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은 정치적이다. 그게 아니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야툴라 루홀라 호메이니”
이란 주변을 보면 ‘스탄’으로 끝나는 국가들이 유독 많다.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은 오랜 세월 페르시아어의 영향을 받았던 곳으로 모두 공통된 어원을 가지고 있다. 고대 페르시아어인 stan-ستان은 장소, 땅, 또는 나라를 의미한다. 파키스탄의 pak은 페르시아어로 순수를 뜻하므로 ‘순수한 사람들의 땅’인 것이다. 아프카니스탄은 아프간(민족)의 땅, 카자흐스탄은 ‘카자흐(유목민)의 땅’, 우즈베키스탄은 ‘우즈벡의 땅’, 투르크메니스탄은 ‘투르크멘의 땅’, 그리고 키르기스스탄은 ‘키르기스족의 땅’을 의미한다. 잘 생각해보면 핀란드,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폴란드, 스위스, 타이랜드, 네덜란드,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그린란드, 그리고 뉴질랜드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이란 국민의 60퍼센트가 사용하는 파르시Farsi는 현재 이란이 채택한 공식 언어지만, 아름다운 백향목柏香木의 나라 레바논에 존재하는 다양한 종파처럼 쿠르드족, 발루치족, 투르크멘족, 아제르바이잔인 또한 모두 각기 고유한 언어를 가지고 있다. 1979년 이란혁명과 1980-88년 까지 이어진 이란-이라크 전쟁이후 국제적 제재를 받아온 이란은 내부 자립형 경제(저항 경제اقتصاد مقاومتی)를 펼치며 호르무즈 해협같은 지정학 카드로 주변국들과의 협상을 유도해 왔다. “우리는 호르무즈 해협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거나, 아니면 아예 아무도 이용할 수 없다는 것을 적들이 깨닫도록 할 것이다.” 현재 여러 중동 전문가들은 이란에서 신정체제가 교체되거나 붕괴된다면 소수민족 분리 움직임이 불출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분석하는데, 이란 내부에서는 체제 자체를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세대와 계층에 따라 의견이 크게 갈리고 있는 중이다. 한편 주변국가들은 군대와 혁명수비대를 움직이는 강력한 신정체제가 무너지면 중동 전체가 복잡하고 예측 불가능한 혼란상태, 즉 “Opening a can of worms” 상태가 되어 버리는 상황을 꺼려하고 있다.
“오늘날 이란은 문제가 많은 나라이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장구하고 위대한 역사를 지닌 나라이기도 하다. 페르시아 제국은 고대 문명을 이끈 나라였다. 페르시아 역사 또한 그리스 못지않게 눈부시고 장엄하며, 동시에 피로 물든 정복의 역사였던 만큼 그리스와 부딪혔던 것도, 로마와 충돌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페르시아의 기원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4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중앙아시아에서 이주해온 부족들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민족적으로 뿌리가 비슷한 메디아 사람들의 왕국과 멀지 않은 자그로스 산맥 주변에 자리 잡았다. 평지에서 산으로 올라가 공격하는 것보다 산 아래로 내려와 공격하는 게 휠씬 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배경에서 기원전 550년에 페르시아 통치자인 키루스 2세는 메디아 왕국을 점령해 페르시아 제국에 합병했다. 이는 세계 무대에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 제국의 탄생이 선포된 순간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수도 테헤란이나 천안문 광장에 이어서 세계 두 번째로 큰 광장이 자리한 이스파한 같은 도시는 고원 지대로 테헤란의 해발은 약 1,200m이며 이스파한의 경우 약 1,500m에 자리한다. 안데스 산맥에 위치한 과거 잉카 제국의 수도 쿠스코(3,400m)나, 세계 3위 커피 생산국인 콜롬비아의 보고타(약 2,640m)와는 비교될 수 없지만 산소 농도가 낮은 점 때문에 불시에 침입한 외부인에게 고산병을 유발했을 것이고, 페르시아인들 다수는 혈액 산소 운반 능력이 뛰어나고 심폐 기능이 발달해 방공과 지상전에 유리했을 것이다. 또한 테헤란 북쪽에 위치한 알보르즈 산맥은 해발 2,650~3,600m로, 이란의 알프스로 불리는 세계적인 수준의 디즈ین 스키 리조트가 자리하고 있다. 토찰 스키 리조트의 경우 테해란 시내에서 케이블카로 바로 올라갈 수 있는 스키장인데, 1번 역인 Velenjak에서 해발 3,850m의 7번 역 토자르 정상까지 약 7.5km의 거리를 약 50분 동안 이동한 후 스키를 즐길 수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란은 다양한 지형을 가진 나라로 고산지대와 함께 다슈테 케비르와 다슈테 루트같은 광대한 사막도 품고 있다. 이란과 비슷한 예로 칠레의 경우 네루다가 “혼돈 속의 질서”라고 표현한 “남미의 산프란시스코” 혹은 “천국의 계단” 발파라이소가 있는 반면, 고도가 3,500~4,500m에 달하며 종종 눈이 내리는 아타카마 사막도 존재한다.
이란을 설명할 때 조로아스터교를 빼놓을 수 없다.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등장하는 조로아스터는 선과 악을 명확히 구분한 최초의 인물로, 서양 도덕의 기원을 대표하는 상징이다.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신은 죽었다Gott ist tot”, 혹은 “인간은 초인을 향한 다리다”와 같은 니체의 명언은 기원전 1,000년경에 페르시아 출신 예언자가 창시한 조로아스터의 철학으로 당시 이성·과학·개인주의가 종교를 대체하는 공허와 혼란에 빠진 유럽사회에 새로운 인간상, 즉 초인을 예언하게 된다. 아케메너스 왕조가 사라지고 사산 왕조가 시작되자 조로아스터교는 국교로 채택되기도 했으나 651년 이슬람 제국에 정복되면서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로아스터교의 유산은 페르시아어 관용구, 관습, 노루즈(Nowruz, نوروز는 페르시아어로 ‘새로운 날’이라는 뜻이며 음력과 태양력의 경계인 춘분, 즉 3월 20~21일경을 기점으로 한 새해다) 등 이란인의 문화 전반에 잔재하고, 조로아스터 사원인 불의 사원엔 아후라 마즈다를 상징하는 성화가 계속 타고 있다.

철학 한 조각
스피노자의 “신은 우주 그 자체이며, 모든 존재에 내재한다.” 그렇다면 왜 신은 죽었나? ¨아름다움¨을 위해 신은 죽었다. 그것은 초힘Grand Unified Theory에서의 빅뱅이다. 운명론은 ‘세상의 사건은 모두 미리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수한 ¨삶¨은 수많은 우연 가운데 ¨앎¨이라는 필연을 찾아가고 있다. ¨정신¨은 거들 뿐,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선인장과 유포르비아의 ‘수렴진화convergent evolution나 전혀 다른 계통이 ‘생태적 등가물’ecological equivalents을 설명하는 경우도 있다.) 모든 삶은 ¨하나의 앎¨에 담겨져 있지만 그 삶의 의미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삶은 한차원 위 ¨하나의 앎¨을 위한 파동함수같은 비가시적 확률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즉 ¨앎¨은 ¨삶¨에서 나오려고 투쟁하는 유리알 유희의 장인Master of the Glass Bead Game, 즉 ¨삶¨이라는 유희의 거장The Virtuoso of the Life의 ¨아름다움¨이다.
“독자 여러분들 중에는 웃통을 벗은 이슬람교도 남자들이 떼로 모여 가슴을 치거나 피가 나도록 채찍으로 등을 때리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신자들은 아슈라(매년 행하는 이슬람 시아파의 최대 종교 행사) 축제 때 이 고행을 통해 선지자 무함마드의 손자로 카르발라 전투에서 순교한 후세인의 고통을 느껴 본다고 한다. 카르발라 전투에 대한 기억은 이란의 문화에 깊숙이 간인돼 있다. 시, 음악, 연극 등을 통해 재현되는 것은 물론 국민의 정신과 국기에도 담겨있다. 이란 국기의 한가운데 순교의 상징인 붉은 튤립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후세인이 죽임을 당했을 때 그가 흘린 피에서 튤립이 피어났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슬람교는 우상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벽의 장식, 도기, 유리, 금속공예, 제본, 도서, 카펫 등에 식물의 줄기와 잎을 도안한 기하학적 문늬 ‘아라베스크’가 발전하게 되었다. 재현주의적 표현을 터부시 했던 회교도들은 생명이 있는 대상을 그린 그림을 철저히 금지시켰고, 존재가 아닌 것, 즉 소모되지 않는 대상을 생명이 없는 물질로 간주했다. 이것은 자연히 무슬림들의 예술적 감정을 모두 서예에 쏟게 만들었고, 결국 이슬람은 필사를 통한 추상적인 형태의 문양들을 예술로 전승시켜 오게된 것이다. 한편 문학적·세속적 문맥에서 인물화를 승화시킨 이란은 수니파와는 조금 다르다. 그러나 아라베스크 문양, 기하학, 식물 모티프, 그리고 서예를 고도로 발전시킨 것은 이란이다. 또한 이란에는 회전춤을 추는 수피파의 영향으로 루미, 하페즈, 사디, 아타르 같은 위대한 신비주의 시인들을 배출한 나라이기도 하다. “나는 나도 아니고, 너도 아니다. 나는 사랑이다. Rumi”
“이슬람은 등장 초기부터 우상숭배 전통과 싸움을 벌였다. 선지자 무함마드는 메카를 정복하면서 카바 신전에 있었던 360여 개의 우상을 모두 파괴했다. 이슬람 종교는 숭배 장소에서 생명이 있는 대상을 그린 그림을 강력하게 금지시켰다. 건축 장식의 나무 조각, 돌, 채색된 표면과 도기, 유리, 금속공예, 제본, 도서 채색, 이슬람 카펫 등 다양한 장식에서 아라베스크가 발견된다. 이슬람 미술가들은 일상생활에서 소재를 취해 그림을 그리는 대신, 목가풍의 세계 혹은 종교적, 신비적, 도덕적 이상에 의해 채색된 세계를 전달코자 노력했다. 「이슬람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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