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빌라이제이션 XXV - 페루

2025. 9. 13. 09:04 from 書評

 

 

페루에는 약 9,000년 전부터 인류가 정착하며 고대 문명이 시작되었으며, 국명은 ‘Birú’ 또는 ‘Pelú’라는 이름이 탐험가들 사이에서 잘못 전해지면서 점차 ‘Peru’로 변형되었다. BC 3000~1800년경 태평양 연안의 도시를 중심으로 번성한 노르테 치코 문명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문명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다. 이후 BC 1세기 무렵 농경 문화 기반의 차빈 문명이 등장했고, AD 8~12세기에는 와리 제국과 티아우아나코 문명이 번성하며 안데스 지역의 정치·문화적 통합을 이끌었다. 와리 제국이 쇠퇴하자 북부의 치무, 중부의 찬카, 남부의 이카 등 여러 부족 국가들이 각지에서 성장했지만, 15세기 중반부터 16세기 초까지 잉카 제국에 흡수되었다. 잉카 제국은 쿠스코를 중심으로 콜롬비아 남부에서 칠레 북부까지 남아메리카 최대 규모의 제국으로 성장했으며, 약 천만 명의 인구를 거느리고 태양신 인티를 숭배했다. 이들은 계단식 밭을 조성하는 등 뛰어난 농업 기술과 석조 건축 기술을 발전시켰고, ʻ매듭식 기록 장치인 키푸quipu로 정보를 보관하는 독창적 체계를 사용했다. 그러나 1532년 프란시스코 피사로가 이끄는 스페인 군대의 침략과 아타우알파 왕의 생포 이후 잉카 제국은 빠르게 몰락했다. 스페인은 쿠스코의 태양의 신전 코리칸차를 비롯한 잉카 건축물들을 파괴하고, 리마 등지에 스페인식 도시를 건설하며 원주민 사회를 강제로 개종·동화시켰다. 19세기 초 독립 이후 페루는 정치·경제·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큰 발전을 이뤘다.

 

페루의 제품 수출을 28가지 색상 코드 범주로 나타낸 그래픽 © 위키백과

웅장하고 신비로운 유적으로 손꼽히는 마추픽추는 해발 약 2,430m 안데스 산맥 정상에 자리한 잉카 도시로, 15세기 중반 파차쿠티 황제의 지시에 따라 건설되었으며 정교한 아슐라르Ashlar 공법으로 쌓아 올려 지진에도 무너지지 않을 정도의 견고함을 자랑한다. 태양 관측용 인티후아타나 석주를 비롯한 천문학적 장치가 배치된 이 도시는 잉카 제국의 정치·종교·농업·문화의 중요한 중심지 역할을 했고, 잉카인들은 별·태양·달의 움직임을 관찰해 농업 주기와 종교 의식을 정했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 제국을 무너뜨릴 당시 마추픽추는 발견되지 않아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보존되었으며, 1911년 미국 예일대 탐험가 하이럼 빙엄에 의해 서구 세계에 재발견되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잉카 제국은 망코 카팍이 태양신 인티의 아들로서 세웠다는 전설에서 기원을 두었고, 중앙집권적 통치 구조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페루, 에콰도르, 볼리비아, 아르헨티나 북부, 칠레 북부, 콜롬비아 남부까지 빠르게 확장했으며, 황제는 신의 대리자로 여겨져 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오늘날에도 마추픽추와 잉카의 키푸, 천문학 지식 체계 등은 완전히 해독되지 않아, 잉카 문명은 여전히 수많은 미스터리를 간직한 채 인류의 관심을 끌고 있다.

 

잉카 문명의 고대 요새 도시 마추픽추와 무지개산 쿠스코 비니쿤카

나스카 수로Puquios는 페루 남부의 나스카Nazca와 이카Ica 사막 지역에 위치한 고대 관개 시설로, 극도로 건조한 사막 환경에서 지하수를 활용해 농업용 물을 확보하고 농지를 관개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이 수로 시스템은 대부분 지하 터널로 이루어져 있으며, 지하수를 자연스럽게 흐르게 하여 증발을 최소화하고 일정 간격으로 설치된 원형 통풍구ojo de agua를 통해 수로 청소, 유지보수, 공기 통풍과 물 흐름 관찰이 가능하도록 했다. 여러 수로는 사막 전역의 농지로 연결되어 있으며, 지형 경사와 자연 지하수층을 이용해 중력으로 물을 흘려보내는 정교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설계 덕분에 나스카 사람들은 옥수수, 감자, 고구마 등 주요 작물을 재배할 수 있었으며, 일부 수로는 오늘날까지도 여전히 작동할 정도로 지속성이 뛰어나다. 나스카 문명은 이를 통해 강수량이 거의 없는 환경에서도 장기적인 농업을 가능하게 했으며, 터널 구조와 통풍구 배치, 지형 활용 등은 당시의 과학적 설계를 보여준다. 푸카라 수로는 나스카 라인과 함께 나스카 사람들의 환경 적응력과 기술력을 상징하는 유적이며, 일부 학자들은 나스카 라인의 직선 패턴이 수로나 지하수 위치를 표시하는 지도 역할을 했을 가능성도 제기하고 있다.

 

© Hidráulica Inca

페루 남부 사막 지대인 나스카와 팔파 지역에는 수백 개의 직선과 기하학적 도형, 그리고 원숭이·거미·콘도르·벌새 같은 동물, 나무나 손 모양의 거대한 그림들이 수 킬로미터에 걸쳐 펼쳐져 있다. 이른바 나스카Nazca 지상화로, 기원전 500년에서 서기 500년 사이 나스카 문화권 사람들이 사막의 어두운 자갈을 걷어내어 밝은 흙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제작했다. 극도로 건조한 기후 덕분에 수천 년이 지난 지금도 잘 보존되어 있다. 이 거대한 선들은 땅 위에서는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고, 하늘에서 내려다보아야 전체가 드러나기에 비행기가 등장한 20세기 초에 이르러서야 널리 알려졌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종교적 의례, 물과 농업을 위한 제의, 혹은 천문학적 목적이라는 다양한 가설이 있으나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신비성과 규모로 인해 199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나스카 지상화

페루를 대표하는 음식 세비체ceviche는 2023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된 미식 문화로, 신선한 생선이나 해산물을 라임 주스와 고추, 고수 등으로 버무려 만드는 전통 요리이며, 잉카 문명의 상징적 유적지 마추픽추와 더불어 페루 국민들에게 깊은 자부심을 주는 문화적 상징이다. 세비체는 산티아고 데 칠레, 부에노스아이레스, 보고타 등 라틴아메리카 주요 도시뿐 아니라 전 세계 페루 이민자 식당에서도 즐겨 먹는다. 한때 원주민적이고 비위생적이라는 이유로 외면받았던 안데스와 아마존 지역의 전통 식재료와 요리들이 이제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스타 요리사들에 의해 ‘안데스 지역 전통 재료를 현대적인 요리 기법으로 재해석한 모던 요리’로 재평가되고 있다. 예를 들어 전통 발효 음료 치차 데 호라Chicha de Jora잉카 시대부터 전해 내려온 쿠이cuy알파카alpaca 고기 요리, 그리고 노란빛을 띠는 국민 음료 잉카 콜라Inca Kola 등은 그 이국적 특색 덕분에 주목받고 있다. 세비체는 흔히 페루를 대표하는 요리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칠레, 에콰도르, 멕시코 등 여러 라틴아메리카 국가에서도 오래전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즐겼으며 기원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쉽게 결론 나지 않는다. 이는 동아시아의 라면이나 유럽의 돈가스처럼 각 지역에서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형태로 발전한 음식 문화의 전형적인 사례이며, 페루 미식 문화가 세계화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적 변주와 재해석이 공존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편 한국에서는 전통 김치 담그기와 김장 문화가 유일하게 미식 문화 분야에서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계절과 공동체, 나눔의 가치를 담은 대표적인 음식 문화로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잉카 콜라 & 세비체 © Peruvian-Sunrise

얼마 전 남미 페루 사람들을 ‘국가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하게 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일은 바로 페루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알려진 세비체(ceviche)와 관련 미식 문화가 유네스코(UNESCO) 무형 문화 유산으로 지정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페루 음식은 세계 7 불가사의 중 하나라고 꼽히는 잉카문명의 대표적인 유적지 마추픽추와 더불어 페루 사람들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의 근간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내전과 초인플레이션을 겪었던 1980년대를 지나 정치 신인 후지모리가 1990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 페루는 서서히 정치 경제적 안정을 찾았다. 특히 1990년대 신자유주의 정책과 함께 거시 경제가 회복세를 찾으면서, 도시에서 중산층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중산층의 성장에 따라 소비가 가속화되었으며, 세계화에 따른 글로벌 문화의 유입이 이뤄지면서 리마의 중산층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새로운 소비 취향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도시를 중심으로 미식에 관한 관심도 높아졌다. 한편, 산티아고 데 칠레, 부에노스 아이레스, 보고타 등과 같은 라틴아메리카의 주요 도시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곳곳에서 페루 출신 이민자들이 식당을 열고, 사람들이 페루 음식을 맛보게 되면서 페루 밖 지역에서도 페루 음식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처럼 스타 셰프들의 활약에 힘입어 페루 음식이 세계화되기 이전까지만 해도 이들 셰프가 탄생시킨 노보 안디노 요리에서 중요하게 활용되는 전통 음식이나 식재료는 주로 원주민, 가난함, 비위생성, 안데스와 아마존 등과 지방과 연결되어, 전혀 도시 중산층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페루 엘리트 계층은 오랫동안 안데스 지역을 대표하는 작물인 코카(coca), 퀴노아(quinoa) 혹은 안데스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인 치차(chicha)와 쿠이(cuy) 혹은 알파카(alpaca) 요리 등을 ‘원주민의 음식’으로 평가절하하고, 소비하지 않았다. 이처럼 리마 엘리트들에게 비가시화되었던 안데스 혹은 아마존의 식재료와 미식 문화는 국내외에서 이국적이고 독특한 음식을 맛보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세계화된 페루의 미식 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핵심 요소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페루의 엘리트 계층뿐만 아니라 페루 대중들은 그동안 멸시와 경시의 대상이었던 ‘원주민의 음식’ 혹은 ‘전통 음식’의 가치를 재평가하고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따라서 페루 미식 세계화의 근간에는 안데스와 아마존 지역의 원주민들이 전통적으로 먹어 온 요리나 그 조리법, 혹은 식재료, 다시 말해 ‘원주민의 미식 문화’가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알 수 있다. 갈수록 독특하고 새로운 미식 혹은 영양이 풍부한 미식을 찾는 전 세계 미식가들에게 페루의 전통 ‘원주민의 미식 문화’는 충분히 호소력을 가졌고, 이렇게 세계화된 원주민의 미식은 도시 엘리트들이 ‘페루’의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 하지만 이러한 ‘원주민의 미식 문화’는 전통적인 식재료 생산자 혹은 전통적인 음식 소비자들이 아닌 스타 셰프의 창의성과 기술을 통해서만 세계화되고, ‘페루’를 대표하는 음식으로 재탄생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처럼 전통 식재료와 요리를 재해석한 노보 안디노 요리는 유럽이나 미국에서 요리를 공부한 유명 셰프의 손을 거쳐 재해석되고, 세계적인 기준에 부합하는 요리로 재탄생되었다. 노보 안디노 요리는 세계적인 요리 기술과 기준에 대한 지식을 가진 엘리트 출신 유명 셰프들의 전통적인 ‘원주민의 미식 문화’에 대한 재평가와 재해석을 통해서 전 세계 미식가, 관광객, 그리고 페루 엘리트 계층에게 ‘페루(를 대표하는) 요리’로 자리잡게 되었다. 따라서 노보 안디노 요리는 백인 엘리트와 도시 중산층의 ‘크리오요적인 것’과 페루의 전통을 상징하는 ‘원주민적인 것’이 조화를 이룬 다문화 주의적 민족주의를 재현한 결과라고 해석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노보 안디노 요리의 성공은 한편으로는 세계화된 미식이 페루 정부와 엘리트 계층이 주창하는 다문화주의적 민족주의의 한 축에 자리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세계화된 미식의 성공 사례들을 통해 페루 대중들이 ‘페루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자신들도 세계화된 페루 미식이 만든 기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대열에 합류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다. 「페루 미식 민족주의의 성격」”

 

쿠스코의 밤 © CUSCOPERU.TRAVEL

19세기 초 남미의 여러 스페인 식민지들은 독립 전쟁의 불길 속에 있었다. 페루의 해방을 위해 호세 데 산 마르틴과 시몬 볼리바르는 각자 군사적 전략과 연합을 통해 스페인 세력에 맞섰지만, 페루-볼리비아 연합과 라틴 아메리카 연합은 결국 정치적 갈등과 내분, 경제적 어려움으로 실패했다. 1821년 산 마르틴 장군은 페루의 독립을 공식 선포했으나, 독립 이후에도 각종 내전과 쿠데타가 이어지며 국가 체제는 불안정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페루는 군사 쿠데타와 단기 정부가 반복되는 혼란을 겪었고, 경제 위기와 외채 문제 역시 심각했다. 20세기 후반 들어 민주 정부와 군사 정권이 교차하며 정치적 안정은 여전히 불완전했지만, 21세기에 들어 페루는 비교적 민주적 제도를 확립하며 국가 운영의 연속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1990년부터 2000년까지 페루 대통령으로 재임한 알베르토 후지모리는 일본계 페루인으로 경제 개혁과 반테러 정책을 추진하며 국가 안보와 경제 회복을 도모했으나, 독재적 권력 행사와 인권 탄압 논란으로 2000년 사임 후 해외로 도피, 체포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그의 딸 케이코 후지모리는 이후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여러 차례 대선에 출마하며 페루 정치에서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후지모리 사임 이후 발렌티나 세르나 임시 정부를 거쳐, 1985–1990년과 2006–2011년에는 알란 가르시아가 두 번째 임기를 수행했으며, 2011–2016년 올란타 우말라가 대통령직을 맡았다. 2016–2018년 페드로 파블로 쿠친스키는 부패 의혹으로 사임했고, 2018–2020년 마르틴 비스카르라는 부패 척결과 정치 개혁을 추진했으나 의회와의 갈등으로 탄핵되었다. 이후 프란시스코 사가스티가 임시 대통령을 맡았으며, 2021년 페드로 카스티요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으나 2022년 쿠데타 시도로 축출되고, 디나 볼로르테가 대통령으로 승계되었다. 페루에서 쿠데타(공식적으로 기록된 주요 군사 쿠데타는 약 10회 이상)가 반복적으로 발생한 이유는 복합적이다. 1821년 독립 이후 내전과 단기 정부가 반복되며 정치적 안정성이 취약했고, 초기 공화국 시절부터 군부가 정치에 개입하면서 군부가 정권 교체 수단으로 쿠데타를 활용하는 전통이 자리잡았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대통령 권력이 약하거나 의회가 분열될 때 군부는 ‘질서 회복’을 명분으로 정권을 장악했으며, 1968–1980년 후안 벨라루아 군사 정권처럼 군부가 직접 국가를 운영한 사례도 존재한다. 또한 페루는 잦은 외채 위기, 인플레이션, 빈곤 문제 등 경제적 불안정으로 기존 정치 지도자에 대한 불신이 커지고, 군부와 정치 세력이 쿠데타를 정당화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었다. 의회와 행정부 간 갈등, 잦은 탄핵과 정치적 불신 역시 제도적 안정성을 약화시키며 대통령들이 임기 완료 전에 교체되는 사례가 반복되었다. 여기에 안데스 산악지대와 리마 중심의 정치·경제 집중으로 인한 지역 간 경제·문화 격차가 정치적 분열을 심화시켜, 중앙 정부에 대한 불신이 쿠데타를 정당화하는 요인이 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페루는 현대에도 정치적 불안과 단기적 정부 교체가 반복되는 국가로 남아 있다. 한국 또한 휴전 이후 네 차례의 군사쿠데타 혹은 계엄령 선포를 겪었는데,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양원제 의원내각제 기반의 헌정 체제였던 제2공화국의 장면 정부를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박정희 소장이 무너뜨리고 군사정부를 수립하였다. 이후 1979년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사망한 뒤, 전두환 소장 등 하나회 세력이 12·12 군사반란을 통해 군권을 장악하였으며, 1980년 5·17 비상계엄 확대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진압 과정에서 군사정권은 더욱 강화되었다. 이때 광주 시민 학살과 민주화 운동 탄압이라는 비극이 벌어졌다. 마지막으로 2024년 12월 3일 윤석열 대통령은 긴급 대국민 담화를 발표하며 전국에 비상계엄을 선포, 계엄군과 특수부대 무장 병력을 투입하여 국회의사당 진입과 점거를 시도하였다.

 

 

바스크 펠로타Basque Pelota (위) & 팔라 프론튼La Paleta Frontón (아래)

페루의 공식 국가 스포츠는 팔라 프론튼La Paleta Frontón으로, 1940년대 페루에서 탄생한 고유 스포츠다. 프론튼Frontón이라는 벽이 있는 코트에서 나무 라켓(팔레타)과 고무 공을 사용하며, 페루 전통 스포츠와 스페인식 핸드볼frontón을 결합한 문화적 산물이 있다. 이와 유사한 종목은 스페인에서 ‘라 팔라 La Paleta’라는 이름으로 클럽 스포츠 형태로 존재하며, 아르헨티나와 칠레 등 남미 일부 국가에도 프론튼 계열 스포츠가 있지만, 페루처럼 국가 스포츠로 지정되거나 국제적으로 공식 규격과 대회를 가진 경우는 없다. 또한 스페인의 바스크 펠로타Basque Pelota는 벽을 향해 공을 튀겨 상대방을 공격하는 스포츠로, 바스크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행해지는 경기이다. 펠로타는 작은 채를 들고 벽을 향해 공을 튀겨 상대방을 공격하며, 종종 다양한 경기 방식과 장비가 존재한다. ‘펠로타’라는 용어는 스페인어에서 유래한 것으로, 라틴어 “pilota”, 즉 ‘공놀이’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일부 학자들은 ‘스트라이크’나 ‘공격’을 의미하는 라틴어 단어와 관련될 수 있다고 본다. 이러한 스포츠들은 모두 벽을 활용한 라켓 또는 채 기반 경기라는 공통점을 가지지만, 각 지역마다 규칙, 장비, 문화적 의미가 다르며, 페루 팔라 프론튼처럼 국가적 상징성을 가진 사례는 드물다. 반면 페루에서 국민적 열정과 문화적 상징으로 자리 잡은 스포츠는 축구Fútbol다. 축구는 거리, 마을, 학교 어디서나 즐길 수 있고, 지역 커뮤니티와 정체성을 결속시키며, 중요한 경기일에는 거리 전체가 응원과 축제로 변한다. 페루는 월드컵과 코파 아메리카 등 국제 대회에 꾸준히 참가하여 1970, 1978, 1982년 월드컵 진출과 코파 아메리카 1939·1975년 우승을 경험하며 국민적 자긍심을 높였다. 거리 축구, 지역 클럽 문화, ‘La Blanquirroja’ 페루 대표팀 응원 문화와 붉은색·흰색 유니폼은 축구가 페루인의 삶과 정체성 속에서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보여준다. 축구는 페루에서 사실상 국민 스포츠로서 국가 행사, 지역 축제, 학교 활동 등 다양한 사회적 공간에서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Posted by trefres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