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마라어의 “Chili 땅의 끝”을 의미하는 칠레Chile는 평균 폭이 117킬로미터에 불과하지만 남북으로는 4,300킬로미터나 뻗어 있는 세계에서 가장 길쭉한 나라. 세계 최대의 구리 광산과 풍부한 리튬 매장량을 바탕으로 글로벌 원자재 시장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며, 인구의 95% 에스파냐 식민지 시절의 후손인 크리오요와 원주민·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로 구성되어 있다. 현재 인구 구성은 주로 유럽계와 원주민 혼혈인 메스티소 계통이 약 65~70%를 차지하며, 유럽계 백인이 20~25%, 원주민이 약 5~10% 이루고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칠레 사회는 스스로를 ‘남미가 아닌 유럽’에  가깝다고 인식하는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 발전시켜 왔다. 1970 사회주의자 살바도르 아옌데가 대통령에 당선되어 1971 구리와 주요 산업을 국유화하자 미국의 경제 봉쇄와 내적 혼란이 겹치며 1972년에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물자 부족 사태가 발생했다. 결국 1973년 9월 11일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가 의사당과 대통령궁을 공격하며 쿠데타를 일으켰고, 아옌데는 최후까지 저항하다 사망했다. 이는 냉전 속에서 미국이 직접·간접적으로 개입한 대표적 사건으로, 이후 칠레는 콘도르 작전이라는 초국가적 억압 체제의 핵심 무대가 되어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볼리비아, 브라질 등과 함께 미국의 지원을 받은 군사 독재 정권들이 좌파와 반정부 세력을 조직적으로 탄압했다. 피노체트 체제는 1980년 헌법 개정을 통해 대통령 임기를 8년으로 늘리고 의회 권한을 축소해 권위주의적 대통령제를 제도화했으며, ‘시카고 보이즈’라 불린 경제학자들의 조언에 따라 신자유주의 실험을 단행 단기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렸지만 제조업 기반은 약화되었다. 1982년 세계 불황과 원자재 가격 하락으로 위기가 닥치자 대규모 시위가 이어졌고, 국제적 압력과 국내 저항 속에서 결국 1989년 선거가 치러져 파트리시오 아일윈이 당선되면서 칠레는 본격적으로 민주주의로 이행하게 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체제의 그림자인 심각한 빈부격차는 여전했고, 2019년 10월 이를 계기로 전국적 시위가 일어나 헌법 개정 논의로 이어졌다. 이 흐름 속에서 2022년, 30대의 진보 성향 정치인 가브리엘 보리치 폰트가 대통령에 취임하며 칠레 정치사의 또 다른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2024년 기준 칠레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3,302억 7천만 달러, 1인당 GDP는  14,579달러로, 남미 대륙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한 국가  하나 꼽힌다. 안정적인 거시경제 정책과 꾸준히 높은 성장률을 기반으로  경제 성과는 오늘날 칠레를 남미의 대표적인 신흥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인용·참고: 서울대학교 아시아연구소 객원교수 & 칠레 가톨릭 대학교 역사학과 민원정 교수

 

발파라이소 © Uncover Latin America

칠레의 국민적 지지를 받는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시와 정치, 사랑과 투쟁을 함께 살아낸 인물이다. 그는 남미 역사를 소재로 한 서사시, 사랑을 노래한 서정시, 일상의 사물에 바치는 송시, 그리고 현실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초현실주의적 작품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남겼다. 나 역시 그의 사랑시를 좋아해 종종 오마주하곤 하는데, 「한 여자의 육체」에서 네루다는 육체를 대지와 자연, 그리고 무기와 같은 힘에 비유하며 사랑과 욕망, 고통을 동시에 노래한다. 한 여자의 육체, 흰 언덕들, 흰 넓적다리, 네가 내맡길 때, 너는 세계와 같다. 내 거칠고 농부같은 몸은 너를 파 들어가고 땅 밑에서 아들 하나 뛰어오르게 한다.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 새들은 나한테서 날아갔고, 밤은 그 강력한 침입으로 나를 업습했다. 살아남으려고 나는 너를 무기처럼 벼리고 내 화살의 활처럼, 내 투석기의 돌처럼 벼렸다. 그러나 이제 복수의 시간이 왔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 벗은 몸, 이끼의, 갈망하는 단단한 밀크의 육체 그리고 네 젖가슴 잔들 또 방심으로 가득 찬 네 눈 그리고 네 치골의 장미들 또 느리고 슬픈 네 목소리 내 여자의 육체, 나는 네 우아함을 통해 살아가리. 내 갈증, 내 끝없는 욕망, 내 동요하는 길 영원한 갈증이 흐르는 검은 하상河床 그리고 피로가 따르며 가없는 아픔이 흐른다. 또한 그는 “모든 꽃을 꺾을 수는 있어도 봄이 오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라는 말로 저항과 희망을 압축했다. 1973년 9월 11일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을 받은 아우구스토 피노체트 장군의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 정권이 무너졌고, 병세가 악화된 네루다는 망명을 준비하다가 9월 23일 산티아고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인은 암으로 발표되었으나, 군부에 의한 독살 가능성도 꾸준히 제기되어 이후 칠레 정부의 공식 조사가 이어졌다. 네루다는 이탈리아 영화 「일 포스티노」에 시인으로 등장하며 세계 대중에게 더욱 널리 알려졌고, 그가 “혼돈 속의 질서”라 표현한 발파라이소는 외지인들로부터 “천국의 계단”이라 불리며 오늘날까지 칠레의 문화적 상징으로 남아 있다.

 

칠레는 세계 10대 와인 생산국 중 하나로, 안데스 산맥과 태평양 사이의 독특한 기후 덕분에 포도가 병충해 없이 잘 자라 ‘신세계 와인’의 대표 주자로 꼽히고 있다. 주요 적포도 품종으로는 진한 베리 향과 탄닌이 풍부한 까베르네 소비뇽, 부드럽고 과일향이 풍부한 메를로, 칠레의 시그니처 품종인 까르메네르, 향신료 풍미가 강한 시라, 우아하고 가벼운 핀노 누아가 있으며, 백포도 품종으로는 청사과·배·열대과일 향이 나는 샤르도네, 허브와 감귤류 풍미의 소비뇽 블랑, 토착 품종 파이스가 있다. 주요 산지로는 까베르네 소비뇽의 마이포 밸리, 레드 와인의 메카인 콜차구아 밸리, 서늘한 카사블랑카 밸리, 고지대 아콩카과 밸리, 신흥 산지 레이다·산안토니오 밸리가 있으며, 칠레 와인은 강렬한 레드와 산뜻한 화이트를 중심으로 합리적인 가격 대비 높은 품질로 세계 와인 애호가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 그림 © 이원복 세계기행

칠레 사회는 식민지 시기부터 철저한 계급사회로 형성되었다. ʻ유럽인과 원주민의 혼혈’인 메스티소, ʻ아메리카 식민지에서 태어난 백인 혈통’ 크리오요, 그리고 ʻ원주민’ 인디오가 기본 골격을 이루었고, 에스파냐 왕은 정복자들에게 토지와 인디오에 대한 통치권을 부여하는 엔코미엔다encomienda 제도를 시행하여 아시엔다hacienda라 불린 대규모 농장에서 노동력을 착취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토지를 배정받은 메스티소와 가난한 에스파냐인들이 ‘인킬리노inquilinos, 즉 소작농로 불리며 영구적인 농민 계층을 형성하게 되었고, 이러한 사회적 위계는 칠레 근대사까지 깊이 뿌리내렸다. 20세기 들어 1920년 아르투로 알레산드리 팔마가 대통령에 당선되며 신흥 중산층과 근로자들을 위한 복지정책이 추진되었고, 193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민주주의 발전 속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이 다소 완화되었다. 그러나 1973년 피노체트 군사쿠데타 이후 경제는 신자유주의 실험의 장이 되었고, 인플레이션은 605.1%에 달했으며 독재 말기에는 빈곤율이 40%에 육박했다. 민주화 이후 칠레는 교육, 노동시장, 세제 개혁 등을 통해 격차 해소를 시도했으나, 최상위 20%가 최하위 20%보다 8.2배 더 많은 소득을 얻는 현실은 쉽게 개선되지 않았다. 2022년 기준 통계에 따르면 칠레 전체 부의 약 80.6%가 상위 10%에게, 그리고 49.8%가 상위 1%에게 집중되어 있었으며, CEOWORLD와 Forbes 자료에 의하면 상위 7~9명의 억만장자들이 각기 수십억 달러의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는 단순한 경제 격차를 넘어 식민지 시대부터 이어진 뿌리 깊은 계급 의식과 차별 구조가 여전히 칠레 사회를 규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19년 10월 칠레에서 일어난 대규모 시위는 단순히 신자유주의 체제의 전복만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식민 시기부터 이어온 공고한 엘리트층에 대한 저항이었다. 시위대는 산티아고의 바케다노 광장에 세워진 바케다노 장군 동상을 밟고 올라가 깃발을 꽂았는데, 그는 칠레의 군인이자 정치가였으며 아라우카니아 지역에서 마푸체 인디오의 영토를 점령하고 태평양전쟁에서 칠레가 페루-볼리비아 연합에 승리하는 데 뛰어난 공을 세운 인물이다. 즉 2019년 칠레의 대규모 시위, 일명 ‘칠레 사회적 폭발’ 또는 Estallido Social는 지하철 요금 인상 등 경제적 불만에서 시작되었지만, 본질적으로는 수 세기에 걸쳐 형성된 엘리트 지배 구조와 불평등, 그리고 신자유주의 정책 전반에 대한 깊은 분노와 저항을 드러낸 사건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스터섬도 크리스마스섬처럼 섬을 발견한 날이 마침 부활절이어서 ‘이스터’라고 이름 지었다는 설이 있다. 크리스마스섬은 1643년 영국 탐험가 윌리엄 다트니가 12월 25일에 발견해 이름을 붙였고, 이스터섬은 1722년 네덜란드 탐험가 야콥 로게벤이 부활절Easter에 도착해 이름을 지었다. / 사진 © 나무위키

“농업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칠레에서 농장 소유주의 지위는 지속적으로 강화되었다. 농장 소유권은 상류층을 상징하는 명확한 지표 중 하나였다. 농업은 18세기 식민지 경제의 주요 원동력이었으며 식민지 말기에는 북부 지방에서 금, 은, 구리 채굴의 중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1740년부터는 에스파냐 선박이 페루 부왕령을 통하지 않고 직접 칠레까지 항해할 수 있게 되었고 아르헨티나의 리오델라플라타 지역과의 무역도 합법화되었다. 새로운 기회가 열리자 에스파냐 이민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1700~1810년 사이에 에스파냐인 약 2만 4,000명이 칠레로 이주했는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바스크(Basque) 지방 출신이었다. 바스크 사람들은 부지런하고 진취적이었다. 그들은 끼리끼리, 혹은 다른 유럽 출신 지배층 가문과의 혼인을 통해 결속을 다졌으며, 농장을 구입하고 무역을 통해 크리오요 엘리트층에 편입될 수 있는 자본을 축적했다. 바스크 출신 엘리트들은 20세기까지 칠레에서 지배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19세기에 무역이 크게 활발하기 전까지 칠레는 부유한 크리오요가 많지 않았고 농업과 광업도 빛을 보지 못했다. 바스크인들은 그 틈을 파고들어 권력과 부를 손에 쥐었다. 1818년 칠레 독립을 선언한 베르나르도 오이긴스 리켈메와 19세기 칠레 지성사를 대표하는 벤하민 비쿠냐 마케나 모두 바스크와 아일랜드 혈통이다. 아일랜드 이민자들은 영국의 박해를 피해 온 아일랜드 카톨릭교도들이었는데 남부 지방에서 양 목축으로 부를 축적한 당시에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이민 세력 중 하나였다. 「놀랍도록 길어서 미치도록 다양한 칠레」”

 

칠레 푸에르토바라스의 독일마을 / 사진 © Chile.Travel

캘리포니아(1848)와 오스트레일리아(1853)에서 골드러시가 일어나면서 칠레는 광대한 곡물 수출시장을 확보하게 되었다. 또한 유럽의 수요에 부응하여 은과 구리 생산량이 증가하면서 국가는 물론 지배계층의 부도 증가했다. 이 무렵 국가 주도로 독일 이민자 약 3만 명이 칠레 남부의 발디비아, 오소르노, 양키우에 지역에 정착했다. 이들 중 일부는 1848년 독일 혁명을 피해 유럽을 떠난 사람들이었다. 1850~1875년 사이 칠레로 이주한 독일인들은 무상으로 토지를 받았다. 에스파냐 본토보다 더 유럽적인 백인 국가를 만들고자 했던 칠레 정부가 독립 이후 정책적으로 독일인의 이민을 장려했기 때문이다. 상업이 발달하면서 영국, 프랑스, 북미에서 기업인들이 몰려들어 칠레의 수출입 무역을 장악하기 시작했다. 식민 시기 크리요 엘리트로 이어진 과두정치와 신흥부르주아로 등장한 외국 상인들로 인해 지배계급이 다양해졌다. 북부의 광산, 남부의 농업으로 새로운 부를 창출한 이들은 정계에도 진출했다. 전통적인 엘리트는 물론 새로이 떠오른 젊은 지배계급의 구성원들은 유럽을 여행하고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유럽에서 정치, 문화, 과학 등 새로운 아이디어를 들여왔고, 정치와 경제를 장악해 갔다. 유럽, 특히 칠레의 주요 무역 상대였던 영국과, 페루-볼리비아 연합과의 태평양전쟁 이후에는 프랑스·독일과 정치적·문화적 관계가 긴밀해졌다. 칠레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이끈 시카고 보이즈는 국가가 산업 및 공공재의 민영화를 통해 지배계급의 지위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했다. 그러나 단순한 자본력만으로 상류계층에 속하기는 어렵다. 칠레의 엘리트 집단은 전통적 가문과 자본이 결합해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전 분야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다. 실제로 케이팝 팬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에서 그들은 칠레의 상류계층은 돈보다 ʻ성씨와 가족, 그리고 주의 사람들’로 정해진다고 말했다. 「놀랍도록 길어서 미치도록 다양한 칠레」”

 

아타카마 사막 속 우니타 언덕의 거인 © 로이터 통신

아타카마 사막는 칠레 북부에 위치한 세계에서 가장 건조한 사막 중 하나로, 일부 지역에서는 수십 년 동안 비가 거의 내리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발이 낮은 평야와 고산지대가 혼합되어 있으며, 소금 평원, 용암 지대, 절벽과 협곡 등 다양한 지형을 가진다. 또한 강수량이 극히 적고 기온 차가 심해, 극한 환경에서도 살아남는 특이한 식물과 미생물이 존재한다. 이런 극한 건조 환경 때문에 천문학 관측에 적합한 장소로도 유명하며, 세계적인 천문대들이 이 지역에 자리 잡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큰 거울'이라 불리는 우유니 소금사막은 볼리비아에 있으며, 주변 지역은 아타카마 사막의 연장 지형과 유사한 건조 고원 환경을 가진다. 즉 아타카마 사막의 본체는 칠레에 있지만, 지질학적·기후적으로 비슷한 환경이 볼리비아 남부까지 이어진다. 한편 우니타 언덕의 거인, 혹은 아타카마의 거인은 칠레 아타카마 사막의 우니타 언덕에 위치한 길이 약 119미터의 거대한 인물 형상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선사 시대 인물 지상화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제작 시기는 약 1000~1400년경으로 추정되며, 티와나쿠Tiwanaku와 잉카Inca 문화를 포함한 여러 고대 문화의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상화는 언덕의 경사면에 돌과 흙을 배열하여 만들어졌으며, 일부 학자들은 달의 주기와 정렬을 통해 계절을 예측하는 천문학적 기능을 가졌을 가능성을 제시한다. 또한 이 지상화는 고대 무역로와 연결되어 있으며, 라마(알파카) 무역과 관련된 의식적 의미를 가졌을 수 있다. 페루의 나스카 지상화는 나스카 평원에 위치하며 약 200개 이상의 다양한 동물, 식물, 기하학적 도형으로 구성되어 있고, 길이는 수백 미터에서 수킬로미터에 달한다. 또한 우니타 언덕의 거인은 특정 언덕에 위치한 단일 지상화인 반면, 나스카 지상화는 넓은 평원에 수백 개의 지상화가 분포하고 있다. 두 지상화 모두 의식적 의미를 가졌을 수 있으나, 우니타 언덕의 거인은 천문학적 기능과 무역로와의 연관성이 강조되는 반면, 나스카 지상화는 종교적, 천문학적, 의례적 목적이 강조된다. 이러한 차이점들은 각 지역의 고대 문명이 자연 환경과 문화적 배경에 따라 독특한 방식으로 지상화를 제작했음을 보여준다.

 

© 산업통상자원부

 

© 네이트 뉴스

리튬Lithium은 전기차 배터리와 에너지 저장 장치 등에서 필수적인 금속으로, 자연에서는 주로 염호salt lake나 염지salt flat에서 추출할 수 있다. 칠레 북부에 위치한 아타카마 염지는 세계에서 가장 큰 리튬 매장지 중 하나로, 높은 리튬 함량 덕분에 아르헨티나, 볼리비아와 함께 ‘리튬 삼각지대 Lithium Triangle’를 형성하고 있다. 볼리비아 서부의 유우니 사막은 세계 최대의 소금 평원으로, 아타카마 염지와 마찬가지로 리튬이 풍부하며, 사실상 아타카마 염지의 볼리비아 버전으로 볼 수 있다. 칠레에서는 세계 최대의 리튬 생산업체인 알베말Albemarle과 SQM이 아타카마 염지에서 리튬을 추출하고 있다. 이 지역은 자연 증발 과정을 통해 리튬 농도가 높아 연간 약 39,000톤의 리튬을 생산하며, 이는 세계 생산량의 약 24%를 차지하고 있다. 반면 볼리비아는 세계 최대의 리튬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지만, 생산량은 600톤에 불과하여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1% 미만이다. 볼리비아 정부는 리튬 자원의 국유화를 추진하며, 중국 CATL, BRUNP, CMOC 등과 협력하여 유우니 염지에 연간 2,500톤 규모의 리튬 파일럿 플랜트를 건설하고 있다. 칠레는 리튬 생산에 있어 기술력과 경험이 풍부한 반면, 볼리비아는 풍부한 자원을 보유하고 있으나 생산 인프라와 기술적 도전 과제로 인해 상용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따라서 두 국가는 리튬 산업에서 상호 보완적인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 현재 한국 기업들은 칠레의 풍부한 리튬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투자하고 있으며, 리튬 개발 및 가공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포스코홀딩스와 LG에너지솔루션은 칠레 광물공사ENAMI에 리튬 추출 기술 개발을 위한 정보요청을 제출하였고, 칠레 광업부 고위 인사와 면담을 통해 협력 방안을 논의하였다. 또한 LX인터내셔널과 삼성SDI도 칠레에서 양극재의 주요 원료인 탄산리튬을 수입하고 있다. 한국 정부는 칠레와의 핵심광물 공급망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제5차 한·칠레 자원협력위원회를 개최하고, 민관 협력 심포지엄을 통해 양국 간 협력 방안을 모색하였다. 한국 기업들의 칠레 리튬 사업 참여는 미국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보조금 수혜를 위한 전략으로도 해석될 수 있으며, 칠레는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있어 칠레에서 가공한 리튬은 IRA 보조금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한국 기업들은 칠레 리튬 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으며, 향후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다만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대체 에너지 개발이 전 세계를 오염시키는 경제에 이익을 주는 잘못된 해결책”이라고 지적한 민간기구 안데스 소금 평원 다국적 관측소의 발언은, 리튬 같은 자원이 친환경 에너지 전환에 사용되지만 실제로는 환경 오염과 경제적 불균형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한번쯤 우리가 공론화하여 토론하고 깊이 고민해볼 필요가 있는 문제다.

 

© 서울경제

칠레는 지진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지역으로 이러한 자연재해에 대비하기 위해 강력한 인프라와 정책을 구축해 왔다. 특히 1960년 발디비아 대지진 이후 건축법이 강화되어 모든 신축 건물은 규모 9.0 이상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하며, 균열이나 기울어짐이 발생할 수는 있으나 붕괴 없이 구조적 안전을 유지할 수 있다. 실제로 2010년 마울레 대지진 당시 칠레 중부 지역의 약 6,000개 건물 중 심각한 피해를 입은 건물은 단 6채에 불과했고, 그 중 4채만 철거되어 강화된 건축법의 효과가 입증되었다. 또한 칠레는 지진 대비를 위해 정기적인 훈련과 교육을 실시하고 있으며, 2025년 6월 북부 코피아포에서 발생한 규모 6.4 지진에도 예정된 대응 훈련이 재조정되어 진행되는 등 국민들의 지진 대응 능력을 높이고 실제 상황에서 혼란을 최소화하고 있다.

 

가브리엘라 미스트랄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은 1889년 칠레 북부 비쿠냐에서 태어난 여성 시인으로, 1945년 라틴아메리카 출신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15세인 1905년부터 이웃 마을 학교에서 교사로 일하며 학생들을 가르쳤고, 동시에 시를 창작하여 신문과 잡지에 간간이 발표했다. 젊은 시절 그녀는 사랑했던 내성적인 철도 노동자가 뜻하지 않은 어려움 속에서 자살을 선택하면서 미스트랄 또한 심한 슬픔과 좌절에 빠졌고, 한때 자살까지 생각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녀는 마음의 상처를 극복하며 평생 결혼하지 않고 자신이 사랑할 수 있는 모든 이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삶을 살았다. 이 경험은 시 「죽음의 소네트 Sonetos de la muerte」에 녹아 있으며, 이 작품은 산티아고의 권위 있는 백일장에서 장원작으로 선정되어 시인으로서 미스트랄의 이름을 빛나게 했다. 시 속에서 그녀는 사랑하는 이를 양지 바른 가난한 땅에 안장하며, 손길과 마음으로 상처받은 영혼을 보듬는 이미지를 섬세하게 그린다. “인부들이 그대를 두었던 냉동칸으로부터 나는 그대의 육신을 양지 바르지만, 가난한 대지에 누인다. 그들은 몰랐다. 나도 역시 그 속에 잠들어야 하는 것을 두 겹 같은 베개를 베고 꿈을 꾸어야 마땅한 것을. 나는 양지 바른 땅에 그대를 안장한다. 잠든 아이를 어머니가 부드럽게 쓰다듬듯 그래 손은 부드러운 요람이 될 것이니 상처 입은 그대 어린아이처럼 풀어주리. 나 몇 줌의 흙을 뿌린다. 먼지가 날린다. 달빛에 바람을 타고 날리는 푸드스룩한 가루 그대 집에 날아 있는 모든 것은 포크가 된다. 나는 떠나리 사랑의 복수를 부르며. 누구의 손길도 아무도 모르는 이 깊은 곳에 찾아와 한 줌의 폐가 된 그대를 놓고 나와 닿을 수 없으리. 「죽음의 소네트 I」” 한편 미스트랄은 소년 파블로 네루다를 만나 그의 문학적 소양을 키우는 데에도 큰 역할을 하였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칠레에 보유한 토지는 전두환 정권 시기인 1980년대 초반, 농업 이민 지원과 농장 개발을 목적으로 매입한 것이다. 그러나 칠레 정부가 농업 이민을 불허하면서 해당 부지는 40년 이상 사실상 방치되어 있었다. 이후 신재생에너지 확대 기조에 따라 태양광 발전소 건설 가능성을 검토하는 타당성 조사가 진행되며 활용 방안이 새롭게 모색되고 있다. 한편 한국 정부는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에 걸쳐 식량 자립과 농업 이민 기지 건설을 위해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칠레 등 남미 여러 나라에서 토지를 매입했다. 대표적으로 아르헨티나 산티아고 델 에스테로 주에 확보한 부지는 여의도의 약 70배에 달하는 규모로, 오늘날에도 “한국이 해외에 산 땅”으로 회자되고 있다. 다만 이들 토지는 한국 영토로 편입된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외국 내 부동산 자산의 성격을 갖고 있다.

 

가브리엘 보리치 대통령과 트와이스 정연 포토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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