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를 위한 독서, Part III
“먼저 자신을 채우십시오. 그런 뒤에야 다른 이들에게 줄 수 있을 것입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
↘ 넌 그렇게 허기를 채우고, 넌 그토록 바다를 느끼고, 넌 그만큼 눈물을 머금다. 「Salt & Pepper」
“아픔이 느껴질 때까지...... 사랑하십시오. 마더 테레사”
↘ 화분을 구입해야할 시간이다.
모든 삶은 흐르고, 바다는 중력과 은총을 바란다.
↘ ‘노인은 바다에서는 그 누구도 결코 외롭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어.
‘바다는 결코 비에 젖지 않거든’. 하지만 흐르는 달빛에 떨림과 울림과 건들거리는 파도가 실재하지. ‘포효와 비명’이란 ‘1. 바다의 작은 파도’, ‘2. 큰 파도’, ‘5. 아버지의 서글픈 그물’, ‘40. 포효하는 소리’, ‘50. 비명 소리’, ‘60. 부서지는 소리’와도 같은 반향하는 바다의 심장음이지. 그리고 ‘바다를 자신의 농장처럼 경작하는 낸터컷 사람들처럼 배게 바로 밑을 바다코끼리와 고래가 떼를 지어 지나가도록’ 우리는 심야의 망망대해로 고독을 띠워야 하겠지.
↘ ‘달빛이 흐르는 아주 넓은 강’과 두 표류자들이 ‘찾아 헤매던 무지개의 끝’을 이제는 잊으라는 말이야? ‘우리가 죽어갈 바다의 물보라, 으르렁대는 무한한 그곳에서 정령 우리는 신이 되어 솟아올라’야만 하는 건가.
인용: 「모든 삶은 흐른다」, 「노인과 바다」, 「일포스티노」, 「모비딕」, 「티파니에서 아침을」
“바다는 조롱하듯 그의 필멸의 육체만 물 위에 띄웠고, 불멸의 영혼은 익사시키고 만 것이다. 하지만 완전히 익사시키지는 않았다. 영혼은 산 채로 놀랄 만큼 깊은 곳까지 끌고 내려갔다. 거기서는 왜곡되지 않은 원초적 세계의 낯선 형상들이 그의 생기 없는 눈앞을 미끄러지듯 이리저리 오가고 있었다. 「모비딕」”
↘ ‘호-라이’ 숨비소리는 퓌라와 데우칼리온을 다시 대홍수로 익사시킬 것이 분명하지.
“파도의 주인이 아니면 어떤가. 파도를 지배하는 주인은 아니어도 당당히 항해할 수 있다. 「모든 삶은 흐른다」”
↘ 「바다」는 불온 서적이야. 고혹적인 세이렌의 노랫소리나 키르케의 키케온 역시 파도의 저주야.
무인도, “진정한 고독이란 무엇인가. 「모든 삶은 흐른다」”
↘ 「방드르디」를 뒤집어 쓴다면 「파리대왕」이라든지 「파피용」의 프렌치 기아나 섬의 고독을 묘사할 수 있겠지. 사실 쇼펜하우어는 염세주의자가 아니라 삶의 무가치성을, 모두는 희로애락에서 오늘도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고 토로하지. 그렇다고 니힐리즘에 빠져 허우적거릴 필요는 없어. 거대한 가르강튀아가 엄청난 조수潮水를 준비하고 있거든. 「Friday, or, The Other Island」, 그냥 금요일에 만나. Happy Fri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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