는 오래된 문을 뜻한다.

나가며

- Hap'이란 중세 언어로 우연히 일어난 사건을 의미한다. 그러나 행복으로 삶이 복권되려면 우선 슬픔의 공간을 정리해야 한다. 강박과 비탄을 털어버리고 우연히 찾아온 행복이 보금자리를 틀 수 있도록 생각, 즉 마음을 비워야하지 않을까.
- 슬프다는 것은 고통 때문에 내가 아프다는 것이다. 몸이 아플 경우 부교감신경이 자극되어 콧물과 함께 눈물이 독성 단백질과 미세먼지를 배출하는데, 시야는 더욱 밝아지고 숨죽인 나는 더욱 맑아진다. 소금물을 머금고 소금물을 쏟아내는 당신, 제주의 바다가 지금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 당신이란 은 세월이라는 시간을 흐른다. 선하고 악하고 추하고 아름다운 심리들 사이에서 모진 풍파와 고난을 겪고 뜻밖의 반려자를 만나 거센 폭풍우에 맞서는, 한 때 노인의 포경선에 합류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잃어버린 시간을 찿아 나선다는 것은 회상이라기 보다는 절망 속 행복을 준비하는, 드리브의 꽃의 이중창이 귓가를 맴돌고 낮설고 아이같은 나와의 재회의 프롤로그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삶은 순간순간 아름다운 마무리이자 새로운 시작이여야 한다. 법정

어떵호연 이디꼬장 옵디가 하시어 게메마씸 어떵호단 보난 영 뒈수다 아룁니다. 무신 거옌 고람 신디 몰르쿠게 말씀하시어 게메마씸 귀 눈이 왁왁하우다 답합니다. 당신을 응원한다는 것이, 그대를 향하여 너를 위함이 지베르니 봄의 효과를 발할까하여 놀멍 놀멍 봄의 체전을 기다립니다. 짖굿은 호-오이, 하얀구름 너울 쓰시며 진주 이슬 신고 제 오시는 그대가 꽃다발 안지 못해 매마른 가슴 애태우게 꽃샘추위 보내십니다. 우리가 왕왕 즐겨찾던 그 봄은 눈꽃날리는 오름들에 숨겨져 잠잠하던 우리의 동화 자극하고 차갑게 식어있던 아련한 우리의 애틋함 제촉합니다. 섭동의 섭리를 섭렵하여 바다를 알아갈 수 있을까하여 나는 오늘도 파도와 눈맞추고 한알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보려합니다.



진리는 금요일Vendredi에 나온다고 골암수꽈? 혹 사이렌의 노래소리가 들리느냐. 그럼 주머니 속 꼼지락대던 감자와 남은 동전들을 나누어 중심을 잡으라, 이타카에 도착했다면 랄프와 야생 돼지를 찾아 숲을 헤치고, 칼립소의 동굴에서의 그림자 놀이 무용담을 펼치라. 그대의 구혼자들은 무엇을 하는가, 미련한 자들은 등을 가지되 기름을 써버렸다 하니, 그들에게 호랑가시나무를 준비케하고 꾀꼬리가 찾은 정원에서 헤이-호 헤이-호 목청높여 외치게 하여 시리우스가 빛나는 한 여름밤의 꿈을 준비케하라.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과연 그들이 밤을 휘몰고 있구나.

안녕

“난 다시 힘내고 있다. 그러니 넌 계속 아름다워라. 아침, 꽃에게

닮아버린 생각들 가운데 오늘은 만들어지고, 떠오르는 영감들 속에서 내일이 기약됩니다. 어둠이 내리면 아마도 당신을 앓다가 차가운 소주로 뜨거운 마음을 치유하며 하루를 마감하겠지요. 당신의 생일이나 당신이 좋아하는 사물들에 크게 집착하지 않습니다. 확인하고 싶고 알고 싶은 것은 아마도 세상을 바라보는 그대의 마음이겠지요. 가보지 못한 길에도 울림과 떨림은 존재합니다, 그건 우리가 별을 사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만남에서 서로가 계속 빛날 수 없다는 건 애석하게도 우리는 슬픔을 활용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서울의 사정(抒情)

미움에서 증오로, 첨예함이 애상으로 전의되어 황량한 사랑은 이름모를 꽃을 피워 허무하게 시듭니다. 그러므로 혹자는 환희 속 케롤을 부르고 지그린 객체는 호메로스를 낭독하여 혹독한 겨울에서 또 다시 허무한 봄이 자라납니다. 만약 화사한 매화가 피어난다면 침향이 은은히 타오르는 향연에서 즉자를 바라보는 한량과 우리의 굿펠로우는 기네스와 참이슬로 넥타르를 만들까요. 진달래와 개나리가 서울이 꿈꾸는 호접몽의 배경이 된다면 배추꽃이 한 가득한 언덕에서 그대는 숨죽이리외다.

Brunch for Soul

“내 심장을 위해선 너의 가슴 하나면 족하고, 네 자유를 위해선 나의 날개면 족하나니. 네 영혼 위에 내가 잠들어 있었다는 사실은 내 입으로부터 하늘까지 가 닿으리다.

희망이라기 보다는 새뜻한 봄날을 기약했는지도 모릅니다. 여우비가 내리고 시린 강풍이 시간을 몰아세웠건만, 우리는 또한번의 봄을 기대했는지도 모릅니다. 햇빛이 내리고 곧 새싹이 잠들었던 대지를 조심스레 두두리겠지요. 얼마나 기다리면 푸른 빛을 뽐내는 잎사귀가 가지로부터 자라나 향기로운 꽃을 피워낼까요. 두근거리는 마음도 잠시, 얼마동안이나 곁에 머무를 수 있을까 뇌리를 스치다가도, 그대를 지키는 건 영롱한 일조와 알록한 빗방울과 아지랑이와 입맞추는 산들바람이라고 여기어, 석양이 들판을 물들이면 달이 부르는 파도소리와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들이 그대와 함께하리라 의심치 않습니다. 새들이 너무 시끄럽지 않았으면 하지만, 숲이 자라나 푸른 만남을 기대할 수 있다는 반가운 신호일거라 믿어봅니다.

어떤 기다림

“슬프고도 감미로운 인형이여, 네가 슬퍼하지 않는다면 좋을, 황혼의 기슭에서 네게 해줄 이야기들. 백조 한 마리, 나무 한 그루, 아득하고도 기쁜 그 무엇. 포도송이의 시간, 과일이 여물고 열매를 맺는 그런 시간.

비바람에 씻겨진 너,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려 하느냐. 그대를 휘감던 모래알과의 시름에서 너는 우주를 보았느냐. 하늘을 뒤덥는 사나운 비구름과 대지에 널려진 지독한 열기가 그대의 열정을 두두린다. 지체할 수 없는 너의 고독이 자라나 뒤틀린 대지를 호흡케 하여, 비상한 페르세포네 망각을 건너 다시 아름다움을 살아가네. 아, 그대가 토해낸 한줌의 긍지에 요동치는 바람의 찬가가 들리느냐, 오름의 경지에 울려퍼지는 봄 내음에 취해 비틀거리는 철새들의 고음과 들리브 유채꽃의 이중창이 너에게 들리느냐. 그대 어서 빨리 깨어나 제촉하는 벌새와 입맞추고, 잠잠하던 바다를 초록빛으로 수놓는 반딧불이와 함께 사랑을 꿈꾸고 한 여름밤을 맹세하라.

고도를 기다리며

“진정한 등산가가 산을 무서워하는 사람이다. 성공을 계속하다보면 과욕에 빠지게 되고 자만하기 쉽다. 처음에 순수한 마음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렇수록 긴장을 느추지 않고 겸허해야하고 자신을 낮추어야 한다.

월요병에 걸린 왕룬이 초췌한 몸으로 와인을 마시네. Appetite를 위해 아아와 시큼푸릇한 셀러드는 기본이요, 이에 태양의 강렬함에 주눅든 시린 포도는 우리를 심연으로 인도하네. 그러므로 달콤시큼한 단무지와 걸죽한 짜장은 어떠하리오, 아니 숙취에 짬봉의 깊은 달램이 조국을 위한 참 애국이요, 라면에서 김밥은 허기를 조롱하는 가식이요, 달달한 맥심과 달콤한 이삭토스트는 그대의 혈당을 비웃을 것이요, 그리하여 우리는 소금빵을 먹으리외다. 아니 그대는 왜 달고나와 붕어빵에 집착하시어 센과 히치로의 행방불명을 감상하시려 하는가.

지금 서울은

“천일의 평화보다 모험이 주는 아드레날린과 스트레스가 훨씬 달콤합니다.

“당신의 꿈이 시들어가고 있다는 첫 번째 징후는 당신이 이런 말을 내뱉기 시작할 때 나타납니다. 지금 내가 너무 바뻐서......

구불거리는 언덕들을 넘어 아지랑이를 찾아가는 시골버스가 쉴틈없이 툴툴대며 지평선과 맏닺은 오름들과 평행선을 이루는 수평선을 경계하며 이미 목적지에 도착한 철새들이 외치는 기쁜 봄의 부활에 할렐루야를 온몸으로 화답하며 우리를 해녀들의 고향집 축제로 인도하네. 환희에 압도된 심장이 너무 뛰어 주체할 수 없는 육신은 찰라를 비웃으며 쉴세없이 튀어오르고, 반가운 전보로 요동치는 바다의 날숨에 흔들리는 꽃들은 때아닌 탱고로 푸름을 펼쳐가는 제주의 들판에 들숨을 제공하여 지각한 봄의 기운을 한껏 북돋으네. 아, 인생에 실수란 분명 없다네, 그럼으로 그리하여 “get all tangled up just tango on.

오늘의 풍경 at Jeju

“봄날의 꽃처럼 활짝 피어나라.

소담스러운 당신의 두 눈이 제주의 오후를 만진다. 쫑긋한 그대의 두 귀가 제주의 봄을 흩고, 너의 아담한 두 손은 길가의 이름모를 제주의 우담바라에 울며, 나의 우락부락한 두 발은 칭칭대는 제주의 하늘을 달랜다. 초췌한 우리가  미지근한 아메리카노를 대할 때, 어리버리한 그가 새하얗게 변신한 제주의 푸른 봄을 맛보리. 파란만장한 하루아래 고개 숙인 노을, 넌 붉은 우리의 마음을 정령 헤아렸느냐.

Encore Jeju!

“신념이란 단순히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무언가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념이란 실천하는 무언가죠. 다른사람이 가져올 변화만을 기다리기만 한다면, 결국 변화는 오지 않을 겁니다. 기억하세요.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기다리던 사람입니다. 우리 자신이 바로 우리가 찾던 변화입니다. 인생을 돈 벌이에만 집중하는 건 야망에 빈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모비딕을 좋아하는 일인

건조한 삶 가운데 어제는 당신이 물들인 환락의 순간들에 겨워하고, 오늘은 푸른파도의 기승에 한참이나 감상의 소용돌이에 휘말립니다. 불투명한 내일에 주어진 변수에도 불구하고 어김없이 곧은 그대의 일말의 도전에 계절은 희열하고, 저물어가는 하늘은 오색의 노을을 휘날리며 마침내 마침을 기별합니다. 시덥잖은 내가 너에게, 미덥잖던 내가 당신께 한차례 미소를 구한다면 대기를 떠도는 미묘한 어색함이 아마도 애틋한 산뜻함으로 피어날까요. 강파른 마음은 각박한 새벽의 재깍거림에 한숨을 몰아쉬며 추억이 담긴 당신의 모래성을 애써 한편에 담아내려 노력해 봅니다.

너에게

어둠을 파고드는 바다의 숨고르기에 달콤한 자장가 마냥 단잠에 빠진 제주를 외로운 등대가 속속들이 배회한다. 사방을 흘트려 놓는 바람과 함께 출렁거리며 고깃배들의 지난 자취를 말끔히 씻어내는 검푸른 파도가 비누거품같은 포말 또한 쉼없이 개워낸다. 달빛의 노고라면 성산일출봉에 해돋이가 시작될 쯤 한라의 만년설이 준비된 이슬로 봄의 수줍음을 일깨울까, 봄 내음 가시기 전 여우비 스친 올레를 지나 밤새 모락모락 한아름 자라난 아침의 기상을 노래하여 준비된 새날에 유채꽃 활짝 핀 성판악을 사뿐히 거니는 봄처녀 이에 호접몽 이루리라.

Fine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하였다. 첫사랑이었다. 사랑의 물리학

울부짖는 바다의 신음소리에 솜사탕마냥 한껏 부풀어오른 구름이 눈물에 흠뻑 젖은 검푸른 쿠바의 하늘을 새파랗게 훔쳐낸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가향에 살랑이던 봄바람은 어느덧 자라난 계절의 속삭임에 쿠바의 렙소디로 회답하고, 긴 밤을 지세워 갇혀있던 꿈의 조각들은 일렁이는 파도에 쓸려와 눈부신 해변에 이내 숨겨온 진심을 살포시 새겨낸다. 거기 길잃은 봄의 환영은 고개를 들라, 쏟아지는 빛줄기가 그대의 고뇌에 파도의 환희를 눈 앞에 쏟아낼 것이요, 조려왔던 그대의 차가운 심장은 돌연 파고드는 햇살에 시원한 맥주로 진정되고 곧이어 안식의 리듬을 되찾을 것이요, 그러므로 우리를 심미로 인도하는 것은 호오이의 날숨과 강렬한 햇볕을 토로하는 모히또에서 달콤한 몰디브의 축복을 기원하는 당신의 들숨일 것이라.

쿠바의 탱고

역동적인 푸르름에 잠식되어가는 쿠바의 기상은 늘어진 오후의 눈부심에 지긋히 고개를 치켜들어 곱고도 희미한 아지랑이를 조심스레 피워낸다. 철새의 마라톤이 전해온 희소식에 활짝 피어난 봄꽃은 아침이 맺어준 맑은 이슬을 마침내 떨궈내고, 비바람에 얼룩진 화단은 긴 기다림을 넘어서 생명의 소생을 마침내 기원하네. 그늘을 찾아 헤매이는 수줍은 생명의 그림자는 강렬한 태양아래 마침내 눈부신 삼바를 추었으며, 불어오는 바람의 리듬을 타고 격하게 두두려지던 드럼은 지쳐있던 너의 한낮의 자장가가 되어주네. 우리는 이제 무엇을 바라리오, 석양의 미소를 기다리던 우리는 감춰온 지난날의 속살을 차분히 그을릴 것이오, 아니 우리가 준비한 디스코는 숙대역을 헤매이던 쑥-대강을 온통 네온빛으로 물들일 것이요.

쿠바의 송가

수줍은 한낯의 햇살이 그대의 미소같은 부드러움으로 오후의 느림을 살며시 감싸주네. 어디 우리의 애달은 노래가 그대의 흥을 한껏 돋으리오, 부디 당신의 투명한 눈빛은 편애한 나의 갈망에 치명적인 당신의 속삭임으로 나의 어리숙한 비상을 몽상에 빠트릴 것이오. 오, 나는 그대의 신비에 빠져들어 돌이킬 수 없는 고도에서 환희에 찬 토로로 하루의 마감을 거부하여 빛나는 환상이 지속되길 숙연히 바래볼 것이오. 당신이 바래오던 그곳에서 나 또한 우리의 바람으로, 우리의 환상은 지긋한 파도의 물결을 유유히 떠돌며, 돌연한 쿠바의 외마디에 짜릿한 첫키스의 벅참은 빛나는 밤 하늘의 별빛을 스르르 헤아릴 것입니다.

무제

그는 바다El Mar를 바라본다. 출렁이는 물결하며, 오색을 띤 무지개 포말하며, 처절한 풍량을 뚫고 귀가하는 포경선을 온갖 몸짓으로 여유롭게 어루만지는 파도에서 그가 안식을 찾았고, 애처롭게 부서지는 물결에서 일말의 위안을 얻었구나. 매일이 새로운 바다에서 세월의 흔적을 내미는 바위여, 경쾌한 뱃고동 소리에 맞춰 엽선을 띠우고 파도를 술렁케하는 바다의 노래를 혹시 기억하느냐. 그는 다시 아른거리는 지평선을 향했고 소녀의 출렁이는 파도가 수평선 너머로 뻗으면, 그들의 꿈같은 심해의 풍경 속 새하얀 진주가 반짝이고 향연에 동참한 모비딕Moby-Dick이 기뻐 뛰어놀 것이요, 어둠 속 희미한 불빛을 따라 돛을 내리며 귀향길에 나서는 소년아, 너는 바다를 정복하려느냐, 아니 떨리는 파도로부터 영혼의 울림을 듣지 못하였느냐.

Il Mare

우리가 핑갈의 동굴로 향하여 그림자 놀이를 재개하고자 다시금 사자의 정의를 논하려 드느냐. 차마 주상절리에 피어난 한송이 우담바라 조차 이해하지 못하거늘, 이제 쇠사슬을 끊고 진주목걸이와 들판에 피어난 유채꽃으로 사슬자국을 가리어 하바나의 넥타르를 마시며 축복의 하바나 바나나 만나를 취하자. 우리의 이상이 강렬한 태양아래 불타고, 우리의 상상이 영롱한 달빛으로 빛날 때 우리의 기상은 지성의 가상을 얻을 것이오, 우리의 관성은 자유로이 영성에 입성하리외다. 

Appeal

“A B  D  F G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 - 체Che를 위한 비가, 호안 브로사

구리빛으로 그을린 쿠바의 오후가 검푸른 파도에 채 씻겨나가기도 전에 Besame Mucho를 외치는 애정의 빈궁이 돌연히 강도가 되어 우리의 궁핍이 이제 군사에 이르렀으니, 자 너와 나 Che의 뜻을 되새기여 오늘밤 성대한 혁명을 이루리라. 밤의 향연을 위해 준비한 값비싼 향료가 그대의 코를 마비시켰구나, 자 우리 함께 커피콩을 볶아보자. 네가 자정에야 눕겠느냐, 제발 자자, 부디 눕자, 그리하여 수닭이 새벽을 깨우면 나는 정성껏 두 손을 모으고, 그대는 지극히 두 발을 모아서 우리는 우리의 텀블러를 간절히 비벼보자.

쿠바의 잠언

“내게 보석 상자에서 가장 값비싼 보석을 가져가라고 한다면 나는 진실한 친구를 택하고 사랑은 한쪽에 밀쳐 두겠노라. - 호세 마르티

정제된 교육에서 무딘 하루가 발단하고 고단한 오후의 챗바퀴가 빈약한 식탁을 어김없이 채워가니, 입맛을 상실한 그대가 이를 빌미삼아 가면을 뒤집어 쓰고 사육제Carnival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권태에 빠진 도리언 그레이에게 르네상스의 appetit을 배우고 로마의 향락에서 더러운 도자기를 기꺼이 채워갈 것이냐. 삐뽀삐뽀 유쾌하고도 저질스런 Siren을 위해 Sunny Side Up의 꿈을 빌려 오기라도 하라, 그리하여 관자놀이에 수건을 두른 곤조한 양들이 밧줄에 묶여 침묵하니, 전기밥솥에서 노릇하게 부활한 후라이의 꿈은 때맞춰 그대들의 이마를 가볍게 입맞추리라.

Ceci n'est pas une pipe, trefresher from Illyria

“아, 시간이여, 이 엉킨 매듭은 네가 풀어야겠지, 내가 아니라. 내가 풀기에는 너무도 꼬여 있으니. 십이야 Twelfth Night

사랑하라, 그대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내가 다시 이리도 오래된 책을 서재에서 꺼내 부득이한 서평에 나서는 것은 우리의 다음 세대가 접하는 갑작스런 사랑의 인사가 좀 더 성숙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내가 20년 전 이 책을 읽고 어떤 내용에 밑줄을 그었으며, 화자가 어떤 부분을 청자에게 호소했는지는 시간이 허락하는 독자의 몫일 것이다. 나 또한 세월이 주는 희로애락 가운데 조금은 성장했거나 어쩌면 작금의 시대에 통용되는 평균을 밑돌거나 한참은 뒤쳐졌을지 모른다. 그럼에도 블구하고 독자가 나의 지난 긴 세월에 녹아든 연륜과 경험의 노하우를 확인하고 싶다면 감히 이 서평을 정독해 주시기를 바란다.  

대상의 모순이 매력으로 발전하는 조건에는 상대의 관성적인 태도를 자동으로 의식하지 말며, 의도적인 자세로 사랑에 임하여 의식적인 사고로 관계의 흐름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사랑은 분명 여러종류가 존재하나 오감에만 집착하는 사랑이 사랑의 모든 본질을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사랑은 서로 주고 받는 것인데, 상대가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 현재와 미래에 집중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한없이 투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사랑은 성숙할수록 더욱 어려워지기 마련인데, 모든 열매가 딸기와 동시에 익는다고 생각하는 자는 포도주에 취할 자격이 없다. 사물의 본모습을 전혀 인지할 수 없는데 어찌 그것이 간직한 참 아름다움을 구별하고, 그리하여 그것을 갖고 싶은 열정에 입각해 마침내 사랑의 기쁨과 슬픔에 도달할 수 있을까. 결혼은 SNS에 자신의 허니문을 자랑하고 눈부신 혼수를 뽐내려고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을 이해하면 그것을 사랑하게 되고, 그것을 주목하면 그것을 파악할 수 있다. 그대가 사랑하는 것이 음식이라면 식객이 되어 가르강튀아를 본받고, 그대가 육체적 심미를 추구한다면 거을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바라본 후 알랑드롱을 떠올리라. 만약 그대가 음악에 심취해 있다면 편식을 금하여 다양한 음악들을 접함으로써 진정한 사랑을 그 가운데서 찾아보고, 그대가 미술에 견해가 넓다면 여러 작가들의 작품들을 감상하되, 흠집이 없는 자연과 창조주가 계획하신 생명들에게로 우선 빛나는 당신의 두 눈을 펼치라. 희락이란 오감에서만 접하는 것이 아니라 육감적으로 인식하고 정신을 향해 모순에 빠진 자신을 기투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현재에서 미래로의 궤적은 그대의 서사가 될 것이며, 사물에 대해 더 많은 지식을 섭렵한 당신의 도전은 일리아스를 뛰어넘을 것이다.

모든 벌들이 처녀비행을 할 수 없드시, 모든 여자가 어머니로 거듭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남자가 노동을 해야하는 것은 일벌과 다를바가 없다. 그렇다면 내가 마주한 사랑의 대상은 과연 무엇을 추구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서부터 우리는 자신의 프롤로그를 시작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조급한 마음이 무엇보다 앞선다면 그대는 자신에게 주어진 오늘을 빈틈없이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그대가 추구하는 사랑을 위해 그날 하루를 소신껏 소비하되, 석양아래 오늘의 마침표를 유종의 미소와 함께 찍을 수 있어야 하며, 다사다난한 과거를 잊지는 말되 그대의 이상은 늘 미래를 향해야 할 것이다.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가학적이면서 피학적인 우리의 심리, 그리고 테스토스테론과 에스트로겐이 공존하는 우리의 신체구조로 설명된다. 우리가 사랑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흔히 논의되는 대상과의 밀고 당기기에 익숙해야 하는데, 자신이 소유한 최선의 혼심을 순간에 쏟되, 그것이 남용되어 마니아적 집착으로 변질되어서는 안될 것이다. 의무와 권리가 사랑에 스며든다면 당신은 지엽적이고 말초적인 본능에 휩싸일 것이나, 그대가 본질적이고도 중추적인 사랑을 믿어온다면 아마도 그대의 하루는 사랑스럽고도 아름다우리라. 좋아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은 사뭇 다르다. 사랑하지만 좋아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고, 사랑하므로 자신의 취향을 다스려 대상을 좋아하게 될 수 있다. 비록 대상에서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사랑이나, 대상의 국부적인 모든 면모를 좋아하지는 않는 것이다.

세상의 많은 커플은 서로 사랑한다는 사실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존재가 커다란 축복이라는 사실마저 종종 잊고 지낸다. 그러다 오랜 세월이 흘러 결국 사랑하는 사랑이 세상을 떠나면 그제서야 혼자가 된 것을 슬퍼한다. 지금은 당연히 여기지만 나중에 옆에 없으면 가장 그리워하게 될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 따라서 살아있는 모든 순간을 깊이 은미하면서 지내야한다. 오늘부터는 하루하루를 그대의 인생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 사랑에 노력이 필요해도 절대 미루지 말자. 매일이 축복이도록 바로 지금부터 시작하라.

오늘이 그대의 인생에 주어진 마지막 날이라고 가정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하려는가. 곧 라테의 강을 건너 깊고도 영원한 망각에 빠질 것이니 그대는 에필로그의 서론을 서술하기 전 살아왔던 순간들에서 아름다움을 찾아보고 과연 까닭없이 휘청이던 삶을 하나의 완전한 앎으로 승화시켰는지 잠시나마 회상해야하지 않을까. 그리하여 아무런 회한없이 말끔한 최후를 수긍한다면 그대는 추후의 미련없이 다음과 같이 외칠 것이다. 

 [...] möchte ich [...]Auf freiem Grund mit freiem Volke stehen. Zum Augenblicke dürft' ich sagen: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Es kann die Spur von meinen Erdetagen Nicht in Äonen untergehn. -Im Vorgefühl von solchem hohen Glück Genieß' ich jetzt den höchsten Augenblick.

소소한 빗방울이 새벽을 알리고 반가운 햇살이 하루를 시작하고 살랑이는 바람이 아침이 낯설은 우리를 스치면, 다시 열기를 식히는 비바람과 여우비를 뒤쫓는 하얀 나비가 자신을 닮은 이름모를 길가의 호접란과도 비슷한 한송이 잡초에 사뿐히 내려앉고, 무더운 오후의 평온같은, 갈증을 달래는 하얀 밀크티와도 닮은 가벼운 소나기가 봄의 꿈을 깨우려 피어오르려는 아지랑이 위를 모질게 흩날린다. 우리의 가볍고도 치열한 일상은 그런 기상의 변덕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루를 개척하고, 계절로 얼룩진 깨어난 푸른 도시의 지난 희로애락은 열정으로 가득한 삶들과 무분별한 앎의 소용돌이 가운데 회상에 빠져 애닮은 기억의 초상을 달래며 그윽이 떠오르는 투지를 일궈간다. 그리하여 내일의 비상을 꿈꾸는 우리가 열번도 넘게 떠오른 오늘의 태양보다 강한 의지를 지속하였고, 오늘의 여신은 석양을 기다리는 우리에게 유종의 노을로 긴 하루의 휘장을 미소와 함께 조용히 거두리라.

우연히 어쩌다 그리하여 지금 타이베이는

 

我听见雨滴落在青青草地 我听见远方下课钟声响起 可是我没有听见你的声音 认真 呼唤我姓名 爱上你的时候还不懂感情 离别了才觉得刻骨 铭心 为什么没有发现遇见了你 是生命最好的事情 也许当时忙着微笑和哭泣 忙着追逐天空中的流星 人理所当然的忘记 是谁风里雨里一直默默守护在原地 原来你是我最想留住的幸运 原来我们和爱情曾经靠得那么近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조금 괴로운 당신에게 식물을 추천합니다. 직접 보셔서 아시겠지만 제가 스파트필름과 호접란 등을 키우면서 느꼈던 점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식물들을 두고 어딘가 멀리 떠나게 되면 매일마다 소행운을 떠올리게 됩니다. 왜일까요? 그건 제가 식물에게 길들여졌기 때문입니다. 괴로운 당신, 이제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번 식물을 키워보시면 어떨까요? 사람은 상처를 주고, 관계는 피로를 남기죠. 일은 탈진하게 하고 세상은 복잡하고요. 그렇지만 식물만은 달랐습니다.

젊은 시인이시여, 그대는 사랑을 노래하지 마십시오. 시를 살아가고 살아가는 모든 소중한 것을 보고 느끼고, 그렇게 디가가 그것에 대해 배운 것을 노래하십시오. 그리하여 그대의 시간이 바다의 바위섬처럼 질풍노도의 세월을 견디면 노을빛에서 진정 아름다움을 발견할 것입니다. 그럼 그때 그대의 시는 사랑입니다. 사랑으로의 승화는 니체가 말하는 초인인데, 그것이 바로 두 별, 즉 두 백색왜성이 만나 비롯 빛남에는 한계에 도달하나 초신성을 완성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당신에게 알려주는 이유는 제가 당신을 가르치려 드는 것이 아니라 단지 연장자로써 막 세상으로 쏟아져 홀로됨에 도전하는 청년에게 산파술을 시도하는 것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누군가에게 말해준 것이 있습니다. 만남으로 서로는 서로에게 더이상 빛날 수 없다고 말입니다. 물만 준다고 화분이 잘 자라는 것은 아닙니다. 적절한 온도와 일정한 볕을 제공해 주어야하고, 가끔 분갈이나 적절한 밀도의 새로운 토양을 제공해 주어야 합니다. 무한한 동경에서 만남의 묘함, 의무에 따른 관심과 권리에서 오는 행복, 그리하여 애착에서 사랑의 기쁨과 슬픔이 찾아옵니다. 

제가 믿는 종교에서는 창조주가 자연을 만드셨습니다. 거리에는 온통 아름다운 꽃들과 우람하고 멋진 나무들이 즐비한데 릴케는 왜 장미정원을 키웠을까요? 아마도 로뎅의 영감을 위해서라고 거짓말할지는 모르나 아마도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빗은 창조주의 기쁨을 장미에게서 얻으려고 한 것일까요? 릴케의 묘비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장미여, 오, 순수한 모순이여, 이리도 많은 눈꺼풀 아래 그 누구의 잠일 수도 없는 기쁨이여. 네, 말괄랑이 삐삐와도 같은 인생을 시작한 릴케는 연인을 위해 장미에 찔려 패혈증으로 죽었습니다.

인간은 동식물을 먹고 입고, 그것으로 행복을 얻으며 살아갑니다. 나는 모든 동식물이 적어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최소한의 존중을 받으며 존재하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서로에게 존중받기를 원하는 만큼 타인을 존중하고 나아가 이 땅에 살고 있는 다른 생명체까지도 존중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나부터, 아주 조금씩이라도 더 마음을 써봐야겠습니다. 부디 존중해주세요.

식물은 우리의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뀌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고보면 식물은 정말 유익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어디서나 쉽게 구할 수 있다고 무관심에 함부로 다루어서는 않됩니다. 과학적으로 식물들은 대화를 통해 서로와 교감하는 특별한 존재니까요. 믿기 어렵겠으나 식물들은 친구가 옆에 있을 때 더 잘 자라난 답니다. 식물에는 침엽수와 활엽수가 있는데 봄을 기다리게 하는 식물도 있습니다. 결국 실내에서는 습도와 일조량이 계절을 정의하는데 제가 키우던 이탈리아 바질도 그와 같습니다. 식용이라기 보다는 관상용이었는데, 이 친구는 저에게 봄을 기다리게 하는 존재입니다. 씨앗에서부터 키워낸 이 친구는 분갈이도 해주고 물도 주기적으로 주었으나 잎들이 생각보다 비약했습니다. 조바심에 그렇게 일년을 보내고 다시 찾은 여름에는 작고 힘이 없어 보이는 잎들을 과감히 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곧 풍성한 잎들이 자라나기 시작하더군요. 마찬가지로 우리도 일상에서 많은 경험을 통해 여러가지 사고들이 자라납니다. 하나 너무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 가득하다면 분명 일상은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시들해 집니다. 그래서 당신과 나는 불필요한 생각버리기를 종종 실천해야 합니다.

누구나 장미하면 비슷한 모양의 꽃을 머리 속에 그리기 마련입니다. 당신의 식물이 얼마나 생장하길 바라시나요? 조급한 마음에 분갈이를 너무 자주하거나 물을 과하게 준다고 식물이 빨리 자라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식물에게 해가 되거나 어느날 갑자기 쓰러져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위에 늘 당신 곁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식물처럼 레벨이 붙어있지 않습니다. 상대가 주어진 생을 다함으로써 그에게 이라는 레벨이 붙혀지니까요. 언제까지 식물과 지내야 하는지 궁금하시나요? 제 경험에 의하면 식물을 분가하는 기쁨의 날과 식물을 입양시켜야 하는 슬픔의 날이 문득 찾아옵니다. 예쁘고 귀여운 화분을 원하신다면 다년초는 제한적입니다. 오래도록 친하게 사귀어 갈 벗을 원하신다면 뿌리가 자라날 공간을 확보해 주어야 합니다. 또한 당신이 농사를 지으실 의향이 아니시라면당신의 정원 대부분을 수확의 공간으로 만드시지는 말라고 부탁드립니다. 제가 당신에게 권하는 식물과는 성격이 다르니까요. 그것을 이해하시는 날이 오면 왜 우리가 흙으로 돌아가야 하는지 창조주의 깊은 섭리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추가로 화분이 생겨 식물에 물을 주는 날이 오면 하늘이 제공하는 빗방울을 잠시 떠올려 보십시오. 그럼.

천둥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비록 그 비가 내리지 않더라도, 나는 머무를 겁니다. 당신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면. 언어의 정원

 

아침의 피아노


2017년 7월: 아침의 피아노 베란다에서 먼 곳을 바라보며 피아노 소리를 듣는다. 나는 이제 무엇으로 피아노에 응답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틀렸다. 피아노는 사랑이다. 피아노에게 응답해야 하는 것, 것도 사랑이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2017년 7월: 몸과 마음의 기능이 경지에 도달하여 완벽하게 발휘된 상태를 덕virtus, 아레테arete라 한다. 미덕(arete; 소크라테스의 덕이란 지행합일, 즉 진리와 지식을 실천하는 것)이란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아는 것, 앎을 의미한다. (앎에는 의무와 행동movement이 뒤따른다.) 플로티노스는 모든 미덕(용기를 가지고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영혼의 아름다움platonic(정신에 집중해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신nous이란 나를 이루는 몸과 영혼과 이성(logos)에서 신적인 이성을 말한다. (진위와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이성이라 한다.)
2020년 7월: 쓰지 못한 답신을 생각하고 있다. 2018년 봄에 책 한권을 읽고 리뷰를 써달라는 청탁을 받고 [혼]을 썼는데 원고를 마감하자마자 메일을 한통 받았다. 네게 원고를 청탁한 사람이 보낸 편지였다. 원고를 바로 읽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지만 바로 답신하지는 못했다. 해야 할 일을 적은 목록에 답신,이라고 적어놓고 해야 할 일로 계속 미루며 해를 넘겼다. 당신을 많이 생각했다는 답신을 쓰고 싶었는데 쓰려고 마음먹을 때마다 말이 넘쳐서 쓸 수가 없었다. 왜 내게 그 원고를 청탁했는지, 그게 내게 어떤 작업인지를 짐작하고 있는지, 나는 그런 게 궁금해서 청탁을 받은 직후부터 원고를 쓰는 내내 당신을 많이 생각했다고 답신하고 싶었다. 그렇게 계속 당신을 생각했기 때문에 그 원고를 쓸 수 있었다고. 가장 하고 싶은 말은 고맙다는 인사였다. 그 이야기를 쓰는 동안 나는 내가 겪은 일이 나를 먹어치우지 않도록 생각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그게 실은 내게 필요한 일이었다는 걸 그 원고를 쓰며 알았다. 그런 것을 간단하게 적을 방법이 없어 늘 다음으로 미루고 있다. 3년째 답신하지 못했다. 황정은의 일기

1924년 6월: 모든 것들은 오고 가고 또 온다. 카프카의 마지막 일기
2008년 6월: 우리가 처음 만난 그때, 파리의 아침은 얼마나 맑고 싱그러웠는지. 당신은 첫 전투를 치르고 있었습니다. 그날 당신이 거머쥔 영광은, 이후로도 줄곧 당신 곁에 머물렀지요. 나는 당신에게 말을 건넵니다. 듣지도 대답하지도 않는 당신, 이곳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 없는 유일한 사람인 당신에게.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
2013년 6월:  고마운 사람으로 기억되어 언젠가 잊혀지기 보다는 상대를 기대하게 만드는 사람이 멋있고, 내면의 매력으로 상대의 호의를 이끌어 낼 줄 아는 지혜와 적을 친구 삼을 수 있는 호탕함은 물론, 그에 적합한 통찰력을 필수로 소지한 사람이라면 더없이 좋을 것이며, 상대의 눈높이를 맞춰줄 수 있는 아득한 너그러움과, 적의 본성이 욕망하는 것을 꿰뚤어 볼 수 있는 뛰어난 예지력, 침묵을 금처럼 여기나 해학은 물처럼 헤프게 여기고, 슬픔을 나눌 친구와 고통을 함께 운반할 이웃을 두루 사귀며, 넘치는 욕망을 스스로 자제할 줄 알고, 나아가 한 발짝 물러서 상대를 배려할 줄 아는 자비가 있어야 하며, 상대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 줄 수 있는 인내, 가까운 상대의 취향을 눈여겨 자세하게 들여다보는 노력과 주위의 의증을 주의 깊게 관찰해 긍정적인 결과를 얻어내는 치밀함, 또 호의의 기술과 부탁의 시기를 간파할 줄 아는 명석한 사리 분별력, 그리고 상대보다 앞서 선을 베풀 줄 아는 아량, 그러나 상대가 감당할 수 있는 호의를 알맞게 조절해주는 슬기로움이 있으며, 침묵이 평판을 바꾼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가깝게 지내는 상대를 너무 믿거나 그렇다고 너무 의심하는 일은 없어야 하며, 상대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최소한의 자존심은 누구와도 공유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이웃과의 도덕을 실천하고 아이를 사랑하며 노인을 공경하고, 상대에 입장에 서서 그를 이해하며 결국에 가서는 상대방에게 공감을 이끌어 낼 줄 아는 통찰력, 베푼 만큼 풍요로워 진다는 진리를 상기하며 칭찬이 호의의 원천임을 기억하는 자여야 하고, 속단으로 상대를 쉽게 평가하지 않으나 상대의 욕망을 견제해 그의 욕구를 자극할 줄 아는 시기적절한 처세술, 상대의 장점으로 자신의 단점을 보안할 수 있는 능력을 소지하며, 호감가는 달콤한 말과 의견에 반박하는 기술들을 적절히 사용할 줄 알아야 하고, 얻은 호의로 자신의 능력을 보충할 줄 아는 지혜와 상대에게 먼저 손을 건넬 수 있는 용기, 상대의 기질을 파악하고 그의 의도와 생각을 읽어내 만약을 대비하는 준비된 자세, 우정에 진실하며 친구의 부정을 긍정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능력 또한 아낌없이 발휘할 수 있어야 하고, 또 그런 우정을 나눌 친구를 신중히 선택할 줄 알며, 사람의 외모보다는 그의 사람 됨됨이를 보고, 친구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할 줄도 알며, 후원자를 아무 곳에나 함부로 동원시키지 않고, 자신의 모든 지식을 한순간에 털어놓지 않는 지혜, 거절과 승낙에 앞서 보여지는 신중한 처사, 그래서 빛나고 성의있는 거절과 멋있고 유쾌한 승낙을 만들어낼 수 있으며, 지나친 예의를 벗어나 허심탄회한 자세를 들어내는 순수함, 상대에게 기다림의 미학이 무엇인지 가르쳐 줄 수 있으며, 상황에 따라 상대에 따라 그에 걸맞는 격식을 갖추는 능숙함이 존재하고, 백 마디 말보다 한가지 행동으로 그를 대신하며, 상대방의 호의와 예의를 존중해 주지만 반대의견에는 쉽게 반대하지 않는 신중함, 농담과 조롱을 구분하여 사용할 줄 알며 증언부언이 없는 짧고도 명쾌한 언어구사, 그리고 적절한 순간이 언제인지를 간파해 내는 예리한 감각이야말로 모두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다.

음 하나를 더하면 기쁨이 되고 음 하나를 빼면 슬픔이 되는 것, 그게 인생이야.

2020년 2월: 아우로라 모랄레스는 [망명괴 자긍심, Exile and Pride]을 추천하는 글에서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을 알고자 하고, 우리가 기여한 모든 것을 더욱더 제대로 인식하고, 우리의 구체적이고 다충적인 삶을 바탕으로 정직하게 책임을 지고 발언해야 한다. 언제든 그 페이지로 돌아가려고 스티커를 붙여두었고 며칠째 그것을 생각하고 있다. 우리가 기여하는 모든 것. 황정은의 일기
2022년 2월: 그대의 두 귀에 퐁롱거리는 새들의 노래소리가 울리고, 그윽한 그대의 두 눈에 나린 별들이 총총히 빛나며, 그대의 하얀빛을 띤 엷고도 붉은 두 입술은 으레 천사의 말을 속삭이고, 다소곳한 그대의 두 손은 조용히 푸른 희망을 나누며, 가벼운 그대의 두 다리가 자유롭게 세상의 중심을 찾아갈 때, 비누 향 그대의 순백한 피부는 붉은 태양아래 찬연히 빛나고, 여린 그대의 어깨에 사나래가 자라고, 어린 그대는 라온하제를 꿈꾸며, 갓 그대로부터 자라난 아련나래는 하늬와 여우별을 지나 상상의 나래를 활짝 펼 것입니다. - for my valentine
2024 2월: 일기장을 꺼내십시오. 그대는 이 날 무엇을 하셨습니까? 일기는 영혼의 거울입니다.

슬퍼할 필요 없다. 슬픔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다. 철학자 김진영의 애도 일기

그대여, 피네강의 경야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습니다. 자, 인내심. 인내심은 가장 위대한 것이고, 그 무엇보다 우리는 인내심이 사라질 만한 혹은 사라진 듯 보이게 할 만한 모든 것들을 피해야 함을 명심하시오. 우리는 수면을 통해 휴식을 취하는 순간조차 무엇을 얻고자, 무엇을 알고자 쉬지않고 뇌를 회전하며 갖가지 꿈을 꿉니다. 하물며 깨어있는 상태의 우리는 일탈을 꿈꾸며 끊임없이 무엇인가를 바라고, 누군가를 만나려 하고, 그리하여 어딘가를 가고자 합니다. 반드시 그래야 할까요? 그대가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데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고, 가고자 하는 목적지는 딱히 정해진 통행로가 없어야 합니다. 아니라면 인내하십시오. 생각에 생각을, 그리고 다시 그 생각을 한동안 재운 후 또 한번 심사숙고하여 남들과 같이 기수와 선배의 조언에 귀를 기울인 다음 행동에 나서십시오. 철학자 김진영 씨의 발언대로 그대라는 존재는 바닥에 도착했고, 단독자가 되었습니다. 본질적 타자성의 존재로 나락한 자신을 스스로 껴안으십시오. 만약 스스로가 무척이나 무겁다고 느끼신다면 이토록 무거운 당신을 껴안고 진땀을 훔치며 그대를 사수하던 주변과 지인들을 떠올리어 다시 삶으로 떠오르십시오. 그대는 클레망마로의 시선을 외치시렵니까. 봄도 나의 아름다운 여름도 창문으로 도망가 버렸네. 더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으니, 겨울의 냉기가 몸을 파고드네. 그대여, 냉기가 스며들기 전 가을에는 부디 기도하소서. 그리하여, 가을에는 사랑하게 하소서. 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 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가을에는 홀로 있게 하소서. 자기연민에 눈물을 글썽이는 그대가 헨델의 울게 하소서를 듣는다는 건 정녕 가식이고 모독이자 파렴치 행위일 것입니다. 미지를 정복하기 위한 모험이 필요하시다면 드레스가 한가득한 캐리어를 버려둔 채 배낭을 둘러매고 버스를 타십시오.

M. 먼로는 사랑은 돌아오지 않는 강 위를 유랑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랑은 또 다른 강을 만나거나 곧이어 여러가지 존재들이 범람하는 바다를 만나게 됩니다. 그때가 오면 그대를 위한 비타 노바의 시간이 기원할 것입니다. 그때는 사이렌 소리의 괴로움에 대해서, 그리하여 누구를 위하여 종이 울리나를 떠올리고, 그대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돛단배의 키를 잡으십시오. 고독과의 친구는 유익할 것이며, 하늘에 빛나는 별은 그대를 자연과 함께 노래하게 만들 것입니다. 마침내 항구에 도착해 잊혀진 마들렌의 맛을 만끽한다면 되찾은 기억에서 인식의 흐름으로 그대는 새로운 변화와 환희를 만끽하실 겁니다. 그때는 턱시도와 정장구두가 불편함에도 왜 그것을 선호하며, 왜 프롤레타리아가 기꺼이 부르주아지의 가면무도회에 참석하는지 쉽게 이해하실 수 있을겁니다. 레닌의 말대로 모든 이론은 회색이지만 종려나무와 제주의 야자수만 푸릅니다. 

...... 그러나 우리가 낙담하여 문 찾기를 그만두려 할 때 거짓말처럼 눈앞에서 문은 열린다. 푸르스트 , 그러나 두두리라. 열릴 것이요.

우리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고 여기는 그때 우리를 구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우리가 그토록 찾았던 그 문을 우리는 우연히 두두리게 되고 그러면 마님내 문이 열리는 것이다.

종다리의 지저귐이 잠잠한 새벽을 흔들어 깨우니, 쓱쓱 부지런한 미화원의 경쾌한 빗질소리가 제주의 아침을 화사하게 단장한다. 봄 하늘 아래 피어나는 제주의 하루는 흩날리는 봄비에 본연의 색채 과시하고, 봄눈처럼 쌓여가는 벚꽃잎이 고독한 순례자를 기다리며 수줍은 올레길을 수놓는다. 오름이냐, 바람이다, 아니 쪽빛바다와 푸른 밤이다. 동백이드냐, 유채꽃이 화사하구나, 그럼 우리의 fasting은 고기국수와 빙떡으로 breaking 하드냐, 제주에 취한 그대 전복죽과 보말칼국수로 고개내민 식욕을 다스리어라.

탐나耽羅는 제주

본문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파도를 기다려.기조력으로 지구와 가까워진 달은 파도를 끌어 당깁니다. 썰물일 때는 서로가 너무 가까워서 일까요? 우리는 때론 가까울수록 무관심해지거나 서로를 함부로 대하기도 합니다. 파도가 밀려나가는 동시 첫만남의 설레임과 긴장감 역시 거품들과 함께 사라져 버리는 걸까요? 모래를 두려워하는 것인지 백사장 쪽으로 조금만 이끌어도 주저앉으며 소리를 지르고 울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바다에 접근하는 것은 단념하고, 그리하여 그렇게 만남을 포기해야 할까요? 물론 모든 익숙함과 편함에는 조건과 제약이 따릅니다. 불편함이란 상대를 존중하여 지키는 예절과 법도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우리가 불편함을 대하는 자세로부터 우리의 만남은 꽃을 피우거나 또는 파탄으로 말미암아 결별의 절차를 밟습니다. 두번째 데이트라고 마실차림으로 외출할 수는 없겠지요.

시간의 걸음걸이에는 세 가지가 있다. 미래는 주저하면서 다가오고, 현재는 화살처럼 날아오고, 과거는 영원히 정지하고 있다. F. 실러

 

기억은 망각으로 이어져 있어 우리는 늘 기록을 해야 하지만, 각성하는 이성은 기억의 고뇌 때문에 뉴턴처럼 기록을 폐기하거나 노아처럼 망각을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대는 망각이 필요한 부류에 속하시나요? 불면증이 없으시다면 즉흥적인 유희나 곧바로 소비될 심미적 요소를 위함이 아니시길 바랍니다. 중독이 아닌 치유를 위함이라면 체력소모가 높은 유산소 운동이 주는 Runner's High나 테라피 요가도 있습니다. 저와같은 경우, 긴 세월과 함께 그같은 노력들이 모두 무력해져 버렸지만 적어도 독주가 짧은 안식을 가져다 주는 것은 분명합니다. 

제가 이곳을 찾은 이유나 당신에게 이 책을 읽어주는 이유는 어떠한 불가항력에 의함이 아니라 제가 스스로 원해서 입니다. 그대는 앞으로 살아가며 오랫동안 이 사실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와 그의 첫사랑과 같은 첫만남을, 그러나 우리는 마침내 눈부신 봄꽃을 피워냈다는 사실을. 그 기억이 그대의 시간과 함께 빛바래도록 일상에 전시하지 마시고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과 그날을 마감하는 늦은 오후에 습관처럼 상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대로 인해 소모된 저와 많은 분들의 시간은 보상을 바라는 것이 아닌 부디 누군가에게 오랫동안 기억되기를 바랍니다.

봄꽃이 봄비처럼 쏟아지는 거리를 지나 나는 동심이 새록새록한 책방으로 걸음을 제촉하고, 갸냘픈 봄눈이 이리저리 네둘레로 퍼지듯 전후좌우로 흩어지는 꽃향기가 브라이트 리버 역까지의 발삼 향 그윽한 전나무와 야생 자주나무, 그리고 달콤한 향을 품은 사과나무를 연상케 한다. 하얀 면사포를 씌운 듯한 벚꽃나무가 한가한 주말의 오후를 찾으면 다급함을 잊은 눈동자들이 파란 지붕들 사이에서 초록 지붕을 꿈꾸지 않을까, 행여 오렌지 공으로 속속 만세를 부르는 어린 도깨비들이 어쩌면 빨간 문을 꿈꾸는 것일까. 주홍 글씨의 굴레를 벗어나 해방 일기를 적어가는 한량들은 오늘 밤 고래의 사랑을 그릴텨, 아니 안데르센이 지겨운 올빼미들은 황혼이 저물기 전 저마다 분주히 자신의 동화를 펼치리라.

쇼핑목록: 크레파스

진리의 발견 에서 마리아 포포바는 삶에 별빛을 섞으라고 조언합니다. 무슨 뜻일까요? 황혼 후 순례자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을 목적지로 인도해 줄 별빛입니다. 도시를 걷는 여자들의 저자 로렌 엘킨은 걷지 않는 문화가 권위적인 문화를 만든다고 합니다. 권력으로 상대를 억압하려는 이유가 게으름에서 비롯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당신이 걸어본 적이 언제입니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면 오늘부터 시작하십시오. 산책, 또는 산보로 시작하셔도 됩니다. 나치시절 장폴 사르트르와 시몬 드 보부아르처럼 굶주림 상태에서까지 산책에 나서서 어지럼증으로 쓰러지라는 것은 아닙니다. 산책이 순례로 이어진다면 더없이 좋고, 그럼 그대는 자신을 인도해 줄 별을 선택해야 할 것입니다.

그대의 삶이 거대한 카오스로 다가온다면 가을의 코스모스를 기다리십시오. 

연인 을 쓴 마르그리트 뒤라스는 이렇게 회상합니다. 이 어린 시절에는 베란다, 생기 잃은 나무들, 깍은 돌로 만든 난간들, 타일을 박은 테라스들, 흰 라카 칠을 한 가구들, 등나무 의자들, 부드러운 물 위를 흘러가는 불안한 소형보트들, 아시아의 습기 찬 송진 속에서 베트남의 물지게꾼과 마주치는 식민지의 희디 흰 실루엣들이 있었다. 항상 그녀는 이 빛을 기억할 것이다. 이 불공평한 세계의 빛을. 그대의 시절에는 어떤 오브제가 빛을 잃었고, 어느 시대의 유물이 불공평한 세계의 빛을 토로하나요? 제주의 돌담을 끼고 골목을 돌다보면 저는 모호하고 성글성글한 계절을 떠올리고, 그리하여 나는 인생과 화해하지는 않았으나 다시 살아야겠다고 살며시 중얼거립니다. 그러니 바라건데 그대여 솜솜하라, 그러나 부디 늘 생생하시길. 그럼.

그러니까 너가, 또는 내가 삶을 원하는 이유가, 도대체 그 목적이 생리적 욕구와 물질적 집착 이외는 없는 것일까. 너는 설계자를 꿈꾸지 않고 나는 한낮 말초적 욕구에만 집중하는 기능공에 불과한 초라한 미물이라고? 포환같은 찰라의 하루, 만성적 애정결핍 증상을 띠는 우리는 총망지간에 대상행동이라는 인스턴트 몽환의 쾌락에 젖어 소실점에 도달하지 못하여 자아초월 역시 이루어내질 못한다. 우리의 삶은 지금 천상에 기록되고 있는가.

책 읽어주는 남자 #1 - 나의 아기 오리에게

네 안에는 꿈과 잠재력과 가능성이 출렁이고 있어. 네겐 나눌 것, 내어줄 것이 무척 많단다. [이것이 너의 인생이야. 지금이 너의 시간이고.] 네가 여태 하고 싶어 했던 모든 걸 해 볼 기회가 온 거야. 용감하게 살아가고, 있는 힘껏 사람들을 아끼고, 넉넉히 나누렴. 빛나는 모든 순간을 만끽해. 너의 삶을 사랑으로 채우고, 일상을 경의로움으로 채워. 하려는 모든 일에 너 자신을 기꺼이 던진다면, 그때가 바로 네가 살아 숨쉬는 순간이며 마법의 불꽃이 튀는 순간이 될 거야.

은빈 씨, 타고르나 셰익스피어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동화에서 힐링을 얻을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저의 글들이 때로는 난해하다는 점, 저도 알고 있고 그런 글을 통해 제가 호소하고자 하는 부류 또한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실 겁니다. 

이룰 수 있을 때까지 꿈을 꾸는 거야. 할 수 있다는 믿음이 꼭 필요하지.

그대는 젊다, 아니 아직은 많이 어린 그대는 아직 꿈의, 꿈에 의한, 꿈을 위한 믿음을 완성시켜야 할 시기입니다. 황혼을 지나 당신의 눈부신 날개를 펼쳐야하는 때는 반드시 그대를 찾아옵니다.

원하는 곳을 향해 있는 힘껏 발을 내딛어. 바로 거기서 또 한 걸음을 더 나아가는 거야.

디딤돌이 그대를 견디어 줄 것인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대를 조용히 뒤따라가고 있으니까요.

새로운 것을 원한다면 새로운 시도를 해 봐. 원하는 게 없다면 네가 직접 쓰는 거지.

반드시 무얼 원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대가 만약 원하시는 것이 없어도 오늘이 행복하시다면 당신은 주위에 사랑을 나누어 주실 준비가 된 것입니다.

가장 큰 걸림돌은 때론 우리 자신이야.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해낼 수 없을지 몰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해낼 수 있게 돼.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려고 애쓰지 마세요. 그대를 위한 하루에서 그대가 행복을 꽃피우면, 그대가 발산하는 향기에 미소짓는 주위는 지친 일상에서 새로운 활력을 얻을 것입니다.

"너 자신을 잃을 만큼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어. 그 안에서도 너를 찾게 될거야.

어느세 하루를 찾은 노을에 놀라워할 만큼 자신이 깊게 몰두할 수 있는 일을 발견하셨다면 망설임없이 그 일에 꾸준히 집중하시길 바랍니다. 존재의 이유가 당신을 설득하려 문득 그대의 오늘을 노크할 것입니다.

망설여질 때마다 더 사랑해 봐. 마음은 꼭 풍선 같거든. 부풀어 오를수록 더 날아오르고 싶을 거야.

당신은 무엇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애로스를 분리시키려는 열정이나 진취적이고 건설적인 주체에 깊은 끌림을 느끼십니까? 아무렴 저는 그대의 선택에 아무런 의의가 없으며, 다만 당신이 바라보는 곳으로 저의 시선 또한 고정하고자 합니다. 그리하여 그대가 느림과 빠름 가운데 유족히 하루를 마감하여 또 다시 주어진 삶으로 무던히 떠오를 수 있도록.

지금...... 이런...... 이번에도...... 다시...... 됐다! 마음을 굳게 먹으면 해낼 수 있는 힘이 생겨.

아마도, 어쩌면’, 만약과 같은 단어들은 어감nuance이 좋아서 아직 미래가 불투명한 청소년들이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주로 사용합니다. 하지만 성인이 일상에서 이와같은 단어들을 난발한다면 대인관계에서 신뢰를 얻지 못할 것입니다. 헤리 투루먼은 염세주의가 기회를 장애로 만들지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자세가 장애를 기회로 만든다고 설명합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고 희망을 배신당하거나 불완전하고 비이성적인 상황에 부딪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상황에 대비해 견고한 확신과 긍정이 넘치는 여유로운 삶을 유지해야 합니다.

한 가지 일을 해내면 다른 일은 한결 쉬워지지. 할 만한 가치가 있다면 잘 해야 할 필요도 있어.

뭐든지 시작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드높은 투지와 지의와 의향으로 일에 착수했으나 의미가 무산되는 경우도 있지요.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는 말처럼작은 물방울이 모여 큰 바다를 이룹니다. 필시 추진력에는 노력이라는 가속력이 불가피합니다.

노력은 조금씩 이뤄나가는 여정이야.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조금씩 나아지는 길 이라는 거지. 기꺼이 부딪혀 보려는 너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어.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대의 현재도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할까요? 이미 검증된 당신은 조금 더 힘을 내어 정상에서 바라보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모두에게 널리 전해야할 의무가 있습니다.

걱정은 네 상상 속에서 두려움을 만들어 내. 그리고 마음은 네가 주는 것을 먹고 자라지. 그러니 희망을 줘. 사랑을 주고. 진실을 줘.

걱정만 하며 시간을 낭비하느니 성공의 어머니인 실패를 경험하는 것이 오히려 이득입니다. 그리하여 그런 그대의 모습에서 주위는 희망을 보고, 당신의 아름다운 도전에서 사람들은 삶을 사랑하게 됩니다. 

결코 포기하지 마. 특히 너 자신을.

 

우린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을 더 많이 후회하곤 해. 너무 조심하지 않아도 돼. 어리석어 보이면 어때. 편한 것보다 용감한 것을 선택해.

내가 남들보다 특별하다고 생각하며 자만심과 우월감에 빠져있는 사람에게 도전이란 공허하며, 그는 늘 외롭고 불행한 사람입니다. 실수들이 모여서 성공을 만드는데, 언제나 남들보다 앞서기 위해 삶이 제공하는 너그러움과 여유를 버린다면 그는 한낮 소모품이나 기계부품에 불과합니다. 비록 지금은 어리석지만 그에게는 현명하려 애쓰며 몸부림치는 오늘이 있고, 간절히 바래오는 미래 또한 활짝 열려 있습니다. 외치세요 이렇게, Freedom!

다리가 후들거리더라도 네가 믿는 것을 위해 당당히 맞서. 용기와 두려움은 종종 함께 찾아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대가 현재 처한 상황에서 더는 물러설 수 없으며, 두루 주위에 귓감이 되어야하는 소명이 있다면 장애물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에 맞서 대응하는 소신있는 용기는 필연입니다. 과단성으로 상황에 대치하는 용맹은 높이 평가됨이 옳지만, 속수무책으로 어리석고도 무지한 언행은 되도록 피하셔야 합니다.

너 자신에게 상냥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마. 깊이 들이마시는 숨결은 너에게 건네는 작고 다정한 위로야.

그대는 자기 자신에게 친절하시나요? 저는 오랜 세월동안 자신에게 무척이나 혹독했습니다. 사정이 있었다고 변명하지만 자신에게 너그럽지 못한 일상은 삶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한순간 무너져 버립니다. 

너그러워지길. 네가 나누었던 것들이 최고의 선물로 되돌아오게 될 거야.

소유에 집착하다보면 그대의 주위는 황량하게 변해갑니다. 이웃과의 소통은 단절되고, 정으로 넘쳐야 극복할 수 있던 우리의 희로애락은 어제의 퇴물로 전락해 버립니다. 창조주가 그대에게 배풀은 물질과 역량을 환수하여 새로이 분배하기 전, 자진해 주변과 두루 나눌 수 있다면 그대는 행복과 축복을 동시에 얻을 것입니다. 단 금은보화를 나누어야 할 경우가 더러 있으나 마음과 정성을 나누는 것이 으뜸입니다.

다른 누군가를 위해 곁에 머무를 줄 알아야 해. 따스한 행동은 따스한 감정으로 연결되지.

그대가 누군가의 따뜻한 손길, 혹 다정한 말 한마디에 추락한 기운을 회복했드시 당신도 언젠가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셔야 합니다. 지인이 아닌 경우 선뜻 낯선 그에게 다가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가 힘들었던 자신에게 선뜻 다가와준 사실을 오랫동안 기억할 것입니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에 친절하기를.

살아있는 모든 것은 아름답고, 아름다운 것은 반드시 소중히 다루어져야 하겠지요? 생명의 신비를 많이 알아갈수록 그 경이로움에 언제나 그 앞에서 숙연해 집니다.

감사는 행복으로 가는 비밀의 문이야. 감사할 줄 알면 감사할 일을 더 많이 찾을 수 있을 거야.

일상이 불평으로 가득차면 만사가 순조롭지 못합니다. 무엇에나 감사하고 거기서 작은 행복을 느끼면 그대를 감도는 긍정적인 에너지가 모든 일들을 뜻대로 풀어줍니다. 

모든 일이 저절로 단순해지고, 쉬워지고, 나아지진 않아. 삶은 항상 어려운 법이야. 지금 행복해지는 법을 배워. 바로 지금이어야 해.

모든 일에는 데뷔할 시간이 필요하고, 우리는 톨레랑스로 그를 응원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주어진 몫은 대부분 스스로 해결해야 합니다. 앎으로의 삶은 어렵고 힘듭니다. 하지만 수많은 눈물과 고뇌로 이루어진 그 과정을 돌아보면 아름답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삶은 놀이터야. 노는 걸 잊지 마.

Carpe Diem! 이 순간에 충실하라는 의미 또는, 오늘을 잡으라는 뜻입니다. 쉽게 말에 놀 때는 제발 놀아야 합니다.

기억해. 네가 아주 많은 것을 지녔다는 걸. 네겐 나누어 가질 많은 재능이 있다는 걸. 네 삶은 네가 꿈꾸던 그 모습이 될 거야. 그리고 꿈꾸던 모습보다 더, 훨씬 더 나은......

새순이 돋아나는 유채꽃 언덕에 살랑살랑 봄바람이 실어나른 벚꽃눈이 가볍게 내려앉아 제주의 의욕을 슬그머니 잡아당긴다. 붉은 동백처럼 절개를 지켜낸 우리의 애필로그가 만약 여기라면 길고도 짧은 동행에서 그대와 나는 애증과 애상과 애오를 유족히 주고 받았을까. 이에 그대 가시냐 감시냐,라 마시고 소랑에는 부치름이 엇나,라 말씀하시어 부족한 저 조끄뜨레 하기엔 하영멍 당신,이라 조용히 종알대게 하소서. 우리 곧 와시냐, 오라시냐,라 주고받음으로 호랑가시나무 숲에 올망졸망 모여앉아 모닥불을 밝히고 지난 추억을 불태워 한 여름밤에 풍성한 가을동화 꿈꾸게 하소서. 삼춘, 또시 오쿠다 양.

봄의 질량

책 읽어주는 남자 #2 - 작별들 순간들

나는 교회와 먼 만큼, 미래와 먼 만큼 우아함과 멀다. 왜냐하면 내게 작가들의 우아함이란 곧 그들이 책을 다루는 방식이었기 때문이다. 한번은 천으로 장정한 하이네 뮐러의 하드커버 책을 욕조에 빠뜨리는 바람에 완전히 망가뜨린 적도 있다. 베를린 서가의 주인은 그 책을 친구 부부에게 보여주었고 친구 부부는 그 자리에서 쓰러지 듯이 경악했다.

은빈 씨도 알다시피 제가 한국에 와서 산 대부분의 책들은 새것이거나 제가 모두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거의 새것과 다름없이 상태가 양호했을 것입니다. 물론 저도 우아함을 선호하지만 제가 토론토에서 작업에 사용하던 책들을 보시면 그 당시의 처절함과 간절함을 확인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라면국물자국은 그래도 괜찮다,라고 넘어가겠지만, 찟어진 페이지나 강한 집게로 페이지들을 고정시켜 거의 모든 페이지에 그 때의 깊은 상흔이 새겨진 것을 목격하시면 지금처럼 향기가 나는 우아함이 아닌 우악스러움을 떠올리실 겁니다.

책에 대한 내 태도는 우아함이 아니라 강박에 가까웠고 나는 익명의 책들을 참을 수 없었다. 나는 내 서가가 도서관이나 책방이 아닌 은자의 섬이 되기를 원했다. 텅 빈 해변, 하나의 발자국, 한 그루의 야자나무. 그 책들은 영원히 무인도에서 은둔할 자가 가방에 넣고 갈 책이어야만 했다. 은자는 그 책을 반복해서 읽어야만 했다. 그러나 이제는 바뀌었다. 내 책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 먼 곳으로 조금씩 흩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제가 그 때의 서재에서 견딜 수 없었던 한 가지가 바로 문학의 빈자리 였습니다. 작업내용이 논문에 가까워 거의 대부분이 전문서적에 가까웠고, 근근히 디지털로 향수를 달래며 접하는 의식으로는 저의 허기진 시각적 심미를 구원할 수 없었습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최근 인스타에 올린 사진들에서의 북카페 감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가끔 한국에 방문하면 어김없이 문학분야에서 설래이는 마음을 다독이며 그 자리에서 한참동안을 서성입니다. 예를들어 오랜만에 외식을 나와 뭘먹으면 좋을까,라며 내심 즐거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재언하자면 그 때 당시의 허기의 편린들이 당신이 지금 우연처럼 보이는 결실로 맛보는 상아망대epithet입니다.

그것은 내 가장 깊은 곳을 건드리고 깨어나게 했어.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이나 문장을 묻는 거라면, 나는 전혀 기억나지 않아.

은빈 씨. 전 플롯을 정해 놓은 후 래디컬한 문장에서 청자에 따라 구성을 떠나 대상이 수용할 수 있는 어휘에 걸맞는 옷을 입힙니다. 감성이 간절한 청자에게는 마음이 벅차오를 미사여구로 오성을 자극하고, 짧고 경쾌한 문구에 갈증을 호소하는 부류에게는 지리함의 되풀이를 해체합니다. 하나 혹자의 번복의 가능을 경계함으로 반복이라는 각인을 통해 호소하고자 하는 잎맥을 그에게 강하게 주입합니다.

한 권의 책이란 이를테면 묘비 위의 이름이 지워져서 판독할 수 없는 무덤이 대부분을 차지하는 커다란 묘지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그 책은 역사상 유명한 작가들의 독특한 글쓰기 방법에 대해 소개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내용이나 방식에 그다지 설득되지 못한 상태로 번역을 마쳤다. 번역 행위에 회의가 느껴지는 순간은 내가 사로잡히지 못한 텍스트를 옮겨야 할 때였다. 심지어 그 텍스트에 대한 역자 후기를 써야 할 때는 회의감이 극에 달했다. 프로페셔널한 번역가라면 언어의 전이 그 자체에 집중할 줄 알고 그것을 이루어냄으로써 성취감을 느끼겠지만 나는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단 한번도 프로페셔널한 번역가였던 적이 없다. 나는 오직 번역을 시도하는 독자였을 뿐이다. 그 사실을 충분히 깨닫고 있었지만 마치 열병과 같은 모종의 욕망에 사로잡혀 나는 번역을 계속했다.

가끔 글을 쓰다보면 외국작가들의 텍스트나 원서를 인용해야할 경우가 있는데, 내용이 와닺지 않아 원서를 뒤져 제가 직접 번역을 시도한 적이 여러차례 있었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한국어만 봐도 문장이 짧고 단조롭지만 깊은 뜻을 내포한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문학작품의 경우 새롭게 번역된 책들이 많아 쉽게 비교가 가능한데, 번역가에 따라 새롭고 신선한 느낌을 얻기도 합니다. 만약 은빈 씨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우리의 선조들과 대화를 시도한다면 아마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것입니다. 언어도 생명처럼 진화를 거듭하는데, 50만개의 영어 단어들 중 일상에서 시들어버린 98 퍼센트의 단어들에서 비밀의 구슬hidden gem을 발굴해내는 일이 작가나 번역가의 역량이 아닐까요? 만약 즐거운 내일을 기다린다면 라온하제를 바라는 별밤에라든가, 연인에게 당신의 포롱거리는 사나래라는 표현, 혹 나무꾼이 숨긴 선녀의 아련나래라는 순수 한국말은 어떠신가요? 뉘앙스란 말의 소리, 색조, 감정, 음조를 뜻하는데, 언어도 진화의 과정에서 강한 유전자, 즉 뛰어난 뉘앙스의 소유가 생존경쟁에서 유리합니다. 우리의 미각은 쉽게 피로를 느끼므로, 밀의 경우 우리는 국수나 밀떡을 만들어 먹고, 피자나 빵을 구워 지친 감정을 회복합니다. 언어도 그와 마찬가지 입니다.

자두잼 이외에도 우리가 함께 좋아하는 음식이 있다. 그것은 빵이다. 그런데 맛있는 빵을 먹기 위해서는 매일 빵집으로 가야 하지만 정원 오두막에서는 그것이 힘들고 또 우리는 그 정도로 부지런하지는 않다. 나는 간혹 직접 빵을 굽는다. 물론 빵집에서 산 빵처럼 모양이나 맛이 좋지는 않고 항상 다른 이유로 실패하는 바람에 뭔가가 살짝 모자라는 빵이 만들어지곤 한다. 오두막에는 빵틀이 없기 때문에 나는 뚜껑이 달린 커다란 무쇠솥에 빵을 굽는다. 모양은 엉성하지만 오븐에서 꺼내 조금 식힌 뒤 아직 따뜻한 상태로 소금과 올리브기름을 뿌려 먹는 빵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 중 하나다.

은빈 씨, 아마도 제가 제일 많이 만들어 본 빵은 브라우니와 머핀, 그리고 마들렌입니다. 머핀과 브라우니는 적어도 천개 정도, 마들렌은 아마도 500-700판을 구웠지 싶습니다. 머핀이나 브라우니는 코코아 가루, 식용유나 버터, 계란, 밀가루, 베이킹 소다 등등이면 끝이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빵이 바로 식빵과 바케트입니다. 바케트의 경우, 철틀이 없으면 광목천을 접어서 틀모양을 잡아야 하는데, 여러차례 반죽을 부풀리기 위한 팽화와 발효과정에 정말 많은 신경을 쏟아야 합니다. 모두가 좋아하는 퍼프 페이스트리처럼 반죽에 적당량의 공기와 수분의 양도 굉장히 중요하고, 겉을 바삭하게 만들기 위해 굽는 과정에서 분무기로 물을 분사해 주기도 합니다. 다음으로 어려운 빵이 케익입니다. 파운트 케익을 굽고 설탕가루로 크림을 만들어 겉에 입히는 과정은 생각보다 간단한데, 화이트나 다크 초코릿을 케익 위에 입히는 일은 정말 어렵습니다. 바로 초코릿 템퍼링 부분에서의 완벽한 노하우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매일 접하는 일상 속 우리는 아무 생각없이 누리는 많은 것들을 무심코 지나쳐 버립니다. 보스턴에 가면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이 있는데, 초월주의를 실천한 그는 2년간 호수 앞에 자신이 설계한 집을 짓고 야생과 자연과의 깊은 교류를 시작합니다. 거기서 그는 자급자족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는 자신이 모르고 누리며 지나쳐 온 많은 것들을 깨닮게 됩니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저만의 나름 초월주의의 성과가 바로 은빈 씨가 아직 못 먹어본 피자입니다.

기다림의 고통을 책으로 쓴 자의 고통이 있다. 기다림은 우리가 살아가는 한 상태다. 안개 속에 있는 그 무엇을 기다림. 아무도 안개 속을 보지 못한다. 기다림은 영혼을 느리게 죽인다. 마침내 한 사람이 돌아온 후, 돌아온 자나 기다린 자 모두, 세계의 종말과 인간성의 붕괴를 체험하고 목격한 자들 모두 더이상 과거의 그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 이 고통은 치유되었을까? 안개가 부유하듯 지상의 이곳저곳을 떠돌며, 들판을 뒤덮은 안개의 이불 위로 고통의 검은 이마가 떠가는 것이 보이다가 사라진다. 검은 자우어암파들이 달아나듯 멀어진다. 우리는 마치 고통을 모르는 것처럼, 한 번도 고통을 겪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고통을 잊었다. 그러다 햇빛이 비치는 어느 날, 갑작스럽게 나타난 안개가 들판을 덮듯이 다시금 우리는 고통을 각성한다. 고통이 곧 우리의 대지였음을 깨닫는다. 우리는 거기서 피어난 서리이고 안개, 그리고 자우어암파들이다.

은빈 씨는 기다림이 왜 고통인지 아시나요? 기다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바란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나는 내일을 몹시 기다린다,라고 말하면 나는 내일 있을 어떤 약속이나 계획을 머리속에 간절히 떠올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고통은 어디서 올까요? 만약 은빈 씨가 많이 아파서 병원에 갔지만 진료를 받기 위해 대기실에서 의사를 기다립니다. 여기서 이 기다림은 고통을 동반합니다. 만약 배가 무척 고픈데 애써 찾아간 식당에 대기줄이 길게 늘어서 있습니다. 기다리는 동안 배가 고프다 못해 넘치는 위액분비로 육체적인 고통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당신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기다림으로부터 결국 체념한 자는 더이상 고통을 느끼지 못합니다. 비구름을 동반한 천둥과 벼락, 그리고 밤새 대기를 떠돌던 수분과 아침이슬이 맺은 짙은 안개는 더이상 그 사람의 문제가 아니니까요. 기다리는 자도 목격한 자도 결국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기다림이란 자체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기다립니다. 바로 일상으로 지친 오감을 신선함으로 만족시키기 위해서 말입니다. 하지만 정신을 만족시킬 환희와 환열은 무궁합니다. 다만 우리는 오히려 우리를 기다리는 그같은 희락에 가까워지기에는 말초적이고 관능적인 쾌락을 쫓는 일로 너무 바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궁극적으로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아마도 축복받을 아름다운 만남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요?

책 읽어주는 남자 #3 - 인간의 본질

은빈 씨, 우리는 왜 음악에 열광할까요? 노래나 시를 통해 뇌에 신경분비물질이 우리에게 쾌감을 전달해주고, 감상을 통해 특정한 주파수가 공진을 일으켜 우리의 세포들이 그것에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럼 우리는 왜 별을 노래할까요? 알빠노라고 하신다면 누칼협은 아니니 그냥 소행운運을 떠올려 보십시오. 고독에 몸부림치며 OTT에 하루를 꼬박 내맡기는 우리는 종종 시인의 말을 떠올리며 조용히 읆어 보기도 합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주어진 길은 어디일까요? 과학은 생명을 우연히 반죽되어 진화된 것으로 간주하고 영장류 중 인간은 그저 말을 좀 잘하는 동물로 치부합니다. 그럼 작금의 현실에서 철학은 우리에게 주어진 길의 표지판을 투명하게 제시해주고 있을까요? 너 자신을 알라는 담론은 소크라테스가 마신 극약과 함께 따분한 역사책 속으로 사라졌고, 심리의 편리와 자본의 시녀로 전략한 철학은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한가히 나쁜사자를 관찰합니다. 플라톤의 저서 중 국가론이 있긴 하지만 그는 정약용의 문민심서처럼 올바름, 영혼론, 이데아, 사회철학, 예술철학, 인식론 등등 여러가지 테마로 우리에게 다양한 교훈을 줍니다. 어린왕자에게 군주론을 가르치는 무모함에서 벗어나 과학철학은 이제 우리가 살아있는 모든 것에 익숙해지고 길들여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은빈 씨, 저는 가끔 왼손잡이 입니다. 그래서 가끔, 왼손은 거들 뿐’.

잠깐, 과학은 지식을 추구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다. 실천이성의 영역에 속하는 도덕적 지식이 있고, 예술, 문학, 음악의 영역인 감정적 지식도 있다. 게다가 종교의 영역에 속하는 초월적 지식도 존재할 수 있다. 왜 과학만이 세계를 설명할 수 있다는 특권을 부여받는가? 세계를 해석함으로써 우리가 세계를 집처럼 받아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다른 분야에는 왜 무게를 싣지 않는가?   

과연 만능주의가 간과한 것이 무엇일까요? 간단합니다. 과학이라는 연금술이 오즈의 마법사를 지금껏 해석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은 아직 모든 동물이 태생적으로 지닌 모성애나 우애조차 설명하지 못하며, 인간의 박애란 리골레토의 여자의 마음이나 Psy의 강남스타일과도 같은 밈Meme, 즉 비유전적 전달요소로 시대의 흐름을 따라 변질된다고 비하합니다. 철학 또한「군중심리」에서 똑똑하면서 무지한 생명을 오독합니다. 문제는 아직까지 계란과 닭 중 무엇이 먼저인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입니다. 그럼 초월적인 종교는 배부르고 등 따스한 식곤증에 빠진 식충이들의 푸념섞인 의식행위로 보아야 하나요? 그렇다면 우리는 더이상 종묘제례악을 연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따라서 만원권의 초상 역시 차라리 도지Doge로 바꿔야 한다고 저는 주장합니다. 목수였던 올레 키르크 크리스티안센은 자신의 공방에서 레고를 탄생시킵니다. 아마도 창조주 또한 그와 비슷한 규칙을 태초에 제창하지 않았을까요?

레고의 십계명

1. 놀이의 기능성이 무한할 것 (무한한 단백질의 조합, 예: Foldit)
2. 남녀 아이 모두를 위한 것
3. 모든 연령의 아이들에게 맞는 것
4. 일년 내내 가지고 놀 수 있는 것 (봄, 여름, 가을, 겨울)
5. 아이들의 건강과 편안함을 고려할 것
6. 적당한 놀이 시간을 지킬 것 (아침과 저녁, 해와 달)
7. 발전, 환상, 창의력을 증대 시킬 것
8. 더 많은 놀이의 가치를 증폭시킬 것
9. 쉽게 보충할 수 있을 것 (물, 불, 공기, 흙)
10. 품질이 완전할 것 

과학은 아마도 창조주가 뚝딱 천지를 창조하고 사람을 만물의 영장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에 불만을 갖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 허수시간에서 4가지 (싸가지가 아닙니다) 힘이 분리되는, 시공을 초월하는 힘의 원리는 그 누구도 뚜렷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합니다. 생명의 조합과 가능성이 이 레고의 규칙처럼 기능성이 무한하고 아이들의 발전, 환상, 창의력 증대에 그 목적을 두었다면, 사과때문에 인생이라는 고해로 매일 여러차례 break-fast하는 인류에게 어느정도 설명이 될까요? 네, 사자는 각성됐으나 어느 날 넌 나쁘다,는 이유로 망각에 빠졌다면 임박한 죽음을 인식하는 코끼리와 그의 임종을 끝까지 지켜주는 그의 무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절대 간과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같은 이유로 이기적인 유전자는 설명될 수 없으며, 우연이 없는 간헐적인 동물의 관성적 습관과 이타적이고 협동적인 집단 역시 쉽게 해석할 수 없습니다.

“만약 정언명령에 대한 칸트의 말이 옳다면 우리가 보편적 준칙을 지향하도록 해주는 공리가 우리에게 어떤 행동을 하게끔 명령할 것인데, 그 독립적인 충분조건의 이름은 다름 아닌 이성입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는 인격이라는 유형에 속하며, 인격이란 본질적으로 자유롭고 스스로 인식하는 이성적인 행위자로, 이성에 복종하며 도덕 법칙에 구속되는 존재입니다. 칸트는 자신의 이론이 인간 존재를 '지구상 다른 존재들보다 무한히 우월하게끔' 올려놓는다고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이론은 인간이 아닌 존재들 역시 우리와 같은 유형에 속할 여지를 준다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은빈 씨는 봄이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철새를 목격하신 적이 있나요? 그럼 고향을 찾아 귀향하는 연어의 영원회귀에 대해 의문을 갖으신 적이 있을까요? 동일한 것을 무한히 반복하는 우리는 그같은 행위에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사실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Break-fast는 시지프스의 형벌과 같은 것이라고 치부해야 할까요? 어차피 일상에 찌들어 시간이 되면 허기지니 가식적이나마 위장을 채워야하고, 때가되면 생성된 부산물을 몸 밖으로 내보내니 복잡한 원리를 떠나 이 모든 것은 결국 공허하고 무의미하다,라고 대답해야 할까요? 그렇다면 왜 배출에서의 쾌감이 생명에게 존재할까요? 저만의 답을 알려 드리기 전에 은빈 씨 또한 스스로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는 해답을 떠올리셔야 합니다. (심리학적인 해답을 원하시면 프로이트나 융을 찾아보시면 됩니다. 단 지금은 농담하는 아침이 아닙니다. 노을이 꽤 예쁘네요.) 바쁘시다는 이유로 이유식처럼 떠먹여 드릴 마음은 추후에도 없습니다. 드넓은 우주를 낭비라 천상천하 유아독존을 떠벌리는 인류에게 절실한 한가지가 있디면 바로 실아있는 모든 것을 깊이 감상하고 그것이 왜 존재하는지 그 이유를 발견해야 합니다. 김춘수의 꽃처럼 하나의 존재에서 내가 그의 이름을 부를 때 그는 나에게로 다가와 하나의 꽃이 되는 것입니다. 당신이 당신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군가가 그런 당신의 이름을 불러주고 그리하여 당신은 그의 꽃이 되고 싶은 것처럼 그 또한 우리에게 무엇이 되고 싶고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파 하는 것이 창조주의 섭리일 것입니다.

“안나가 이런 식으로 추론을 했다고 생각해 보세요. 두 젊은 사람을 만족시키고 늙은 사람 하나를 실망시키는 것이 한 늙은이를 실망시키고 젊은이들을 실망시키는 것보다 나아. 말하자면 2.5대 1이지. 고로 나는 떠나겠노라. 이런 식이었다면 우리는 안나 카레니나가 도덕적으로 진지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아주 오래된 이야기입니다. 「채식주의자」의 충격이 채 가시기 전 저는 설계된 「바다」를 마무리하는 과정과「Gott ist tot」의 최종설계에 온 정신을 집중하고 있었습니다. 이 당시 회사에서 받았던 고충과 괴로움은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말씀드리겠습니다. 「깊은 강」후 소금물에 흠뻑 절여진 우리가 꺼내든 책이 바로 「안나 카레니나」였습니다. 톨스토이 작품들 중 그의 사상들 외 「전쟁과 평화」를 제외하면 제가 손꼽는 작품은 아니였지만 유독 그가 이 작품을 좋아하더군요. 한강 작가님에게 제가 「바다」의 교정을 부탁드렸던 이유가 이제 설명되시나요? 정념이나 관능으로 인해 특정 이성에 끌리는 일은 누구도 어쩔 수 없지만 우리를 인격체로 만들어주는 것이 바로 도덕입니다. 말하자면 10명의 기쁨을 위해 한명을 희생시킨다면 그걸 공동체를 위한 정의로 볼 수 있을까요? 저는 수차례 보부아르의 심정을 알려주고 「꿈의 해석」에서의 쾌락을 말해주었으나 그는 허무맹랑한 초콜릿 맥주에 빠지더군요. 그래서 초대받지 못한 남자는「언어의 정원」에서 목수가 되기로 작정합니다. 너무 관념적이라 느끼실지 모르지만 플라톤 역시 추상적으로 산파술을 시도했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런데 현실에서의 일마레는 은빈 씨와 찍고 있습니다. 나중에 사람처럼 누워 자는 강아지를 보시면 콜라야,라고 한번 불러보세요. 왜 귀족들이 사교모임에서 가면을 썼을까요? 쉽고 가볍게 얻은 쾌락으로부터 권태를 느껴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화와 재능에는 늘 긴장과 경계심이 요구됩니다. 곧 출국인데 제가 은빈 씨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요? 제가 은빈 씨에게 은빛 당나귀「플라테로와 나」를 선물하는 이유도 이제 설명되나요? 넌 할 수 있다. 모든 된다. 다음은 제가 어떻게 설계를 하는지 짧게 그 일면을 보여 드리려 합니다.

- 100명의 직원이 있다. 51명은 초콜릿 케익을 좋아한다. 49명은 바닐라다.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은 하나의 케익값이다. (소수는 화가 난다.)
- 서로에게 험한 말이 오가고 처절한 논쟁이 벌어진다. 
-- 더 이상 케익에는 관심이 없는 다수와 소수, 서로 필리버스터를 한다. 
--- 베이커리는 사회적 파장을 일으킨 이 회사 직원들로 인해 장사가 안된다. 화가난 베이커리 사장은 초콜릿 케익과 바닐라 케익을 메뉴에서 지워 버린다. 
-- 100명의 직원이 있다. 20명은 초콜릿, 20명은 바닐라, 20명은 딸기, 19명은 사과, 21명은 바나나 케익이 좋다. 지출할 수 있는 금액은 하나의 케익값이다. (다수는 바나나 케익을 살 수 없다.)
- 그럴까? 만약 다수가 로비스트를 고용한다면?
-- 로비스트를 고용함에 따라 지출되는 비용은?
--- 여러 부류가 베이커리와 몰래 일종의 거래를 튼다.
----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지역신문은 ‘케익 사건’을 일면에 다룬다.
----- 검찰은 이 어이없는 일에 수색영장을 발부하고, 회사는 회계감사를 당한다. 시급하게 통과되어야 하는 긴급 안건들은 모두 묻혀버리고 의회와 여야는 ‘케익법’을 꺼내든다. 
--- 100명의 직원이 있다. 100명 모두 각기 좋아하는 자신만의 케익이 있다. 지출 할 수 있는 금액은 하나의 케익값이다. (다수도 소수도 없다.) 
- 어떤 케익을 시켜도 그 누구하나 크게 불쾌하거나 동요되지 않는다. 
-- 직원들은 퇴근 후 자기가 좋아하는 케익을 사러간다. 베이커리는 정신이 없다. 
--- 베이커리가 성행하자 상권이 살아나 실업률도 덩달아 하락한다.

당신과 나는 마침내 수줍은 비너스의 탄생에 봄의 정령을 몰아왔습니다. 매일밤 흘리는 그대의 눈물같이 촉촉한 이슬과 아직은 서늘한 저의 마음과도 같은 봄바람이 수많은 이별들을 간직한 이 도시의 애상을 두두리고, 거절당한 우리의 이기적인 정념은 눈부신 봄의 화사한 활력을 이내 시기하기에 이릅니다. 예정된 축복이 피어나는 봄의 해안에 순수한 그대의 미소가 간절하다면, 저의 가식적인 Heart of Gold는 맞이할 수 없는 우리의 봄을 추앙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약 제피로스의 플라토닉과 호오이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는다면 우리는 더이상 소행성을 그리워하지 않을 것입니다.

히페리온의 해-바라기


Just the label, 'Elephant House' purchased by trefresher
THIS IS US, NOT MINE. THIS IS US, OURS. THIS IS US, OUR OUTCOME. THIS IS US, WHAT WE DESERVE. THIS IS US, WHERE WE SHOULD GO.
EH1 - Canada, Home, 4205 Shipp Dr: (Completed) *On Major Construction
EH2 - Canada, Home, M City M7: (In Progress), *4th Installment
EH3 - Korea, Jeju: Samsung (Phone, Laptop: Lawyer & Deposit) *Done Picking the Spot
EH4 - Korea, Jeju: Shilla (Jeju: Lawyer & Deposit) *Done Picking the Spot
EH5 - Cuba, Havana: 7 cards (Need Sponsor, *Jinro Chamisul, I pay Deposit)
EH6 - Cuba: 7 cards (Need Sponsor, *Lotte, I pay Deposit)
EH7 & EH14 - New YTO & Soul: 7 cards & wallets, Havana Club (Lawyer & Deposit)
EH8 - Taiwan: 7 cards (Need Sponsor, *Seoul Milk, I pay Depos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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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0) 2022.07.28
Posted by trefres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