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I
인류는 오래전부터 수많은 분야에서 ‘세계 챔피언’을 탄생시켜 왔다. FIFA World Cup의 우승국처럼 한 시대의 국가적 영광을 상징하는 챔피언이 있는가 하면, 복싱·체스·바둑·e스포츠·프로그래밍·로봇공학 같은 전문 영역에서도 세계의 정상에 도달한 이들이 존재한다. 어떤 이는 육체의 한계를 밀어붙이며 힘과 속도를 겨루고, 어떤 이는 사유의 깊이와 전략의 정밀함으로 승부하며, 또 다른 이는 예술성과 창조성으로 인간 정신의 새로운 지평을 연다. 심지어 음식 빨리 먹기, 종이비행기, 요요, 바리스타 대회처럼 일상의 사소한 기술조차 세계적 경쟁의 무대가 된다. 이는 인간이 단지 생존하는 존재가 아니라, 의미를 부여하고 가치를 창조하며 스스로를 초월하려는 존재임을 보여 준다. 결국 챔피언이란 승리한 인간이 아니라, 자신이 속한 시대가 무엇을 숭배하고 무엇을 갈망하는지를 드러내는 상징이다. 그러므로 챔피언(champion)의 어원이 라틴어 캄푸스(campus), 곧 ‘싸움의 장’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나는 오늘도 캠퍼스로 향한다. 인간은 결국 삶이라는 거대한 전장 위에 던져진 존재이기 때문이다.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 했지만, 끝내 인간이 이해하고 넘어야 할 가장 거대한 적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삶이다. 삶은 인간을 끊임없이 시험한다. 시험할 시(試), 불릴 련(鍊), 시련(試鍊)이란 존재를 불 속에 넣어 순도를 가려내는 과정이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연금술사는 필연적으로 고통을 통과한다. 챔피언은 캠퍼스에서 무엇을 배우는가. 그는 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아니라, 실패와 상실, 고초와 격랑 속에서 자신의 존재를 제련하는 법을 배운다. 삶이라는 원광原鑛은 시련이라는 불길 속에서만 비로소 앎이라는 금속으로 정련된다. 그래서 앎은 단순한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존재가 상처 입으며 도달한 내면의 변형이다. 화분을 내려놓은 한 연금술사가 예비 챔피언들에게 말한다. “장밋빛 같은 시절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어. 결코 유쾌한 여정도 아니었지. 그것은 하나의 도전이었고, 모든 인류 앞에 놓인 시련이었어.” 그리고 그는 마치 인간 존재 전체를 향한 선언처럼 낮고도 단단한 목소리로 읊조린다. “We are the Champions.” 그러나 그 말의 진정한 의미는 타인을 꺾었다는 승리의 환호가 아니다. 그것은 삶이라는 거대한 혼돈 속에서도 끝내 무너지지 않고, 시련을 통과하여 앎에 도달하려 했던 인간 존재의 비극적이면서도 숭고한 자기 증언이다. 앎의 여정은 언제나 치열하다.
M6 City. 빙고 씨, 준비되셨나요? 저에게는 이제 마지막 두 번의 디퍼짓만이 남았습니다. 저는 전매 매수인의 융자 진행을 맡겠으니, 빙고 씨는 법무법인 한바다에 다녀오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매매 정산은 카페에서 진행합니다. 아, 아아 하나로 정산 끝이라는 생각은 무척 큰 오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