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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1.10.19 In Search of Lost Time , Sodom and Gomorrah 1
  2. 2021.08.18 In Search of Lost Time, Intermission 1
  3. 2021.05.22 In Search of Lost Time, Part 2
  4. 2020.10.10 In Search of Lost Time
  5. 2020.03.05 Elephant

405 - 9

 

기후문제에는 여러 가지 선택들이 존재한다. ①국가의 선택, ②산업의 선택, ③기업의 선택, 그리고 ④개인의 선택 등이다. 진리를 담을 수 있는 ¨이론¨을 찾는 인류가 선택한 ¨아름다운¨ 집약체의 산물인 ¨부¨, 100조 달러에 달하는 좌초 자산을 발생시킬 수 있는 화석연료 문제는 산업의 선택과 그에 따른 기업의 공조에 달렸다. 

 

국가별 에너지 사용량 (Unit: Mtoe)

 

1차 산업혁명 - 석탄 1765년, 2차 산업혁명 - 가스 1870년, 3차 산업혁명 - 핵 1969년, 4차 산업혁명 - 컴퓨터 및 재생에너지 2000년, 출처: 위키피디아

 

• 산업화 이전부터 2017년 말까지 누적된 온실가스는 2.2조 CO²톤이며, 잔여 배출 허용량은 4200~7700억 CO²톤이다. ii

• 2019년 세계 탑 5 국가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은 중국 101.74억 CO²톤, 미국 52.85억 CO²톤, 인도 26.16억 CO²톤, 러시아 16.78억 CO²톤, 그리고 일본 11.07억 CO²톤이다. 

• 2020년 세계 탑 5 국가들이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은 중국 97.17억 CO²톤, 미국 44.05억 CO²톤, 인도 21.91억 CO²톤, 러시아 16.19억 CO²톤, 일본 9.79억 CO²톤이다. 

• 2020년에 세계가 배출한 이산화탄소의 양은 약 340억 CO²톤으로, 석탄 발전소 1기를 원자력 발전소로 대체할 경우 연간 약 860만 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할 수 있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운전 중인 원전은 444기로, 예를 들어 석탄 발전소의 340억 CO²톤의 이산화탄소를 감축하기 위해서는 3954기의 원전이 필요하다. ii
• 현재 활발히 개발중인 신재생에너지로는 차세대 원자력 에너지 - 소형원자로, 수소에너지, 태양광 에너지, 그리고 탄소 선순환이 있다. ii
• 파리협정은 2021년 부터 지구 평균 온도 상승을 1.5°C로 억제하기 위해 2050년까지 탄속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는 신기후체제Post-2020를 채택하였다. 각 국가는 자신들의 기량에 따라 매 5년 주기로 국가결정기여NDC: Nationalty Determined Contribution를 스스로 정하여 온실가스 배출 감축목표를 이행하도록 했다. 그리고 탈탄소화Decarbonization, 기후복원력Resilience, 그리고 비동조화Decoupling 등을 담은 장기저탄소발전전략LEDS: Long-term low greenhouse gas Emission Development Strategies을 마련해 유엔기후변화협약에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ii
• 유럽연합은 2020년 그린 딜Green Deal이라는 기후법안을 채택하여 에너지, 건축, 산업, 수송 분야 등의 청정에너지 전환으로 2050년까지 탄소중립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한 탄소국경세를 적용하여 온실가스 배출비용이 존재하는 지역의 수입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ii

 글로벌 환경 캠페인인 RE100: Renewable Energy은 연간 전기사용량이 0.1Twh인 글로벌 기업들이 저탄소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하여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량의 100%를 2050년까지 태양광, 풍력, 수력, 해양 에너지, 지열 에너지, 바이오 에너지 등의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충당하겠다는 목표다. ii

 신재생에너지 발전을 통해 에너지 발전을 했다는 신재생에너지공급 인증서REC: Renewable Energy Certificate와 재생에너지 전력을 일반 전기보다 비싸게 파는 녹색요금제Green Pricing도 현재 각국에서 도입 중이다. iii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 추이, 출처: 한계레

 

원자력 에너지

 

원자력 발전에는 핵분열과 핵융합이 있는데 현재 상용화된 원자력 에너지는 모두 핵분열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드는 방법이다. 핵분열이란 질량이 있는 입자의 숨겨왔던 에너지를 발현시켜 그 에너지를 활용하는 방법으로, 우라늄, 플루토늄같이 질량수가 큰 원자핵이 중성자와 충돌하여 가벼운 원자핵 2개로 쪼개지는 연속적인 핵반응이다. 핵분열로 발생한 에너지는 원자와 핵충돌하여 열을 발생하거나 핵분열로 인해 방사선이 붕괴되어 열을 발생시킨다. 여기서 발생한 열로 증기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들거나 공업에 사용한다. 하지만 핵연료는 수년간 사용하면 더 이상 에너지를 생산하기 힘든 상태가 되는데, 사용된 핵연료는 생명을 위협할 만큼의 여전히 높은 열과 방사능을 방출한다. 방사선은 물질을 이온화하는 능력을 지닌 입자, 파동, 매질, 또는 공간을 전파하는 과정으로서의 에너지의 흐름이고, 방사능은 원자핵이 자연적으로 방사선(알파α선,베타β선)을 방출하여 다른 원자핵으로 변화하는 능력이다. 방사능은 반감기를 거쳐 점차 줄어드는데, 원전 사고 시 가장 위험한 방사성물질이 반감기가 8일인 요오드-131과 반감기가 30년인 세슘-137이다. 방사능 폐기물은 고준위, 중준위, 저준위, 극저준위로 분류되며, 원전 근로자들이 사용한 물건들이 중저준위라면, 플루토늄, 우라늄, 그리고 마이너액티나이드 등과 같은 방사성폐기물은 고준위로 나뉜다. 한 통계를 보면 폐기된 원전의 평균 수명은 25.8년 정도로, 더 이상 사용후핵원료Spent Nuclear Fuel를 저장할 수 없는 경우에 발생한다. 사용된 핵연료는 무려 10만 년 동안 방사성물질을 반출하는데, 현재 사용한 핵연료는 습식 저장 방식과 건식 저장 방식 두 가지를 사용하고 있다. 습식 저장 방식은 후쿠시마 원전과 같이 저장 수조의 물을 이용해 냉각시키는 방법이고, 건식 저장 방식은 자연을 이용해 열을 식히는 방법이다. 냉각재로는 대부분 경수(H2O)와 중수(D2O)를 사용하지만, 최근부터 헬륨(He), 이산화탄소(CO2), 액체 금속(나트륨), 납-비스무스(Pb-Bi), 혹은 소금(용융염)을 사용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장기적으로 사용후핵원료SNF의 최종 처분을 결정한 나라는 유일하게 핀란드다. 저장장소는 지하 500미터의 온칼로Onkalo이며, 국제원자력기구는 땅속에 묻는 심층 처분이 가장 적절하다고 보고 있다. 지하 500미터의 경우 산소가 거의 없어 공학적 원리에 따라 핵폐기물이 구리 원통에 밀봉되어 보관될 경우 구리가 부식되지 않는다. 하지만 스웨덴 왕립 공과대학은 지하 500미터에서도 구리가 부식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5킬로미터까지 들어가야하는 심부시추공 처분(Deep Borehole Disposal)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같이 원전 산업은 기술집약적이고 융합과학이므로 전체 인력의 원자력 혹 방사선 전공자는 8.4%밖에 없고, 나머지는 기계 설비 25%와 전기 계측 22%이다. 전력소모면에서 많은 인구가 몰려있는 대도시는 원자력발전소가 없으면 전기를 공급하는데 차질이 발생하여 어쩔 수없는 선택을 하는 경우가 있고, 여러가지 복합적인 이유에 의해 독일같은 경우 원전을 없애는 동시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고 소비자들이 추가 비용을 부담하고 있는 경우도 있다. 신재생에너지는 종류에 따라 무제한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으나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해양에너지 같은 경우 염도, 탁도, 영양염류, 중금속 등을 포함한 수질 변화가 일어나기도 한다. 댐을 이용한 수력발전 또한 강 생태계의 균형 문제가 발생하고 수질을 악화시키거나 주변 지질층에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다. 신재생에너지 개발에 있어 인류는 아랄해의 교훈을 기억해야할 것이다. 덴마크처럼 원전없이 열병합발전과 풍력에 집중하는 국가가 있는 반면, 스위스처럼 원전을 국민의 선택에 맡기는 나라, 원전을 포기한 독일·스위스·벨기에, 원전을 포기하면 온실가스 문제를 국가적인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한국, 혹 프랑스처럼 아직까지 원전에서 상당량의 에너지를 발전시키고 있는 나라나 추가로 많은 원전을 짓고 있는 중국의 경우도 있다. 에너지 문제는 상당히 복잡하므로 여러가지의 에너지원이 있을 경우 하나에 문제가 생기면 다른 것을 지원해주는 것이 원리다. 또한 에너지 발전은 국가에 따라 비용과 효율성이 다르다. 예로 한국에서는 태양광과 풍력발전이 가스발전보다 효율이 높은 것으로 평가됐고, 셰일가스가 생산되는 미국의 경우 가스발전이 석탄발전보다 원가가 낮게 평가가 되기도, 원전이 가스발전보다 더 높은 경우도 있다. 셰일가스 최대 생산국은 미국(2017년 비중 20.2%), 러시아(18.4%), 이란(5.7%), 캐나다(4.9%), 그리고 카타르(4.5%)다. 「네이처」 논문에 따르면 셰일가스의 경우 기후변화의 시간을 조금은 늦출 수는 있지만 크게 기여하지는 못한다고 한다. 또한 셰일가스는 개발에 따른 인공지진 문제를 야기한다. 한국의 경우 원전의 설비투자비가 다른 나라에 비해 적게 든다고 하는데, 그러한 분석은 자제와 건설 노하우, 정부소유 공기업 공사관리 등의 요인이 있겠지만 사고비용과 사용후 핵연료 처분비용이 현실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 된다. 또한 원전이용률이 높을수록 정비와 같은 안정성에 투자될 시간이 적기때문에 원전이용률을 낮게 측정하고 안정성에 더 많은 시간과 설비를 투자해야 한다고 한다.

 

관개용수 확보를 위해 지어진 댐이 불러온 세계에서 4번째로 컸던 호수 '아랄해'의 비극

 

⁋ 천연 우라늄에는 우라늄-235 비율이 0.72%에 불과하다. 농축 우라늄이란 우라늄-238의 비율을 줄이고 우라늄-235의 비율을 높인 우라늄이다. 핵무기는 우라늄-235가 90% 이상 고농도 농축되어 있는 반면, 원자로는 우라늄-235가 3~5%만 농축되어 있으며 핵분열 연쇄반응을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다. 핵무기는 순도가 높은 고농축우라늄, 즉 우라늄-235 비율이 20%가 넘어야 핵분열 연쇄반응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고농축 우라늄 원자로 기술로 핵무기를 생산할 수 있다. 농축기법들로는 기체확산법, 기체원심분리법, 레이저법, 플라즈마 분리법, 노즐분리법 등이 있다. 육불화우라늄을 용기에 넣고 돌리는 원심분리기가 대표적인 우라늄 고농축법에 속한다. 인공원소 플루토늄을 생산하기 위해서는 원자로에서 다 쓴 핵연료로부터 Pu-239을 분리해야 하지만, 고농축우라늄은 비교적 작은 공간에서 은밀하게 원심분리기를 통해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고농축우라늄 경우 핵무기 하나를 만들기 위해 1000~2000개의 원심분리기가 1년간 가동돼야 된다. 나가시키에 사용된 '내폭형' 핵무기가 플루토늄이고, 히로시마에 사용된 '포신형' 핵무기가 농축 우라늄이다.

 

출처: 에너지설비관리

 

차세대 소형모듈형원자로(SMR)는 약 300MW급 이하의 출력을 지닌 원자로다. 현재 운전, 건설, 혹은 설계 중인 SMR은 세계적으로 약 50여 기이며, 2050년까지 전 세계적으로 500~1000기가 운영될 것으로 예상된다. 공장에서 모듈 단위로 생산되어 현장에서 설치된다는 장점때문에 설치기간이 짧고, 대형 선박같이 1000MW급 대형 원자로를 설치하기 어려운 곳에 전력을 공급하는데 유용하다. 또한 지진 대비 여부 소형화로 인한 면진·제진 설계가 가능하고, 초소형모듈형원자로MMR: Micro Modular Reactor의 경우 대형 원자로 설치가 어려운 해양·해저·극지 등의 환경에서도 안전하다.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TerraPower가 개발한 나트륨 원전의 경우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하며, 이는 후쿠시마 원전과 같이 물을 냉각재로 이용하는 방식과는 다르다. 원전에는 피동적 설계와 능동적 설계라는 개념이 있는데, 테라파워같은 경우는 피동적 설계에 가깝다. 물을 냉각재로 사용하는 방식은 자연재해로 인해 전력공급이 중단될 경우 냉각수를 식히지 못하면 큰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납-비스무스 합금 또는 초임계 이산화탄소를 냉각재로 사용하는 경우, 비스무스의 방사화로 플로늄 기체나 이산화탄소의 방사화로 C-14을 포함한 이산화탄소 등의 방사성폐기물이 생성된다. 하지만 액체 나트륨을 냉각재로 사용할 경우 전력공급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동시, 중성자가 물을 지날 때 속도가 줄어들지 않는다. 저속 중속자의 문제는 우라늄-235만 핵분열을 시킬 수 있으나 고속 중성자는 우라늄-235를 소량만 사용하고 우라늄과 플루토늄을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따라서 사용후핵연료는 최대 95%까지 줄어든다. 또한 일반 원전 건설비용이 4조원인데 비해 테라파워 원전은 1조2000억원에 불과하다. 이같은 파이로프로세싱은 리튬, 칼륨, 카드뮴 등이 녹아 있는 용윰염에서 유해 방사성 물질을 분리하여 사용후핵연료를 원전에서 재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다. 하지만 나트륨 냉각로의 문제는 공기, 또는 물과 접촉할 경우 발화하기 때문에 증식로의 핵연료를 교환할 때 공기를 차단하기 위해 복잡한 설계가 요구된다. 또한 내부수리 목적으로 원자로나 배관을 열기 전 나트륨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으면 물과의 접촉을 통해 화재가 발생할 수 있다. 수냉각 원자로의 경우 물이 과열되면 수증기의 거품으로 밀도가 낮아지고 중성자의 감속효과가 떨어져 중성자에 의한 우라늄-235의 핵분열에 의존하는 연쇄반응이 멈춰진다. i 하지만 플루토늄을 연료로 하는 증식로는 나트륨이 끓어 밀도가 낮아지면 중성자 속도가 오르고 발생수가 증가하여 노심용융(멜트다운)이 발생할 수 있다. i 2015년 운전 개시한 러시아의 BN-800 증식 원형로의 경우 꼼꼼한 설계에도 불구하고 냉각을 처리하는 액체 나트륨 누설로 인해 대부분의 증식로가 운영기간중 운전 중단되었다. [참고.인용: 「원자력 논쟁」,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사용후핵연료의 처리는 어떻게 해야할까 - 안될과학·긴급과학, 「플루토늄, 악몽이 된 꿈의 핵연료」,  강정민 i, 「알기 쉬운 핵연료관리」, 김시환, 위키백과, 「탄소중립」, 김용환, 김진영, 방인철, 서용원, 윤의성, 이명인, 임한권 ii, 기후변화와 에너지산업의 미래」, 강신흥, 김기현, 류준우, 원주연, 이정희, 이호용, 이현화, 임병호, 최승신 iii]

 

 

전 세계 에너지 소비량 추이, BP 「Statistical Review of World Energy 2017」

 

전 세계 에너지 수요의 추이, IEA「World Energy Balances 2017 Edition」

 

 

전 세계 에너지원별 평균 단가 2010 vs. 2019 

수소에너지

 

수소 발전소는 추출된 수소로 산소와 화학반응을 이용해 물과 전기를 생성한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질소화합물이나 황화합물 같은 불순물이 발생한다. 수소 생산 방식에는 태양 에너지나 풍력 에너지와 같은 재생 에너지를 이용하여 생산하는 ‘그린 수소’, 이산화탄소를 부산물로 생성하는 천연가스 수증기 개질 반응을 통해 생산하는 ‘그레이 수소’, 이산화탄소 포집 및 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을 통해 생산하는 ‘블루 수소’, 그리고 석탄을 사용하여 만드는 ‘브라운 수소’가 있다. 하지만 탄소 포집 및 활용 기술은 아직 개발 단계에 머물러 있다. i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는 부생 수소 1kg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2.3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하고, 천연가스에서 추출하는 수소 1kg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11.3kg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다. CO² 포집 기술의 종류에는 연소 전 포집(pre-combustion capture), 연소 후 포집(post-combustion capture), 순산소 연소(oxy-fuel combustion), 그리고 직접 공기포집(direct air capture)가 있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인위적으로 해저나 땅 속에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을 CDR: Carbon Dioxide Removal라고 한다. ‘브라운 수소’는 화석연료보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친환경 및 고효율로 전환할 수 있는 석탄 가스화 기술이 요구된다. 석탄 가스화 기술은 고압의 가스화기 내부에서 석탄과 산소가 함께 일으키는 불완전연소 반응을 통해 일산화탄소와 수소를 생산한다. 갈탄은 석탄 중에서도 발열량이 적고 전 세계 석탄 매장량의 약 45% 정도를 차지하여 각광받고 있는 원자재다. ‘그린 수소’를 생산하는 대표적인 수전해 방식에는 고분자 전해질막 수전해PEMEL: Polymer Electrolyte Membrane Electrolysis, 알칼리 수전해AE: Alkaline Electrolysis, 고체산화물 수전해SOEL: Solid Oxide Eletrolysis가 있다. 수소에너지는 온실가스나 환경오염물질이 전혀 발생하지 않으며, 소음이 없고 높은 운용안정성이 있다. 장소에 대한 제약도 없으며, 24/7 가동할 수 있는 효율성을 지니고 있다. 단점은 수증기 변성이나 부분 산화, 또는 전기분해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높은 기술력을 요하고, 고분자 전해질막 수전해는 백금같은 귀금속이 촉매로 사용되어 비용이 많이 든다. 또한 수소는 폭발이나 인화가 높은 물질이여서 관리도 쉽지 않다. 수소는 기체 상태에서 부피가 매우 크므로 부피가 작은 액체 상태로 저장하는 것이 효율적이나 끓는점이 -253°C로 낮아 다루기가 어렵다. 따라서 기체 상태의 수소에 높은 압력을 가해 부피를 줄여 고압가스를 취급하는 압력용기에 저장하는 ‘고압 수소’가 있고, 초저온 냉동기술을 통해 대기압에서 -253°C 이하로 냉각하여 액체로 보관하는 ‘액화 수소’가 있다. ‘수소 저장 합금’은 수소를 고체 물질의 내부나 표면에 주입하여 고체 형태로 보관하는 방식이고, ‘액상 유기 수소 운반체’는 상온·상압과 유사한 온도·압력 조건에서 액상 형태로 보관하는 방식이다. 연료전지는 전기를 이용하여 물을 수소와 산소로 분해하여 전기와 열에너지를 생산하는 것으로, 가정용, 수송용, 발전용으로 나뉘며 최근 선박 및 항공 등에 활용하기 위한 연구가 진행 중이다. 고분자전해질막 연료전기와 인산형, 그리고 용융탄산염 연료전지가 상용화되었다. “그린 수소 저장체(암모니아 NH₃) 기술, 이산화탄소의 전기화학적 전환 반응을 통한 수소·탄산염·전기 동시 생산, 고효율 알칼리 음이온 교환막 수전해 장치 관련 촉매, 전극 표면 고분자 코팅을 통한 기존 대비 수전해 기반 수소 생산 효율 향상, 금속 유기 골격체를 활용한 효과적인 수소 저장 기술개발, 수전해용 전기화학 촉매개발, 저온/저압 조건으로 높은 수득률을 갖는 암모니아(수소 저장체), 과산화수소의 전기화학 반응을 통한 수소 생산, 효과적 수소 발생 반응을 위한 촉매개발, 광촉매를 이용한 수전해 기반 수소 생산, 유기 광전극을 통한 수소 생산 기술개발, 수소 생산을 위한 친환경 및 고성능의 백금-구리 나노프레임 촉매개발” 등의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참고.인용: 「탄소중립」, 김용환, 김진영, 방인철, 서용원, 윤의성, 이명인, 임한권, 기후변화와 에너지산업의 미래」, 강신흥, 김기현, 류준우, 원주연, 이정희, 이호용, 이현화, 임병호, 최승신 i]

 

태양광 에너지

 

태양전지 세대별 분류, 출처: 에너지움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보다 가볍고 유연하며 제조 공정이 간편한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는 섭씨 1400도 이상의 온도에서 처리하는 기존 실리콘 태양전지보다 훨씬 낮은 온도인 100도에서 처리할 수 있으므로 공정가격을 획기적으로 낮출 수 있다. 페로브스카이트는 특정한 유기물, 무기물, 그리고 활로겐화물이 결합된 화합물로, 화합물의 결정이 단순입방구조(정육면체 모양)를 이루고 있다. 한편 실리콘 태양전지의 변환효율이 29%인 반면 현재 개발 중인 탠덤 태양전지의 최대 효율은 44%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현재 상용되고 있는 태양전지의 95%는 실리콘으로 만들어진다. 1954년 벨 랩이 개발한 6% 효율의 실리콘 태양전지에 비하면 현재 태양전지 효율은 극적인 향상을 거듭한 것이다. 탠덤 태양전지는 실리콘의 넓은 파장 대역의 빛을 흡수하는 장점과 짦은 파장 대역을 잘 활용하는 페로브스카이트의 결합으로 훨씬 높은 효율을 달성할 수 있다. 탠덤 태양전지 구조는 상부셀과 하부셀로 나뉘며, 반도체 물질의 밴드갭이 달라 태양에서 나오는 빛을 이용하는 스펙트럼의 범위가 다르다. 두 개의 셀을 쌓을 때 밴드갭이 큰 태양전지를 앞에 놓으면 짧은 파장을 흡수하는 앞의 태양전지가 파장이 길고 에너지가 작은 스펙트럼을 흡수하지 않고 뒤에 태양전지로 전달하여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이다. i 한편 태양광 에너지는 발전량을 통제하기 어려운 재생에너지로, 일조량 급증으로 태양광 전력의 공급이 수요를 과도하게 초과하면 전기 주파수가 표준에서 벗어나 전력 품질이 악화되거나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다. 2019년 풍력·태양광발전량 비중이 33.2%에 달하는 영국같은 경우 태양광을 통한 전력공급이 계속 늘어나 전력품질이 떨어져 일부 기업에선 공장을 운영하기 어렵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태양광 설비들은 계통주파수(Hz)가 일정량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운정을 정지하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경우 2020년 8월 14일 18시경 폭염으로 인한 냉방부하 증가로 전력수요는 급증하였으나 일몰경 태양광·풍력발전력이 급감하여 전력수급 불안으로 1시간동안 순환단전을 실시하기도 했다. [참고.인용: 「탄소중립」, 김용환, 김진영, 방인철, 서용원, 윤의성, 이명인, 임한권, 한경 경제 i, 기후변화와 에너지산업의 미래」, 강신흥, 김기현, 류준우, 원주연, 이정희, 이호용, 이현화, 임병호, 최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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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Search of Lost Time  (0) 2020.10.10
Posted by trefresher :

우리는 다시 시작하려고 한다. 무엇을 시작할 수 있을까. 무엇이든지 사는 것, 살아가는 것, 살아갈 수 있는 것, 그러나 살아가지 못했던 것을 다시 찾고 다시 집어들어 삶으로 끌어 올려 보고자 한다. 지독한 고통의 과거는 여전히 남겨져 있고 그것은 한동안 지속될 아픈 상처다. 듣기 싫은 소음은 여전히 주위를 유령처럼 떠다니며 우리를 좌절케, 또 다시 공명空名에 빠트린다. 투명한 유리잔에 찰랑이는 와인이 붉은 빛으로 회색빛 세상을 그림자처럼 투영할 때, 그 한잔의 술에 고인 우리의 고뇌와 이상理想을 두어번 흔들어 피곤하고 고조된 마음을 삭히려 단숨에 입속에 털어넣는다. 활기는 찾을 수 있다. 기쁨은 느껴진다. 슬픔은 가라 앉았다. 그러나 아직 이상理想은 도약하지 못한채 거리를 이리저리 헤메이며 모두의 눈동자는 아쉬움을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날을 위한 선언도 아니고, 미래를 위한 기도도 아니며, 오늘에 대한 축배도 아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작정 걷고, 또 무작정 찾아보고, 또 무작정 확인하고, 또 무작정 위로받고, 또 누구와도 슬퍼하고 때론 기뻐하며 약간의 숙치에도 불구하고 다시 생로병사를 인정하며 오늘을 숙연히 살아가는 것이다. 확고한 믿음으로 또 당당한 초연함으로 세상을 바라보되, 세상을 원망할 필요는 없다. 원망으로, 원망에서 남겨지는 것은 오늘과 내일,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서 소화되지 못한채 침체되어 불쾌하고 거북한 시간의 모순으로 우리의 의지와 결심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잘못과 실수를 곱앂을 필요는 없다. 물은 물이고, 산은 산이고,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Pandemic, 그리고 새들이 다시 노래하고 공원엔 동물들이 자신의 거처를 둘러보고 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노래하는 것일까. 만약 우리가 새라면 우리는 다시 노래해야 한다. 무엇을 노래해야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삶을 노래하고, 우리의 터전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우리가 사랑하였고 사랑하고자 하는 것을 다시 노래해야 한다. 수많은 문들이 보인다. 어디에 있는 문으로 걸어가서 어떤 손잡이를 돌려야 할까. 이 문은 오늘열고 저 문은 내일 열어야만 하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우선 우리는 오늘의 문을 열어야 한다. 내일의 문을 조급히 열 필요는 없다. 오늘의 문을 확인하고 돌아와보면 어제였던 문은 이미 사라져 버린 문이거나 열어보지 않아도 되는 문일지도, 혹여 새로운 내일의 문으로 바뀌었거나 어쩌면 우리가 기념해야만할 문이 되어있을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을 어떻게 바라보는냐다. 이분법적인 세상은 흑백일 뿐이다. 우리는 늘 선과 악을 구별하려고 한다. 하지만 정의가 없이는 우리는 우리의 삶을 정의할 수 없다. 그래서 세상은 흑백이고, 지금은 낮이고 곧 밤이다. 우리가 무엇이든 함께 나누어 더불어 살 수 없을 때 우리는 그것을 악이라 부르고 그 행위를 악함이라 말한다. 내가 자연의 무엇인가를 자신만을 위해 소유할 때 누군가는 그것을 갖을 수 없다. 여기에 정의는 없다. 내가 자연의 무엇인가를 취하여 그것을 상대와 나눌 때 우리는 정의가 살아있음을 체험할 수 있다. 우리에게 목적이란 무엇일까. 이제 우리에게 목적이란 생을 살아가는 것, 이상理想의 삶을 추구하고 앎으로 오늘을 추진하고 계획하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앎이 있다. 앎이란 삶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예전의 나와 더해져 새로운 내가 되고, 그것은 얼마 후 나와 더해져 곧 앎이 된다. 하지만 그 앎은 다시 ‘나의 삶’子孫이다. 베르그송의 Infinity가 바로 이 앎으로의 삶이다. 나의 앎은 나의 어제의 삶과 오늘의 삶과 미래의 삶으로 완성 되는 것이다. 생을 다한 나라는 앎은 새롭게 태어난다. 나의 앎은 한 삶子孫으로 태어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베르그송이 말하는 원뿔의 상대적인 속성, 즉 아인슈타인의 꼬깔형태의 삶으로의 앎이 증명된다. 그것은 문화와 관습이 삶을 앎으로 만드는 과정으로, 우리는 시대정신-나아가 절대정신- 또한 알게된다. 들뢰즈와 가타리의 철학 또한 베르그송의 역원뿔을 사용하여 현실성과 잠재성을 말한다. 잠재성이란 새로운 앎과 새로운 삶이 만나는 것을 말하고, 현실성이란 사용된 앎과 사용된 삶이 정신을 낳고 새로운 앎이 되어 새로운 삶子孫을 태어나게 하는 것이다.

 

성性이란 무엇일까. 이제 우리는 성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미토콘드리아에서 보았듯이 성이란 어디서 온지 모르는 고세균이 세포핵을 지닌 진핵생물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호기성 세균과 광합성 세균이 숙주세포와 공생하다 분화 ii’하는 것을 시작으로 한다. 이로인해 암수가 없고 모체의 체세포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무성생식이 시작되고, 더 나아가 암수의 구별이 있는 두 생식 세포로 발전하는 유성생식과 현화식물처럼 단성생식을 하는 생명의 조건이 만들어졌다. 처음에는 기생으로 여러 기관들을 상대와 공유했으나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나아진 기후조건과 환경변화로 인해 세포들은 저마다 새로운 발전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하여 세포들은 요동치며 세상을 지배하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12개의 효소로 발효하는 생물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미토콘드리아의 진화는 “한 단순한 세포가 또 다른 단순한 세포를 습득한 사건 ii”을 통해 성性을 발전시킨 인류의 조상이다. 성性의 기원은 습격인가, 혹 효소를 통한 발효인가. 왜 성性은 공격적 행동에서 비롯되어야 했던 것일까. 원시스프에서 발효된 세포들은 왜 진화하지 못했나. 지구에서 발생하는 자연적인 아미노산은 모두 L형인데 그렇다면 우리는 오른손잡이 단백질의 결석이 그 이유일까. 거울 i에 비친 아미노산, 즉 좌우대칭이 다른 아미노산이 오른손잡이 단백질 D인데 과학자들은 키이랄Chiral물질이라고 하는 이것은 편광을 비출 때 빛의 호전 방향이 달라져 광학이성질체라고 한다. 만약 우리가 오른손잡이 순수 단백질을 찾아냈다면 미토콘드리아에서 시작한 생명은 다른 역사를 썼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찾지 못한 끈차원과 거울의 비밀이 생명에 감춰진 비밀을 설명해 줄 것도 같다. 의학을 이용하여 광학이성질체를 만들 수 있지만 우리가 찾는 완벽한 자연산 아미노산 D는 아직 요원하다. [참고.응용: 강신주 i, 위키백과 ii, 그레이엄 로턴 iii


내가 찾고 있는 여자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의자는 건축이다  i’. 우리에게 의자는 부르주아가 될 수 없다. 의자는 수고하고 노돈한 자가 쉬는 공간이다. 그 의자가 사치의 표본이 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오래 앉아 있을수록 우리는 더 많은 편한함을 추구하게 되고, 그것은 나태와 태만이라는 악순환으로 반복된다. 의자는 휴식이 필요한 자, 우리처럼 종일걷고 지친 영혼이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인류는 얼마나 안위하고 권태로웠는가. 모든 것이 편리해야 하고 모든 것은 손쉬워야 한다는 발상이 우리를 지금 여기로 몰아왔다. 걸어다니기 충분했던 우리는 바퀴를 발명하여 조금씩 속도를 내기 시작했으며, 자전거와 오토바이로 만족하지 못하던 우리는 버스와 전철과 기차를 만들어 대량의 인구가 저마다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점점 편리를 찾던 우리는 짧은 시간에 비효율적으로 빠르게 원하는 장소로 이동하기를 바랬고, 그래서 비행기와 개인 자가용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무역을 위한 배는 비단길을 시작으로 제국주의의 대량생산이 가동되자 기차와 함께 빠르게 전세계로 번져 나갔다. 그러나 진보한 인류는 여전히 더 많은 생활의 윤택과 편리를 선호하고 있다. 그래서 한 철학자가 명명한 사태의 동향이 바로 소비사회 ii다. 우리는 소비에서 만족을 느낀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무엇인가를 소비하고 거기서 대리만족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모두는 이렇게 말한다. 좋아요.모두가 고급 레스토랑에서 먹을 수 없어 고안된 것이 바로 햄버거 체인이다. 고루 모두가 같은 음식을 값싼 가격으로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는 대량화로 인해 빠르게 가시화되는 음식 폐기물 처리 논란과 늘어나는 여가에 비례되는 비만, 그리고 탄소배출에 의해 불거지는 기후문제이다. 해답은 간단하다. 사회의 비-바벨탑화다. (바벨은 히브리어로  ‘혼돈을 뜻한다.) 우리는 가르강튀아처럼 태어날 때부터 마실 것! 마실 것! 마실 것!을 외치며 그의 아들 팡타그뤼엘처럼 식사 때마다 4천5백 마리의 암소젖을 마시는 아이들을 배출할지 모른다. 제3인류를 바라는가. 제3인류처럼 작은 인류가 가능해지면 우주시대는 더욱 빠르게 다가온다. 바벨탑은 팡타그뤼엘이 되는 것이 걱정되는 전능자가 우리에게 일종의 타락과 비극으로 전해주는 풍자일 것이다. [참고.응용: i 르 꼬르뷔지에, ii 한병철] 

 

“The Time Has Come” The Walrus and the Carpenter sat down at once to sup, The Oysters, too, went smoothly down, And Guinness crowned the cup - And not a word was spoken more Till all was finished up! “To Talk of Many Things”

“시간이 됐어.” 기니스맥주를 홀짝거리기 위해 모여앉은 바다코끼리와 대장장이. 그리고 오이스터 녀석들 또한 군침을 꼴딱 삼키듯 부드럽게 기니스를 기도로 쓸어 넘긴다, 마치.. (조이스의 조롱섞인,) 모인 너희들의 잔들이 넘치나이다 - 잔이 비워지기까지 모두는 합죽이다. “이제부터 긴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코가 삐툴어진 조이스가 말했다. 갑자기 그는 감자와 동전을 오른쪽 주머니에서 왼쪽 주머니로 옮겨가며 열심히 저울질 한다.

 

예견된 재앙이란 폭염, 가뭄, 산불, 열돔 현상, 번개, 벼락, 뇌우, 홍수, 폭우, 허리케인, 태풍, 해수면 상승, 들어난 동토, 그리고 한파와 서리를 말한다.

 

▪ IPCC는 2100년까지 지구 평균온도가 3도 정도 오를 것이라 예상한다. 5도가 되면 남극 얼음은 사라진다. 빙하기부터 간빙기가 1만년인데, 지구 평균 온도는 이 기간에 4도 올랐다. 하지만 산업 혁명이후 100년 동안 지구 평균 온도는 1도가 올랐다. [기후과학자 김백민 교수]

▪ 6월 30일 소도시 리턴은 기온이 49.6도까지 치솟고, 모스크바는 34.8도로 142년 만에 가장 더운 6월을 기록하며 러시아 전역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핀란드의 산타마을도 33.6도로 107년 만에 가장 더운 여름을 기록했다. 북미주에서 1천명이 폭염으로 목숨을 잃고 10억 마리의 해양 생물이 폐사했다. 1000년 만의 폭우로 독일과 벨기에에서 200명이 숨지고 독일 보험업계는 12조5천억원을 보상금으로 지급하게 된다. 90년대 매년 330억톤이 녹던 그린란드의 대륙빙하는 2000년대 부터 2300억톤으로 증가했다. 기온이 2도 상승할 경우 해수면은 0.3~0.93m 상승하고, 식물의 16%, 척추동물의 8%, 곤충의 18%는 서식지를 상실한다. [류석호 교수]

▪ IPCC는 8월 9일 인류가 현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유지하면 2018년 예상했던 2052년보다 앞당겨진 204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 폭이 1.5도를 넘어설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럴 경우 가뭄은 2배, 강수량은 1.5배, 눈덮임 면적은 5% 감소, 열대 사이클론은 10%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조선 전기병]

▪ 과학자들은 전세계적으로 번지는 산불의 원인을 극심한 가뭄과 폭염으로 보고 있다. 이탈리아의 경우 200km²의 산림이 불탔다. “그들(각국 정부)은 계획을 만들고 목표를 설정하지만 실제 행동하지는 않는다. 1990년 이후 세계 탄소 배출량은 60% 늘었다. 헬름홀츠 해양 연구소 모지브 라티프” [데일리굿 백유진]

▪ 극지방에 번개와 벼락이 잦아지고 있다. 북극같은 경우 번개를 만드는 데 필요한 대류열이 부족했으나 최근부터 여름철 번개가 잦아지고 있다. 2019년 부터 2020년 까지 인도에서만 1771명이 벼락에 맞아 숨졌다. 7월 4일 방글라데시 결혼식 하객 17명이 벼락에 맞아 사망하고, 7월 11일 인도 관광지에서 셀카를 찍던 11명이 벼락에 맞아 숨졌다. [중앙 이해준]

 

▪ 7월 11일 미국기상청이 측정한 캘리포니아주 데스밸리 국립공원 온도는 화씨 130도, 섭씨 54.5도 였다. 1913년 관측된 온도는 화씨 134도, 섭씨 56.7도 였다. 100년 만에 최고기록이다. 전문가들은 기상학적으로 봤을 때 있을 수 없는 기록이라고 전한다. [한계례 최우리]

▪ 7월 16일 “산업혁명 당시 대기 중 이산화탄소량은 280ppmv(공기 100만 개에 이산화탄소 280개)였다. 현재는 420ppmv, 지난 250년간 50% 늘었다.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않는 한 이산화탄소는 매년 1%씩 증가해 2050년에는 550ppmv가 넘을 것이다. 2050년 탄소중립을 달성해도 지금까지 쌓였고 앞으로 30여 년간 추가로 쌓일 온실가스의 영향으로 기후변화는 필연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400ppm을 초과했다는 것은 지구 역사상 300만년 만에 있는 일이다. [허창회 서울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

▪ 7월 17일 1000년만의 기록적인 폭우로 인해 독일 서부의 라인강 일대는 집이 떠내려 가거나 주택이 무너지면서 큰 인명피해를 입혔다. 초토화된 처참한 마을 모습에 주민들은 망연자실하고 있다. 약 15000명의 경찰, 군인, 그리고 긴급구조 요원들이 투입되어 수색과 구조에 나섰다. [연합 박혜준]

▪ 7월 17일 시베리아를 찾은 폭염으로 하루 187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한편 중국 베이징에서는 폭우 경보가 발령됐고, 남서부 쓰촨성에서 시간당 200mm의 폭우로 70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서울]

▪ 7월 23일 아테네가 위치한 아티카주 전역에서 50도의 폭염속에서 13건의 산불이 시작됐다. [뉴스1 정이나]

▪ 7월 26일 미국과 캐나다의 기록적인 폭염으로 작황피해가 심각해져 주요 곡물인 대두, 옥수수, 밀, 백맥, 강맥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 예상되고 있다. [한국 박구원]

▪ 7월 기록적인 폭염으로 미국과 캐나다에서 대형 산불이 일어났다. 오리건주의 부트레그 산불은 축구장 13만개 면적을 불태웠다. [뉴스1]

▪ 50도가 넘는 폭염으로 인해 7월 중순까지 캐나다 BC주에서 진행 중인 300건의 산불로 리턴 마을을 포함 수많은 가옥이 전소됐다. [오마이 김수진]

▪ 7월 서유럽에 100년 만에 쏟아진 폭우와 침수로 120여 명이 사망했다. 기상 전문가들은 베른트로 알려진 저기압대가 독일,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집중 폭우를 쏟아냈다고 분석했다. [매일 김덕신, 연합]

 

▪ 7월 28일 부터 10일 동안 그리스에서 56000ha가 산불로 전소되었고, 8월 7일 하루만 70여곳에서 산불 사태가 발생했다. 그리스에서 1주일 동안 154곳에서 산불이 일어났다. 올림피아가 있는 펠로폰네소스 지역 등에도 산불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계례, 정의길]

 

▪ 7월 29일 “기후학자이자 기상 역사학자인 막시밀리아노 에레라는 올해에만 26개국에서 이미 260개 이상의 최고 기온이 기록됐다”고 발표했다. 라마나단 교수는 “우리가 무슨 수를 쓰더라도 5년 안에, 2030년까지는 1.5도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BBC]

 

▪ 지구촌 대형 산불로 8월 탄소 배출 사상 최대인 3억 4300만톤이 발생했다. 아테네 외각에서 시작된 화재로 수천명이 대피했으며, 스페인, 이탈리아, 그리스, 그리고 남부 유럽에서 약 1280km²의 면적이 불탔다. 2020년 전세계가 배출한 탄소는 약 315억톤이다. 1990년 약 225억톤이였다. 2000년 약 256억톤이였다. 2010년 약 336억톤이였다. 2018년 약 325억톤이였다. https://www.worldometers.info/co2-emissions/co2-emissions-by-year/ [경향 박용하]


▪ 8월 통계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터키 전역에서 시작된 111건 산불로 피해가 늘어나고 있다. “7월 30일 기준 터키 남부 지중해 주(州) 안탈리아 도를 비롯해 21개 도에서 71건의 산불로 4명이 사망하고 2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4,000여 명의 소방인원과 3대의 소방항공기를 비롯해 무인기 9대, 헬기 38대, 중장비 55대, 살수차 680대 등을 동원해 진화 작업 중이다. 나무위키” [중앙 최정동]

▪ 8월 2일 남미에 이상 기후가 발생하여 브라질에 때아닌 눈이 내렸다. 눈은 브리질 남부 히우그란지두술 등 3개 주 50개 이상의 도시들에 내렸다. 한편 한파와 서리로 사탕수수, 커피, 오렌지등의 농작물이 큰 피해를 입으며 내년 작황에 차질을 빚을 것으로 예상했다. “서리 피해를 줬던 차가운 기단이 힘을 잃으며 바람 의 방향이 바뀌고, 따뜻한 공기를 가져오는 북풍의 영향이 강해질 것으로 보인다. 한랭전선이 도래하기 전 잠깐 기온이 상승하는 것뿐이며, 향후 더 큰 추위가 올 것으로 예측된다. 기상학자 파비오” [뉴스투데이 김수산, 아시아투데이 안성주]

▪ 8월 7일 모스크바 인근 니제고로드주 사로프시는 산불과 관련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산불 진화작업에 나섰다. 32000ha 규모의 모르도비아 산림보호구역은 3000ha가 불탔다. 또한 러시아 전역에서 면적 약 3500000ha가 불타고 있다. 한편 러시아 아무르주의 14개 지방에서 약 200채의 건물이 홍수로 인해 침수됐다. [연합]

▪ 8월 11일 북아프리카 알제리에서 전국적인 산불이 번져 59명이 사망했다. 17개 주로 확산한 100여 건의 산불 중 60여 건은 아직 진화되지 않은 상태다. 10일 튀니스의 낮 기온은 49도로 까지 치솟아 북부와 북서부 중심으로 15건의 화재가 발생했다. [중앙 최정동]

▪ 8월 12일 시베리아 전역을 뒤덮은 산불은 140여 곳으로 확산하고 있다. 피해 면적은 14000km²에 달한다. 시베리아에서 시작된 산불 연기는 북극에 도달하기도 했다. [YTN 김정회]

▪ 8월 12일 환경 문제를 다루는 비영리 기관 클라이메트 센트럴은 2030년 런던 중심부가 물에 잠긴다고 경고했다. 베니스 또한 2030년이면 상당부분이 잠길 것이라고 예측했다. 중국 상하이, 베트남 호치민 시티, 태국 방콕 또한 심각한 침수 현상을 겪을 것이라고 예고했다. [문화]

▪ 캘리포니아 주는 최악의 가뭄 피해 때문에 지난 4월 167년 만에 강제 절수령을 발동했다. 또한 캘리포니아주에 덮친 가뭄으로 오르빌 호수가 말라붙어 8월 8일 수력 발전소 가동이 중단됐다. [YNA 종우, 중앙 최정동]

▪ 8월 14일 미 14개 주에서 100개의 산불이 진행중이며, 한달 전 6000명의 소방관이 투입된 딕시 산불로 1000채의 주택이 전소됐다. [Associated Press]

▪ 8월 14일 온라인 매체 복스는 지구 온난화 영향으로 인해 딱정벌레와 같은 곤충들이 서식지를 옮겨 산불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발표했다. “과거에는 발병 정도나 강도가 제한적이었지만 점차 많은 나무들이 (딱정벌레에 의해) 죽임을 당하면서 화재에 대한 우려는 인간들의 걱정을 키우고 있다. 이들은 나무껍질을 벗기고 구멍을 파고 들어가 알을 낳고 번식하는 데 이때 나무도 수액을 내뿜으며 대항을 하지만 당해내질 못한다. 이렇게 딱정벌레에 침공당한 나무들은 1년 사이에 수분 80~90%가 사라지면서 말라 죽는다. 생태학자 레베카 웨이먼” [매경 이상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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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5. 22. 13:00 from 隨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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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의 처음, 즉 우주의 시작을 설명하는 우주론 모형 중 현재까지 가장 유력한 것이 빅뱅 이론Big Bang이다. 귀납적 추리를 통해 기본 전제들로 ‘가설’에 도달하거나 연역적 추리를 통해 ‘가설’에서 논리적 귀결을 검증해 내거나 ‘가설’은 예측일 뿐, 빅뱅 이론이 별과 은하, 그리고 우주의 형성 및 그 구조와 행성의 탄생, 또는 생명 진화를 완전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허블 망원경을 통해 110억 광년 이상 떨어진 은하들을 관측하여 빅뱅 이후 20-30억 년이 지난 과거 은하들의 형태와 분포가 오늘날 우리 은하 동물원cosmic zoo과 유사하다는 사실이 밝혀냈다. 또한 우리 은하 주변 은하 동물원과 수십억 광년 멀리 떨어진 은하 동물원도 그 형태와 분포가 서로 매우 비슷하다는 점이 포착되었으나 빅뱅 이론은 아직 이것을 완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1848년 문학가 에드가 알렌 포가 「유레카」에서 빅뱅을 예언하고, 1917년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방정식의 일반해를 얻는 과정에서 우주 팽창을 예측하고, 1922년 우주의 밀도가 시간에 따라 변하다고 믿은 프리드만은 우주상수를 뺀 중력장 방정식을 풀어 팽창 이론을 예견하고, 1927년 벨기에 사제 르매트르가 우주 팽창에 대한 논문을 발표하고, 1929년 에드윈 허블이 분광관측을 통해 우주 전체가 팽창한다는 사실을 발견한 후, 기수가 된 르메트르의 빅뱅 이론에 이어 가모브가 발전시킨 빅뱅 이론과 와인버그가 제시한 표준 빅뱅 이론은 포레드 호일이 주장한 정상 상태 우주론Steady-State Cosmology, 또는 연속 창조 이론Continuous-Creation theory과 대치하게 된다. 연속 창조 이론이란 팽창하는 우주에서 생겨나는 빈 공간들로 부터 수소원자가 저절로 발생하여 별을 형성하므로 우주는 시작도 끝도 없이 연속적으로 존재한다는 이론이다. 그러나 우주배경복사가 발견된 후 에너지보존법칙에 위배되는 CC 이론은 외면당하고, 우주에 존재하는 헬륨-4, 헬륨-3, 중수소 D, 리튬-7 등과 수소의 비율, 은하의 진화와 분포 같은 중요한 증거들을 확보한 BB 이론은 절대적 지지를 얻게 된다. 그러나 BB 이론은 우주가 ‘물질 지평선'을 넘어 과거 멀리 떨어진 지역들 사이에서 서로 물질이나 에너지를 많이 교환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적절한 물질의 양이 우주의 평균밀도와 임계밀도를 미세 조정하여 ‘편평도 문제’ 또한 해결할 수 있었다는 것과 함께 전하의 양자화를 설명할 수 있는 ‘자기홀극 문제’ 또한 증명해야 했다. 만약 우주 공간에 있는 물질과 에너지의 밀도가 크면 중력 때문에 우주는 수축하고, 밀도가 어떤 값보다 작다면 중력보다 큰 척력 때문에 우주는 팽창하게 된다. 수축과 팽창을 결정하는 값을 ‘임계밀도’라고 하는데, 이 값은 관측되는 ‘우주의 평균밀도’와 ‘우주의 임계밀도’의 비율이다. 현재 우주의 밀도인자Ω는 (보통물질의 밀도인자Ωb) + (차가운 암흑 물질의 밀도인자Ωc) + (암흑에너지의 밀도인자ΩΛ) + (상대론적 입자의 에너지 밀도인자Ωrel)다. Ω>1 ‘닫힌 우주’란 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큰 것으로 우주는 빅뱅 초기상태처럼 결국 한점으로 모아져 빅크런치Big Crunch로 끝나고, Ω<1 ‘열린 우주’란 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보다 작은 것으로 영원히 팽창하다가 물질과 시공간은 갈기갈기 찢어지는 빅립Big Rip으로 종료된다. 그리고 우주의 평균밀도가 임계밀도와 같은 경우, 우리는 그것은 Ω=1 ‘편평한 우주’라고 말한다. 현재처럼 우주가 편평해지려면 우주 전체의 질량이 임계질량과 10⁻⁶²의 범위 내에서 일치해야 하는 정밀도가 필요하고, 아주 작은 오차에도 우주의 존재는 불가능하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앨런 구스는 인플레이션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제시하게 된다. (빅뱅은 대폭발이고 인플레이션은 급팽창이다.) 그는 힉스장으로 채워진 초기 우주에서 힉스장이 녹으면서 낮은 에너지 상태로의 상전이가 일어나 중력과 강한 핵력이 분리되어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다고 보았다. 그리고 피터 힉스는 신의 입자 ‘힉스’가 인플레이션 당시 모든 물질에 질량을 부여했다는 가설을 주장한다. 따라서 초기 우주가 하나의 점으로부터 빅뱅을 일으킬 때 우주는 광속보다 훨씬 빠르게 급팽창하고 에너지 밀도는 크게 낮아지게 되면서 대칭적이며 편평한 우주가 만들어져 지평선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현재 힉스입자를 포함한 총 17개의 입자로 이루어진 표준 모형Standard Model으로 우리는 자연의 거의 모든 현상을 설명할 수 있다. 허수 시간 개념을 이용해 「무로부터의 우주 탄생론」을 발표한 빌렌킨 박사의 우주는 물질도 없고 공간도 없는 ‘무’에서 태어났다. 당시 크기가 10⁻¹⁰m인 원자나 10⁻¹⁵m인 원자핵보다 작은 우주는 10⁻³⁶초에 10⁴³배의 속도로 급팽창하여 에너지는 10¹⁵GeV, 온도는 10²⁸도 이르렀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어떻게 시작하고 어떻게 우주가 1초도 안 되어 100억 광년의 크기로 팽창하다가 순식간에 느려졌는지에 대한 정확한 물리적 메커니즘은 밝혀지지 않았다. 얼마후 구스의 인플레이션 이론은 린데에 의해 대체됐으나 이 또한 문제가 발견되어 린데는 우주의 빅뱅이 무한히 계속 발생한다는 혼돈 인플레이션 이론을 발표한다. 그리고 알브레흐트와 마구에이조는 우주의 초기에서부터 지금까지 빛의 속도는 서서히 변해왔다는 주장으로 지평선 문제, 편평도 문제, 우주 상수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한다. 아인슈타인이 특수 상대성 이론에서 빛의 속도는 언제나 일정하다고 말한 것과는 대조되는 ‘변하는 광속 이론’으로 우주 초기에 빛의 속도는 지수 함수적으로 지금까지 감소되어 왔다는 것이다. (Albert Einstein said that nothing travels faster than the speed of light. 그런데 학자들은 양자얽힘의 비국소성non-locality을 증명하기 위해 양자적으로 얽힌 두 광자를 각각 서로와 멀리 떨어진 장소에 두고 실험을 했는데, 아인슈타인이 비꼰 ‘도깨비 같은 원격 작용’은 빛보다 무려 2만배나 빨랐다. 거리에 무관하게 정보가 즉각 전달되어 EPR 논문과 아인슈타인의 국소성locality 주장이 틀렸음을 증명한 것이다. 또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실험을 통해 태양의 핵융합 과정이나 초신성 폭발 때 생겨나는 ‘유령입자’ 중성미자가 빛보다 60나노초, 즉 1억분의 6초 빠르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무엇이 빅뱅을 일으켰는가. 또 물질과 에너지는 어디에서 왔는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는데, 1940년 조지 가모프와 랠프 앨퍼는 가상의 최초의 물질인 아일럼Ylem이 대폭발을 일으켰다고 설명한다. 가모프는 빅뱅이론에 중요한 증거가 되는 가벼운 두 원소 수소와 헬륨이 왜 우주에 그토록 많은지 그 원소들의 양과 비율을 3:1로 정확히 설명한다. 빅뱅 후 3분이 지나자 뜨거웠던 우주가 10억도로 식으며 우주는 대폭발 핵합성을 하는데, 양성자와 중성자들은 줄어든 운동에너지로 인해 서로 충돌하거나 결합하여 중수소와 헬륨 원자핵을 생성한 후 다시 재융합해 헬륨 원자핵을 만들게 되고, 핵합성이 끝나자 수소와 헬륨의 비율은 현재와 같은 75%와 25%가 된다. 그 후 빅뱅 이론가들은 우주의 척력을 발생시키는 입자 인플라톤inflaton이라는 임의의 스칼라 필드scalar field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근원이라고 설명하며, 가속 팽창하는 우주의 균질성과 등방성을 증명하기에 이른다. 그리하여 드 지터 de Sitter 해는 인플레이션의 가속팽창을 설명할 수는 있으나 암흑에너지에 의해 가속 팽창하는 우주가 정상 상태로 돌아가는 ‘우아한 출구 문제’graceful exit problem는 프리드만의 감속팽창 팽창곡선을 따르게 된다. [참고.인용: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윤성철, 「빅뱅과 5차원 우주 창조론」, 권진혁, 위키백과, 「빅뱅과 인플레이션 우주」, 윤성민, 「대폭발과 우주의 창조」, 양승훈, 「과학오디세이 유니버스」, 안중호]

빅뱅(신의 죽음), 그렇게 인플레이션 이론이 등장했다. 그리고 시간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아름다웠다. 아름다움은 이론이고 정신은 명제다. ¨선악¨의 충동에서 정반합(바를 정正, 되돌릴 반反, 합할 합合), 존재는 끝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On me voit donc je suis i”, 어떤 물리량의 값이 측정이라는 행위 이전에는 존재한다고 하는 것이 불필요했기 때문이다. ii 물음 하나, 절대-앎은 시공을 초월하는가. [참고.인용: Jean-Paul Sartre i, Copenhagen interpretation ii]

인플레이션 이론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열역학 제2법칙을 집고 넘어가야 한다. 엔트로피가 높은 상태를 무질서, 즉 평형 상태라고 말하고, 엔트로피가 낮은 상태를 질서, 즉 비평형 상태라고 말한다. 간단하게 평형 상태라는 것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던 커피가 방의 온도와 같게 식어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반대로 비평형 상태라는 것은 엔트로피에 변화가 일어날 것임을 의미한다. 만약 우주가 고립된 정적상태라면 우주는 이미 열적 평형 상태를 이루어 열적 죽음thermal death에 도달했을 것이다. 이것을 열사망heat death이라고도 하는데, 우주의 종말 중 하나의 가능성으로 엔트로피는 최대가 되고 모든 물질의 온도가 일정하게 되어 자유 에너지가 없는 상태에서 공간에는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게 된다. 하지만 우주는 지금도 팽창하고 있으며, 원자가 쿼크들로 붕괴되는 것을 막는 강한 핵력, 몸이 팽창하지 않게 양과 음의 전하가 균형을 이루도록 만드는 전자기력, 그리고 궤도를 돌며 지구를 하나의 개체로 유지시켜주는 중력이 우리의 상태를 유지시켜 주고 있다. 그런데 아인슈타인은 이같은 우주를 팽창하지도, 수축하지도 않는 정적상태로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일반상대론 앞에 우주상수항(람다Λ Lamda, 종종 제5원소quintessence iii)을 추가하게 된다. 영원하지 않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우주는 아인슈타인에게 아름답지 못했던 것이다. 그 후 1998년 펄머터, 슈밋, 리스가 초신성 Ia형을 관측하다가 우주가 과속 팽창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이같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중력에 반해 팽창을 가속시키는 척력의 원동력을 설명해야 했다. 우주 팽창 에너지는 빅뱅 초기에 거이 다 소진되어 버렸으므로 이론가들은 가속 팽창이 지속되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한 점을 지적하며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가설적인 암흑 에너지(우주상수)를 가져온 것이다. 결국 이같은 진공에너지를 오늘날 우리는 암흑에너지라고 부르고 있다. 급팽창 당시의 우주상수는 Λinfl ≈10¹⁰⁰Λ로, ‘아인슈타인의 장 방정식’ G=8πϒT+Λg에서 Λg는 진공 에너지로 인해 생기며, iii 양의 에너지를 갖은 진공은 ‘아인슈타인의 질량-에너지 등가’ E=mc²에 따라 질량을 가질 것이라 예상하고 있다. (붉은 노을, 불타오르는 태양을 과학적으로 풀면 수소가 핵융합을 일으켜 헬륨으로 변하는 과정에서 질량은 사라지고 빛과 열에너지로 변하는 것인데, E=mc²으로 설명된다.) 그에 앞서 1933년, 지구에서 3억 2천만 광년 떨어진 머리털자리 은하단을 관찰하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는 은하들이 항성들의 질량을 합한 것에서 발생하는 중력보다 훨씬 빠르게 회전하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고, 이에 학자들은 양성자, 중성자, 전자도 아니며, 빛과 다른 전자기복사를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않지만 중력과 상호작용하는 이 물질을 암흑물질이라고 부르게 된다. 은하의 움직임이 안쪽이 바깥쪽에 보다 빠르게 도는 것을 케플러리안 모션Keplerian motion이라고 하는데, 1960년대에 베라 루빈은 원반형 나선 은하에 속한 대부분의 별들이 케플러리안 모션의 예측과는 달리 중심과의 거리와 상관없이 같은 속도로 공전하는 것을 발견하고 암흑물질의 가능성을 제차 확인하게 된다. 팽창초기에는 암흑에너지와의 줄다리기에서 인력을 발휘하는 암흑물질의 힘이 더 강했으나, 차차 우주가 커질수록 암흑에너지가 강해진 것이다. 따라서 중력과 반대로 작용하는 암흑에너지가 과연 무엇인가에 따라 ‘적당한 암흑물질로 뭉쳐지고 적당한 암흑 에너지로 퍼져가며’ 가속 팽창하는 우주의 미래가 정해질 것으로 보여진다. 흥미로운 것은 빅뱅 후 팽창하는 우주의 부피가 증가하여 암흑에너지의 총량은 늘었으나 밀도는 변하지 않아 에너지 보존 법칙에 위배된다는 점이다. 빅뱅 후 우주에는 방사능 물질과 같은 거대하고 무거운 원시 원자가 분열되었고, 그것들은 우라늄, 라듐, 금, 철, 규소, 탄소, 헬륨, 수소들로 쪼개져 나오게 되었다. 그와 반대인 경우 에너지 밀도는 극도로 높아지면서 탄소, 철, 금, 우라늄과 같은 원소의 원자핵은 양성자와 중성자로 분해되고, 온도가 더 올라가면 그것들은 기본 입자인 쿼크로 분해된다. 이것을 우리는 초기 원시 수프primordial soup라고 말한다. 현재 인플레이션 이론을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은 펜지어스와 월슨이 우연히 발견한 우주배경복사의 흑체복사 스펙트럼이다. 펜지어스와 월슨이 우주배경복사를 발견하기에 앞서 가모프는 ‘(빅뱅 때) 그 강했던 빛은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빅뱅 당시 물체가 방출한 복사파의 고유한 파장의 분포를 조사해 BB이론과 정상상태우주론 중 어느 것이 맞는지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와인버그의 태초의 3분’ 이후 약 38만 년이 지난 당시 절대온도는 3,000캘빈이였다. 그 이하로 내려갈 경우 더 이상 양성자와 전자가 분리된 상태를 유지하지 못하고 결합되어 수소 원자를 만든다. 그러면 빛과 물질이 따로 행동하여 빛은 자유롭게 우주 공간에 퍼지는데, 이것을 138억 년 전의 공간인 ‘우주의 최후산란면surface of last scattering’에서 나온 빛, 즉 우주배경복사, 또는 태초의 잔광afterglow of creation이라고 한다. 쉽게 난로에서 발생하는 열이 방 전체로 골고루 퍼지는 원리와 같이 초고온의 아일럼Ylem이 대폭발을 하면 그 에너지 잔재가 우주에 적외선 형태로 퍼지는데 이것을 우주배경복사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알려진 바 없는 빅뱅의 순간은 ‘우주가 블랙홀과 같은 특이점에서 탄생해야 한다’는 사실을 일반상대성이론으로부터 수학적으로 증명한 스티븐 호킹의 이론이 전부이다. 스티븐 호킹은 「위대한 설계」에서 별이나 블랙홀 따위는 무에서부터 발생할 수 없으나 전체 우주는 그것이 가능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허블 망원경은 태양처럼 가시광선에서 빛나는 별을 촬영하기 좋고, 개발중인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은 적외선을 촬영하기에 적합하다. 그러나 모두 빅뱅 폭발의 순간을 관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우리가 빛을 통해 사물을 관찰을 할 때 빛이 통과하는 매질이 투명해야 하지만 우주배경복사 이전은 온도가 3,000캘빈 보다 높아서 전자를 원자핵에 붙잡아둘 수 없었고, 속박에서 벗어난 전자는 빛과 전파를 흡수하게 되어 광자는 빠져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다른 문제는 인플라톤이라는 스칼라 필드가 무한의 에너지와 물질을 어디서 어떻게 가지고 왔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과학의 범주를 넘어 자연주의 철학으로 이동해야 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진공의 양자적 요동Quantum Fluctuation에 의한 위상천이를 짐작할 수 있겠지만 그것을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아직은 요원하다. 나아가 폴 슈타인하르트는 인플레이션 이론에서 다중 우주론의 가능성을 보고 새로운 주기적 우주론을 펼친다. 그는 우리의 공간 3차원 우주가 공간 4차원 우주의 막이라고 주장하며, 이것은 또 다른 우리가 존재할 수 있는 ‘평행 우주’와는 다른 계념으로, 4차원 공간 속에 자리한 두개의 공간 3차원이 중력에 의해 서로 이끌려 충돌하여 현재의 우주를 만들었다고 설명한다. “그대는 ‘북쪽이 아닌 위로’라는 말을 했는데, 그대가 의미하는 방향을 가르킬 수 있는가?” 이것은 2차원의 나라 「플랫랜드」에서 나온 말이다. “슈타인하르트의 주기적 우주론은 최근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초끈 이론의 막 이론brane theory에 근거한 것이다. 지구의 표면이 3차원 지구의 2차원 막이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 3차원의 우주는 공간 4차원(시공 5차원) 우주의 막이라고 본다. 만약 공간 4차원에서 살고 있는 어떤 존재-천사일 수도 있다-가 바라볼 때 우리의 우주는 하나의 막으로 나타나고, 인간들은 모두 공간 3차원 막에 갇혀 있는 것으로 보일 것이다. i” 충돌한 두 브레인은 서로를 밀쳐내면서 현재의 우주가 되었고, 우주팽창의 가속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중력이 이 두 우주를 다시 끌어당겨 동일한 주기를 반복하게 된다. 그의 이론은 두 개의 브레인은 원래 평평했으며 우주가 모든 방향으로 균질한 것은 평행상태로 도달할 만큼의 넉넉한 시간이 주어졌기 때문이라는 점을 꼽으며 인플레이션 이론의 평평성과 균질성을 보완해 준다. 한편 로저 펜로즈의 블랙홀 주기적 우주론은 우리 우주 이전에 다른 우주가 블랙홀 속으로 붕괴하여 지금 우리의 우주를 만들었고, 우주는 영원히 주기적으로 출현한다고 설명한다. 그것은 의미되어진 것은 의미하는 것이 되고, 기표는 다시 기의를 만나 외시적 기호가 되며, 외시적 기호인 공시적 기표는 공시적 기의를 만나 다시 공시적 기호가 되는 것과 같다. 그 밖에 씨앗 우주 창조론Seed Cosmological Creationism이라는 이론이 있다. 이 이론은 5차원이나 혹은 그 이상의 어떤 높은 차원에서 창조된 씨앗우주seed universe, 즉 성년우주가 우리의 시공 4차원(공간 3차원, 시간 1차원)으로 펼쳐지는 과정을 설명한다. 플랫랜드의 주민은 우리가 말하는 위가 어떤 방향인지 도저히 알 수 없다. 그같은 질문은 그들에게 북극의 북쪽에 무엇이 있는지 묻는 것보다 어려운 질문이다. “종이를 둘둘 말아진 상태에서 쭉 펴는 것을 생각해보자. 처음에는 종이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매우 가까이 붙어 있다가 펴진 상태에서는 서로 멀리 떨어지게 된다. 종이 위의 개미가 볼 때, 종이가 처음부터 펴진 상태였다고 가정한다면, 이 쪽 끝에서 저 쪽 끝까지 가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종이가 말린 상태에서는 잠깐 밖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ii” 펼쳐진 우주론에서 피어나는 장미의 정보는 바뀌지 않지만 그 모양과 크기는 확장되는 것처럼, 어떤 높은 차원의 씨앗우주가 우리의 시공 4차원에 펼쳐질 때 우리는 우주 도처에서 별들과 은하들이 동시적으로 출현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3차원에서 플랫랜드로 펼쳐진 장미는 몇 개의 점들에 불과할 것이다. 씨앗 우주 창조론은 인플레이션 이론에서처럼 우주의 한 지점으로부터 사방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5차원에서 이미 창조된 내용이 4차원 시공간에서 동시적으로 나타는 것이다. 최근 퀘이사를 관측한 결과 상대성 이론에서 주장하는 ‘광속의 불변’과는 달리 빛의 속도가 일정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변하는 광속 이론’같이 검증이 불가능한 수많은 가설들을 내세우기 보다는 오컴의 면도날을 적용하여 펼쳐진 우주론에 등장하는 어떤 높은 차원에서는 시간과 공간의 성질이 다르다고 보는 것이 적합할 수 있다. 칼루차는 시공 4차원에서 여분의 차원을 적용하여 일반 상대성 이론과 맥스웰의 전자기 이론을 통합하여 중력과 전자기력 사이에 깊은 상관관계를 증명하였는데, 이것으로 여러차원이 존재하는 끈이론의 중요성이 밝혀졌다. 문제는 씨앗 우주 창조론은 암흑물질의 존재를 설명하지 못하므로 중력에 의해 항성이나 은하의 운동이 교란되거나 빛의 경로가 굽는 중력 렌즈 효과를 증명해낼 수 없다. [참고.인용: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윤성철, 「빅뱅과 5차원 우주 창조론」, 권진혁 i, 위키백과, 「씨앗 우주 창조론 - 창조와 시간의 해답을 찾아서」, 권진혁 ii, 「대폭발과 우주의 창조」, 양승훈,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 이광식, 「거의 모든 것의 기원」, 그레이엄 로턴, 「모든 것의 기원」, 데이비드 버코비치, 위키백과, 「과학오디세이 유니버스」, 안중호, 「유행, 신조 그리고 공상, 로저 펜로즈 iii]

“상대성 이론에 의하면 질량과 에너지는 상호 변환이 가능하다. 빅뱅 직후 우주에는 아직 원자핵을 구성하는 양성자와 중성자는 생겨나지 않았으며, 우주는 광자, 전자, 양전자, 중성미자, 퀴크로 이루어졌다. → 빅뱅 이후 100분의 1초 정도 지나서 우주의 평균온도가 100억’C 정도로 떨어지자 퀴크 3개가 서로 결합하여 양성자와 중성자들을 만들었다. 빅뱅 이후 10초쯤 지나서 이제 우주가 30억’C 정도로 식었을 때, 전자와 양전자들은 1대 1로 결합하면서 막대한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사라지고, 우주에는 약간의 여분의 전자가 안정된 상태로 남게 되었다. 우주의 온도가 더 냉각되면, 이 여분의 전자들이 양성자와 결합하여 수소 원자를 만들게 된다. → 빅뱅 이후 약 3분쯤 지나서 온도가 10억’C 정도 떨어지게 되자 드디어 양성자와 중성자들이 강한 핵력으로 결합해서 양성자 두 개와 중성자 두 개로 구성되는 안정된 헬륨-4의 원자핵을 만들었다. → 비로소 수소와 헬륨 두 가지 원자핵이 우주 속에 존재하게 되고, 이들이 별과 은하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되었다. 우주에 존재하는 100여 가지의 원소들은 모두 이 두 가지 원소로부터 발생한 것이다. 따라서 우주의 역사에서 최초의 3분간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제 약 30분이 더 지나서 헬륨 원자핵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끝났을 때는 수소 원자핵에 해당하는 양성자와 헬륨 원자핵의 비율은 약 73대 27정도가 되었다. 이 비율은 우주 속의 모든 은하들과 별들 속에서 관찰되는 비율이다. → 태초의 3분이 지나고 수십만 년 동안 우주의 온도가 수천도까지 식을 때까지 우주의 구성 성분은 별다른 변화 없이 팽창을 계속하며, 이 기간은 태초의 3분간에 비하면 무척이나 길고 지루한 시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우주의 온도가 충분히 떨어지자 비로소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해서 수소 원자를 형성하고, 헬륨 원자핵과 전자 2개가 결합해서 헬륨 원자를 만든다. 드디어 화학반응의 기본 단위인 원자들이 우주의 무대에 등장한 것이다. 수소 원자와 헬륨 원자는 우주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것이다. i” 현재 우주 전체의 평균밀도는 1m³당 10⁻³¹g으로 진공에 가까운 텅 빈 공간인데, 이것은 ‘큰 성당 안에 모래 세알과 같은 비율 iii’이다. 우주를 이렇게 만든 건 끌어당기는 힘, '중력으로 인한 덩어리짐의 과정 ii' 때문이다. 처음 우주에는 물질들이 전반적으로 골고루 분포해 있었으나 다른 주변보다 밀도가 높은 지점들이 있었고, 중력은 밀도가 높아 질량이 많은 곳에서 더 강하게 작용하여 더 많은 물질을 인력으로 끌어당기어 차츰 은하가 만들어지고 빈 공간들이 생겨나기 시작한 것이다. 원자핵을 이루는 두 양성자 사이의 중력은 강력의 10⁻³⁷ 정도 작지만, 별을 이루는 모든 양성자가 만드는 중력은 강력하다. [참고.인용: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윤성철 iii, 「우주를 알아야 할 시간」, 이광식, 「마지막 3분」, 폴 데이비스, 「태초의 3분」, 와인버그 i, 「유행, 신조 그리고 공상, 로저 펜로즈 ii]

특이점singularity에서 시공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은 아름다울 것이 없고 ¨선악¨의 정의가 불필요한 절대-앎이다. 라플라스의 도깨비Laplace's Demon는 어디에 있지? 내가 가르쳐주리라. 우리가 도깨비를 죽여버렸다. 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도깨비를 죽인 자들이다! ... 우리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는가? i [참고.인용: kritische gesamtausgabe i]

실수란 제곱하면 플러스 값이 되는 수이고, 허수란 제곱하면 마이너스 값이 되는 수다. 스티븐 호킹의 무경계 가설No-Boundary Proposal은 우주가 탄생했을 당시는 실수시간이 아닌 허수시간이었다는 것을 설명하며 우주가 허수시간에서 시작하여 불확실성의 원리에 따라 끊임없이 요동하는 에너지 상태에서 터널 효과로 언덕을 넘은 후 지수함수 형태의 급팽창으로 이어졌다며 빌렌킨의 ‘무로부터의 우주 탄생’을 이론화하게 된다. 물리학에서 무란 시간과 공간이 없는 ‘떠다니는 전자기가 조금 있는 양자론적 진공상태’iii를 말한다. 만약 우주가 실수가 아닌 허수에서 시작되었다면 우주의 기원인 특이점은 사라지게 된다. 허수시간에서는 힘의 방향도 바뀐다. 시간 경과에 따른 위치 변화가 속도(m/sec)이고 시간 경과에 따른 속도 변화가 가속도(m/sec²)이므로, 허수는 제곱하면 마이너스값이 되고 뉴턴의 법칙 F=ma에 따라 힘의 방향이 바뀌게 되는 것이다. 양자 드 지터 우주는 허수시간을 통해 고전역학 법칙에 따라 팽창하게 되고, ‘허수시간의 시공’이 생기면 거기서부터 실수시간을 통해 ‘실수시간의 시공’이 생겨난다. 그런데 프라드만 우주는 처음부터 실수시간으로 시작한다. 프리만의 우주는 원뿔모양으로 우주의 발생 시점인 중심점 ‘0’이 뾰족한 모양이다. 뾰족한 끝에서는 과거의 시간이 존재하지 않아서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원인을 알 수 없게 된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따라 우주의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우주의 크기는 0이 되고 모든 물질이 한곳에 모여 있으므로 물질밀도는 무한대인 특이점singularity에 이르는데, 여기가 원뿔의 뾰족한 끝이다. 반면 드 지터 우주는 원통모양으로 우주의 발생 시점인 중심점 ‘0’이 반구처럼 둥글다. 허수시간이 흐르면 공간과 시간 방향에 차이가 없어져서 특이점이 사라지는 것이다. 이같이 ‘0’이 특이점이 아니면 주변 물질과 똑같은 물리법칙이 적용되어 우주의 시작부터 물질상태가 정해진다. 프리만의 우주는 공간의 운동을 결정하는 힘이 일반적인 물질에서 나왔으므로 팽창속도가 느린 반면, 드 지터 우주는 우주항이 힘의 주된 원천이기 때문에 급격한 팽창을 하게 된다. 에너지가 가장 낮은 상태, 또는 안정된 바닥상태를 진짜 진공true vacuum이라고 하고, 불안정한 들뜬 상태를 가짜 진공false vaccum이라고 말한다. 가짜 진공 안에는 10⁸⁷줄joule의 에너지가 포함되어 있는데 질량은 약 10⁶⁷톤으로 오늘날 관찰되는 우주 전체의 질량인 10⁵⁰톤 보다 크다. 대통일이론에 따르면 우주는 가짜진공상태에서 시작되어 중력을 제외한 나머지 3가지 힘인 약력, 강력, 전자기력은 하나의 힘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그런데 가짜 진공이 발휘하는 압력이 중력과 다투게 되어 알짜 효과가 큰 척력이 발생함으로써 어느 순간 힘의 구조가 붕괴되고 드 지터가 예견한 점차 빠르게 팽창하는 우주가 탄생한 것이다. 가짜진공상태란 고여있는 물이 댐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엄청난 에너지를 방류할 수 있는 잠재력과 같다.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에 의하면 진공의 양자 공간에서 입자와 반입자들은 쌍생성되었다가 다시 쌍소멸을 반복하고 순간에만 에너지를 가지며 존속하는 가상입자를 만들어 내는데, 이 같은 현상을 카시미르 효과라고 부른다. y = aᵡ, 우주의 크기가 지수함수적으로 급격히 증가한 이유는 수학적으로 우주의 크기인 y가 고정된 x라는 시간의 주기에 따라 a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빅뱅 후 크기가 원자핵만 하던 우주가 10 ⁻³⁶ 에서 10⁻³초 사이에 10조분의 1의 10조분의 1초마다 2배로 증가하며 100번 똑딱거린 후 1광년의 크기로 급팽창 했다는 것을 말한다. (1광년 = 2¹⁰⁰) 따라서, 무 → 허수시간 → 드 지터 우주 → 빅뱅 → 프리드만 우주가 된다. 무에서는 공간이 없는 상태이지만 허수시간을 지나면 공간이 있는 상태가 된다. 상온 20도의 얼음이나 영하 20도의 물은 ‘별난 있는 상태’i로, 시간이 지나면 ‘진짜 있는 상태’i가 된다. 무엇의 ‘별난 없는 상태’i도 마찬가지로 무에서 많은 입자들이 생성되어 입자들은 ‘별난 있는 상태’가 된다. 그런데 ‘별난 없는 상태’에서는 우주항이 ‘0’이 될 필요가 없고, 그것은 급격히 팽창하는 드 지터 우주다. 이 ‘별난 상태’에서 인플레이션을 거쳐 많은 입자가 생성된 것이 바로 빅뱅이다. 그러나 ‘별난 상태’는 다시 ‘진짜 상태’i로 변화하려고 하는데, 공간이 팽창하면서 다시 ‘별난 상태’가 만들어져 ‘진짜 상태’로 돌아가려는 핵융합Big Bang nucleosynthesis이 전개된다. 그리고 그것은 우주항이 ‘0’인 프리드만 우주로 이어진다. “가짜 진공이 붕괴될 때, 우주는 정상적인 감속 팽창을 계속할 것이다. 가짜 진공에 저장되었던 에너지가 열의 형태로 방출될 것이다. 급팽창으로 시작된 거대한 팽창은 우주를 절대 온도 0도에 근접하도록 냉각시킨다. 갑작스러운 급팽창의 종료는 우주를 가공할 온도인 10²⁸도로 재가열한다. 이 거대한 열탕의 흔적이 오늘날 우주 배경 복사로 살아 있다. ii” [참고.인용: 「빅뱅과 인플레이션 우주」, 윤성민,「빅뱅과 5차원 우주 창조론」, 권진혁 i, 「마지막 3분」, 폴 데이비스 ii, 「평행 우주」, 미치오 카쿠, 「빅뱅인가 창조인가」, 존 C. 레녹스 iii, 「과학오디세이 유니버스」, 안중호]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한다. 그것은 피기 때문에 필 뿐이다. 장미는 그 자신에도 관심이 없고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지도 묻지 않는다. i” 1. ‘각성’한 장미가 재크의 콩나무가 되어야 하는 이유는 슬프게도 나쁜 거인을 정의just-ify하기 위해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ii” 2. 그러나 그녀의 사정은 다르다. “차라투스트라를 죽이지 않으면 넌 내딸이 아니다. iii” 3. ‘망각’, “죽는다는 건 잠이 드는 것 그뿐인 것, 죽는 것 잠이 드는 것, 잠이 들면 꿈을 꾸겠지. 죽느냐 사느냐. iv” 햄릿은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도파민을 원하고 있다. 1,2,3, 무엇이 순수이성pure reason인가. [참고.인용: 안겔루스 질레지우스 i, 「꽃」, 김춘수 ii, 「마적, The Magic Flute」, 모차르트 iii, 「햄릿」, 셰익스피어 iv]

무10⁻4⁴⁵s에서 → 빅뱅 직후10⁻4⁴³s의 순간까지를 플랑크 시대Planck Era라고 하는데, 이 시기에는 4가지 기본 힘인 전자기력¹, 약한 상호작용², 강한 상호작용³, 중력⁴이 초힘⁵superforce이라는 하나의 힘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그 후를 대통일 이론 시대Grand Unification epoch, 즉 빅뱅 직후10⁻4⁴³s에서 → 프리드만의 급팽창 우주10⁻³⁵s가 시작하기 전까지를 말하며, 당시 중력을 제외한 전자기력¹, 약한 상호작용², 강한 상호작용³은 핵전기력¹⁺²⁺³electronuclear으로 통합되어 있었다. 프리드만의 급팽창 우주는 4개의 힘이 분리되면서 상전이를 통해 에너지가 낮은 상태로 떨어져 인플레이션을 일으켰던 것이다. 제일 먼저 대통일 이론 시대에 우주 온도 10³²K에서 중력⁴이 10⁻4⁴³s에 떨어져 나가고, 한창 급팽창할 당시 우주 온도 10²⁷K에서 강력³이 10⁻4³⁵s에, 그리고 쿼크로 구성된 최초의 강입자가 탄생했을 무렵 우주 온도 10¹⁵K에서 약력²이 전자기력¹에서 10⁻4¹²s떨어져 나갔다. ii 물리학자들은 전기와 자기가 합쳐져 전자기력¹을 만든 후, 전자기력¹과 약력²을 높은 에너지에서 하나의 전약력¹⁺²으로 만들면 여기에 강력³을 포함시켜 대통일 이론¹⁺²⁺³GUT을 만들 수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가상의 물질인 ‘자극 홀극’이 발견되면 대통일 이론을 실험으로 검증할 수 있으나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그리고 학자들은 강력³과 전약력¹⁺²이 높은 에너지에서 하나의 힘으로 통합하지만 낮은 에너지에서는 대칭이 깨지면서 서로 다른 힘으로 분리한다고 예측한다. 실제로 입자물리학의 표준 모형Standard Model에서 전자기력¹, 약한 상호작용², 강한 상호작용³의 결합 상수coupling constant를 계산하면 높은 에너지에서 하나의 값에 가까워진다고 하는데, 이 의미는 세 힘¹⁺²⁺³이 통일한다는 증거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기에 중력⁴을 포함하면 플랑크 시대에 존재했던 초힘⁵, 초기우주의 완벽한 대칭상태인 우주의 시작인 ‘흼’, 자연계의 4가지 힘을 통합하려 아인슈타인이 제창한 통일장이론Unified Field Theory, 즉 모든 것의 이론⁵Theory of Everything이 탄생한다. 요즘은 양자론과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양자중력 이론의 하나인 끈 이론초끈이론superstring theory이나 고리양자중력이론loop quantum gravity이 유력한 후보이다. LGQ는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으로만은 빅뱅을 설명할 수 없어서 중력의 양자적 속성을 설명하기 위해 만들어진 이론이다. 초끈 이론은 10차원, M이론은 11차원이 되어야 하는데, 옛 보손끈 이론에서는 우주가 26차원으로 이루어져 있었다고 한다. 초끈 이론은 우주가 4차원의 시공간을 포함에 모두 10개의 차원으로 이루어져 있고, 6개의 차원은 숨겨져 있다고 한다. 그 6차원을 ‘칼라비-야우 다양체’로 상상해 볼 수 있는데, 현재 학자들은 빅뱅 초기의 10차원은 밝혀지지 않은 이유로 3차원 공간만 크게 확장되었다고 유추하고 있다. 우리가 사는 4차원 우주란 위도, 경도, 고도, 그리고 시간을 포함한 차원인데, 그렇다면 그 이상의 차원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나. “끈 이론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여분의 차원을 자주 만나고 있습니다. 부엌의 후라이팬도 그 예이지요. 팬의 코팅 물질은 여분의 차원을 통해서만 격자(원자배열구조)의 규칙성이 드러나는 재료입니다. 1982년 이스라엘 테크니온대학의 금속공학자 셰흐트만은 미국 표준연구소에서 연구년을 보내던 중 준결정quasicrystal이라는 합금을 발견했습니다. i” M이론은 호라바-위튼의 막 모형을 통해 물리적 현상을 가시화했고, M이론이 초끈 이론과 다른 점은 11번째의 차원인 벌크에서 닫힌 끈인 중력자들이 두 3-막 사이에 있는 벌크 공간을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후 나온 것이 ADD 모형인데, 이 모형은 중력이 다른 세 가지 힘에 비해 엄청나게 작은 이유를 설명할 수 있고, 이를 실험적으로 검증할 수도 있게 된다. 그리고 얼마 후 랜달-선드럼의 막세계 모형은 다섯 번째 5차원인 반 드지터 공간이 말안장처럼 중력막에서 멀어질수록 지수적으로 휘는데, 그 결과 우리의 막에 이르러 모든 것은 커지고 중력도 극도로 미약해진다는 해석을 하게 된다. [참고.인용: 「모든 것의 기원」, 데이비드 버코비치, 「우주는 어떤 모양인가」, 자일스 스패로, 「The Cosmic Timeline」, ohio-state.edu Lecture 38 ii, 「과학오디세이 유니버스」, 안중호 i]

시간은 ¨아름다움¨의 크기다. General relativity, 그러므로 관찰자의 속도에 따라서, 중력의 세기에 따라서 아름다움은 달라진다. (‘체Che는 혁명이다.’ 너라는 ¨이론¨은 너의 생애가 끝난 후 너라는 ¨앎¨이 된다. 우주는 우연 가운데 필연을 찾아가고 있다. 우주라는 ¨이론¨은 우주의 생애가 끝난 후 우주라는 ¨절대-앎¨이 된다.) 우주가 아름다운 것은 모든 것의 이유Theory of Everything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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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이론이고, 정신은 명제다. 미학은 모든 이론의 필연이고, 삶life은 앎을 체화한 존재다. 허무는 우연의 변명이고, 잠재적 앎의 확률은 내내 변함없이 아름답다. 아름다운 방정식이란It must be Beautiful, “1. 에너지 양자화에 대한 플랑크-아인슈타인 방정식, 2. 로지스틱맵 방정식, 3. 드레이크 방정식, 4. 아인슈타인의 에너지-질량 등가 방정식, 5. 몰리나-롤런드 화학방정식, 6. 슈뢰딩거의 파동방정식, 7. 디렉 방정식, 8. 진화 방정식, 9.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 방정식, 10. 섀넌 방정식, 11. 양-밀스 방정식” [참고.인용: 「It must be Beautiful : Great Equations of Modern Science」, Graham Farmelo i]

“어떤 세균은 유전자를 손상시킬 만한 양의 우주선cosmic rays에 노출되고도 살 수 있으며, 핵발전소나 멸균된 통조림 속에서 번식하는 세균도 있다. 남극의 사막인 드라이밸리에서 보란듯이 살아가고, 수백만 년동안 얼어 있는 시베리아의 영구동토층에서 언 채로 지내기도 하며, 고무장화도 녹일 정도의 강한 염기성 호수나 산성 온천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가는 세균도 있다. v” 열수분출공은 지각에서 마그마로 인해 데워진 뜨거운 물이 해저 깊은 곳이나 온천처럼 뜨거운 물과 가스가 솟아나오는 굴뚝같은 구멍을 말한다. 과학자들에게 생명의 기원에 대한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해저의 알칼리성 열수공alkaline hydrothermal vent이라는 곳으로, 화산성 열수공volcanic hydrothermal vent 혹은 블랙 스모커black smoker와는 다르다. 오늘날은 물론이고 초기 지구에 흔했을 것으로 추측하는 알칼리성 열수공은 난류의 발생이 적다. 열수공에서 나온 알카리성 액체는 태양계의 기본 구성 단위이자 지구에서 가장 흔한 감람석이라는 광물과 반응하여 수소 성분을 높이고 열을 발생하게 하며, 차가운 바닷물과 만나 광물질은 침전되며 차츰 암석 기둥을 형성해 나간다. 과학자들은 수소가 이산화탄소를 만나는 이같은 구조물은 생명의 구성 유기분자를 만들기 알맞은 장소라고 보고 있다. 생명의 기본단위인 유기분자는 탄소와 수소의 조합으로 만들어진다. 양성자가 풍부한 산성인 바닷물과 양성자가 빈약한 알카리성 열수공 액체가 천연의 배터리 형태로 구배gradient를 만들어 CO2와 수소 사이의 반응에 동력을 공급하여 복잡한 분자나 RNA를 만들었을 것이다. 일례로 황세균sulphur bacteria와 같은 경우, i 열수공에서 나오는 황화수소 기체에서 뽑아낸 수소를 이산화탄소와 결합하여 유기물질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이러한 초고온성 미생물은 역자이라아제reverse gyrase 효소 때문에 높은 온도에서도 견딜 수 있으며, 빛을 통해 에너지를 만들지 않고 지각에서 분출된 액체에서 녹은 기체로부터 에너지를 얻는다. 실제로 1970년 지질학자 잭 콜리스는 갈라파고스 중앙해령의 열수분출공에서 박테리아와 비슷한 고세균archaea을 발견했고, 고세균과 박테리아를 먹고사는 서관충tube worm도 발견했다. ii 그리하여 비로소 핵산이 단핵세포로, 이중나선의 핵산은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진화하게 된다. 고분자 유기물질인 단백질을 만드는 정보는 DNA에 저장되어 있어서 DNA는 단백질이 없으면 만들 수 없고, 단백질 없이는 새로운 DNA를 만들 수 없으나 RNA가 단백질처럼 접힐 수 있고 반응을 촉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발견되면서 최초의 생명체는 RNA 분자로 구성되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데이비드 디머는 생명체가 연못이나 호수의 가장자리처럼 습한 곳과 건조한 곳의 경계에서 발생한다고 주장했으나, 다윈의 ‘따뜻한 작은 연못’ 가설을 토대로 화산 지대의 따뜻한 연못에서 실험해본 결과 검증에 실패했다. iv 한편 그의 연구팀은 주기적으로 습기가 변하는 지역의 지질이 세포벽 형성을 촉진함을 입증했다. iv 또한 그레이엄 케인스 스미스는 점토층의 결정이 원시적 형태의 복제이며, 여기서 발달한 분자가 생명체로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화학적인 배열은 순전히 우연히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배열에는 뚜렷한 패턴이 발견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유전 정보에 해당하는 DNA에도 특별한 패턴은 없다. 모두 무작위인 것처럼 보인다. 만일 물리학과 화학 법칙이 물질에서 생명이 탄생하는 기이한 일이 일어나도록 아주 잽싸게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 분자 구조가 최종 결과물로 나타나지는 않았으리라. 물리학과 화학 법칙은 DNA 염기쌍이나 아미노산 배열에는 전혀 무관심하며, 특정분자 배열을 선호하는 방향으로는 작용하지 않는다. iii” 자연 발생하는 아미노산의 대부분은 L형이며 당류는 D형이다. 그리고 L형 아미노산을 이용해 자연적으로 생성되는 단백질을 왼손잡이성 단백질이라고 하고, D형 아미노산을 이용하는 단백질을 오른손잡이성 단백질이라고 한다. 그러나 생물의 몸에 존재하는 아미노산은 모두 L형으로 몸속의 효소는 L형과 D형의 아미노산 가운데 L형만을 사용한다. 과학자들은 탄소를 기반으로 하는 외계생명체가 존재한다면 카이랄성을 지닐 수 있다고 생각하여 1976년 화성 착륙선인 바이킹호에서 이 실험을 진행하려 했으나 비용 문제로 제외되고 말았다. 한편 바이킹호는 LR 실험에서 방사성 이산화탄소의 표식을 발견했으나 뚜렷한 결론없이 화성에서 생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말을 내리고 만다. [참고.인용: 「생명의 도약」, 닉 레인 i, 「거의 모든 것의 기원」, 그레이엄 로턴, 「모든 것의 기원」, 데이비드 버코비치 ii, 「침묵하는 우주」, 폴 데이비스 iii, 「단백질이란 무엇인가」, 후지모토 다이사부로, 「엔드 오브 타임」, 브라이언 그린 iv, 「미토콘드리아」, 닉 레인 v] 

우주의 생각ratum, 우주의 운율rhyme, 우주의 비율ratio, 우주의 이성reason, 우주의 이유reason → 우주의 아름다움 E = mc²

질소, 탄소, 산소, 수소가 결합하여 DNA와 RNA의 성분인 핵염기를 만든다. 생명체는 물, 포도당, 지방산, 아미노산, 뉴클레오티드로 이루어져 있다. 생명의 복잡한 메커니즘에 필요한 필수 10원소로는 탄소, 수소, 산소, 질소, 황, 인, 칼륨, 칼슘, 마그네슘, 철 등이 있다. 그리고 자연계의 동식물이 존재하는데 필수인 29원소는 수소, 리튬, 붕소, 탄소, 질소, 산소, 플루오린, 소듐, 마그네슘, 규소, 인, 황, 염소, 칼륨, 칼슘, 바나듐, 크로뮴, 망가니즈, 철, 코발트, 니켈, 구리, 아연, 비소, 셀레늄, 브로민, 스트론튬, 몰리브데넘, 아이오딘 등이다. 산소, 규소, 철과 같은 무거운 원소들은 초신성에서 만들어지는 데, 블랙홀의 활동이 적으면 초신성의 폭발이 너무 빈번하고 블랙홀의 활동이 너무 많으면 초신성의 출현이 드물기 때문에 적당한 블랙홀의 활동이 중요하다. iv 수소와 헬륨 다음으로 태양계에서 흔한 알파 입자로 이루어진 물질은 지구와 생명체를 구성하는 탄소, 산소, 실리콘, 마그네슘, 칼슘, 철 등으로, 탄소와 같은 경우 알파 입자 연쇄 반응에서 가장 먼저 생성되고 결합 능력도 뛰어나서 다양한 화합물을 조합할 수 있다. 인체의 18%는 탄소이며, 우리 몸에는 10²⁷개의 탄소 원자가 존재한다. i 따라서 외계생명체가 발견된다면 탄소에 기반을 둔 생명체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우리는 우주적인 진화적 수렴evolutionary convergence을 확인하는 행운을 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상대는 유전자 변형으로 내장감각계통을 인지하거나 자율신경계통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을지는 모른다.) i 그런데 생명체를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소인 대기와 물은 어디서 온 것인가. 모든 생물학자가 생명에 필수적이라고 동의한 것이 바로 물인데, 물은 분자들을 모아서 화학반응이 일어나도록 유도한다. 모든 물질의 74%를 차지하는 수소는 우주에서 매우 흔한 원소이며, 3번째로 흔한 산소는 모든 물질의 1% 가량을 차지한다. 2011년 7월 APM 08279+5255 은하에서 120억 년 동안 존재해온 지구 바닷물의 140조 배나 되는 양의 물이 발견되었다. 한편 태양계의 원시 행성들은 대기를 이룰 만한 재료가 없었으나 현재 지구를 포함, 금성과 화성은 얇기는 하지만 대기층을 확보하고 있다. 우주에서 떠돌던 미생물 포자가 지구에 전달되어 생명이 기원했다는 범종설panspermia은 후기 버니어 가설Late Veneer hypothesis에 속하는 데, 시생누대에 발생한 운석 융단폭격과 태양계 바깥에서 날아온 혜성이 지구에 물, 이산화탄소, 그리고 휘발성 물질을 보내주었다는 이론이다. 국제우주정거장에서 우주 환경에 노출된 박테리아가 15~45년을 존속하고 8년을 생존할 수 있었다는 실험을 보면 터무니없는 이야기는 아니다. ii 후기 버니어 가설의 문제는 혜성의 정상적인 수소에 대한 중수소의 비율이 지구보다 더 커야하고 질소의 동위원소 함유량도 다르기 때문에 둘 사이 화학적 성분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i 또 다른 이론은 내생기원설Endogenous Origin로, 과거 지구를 구성했던 소행성과 미행성체들이 이미 물과 이산화탄소를 내부에 숨기고 있었다는 이론이다. 과거 마그마의 바다가 굳기 시작할 때 바위의 표면에서 수화된 미네랄의 형태인 물과 바위의 내부에 탄산염 형태로 존재하던 이산화탄소는 수증기와 같은 휘발성 기체로 맨틀에 갇혀있다가 압력이 낮아지면서 어느 순간 화산을 통해 지구 표면으로 방출되었다는 것이다. i 대기압이 60기압이였던 지구에서 이산화탄소는 물과 바위에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고, 한때 300도였던 지구의 표면 온도가 조금씩 내려가면서 물의 양은 서서히 증가했다.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녹는 과정에서 온실효과는 점점 사라지고 지구의 온도는 점점 더 내려가 지질판의 운동이 활발해져 비로소 생명이 살수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던 것이다. i 광자가 엽록소 같은 색소를 포함한 세포에 도달하여 물분자를 양성자와 산소로 분해하여 이를 화학 에너지로 사용하는 과정을 광합성이라고 하는데, 지표면에서 최초로 번성한 원핵생물인 남세균cyano-bacteria는 광합성을 통해 이산화탄소와 물을 포도당으로 변환하고, 부산물로 산소를 만드는 세균이다. 그리하여 균류, 아마바, 짚신벌레와 같이 파트너와 DNA를 섞었다가 나눠 갖는 감수분열로 번식하는 복잡한 진핵세포가 등장한 것은 20억 년 전이다. 모양을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진핵세포는 다른 생명체를 잡아먹음으로써 영양분을 얻는데, 이같이 고세균과 박테리아가 서로를 흡수하는 공생관계를 세포낸공설endoymbiosis라고 한다. [참고.인용: 「모든 것의 기원」, 데이비드 버코비치 i, 「Frontiers in Microbiology」, Akihiko Yamagishi ii, 「과학오디세이 유니버스」, 안중호 iv, 「경이로운 우주」, 브라이언 콕스, 「인간의 우주」, 브라이언 콕스, 앤드루 코헨]

생명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산소가 있어야 하는데, 산소를 만드는 광합성은 시아노박테리아와 녹조류와 녹색식물에서만 일어난다. 그런데 고세균 중에서는 광합성을 하는 종류가 발견되지 않았고, 세균 중 광합성을 하는 것은 시아노박테리아 뿐이다. 화석증거를 토대로 생명의 기원은 38억 5000만 년 전인데 광합성이 시작된 시기는 35~27억 년 전 사이로, 발효와 광합성 사이에 중간단계는 발견되지 않았고 생명체가 에너지 공급원인 광합성없이 어떻게 10억 년을 살 수 있었는지 학자들은 가설을 세운다. 원시진핵생물가설은 톰캐벌리어-스미스가 내놓은 생물진화가설로, 고세균이 세포핵을 지닌 원시진핵생물로 진화한 후 세균을 잡아먹었으나 세균이 소화되지 않고 공생하며 에너지를 제공하여 미토콘드리아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수소가설은 월리엄 마틴과 미클로스 뭘러가 내놓은 생물진화가설로, 원시지구에는 산소가 희박했는데 메탄생성고세균이 수소와 이산화탄소를 제공하는 세균과 공생하여 미토콘드리아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최근 미토콘드리아가 없는 생물이 발견되었는데 하이드로게노솜과 비슷한 세포소기관이 들어있었고, 이는 산소가 희박한 환경이 조성되자 미토콘드리아가 하이드로게노솜으로 퇴화되었다고 보고 있다. 닉 레인은 산소호흡말고도 황산염이나 질산염, 또는 철을 이용하는 다른 형태의 호흡도 있다고 「산소: 세상을 만들어낸 분자」에서 밝히고 있다. 미토콘드리아는 작은 세포기관으로 생명에게 필요한 에너지를 ATP형태로 생산한다. 이처럼 미토콘드리아의 진화는 딱 한 번의 우연한 사건, 즉 “한 단순한 세포가 또 다른 단순한 세포를 습득한 사건 i”에 의해 발생했다고 믿고 있다. 세포는 40억 년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는데, 말하자면 단순한 생명체는 필연적이였으나, 복잡한 생명체, 즉 진핵생물의 진화는 놀랄만큼 희박하고 우연적이며 기적적인 사건이라는 것이다. 단순한 세포가 수억 년동안 복잡한 세포로 진화했다면 그 중간에 해당하는 여러 종류의 세포들이 존재했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습격’ 외 다른 학설로는 ‘발효’가 있는데, 닉 레인은 파스퇴르의 ‘산소가 없는 생명현상’을 반대한다. 발효가 일어나기 위해 12개의 효소가 필요한데 세포에게 에너지 제공수단으로서 발효, 즉 원시 스프primordial soup는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irreducibly complexity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환원 불가능한 복잡성이란 진화론을 반대하고 지적설계 ii를 주장하는 것이다. 세포의 습격사건은 우연이다. 하지만 미토콘드리아의 진화는 ¨이론¨을 위한 필연이다. 따라서 우연에서 비롯된 관찰자는 필연이다. [참고.인용: 「거의 모든 것의 기원」, 그레이엄 로턴 i, 「미토콘드리아」, 닉 레인, 나무위키 ii]

유럽우주기구ESA의 허셜 우주망원경이 오리온성운의 빛을 분석한 결과, 생명활동에 필수적인 물, 이산화황, 메탄올, 시안화수소, 포름알데히드, 디메틸에테르 등의 탄소 화학물이 발견됐다. 또한 1969년 오스트레일리아 빅토리아주에 45억 년이나 된 탄소질구립운석carbonaceous chondrite 하나가 떨어졌는데, 과학자들은 이 머치슨 운석에서 74종의 아미노산을 발견했다. 그 중 단백질을 구성하는 아미노산인 글리신, 알라닌, 글루탐산 등등을 발견했는데, 이는 우주에 유기화합물이 많다는 증거가 된다. 네이처 아스트로노미의 연구에 따르면 생명의 중요한 구성 요소 그리신과 비슷한 다른 아미노산들이 성간 구름interstellar clouds이 별이나 행성을 형성하기 전에 성간 구름에서 만들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우주탐사선 로제타는 추류모프-게라시멘코 혜성을 비행하던 중 혜성의 후광 영역에서 글리신과 인을 탐지하기도 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아미노산은 약 500개에 달한다. 그러나 인체에서 발견되는 단백질의 기본 단위인 아미노산은 20개에 불과하다. 생물의 몸을 구성하는 단백질의 기본 구성 단위인 아미노산으로는 발린, 류신, 이소류신, 리신, 트레오닌, 페닐알라닌, 메티오닌, 히스티딘, 트립토판, 글루타민, 아스 파르 테이트, 글루탐산 염, 아르기닌, 알라닌, 프롤린, 시스테인, 아스파라긴, 세린, 글리신, 티로신이 있다. 예를 들어 세포 하나가 100개의 아미노산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20개의 아미노산이 조합해 하나의 세포를 만들 수 있는 경우의 수는 2¹⁰⁰⁰가 넘는다고 한다. 그리고 진화를 거치는 수많은 아미노산의 조합과 외향적인 생체 기관들은 생존을 위협하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 배제되었고, 생명의 현상은 물리법칙과 환경의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생명의 가능성은 원숭이가 셰익스피어의 희곡을 칠 확률과 같다. 허나 생명의 진화가 무작위적이며 우연히 발생했다고 믿는 진화론자들은 시간만 충분히 주어지면 어떤 일이라도 일어날 수 있다고 확신한다. 하지만 아직 우리는 생명 현상을 설명할 이론을 발견하지 못했다. (우주life는 우연 가운데 필연을 찾아가고 있다. ¨아름다운¨ 숙명이다.) 프레드 호일 경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눈을 가린 10⁵⁰ 명의 사람들(이것은 10만×10억×10억×10억×10억×10억 명의 사람들에 해당하는 숫자로, 이들이 어깨동무를 하고 서 있다면 지구를 가득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이 루빅 큐브Rubik cube를 하나씩 들고 그것들을 아무렇게나 돌리기 시작하여 우연히 모두 다 맞추었을 확률을 상상해 보자. 그러나 이 확률은 생명체를 구성하는 많은 고분자물질들biopolymers 중에 단지 하나가 우연히 생겨날 확률 정도와 같은 것이다. 이 지구의 원시 스프primordial soup에서 고분자물질들 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살아있는 세포를 작동시킬 수 있는 프로그램이 우연히 생겨났다는 개념은 명백하게 ‘고도의 난센스nonsense of a high order’ 이다.” 호일은 탄소가 별 속에서 만들어지려면 탄소의 에너지 준위인 약 7.68MeV가 있어야 한다고 예측했는데, 핵물리학자 윌리엄 파울러는 연구를 통해 그의 예측이 옳았음을 증명한다. i 그 후 호일은 한 강연에서 탄소와 산소의 에너지 준위가 서로 정밀하게 조정되지 않았다면 산소와 탄소는 생명의 출현에 필요한 비율을 갖지 못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참고.인용: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윤성철, 「경이로운 우주」, 브라이언 콕스, 「유행, 신조 그리고 공상」, 로저 펜로즈]

Schrödingers Katze ?  BB, Kaboom ! → Therefore E M 299 792 458 ² m/s !  


XI. 관찰 가능한 우주(가시적 우주의 반경 약 457억 광년, 관측 가능한 우주의 가장자리까지의 공변거리 약 466억 광년) 
X. 헤라클레스자리-북쪽 왕관자리 장성(100억 광년)
IX. 거대 퀘이사 그룹LQG(지름 40억 광년)
VIII. 슬로안Sloan 장성(13.8억 광년)
VII. CfA2 장성(1,600만 광년, 폭 3억 광년, 장축 5억 광년) 
VII. ‘거대 인력체’ 은하 필라멘트(1억 6,300만~2억 6,100만 광년) 
VII. 초은하단 복합체Supercluster complexes(물고기자리-고래자리 복합 초은하단, 최대 길이가 약 10억 광년에 폭이 1억 5천만 광년)
VI. 센타우르스 초은하단, 새플리 초은하단, 시계자리-그물자리 초은하단(3,500억 개의 은하이자 250억 개 은하군과 은하단, 우주 안에는 약 1,000만개의 초은하단)
VI. 국부 초은하단, 하와이 원주민어로 끝없는 하늘 ‘라니아케아’(반경 5억 2,000만 광년, 수많은 은하군과 은하단들, 그리고 밝은 10만개의 은하들의 모임)
V. 버고 은하단(반경 7,500만 광년, 2,000개의 은하들)
VI. 국부 은하군(처녀자리/센타우르스 은하단의 중력 중심 방향으로600km/s, 직경 500만 광년, 안드로메다 은하 포함 20개여개의 은하들)
III. 우리 은하(안드로메다 은하 방향으로 100km/s, 직경 14만 광년, 2000억~1조개 별, 약 3,200개의 태양계)
II. 태양계(220km/s 우유길 중심 공전)
I. 지구(371m/s 자전, 30km/s 태양 공전)

우주에는 2조 개의 은하가 있고, 우주에는 700해 개(7X10²²)의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있고, 우린 그런 황당한 수를 아보가드로수(6.02214076×10²³)라고 말한다. 그리고 2조 개의 은하들 중 하나인 우유길에 적어도 500억 개의 거주가능한 행성이 존재한다고 한다. [참고.인용: 「우리는 모두 별에서 왔다」, 윤성철, 「과학오디세이 유니버스」, 안중호, 위키백과, 「우주를 만지다」, 권재술] 

지구의 나이는 약 45억 년이며, 생명은 이 기간 중 38억 년 동안 존재했다. 35억 년에서 38억 년 사이에 출현한 ‘현존하는 모든 생명의 공통 조상’을 LUCA라고 한다. 생명의 기원 후 수 억년이 흐른 38억 년 전 세균에서 광합성 반응이 일어났고, 25억 년 전부터 진핵생물이 등장했으며, 12억 년 전부터 유성 생식이 발생했고, 5억 년 전부터 유성생식이 시작됐으며, 6억 년 전부터 여러 개의 세포로 이루어진 다세포 생물이 출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인류는 0.0003% 동안 지구를 차지했다. “20억 년 정도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생명은 지금과는 아주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20억 년의 세월 대부분 동안 지구는 분명 살아있었지만, 생명체는 지극히 초기 수준으로 머물고 있었다. 세균, 그리고 겉으로는 비슷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아주 다른 자매 영역domain인 고세균archaea밖에 없었다. 복잡한 생명체라고 해봐야 스트로마톨라이트Stromatolite나 미생물 매트microbial mat 같은 미생물의 군체가 고작이었다. 식물도, 동물도 없이 그저 바위, 강, 바다만 황무지처럼 펼쳐져 있었다. ii” 지질학자는 화석 분석 결과와 접목된 암석의 방사성연대결정법로 지질학적 연대를 결정하기도 하고, 퇴적암과 화성암에서 들어난 지구 자기장의 기록을 사용하는 고지자기연대측정법으로 지질연대표를 작성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지질연대표를 사용하여 생명의 긴 역사를 4개의 누대로 구분하였는데, 지구의 생명이 진화하기 시작한 시기를 ‘하데스누대’라고 하고 최초의 광합성 생명이 출현한 것이 ‘시생누대’다. 태양계의 나이가 46억 년이라는 것은 40억 년 전 지구에 떨어진 운석, 즉 소행성이 지표면이나 바다에 떨어진 것을 분석하여 얻은 결과로, 이 시기를 시생대라고 한다. 대부분의 생명들은 바다에만 존재했고, 30억 년 이상 모든 생물은 바다에 살았다. 그리하여 원생생물이 빠르게 번성한 시기가 ‘원생누대’로 최초의 진핵생물이 등장하였다. 이 세 누대, 즉 순서대로 하데스누대, 시생누대, 원생누대를 합해 선캄브리아기precambrian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다세포성 진핵생물이 빠르게 번성한 시기를 선캄브리아기 뒤에 곧바로 등장하는 ‘현생누대’라고 부른다. 하데스누대에는 대기에 산소O2가 없고 지구에 운석이 지속적으로 쏟아졌으며, 생명은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생명의 기원으로 원핵생물이 번창한 시기는 시생누대에 들어서면서다. 4번째 누대인 현생누대는 고생대, 중생대, 신생대로 나뉘어진다. 고생대에 들어서 다세포동물이 급속하게 번성하고 최초의 어류, 곤충류, 양서류, 양치류, 그리고 파충류가 번생했다. 캄브리아기의 생물대폭발시기인 5억 4200만 년 전에까지는 단세포생물들이 주를 이루었으나, 곧 다세포생물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다세포식물과 다세포동물은 세포집단cellular colony이 형성되던 무렵에 처음으로 탄생했다. 세포집단은 동일한 세포들이 여러 개 모인 단순 집합이고, 다세포생물은 각기 다른 임무를 수행하는 여러 개의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우리 몸의 근육과 두뇌, 뼈, 눈 등도 다세포 유기체이다). 원핵생물이 모이면 기껏해야 사상체filament나 미생물 매트microbial mat밖에 만들 수 없지만, 단세포 진핵생물이 모이면 볼복스volvox(구형을 이룬 채 떠다니는 녹조류 집단)나 점규류lime mold와 같이 다양한 집단을 구성할 수 있다. 그러므로 단세포 진핵생물이 다세포 유기체로 업그레이드된 것은 진화론적 관점에서 볼 때 당연한 수순이었다. iii” 세포들이 집단을 이루어 자신의 임무를 각자 따로 수행하는 것이 진화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으로 찾아온 것이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다. 인류가 진화하기 시작한 것은 현생누대의 마지막인 신생대인데, 이 당시 기후는 차갑고 건조했으며 빙하기가 반복됐다. 대기의 O2 농도는 생명의 진화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 대기 중 O2가 증가하면서 최초의 광합성 세균, 최초의 호기성 세균, 최초의 진핵생물, 최초의 다세포 진핵생물, 최초의 척삭동물이 차례대로 등장했으며, 고생대 폐름기 말쯤 현재보다 거의 50%나 높은 O2 농도의 환경에서 거대 비행곤충류가 등장했다. 나무가 진화한지 얼마되지 않았을 시기에는 목질을 분해할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아 나무들은 장수할 수 있었고, 그리하여 산소 농도가 급속히 올라갔다. ii 고생대 폐름기 다음은 공룡이 등장한 중생대로 대기의 산소 농도가 급격히 하락하면서 최초의 현화식물이 등장했다. [참고.인용: 「생명의 원리 2판」, Hill, Sadava, Hill, Price, 「거의 모든 것의 기원」, 그레이엄 로턴 ii, 「모든 것의 기원」, 데이비드 버코비치 iii, 「침묵하는 우주」, 폴 데이브스, 「인간의 우주」, 브라이언 콕스, 앤드루 코헨]

운명론은 ‘세상의 사건은 모두 미리 그렇게 되도록 정해져 있고, 인간의 노력으로 그것을 바꿀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무수한 ¨삶¨은 수많은 우연 가운데 ¨앎¨이라는 필연을 찾아가고 있다. ¨정신¨은 거들 뿐,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삶은 우연의 연속이다. 모든 삶은 ¨하나의 앎¨에 담겨져 있지만 그 삶의 의미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삶은 한차원 위 ¨하나의 앎¨을 위한 파동함수같은 비가시적 확률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주를 관찰하는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생명체의 발생에 맞게 미세 조정fine-tuned되었다며 인류지향 원리anthropic principle라는 개념을 정립한다. 학자들은 양성자의 질량과 같은 우주의 기본 입자들의 성질과 중력의 세기 같은 (두 전자 사이의 중력은 전기력보다 10⁻⁴⁴배나 작음) 근본적인 힘들이 생명체 발생을 위해 맞춰졌으며, 아주 작은 오차에도 생명체는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불가사의한 현상,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기이한 일 i’, 학문으로 풀어낼 수 없는 복잡하고 이상하게 얽혀있는 현상, 우리가 기적이라 믿는 것은 우리가 무지한 까닭이다. ‘우주의 첫 1초는 기적이다.’ “가령, 초기 우주의 Ω가 1보다 조금만 컸다면 우주는 1초도 안 되는 순간에 수축해 붕괴했을 겁니다. 반대로 Ω가 1보다 극히 조금만 작았다면 우주는 급격한 팽창으로 수천억 분의 1초 사이에 3K(영하 270도)로 식은 후 갈기갈기 찢어졌을 것입니다. 오늘날 볼 수 있는 별은 커녕 원자 하나도 뭉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ii” ₁전자기력을 중력으로 나눈 값은 10³⁶인데 만약 그 값이 10³⁵였다면 원자는 큰 물질을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며 iii, ₂핵융합반응으로 헬륨이 만들어질 때 에너지로 전환되는 비율은 0.007인데 이것이 0.008이 되면 수소가 부족해 물 분자는 생성될 수 없었으며 iii, ₃플랑크의 시간10⁻4⁴³s에서 Ω오메가 값이 10⁻⁶⁰였다는 것은 Ω가 10⁻⁶⁰의 미세조정fine tuning을 했다는 것이고, ₄실제로 측정된 우주상수 값이 플랑크 질량 정도라고 예측했던 것보다 10¹²⁰배 작으므로 우주상수의 계층 문제hierarchy problem가 발생하고, ₅125GeV인 힉스입자의 관측질량은 가상입자의 효과로 힉스입자가 가지는 이론 질량Mₚ인 10¹⁷GeV와 맨질량(mₒ) 더한 것으로 극도의 미세조정fine tuning을 요하며, ₆약력 게이지 보손의 질량과 쿼크의 질량은 1경 배나 크므로 게이지 계층 문제 또한 불거져 우리의 우주가 인간이 존재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으로 ¨설계design¨되었다는 인류지향 원리anthropic principle에 힘을 실어준다. 이 원리는 약한 인류 원리와 강한 인류 원리 2가지 형태가 있는데, 만약 우주가 생명체의 발생을 돕지 않았다면 우리는 여기에 존재해 우주를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를 수용할 수 있도록 이런 값들이 때로는 칼날처럼 정확하게 미세조정된 것이 과연 우연일까? 예를 들면, 자연에는 우주상수cosmological constant라는 게 있다. 이것은 어떤 숫자다. 이 숫자가 실제 값과 눈곱만큼이라도 달랐더라면 이 우주에서는 은하, 항성, 행성 등이 태어날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이 우주가 형성될 수 있도록 이 수치가 정확한 값을 갖게 된 것이 과연 우연일까? iv” 만약 우리가 약한 인류 원리, 즉 “지적 생명체가 존재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우주에서만 그것을 관측할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수 있으므로, 관측되는 우주는 반드시 지적 생명체가 탄생할 만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다중우주가 있다는 가정하에 다음 명제를 충족시켜야 한다. (다중우주란 스타인하르트와 빌렌킨의 혼돈 인플레이션Chaotic Inflation 모형, 혹 영원한 인플레이션Eternal Inflation 모형을 린데가 가다듬어 제창한 것으로 각각의 우주가 인플레이션을 통해 새로운 아기우주baby universe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그와 비슷한 방식의 거품욕조 우주Bubble bath universe, 혹 주머니 우주Pocket universe도 다중우주 가설에 속한다. 그 외에도 무한한 우주에서 반복되는 평행우주인 ‘부벼이은 다중우주’, 양자역학의 확률파동에 존재하는 여러 가능성들이 모두 실현되는 ‘양자적 다중우주’, 영화 메트릭스처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실제와 똑같은 ‘시뮬레이션 다중우주’, 브레인세계들의 반복된 충돌로 인해 빅뱅과 비슷한 시간적 우주가 생겨나는 ‘주기적 다중우주’, 끈이론과 M이론에 따라 3차원 위에 존재하는 우리의 우주는 다른 브레인들도 존재하는 높은 차원의 공간을 떠다닌다는 ‘브레인 다중우주’, 경험적 현상 세계는 전체의 일부분이며 실제는 더 깊고 본질적인 차원의 현실에 존재한다는 ‘홀로그램 우주’, 다산원리에 의해 이론적으로 가능한 모든 우주는 진짜 우주이며 모든 가능한 수학방정식에 기초하는 ‘궁극적 다중우주’, 영원히 지속되는 우주적 인플레이션에서 수많은 거품우주가 생겨나는 ‘인플레이션 다중우주’, 그리고 인플레이션 우주론과 끈이론을 결합하여 끈이론의 다양한 여분차원이 만드는 거품우주인 ‘풍경 다중우주’가 있다. 끈 이론의 풍경에서는 최소 10⁵⁰⁰개의 우주가 가능하다고 보는데, 2015년 MIT의 연구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일으킬 수 있는 진공의 계곡 상태가 최소 10²⁷²⁰⁰라고 한다. 지구의 모래알이 10²⁰개고 우주의 소립자가 10⁹⁰개라고 하면 양자터널효과에 의해 만들어질 수 있는 우주가 10²⁷²⁰⁰라는 사실은 실로 엄청난 것이다. ii) “지구가 갈라파고스 제도라면 나머지 오대양 육대주Goldilocks Zone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지구가 오대양 육대주라면 갈라파고스 제도Goldilocks Zone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이 명제를 증명할 수 없다면 우리는 갈라파고스와 오대양 육대주가 동시에 존재하는 우주에 있는 것이 아니다. (혹 우리는 하와이에 있는 것인가.) ‘주어진 자연계의 기본 힘과 ¨이론¨이 확실하다면 유사한 환경조건에서 모든 것은 수렴Convergence된다.’ 이것에 이의를 주장하는 것에는 강한 인류 원리, 즉  “관측되지 않고 멸망하는 우주는 의미가 없으므로, 그런 의미에서는 지적생명체가 탄생할 조건을 갖춘 우주만이 의미있는 우주”이다. 강한 인류 원리는 우주가 어느 단계에 들어서면 우주를 관측할 수 있는 관측자가 발생한다는 것인데, 빅뱅 이후 모든 것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5을 보면 강한 인류 원리가 사양길로 접어들 필요는 없다. 학자들의 말대로 만약 관측자가 없다면 우주는 양자 현상 자체의 불확실성 상태에 갇혀 있는 존재하지 않는 우주이므로, 카이사르의 말처럼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다’Alea iacta est는 말이다. “우주에 대한 우리의 관찰 결과 가운데 가장 놀라운 것은 우주가 이상할 정도로 생명체 발생에 맞게 미세 조정fine-tuned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우주의 기본 입자들의 성질과 근본적인 힘들의 세기는 생명체 발생에 맞춰졌다. 이 요인들이 아주 조금만 달랐어도 생명체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전자기력의 세기가 줄면 물이 안정적인 액체 형태를 가지는 온도 범위가 엄청나게 줄어든다(생물.화학 반응에서 용매solvent로 작용하려면 물은 반드시 액체여야 한다). 중력이 조금만 달라져도 행성, 항성, 은하는 서로 뭉치지 못하고 블랙홀로 빨려 들어갈 것이다. 핵력이 변화한다면 항성은 융합 반응에 영향을 받아 수명이 달라지고 빛을 내지도 못한다. 중입자 물질이 반물질보다 훨씬 많이 존재해 우리 우주의 치명적인 소멸annihilation이 일어나는 것을 막고 있는(어떤 상황에서도 물질이 확실히 존재하도록 해주는) 현상도 이런 우주적 우연 가운데 하나다. v” [참고.인용: 「우주는 어떤 모양인가」, 자일스 스패로 v, 「과학오디세이 유니버스」, 안중호 ii, 네이버사전 i, 「다중우주는 정말 존재할까」 - 윤신영, 「6개의 수Just Six Numbers」, 마틴 리스Martin rees iii, 「우주의 통찰」, 레너드 서스킨드 iv, 「멀티유니버스」, 브라이언 그린]

(허수의 시간이 흐른 뒤,) 운동의 목적은 아름다움이다. iv 미학은 관조의 작용을 분석하는 것이다. v 아름다움은 ¨앎¨으로의 이론이고, ¨정신¨은 명제다. 까닭에 미학은 모든 이론의 필연이다. 우리는 ¨이론¨을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다. 이에 ¨정신¨은 ¨이론¨의 ¨표상¨이되고, 나아가 ¨이론¨은 ¨진리¨를 담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론을 다루는 미학자는 감각이 제공하는 것에서의 절묘함을 관찰하는 자에 불과하다. iv 관조란 사물의 본질을 누리고 향유하는 일이며, 향유자의 관점이 바로 취미다. iv 취미란 “아름다운 대상을 감상하고 이해하는 힘 ii”이다. 힘은 서로를 당기고attraction 서로를 민다repulsion. 칸트는, “누구나 이 대상을 아름답다고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칸트는 ‘순수한 취미 판단Geschmacksurteil’은 감각을 기초하는 것이 아닌 미학적 판단과 ‘반성Reflexionsgeschmack’에 기초한 보편성의 미적인 성질이 ‘연역’되어야 한다고 토로한다. 반성(돌이킬 반反 비칠 영映, 거울에 비친 모습)이란 표상이 ‘인식하는 것이 감성이나 오성(지성이나 사고의 능력)이냐’를 판단하는 것이다. ‘보편적이면서 필연적인 객관적 타당성을 증명하는 논의’iii를 칸트의 ‘초월론적 연역’이라 하고, 다시 말해 ¨절대정신¨으로부터 ¨이론¨이라는 결론을 이끌어내는 것이라 해석된다. 특정한 감정을 통해 주어지는 ‘감각적인 쾌’를 바탕으로 개인Homo sapiens의 주관적 감각에 한하는 감관취미Sinnengeschmack일 따름이며, 여기에는 보편 타당성이 결여된다. i 진(순수이성비판)이란 자연법Natural law이고, 선(실천이성비판)이란 정의Just-ice고, 실천적 쾌적은 기호(즐길 기嗜 좋을 호好)이지만, 미(판단력비판)는 ‘비행위적이고 지성적인 쾌’를 바탕으로 한 관조적 판단이며 ‘아무런 관심도 포함하지 않은 만족Wohlgefallen ohne alles Interesse’vi이자 은총이다. 진화는 우연이다. 하지만 진화는 ¨이론¨을 위한 필연이다. 따라서 우연에서 비롯된 관찰자는 필연이고, 우주-내-존재In-der-Welt-sein는 정당화되며, 실존의 아름다움으로 즉자적-대자는 실현된다. 그러나 ‘장미는 아름답다’는 것, 아직은 슬픔이다. [참고.인용: 「판단력 비판」, 칸트, 「칸트 미학 이론」, D.W. 크로포드 i, 네이버 사전 ii, 칸트사전 iii, Elephant iv, 니콜라이 하르트만 v, 헤겔 미학론, 「순수이성비판」, 칸트, 「노동자의 책」 vi]

지적 생명체란 자주성을 가지고 자신을 지배하는 법칙을 스스로 관리할 수 있을 정도의 진화를 통해 매우 높은 수준의 복잡하고 방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하며, 그 정보를 복제하는 동시에 자신 스스로를 생명체라 부를 수 있어야 한다. (la초신성은 우주의 가속팽창을 알려준다. 진화는 생명의 비밀을 알려준다. 우주의 현상은 무엇인가를 알려주고 있다. 그래도 진화론의 진화의 이유가 ¨이론¨을 위한 필연이 아니라면,) 우선 우리가 검증해야 하는 것은 ‘지성체가 들어갈 생태적 지위’i가 과연 우리에게 있는가 하는 자격심사다. 과연 우리는 자연이 35억 년 동안 지성을 위해 생명을 진화시켰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 후 우리는 ‘생명이 들어갈 우주적 지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만약 생명이 단순히 기능적인 존재이자 우연적인 유기물에 불과하다면 우리는 생명이 우주의 덧없는 미물이 아니길 바라며 생명의 ¨필연¨을 찾아야 한다. “만약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단순한 사건의 결과가 아니라 점점 더 복잡해지는 우주 진화의 일부라면, 이는 어떻게든 인간 생명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할 것입니다. 외계 지성체 또는 그 어떤 생명체라도 찾게 된다면, 생명의 발생을 설명할 수 있는 일종의 깊은 {생물학적 일반 원리}가 존재한다는 전망을 확인시켜 줄 것입니다. 그리고 생명이라는 것이 우발적으로 발생한, 이러저러한 형태의 암석 덩어리들처럼 하찮은 존재가 더 이상 아니게 되고, 우리는 거대한 그 무언가에 속하게 됩니다. i” 우리가 아는 생명 현상에 대한 법칙은 다윈의 진화론을 제외하면 아무 것도 없다. 단백질을 이루는 아미노산 배열이나 유전 정보를 담은 DNA를 통해 우리는 생명에 그 어떤 특별한 패턴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수많은 우연성으로 이루어진 생명은 아직까지는 “피할 수 없는 열역학적 평형의 순간을 무한정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거칠고 난폭한 물질 ii”일지는 모른다. 혹 “생명은 죽음에 저항하는 기능들의 총체 iv”이거나 생명체 안에는 필연적으로 “생명의 창조 혹은 조직적 합성 v”이나 “죽음 혹은 유기적 분해 v”라는 두 위계의 현상들만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폴 데이비스의 설명처럼 ‘자연에는 살아 있는 계를 더 복잡하게 만들어 거대한 뇌와 지성이 출현하게 만드는, 심오한 법칙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만약 생명의 발생 가능성이 무한한 별(7X10²²)과 같다면 생명은 ¨이론¨에 중요한 열쇠일 가능성이 높다. 아말(مسبار الأمل, 희망), 티엔원(天問, 하늘에게 묻는다), 퍼서비어런스(Perseverance, 인내), 우리는 그들이 우리의 기대치를 달성하기를 간절히 바래볼 뿐이다. [생물학자 에른스트 마이어는 생물학을 두 가지 원인으로 나누는데, 하나는 생명의 작동방식을 구조, 기제, 개체발생을 통해 설명하는 ‘근접인proximate causation’과, 다른 하나는 생명의 진화적 설명, 또는 자연선택과 계통발생을 통해 그 역사를 설명하는 ‘궁극인ultimate causation’이다. “생물학의 두 원인 중 하나인 근접인은 생리학과 병리학 연구의 지침서로 훌륭하게 작동한다. 궁극인은 의학의 핵심 주제인 생리학과 병리학에서는 원인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궁극인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iii” 이렇게 두 갈래로 분리된 생물학은 각자의 길을 걸으며 독자적인 연구를 지속했으나 진화생물학은 생리학적 기제를 등한시했고, 생리학은 진화적 기원을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인간유전체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를 기원으로 발생학에서 구조유전자가 발견되어 생물의 다양성을 형성해가는 과정을 연구하는 진화생물발생학이 기원하게 된다. 그리고 여기서 발전해 나온 것이 ‘생명의 기원’에 관한 연구를 다루는 화학진화Chemical Evolution다. 그 외에도 생물지리학은 생물 분포와 그것의 변천 관계를 연구하는 학문이고, 분자생물학은 분자 수준에서 생명 현상을 이해하는 학문이며, 행동유전학은 유전자의 발현과 동물의 행동 사이의 연관을 연구하는 학문이고, 진화유전학은 유전자의 다양성에 의해 생겨나는 유전자와 유전형질의 변화가 진화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는 학문이며, 우주생물학은 생물의 탄생과 진화의 과정, 그리고 외계 생명체의 존재 가능성과 기작을 예측하는 학문이다.] 인류가 반드시 생명의 흔적을 찾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인류가 방사성 동위 원소인 고대 플루토늄을 지구나 근처 행성에서 찾아낸다면 그것은 외계 문명이 핵기술을 사용했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또한 관찰되는 별들의 스펙트럼에서 들어나는 패턴이 우리가 예측하는 결과와 다르게 나타난다면 그것은 외계 문명이 핵을 사용한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외계 탐사에서 다각형 기둥 모양의 암석이 발견됐다면 주상절리처럼 화성쇄설물이 급히 식으면서 냉각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자연적인 현상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짐작건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토머스 쿤이 말한 새로운 패러다임인지도 모른다. “요점은 이렇다. 인류에 전혀 다른 영향을 미치게 될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째, 우주가 지적 생명체로 가득 찼다는 것.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에게는 굉장히 신나는 일이며, 인류의 미래는 희망적이다. 두 번째, 지구는 생명이 서식하는 유일한 오아시스라는 것. 우리에게는 굉장히 부담스러운 운명이며, 동시에 이성의 불꽃이라는 소중한 유산을 영원히 보존해야 하는 중대한 사명을 부여받는 셈이다. 세 번째 가능성은, 우주에는 생명이 널리 퍼져 있지만, 우리 외에는 이를 축하할 만한 아무도 없다는 것. 우리 종에게는 좋지 않은 조짐이다. i”  [참고.인용: 「침묵하는 우주」, 폴 데이브스 i, 「생명이란 무엇인가」, 린 마굴리스 & 도리언 세이건 ii, 위키백과, 「플라이룸」, 김우재 iii, 그자비에 비샤 iv, 클로드 베르나르 v]

“철학은 간단없이 향상하려 하면서 과학으로 하여금 물건의 원인 혹은 기원을 향하여 거슬러 올라가게 한다. 철학은 또 과학 외에도 인류를 괴롭히는 문제가 있다는 것, 과학이 아직 해결하지 않는 문제가 있다는 것을 과학에게 가르친다. 과학과 철학의 이와 같은 확고한 악수는 약자에게 유익하다. 서로 향상을 격리하고 서로 껴안는다. 그렇지만 철학과 과학을 결부하고 있는 이 연락이 끊어진다면, 철학은 과학의 지지 혹은 균형을 잃고, 멀리 구름 뒤로 빠져 들어가고, 과학은 이에 반하여 자기의 진로와 향상적 정신을 잃고 타락하여, 정지하거나 또는 정처 없이 방황의 나그넷길을 떠날 것이다. 「실험의학방법론」, 클로드 베르나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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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will find a way?

「침묵의 봄」에서 레이첼 카슨은 인류가 자연이 자연계에 선사한 다양성을 단순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모든 생태계는 유기적으로 연관되어서 인류가 초래한 한 생태계의 문제는 다른 생태계의 문제로 이어져 먹이사슬에 대혼란이 찾아온다고 토로한다. 자연이 행사하는 내재적 견제와 균형 체계를 유지시켜야만 모든 생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데, 인류는 단일작물을 재배하고 필요이상의 화학물질을 사용하여 생태계를 파괴하고 있다는 것이다. 화학물질은 환경의 내재적 저항력, 즉 자정능력을 무너트리고 각 생물 종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방화벽을 악화시킨다. 우리는 해충을 잡기 위해 화학물질을 사용하지만 결국 자극에 강한 내성을 지닌 곤충만 남게되어 생태계에 또 다른 문제를 불러오고 있다. 옐로스톤 국립공원의 늑대 몰살로 인한 생태계 균형 파괴와, 쌀 생산량을 늘리려다 오히려 급격히 줄어들게 만든 중국의 참새 소탕작전 사례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우리가 판다를 지켜야하는 이유는 판다가 배변 활동을 통해 식물 씨앗을 퍼트리며 다른 동물들이 함께 공존할 수 있는 숲 생태계를 형성해주기 때문이다. 대왕판다가 서식하는 숲은 만여 종의 식물과 천여 종의 동물이 공존하는 생태계의 거점이라고 한다. iii 만약 판다가 그골라 곰Grolar Bear과 같은 운명에 처한다면 그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이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금세기말 생물종 50%가 지구에서 사라질 것이라고 한다. 노르웨이령 스발바르 제도의 스피츠베르겐 섬에 건설된 ‘최후의 날 저장고’ 안에는 107만종의 ‘식물’종만이 있을 뿐 멸종을 앞둔 동물을 위한 노아의 방주는 그 어디에도 없다. (생물학적 다양성을 보존하는 유전자 보관소들과 동물의 조직, DNA, 그리고 수정란을 보존하는 ‘얼음 노아의 방주Eis-Arche’ 같은 프로젝트들이 있다고 한다. vii) 「침묵의 봄」은 1962년에 출판됐고 인류는 이미 1950년대부터 환경문제와 지구온난화 문제를 파악하고 있었다. 1895년 스웨덴 화학자인 센테 아레니우스가 이산화탄소와 수증기가 지구 기온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문을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1987년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는 0.03%를 넘고 말았다. 석유기업과 석유를 이용한 대기업의 로비가 국가라는 ‘정치적인 주체’를 설득하여 환경 이슈를 군중으로부터 잠재웠고, 기후위기가 거짓이라는 날조된 연구가 우리로부터 그 심각성을 외면하게 만들었다. 산업화에 따라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밀림이 개방되어 감염성질환(Coronaviruses)이 생겨났고, 온도가 상승하면서 빙하와 영구동토층이 녹아 그 안에 있던 박테리아와 바이러스가 인류에 노출되었다. 현재 북극의 빙하에는 수백만 동안 개봉된 적이 없는 질병들이 갇혀있고, vi 시베리아의 빙하에는 천연두와 신페스트균 같은 수많은 질병들이 갇혀있을 것이라고 과학자들은 추측하고 있다. 레비 스토로스가 지적한 바 숲을 없애고 농업을 시작한 곳은 먹이사슬에 얽혀있는 수많은 야생 동식물의 서식지를 파괴했다. 그는 인류가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을 부르고, 자원고갈과 함께 아름다운 자연의 풍광을 약탈했다고 말한다. 이제 우리가 바라보는 풍경이란 우리의 욕구와 필요에 의해 복종된, “하나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마치 야외의 공장과 같이 돼버린 자연 i”이다. 문명은 생명에 유익한 환경만을 파괴한 것이 아니라 야생동물의 거주지와 표토를 무참히 짓밟았고, 결국 자연이 지닌 야성적인 모습과 그것을 통해 얻을 수 있었던 청량감을 이내 모두 소멸시켜 버렸다. “지구의 평균온도가 1° C 상승하면 북극의 얼음이 녹는 속도가 빨라져 북극곰이 멸종 위기에 놓인다. 2° C 올라가면 그린란드 전체가 녹아 마이애미, 맨해튼이 바다에 잠기고, 열사병으로 사망하는 환자들이 수십만 명으로 늘어난다. 3°C 오르면 지구의 폐 아마존이 사라진다. 4° C 오르면 높아진 해수면 상승으로 인해 뉴욕이 물에 잠긴다. 5° C 이상 오르면 정글이 모두 불타고 가뭄과 홍수로 인해 거주 가능한 지역이 얼마 남지 않는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게 된다. 평균 온도가 6° C까지 오르면 생물의 95%가 멸종한다. ii” 그린란드와 남극대륙의 빙하가 모두 녹으면 해수면은 70m 높아지고 바닷가에 있는 도시들은 모두 수장된다. v 빙하가 감소하면 마그마에 가해지는 압력이 줄고, 그리하여 화산이 폭발하면 더 많은 이산화탄소가 분출되는 악순환의 상황으로 치닫는다. 현상태가 유지되면 1.5° C가 오르기까지에 우리에게 남은 시간은 11년 249일이고 iii, 우리에게 주어진 ‘탄소 순 배출 0의 목표’는 6년 221일 안에 달성되어야 한다 iv. 인류가 아무리 환경을 망쳐놓아도 지구는 앞으로 수백만 년 유지될 것이고, 지질구조판은 자생의 능력으로 인류가 무분별하게 자원을 낭비하는 과정에서 생산한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정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때까지 생명이 지구에 남아있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주어진 자원을 무분별하게 낭비하는 것은 경쟁자가 없는 생명체에게 흔히 나타나는 성향이다. 실험용 페트리 접시에 박테리아를 넣어두면 음식과 에너지를 마구 소모하다가 자원이 고갈되면 모두 굶어죽는다. 여기에 이유 같은 것은 없다. 살아가는 방식이 원래 그렇다. v” [참고.인용: 「표토와 문명」, 「침묵의 봄」 - 레이첼 카슨, 「인류학 강의」 - 레비 스트로스, 「슬픈열대」 - 레비 스트로스 i, 「그레타 툰베리의 금요일」,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iii, 「6도의 멸종」 ii, climateclock.net iii, climateclock.world iv, 「모든 것의 기원」, 데이비드 버코비치 v, 「2050년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vi, 「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인간의 종말」, 디르크 슈테펜스, 프리츠 하베쿠스 vii]

지구에 도달하는 상당량의 태양복사에너지는 지구 표면에서 반사되어 우주로 방출되거나 대기층에 흡수되어 지구의 에너지 균형을 맞춰준다. 그런데 방출되고 남은 에너지는 나가지 못하고 우리가 생활하는 대류권과 오존층이 자리한 성층권에 머물머 순환되는 현상을 만드는데, 이것을 ‘온실효과’라고 말한다. 지구의 대기권은 대류권, 성층권, 중간권, 그리고 열권으로 나뉜다. 지구에 대기가 없거나 지구의 대기가 금성이나 화성처럼 앏다면 낮에는 너무 덥고 밤에는 영하 100° C까지 내려갈 것이다. 대기권의 공기는 질소, 산소, 아르곤, 이산화탄소, 메탄, 수증기, 오존, 아산화질소로 조성되어 있으며, 수증기와 이산화탄소와 같은 이종의 다원자 분자들은 적외선을 흡수하나 산소, 질소, 그리고 아르곤과 같은 동종의 이원자 분자들은 적외선을 흡수하지 않는다. 온실효과는 비닐로 만든 온실에서 작물이나 화초를 키울 때 사용되는데, 낮동안 얻은 태양에너지가 모두 방출되지 않아 추운 밤에도 비교적 높은 실내온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 현상의 주원인이 되는 기체들로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이 있다. 지구의 탄소순환Carbon cycle은 ‘해수면 온도의 변화, 화산 폭발, 지진, 암석의 풍화, 식생의 분포, 생물종들의 대규모 멸종 및 출현이 주요 요인 i’이고, 지구의 인위적 탄소순환은 ‘화석연료의 사용, 대규모 산업활동, 가축의 대량 사육 등이 주요 요인 i’이다. 마그마에는 다량의 이산화탄소, 메탄 등의 온실가스들이 있는데, 대부분 생명체와 생명체들이 배설한 유기물질들이 퇴적되어 그 일부가 되고, 생명체들이 호흡하고 배출하는 이산화탄소 또한 물에 녹아 마그마의 일부가 된다. 인류는 최근들어 너무나 많은 화석연료와 천연가스들을 연료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것들이 연소되면서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고 대기권에 대책없이 방출되어 과다해진 온실효과로 지구의 온난화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또한 인류는 먹거리를 위해 대형 가축의 대량 사육을 하는데, 이 가축들의 생명활동에서 생긴 대량의 메탄이 대기 중으로 배출되어 화석연료로 인해 데워진 대기를 더욱 뜨겁게 데워 온난화 현상을 가속화시킨다. 기온이 높아지면 산불은 더 자주 발생하고 더 많은 수증기 발생으로 온실가스는 커져가며, 바다 역시 열을 덜 흡수하고 적어진 산소양으로 인해 식물성 플라크톤은 줄어들고, 바다 먹이사슬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 탄소를 흡수해 산소를 내뿜는 역할을 하던 플라크톤이 줄어들면 더 많아진 탄소로 인해 기온이 더욱 상승하는데, 이것을 기상학자들은 ‘기후 되먹임’climate feedback이라고 한다. 또한 폭풍해일을 막아주는 산호초는 전 세계 해양 생물 4분의 1을 지탱해주는 데, ii 해수 온도가 올라가면 산호에게 에너지를 공급하는 황록공생조류가 사라진다. 이미 그레이트배리어리프의 절반은 자취를 감췄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의하면 지구상에 존재하는 물 가운데 0.007%만 70억 인구가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온도가 1° C 올라가면 가뭄이 발생해 수많은 대도시들은 지표 아래의 대수층aquifer에서 물을 꺼내와야 한다. 문제는 이 대수층이 형성되는데 수백만 년이 걸린다는 것이다. 현재 밀 1kg을 생산하는데 물 1500L, 쌀 1kg에 3400L, 그리고 쇠고기 1kg에 1만 5000L가 사용된다. 또한 대기 중 이산화탄소는 비에 용해되어 지상으로 떨어져 물의 흐름을 따라 이동하며, 메탄, 일산화탄소, 그리고 탄소 역시 물의 흐름을 따라 이동한다. 알베도Albedo는 물체의 반사율을 뜻하는데, 모든 물질은 저마다 다른 반사율과 비열을 가지고 있어서 토양의 종류, 해양, 빙하, 산림의 종류, 건축물, 경작지에 따라 태양복사에너지를 반사하는 양이 달라진다. 알베도 변화에 따라 지구의 기후가 변하는데, 산림은 온도를 낮추는 데에 많은 기여를 하고 이산화탄소 또한 흡수해주는 고마운 존재다. 대도시에서 다량으로 발생하는 먼지는 일정한 고도에서 돔Dome을 형성하여 대류현상을 일으키는데, 이 먼지돔은 도시 내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가두고 도시를 더욱 뜨겁게 달구어 열섬현상Heat island를 가져온다. 이 또한 지구의 온난화 현상에 기여하게 된다. 열섬현상을 피하는 방법은 싱가포르처럼 친환경도시를 건설하는 것인데, 싱가포르는 1970~80년대부터 꾸준히 친환경정책을 추진해왔다. “지난 1000년의 기간 중에서 약 800년 이상은 지구 표면의 온도 변화가 급격한 등락 없이 대체로 평탄한 추세를 나타냈지만, 최근으로부터 약 200년도 안 되는 기간 동안은 지구 표면의 온도가 급격하게 상승하고 있었다. i” 조사에 의하면 7만 3500년 전 인도네시아의 토바 화산 폭발로 인해 이산화항이 생성되어 황삼염 에어로졸이 태양에너지를 반사해 지구의 평균 온도를 대략 12° 하강시켰다고 한다. 소행성 충돌 같은 자연현상 또한 지구온난화를 저지시킬 수 있겠지만, 항공우주국이 할 수 있는 것은 아직까지 관측과 경보 시스템 작동에 불과하다. [참고.인용: 「인류를 향한 경고, 기후변화」, 차우준 i, 위키백과, 「2050년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ii, 「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당신들은 항상 아이들이 우리의 미래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을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겠노라고 말합니다. 그 말은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 말처럼 생각도 그렇다면 우리에게도 제발 귀를 기울여 주세요. 우리는 당신들의 과장된 열성을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당신들의 선물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이 우리를 데리고 떠나는 패키지 투어도 원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의 취미나 무한한 자유 또한 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오직 당신들 주위에서 긴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지속 가능성 위기를 당신들이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는 일뿐입니다. 당신들이 이제는 우리가 처한 현실에 대하여 솔직하게 말하기를 원합니다. 「그레타의 편지」”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표한 ‘해양 및 빙권 특별보고서’에 따르면 2050년에 3억 명이 사는 지역이 침수피해를 당하고, 2100년 쯤이면 해수면은 1.10미터 상승한다고 한다. 침수가 시작되면 해안가에 자리한 발전소, 항구, 해군기지, 농경지, 양식장, 삼각주, 갯벌, 논두렁 등이 피해를 입게 된다. BBC 연구에 따르면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는 인구 1000만의 도시로, 2050년이면 도시 전체가 물속에 완전히 잠길 것으로 예상하며, 현재 일부 지역은 매해 25cm씩 가라앉고 있다. 키리바시공화국의 경우, 이미 해수면 상승으로 국토의 상당량이 바다에 잠겨 버렸고, 살 곳을 잃은 키리바시 국민들은 피지의 한 섬을 구입해 ‘존엄한 이주’를 강행했다. “나는 카리바시 국민이 난민이 되는 것을 원치 않을 뿐 아니라 난민이라는 개념 자체를 거부한다. 기후변화는 우리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관리를 잘 못해서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에너지를 펑펑 쓴 대가로, 엉뚱하게 수천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평화로운 섬나라가 사라질 위기에 처해 있다. 아노테 통 키리바시의 제5대 대통령과 투발루의 콜로아 타라케 전 총리” 지구 기온이 앞으로 1도 오르면 마이애미, 상하이, 보스턴 같은 해양도시들은 물에 잠기고, 해안 지역의 지하 시설이 침수되어 지하수는 오염되어 버린다. 식용수가 없으면 미국처럼 후버 댐을 짓거나 네덜란드와 같이 바다 방파제를 지어 오염을 방지하지 않는 이상 도시는 붕괴된다. 때론 심각한 가뭄으로 시리아처럼 많은 난민들이 발생할 수 있다. 러시아(8.15억 헥타르)와 케나다(3.47)의 산림이나 브라질의 아마존(4.97) 숲이 많은 양의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지만 이산화탄소를 가장 많이 흡수하는 것은 바다다. 바다가 이산화탄소를 많이 흡수할수록 산성화가 진행되는데, 산성화로 많아진 수소이온은 탄산염이온과 반응해 탄산염이온이 부족해진 갑각류와 조개류들은 껍데기를 만들 수 없어서 자신을 방어할 수 없게 된다. 결국 바다 생태계 파괴가 일어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이야기다. ‘생태용량의 값’에 의하면 인류는 지구가 생산할 수 있는 양보다 많은 자원을 소모하고 있다. ‘생태용량의 값’이란 물, 공기, 토양과 같은 자원에 대한 인류의 수요를 말한다. 그런데 인류는 바다와 숲이 흡수할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양의 탄소를 배출하고, 과도한 토양 활용으로 매년 수십억 톤의 토양이 죽어가며, 한도를 넘어선 어획량과 필요 이상의 산림을 착출하여 적정 수준의 ‘생태용량의 값’을 가뿐히 초과했으며, 2030년이 되면 인류는 지구 2개에 해당하는 자원을 소비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인류는 할당된 ‘생태용량의 값’을 초과하지 않았으나 2000년부터 매년 10달 안에 1년치 생태용량의 값을 초과했으며, 2019년부터 7달 안에 이 값을 초과하고 있다. 한편 코로나 사태로 인해 2020년에는 24일이 늦춰져 지구 생태용량의 값이 8달 22일로 늘어났다. 지구의 기후를 결정하는 것은 대기권, 수권, 암석권, 빙하권, 생물권 등으로 이를 5대 기후계라고 한다. 기후계의 반응 시간은 느려서 현재 이산화탄소 농도는 아직 기온 상승으로 들어나지 않았고, 이를 ‘이미 저질러진 온난화’라고 말한다. 지금 우리에게 관찰되는 지구온난화는 수십 년 전 온실가스 농도의 반응이다. 따라서 우리가 강력한 조치를 취하여 탄소 중립 목표를 달성해도 기후변화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우리가 하루에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은 35만 개의 원폭 에너지와 같고, iv 매일같이 대기에 쏟아진다. 환경문제의 주원인 중 하나가 패션인데, i 수질오염의 20%, 바다에 유입된 미세 플라스틱의 20~35%, 온실가스 배출량의 최소 6% 이상을 차지한다고 한다. 세계식량기구FAO에 따르면 축산업은 온실가스의 18%를 배출한다. 식품별로 온실가스 배출량을 보면 양고기와 소고기가 가장 높은데, 양과 소는 소화 과정에서 메탄을 배출하는 반추동물이기 때문이다. 한편 2018년 소Beef & Buffalo가 섭취한 곡식의 양은 대략 7억 157만 톤v이다. 대기를 오염시키는 온실가스 전체 배출량의 절반은 전 세계 인구의 10% 해당하는 부유한 사람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인지상정, 나머지 90%도 부유한 사람들의 윤택과 품위를 원할 것이다.) 지구의 온도상승은 산불을 일으키거나 가뭄으로 이어져 폐허가 되어버린 육지는 식량문제를 불러오고, 해양의 많은 양의 물들을 증발시켜 해양상공에 수증기를 모아 강력한 태풍이나 거대한 허리케인같은 열대성기압을 형성해 도시와 농경지를 처참하게 파괴한다. ii 엘리뇨와 라니냐같은 이상 기상 또한 지구의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어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이같이 불청객처럼 찾아온 태풍과 홍수는 “농작물 경작지의 침수, 축사의 파괴, 과수원 과실들의 낙과, 대홍수로 인한 변질된 식량 ii”으로 이어진다. 국제재해경감전략기구UN-ISDR의 보고서에 의하면 1995~2015년 사이 발생한 홍수, 태풍, 쓰나미는 총 6,457건으로 60만 6000명이 사망했으며, 1995~2015년 사이 전 세계에서 내륙형 홍수로 23억 명이 피해를 입고 사망자는 15만 7000명에 달했으며, 2015년 500년급 폭풍우보다 수천배 강한 허리케인 하비 및 서부지역 산불과 같은 초대형 재해로 인해 3060억 달러의 재산피해가 발생했고, 산불은 엄청난 양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동시 세계적으로 매년 26~60만 명이 산불에서 발생한 연기로 사망하며, 2016년 메릴랜드 주에서는 1000년에 한 번 있을 법한 홍수로 도시는 초토화 됐으며, 2017년 남아시아에서 발생한 홍수로 방글라데시 3분의 2가 물에 잠기고 4100만명의 피해자가 생겼으며, 2018년 태풍 망쿳으로 중국에서 245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고, 2018년 허리케인 왈라카는 하와이 인근의 섬 이스트 아일랜드를 지도에서 완전히 지우는 동시 멸종위기에 처한 몽크바다표범과 푸른바다거북의 서식지를 파괴했고, 1992~1997년 사이 녹은 남극 빙하는 연평균 490억 톤이나 2012~2017년 사이에 녹은 빙하는 연평균 2190톤에 달하며, 그린란드 빙상 역시 매일 10억 톤에 가까운 손실이 발생하고, 앞으로 기온이 계속 올라가면 북극 영구동토층에 묻혀있는 1조 8000억 톤의 탄소, 즉 현재 대기 중 탄소량의 2배 이상이 대기에 대책없이 방출된다. 추가로 2100년까지 북극이 1000억 톤의 탄소를 방출한다고 하는데, 이는 산업화 후 인류가 배출한 전체 탄소량의 절반이다. 나사NASA에 따르면 현재 세계 인구의 90%는 오염된 공기를 마시며, 대기 오염으로 인해 사망하는 숫자는 매년 800만 명 이상이다. 현재의 이산화탄소 농도와 비슷한 과거는 300~500만 년 전으로, 기온은 지금보다 1~2° C 높았고 해수면은 10~20미터 더 높았다. “지금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미래의 언젠가, 우리가 살던 지구와 달리 더 뜨겁고 위험하며 생물학적으로 단순해진 지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당신과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니 애초에 생각이란 걸 하고는 살았는지 궁금하게 여길지도 모른다. iii” [참고.인용: 「두 번째 지구는 없다」, 타일러 라쉬 i, 「인류를 향한 경고, 기후변화」, 차우준 ii, 위키백과,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탄소 이데올로기」, 윌리엄 T. 볼먼,「파란하늘 빨간지구」, 조천호 iv, 사이언스올, 「인간의 종말」, 디르크 슈테펜스, 프리츠 하베쿠스, 「나는 풍요로웠고 지구는 달라졌다」, 호프 자런 v]
  
화석연료를 사용하지 않는 ‘신재생에너지’로는 무엇이 있나. ①태양에너지는 온실가스나 환경유해물질을 배출하지 않으며, 태양으로부터 무제한적인 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다. 하지만 계절이나 지역에 따라 효율성이 떨어지고, 유가가 낮을 경우 경제성이 없다. 또한 집열판 배치에 있어 많은 공간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성이 떨어진다. ②풍력발전은 친환경적이며 무공해 발전방식으로 작동한다. 하지만 바람의 힘을 이용하기 때문에 적절한 시설배치에 있어 장소에 제약을 받는다. 또한 바람에너지의 20~40% 수준 정도까지만 전기에너지로 변환할 수 있고 소음이 크다. ③해양에너지는 조수간만의 차이로 발생하는 조력을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생산한다. 하지만 조력발전으로 인해 염도, 탁도, 영양염류, 중금속 등을 포함한 수질 변화가 일어난다. ④파도의 운동에너지를 이용해 전기에너지를 만드는 파력발전방식도 있으나, 장소의 제약을 받으며 다른 발전방식에 비해 경제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⑤지하 심층부의 열원에서 얻은 고온의 증기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지열발전도 있다. 지열발전 역시 친환경적인 발전방식이나 직.간접적으로 지진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다. ⑥고형폐기물연료, 생활쓰레기고형연료, 생활쓰레기고형연료, 폐타이어고형연료, 폐목재고형연료를 원료로 이용하여 전기에너지를 생산하는 폐기물에너지도 있다. 하지만 폐기물을 분리.선별하고 가공하는데 있어 적지않은 비용이 들고, 환경문제 또한 야기한다. ⑦수소에너지는 온실가스나 환경오염물질이 전혀 발생하지 않으며, 소음이 없고 높은 운용안정성이 있다. 장소에 대한 제약도 없으며, 24/7 가동할 수 있는 효율성을 지니고 있다. 단점은 수증기 변성이나 부분 산화, 또는 전기분해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높은 기술력을 요하고, 백금과 같은 희소금속이 필요하기 때문에 경제성 역시 갖추기 어렵다. 또한 수소는 폭발이나 인화가 높은 물질이여서 관리도 쉽지 않다. ⑧댐을 이용한 수력발전은 친환경적인 에너지 발전이다. 하지만 강 생태계 균형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수질을 악화시킬 수 있으며, 주변 지질층에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세계에서 4번째로 컸으나 순십간에 증발해 버린 아랄해를 통해 인간의 실수가 자연에 얼마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지 새삼 깨닮아야 할 것이다. ⑨바이오매스는 옥수수, 호밀, 볏짚 등과 같은 식물로부터 글루코오스를 추출하여 에탄올을 만든다. 유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폐기물은 비료로 재활용되며, 에너지를 사용하므로써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이미 식물이 광합성을 통해 흡수했던 것이므로 대기에 추가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사실상 0이다. 문제는 1000L의 에탄올을 생산하기 위해서 필요한 옥수수는 대략 13,450개다. 하지만 세계 각곳에서 일어나는 기아나 가뭄을 볼 때 윤리적인 문제가 발생한다. ⑩원자력발전은 많은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으며 무공해이자 친환경 에너지이지만, 관리가 까다롭고 사용 후 방사성 폐기물 처리와 폐로 비용이 만만치 않다. 또한 스리마일원전사고, 체르노빌원전사고, 그리고 후쿠시마원전사고에서처럼 상당한 위험성을 안고 있다. 우라늄 핵분열 과정에서 온실가스가 나오지 않는 것은 사실이나, 우라늄의 채광, 정련, 핵폐기물의 보관, 핵폐기물의 운반, 핵폐기물의 처리 과정에서는 다른 에너지발전에 비해 작지만 온실가스가 배출되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핵반대론자의 요점은 원자력발전에서도 ‘온실가스’가 나온다가 아니다. 핵반대론자는 원자력이 비싸고 비효율적이며 매우 위험하다는 것이다. 지진이나 쓰나미를 대비하기 위한 시설 설비와 보수에 비용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온도가 올라갈수록 원자력발전소에 내부과열을 초래하고, 해수면이 높아지면 해수나 담수를 냉각수로 이용하는 핵발전소 역시 이로부터 안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핵반대론자인 그레고리 야츠코 전 미국 원자력구제위원장이 2020년 5월 18일 워싱턴포스트에 쓴 기고문이다. “사고 8년 후 50기의 일본 핵발전소 중 10기 이하만이 가동을 재개했지만, 일본의 탄소 배출은 사고 이전 수준보다도 낮게 떨어졌다. 일본이 에너지 효율과 태양광에서 이룬 큰 진전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럼 이번엔 가이아 이론을 주창한 찬핵론자의 의견을 살펴보자. “러브록은 IPCC 보고서를 인용하며 점차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를 막을 방법으로 재생에너지를 확대해야 하지만, 지금 당장 이용할 수 있는 에너지원으로 핵발전을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칼럼에서 핵에너지에 대한 반대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소설, 환경 로비, 언론이 제공하는 비이성적인 두려움에 바탕을 두고 있다며, 방사선으로 인한 ‘사소한’minute 위험 때문에 괴로워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i” 현재 세계에는 447기의 핵발전소가 있는데, 그 중 3분의 2는 2050년을 전후로 폐로되므로 이것들을 대체해 새로 지어야하는 발전소의 숫자는 상당히 많다. “태양은 88분당 470엑사줄(1엑사줄은 1018줄에 해당한다. - 옮긴이)의 에너지를 지구로 방출하는데, 이는 세계의 모든 인구가 1년 동안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과 같다. 만약 우리가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에너지의 1퍼센트의 10분의 1이라도 포획할 수 있다면, 현재 글로벌 경제 전역에서 사용하는 에너지의 여섯 배를 얻는 셈이 된다. 태양 복사열과 마찬가지로 바람 역시 강도와 빈도는 다양하지만 지구상 어디에나 존재한다. 전 세계 풍력 발전량에 대한 스텐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전 세계 가용 풍력의 20퍼센트만 수확해도 현재 글로벌 경제를 운용하는 데 들어가는 것보다 일곱 배나 많은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i” [참고.인용: 「인류를 향한 경고, 기후변화」, 차우준, 「기후위기와 탈핵」, 탈핵신문, 「글로벌 그린 뉴딜」, 제러미 리프킨 i]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저장하는 기술CO₂ Capture and Storage은 온실가스를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하고 활용하는 기술CO₂ Capture and Utilization은 차세대 기술로써 CCS보다 더 많은 장점이 있다.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기술은 흡수Absorption, 흡착Adsorption, 분리Separation, 광합성 생물의 이용Biological  등을 사용한다. 이산화탄소를 저장하는 기술은 ‘해양에서 처리하기’, ‘지중에서 처리하기’, ‘바이오매스와 연계하여 처리하기’ 등으로 구분된다. 포집된 이산화탄소를 해양의 지각에 저장할 수 있는데, 예를 들어 천연가스를 채굴하고 얻은 공간을 이용하는 경우다. 지중에 저장하는 경우 역시 석유나 가스가 고갈된 저류암을 사용할 수 있다. 광물저장과 셰일오일.가스 채굴 역시 각광받고 있는 저장기술이다. 보통 셰일오일.가스를 채굴하기 위해 퇴적암 위로 밀어 넣은 시추관에 물을 주입하는데, 수질오염을 발생시킬 수 있어서 이때 물 대신 이산화탄소를 사용.저장하는 것이다. 광합성 생물을 이용해 저장할 경우, 광합성 생물 양식장을 만들어 미세조류에 햇빛, 물, 그리고 이산화탄소를 제공한 후 바이오에너지까지 얻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참고.인용: 「인류를 향한 경고, 기후변화」, 차우준]

비엔나협약은 1985년 세계 각국이 비엔나에 모여 오존층 보호에 관한 선언적인 협약으로 실요성 있는 규제는 포함되지 않았다. 그 후 학자들과 시민단체들을 중심으로 기후변화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어 1988년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가 발촉된다. 몬트리올의정서는 1989년 오존층을 파괴하는 염화불화탄소의 생산과 사용을 규제하려는 목적에서 발효한 국제협약이다. 그리고 1990년 유엔 총회에서 기후변화에 관한 협약을 위해 ‘국가 간 협상위원회’INC가 설립된다. 1992년 리우회의에서 채택된 기후변화협약의 정식명칭은 ‘기후변화에 관한 국제연합 기본협약’UNCCC이다. UNCCC는 역사적 책임이 있는 국가들에게는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할 의무를 주는 한편, 책임이 없는 국가들에게는 감축활동에 자발적으로 참여하거나 기후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했다. 그러나 온실가스 감축을 어떻게 이행해야 하는지는 규정하지 않았고, 구체적인 의무는 교토의정서에서 채택된다. 교토의정서는 2005년 지구 온난화를 규제하고 방지하기 위해 발효한 기후 변화에 관한 국제 연합 규약의 교토 의정서다. 2005년부터 실시된 온실가스 배출권 게래제는 기업들에게 온실가스 배출량을 할당하여 여분을 다른 기업과 거래하도록 하는 제도다. 세계 각국의 시민들이 배출권거래제를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나 상당수의 기업들이 이의를 제기하거나 제소하고 있다. 그 후 2015년 유엔 기후 변화 회의에서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 2° C로 유지하고 1.5° C로 제한하기 위해 채택된 조약이 바로 파리협정이다. 이 협정을 통해 150개 국가가 온실가스 배출량의 90%를 감소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몬트리올의정서는 교토의정서나 파리협약에 비해 세계 각국의 적극적인 협조를 받아 성공적으로 목표를 달성했다. 염화 플루오린화 탄소CFC의 사용으로 인한 오존층의 파괴는 전 세계가 직접 목격했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해수면 상승, 극심한 가뭄, 폭염, 폭우, 강력한 태풍, 그리고 지구온난화 때문에 발생하는 이상기상들은 모두에게 위협이 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서로의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기후변화협상은 언제나 순조롭지 못하다. 원인은 탄소중립 목표에 동의한 국가들이 협약을 이행할 경우 100조 달러에 달하는 화석연료 ‘좌초 자산’stranded asset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 말은 방대하기 짝이없는 매장량의 석유와 가스가 말 그대로 태울 수 없는 상태가 되고, 화석연료와 관련이 있는 정유, 석유화학, 조선, 자동차 산업, 철강, 시멘트, 플라스틱 제조업과 같은 산업은 친환경 재생에너지 기술과 산업으로 기수를 돌려야하기 때문이다. “화석 경제의 진짜 연료는 석유가 아니다. 석탄이나 천연가스도 아니다. 실은 돈이 진짜 연료다. 그리고 그 연료는 은행과 투자자에게서 나온다. 그들의 자본이 없으면, 어떤 광산도 개업할 수 없고 어떤 자동차 공장도 설립할 수 없다. 스스로 원한다면 그들은 세계를 더 녹색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iii” 곧 지구를 살리기 위한 크고 작은 움직임이 시작됐다. 2018년 빌 드 블라시오 뉴욕 시장은 뉴욕시의 연금 기금을 화석연료 산업에서 분리시킨다고 발표한다. 2018년 7월 아일랜드는 전 세계 화석연료 산업에 투자한 3억 1800만 유로를 강제 회수하는 법안을 통과 시켰고, i 2019년 3월 서유럽 최대의 석유 생산국인 노르웨이는 자국의 국부펀드를 석유 및 가스 회사로부터 분리하겠다고 발표한다. i 2018년 한국 교직원 연금과 공무무원 연금 시스템은 220억 달러의 석탄 프로젝트 투자를 중단하고 회수한 금액을 재생에너지에 재투자하겠다고 발표한다. “뉴욕시는 미국의 주요 도시 가운데 연금 기금을 화석연료에서 분리한 최초의 도시가 됨으로써 미래 세대의 보호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우리는 기후변화와의 전쟁을 화석연료 회사들과의 전쟁으로 확대할 것입니다. 그들은 기후변화의 영향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대중을 오도했습니다. ii” 6조 5000억 달러를 운용하고 있는 블랙록 래리 핑크 회장은 40조 달러를 보유하고 있는 기후변화Climate Action 100+ 클럽에 가입해 온실가스 배출에 대한 환경 개혁을 요구하고 있다. iv “우리는 기후 리스크가 투자 리스크임을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또한 기후 전환은 역사적인 투자의 기회를 제공한다고 믿는다. 화석연료로 25% 이상 매출을 올리는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하라.” [참고.인용: 「인류를 향한 경고, 기후변화」, 차우준, 위키백과, 「글로벌 그린 뉴딜」, 제러미 리프킨 i, 빌 드 블라시오 ii, 위키백과, 나무위키, 「인간의 종말」, 디르크 슈테펜스, 프리츠 하베쿠스 iii, 임팩트온 iv]

World Fossil Fuel Consumption, ourworldindata.org

1960 31,011 terawatt-hours, Silent Spring 
1985 74,036 terawatt-hours, Vienna Convention
1988 80,757 terawatt-hours, UN IPCC
1989 82.382 terawatt-hours, Montreal Protocol 
1992 83,961 terawatt-hours, Rio de Janeiro Earth Summit
2005 110,459 terawatt-hours, Kyoto Protocol
2015 129,517 terawatt-hours, Paris Agreement
2019 136,761 terawatt-hours, 85% of World Energy

World Beef & Buffalo Production, ourworldindata.org

1961 28.76 million tonnes, Silent Spring 
1985 51.3 million tonnes, Vienna Convention
1988 53.54 million tonnes, UN IPCC
1989 53.05 million tonnes, Montreal Protocol 
1992 55.1 million tonnes, Rio de Janeiro Earth Summit
2005 62.42 million tonnes, Kyoto Protocol
2015 67.98 million tonnes, Paris Agreement
2018 71.61 million tonnes, Livestock produces 18% of Greenhouse-Gases 

“2016년에는 파리기후협약이 체결되면서 기온 상승을 2도 이내로 유지하는 것을 전 지구적인 목표로 삼았으며 언론은 2도 수준의 온난화가 최악의 시나리오라도 되는 것처럼 보도했다. 하지만 불과 몇 해가 지나지 않았음에도 협약의 요구 조건을 제대로 이행하는 산업 국가가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2도 상승이라는 기준은 놀랍게도 최상의 시나리오에 가까워 보이며, 2도 상승을 넘어서는 끔찍한 미래가 엄연히 존재하는데도 그런 전망은 대중의 시야에서 교묘히 숨겨지고 있다. 다른 최신 보고에 따르면 파리기후협약에서 협의한(하지만 아직 어디서도 지켜지지 않은) 온갖 약속을 즉시 시행해 온실가스 배출 문제에 당장 조치를 취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약 3.2도의 기온 상승, 즉 산업화 이후 상승한 수치의 3배에 해당하는 기온 상승이 뒤따를 것이다. 「2050 거주불능 지구」, 데이비드 월러스 웰즈]”

슈뢰딩거가 당신에게 판도라의 상자를 건넸다. 어떻게 할 것인가. 

405 -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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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efresher :

In Search of Lost Time

2020. 10. 10. 05:51 from 隨筆

404  - 1
  
「피네간의 경야」, 그는 하얗게 밤을 지새우다. 오리온의 신탁으로 까만 밤 하늘을 모두 집어 삼키려드는 시리우스가 빛나기에, 어둠에 소록소록 스며든 우리는 「한 여름밤의 꿈」을 노래하고자 한다. 그가 베누스의 물푸레나무 지팡이로 천공에 은빛의 비옥한 은반을 그린다. “즐거움을 위해 쓰라.” 그와 장단을 맞추어본다. “헤이-호, 헤이-호 노래하라. 푸른 {호랑가시나무}에게 우정은 위선이고 사랑은 어리석을 뿐.” 장작이 타들어가는 소리가 오베론을 거슬릴가보다. 그러나 시인은 멈추지 않는다. “이 향기 속, 이 정원에선 꾀꼬리도 밤새 노래부르겠지. 허나 밤에 일어날 그 많은 것을 보려면은 아직도 한참을 기다려야 할 걸. 왜냐하면 이 {후로라}의 계절은 희랍 사람들이 말하듯이 생과부 아우로라가 미청년 헤스페루스에 미쳐 몸이 달아오를 때거든. 뒤를 돌아 봐! 그녀가 오고 있어! 쏜살같이! 꽃 만발한 긴 들판 가로질러! 여기서 번쩍 저기서 번쩍. 그야말로 밤을 휘몰고 있구나. 날렵한 빨간 신을 신고 해와 더불어 달아난 그를 쫓아가 잡으려 미친 듯이 달려가는구나. 저 사랑의 신음소릴 너 느끼지 않느냐? 「서동시집」, 괴테" 
  
¨현재¨는 미래를 향하는 과거, 과거의 결과는 미래의 예상. 후설이 말하고자하는 것, 우리는 결코 현재를 적을 수 없음에, 그것은 단지 가로방향의 과거와 세로방향 미래의 표상이 된다. 쓰고자 하는 현재가 과거지향retention이거나 미래지향protention이거나 '의식의 흐름'은 도표에서 시간을 지워버린다. “현재는 만약 언제나 존재하는 현재이고 과거로 이행하지 않으면, 이미 현재[시간]가 아니고 영원이다. 그리고 현재의 시간은 마음(anima)속에 아로새겨진 것으로서, 과거의 현재인 기억(memoria), 현재의 현재인 직관 또는 지각(contuitus), 미래의 현재인 기대(expectatio)로 이루어진다.  「고백론」” 시간(빛)이 사라지면 마들렌을 즐기는 ‘의식의 흐름’은 여유롭다. “바바번개개가라노가미나리리우우뢰콘브천천둥둥너론투뇌뇌천오바아호나나운스카운벼벼락락후후던우우크! 「피네간의 경야」” 



“일본인은 최고로 싸움을 좋아하면서도 얌전하고, 군국주의적이면서도 탐미적이고, 불손하면서도 예의 바르고, 완고하면서도 적응력이 있고, 유순하면서도 시달림을 받으면 분개하고, 충실하면서도 불충실하고, 용감하면서도 겁장이고, 보수적이면서도 새로운 것을 즐겨 받아들인다. 「국화와 칼」” 루스 베네딕트가 말하는 천황의 ‘국화’는 지고지순한 평화고, 킬빌Kill Bill을 잘못 떠올리는 사무라이의 ‘칼’은 우리가 생각하는 잔인함이 아닌 ‘이상’이 아닌 것에 절대 굴복할 수 없는 의지를 뜻한다. 감사의 뜻을 나타내는 ‘카타지케나이’かたじけない 란 지금껏 갈고 닦은 자신의 ‘정신’이 모욕을 당한 만큼 면목이 없음을 설명한다. 여기 그는 나에게 ‘온’정을 베풀었으나 나는 그에게 은혜를 되값을 기회가 없었으므로 나는 그에게 사죄해야 한다는 깊은 의미가 담겨있다. 온恩을 받는다는 것은 일본인에게 채무이상의 무거운 부담이다. 일본인에게 비겁함이란 (신적인) 천황을 위해 목숨을 받치지 못한 부상병이 ¨정신을 버리고 물질적¨ 치료를 받는 것과 같다. 일본의 제국주의란 일본이 세계 ‘질서의 지도자’로써 선도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시작한다. (이것은 FACT일 뿐이다.) 의외로 사무라이는 ‘정의’를 위한 절제가 있고 절도가 있다. 과거 일본 카스트 제도 중상류에 속하는 사무라이는 노동하지 않고 봉건 영주, 즉 다이묘로부터 녹을 받는다. 일본의 카스트는 황실, 궁정귀족, 무사인 사무라이, 농민, 공인, 상인, 그리고 천민계급으로 나뉜다.  여기서 우리는 새로이 배운 ‘신’의 존재를 생각하자. 일본인에게 천황은 ‘신’적인 존재이므로 감히 거역할 수는 존재다. 가미카제神風가 그 신념의 결과이고, 비겁함을 거부하는 일본병사에게 항복이란 있을 수 없다. 카미카제를 천황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여기는 일본병사에게 고해성사는 없다. 미군의 항복자와 전사자의 비율이 보통 4:1이라면 미얀마 전투에서 일본군의 포로와 전사자의 비율은 1:120이였다. 
  
조선의 마지막 선비이자 시인 윤동주의 자취를 조금 적고자 한다. “이런 친구도 친구들에게 거부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동주 자네, 시 여기를 고치면 어떤가’ 하면 그는 응해 주는 때가 없어요. 조용히 열흘이고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곰곰이 생각해 한 편의 시를 탄생시키죠. 그때까지는 누구에게도 그 시를 보이질 않지요. 또 하나 그는 한 여성을 사랑하되 이 사랑을 그 여성에게도 친구들에게도 끝내 고백하지 않았어요. 그런 사랑을 제 홀로 간직한 채 고민도 하면서 희망도 하면서...... 쑥스럽다 할까요? 어리석다 할까요? 그는 간도에서 나고 이국 하늘 후쿠오카의 감옥에서 꽃잎처럼 져 갔습니다. 「윤동주, 상처 입은 혼」” 피아니스트 브와디스와프 슈필만이 연주한 「쇼팽의 발라드 1번 G 마이너」에 취한 빌헬름 호젠펠트 대위가 있었고, 후카다 쿠미는 하늘과 바람과 별의 시인 윤동주의「사랑스런 추억」에 빠졌다. “봄이 오는 아침, 서울 어느 조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한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떼가 부끄러울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 주어, 봄은 다 가고 - 동경 어느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선비라는 말은 영어로 a scholar, a learned man, a man of virtue다. 선비란 덕, 중용, 그리고 도를 지키는 사람이자, 이이가 말했듯이 학식이 있는 지식인이다. 또한 선비란 학식만이 아닌 정의를 구하고 겸손한 마음과 행동을 겸비한 사람이다. 사무라이, 즉 무사는 선비와 비슷하다.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 존 F 케네디 대통령, 그리고 보이스카우트 창립자 로버트 파월 등에게 영향을 준 「무사도」를 보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무사는 주군에게 충성을 다해야 한다. 무사는 부모에게 효도를 다해야 한다. 무사는 스스로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 무사는 아랫사람에게 인자하게 대해야 한다. 무사는 사적 욕심을 버려야 한다. 무사는 부정부패를 증오하고 공정성을 존경해야 한다. 무사는 부귀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겨야 한다. 무사는 패배한 적에게 연민의 정을 베풀어야 한다.” 성리학을 참고삼는 선비는 과거 시험을 합격해 조정에서 벼슬을 받아 사대부가 되는 것이 목표라면, 손자병법을 따르는 사무라이는 섬기는 주군에게 영지를 얻어 성을 쌓아 일국일성의 주인이 되는 점이 선비와 다르다. *참고.인용: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 호사카 유지】 
  
“올바른 도리, 사람이 쫓아야만 할 길”, 사무라이가 외치는 ‘기리義理처럼 쓰라린 것은 없다’는 말은 쉰들러의 감정과도 흡사하다. 다윈이 옮다면 ‘사자’는 후천적으로 습득한 너무 인간적인 체면때문에 기리를 괴로워하는 셈이다. 분명 나쁜 사자는 없다. 한편 훌륭한 사무라이는 모욕에 해당하는 기리 또한 받드시 갚아야 한다. 중국철학과 대조되는 악의에 대한 보복은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간단히 오른빰을 맞은 예수가 상대의 오른빰을 때려 응징하는 것이 사무라이식 올바른 도리가 행해지는 대칭적 우주다. 서로 경쟁하는 것은 치욕과 모욕을 부르므로 자제하고, 계획이 반드시 성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승부에 나서지 않는다. 사무라이에게 상대의 정당한 비방은 서양문화에서 흔히 여기는 유희와 친교가 아니며, 그같은 도전적 발언은 일종의 기리로 이어지는 것이다. 자살, 자결(하라키리腹切り)은 비극적 현실의 도피가 아닌, 명예롭지 못한 현실을 자위적 폭력으로 응징하는 훌륭한 기리이자 사회적 모범이다. 이것은 로미오와 줄리엣의 즉흥적 감성자살이 아니다. 
  
헤겔의 독일인과 헤세의 독일인을 살펴보자. 근사하다. 히틀러의 독일인을 떠올린다. 생각하기 싫다. 그럼 제임스 조이스의 설명(율리시스)이 합당한가. 독일을 방문하는 이유가 니체의 독일 때문인가, 아니면 바그너의 독일 때문인가. 목적은 신들의 황혼인가, 아니면 한 여름밤의 꿈인가. 신이 죽었는가, 혹 죽어 가는가. 사실 사람들이 독일에 방문하는 이유는 oktoberfest 때문이다. 카터 핍스는 인종, 문화, 그리고 여러 요소들이 융합되는 멜팅팟Melting Pot에서 각자의 세계관 사이에 차이가 생기고 따라서 그는 “진화는 미래를 결정된 것이 없는 오픈 엔드”로 비유한다. 그는 “우리가 다른 종들의 관점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의식 상태가 어떨지 생각해보며, 다른 종들의 존재를 고려하면서 인간의 활동을 거기에 적응시키기 시작”했다고 알린다. 단 진화되어 가는 것이 아니다. 환경의 변화 속에서 변이가 자리를 잡아가는 것이다. 카터 팝스가 지적하듯 진화는 자연선택과 임의적 돌연변이가 합쳐져서 현재에 도달하는 것이고, 변이는 주어진 환경을 선택하는 진화적 생물일 뿐이다. 「생명의 새로운 과학」의 저자 셸드레이크는 복잡한 유기 화합물 분자들이 어떠한 특정 패턴으로 결정화되는 이유-수렴진화를 생각해 보자-는 그 물질이 이전에도 (우리가 모르는 역사의 한편에) 그런 방식으로 결정화 되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이 주장을 반박하는 동시 역설적이게도 평행이론을 바라고 있다. 우리는 장미일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장미여야 하는가.   
  
“어떤 세계관이 특정시대에 확실히 지배적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인류 역사에 걸쳐 지배적인 세계관들이 진화해온 것을 확실히 추적할 수 있다. 하나의 세계관이 특정한 사회를 이끄는 큰 관점이 되고, 그러다가 여러 이유로 이것이 갈라지고, 긴 역사를 거치면서 다른 세계관에게 자리를 내준다. 각 단계에서 드러난 특성들은 거리를 두고 봐야만 명확히 일반화시킬 수 있다. 어느 특정한 사회나 시대의 세부 사항에 너무 물입해서 보면 보편적인 패턴을 볼 수 없다. 「인간은 무엇이 되려하는가」” 



우리는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혹은 일요일에 존재한다. (오늘은 일요일이다.) 시간이 멈춘듯 매우 느리게 간다면 우리는 관측되기 전까지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혹은 동시 일요일 모두에 존재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이것이 양자역학이다. 좀 더 나아가 공상과학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은 Day of Uranos, Day of Neptunus, Day of Ceres, Day of Pluto, Day of Haumea, Day of Makemake, 또는 Day of Eris이다. 존재는 시간에 비례될 때 한곳에 머물게 된다. 만약 당신이 슈뢰딩거라면 무엇을 관측할 것인가. “영원한 흐름은 언제나 양쪽 영역(과거와 미래)을 통해 그 안에서 모두를 압도하면서 모든 시대를 이끌고 간다. 릴케, 두이노의 비가” 카를로 로벨리는 열역학 법칙을 이용해 ‘이 세상의 미래는 현재의 상태에 따라, 즉 과거의 상태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현재에 의해 결정된다’고 설명한다. 쉽게 사물을 미시적으로 관찰하면 과거와 미래의 차이가 사라진다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시간이 흐르지 않는” 완전한 ¨앎¨이다. 알아가며 ¨삶¨을 (미학적으로) 살아갈 때 시간은 과거, 오늘, 미래로 분리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꿈을 알아가는가. 꿈은 오늘인가. 꿈은 시간의 지배에 속하는가.)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서 움직이는 물체는 정지해 있는 물체보다 시간이 천천히 간다. 그 의미는 동시 모든 곳에 존재가능하다는 조건하에 시간은 초월된다는 것이다. 은하계 중심에는 거대 중력장을 만드는 가르강튀아 블랙홀과 같은 초거대질량의 블랙홀이 자리한다. 빛까지 휘게 만드는 거대 중력장 근처에서는 시간은 천천히 흘러간다. 그러나 제 3자인 관찰자의 시간은 빠르게 흐른다. 양자역학을 떠올리는 우리는 잠시 이것을 완전한 (완전하고자하는, 현행 지금,) ¨앎¨으로 부르자.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에서 이 ¨앎¨이 눈(¨삶¨)으로 부터의 봄(¨살아가는 것)¨과 눈(¨삶¨)과 짝을 이루어 색깔(¨미¨)을 출산해 내는 것 사이에서 운동하게 된다고 말한다. 에머슨은 ¨눈¨이 ¨흼¨을 ¨봄¨으로 ¨미¨를 얻어내는 것을 과학의 목적, 즉 자연의 이치를 캐내는 것이라 말한다. 고대 그리스인은 우주를 코스모스라고 불렀다. 「수상록」에서 에머슨은 세계를 코스모스, 즉 미라고 불렀다. 미란 아름다움이다. “새벽은 나의 앗시라아이다. 일몰과 월출은 나의 파포스이고, 상상도 미칠 수 없는 신선경이다. 대낮은 나의 지각과 오성과의 영국이 되고, 밤은 나의 신비한 철학과 꿈의 독일이 될 것이다. 「수상록」” (담배 영기처럼 곧 사라지는 것, 아침이슬처럼 어느새 증발해져 버리는 것, 헛되고 덧없는 것들은 카오스를 위함인가. “자연은 도대체 무엇을 말하고자 하였던가. 물방앗간 뒤에 있는 계곡의 생기 있는 고요에는 아무 의미도 없었던가. 호머나 셰익스피어도 말로써 나에게 재현해 줄 수 없는 어떤 의미가 없었던가. 잎도 없는 나무들은 해질 무렵에 푸른 동쪽 하늘을 배경으로 화염의 뾰족탑이 되고, 별 같은 형상을 한 죽은 꽃덩굴, 서리에 덮여 고갈한 모든 줄기나 그루터기는 이 소리 없는 음악에 무엇인가를 기여한다. 「수상록」”) 「사물과 공간, 1장」에서 후설이 말하는 ‘현행 지금’aktuelles Jetzt은 ¨앎¨이다. ¨앎¨은 ‘과거 지금’과 ‘미래 지금’도 아니며, 주어지지 못하므로 ‘상상되는 지금’ 또한 아니다. ‘곧은 아침 총총히, 늘어진 햇살에 물든 오후 이슬마냥 증발되고, 피곤한 하루 젊은 저녁 노을로 급히 물드는 지금이다.’ 
  
중력이 강한 별, 물질을 당기는 힘이 크다. 다시말해 중력이 강한 것은 물질의 시간을 지체시킨다.  “무엇이 ‘지금’과 ‘막 지나간’ 사이의 경이로운 차이를, 늘 새롭게 산출되는 지금과 늘 새롭게 과거로 가라앉는 지금의 영원한 드라마를 이해하게 만드는가? 이 때 모든 지금과 모든 과거는 영원한 운동에 사로잡혀 있고, 그것은 계속 점점 더 뒤로 가라 앉으며, 과거로부터 더 먼 과거로 가라앉는다. 그리하여 시간은 모든 시간적인 것을 과거의 심연으로 추락시키는 영원한 흐름으로 현출하면서도, 다른 한편 영원하게 응고된 형식이기도 하다. 「사물과 공간, 4장」” 물질은 영원히 운동하는가. 그럼 존재는 늘 아름다운가. 장미의 본질이 꽃인가. 계절이 지고 꽃은 시들지만 열매는 남겨진다. 열매는 완전한 ¨앎¨이다. 알은 세계이고 태어나려는 자는 그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곳곳 호접란이 만발해 있다. 내가 나비인가. 현상과 형상 사이 (고타마 붓다가 설한 인과법, 즉) 인연생기因緣生起다. (因인할 인 緣인연 연, 戀사모할 연 人사람 인) 쑥-대강이 '전전반측 잠 못 이뤄 호접몽을 어이 꿀 수 있나'. “......고통의 헝클어진 실타래를 풀어 주는 잠, 매일의 삶을 마감 짓는 잠, 힘든 노둥 뒤의 샤워, 상처받은 마음의 항유, 위대한 자연의 두 번째 과정, 인생의 향연의 자양분을. 「맥베스」” 
  
¨앎¨으로의 ¨삶¨이 있으므로 죽음이 있고, 그래서 현재 우리는 수면이 필요하다. 졸음, 잠에 빠져드는 세타파 4-7.99Hz - 잠자기 전 해마의 단기 저장소에 있던 오늘의 기억이 깊은 비렘수면을 통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그 기억을 더 안전하고 영구적인 피질로 운반한다고 한다. “해마의 단기 저장소로부터 피질의 장기 주거지로 어제의 기억을 옮김으로써, 우리는 어제의 경험을 안전하게 보관하는 동시에 다음 날 새로 배울 것들을 위해 단기 저장 능력을 확보한 채로 깨어난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신경과학자인 매슈 워커에 따르면 잠의 단계는 얕은 비렘수면, 깊은 비렘수면, 그리고 램수면으로 나뉜다. 이 단계들은 밤동안 4-6회 정도 90분의 주기로 반복되고 뇌의 각기 다른 영역에 해택을 주게 된다고 한다. 쉽게 얕은수면인 렘수면은 낮동안의 정신적인 피로를 회복하게 해주고, 깊은 수면인 비렘수면은 낮동안의 신체적인 피로를 회복하게 해주어 신체가 노폐물을 처리하고 새로운 영양분, 즉 포도당과 글리코겐 등의 공급하게 도와준다. 매슈 워커는 왜 비렘수면과 렘수면이 반복되는지, 또 왜 초반에는 비렘수면이 우세하고 후반에는 렘수면이 주도권을 쥐는지에 대한 자신의 이론을 제시한다. “먼저 아주 많은 재료를 돌림판 위에 올려놓는다(밤마다 잠이 들 때 새롭거나 오래된, 저장된 자전적 기억들의 덩어리 전체가 올라온다). 우선 남는 재료를 한 움큼씩 떼어 낸다(길게 이어지는 비렘수면). 그런 뒤 잠시 집중적으로 몇몇 부위를 세부적으로 다듬는다(짧은 렘수면). 첫 단계를 마치면, 두 번째로 깊숙이 손을 넣어서 한 움큼씩 떼어 내는 작업이 진행되고(다시 긴 비렘수면 단계), 이어서 좀더 세부적으로 다듬음으로써 군데군데 세밀하게 형태가 빚어진다(좀더 긴 렘수면). 이런 작업 주기를 몇 차례 되풀이하면서, 조각의 균형점을 서서히 옮긴다. 원래 재료 덩어리였던 것에서 이제 모든 핵심 특징들을 다 빚어냈다. 중요한 점토만 남아 있으므로, 조각가의 작업과 필요한 도구는 남아 있는 점토의 형상을 다듬고 특징들을 더 돋보이게 하는 쪽으로 옮겨 가야 한다(렘수면의 기능이 주로 필요하고, 비렘수면이 할 일은 거의 없다).” 문제는 8시간 자는 사람이 평소보다 2시간 일찍 일어나면 계산상 25%의 할당을 채우지 못한 것이나, 사실은 매우 중요한 렘수면의 60~90%를 손실하게 된다는 점이다. 매슈 워커가 이보다 더 흥미로운 사실을 알려준다. “사실 기반의 기억을 영구화하고, 더 나아가 사라질 위험에 처해 있던 기억까지 복구하는 일을 맡은 수면 유형-비렘수면-에 초점을 맞추어 연구를 해온 우리는 수면의 기억 혜택을 증진시킬 방법을 찾아내는 일도 시작했다. 성공을 거둔 방식은 두 가지다. 수면 자극sleep stimulation과 표적 기억 재활성화targeted memory reactivation다. 수면은 전기 뇌파 활성 패턴으로 표현되므로, 수면 자극 접극법도 같은 방식으로 시작했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 할까」” 자기 전 마들렌을 먹고 “의식의 흐름”을 따라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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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그 여름의 하얀 밤白夜같은 빛줄기가 시시어스와 히폴리타에게 쏟아지고 활짝핀 벚나무를 동무삼은 늘씬한 흰 자작나무가 그들에게 제촉한다. “아름답지 않아요? 비탈에 몸을 갸우뚱하고 있는, 저 하얀 레이스 같은 나무를 보면 뭐가 떠오르세요?” 그들이 손을 잡고 걸어 들어갈 길을 기쁨의 하얀길이라고 하자. 진노랑 빛, 장미 빛, ‘오묘한 초록빛이 환상적으로 어우러진 연못 어귀 늪에 개구리들이 애처롭고 정겨운 합창을 불러주고’, 하얀 꽃이 만발한 사과나무에서 흐르는 향기가 반짝이는 호수 주위에 만발하여 이에 취한 모두는 혼수상태에 빠져 버릴 것이다. 그들에게 “나흘 낮이라 해도 한순간에 밤의 어둠 속으로 녹아들 것이고, 나흘 밤이라 해도 꿈결처럼 빨리 흘러갈” 것이다. 그럼 밤하늘이 막 잡아당겨 팽팽해진 은빛 활 같은 초승달이 「뜻대로」 적히면 한낱 배우같은 남녀에게 오배론이 「뜻대로」 꽃즙을 뿌려댈 것이다. “못해요. 그렇게 시간을 어긴다면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세요. 차라리 달팽이를 애인으로 삼는 게 낫겠어요.” 그것이 헤라의 영광이다, 그것은 하이멘의 은총이다. 찬양하라 수호신 하이멘의 이름을! (조이스의 볼맨 목소리로) 아멘! “미래의 앞에서 멈춰선 손과 발은 조용한 목소리에 풀어져가고, 외치면 외칠수록 그리워져 오는 건 하나의 생명. 한여름의 빛. 당신의 어깨에 흔들렸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살. 깨져버린 하얀 그릇. 바람이 날려버린 꽃잎. 둘을 띄워보내고도 보이지 않는 강은 노래하면서 흘러가고 있네. 비밀도 거짓도 기쁨도 우주를 낳은 신의 아이들이야.” 센과 치히로는 행방불명이야. 저길 봐, 치히로는 ‘안개 너머의 이상한 마을’에서 냅다 토끼를 쫓아가고 있어..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에서 문명을 꿈꾸다.  

“바빌로니아인과 아시리아인은 어떤 행성들은 행운을 가져오고 또 어떤 행성들은 불행을 가져온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화성은 전쟁을 의미하고 금성은 {사랑}을 뜻했다. 이들은 몇 개의 신성한 행성들에 하루씩을 헌정했다. 신성한 별들은 태양과 달을 포함해 모두 일곱 개였기 때문에 7일을 한 묶음으로 하는 일주일이 생겨났다. 오늘날 우리들도 일요일(해의 날), 월요일(달의 날)이란 명칭을 사용한다. 당시 사람들이 발견한 행성은 다섯 개였으며, 이것들은 각기 마르스(화성), 메르쿠리우스(수성), 주피터(목성), 베누스(금성), 사투르누스(토성)이라 불렀다. 유럽 여러 나라의 요일 이름에는 아직도 이들 행성의 이름이 남아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어에서 화요일은 ‘마르디’, 수요일은 ‘메르크레디’, 목요일은 ‘죄디’ 그리고 금요일은 ‘방드르디’이다. 토요일의 경우는 영어를 보자. 영어에서 토요일은 ‘새터데이’이다. 독일어의 경우에는 좀 더 복잡하다. 그리스와 로마의 신들 이름이 각각에 상응하는 게르만족의 신들 이름으로 대체되었기 때문이다. 예컨대 화요일인 ‘딘스탁’은 ‘날’을 뜻하는 ‘탁’과 ‘치우’를 합친 말일 텐데, 게르만족에게 치우는 마르스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신이었다. 마찬가지로 목요일인 ‘도너스탁’은 주피터와 유사한 게르만족의 신인 ‘도나르’와 관계가 있다. 평소 우리가 쓰는 요일 이름에 이처럼 진기하고 중요한 이야기, 수천년이나 된 이야기가 숨어 있었다는 것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곰브리치 세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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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울타리를 치고 이것이 내 땅이라고 주장하면서부터 문자가 발생했고, 고로 사회는 법을 필요로 했다. 실크로드 이전에는 누구나 자신의 법이 옳다고 생각했으나 아직은 ¨특수하고 상대적¨인 것을 비교할 수 있는 더 많은 견식이 요구되었다. 따라서 6대륙 각지에 사람들은 모두 ¨맹인¨이나 다름없었다. 법을 시행하기 위해서 지배층의 생성은 불가피했고, 농노와 프롤레타리아는 그들을 섬겨야 했다. 농경사회가 시작됨과 동시에 아프리카(람세스), 아메리카(테오티우아칸), 아시아(수리야, 미트라), 오세아니아, 중동, 유럽(히페리온)에서 태양신이 등장했다. 그러나 기후제를 드리는 방법은 모두가 달랐다. 그리고 율리우스력이 시행되기에 있어 3,05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시간(그리니치 표준시)을 통일하기에 있어 1,929년이라는 장대한 세월의 시장경제가 형성되어야 했다.  

아프리카 혼곶을 떠난 최초의 인간이 아라비아 해안을 건너 상륙한 곳이 인도의 케랄라Kerala 였을 것이고, 다시 인류는 인도의 남쪽 끝 코모린곶에서 출발해 호주와 인도네시아로 뻣어나갔을 것이다. 인도 남부 타밀나두의 산에는 칼라르부족이 살고 있는데, 그 지방에서 우연히 DNA와 Y염색체를 검사하던 중 한 남성에게서 아프리카를 떠난 최초의 현생인류가 소유한 M130유전자가 발견됐다. 인더스 문명은 2,601BC에 시작되는데, 학자들은 7,000BC경에 아프리카 떠난 이민자들이 아프가니스탄 고원에 뿌리를 내린 후 인도의 문명이 발탁되었다고 본다. 파키스탄의 발루치스탄 주의 카치 평원에 자리한 메르가르의 유적지가 그것을 증명해 준다. 인더스 문명의 고대 도시 모헨조다로 유적은 분쟁이 없던 문명으로 알려져 있다. 인더스 문명 시기에도 현재처럼 인구가 많은 지역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나 권력자의 존재를 보여주는 증거가 없는데도 복잡한 사회가 형성된, 이상한 상황과 마주하고 있는 셈”이라고 마크 케노이어는 밝힌다. 또 그는 역사상 이런 문명은 어디에도 없었다고 말한다. 인류가 언어를 쓰기 시작한 것이 5만년 전이고, 당시 인도에 뿌리를 내린 이민자들은 “아르타(세속적인 부와 성공), 카마(쾌락과 사랑), 다르마(미덕), 모크샤(지식과 해방)”로 인도의 문명을 꽃피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투르크메니스탄 고누르 테페와 사리아니디 유적지를 훌터보면 베다 시대에 존재한 인도유럽어족의 언어를 쓰는 미타니 왕조를 확인할 수 있고, 비옥한 초승달 지대를 중점으로 정착하기 시작한 아리아인이 카스피해와 아랄해 사이의 지역으로 퍼져나가 영어, 웨일스어, 게일어, 라틴어, 그리스어, 그리고 페르시아어의 기원을 이룬 것을 알 수 있다. “인류사에서 핵심적인 사실 한 가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라고 알려진 서남아시아의 한 지역이 일찍부터 중요성을 띠었다는 점이다. 그 지역은 도시, 문자, 제국, 그리고 우리가 (좋든 싫든) 문명이라고 부르는 것에 이르기까지 일련의 발전이 가장 먼저 일어났던 것으로 보인다. 「총균쇠」” 인도는 언어만을 꽃피운 곳이 아니다. 인더스 문명을 시작으로 무굴 제국에 속한 카불계곡에는 여전히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의 흔적들이 남아 있다. 세상의 모든 신과 숨쉬고 동행한다는 인도는 인구수 만큼이나 많은 신들이 존재한다. 그래서 인지 인도는 타종교에 대해서 굉장히 포용적이다. 무굴 제국 바부르의 유언장을 보면 그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서 ‘종교적인 선입견을 버리고 모든 종교의 예배 장소를 파괴하지 말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마이클 우드처럼 인도를 여행할 기회가 생긴다면 당연히 델리에서 꾸뜹미나르를 확인하고 시크 교도에게 가장 성스럽다는 황금사원을 거쳐 세계에서 가장 신성하다는 갠지스 강에서 뿌짜를 확인하고, 콜카타에서 칼리사원을 방문한 후 럭나우에서 아잔 소리를 들어볼 수 있다. 신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게 삶의 의미를 알려준다는 뜻의 바라나시에서는 고타마 붓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인도를 통일한 마우리아 왕조 제 3대 왕인 아소카는 불교에 귀의해 많은 불교적 업적을 남겼는데,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200년 후 아소카가 보수한 불교의 4대 성지로 석가모니가 태어나신 룸비니, 석가모니가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닮음을 얻은 장소 붓다가야, 석가모니가 처음으로 설법한 장소 녹야원, 그리고 석가모니가 돌아가신 쿠쉬나가라가 있다. 또한 열네 번째 아이를 출산하다가 세상을 떠난 뭄타즈 마할을 위해 샤지한이 지은 '무굴제국이 사랑했던 수피파 성자의 꿈을 현상화한 신비스러운 지도, 심판의 날을 상징하는 지도'이자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 타지마할 역시 놓칠 수는 없다. 샤지한의 타지마할은 한 여자를 위한 것이나 사실 이 건물이 심판의 날에 신이 앉을 옥좌의 상징을 뜻하기도 한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파테푸르 시크리에 조성된 악바르의 붉은 사암제 성곽은 이슬람과 힌두교 건축이 융합된 걸작이었다. 이 새로운 양식은 그의 손자 샤지한 대에 타지마할이 건설되면서 정점에 이르렀다.  「더 타임스 세계사」” 
  
마이클 우드의 설명처럼 제국주의는 역시 제국주의다. 식민지는 식민지고, 제국주의 앞서운 지배자는 자신이 그 누구보다 우월한 민족이라는 생각에 젖어 있있다. 18세기에 동인도회사가 권력을 잡고 인도가 독립하기 까지 영국은 인도를 200년간 통치했다. 식민지 기간동안 영국과 인도는 수많은 문화교류를 실천했다. “하지만 영국과 인도의 관계가 계속 이런 식으로 발전하지는 못했다. 제국주의 이데올로기와 제국의 요구가 너무 강했던 탓이다. 18세기에 두 나라가 우연히 사랑에 빠졌다면, 19세기에는 서로 관계가 멀어졌고, 20세기에는 엄청난 비극과 비용을 감수하여 이혼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다. 「인도이야기」” 
  
인류가 문명을 기록해 남기기 시작한 시기와 거의 일맥상통하는 실크로드는 우선 흑해, 카스피 해, 아랄 해 일대에서 스키타인이 개척하기 시작해 몽골 대초원, 톈산 남쪽 기슭, 카자흐스탄 대초원, 남러시아 초원인 유아시아를 대륙을 관통하는 초원길을 포함하며, 기원전 2세기 즈음 장건(164-113 BC)이 개척한 사막길, 즉 중국에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쿤룬산맥을 지나 파미르 고원과 카라쿰 사막에서 초원길로 이어지는 오아시스 길, 그리고 1세기경 개척된 바닷길로 나뉜다. 곧 서기 97년 장건의 뒤를 밟은 감영이 대진국을 찾아 나섰다. 대진이란 고대 페르시아인들이 로마를 지칭할 때 쓴 Dasina에서 비롯됐다. 당시 로마는 중국의 아름다운 실크에 사로잡혀 있었을 때였다. 그리고 서기 627년 현장이 중앙아시아와 인도를 횡단해 657부의 경전을 520상자에 불상과 함께 담아 장안으로 돌아왔다. 서기 757년엔 두환이 아프리카를 가게 되는데, 그는 오늘날 카르기스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투르크메니스탄, 시리아, 이라크, 이란,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모로코 등 3개의 종교권을 여행하게 된다.   *참고.인용: 실크로드 - 리웨이
  
동과 서의 문명과 문화가 교차했던 곳, 바로 사막길과 초원길이 만나는 곳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다. 초승달 지대는 인류 역사상 농경사회가 처음으로 시작되는 최초의 정착지다.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사이에 형성되었던 메소포타미아 지역은 인류가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기거했던 동굴을 떠나 최초의 도시를 형성한 곳이다. 인류가 아프리카를 떠난 것은 약 22만~19만 년 전이였고, 6만 5천년 전에 유럽으로, 1만 6천년 전에 베링해를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진출했고, 드디어 2만 3천년 전에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도시문명의 길을 닦기 시작한 것이다. (누군가 가우디처럼 수없이 관찰하고 사유한 끝에 르꼬르뷔제와 같은 사람과 함께 도시계획을 추진한 것이 분명하다.) 긴 빙하기가 끝나자 각 대륙에서 차츰 문화가 형성되고 도시가 발달하기 시작했다. 문자가 시작된 것은 기원전 3,100년경 메소포타미아 수메리아 문명에서 설형 문자를 개발하면서 부터다. 마지막 빙하기가 끝나자 여기저기서 동토들이 들어나기 시작했고, 인류는 더이상 수렵채집을 위해 이동하지 않고 비옥한 땅에서 기존 자원을 이용해 동식물을 길들이는 방법(케년이 요르단에 있는 성서의 예리코의 고대 마운드에서 유적을 발굴한 결과 농경시대의 기원은 대략 서기전 8,350년~7,300년)을 모색했다. 이것이 인류의 최초의 농경사회의 기원이였다. 최초의 작물로는 탄수화물과 단백질이 있는 완두콩, 강남콩 등의 꼬투리 식물이 채택되었다. 감자는 인데스에서 처음 재배되었고, 마니옥, 얌, 토란, 고구마는 열대지방에서 기르기 시작해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초창기에 인류는 양, 염소, 돼지, 소를 기르다가 농업과 교통을 위해 당나귀, 말, 낙타등을 기르기 시작했다. 그러나 인류는 수렵채집 때 처럼 균형있는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할 수 없었다. “문명이라는 것은 이제 토종이 풍부한 지역의 잘 보호된 구석에서, 사람이 노력하여 가꾼 저 약하디약한 꽃이 아니다. 토종은 그 왕성한 활력 때문에 위협적이긴 해도, 그 반면에 변화무쌍한 강한 모종을 새로 만들어낼 능력도 갖고 있다. 인류는 이제 단일재배를 개시하려 하고 있다. 인류는 마치 사탕무를 재배해내듯 문명을 대량생산해낼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므로 앞으로 인류의 식탁에는 오직 그 요리뿐이리라. 「슬픈열대」” 
  
“네페르타리가 ‘수련꽃들의 장소’를 떠날 결심을 하자, 람세스는 그녀를 ‘위대한 초원’이라 불리는 ‘왕들의 계곡’으로 데려갔다. 18왕조 이후의 역대 파라오들이 쉬고 있는 곳이었다. 왕과 왕비는 람세스1세와 세티의 무덤 속에 오래 머물렀다. 모든 그림들이 걸작품이었다. 왕비는 기둥과 기둥 사이를 돌아다니며 기둥에 새겨진 그림과 신성문자들을 보았다. 기둥에는, 죽은 태양이 젊은 태양으로 다시 태어나는, 태양의 변모의 여러 국면들을 드러내는 ‘숨겨진 방의 책’이 새겨져 있었다. 태양의 변모는 파라오의 부활의 모델이다. 태양신 라, 라는 세계를 창조하고 그 세계를 보기 위해 자신의 눈과 눈의 신을 만들었다. 그때부터 라는 세계를 보게 되었지만, 그의 아름다운 눈엔 눈물이 고였다. 파라오의 마음이 이러하리라.  「람세스」” 고대 이집트어 람세스Rameses는 태양신 라Ra가 그를 낳아주었다라는 의미다. 성서학자들은 구약 출애굽기의 파라오를 람세스 2세로 추정하기도 한다. 람세스 2세가 출현하기 전에 아크나톤은 태양 대찬가에서 태양신을 찬양한다. “우리 눈에는 가려져 보이지 않지만 당신이 하시는 일 그 얼마나 많은지. 아, 하나뿐인 신, 그 누구에도 비하지 못할 분! 당신의 홀로 계시면서 당신의 뜻에 따라 이 땅을 만드셨습니다. 사람과 가축과 길짐승들을, 자기 발로 일어나 땅 위를 돌아다니는 그 모든 것들을,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나는 그 모든 것들을, 시리아와 누비아 같은 이웃 나라 그리고 이 이집트 땅을.”

칭기즈칸의 몽골은 최전성기에 유럽대륙 대부분과 아시아 대륙 전반을 차지한 거대한 제국이였다. 그는 세 차례에 걸친 대규모 징벌에 나섰는데, 이 징벌을 통해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그리고 동유럽을 정복하여 킵차크한국, 일한국, 차카타이한국, 오고타이한국을 건설했다. 그리고 그는 고려, 일본, 미얀마, 인도차이나 반도와 자바 등지를 침범하기도 했다. “몽골족이 세계 각지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대담한 전략, 철통같은 기강, 기발한 정치선전술, 카리스마 넘치는 지도력이 상대편의 허술한 조직 및 무능과 맞물린 결과였다. 「더 타임스 세계사」” 칭기즈칸은 징벌을 통해 거대한 제국을 설립하였으나 문제는 그가 이 방대한 제국을 통치할 방법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가 역사상 유례없는 이 방대한 제국을 이룩한 것은 분명 그가 말 위에서 보여준 뛰어난 지도력과 그의 용맹한 유목민 전사들 때문이였을 것이다. 하지만 제국을 건설하고 그의 전사들과 후손들이 말에서 내려왔을 때 제국의 명목은 증발한듯 사라져 버린 것이다.   

최초의 문명이 발생한 곳은 중동이였으며, 고대문명 메소포타미아에서 시작하여 히타이트, 아시리아, 헤브라이, 바빌로니아, 페니키아 등 인류가 문화의 기초를 다진 곳 역시 바로 중동이다. 페니키아의 표음문자의 경우, 그리스에 전해져 알파벳의 기원이 되었다. 초기 통일된 칼리프 체제가 무너지고 나자 수니파의 셀주크튀르크족과 시아파의 파티마 왕조가 무슬림의 두 진영을 이루었다. 무함마드의 타계 후 이슬람에서 칼리파 시대가 펼쳐지는데, 칼리파는 이슬람 공동체의 최고 통치자를 의미한다. 무함마드의 사촌인 알리가 칼리파가 되자 시리아의 무아위야와의 갈등이 알리 세력들을 이탈하게 만들고, 이것은 그들로 하여금 시아파를 결성하게 만든다. 이 시기는 이슬람에 있어 정치적 격변과 대대적인 문화 발전을 이룬 때이기도 하다. 특히 파티마 왕조의 통치하에 이집트는 산업 호황을 누리고, 카이로는 교역을 위한 화물 집산지로 거듭난다. 그러다가 11세기에 수니파의 셀주크튀르크족이 이란에 발을 들이고 바그다드를 점령한 후, 수니파의 아바스 칼리프를 최고권자에 앉힌다. 그 당시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집트와 시리아의 항구를 통해 고급 직물과 향신료들을 구입하기도 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탈리아는 십자군을 불러내어 1,099년 예루살렘을 점령하게 된다. 결국 무슬람과 십자군의 전쟁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아슈켈론을 비롯한 예루살렘 인근 땅들이 수중에 들어오고 나자, 살라딘은 이제 본격적으로 예루살렘 공략을 마음먹고 만전의 노력을 기울였다. 연안 곳곳에 흩어져 마음껏 약탈과 파괴를 일삼던 그의 병사들도 다시 합류했다. 그러자 살라딘은 하느님에게 의지해 그분 손에 자신의 뜻을 맡기고 예루살렘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바로 지금 성공의 문이 활짝 열려 그에게 어서 오라고 재촉하니 그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될 터였다. 「살라딘의 진기하고도 비범한 역사 - 이븐 샤디드」” *참고.인용: 더 타임스 세계사 - 리처드 오버리 
  
1,798년 나폴레옹은 이집트인들에게 강탈자들을 처벌하러 왔다고 말하며 자신은 알라와 그의 예언자, 그리고 쿠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알 자바르티의 생각은 달랐다. “‘나는 당신들의 권리를 압제자들로부터 되찾아줄 목적으로 이곳에 왔소’라는 말은 그가 한 최초의 거짓말이자 꾸며낸 위선일 뿐이다.” 그리고 1,917년 머드는 영국의 침략군을 이끌고 바그다드에 입성하여 이방인들의 폭정에 시달려왔던 당신들을 구해주고 바그다드인들이 번창하도록 도울 것을 약속했다. 그러나 영국은 이미 전시 동맹국이었던 프랑스와 아랍 세계 분할안에 합의한 상태였고, 그들이 원했던 것은 제국에 포함될 새로운 영토였다. 이같은 끊임없는 침략과 제국주의의 모든 현상은 16세기 아랍 세계를 정복한 오스만 제국(1,516-1,830)에서 기원한다. 16세기 전환기에 지중해에서 기독교와 이슬람이 충돌하는데, 에스파냐가 이베리아 반도를 정복하고 그라나다를 함락하면서 에스파냐에서 이슬람 통치는 종식된다. 아랍의 근대 역사를 크게 나누면 오스만 시대, 유럽의 식민 시대, 냉전 시대, 미국의 지배로 나뉜다. 그 중 지난 4세기 동안 아랍을 통치한 오스만은 수없이 변화하고 국경을 새로 만들게 된다. 하지만 오스만은 1,699년 유럽에게 크로아티아, 헝가리, 트란실바니아, 포돌리아, 우크라이나를 상실하고 세입 증대를 위해 관직과 지방의 농지를 경매에 붙친다. 19세기 오스만은 새로운 규칙을 도입해 모든 오스만 신민에게 행정, 병역, 세금과 같은 영역들에서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부여한다. “오스만이 페르시아와 흑해 연안, 발칸 지역에서 바르게 팽창하던 시기에 아랍은 제국에 편입되었다. 제국 영토의 팽창 속도가 새로 정복한 지역에 적합한 행정가를 양성하고 파견할 수 있는 정부의 능력을 넘어섰다. 이에 오스만 제국 중심부에서 가까운 지역들-시리아 북부의 알레포와 같은 도시-만이 오스만의 표준을 따르게 되었다. 아나톨리아에서 먼 지역일수록 오스만은 기존 정치질서를 보존하며 원활한 통합을 추진하고자 했다. 관념론자이기보다는 실용주의자였던 오스만인들 역시 아랍인들에게 자신들의 방식을 강제하기보다는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새로 획득한 영토에서 정기적인 세금을 징수하는 데에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정복 이후 초창기에는 아랍 지역에 대한 오스만의 통치방식이 매우 다양했고 광범위한 자치를 그 특징으로 했다.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그러나 발칸에서 입지가 약화되면서 제국은 힘을 잃어가기 시작한다. 또한 많은 지방 영주와 국가들이 독립을 원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1,875년 오스만의 파산 사태로 인해 유럽 열강들은 오스만 제국의 분할안을 검토하면 발칸은 오스트리아와 러시아가 나누어 가지고 시리아는 프랑스, 그리고 이집트와 주요 지중해 섬들은 영국에게 맡기자는 제안을 한다. 러시아에게 완패한 오스만은 1,878년 베를린 회의가 제시한 조건에 승락하게 되고, 유럽 열강은 오스만 영토의 첫 분할에 착수한다. 불가리아는 여전히 오스만 제국 내에서 자치권을 획득했고, 보스니아와 헤르체고비나는 오스트리아에게, 루마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는 완전한 독립을 얻었다. “유럽이 북아프리카를 점령한 뒤에야 민족적인 자각의 과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집트인’, ‘리비아인’, ‘튀니지인’, ‘알제리인’ 또는 ‘모르코인’이라는 것은 무슨 의미였을까? 아랍 세계의 대다수 사람들에게 이러한 민족적인 호칭들은 어떤 의미 있는 정체성도 부합하지 않았다. 만약 그들에게 누군인지 또는 어디 출신인지 질문한다면, 사람들은 그저 극도의 지역적인 정체성을 내세웠을 것이다. 예를 들면 출신 도시(‘알렉산드리아인’)나 소속 부족, 기껏해야 출신 지역(‘카비일 산맥’)을 밝혔을 것이다. 또는 이슬람 움마(ummah, ‘공동체’)와 같은 좀더 큰 지역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신을 규정했을 것이다.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그리고 얼마있어 천천히 팔레스타인에서 시온니즘이라는 바람이 불어오고, 얼마 후 나치주의가 등장하여 홀로코스트가 1천1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고, 곧 영국군의 1,948년 소등나팔을 불고 깃발을 내린 후 팔레스타인에서 홀연히 떠나버렸고, 결국 오스만이 남겨준 아랍 제국이라는 명목하에 이제 막 독립한 국가들은 아랍 세계의 세력 균형을 서로가 바꾸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 제 1차 아랍-이스라엘 전쟁을 일으킨다. *참고.인용: 아랍, 오스만 제국에서 아랍 혁명까지 - 유진 로건 
  
엘도라도를 찾아 떠난 피사로의 이슬라델가요의 13인은 건설된지 이제 막 100년이 된 잉카제국에 도착했다. 그곳은 파라카스 문명과 나스카 문명이 번성한 곳이였다. 나스카인들은 땅에 거대한 기하학적인 도형과 동물의 형상을 새긴 것(지오글립스)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그들은 해수면에서 2,430m나 되는 산맥의 정상에 고대 요새 도시이자 ‘잃어버린 도시’, ‘하늘에 떠 있는 세계’ 마추픽추를 지었다. 그곳을 둘러본 피사로는 에스파냐로 돌아가 왕에게 페루 정복에 필요한 후원을 요청했다. 그리고 5년 후인 1532년, 피사로가 63명의 기병과 200명의 보병을 거느리고 툼베스에 도착했을 때 그곳은 전쟁과 질병으로 물들어 있었다. (천연두는 아스텍 인구의 절반을 사망하게 만들었고, 이로인해 카리브해 지역 인구 또한 급감했다.) 아타우알파와 그의 이복형제 우아스카르의 권력 투쟁이 있었던 것이다. 손쉽게 아타우알파를 제압한 피사로는 그의 몸값으로 방 하나를 가득 채울 만한 양의 황금을 얻어내고 본보기로 그를 처형하게 된다. ‘위대한 잉카’에 300년간의 에스파냐 식민지가 펼쳐진 것이다. 그리고 원주민들은 정복자들의 부를 위한 과다한 착취와 강제노동의 쳇바퀴 속에 빠져 버린다. “에스파냐 왕이 잉카의 자리에 앉아 중앙집권제를 계승했지만, 그는 모두를 위한 부의 재분배를 하지 않았다. 잉카의 공물은 경제구조에서 균형과 순화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태양신의 아들인 잉카는 자신의 신민에게 신의 가호를 내려 줘야 했고, 사회질서를 책임지고 있었으며, 온전과 보상을 수여했다. 특히 잉카는 병자나 노인, 일할 수 없는 사람을 부양하는 관대함을 지니고 있었다. 기근이 들면 잉카는 창고에 저장한 물품을 나누어 주었다. 따라서 농민들은 자신들이 납부한 공물을 소비하는 일에 참여한다는 생각을 가졌다.  「피정복민들에 대한 이해 - 나탕 왁텔」” 잉카에 의한 물품의 중앙 집중은 재분배가 이루어졌지만 에스파냐의 공물은 그저 일반통행이였던 것이다. “피사로가 도착한 지 200년이 흐른 후, 안데스 세계는 세금과 강제노역으로 극도의 비참함을 맛보아야 했고, 에스파냐인의 오만함 앞에 분노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서 반란이 속출했다. 시간이 지나자 식민주의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 잉카 왕국이 재건되었다. 18세기 중반이 되면서 에스파냐의 억압에 대한 반란이 에콰도르에서 아르헨티나까지 안데스 전지역에서 터져나왔다. 1,822년과 1,824년 사이, 몇 번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 끝에 콜롬비아와 페루, 볼리비아가 독립을 획득했다.   「잉카 태양신의 후예들- 카르망 베르낭 」” 【1,839년 10월 3일, 스티븐스와 캐더우드는 뉴욕을 떠나 유카탄 반도로 떠났다. 1,821년 유카탄은 멕시코의 다른 지방과 함께 독립을 향하고 있었고, 두 사람이 도착한 당시 유카탄은 정부군과 원주민 반란군과의 치열한 전투에 앞서 폭풍의 전야와 같은 곳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야 유적지 치첸이트사와 마주한다. 그리고 스티븐스는 「유카탄 여행에서 마주친 일들」이라는 책을 퍼내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차차 마야 문명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고대 마야 문명은 15세기 스페인이 들어온 뒤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나 캐더우드와 스티븐스의 스케치와 출판물로 다시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참고.인용: 인류의 역사 - 제레미 블랙, 고고학의 역사 - 브라이언 페이건 
  
1,789년 프랑스에서는 자유주의 혁명이 일어났다. 그리고 1,793년 왕이었던 루이 16세가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고 나폴레옹은 쿠테타를 일으켜 권력을 잡게 된다. 그 후 나폴레옹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도 승리하게 된다. 승승장구로 나폴레옹은 이집트를 침략하고 프로이센을 물리쳐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쥐게되나 1,802년 스페인, 그리고 1,812년 러시아를 침공하면서 지나친 욕심의 댓가로 러시아군에게 패하고 만다. (1,798년 나폴레옹은 오스만 제국의 영역이였던 이집트 나일 강에 도착한다. 학문에 관심이 많았던 나폴레옹은 카이로에 이집트 연구소를 세우는데, 1,799년 6월 나일 강 삼각조 로제타 근처에서 군인 하나가 방벽을 세우다가 바윗 덩어리 사이에서 서기전 196년에 파라오 프톨레마이오스 5세가 내린 명령이 적힌 돌을 발견한다. 이것을 계기로 학자들은 이집트 전역을 여행하면서 유럽과는 판이하게 다른 건축물들과 유물들을 발견한다. 그리고 나폴레옹은 파라오 신전에서 람세스 2세의 거대한 동상을 끌어내었고, 그것은 결국 영국박물관으로 안착된다. 제국주의에 빠진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실패했으나 학문적인 성취는 이룬 것이다. 영국 혼슨에서 주먹도끼와 매머드 뼈를 출토한 것 이외 나폴레옹의 발견은 고고학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사건이다. 고고학의 정식 기원은 1,841년 프랑스의 외교관 폴 에밀 보타와 영국의 탐험가 오스틴 헨리 레이어드가 이라크 북부에서 성서에 기록된 니네베를 찾아내고서 부터다.) 결국 1,814년 폐위된 루이 18세가 취임하게 되고, 1,815년 나폴레옹은 엘바 섬으로 추방당한다. 1,815년 후 50년 동안의 탐험으로 유럽은 새로운 지역으로 세력을 확장하게 된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중남미 식민지는 해방되고,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는 영국에게 모든 식민지를 빼앗기고 만다. 이때부터 20세기 초까지 영국은 싱가포르, 홍콩, 나탈, 버마, 라오스를 식민지화하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에 대한 통치권을 갖게 된다. 한편 러시아는 알래스카를 미국에 매각하나, 프랑스는 잃어버린 제국을 만회하기 위해 알제리, 타히티, 마르키즈, 그리고 세네갈로 식민지를 확대한다. 당시 제국주의 대한 꿈은 유럽에만 있지 않았고, 미국 역시 필리핀을, 그리고 일본은 대만과 조선을 침공한다. 곧 유럽 열강들의 베를린회의에서 아프리카에 관한 협약이 체결된 후 1,880년부터 1,913년 사이 아프리카의 분할이 최고치를 찍는다.  제국주의적 팽창의 원인은 원자재 확보와 값싼 노동력이였다. 곧 프랑스, 영국, 독일, 포르투갈, 벨기에,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등이 아프리카 쟁탈전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아프리카는 저항할 수 없었으나 유일하게 제국주의에 맞서 저항했던 것은 기존의 유럽 정착민들이였던 보어인이였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사실상 우리가 아프리카의 주인이였습니다.. 보호령이라는 불편한 장치가 없어도.. 우리가 바다의 주인이며, 원주민을 다루는 데 상당한 경험이 있다는 단순한 사실을 바탕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갑자기 우리는 그러한 지위가 아무리 편리하더라도 {국제법상} 아무런 근거가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우리는 광대하게 펼쳐져 있는 이 해안에 대해 아무런 권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다른 나라가 들어와 그중 일부를 차지하는 것을 막을 아루런 힘이 없었습니다. 솔즈베리 경” *참고.인용: 더 타임스 세계사 - 리처드 오버리 
  
1,815년 프랑스, 스페인, 네덜란드는 모든 식민지를 영국에게 빼앗긴다. 그리고 영국은 자유무역을 지지하는 중상주의, 즉 제국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폐기하면서 유럽의 식민제국은 축소되는 것처럼 보였으나 1,815년부터 1,914년까지 식민 제국은 점점 늘어났다. 당시 유럽엔 공장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고 생산된 물건들은 제시각에 곧바로 팔려나가야 했다.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들이 팔리지 않고 쌓이기만 한다면 공장은 문을 닫게되고, 제2차 산업혁명이 쏟아낸 일자리들은 소리없이 증발되어 사회는 ‘경제 공황’ 상태에 빠지게 된다. (실제로 세계적 곡물 과잉 생산으로 인해 1,929년 봄에 시카고 거래시장에서 곡물 가격이 급격하게 하락했다. E. H. 카 평전) 따라서 자국 내에서 생산하는 물건을 팔지못해 경제 공황에 빠지지 않기 위해선 생산된 물건을 외국에라도 팔아야 했고, 따라서 유럽 열강들은 아프리카와 같은 곳으로 눈길을 돌렸던 것이다. 일본 역시 상황은 같았다. 물건을 팔기위한 것만이 아니라 방직을 위한 목화나 휘발유 생산을 위한 석유가 필요했음은 물론이다. 1,700에 지중해로 부터 프랑스의 면화 수입은 21만 킬로그램이었으나 1,789년 쯤은 거의 1,100만 킬로그램으로증가했다. 식민지가 늘어나자 더 많은 공장이 필요했고, 더 많은 상품이 쏟아지자 더 많은 식민지가 필요한 순환의 고리에 빠졌다. 그리하여 메테르니히 시대의 유물이 서서히 빛을 보기 시작했고, 나폴레옹의 제국주의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 지구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괴테의 말처럼 빛이 강렬한 곳에도 짙은 그림자는 있다는 것일까. “소비에트 정권은 계획적인 생산 체제를 도입함으로써 그 자체로 우리의 경제적 질병에 대한 치료법이 될 수도 있다는 믿음을 가져다주었다. 그렇지만 이런 선례를 서유럽에 적용하려는 시도에는 대개 다음과 같은 인식이 결여되어 있다. 현재 러시아는 광대한 미개척 영토와 급속한 인구 증가, 낮은 생활수준을 가진 경제 발전의 원시적 단계에 있다. 게다가 러시아는 천연자원 이외에는 중요한 수출품이 없고, 기본 소비재를 거의 무한정 확장할 수 있는 국내시장을 보유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이 결합된다고 해서 과잉생산이 나타날 가능성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독일의 선례는 훨씬 더 교훈적이다. 독일에서는 1,933년 이후 경제의 계획화가 줄곧 고도로 발달한 산업 경제에 적용되었다. 이러한 경제는 10년 전부터 해외에서 들어오는 집중적인 자본 투자의 자극에 노출되어 있었으며 상당한 정도로 과잉생산의 징후를 보여 왔다. 이런 독일이 채택한 방법은 계획적 소비라는 강령이었다. E. H. 카”  
  
1,870년에서 1,945년 사이에 성장한 제국 체제가 1,930년이 되면서 세계 영토의 84퍼센트를 차지하게 된다. 혁명 후 러시아는 중앙아시아에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 지배력을 강화시킨다. 하버드 C. H. 베크가 설명하듯 “제국은 다양한 인간 공동체들의 상이한 물질적 조건과 사회적 기회, 문화적 역량을 결정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 강력한 동인”이였기에 열강들의 정력적인 제국 건설과 식민주의를 향한 열망은 러시아에서도 고개를 들었다. 우선 러시아는 폴란드의 동쪽 절반, 우크라이나, 벨라루스, 몰도바, 핀란드, 아르메니아, 조지아를 장악할 수 있었다. “로마인들에서 몽골인들까지, 오스만튀르크에서 콩키스타도르까지, 티무르에서 쉴레이만 1세와 그 이후까지 제국적 충동의 주된 결과 중 하는 종교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든 상업적 동기나 정치적 동기에서 나온 것이든 새로운 공간을 획득하고 이를 새로운 제국적 힘의 구조적이고 문화적인 흔적이 두드러진 새로운 장소로 탈바꿈시키는 것이었다.  「세계사 - 하버드 C. H. 베크」”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의 정복과 이주가 계속되었으며, 영국은 싱가포로, 말라카, 홍콩, 나탈, 버마, 라오스로 제국을 확장해 나간다. 그리고 프랑스는 알제리를 정복하고 타히티와 마르키즈를 합병했으며, 세네갈과 인도차이나로 식민지를 확대해 나가기 시작한다. 그리고 독일은 서남아프리카, 카메룬, 동아프리카, 그리고 태평양의 섬들을 얻고, 이탈리는 트리폴리, 리비아, 에리트레아, 이탈리아령 소말릴란드를 얻는다. 다시 영국은 나이지리아, 케냐, 우간다, 로디지아, 이집트, 수단, 피지, 보르네오, 뉴기니 일부에 지배권을 확립한다. 그 후 20세기 초에 영국은 팔레스타인, 이라크, 트란스요르단, 탕가니카에서 신탁통치를 하게된다. 또한 영국은 프랑스와 함께 토골란드와 독일령 카메룬도 공동으로 신탁통치하게 된다. 그러나 유럽 제국의 영토에서 반제국주의 저항은 수시로 일어났고, 결국 저항 세력의 주동자는 정부나 민족 자치단체에서 일하는 엘리트 층으로 민족주의를 내세워 제국주의에 맞서기 시작한다. 민족주의자들의 저항은 쉽게 무시될 수 없었고, 그들의 독립 요구 또한 더이상 지체될 수 없었다. 따라서 영국은 ‘자치령 지위’라는 새로운 개념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많은 유럽 제국들이 하나둘 해체되었고, 전쟁 후 국제정세가 바꾸자 식민지 열강들도 제국주의를 이어갈 명분과 제정적 제력이 없었다. 그리고 국제정치는 이미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에 기울어져 있었다. *참고.인용: 더 타임스 세계사 - 리처드 오버리, 곰브리치 세계사 - 에른스트 H. 곰브리치, 하버드 C. H. 베크 세계사



인류학자 레비 스트로스가 말한바와 같이 인간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반드시 전쟁, 가난, 영양실조, 대기오염, 수질오염, 그리고 자원과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소유욕이 자리한다. 철학자 오귀스토 콩트는 인간 진화에 세 단계가 있다고 하는데, 첫째로 농경사회의 기우제에서 비롯된 종교적 단계, 두번째는 르네상스, 메너리즘, 바로끄, 로꼬꼬, 고전주의, 낭만주의, 자연주의, 인상주의 정신에서 불거진 형이상학 단계, 그리고 세번째는 산업혁명 이후 현세대를 대표하는 실증적이고 과학적인 단계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 멜라네시아와 아프리카 등에 대한 세세한 연구가 보여주고 있지만, 일을 할 수 있는 인원이 하루에 2~4시간만 노동을 해도 생산 활동에 아직 참여하지 않았거나 더는 참여할 수 없는 어린아이와 노인을 포함한 모든 가족의 생존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공장이나 사무실에서 길고 긴 시간을 보내는 우리 현대인과는 얼마나 다른지요!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그럼 「슬픈 열대」의 수렵채집인과 철학이나 과학을 쫓는 현대인들 사이에는 무슨 격차가 있는가. 그가 지적한바와 같이 우리가 원시인이라고 부르는 민족들은 농업이나 목축을 거의 하지 않고 사냥과 낚시와 야생식물을 채집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보다 천연자원에 대한 지식이 넓다. 다시말해 자연에 훨씬 더 잘 적응된 것이다. “농업은 섭취하는 음식의 질을 떨어뜨렸습니다. 즉 음식이 칼로리는 풍부하지만 영양소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몇 가지 산물로 제한되었다는 겁니다. 흉작이 한 번만 들어도 기근이 옵니다. 게다가 농업은 더 많은 노동을 요구합니다. 전염병의 전파에도 책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서 볼 수 있듯이, 시간과 공간의 측변에서 농업의 분포와 말라리아의 분포는 놀랍게도 일치합니다. 「레비 스트로스의 인류학 강의」” 그가 지적하듯이 숲을 없애고 농업을 시작한 곳은 말라리아의 원인인 얼룩날개모기들이 번식하기에 좋은 환경을 형성했고, 먹이사슬에 얽혀있는 수많은 야생 동식물을 파괴하였다. 또한 이미 면역체가 있는 야생으로부터 옮겨온 AIDS나 COVID19을 보면 인류가 주어진 환경으로부터 얼마나 취약한지 알 수 있다. 우리가 자연인인 그들보다 나은 점은 고작 긴 수명일 뿐이다. 과연 루시는 우리보다 못한 ¨부¨를 누렸는가. 양에서 비롯된 우리의 ¨부¨는 질5로 심하게 기울어져가고 있다. 한편 드라마와 영화는 여전히 새롭고 다양한 문화들을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다. “고유한 속성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차이를 관찰해야 합니다. 장-자크 루소” 레비 스트로스는 원시사회를 역학적 기계로, 현대사회를 열역학적 기계로 비유하고 있다. 역학적 기계란 정밀한 시계처럼 차가운 사회이지만 “무질서”(엔트로피)를 거의 생산하지 않는 사회를 말한다. 결국 열역학적 기계를 사용해 “질서”를 만드는 현대사회는 더 많은 엔트로피(무질서)를 만들고, 이에 따른 불균형은 오늘날 「침묵의 봄」을 가져온 것이다. 반면 질서(essential business)를 가로막은 COVID19은 또 다른 「침묵의 봄」을 그리고 있다. 그런데 이 “침묵”은 시대정신을 담을 수 있는 한 문화의 성숙기인가, 아니면 이기적인 「확장된 표현형」의 짓궃은 장난인가. 
  
“문명인은 자신이 오랫동안 살았던 토지의 대부분을 파괴했다. 진보적인 이곳에서 저곳으로 옮겨가게 된 주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랜된 거주지에서 문명이 쇠퇴한 주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이것이 바로 역사의 모든 경향을 결정하는 지배적인 요인이었다.. 문명인은 어떤 방식으로 이토록 유익한 환경을 파괴했는가? 그는 이것을 주로 자연자원을 고갈시키거나 파괴하는 방식으로 했다. 그는 숲이 우거진 구릉지대와 계곡에서 유용한 목재의 대부분을 베거나 불태웠다. 그는 가축의 먹이가 되는 초지를 지나치게 이용함으로써 벌거숭이로 만들었다. 그는 대부분의 야생동물들을 죽였으며, 물고기와 다른 수서 생명체들을 많이 죽였다. 그는 자신의 농경지에서 생산적인 표토가 유실되는 침식을 방치했다. 그는 침적토가 강물을 막고, 저수지, 관개 운하, 항구가 쌓이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는 대체로 쉽게 채굴할 수 있는 금속이나 기타 필요한 광물질의 대부분을 이용하고 낭비했다. 이에 따라 그의 문명은 자신의 창조물이 파괴되는 과정에서 쇠퇴했거나 아니면 그가 새로운 땅으로 이주했다. 이러한 경로에 따라 파괴된 문명만 해도 10~30개 정도가 된다.  「표토와 문명」” 
  
인류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수렵채집인으로써 천천히 자연을 즐기며 느긋하게 목적에 도달하는 것, 또는 눈부시게 발전한 과학과 철학의 도움으로 결론에 빠르게 도달하는 것이다. 그러나 E. H. 카의 해석처럼 과거의 유토피아를 찾는 것은 시대착오일 뿐이며, 선조들의 잘못된 판단 이전으로 복귀하는 것보다는 집단주의를 통해 민주적이고 진취적인 발상을 이상으로 채우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미 생물학적 진화의 속도를 단숨에 따라잡은 인류는 남아도는 여가시간이 솔직히 너무 많다. (자원낭비의 문제는 여기에 있다.) 200~300만 년 전 호미닌의 대뇌화encephalizataion로 인해 두뇌가 커지고 위가 줄어들어 고칼로리를 섭취해야만 하는 인간의 신체는 여전히 수렵채집인으로 적합하게 진화되어 있다. (뇌는 하루에 350~450 칼로리를 소모한다.) 따라서 인간은 다른 생물과는 달리 거대한 차원의 벽을 찰라에 초월한 것이다. 한 예로 많은 현대질병들은 피가 응고되기 때문에 발생한다. 수렵채집인은 상처가 자주 생겨 피가 빨리 응고되어야 했던 것이다. 한편 기술적으로 급작히 비약한 인류는 노동력을 충당하기 위해 (혹은 번식하기 위해) 더 이상 평생에 걸쳐 자식을 낳을 이유가 없어졌다. 또한 인류는 과거에는 모르나 먹이사슬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한가지 인간이 신체적으로 더 진화되어야 했는지는 아직까지 미지수다. 동물이나 곤충은 현재 얽힌 먹이사슬을 지탱시켜주기 위해 진화해 왔으므로 그들은 자연과 함께 앞으로도 진화되어 갈 것이다. 따라서 인간은 자연과의 상보적인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인간은 자연을 보호해야만 하는 입장에 서있다. “자연 정복으로 해로운 결과가 생긴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이 자연을 이용하면서, 아니 이용하지 않아도 인간의 존재 자체가 어머어마한 파괴 수단이 되어 인간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말입니다. 공간, 공기, 물, 다양하고 풍부한 천연자원 같은 것들이 희박해지고 오염됨으로써 인간의 생존은 늘 잠재적으로, 아니 실질적으로 위협받고 있는 것입니다. 레비-스트로스” 아름다운 자연과 그 풍광을 즐기는데 이의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번식적 이기성에서 벗어나 종 이익적 선택을 한 인류가 번식적 이타성을 추구하지 못한채 주저앉아 심미적 취미에만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그것은 정신의 계승이 아니다.) 다른 종의 이타적 행동의 예로 찌르레기와 같은 경우 겨울철 집단 비행을 하는데, 이 비행을 통해 찌르레기는 개체군의 크기를 확인하여 밀도가 높으면 종의 생존에 필요한 음식물이 고갈되는 것을 막기위해 자식을 덜 낳는다. 불임 일군들의 이타적 행동의 대표로 벌과 개미가 많이 알려져 있으나 다른 곤충과 동물들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사례는 종종 나타난다. 벌거숭이 두더지쥐의 경우 수많은 불임 일꾼들이 평생 여왕과 왕을 수발하며 그들과 함께 집단에 머물머 천적인 뱀이 공격할 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치기도 한다. 세이셸 솔새의 경우, 번식하는 암수 한 쌍이 낳은 새끼가 집에 남아 둥지 도우미가 되는데, 둥지 도우미로 남은 솔새는 형제자매의 먹이를 구해다주거나 둥지관리를 맡게된다. 세이셸 솔새를 관찰한 결과 그들은 주위에 좋은 서식처가 없는 경우 자신의 형제자매와 부모의 번식을 위해 자신은 번식하지 않고 남아 도우미가 되며, 환경이 나쁜 영역에서 태어난 솔새의 경우 부모의 번식성공도까지 낮추기보다는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자신의 집을 떠난다. (그런데 인구 감소에는 커다란 문제가 있다. 감소시 현재의 인프라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오고, 그럼 많은 불편함이 따라온다. 그럼 우리는 생활속 스스로하기를 기피하는 여러 가지들에 대해 비싼 비용을 지불해야 할 것이고, 차선책으로 우리는 가급적 자급자족하는 모순에 빠질 것이다. “당신이 특권을 누리는 데 익숙해져 있다면 평등이 마치 억압처럼 느껴질 것입니다.”) 인류의 목적은 더 이상 번식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유전자 차원에서는 아직 불가능할 것이고, 다가올 가까운 미래에 신경물질에 대한 실용적인 과학 발전이 있을 것이라 기대한다. 【신경전달물질이란 뉴런과 뉴런, 또는 뉴런과 근육 사이의 메세지를 전달하는 화학물질이다. 도파민은 행동학습, 세로토닌은 기분, 아세틸콜린은 주의력, 노르에피네프린은 각성, 히스타민은 수면, 멜라토닌은 생체리듬, 오렉신과 히포크레틴은 수면과 기상, 부신 피질 자극 호르몬 방출 인자는 스트레스, 옥시토신은 사랑, 아드레날린은 활동적인 에너지, α-엔도르핀.β-엔도르핀.γ-엔도르핀은 행복, 아데노신은 신경조절, 일산화질소는는 혈압을 낮추는 작용, 글리신은 셀린.사르코 신.퓨린.쿠레아틴.글루타티온.콜라겐 등을 합성하기 위한 재료, 카노비노이드은 향정신 등등】 메뉴얼이 없는 우리는 이것을 민간요법이라고 부를 수 있다. 엉클 토비의 사례 간혹 립밴 윙클 사례라고 부르는 사건이 있었는데, 갑상샘저하증으로 7년동안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가 있었다. 대사저하증에 적응해 있는 이 환자에게 티록신을 투여하여 천천히 채온을 올렸더니, 의식이 돌아온 이 환자는 다시 정상적인 언어를 사용할 수 있었으나 얼마 후 악성 귀리세포암종으로 사망하고 말았다. 흥미로운 것은 신체가 급성 암을 무려 7년 동안 냉장보관 상태로 간직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연히 의학이 진상을 밝혀낸 것이고, 우리는 주위에서 신기하게도 의학의 도움없이 각종질환을 신체가 스스로 완치한 경우를 목격하곤 한다. 만약 과학이 엄청나게 급변해 유전자 차원의 자율조작이 가능하다면 CCR5 유전자의 델타32 돌연변이를 생산해 신체가 HIV에 대한 면역력이 생기도록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감기에 대한 면역체를 만들 수 있다면 비슷한 질병에 대한 면역체도 신체가 거든히 조합해 낼 수 있을지 모른다. 1만 년 전의 치타와 같이 어떤 동물종이 개체 수가 크게 감소하는 병목현상을 거치면 유전적 다양성이 감소하고 면역적으로 취약해진다고 하는데, 빙하기에 살아남은 포유류의 개체 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인간도 면역적으로 취약해졌는지는 모른다. 혈액응고로 인한 뇌졸중같은 경우 (뇌경색은 혈관이 막힌 것이고, 뇌출혈은 혈관이 터진 것) 혈관내 치료를 하는데, 의학이 현재 사용하는 도구는 혈관시스와 카테터 등이다. *참고.인용: 모든 것은 그 자리에 - 올리버 색스, 신경외과 실제 - 정천기, 진화의 배신 - 리 골드먼, 사회생물학의 승리 - 존 올콕 
  
이기적 유전자는 자신의 계체를 넘어서 확장된 표현형으로써 자연을 유린하고 유한한 자원이 무한하리라 믿어 열역학적 과열된 사회를 만들었다. (우리는 Great Pacific Garbage Patch에 대해 뭐라고 말할 수 있는가.) 레비 스트로스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야성 그대로의 자연에 대해서는 거의 알지 못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풍경이란 오직 우리들의 욕구와 필요에 전적으로 구성되고 복종된 모습’이라는 것이다. “오직 두 개의 선택이 우리에게 있을 뿐이다. 첫번째 선택은 너무나 무자비하게 우리들의 필요를 위해 사용된 결과 하나의 풍경이라기보다는 마치 야외의 공장과 같이 돼버린 자연이다. 두번째 것은 인간이 매우 오랫동안 점거한 결과 파괴되어버렸으나, 어떤 점진적이고도 계속적인 적응과정을 통해서 ‘하나의 풍경’의 수준으로 재상승된 자연이다.  「슬픈열대」” 선사시대를 살던 수렵채집인들에게 예술은 마술적 행위의 수단이였다. 그들이 동굴벽화에 남긴 그림들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해 실용적이며 경제적인 목표를 위해 그려진 것이다. 브뢰이유는 알타미라 벽화를 일종의 ‘사냥 마법’이라고 설명하며 그려진 이미지는 동굴 벽에 그려진 야생의 황소와 들소의 영혼과 연결되어 반드시 사냥에 성공하기 위한 것이라고 지적한다. “구석기시대의 사냥꾼 예술가는 그 그림을 통해 실물 자체를 소유한다고 믿었고, 그림을 그림으로써 그려진 사물을 지배하는 힘을 얻었다고 믿었다. 그들은 그림속의 짐승을 죽이면 실제의 짐승도 죽게 마련이라고 믿었다. 그들의 생각으로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는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예비하는 것이었고, 이러한 마술적 시범에 뒤이어 실제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보았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마르크스주의자이자 문학평론가이며 철학자였던 발터 벤야민은 예술작품을 낳는 데는 두가지 상한 동기가 있다고 말하는데, 하나는 단지 존재하기 위함이고 다른 하나는 남에게 감상될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경우라고 말했다. 수렵채집인에게는 이 두가지 모두 해당되지 않는다. 벽화를 그리는 그들은 헤겔의 종Art이고, '그것은 조금 어중간'하기 때문이다. 한편 익명의 수공업자들인 고대 이집트 예술가들은 오직 합리주의적인 형식원리를 따르며 정면성Frontalitat의 원리를 작품에 표현한다. 고대 이집트 공예가들에게 중요한 것은 시각보다는 계념이다. 작품에 나타난 사물이 시각상 모순을 보여도 사실을 정확하게 전달하는데 의미를 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명확성을 위해 원근법.생략법.중첩법 등을 포기해 버린다. 바빌로니아 예술 역시 다른 고대 오리엔트 예술처럼 궁정예술과 사원예술에서 벗어나 개인주의나 자연주의를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데 고대 오리엔트 예술 전체에서 크리티Kriti 예술만큼은 그렇지 않다. “크리티에서는, 더욱이 예술 이외의 경제적.사회적 조건은 주위 세계와 동일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채롭고 분방하며 대담하고 생동감 있는 일대 드라마를 보게 되는 것이다. 전제군주와 봉건영주가 지배세력이었다는 점, 전제적인 사회질서가 문화 전반을 휩쓸었다는 점 등은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와 조금도 다른지 않은데도 예술관의 문제에서는 그 얼마나 엄청난 차이인가!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크리티는 주위 세계와 경제적, 사회적 조건이 모두 비슷했으나 주위와는 차별된 예술을 표현했다. 그렇다면 그들은 예술적 변이인가. 우리는 ‘하나의 풍경’의 수준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으며 ‘다채롭고 분방하며 대담하고 생동감’ 있는 자연을 원한다. *참고.인용: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고고학의 역사 - 브라이언 페이건 
  
영웅시대의 미술은 봉건적이라기 보다는 귀족적이였다. 특히 호메로스의 작품을 보면 평민이나 평범한 병사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하지만 그와 대조되는 헤시오도스의 작품은 대중적인 성격을 띠고 있다. 헤시오도스는 그의 작품에서 인생의 가치관 혹은 목표나 억압받는 민중의 소리를 들려준다. (울타리가 생기고) 경제적인 개인주의와 개인 재산권의 관념이 등장하면서 문학도 서서히 자연주의적이거나 개인주의적인 소재로 탈바꿈하기 시작한다. 전형보다는 개성이 중요해지고, 줄거리보다는 등장인물의 성격에 초점은 맞춘 극이 그려졌던 것이다. 계급과 계급 사이와 계층사이의 경계선이 사라진 헬레니즘 시대에 들어 합리주의가 팽배하자 작업공동체가 생겨나고 경쟁과 실적을 중요시한 예술이 선보여진다. 그러나 상류층의 엄격한 형식주의적 예술양식과 진보적인 세속예술은 골고루 다양하게 존재했다. 헬레니즘 예술을 뒤이어 로마 예술의 시대가 열리는데, 제정하 로마에서는 제국예술이 두각을 나타낸다. 기독교 종교운동이 최하층 민중에서 상류층으로 이동하고 있었고, 예술 분야 역시 민중적 정신과 지방정신이 고전주의 시대적 이상을 대처해가고 있었던 것이다. 로마의 민중예술은 모두 그림으로 표현되었다. 공로를 세운 장군이나 정복한 도시, 그리고 개선행진과 같은 내용은 그림으로 그려져 대중에게 선보여졌고, 신을 찬양하는 내용이나 대중선전물도 모두 회화를 통해 대중에 전달됐다. 연속적 묘사법이 들어난 ‘두루마리 그림책’ 트라야누스 황제의 다키아가 그 좋은 예다. 한편 당시 육체노동에 대한 경멸로 예술가들에 대한 인식과 평가는 대체로 낮았다. 그러나 “미는 신의 본질적 특색의 하나이고 개개의 단편적 현실은 미를 통해서만, 그리고 예술의 형태로만 신과 멀어짐으로써 잃어버렸던 전체성을 회복할 수 있다”는 플로티노스의 주장에 따라 예술가에 대한 사회적 평가는 조금씩 개선되어 선사시대때의 신으로부터 영감을 받은 사람처럼 평가되기도 했다. “이제 그들은 다시 저 마술시대에 그랬듯이 신비스로운 일에 통달한 신들린 카리스마적 인간으로 등장했으며, 예술창조 행위는 이른바 '신비적 합일'(unio mystica, 독일 신비주의에서 말하는 인간 영혼과 신적 실체의 합일)의 성질을 띠고 이성(ratio)세계하고는 더욱더 멀어지게 되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참고.인용: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중세초기에는 (지금 우리의 상황과 같이) 사람들이 고립되어 작은 촌락을 이루고 있어 시장을 갖지 않는 경제라 볼 수 있었고, 그것은 생산하려는 의욕이 결여되어 있는 상태였다. 이 폐쇄적 가정경제, 즉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만 생산하고 교환이나 투기하지 않는 정체된 사회에서 사회적 신분 또한 신의 뜻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었고 학문, 문학, 미술 역시 소극적인 경제처럼 엄격하고 고루한 보수주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그래서 무엇을 발견하고 새로이 창조하는 형태의 예술은 극히 드물었고, 교회의 권위주의가 모든 정신생활, 학문, 예술을 주도했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생겨난 것은 후기 상공업을 영위하는 시민층이 확대되어 화폐와 교역경제가 일어나고 기사적 낭만주의가 기승하면서 부터다. (중세를 대표하는 고딕양식의 건축물으로 밀라노 대성당이 있다.) “로마네스끄 예술의 형식이 초기 기독교 예술의 형식보다 간결하고 단순했던 것은 결코 그것이 더 민중적이고 순진해서가 아니다. 형식이 간소화된 것은 대중의 취미와 이해력에 타협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교양보다 권위를 내세우는 지배계급의 예술관에 영합했기 때문이다. (...)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의 정신적 분위기 속에서 교육을 받은 초기의 기독교도들에게 구세주가 죄인과 똑같이 십자가에 매달려 죽었다는 생각은 아무래도 좀 난처한 것이었다. 당시 귀족들의 사고방식으로는 신과 육체적 고통은 양립하기 어려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로마네스끄 미술의 수난상에서도 예수가 십자가에 매달려 늘어진 경우는 극히 드물고, 대개의 경우 십자가에 서 있으며 보통 눈을 뜨고 있을뿐더러 왕관을 쓰고 옷을 걸치고 있는 예도 많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참고.인용: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레비 스트로스의 ¨자연적¨이라는 삶이 신(앎)에의 풍경인가. 그것이 또한 호머의 서사시고, 지극히 종교적이고 정신적인 중세예술이 차안에서 피안으로 시대정신을 낳기위한 두란두스의 ‘민중을 위한 강의이자 독서’가 되었다면 우리는 문화의 각 시기마다 존재한다는 「니벨룽겐의 노래」와 「롤랑의 노래」를 우리세대에 필수 적어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세르반떼스와 셰익스피어의 메너리즘을 탐독하는 것은 우리의 삶이 “정교하고 섬세하지만 때로는 조야하고 엉성한,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이유에서인지도 모른다. 하우저에 따르면 메너리즘이란 꿈과 같이 현실의 여러 관계들을 폐기한채 사물들을 추상적인 상호관계 속에 집어넣음과 동시에 개개의 사물을 가장 선명하고도 사실적으로 설명하는 초현실주의이다. 카프카 몽환적인 「변신」이나 앞뒤가 잘 설명되지 않는 「성」, 또는 조이스의 몽따주 기법이 여기에 속한다. 우리는 이와같은 메너리즘에 빠진 소설들을 필독하며 「반지의 제왕」 같은 영웅시대의 영화를 즐겨본다. 한편 우리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히 르네상스를 꿈꾼다. 르네상스가 반교권주의적, 반스꼴라적, 반금욕주의적이라고 하지만 종교에 대해서 아주 회의적이거나 반신앙적이였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피안적인 세계상에서 벗어나 표현주의를 갈망했던 것은 확실하다. 내가 상대에게 보여주고자하는 것을 예술에 담았던 시대가 르네상스고, 비록 귀족적이고 보수적이였으나 남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을 그대로 묘사했던 것이 바로 르네상스다. 그러나 사실은 외면되고 사상은 위조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인생에서건 예술에서건 자기통제와 감정의 억제 및 자발성, 영감, 황홀감 등의 규제가 지상명령이었다. 감정의 표출, 눈물과 괴로운 표정, 기절, 비탄과 절망의 몸부림, 요컨대 후기 고딕의 잔재로서 꽈뜨로첸또에서 여전히 볼 수 있던 시민적 다정다감은 전성기 르네상스 예술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예수는 이제 더이상 괴로워하는 순교자가 아니라 모든 인간의 약점 위에 군림하는 천상의 왕으로 되돌아 갔다. 마리아는 죽은 그녀의 아들을 눈물도 표정도 없이 바라보며, 심지어 어린 예수에 대한 일체의 서민적인 애정이나 부드러움도 드러내 보이지 않는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한편 우리의 예술은 그 어떤 시대와도 동일시되지 않으며, 그 어떤 시대와도 분리되어 있지 않은 소통의 시대에서 다다주의를 모방하며 방황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끄 시대의 혼란과도 같으며, 우리의 가치는 쉽게 ‘검색’되고 있다. “바로끄 이전까지는 그래도 한 세대의 예술적 의지가 근본적으로 자연주의적인지 반자연주의적인지, 종합적인지 분석적인지, 고전주의적인지 반고전주의적인지를 판정할 수 있었지만 바로끄 시대에 와서는 예술은 엄격한 의미에서 어떤 통일된 성격을 더이상 갖지 않게 된다. 이제 예술은 자연주의적이면서 동시에 고전주의적이고, 분석적이자 종합적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한편 바로끄 시대 단원 김홍도는 대체적으로 시민적 자연주의를 표현한 화가로써 풍수화나 낮은 사회계층의 풍속도를 많이 선보였다. 반면 비슷한 시기 빛의 화가이자 ‘근대적 명암의 시조’인 렘브란트는 주로 고전주의적이자 인문주의적인 성서·신화·역사·위인 등의 그림들이 주를 이룬다. 아름다운 것이 부이므로, 시민적인 취향이 점차 귀족적 경향으로 기울은 탓이다. *참고.인용: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403 - 3

(Paphus,) 베누스 푸티카 Venus Pudica (정숙한 비너스)·그대·푸른·오렌지, 제피로스의 서풍 (플라토닉)·장미·그대·사랑이고, 바다·오렌지나무언덕·그대·황금빛 줄기가 신성함을 들추어, 호라이 주관하니 (시간과 계절)·그대·분홍·영원한 꽃을 전하고, 님프의 수호·그대·수레국화·상록수인 은매화로 영원을 맹세하노니, “봄과 베누스가 지나간다, 그리고 그의 앞서 베누스의 날개 돋친 길라잡이(쿠피도)가 걸어간다, 제퓌로스(서풍)의 발자취 가까이에선 어머니인 플로라(꽃의 여신)가 그들을 위해 앞길에 온통 빼어난 꽃들과 향기를 뿌려 채운다. 「루크레티우스」” 「그런데 작은 종달새는 어디에 있지?」 「종달새는 여기 있어요! 여기에 등을 달고, 여기는 꽃을 달아야 해. 크리스마스트리는 예쁘게 될거야. 토르발, 나는 당신이 원하는 건 다 할 거에요. 당신을 위해 노래하고, 춤을 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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틸리히에 따르면 예술은 표현하고, 전환하고, 예감한다. 예술은 실존을 폭로하고 계시를 예감한다. 무엇에 대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예술이 삶을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은 그 바탕과 후경을 통해 구원에 대한 예감을 전하는 것이다. 예술은 실존이 진리를 얻을 수 있게 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비록 역동적이나 고정된 (그러나 시공이 초월된) 아름다움이다. 예술은 대하는 것은 블랙홀을 대하는 것과 같다. 우리가 감상하는 것은 블랙홀이지만 우리가 그것을 통해 초월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이고, 얻고자 하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다. 피카소의 게르니카에 나타나는 것은 폭격의 공포이지만 우리가 얻는 것은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저항이고 혁명에 대한 이유다. 한때 모나리자는 미의 상징이였으나 이제 (바로끄의) 아름다움은 그 어떤 통일된 성격을 띠지 않는다. 우생학의 종기는 위험하기 짝이 없어 아름다움(진리)은 정의로운 원심분리기를 통해 어떤 통일된 성격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리쿠르구스 제도를 실시한 스파르타의 경우 인구를 늘리기 위해 아버지가 세 아들을 낳으면 동원을 면제해주고 네 아들을 낳으면 국가에 대한 모든 의무를 면제해 주었다. 또한 자신이 열등하다고 느낄 때 아내가 우수한 남자와 동침하도록 허용하기까지 했다. 국가에서 결혼을 우생학적으로 관리하였던 것이다. “가축을 잉태시킬 때에는 좋은 수컷을 고르는 인간이 아내를 독점하는 것은 허영이자 악이다. 그러므로 우생의 원리를 알고 자기의 우수성을 확신하는 자만이 자식을 낳을 권리가 있다. 「Plutarch」” 플라톤 역시 국가론에서 결혼 및 가족제도를 폐지하고 아이들이 탁아소에서 공동으로 양육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재산 또한 국유화시키며 개인의 존재 이유가 국가의 복지를 증진함에 있으며 국가의 세포적인 존재인 인간번견은 국가를 위해서만 존재한다고 설파한다. *참고.인용: 역사의 연구 - 토인비】 이제 우주-앎-에 대한 인류의 욕망은 필연적인 현실이다. 그러나 (디오니소스적) 방드르디는 정의로울 수 없다. 그의 노동은 Mule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노아의 방주가 정의롭다는 것인가!) 그런데 유행하는 것은 유희적 기술일 뿐인가. “얼굴의 아름다움은 사람마다 서로 다르지만 동등하게 아름다울 수 있으며, 하지만 그 형상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얼굴의 아름다움은 그것의 수(즉, 얼굴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 각기 고유한 서로 다른 아름다움이 서로 다른 신체에 존재하기 때문에, 서로 다른 지성을 지닌 판관들은 각자의 성향에 따라서 다수의 아름다움 사이에서 변화하는 미를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종교적 미학, 브라운” 도스토예프스키가 말했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것이다.” 아름다움이 정말 세상을 구원할 것인가. 분명 자연은 아름답고, 인류는 아름다워지고자하는 수수께끼다. (그가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름다움은 사물 그 자체가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복합적으로 전체를 위해 협력하는 하에서 아름다운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아름다움이란 “대칭적 균형 이상의 어떤 것”이며, 부분적으로 존재하는 대칭적 균형이 없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필로칼리아philocalia(미학)와 필로소피아philosophia(철학)를 두고 지혜와 아름다움이 분명 동일한 부모에게서 태어난 두 자매라고 말한다. 칼리아와 소피아가 앎임은 (Elephant 통해) 이제 명백한 사실이다. “필로칼리아와 필로소피아는 거의 같은 이름이다. 그들은 마치 한 가족처럼 보이기를 원하며, 또한 사실 그러하다. 필로소피아가 무엇인가? 지혜의 사랑이다. 필로칼리아가 무엇인가? 아름다움의 사랑이다. 그리스인에게 물어보라! 그럼 지혜가 무엇인가? 지혜는 진정한 아름다움 그 자체가 아닌가?”】 여기서 플로티누스는 악의 개념을 아름다움의 사슬로 설명한다. “악은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선의 본질 때문에 그리고 선의 능력 때문에 악은 단지 혼자 존재하지는 않는다. 마치 어떤 포로가 황금의 족쇄에 묶여 있듯이 악은 필연적으로 아름다움의 사슬(chains of Beauty)에 묶여 등장한다.” 플로티누스에게 악은 필수불가결한 감초와 같은 것이다. 악은 회화에서의 검정색과 같이 밝은 부분들을 강조하기 위한 기능적 존재라고 볼 수 있다. 그럼 그 대칭적 균형 이상의 어떤 것은 평형상태를 도달하기 위함인가. 헉슬리는 생명의 도가니에서 어떤 한 종이 운동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켜 더 독립적인 방향으로 변화하려는 움직임을 일으킬 때 다른 생명들에게 압력을 발휘해 그에 대응하는 운동을 하게 만들어 새로운 평형을 유지토록 한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선과 악은 삶이 평형을 유지토록 (아름답게) 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남아프리카 연방의 수상이였던 얀 크리스티안 스뮈츠는 생육과 번성을 지향하는 평형상태이고자하는 유기체는 항상 약간의 평형을 파괴하지만 완전히 평형을 이루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완전한 평형은 정체와 퇴화를 의미하며 달성은 죽음을 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평형을 향함은 악이 선으로, 선이 악으로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발돋음이다. 유명한 말 사육사인 M. H. 헤이스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몸을 앞으로 숙여 평형을 깨트리는 것이 빨리 걷기에 도움이 되듯이 말도 빨리 달리려면 신체적 평형을 앞으로 이동시켜야 하는데, 기수가 말을 달리 때 몸을 앞으로 내미는 것도 말의 평형에 있어서의 불안전성을 증대시키려는 것이다. 평형상태의 불안전성이 클수록 평형을 회복하기에 더 많은 힘이 필요하고 그 동작의 반복으로 말은 앞으로 향하는 전진의 속도를 높이는 것이다.” 발타자는 거짓말조차도 진리에 봉사해야 한다고 설명하는 데, 그것은 악이 선에게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따라서 악은 통제되는 포로이면서, 동시에 신의 섭리세계를 보다 아름답게 만드는 도구이다. 아름다움과 악 - 손호현” 선과 악 사이가 있다면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을 위해 신은 죽었다. 그것은 빅뱅이다. “신은 악을 제거하고자 원하였으나 그렇게 할 힘이 없었거나, 혹은 신은 악을 제거할 힘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자 원하지 않았을 것이다. 혹은 신은 원하지도 않았고 힘도 없었을 것이다. 혹은 신은 원하였고 힘도 있었을 것이다. 만약 신이 악을 제거하고자 원하였으나 그렇게 할 힘이 없었다면, 신은 무기력할 뿐이며 그러한 무기력은 신의 본성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만약 신이 악을 제거할 힘이 있었지만 그렇게 하고자 원하지 않았다면, 신은 질투하는 것이며 그러한 질투도 동일하게 신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다. 만일 신이 원하지도 않았고 힘도 없었다면, 신은 무기력할 뿐만 아니라 질투하는 것이며 따라서 그는 신이 아니다. 만약 신이 원하였고 힘도 있었다면, 그것만이 신에게 적합하지만, 그렇다면 악의 기원은 무엇인가? 왜 신은 악을 제거하지 않는가? 에피쿠로스” *참고.인용: 아름다움과 악 - 손호현

로꼬꼬는 더이상 왕실예술이 아니였다. 바로끄 당시 부르주아지 예술의 중심이었던 성과 궁전의 싸늘한 대리석과 거대한 청동은 로꼬꼬에 들어와 차츰 자취를 감추었고, 개인들의 건축활동이 늘어나면서 우아하고도 근엄한 여러 유희적 색채를 담은 예술작품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다. 하우저의 설명에 따르면 로꼬꼬는 우아하면서도 사치스럽고, 그러나 유희적이면서 변덕스러운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동시에 부드럽고도 내면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다. 색채도 다양해서 근엄하고도 장중한 색조를 위해 갈색과 자색을 사용하고, 때로는 밝은 파스텔 색조로 대상을 부드럽게 표현하기도 하며, 회색, 은색, 녹색, 그리고 장밋빛의 조합으로 강한 이미지를 전달하기도 한다. 하우저는 바로끄가 묵직하고 조각적이며 사실적인 공간성을 지닌 양식이라면, 반대로 로꼬꼬는 날카롭고도 미묘하며 민감하고도 능란한 장식예술을 선보인다고 강조한다. “로꼬꼬는 후기 바로끄의 고전주의를 해체함으로써, 그리고 그 회화적 양식과 회화적 디테일에 대한 민감함과 인상주의적 기교를 시민계급 예술의 정서를 표현하는 데 있어 르네상스와 바로끄의 표현형식보다 휠씬 더 적합한 하나의 수단으로 창조함으로써 스스로 이 새로운 양자택일을 준비한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당시는 루이 15세와 16세의 시대에서 프랑스 혁명으로 넘어가는 역동적인 시기다. 나폴레옹의 수석화가 다비드는 「대관식」이나 「군기 수여식」 같은 그림을 통해 고전주의를 탈피하고 역사적인 현실, 즉 혁명과 이념을 선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감각주의적이며 유미주의적 요소를 지닌 로꼬꼬는 낭만주의와 감상주의 중간에 위치하면서 차츰 인상주의를 향해 시대를 반영하기 시작한다. 【실러는 낭만주의자를 ‘고향에 가고 싶어 애태우는 국외추방자’이자 그의 이상을 ‘이 지상에 귀속되지 않는 정신’이라고 말했으며, 「푸른꽃」을 통해 낭만주의를 선보인 노발리스는 낭만주의 시를 ‘쾌적한 방식으로 사물을 소외시키는 예술, 즉 사물을 낯설게 만들면서도 동시에 친숙하고 매력적으로 만드는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자연주의란 실상 새로운 관습을 지닌 낭만주의다. 낭만주의와 자연주의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후자의 과학주의, 즉 현실의 예술적 묘사에 정밀과학의 원천을 적용한 데에 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자연주의 보다 더 감각적 경험으로 다가가는 인상주의는 추상적이고 비물질적인 기법으로 끊임없이 변화는 상태의 현상이 하나의 연속체라는 인상을 남겨준다. 그것은 아마도 하나의 조각배를 띄우고 신념과 원리와 고독에 사로잡혀 우주를 유영하는 모습일 것이다. “인상주의를 가장 단순하게 정식화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영속성과 지속성에 대한 순간의 우위, 모든 현상은 어쩌다 일시적으로 그렇게 놓여 있을 뿐이라는 느낌, ‘두번 다시 발 디딜 수 없는’ 시간의 강물 위로 사라져가는 하나의 물결이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인상주의의 그림은 존재의 ‘영구운동(perpetuum mobile)에서 어느 한순간을 포착하며, 서로 갈등하는 힘들의 유희적 운동에서 위태롭고 불안정한 균형상태를 묘사한다. 빛과 공기와 분위기의 묘사, 평평하게 칠해진 색채평면을 크고 작은 색채의 점들로 해체하는 작업, 물체 고유의 자연색을 색가로, 투시도법적.분위기적 표현가로 분해하는 일, 반사된 빛과 비추어진 그림자의 움직임, 경련하는 것 같은 색점들과 아무렇게나 함부로 그은 듯 당돌한 붓질, 빠르고 거친 스케치의 즉흥적 기교, 얼핏 부주의해 보이는 피상적인 대상 파악과 표현수법의 교묘한 우연성 등은 결국 투시도법을 사용함으로써 그림의 방법이 주관화되는 것과 더불어 시작된, 모든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변해간다는 현실감각을 나타내는 것이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궁정이나 교회 또는 시의회의 의뢰를 받아 작곡되었던 음악도 18세기에 이르러 순수한 연주음악으로 거듭난다.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시민들이 음악 연주를 듣기 위해 입장료를 내기 시작했고, 대중을 대변하는 시민 계급의 정서가 음악에 반영되기 시작한 것이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와의 불화로 유명한 모차르트의 자유로운 창작이 그 좋은 예다. “18세기의 낭만주의 운동은 유럽 어디에서나 사회학적으로 모순이 많은 현상이었다. 낭만주의 운동은 한편으로는 계몽주의와 함께 시작된 시민계급 해방의 연장 내지 상승으로 평민층과 과다한 감정과 정열을 표현함으로써 상류층의 까다롭고 절제된 주지주의에 대립되는 운동이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는 상류층 스스로 계몽주의의 ‘파괴적인’ 합리주의와 개혁주의에 반대한 운동이기도 했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그리하여 현대로 접어든 예술은 더이상 자연을 따르지 않고 현실을 부정하는 반인상주의적 요소를 지녔으며, 대표적으로 브라끄, 샤갈, 루오, 삐까소, 앙리 루쏘, 쌀바도르 달리 등은 자신들이 믿는 초현실 세계를 대중에게 선보인다. 그러나 우주는 초현실적인 세계의 조건을 채울 무궁무진함이 있고, 인상주의를 부정하는 현재의 (반)인상주의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으로 초현실 세계를 긍정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인상파의 부드러운 화음과 아름다운 색조를 더이상 거부하는 현대예술은 새로움을 위해 끊임없이 도약하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현대예술은 다른 관점에서 보아도 반인상주의적이다. 현대예술은 인상파의 부드러운 화음과 아름다운 색조를 거부하는, 근본적으로 ‘보기 싫은’ 예술이다. 회화에서는 ‘회화적’ 가치를 부인하고, 시에서는 정서의 조화와 아름답고 일관성 있게 구성된 이미지를 배격하며, 음악에서는 멜로디와 음조를 파괴한다. 현대예술은 모든 즐겁고 기분 좋은 것, 모든 순전히 장식적이고 쾌락적인 요소를 한사코 기피한다.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한편 현대예술은 심미적으로 ‘선’을 쫓지 않고 아름다움에 머물며, 비록 새로운 예술의 혁명을 기다리며 낯익은 인상파의 작은 ‘조각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참고.인용: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 - 아르놀트 하우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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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가 처음 시작된 곳은 2,500년 전 고대 아테네에서다. 정치가 솔론은 사회 불평등을 다스리기 위해 최초의 성문법인 드라코Draco 법전을 개정하여 새로운 법을 만든다. “대자연에서 유래하는 이치가 엄연히 존재했고 그 이치는 바르게 행동하도록 촉구하고 범죄에서 돌이키도록 불러세우지. 그 이치가 문자로 쓰이게 된 이후에야 법률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치가 발생했을 때부터 이미 법률이었다네. 그리고 그것은 신적 지성과 동시에 발생했지. 「법률론」” 아테네는 직접민주제를 실행한 국가다. 기원전 594년 아레오파고스 의회는 현자 솔론과 함께 개혁을 단행하고 빚을 진 공민이 노예로 전락되는 것을 금지하게 된다. 기원전 7세기 드라콘이 반포한 법은 강자의 이익을 대표하는 것으로 채권자의 사회적 지위가 채무자보다 높을 경우 채무자는 채권자의 노예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무 급진적으로 사회를 개선하기를 피한 아테네는 재산을 기초로 공민을 4등급으로 나누게 된다. 모든 공민은 민회에 참가할 수 있고 구성원 모두는 배심원이 될 권리와 의무를 갖게 된다. 또한 솔론은 400인회를 만들고 이 행정기관이 일상적인 안건을 처리하도록 만든다. 그 후 솔론의 친척 페이시스트라투스가 권력을 탈취한 후 그는 공상업자와 소농에게 유리한 정책과 조치를 취했고 씨족 귀족의 권력을 약화시켰다. 곧 참주 정권을 무너트린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 민주주의의 아버지’로써 민주정치의 길로 순회한다. 스파르타를 끌어들여 귀족 통치를 꾀하던 그는 400인회를 해산시키지만 곧 축출되고, 그 뒤로 클레이스테네스는 아테네의 혈연 씨족을 해체한 후 인구 비율에 따라 행정구역을 데메로 나눈다. 그는 솔론의 400회를 500인회로 늘린 후 각 데메에 50명을 할당하여 그 위원들의 임기를 1년으로 하였고, 500인회에서 50명의 집행위원회를 두어 매달 한 차례씩 새로운 위원을 다시 선출하도록 만들었다. 당시 500인회는 민회에서 법안을 토론하고 통과 여부를 결정했으며 법을 집행할 관리와 행정 관리 또한 직접 선출하였다. 민중 법정은 30세 이상의 공민 가운데 추첨을 통해 6,000명의 배심원을 선출하고 열 개의 부족에게 각각 600명을 할당하는 제도였다. 또한 클레이스테네스는 패각추방제를 만들고 6,000명 이상의 공민이 누군가를 아테네에서 추방할 수 있는 투표제를 만들기도 했다. “역사상 아테네와 같은 직접민주제가 출현한 경우는 드물다. 모든 공민은 다른 사람이 자신을 대표하게 할 필요 없이 직접 국정에 참가했으며,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반드시 이행해야 하는 의무가 되었다. 현대 민주정치에서와 같은 ‘정부가 나한테 무슨 소용이냐’라는 현상이 출현할리가 없었던 것이다. 전체 공민이 민회에 참가하고, 500인회와 배심원은 각자 맡은 일이 있었다. 500인회에서는 매달 50명의 집행위원을 선출했고 매일 한 명의 위원장을 뽑았다. 모든 공민에게는 하루 동안 국가의 원가 될 기회가 있었다. 「신세계사1 - 쑨룽」” *참고.인용: 신세계사1 - 쑨룽

기원전 445년 로마의 민회는 카눌레이아 법을 통과시켜 기원전 449년 평민과 귀족의 혼인을 금지한 조항을 폐지하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376년 리키니우스 섹스티우스 법을 통과시켜 집정관의 직위를 회복시킨다. 이 법은 평민과 귀족에게 동등한 권리를 주고자 해마다 두 명이 맡는 집정관 자리 중 하나를 평민에게 주도록 했다. 그리고 정복을 통해 얻은 국유 공유지를 각 시민마다 500유게라로 제한하여 공유지가 귀족에게 독점되는 것을 막았다. 기원전 300년에 로마의 민회는 오굴니아 법을 통과시키는데, 이것으로 사제직이 평민에게 개방되었다. 그리고 기원전 287년 호르텐시우스 법이 통과되는데, 개기는 야니쿨룸 언덕으로 철수한 평민들이 자신들의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것을 막기위해서 였다. 이 법은 시민을 대표하는 ‘트리부스 인민회’와 ‘평민회’가 입법권을 갖게 되는 것으로 원로원은 이를 부결할 권리가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귀족을 향한 평민의 완승은 아니였다. 민회가 입법기구이기는 했으나 자주성이 없어 법안은 반드시 관리가 제출하고 입법을 위한 토론에는 참가할 수 없었다. 평민의 목소리는 ‘찬성’ 혹은 ‘반대’로만 표할 수 있었고, 원로원은 간접적으로 그들의 의결을 부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기원전 318년 오비니아 법이 통과됨으로써 원로원의 명부를 확정하던 집정관의 권력이 감찰관에게로 넘어갔다. 문제는 집정관의 1년 임기가 끝나면 자동적으로 원로가 되었기 때문이다. 비록 원로의 명부를 확정하는 것이 국왕의 권리라 하여도 원로원이 집정관에게 휘두룰 수 있는 권력이 상당했을 것이다. “트리부스 인민회 아래의 평민회는 평민 출신의 관리를 선출하는 일을 책임졌다. 평민회는 체제 바깥의 권리평등 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데, 귀족이 보기에는 권력 찬탈의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애초에 평민은 국민의 일부를 데리고 나가서 따로 정권을 세울 작정이었는데, 이제 체제에 남아서 트리부스 인민회 내부에 평민회를 두도록 허락받은 것이다. 이 평민회는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했던 아테네식의 의회는 분명 아니었다. 「신세계사1 - 쑨룽」” *인용.참고: 신세계사1 - 쑨룽 【로마 제국은 남유럽 모든 영토에서 시작해서 서유럽 거의 모든 국가를 포함, 발칸반도, 터키, 시리아, 요르단, 이스라엘, 이집트, 리비아, 튀니지, 알제리와 모로코가 위치한 북아프리카까지 포함된다. 너무나 거대한 제국이여서 네 명의 황제들이 통치하는 4두 정치(테트라키tetrachy)를 펼쳤다. 그러나 제국은 100여 년의 내전을 겪으면서 혼란에 빠졌고 경제 또한 크게 악화되었다. 제국이 멸망할 수 밖에 없었던 가장 큰 사건은 콘스탄티노플 북부 아드리아노플에서 로마군 2/3이 전멸하면서다. 발렌스는 자신의 승리를 장담하며 군인보다 많은 로마 귀족들과 가족들을 데리고 전쟁터로 향하는데, 이 전쟁에서 그들까지 죽음을 당한다. 많은 역사학자들이 공통적으로 꼽는 멸망의 첫번째 원인은 로마에 ‘후계자 임명’에 대한 명확한 규정이 없어서였다. 로마 제국은 ‘왕정’도 아니고 ‘공화정’도 아닌 상태였기 때문에 혼란이 생기기 쉬운 시스템이였다. 둘째 빈부의 격차가 커서인데, 많은 부를 누리고 있던 귀족과 생산적인 노동을 할 수 없던 중상층 사이의 괴리가 원인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셋째로 로마 군대가 전쟁에 나가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는 모두 전략적인 전술과 좋은 무기, 그리고 잘 정비된 도로와 부상병들이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시스템 덕이였다. 하지만 재정 위기가 발생하자 사회 시스템은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없었고, 무기와 전쟁을 위한 기초 인프라는 질적으로 많이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476년 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 유럽은 암흑기에 들어서게 된다. 서로마에서 프랑크족은 프랑스가 되고, 고토족은 이탈리아에 뿌리를 내리며, 서북부 독일에서는 게르만족 일파인 앵글족이, 영국은 색슨족이 점령한다. 당시 로마의 잦은 침략이 하나의 계기가 되어 유럽의 많은 국가들의 기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로마에 대항하기 위해 그들은 국가를 만들어 상비군을 조직하고 왕을 추대해 국가를 존립하게 된다. *참고.인용: 그들은 어떻게 세상의 중심이 되었는가 - 김대식】  

1,788년부터 1,789년까지 혹독한 추위와 극심한 가뭄이 흉작으로 이어져 프랑스 농민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당시 파리 노동자는 하루에 30-40수sous를 받았는데, 이 금액으로 그들이 생활하기 위해서는 빵 1파운드가 2수를 넘어서는 않되었지만 빵값은 두 배로 수직 상승했고 지방에서는 8수가 넘는 곳도 있었다. 빵만이 아니였다. 다른 생활필수품들도 모두 상승해 프랑스는 최악의 경제 위기에 처해 있었다. 그 당시 군중들이 “빵을 달라”고 외쳤을 때 마리 앙투아네트는 “빵이 없으면 비스킷을 먹으면 될 게 아니냐?”라고 말했던 점을 보면 궁정은 국민들의 생활에 거의 관심이 없었다. 17세기까지 혁명이란 단어는 천문학상의 용어로서 회전, 순환, 주기, 공전을 의미했다. 그런데 1,789년 7월 14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났고, 말 그대로 혁명은 프랑스를 군주제에서 공화제로 ‘코페르니쿠스적 회전’을 하게 만든다. 프랑스에서 혁명에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는 지배층과 귀족들이 무능하고 신뢰성이 낮아 민심을 잃은 루이 16세를 염려하기는커녕 오히려 튀위시키려 했다는 점, 그리고 당시 시민들이 로크 사상을 따르는 자유로운 영국과 미국의 자유사상을 동경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루이 16세는 전국삼신분대표의회를 소집했는데 거기서 시민들을 대표하는 제3신분 대표들이 신분별 회의를 강요하는 루이 16세와 맞서게 된다. 제3신분 대표자들은 자기들의 모임을 ‘국민회의’라고 선포하고 의회의 동의없이는 어떠한 세금도 징수할 수 없다고 결정하게 된다. 낭만주의 소설가 스탈 부인이 말한바와 같이 “이 법령은 혁명 자체였다”. 당시 루이 15세가 루이 16세에게 물려준 빚은 15억 리브르였고, 혁명이 일어날 무렵에 부채는 45억 리브르로 엄청난 액수였기 때문에 루이 16세는 제3신분 대표자들의 선언을 순수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프랑스 혁명은 네 단계로 구분할 수 있는데 차례로 국민의회, 제헌국민의회, 입법국민의회, 국민공회의 탄생으로 이어진다. 앙시앵 레짐(절대 군주 정체)을 거부한 국민의회는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을 통해 “인간은 자유롭고 모든 권리에서 동등하다”, “모든 통치의 원칙은 본질적으로 국민에게 속해 있다”는 내용을 선포한다. 그리고 의회는 50억 리브르에 가까운 부채를 해결하기 위해 30억 리브르에 가까운 성직자들의 재산을 국유화한다고 발표한다. 결국 왕권을 보존할 능력이 없어 망명을 꾀하던 루이 16세는 자유주의적 입헌군주가 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게 되고 공화제에 근접한 입헌군주로 추락한다. 모든 주권은 이제 프랑스 국민들이 지니게 되었던 것이다. 1,782년 왕정이 폐지되고 국민공회는 제1공화국을 선포한다. 그리고 루이 16세는 인민의 이름으로 1,793년 1월 21일에 혁명 광장인 콩코르드 광장 단두대에서 처형당하게 된다. 곧 국민공회는 공포정치를 시작하는데 에르망과 푸키에 탱빌은 파리에서만 1만 7,000명을 처형한다. 그리고 경제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빵 가격 인하, 제품 가격 및 임금의 공정화, 그리고 국유재산 분할 및 매각의 조치가 취해진다. 그 후에서 혁명의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된다. 1,793년부터 1,796년 사이 17만 명이 희생되었고, 나폴레옹 전쟁으로 100만 명이 전사했다. 그리고 100년 후 이 혁명을 기념하기위해 에펠탑이 세워진다. “우리는 조국이 낡은 것을 갈아치우길 희망한다. ... 관습이 지배하는 독재정권 대신 이성이 지배하는 제국을 희망한다. ... 어여쁘고, 어리석고, 비참한 백성 대신 고결하고, 강하고, 행복한 백성을 희망한다. 이 말은 군주제의 그 모든 악덕과 치기 대신 공화국의 그 모든 덕과 기적을 희망한다는 뜻이다. 막시밀리앵 로베스파에르” 【1,762년 루소의 「사회계약론」을 시작으로 봉기의 시대가 열린다. 1,755년 코르스에서 파올리가 제노바의 통치에 반발하여 반란을 일으키고, 1,793년 다시 파올라가 프랑스를 상대로 독립을 시도했다가 영국에 점거당한다. 1,768년에는 제네바에서 시민들이 소수 귀족에 대항하여 반란을 일으킨다. 1,773년 러시아 남동부에서 카자크족과 농민, 그리고 아시아 부족들이 귀족들에 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 1,775년 아메리카가 영국의 재정 정책에 반발하여 전쟁을 일으킨 후 독립을 선언한다. 1,787년 오스트리아령 네덜란드(벨기에)에서 황제 요제프 2세의 중앙집권화 정책에 반발해 반란이 일어나고 벨기에 연합주 공화국이 선포된다. 그리고 1,789년에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다. 1,790년 헝가리에서 마자르족 귀족들이 오스트리아 황제의 칙령을 거부하고 합스부르크 제국 내 헝가리의 독립성을 요구하게 된다. 1,794년 폴란드에서 애국파 귀족들을 주축으로 시민 반란이 일어나나 러시아 군대가 장악하여 폴란드는 러시아, 프로이센, 오스트리아에 분할당한다. 1,791년 아이티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다. 1,793년 사르데냐 섬 주민이 피에몬테-사르데냐 연합 왕국 내에서 자치를 요구한다. 1,794년 독일령 네덜란드에서 삼부회를 장악한 귀족 문벌과 민주화를 원한 중류층의 애국당에서 대결이 벌어져 프랑스의 도움으로 공화제가 선포된다. 1,798년 아일랜드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하나 영국 군대에 진압당한다. 1,804년 세르비아가 오스만 제국내에서의 자치권과 독립을 요구한다. 1,809년 티롤을 나폴레옹이 오스트리아로부터 탈취해 바이에른에게 넘겨주나 농민들이 바이에른의 새로운 통치자들에게 반란을 일으킨다. 그리고 1,830년에서부터 1,945년 사이에 세계는 제국주의 경쟁에 빠져버린다. 1,930년 당시 세계의 85%가 제국 체제의 일부이거나 제국의 식민지가 되었다.】 *참고.인용: 프랑스 혁명 - 서정복, 더 타임스 세계사 - 리처드 오버리

라틴아메리카의 독립 운동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다. 페루, 볼리비아 등 안데스 지역에서 지방행정관들의(코레히도르) 부패와 학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고, 그들은 상인들과 짜고 의류, 노새, 그리고 그 밖의 수입품을 주민들에게 강매(레파르토)시켰다. 결국 1,780년 가혹한 세금과 코레히도르의 레파르토를 거부하며 투팍 아마루의 반란이 일어난다. 시작은 부패와 학정 때문이였지만 봉기는 잉카 제국의 복원과 독립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그러던 중 프랑스 혁명의 혼란 가운데 유럽을 장악한 나폴레옹은 이베리아 반도를 침약해 스페인 국왕을 폐위시키고 봉건제를 철폐하게 된다. 한편 라틴아메리카 식민지는 프랑스의 지배를 허용하지 않았고 나폴레옹이 물러나자 스페인의 식민지 통제권이 약화된 것을 계기로 자신들의 자치권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808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아메리카 식민지들이 독립운동을 시작하고, 1,810년 라틴아메리카 식민지 전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봉기가 일어난다. 1,810년 4월 카라카스에서 혁명이 일어나 스페인 군대는 베네수엘라에서 쫓겨나고, 5월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리고 9월 16일에는 멕시코에서 이달고 신부가 이끄는 농민과 원주민들이 식민지를 반대하며 반기를 든다. 이달고 신부는 농민들을 모아 놓고 다음과 같이 절규한다. “과달루페의 성모 만세! 악독한 정부는 물러가라! 스페인 본국인들은 모두 죽어라!” 이달고 신부의 원주민과 메스티소들은 광산촌인 과나후아토 시를 향해 진격을 시작하는데 군중의 수는 갈수록 늘어나 수만 명에 이르렀다. 그리고 이달고는 1,811년 7월 30일 체포되어 처형당한다. 그러나 멕시코 혁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이달고를 어어 호세 마리아 모렐로스 신부가 반란군을 이끌게 된다. 그들은 10개 조의 원칙을 채택하여 스페인으로부터의 완전독립, 주권재민, 삼권분립, 사유재산권의 확립, 신분제도의 폐지를 외쳤다. 그러나 결국 모렐로스도 1,815년 11월 5일에 체포되어 사형당한다. 카라카스 혁명의 주역은 볼리바르인데, 그는 루소의 사상에 심취해 있었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프랑스와 유럽 혁명을 몸소 체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볼리바르는 독립운동에 참가하여 1,811년 베네수엘라의 독립을 선포하고 카르타헤나 선언을 발표한다. 특정 지역이나 국가보다는 라틴아메리카의 독립을 주장한 볼리바르는 1,814년 왕당파에게 참패하여 망명하나 다시 아이티 공화국과 영국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영국인, 스코틀랜드인, 독일인들로 구성된 혼성부대를 이끌고 베네수엘라에 들어와 다시 독립 전쟁을 수행한다. 그리고 그는 1,819년 9월 7일 보야카에서, 그리고 1,821년 카카보보에서 스페인 군과 맞서 승리를 거두게 된다. 북부 지역에서 볼리바르가 독립 전쟁을 수행하는 가운데 남부 지역에서는 산 마르틴이 독립을 이끌고 있었다. 그리하여 산 마르틴은 페루를 공략하기 위해 1,817년 1월 샤카부코에서, 1,818년 4월 5일 마이포에서 스페인 군대와 맞서 승리를 거둔다. 그리고 1,888년 브라질이 라틴아메리카에서의 마지막 노예제도를 폐지하고, 1,910년 멕시코에서 또 한번의 혁명이 시작된다. 1,930년 브라질에서 군사혁명이 일어나 바르가스가 대통령으로 취임한다. 그러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여 공화정을 채택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정치적 혼란으로 인해 여러번 헌법을 계정하게 된다. 스페인은 식민지 통치를 위해 부왕령제도를 두었는데 부왕이란 총독을 말한다. 19세기 초 스페인은 4개의 지역에서 부왕령을 실시했는데, 누에바에스파냐(멕시코) 부왕령, 페루 부왕령, 누에바그라나다(콜롬비아) 부왕령, 그리고 리우데플라타(아르헨티나) 부왕령 등이다. 하지만 독립 후 광대한 지역을 경영할 세력이 없자 중남미는 20개의 나라로 쪼개질 수밖에 없었다. *참고.인용: 스토리 세계사 7 - 임영태

1,848년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덴마크, 폴란드, 헝가리를 포함한 유럽 전역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하지만 유럽의 일부만 혁명에 성공했던 이유는 부루주아지가 지배 세력과 타협한 결과였다. 그러나 거센 자유주의와 민족주의의 바람은 전 유럽에 새로운 물결을 만들었다. 1,789년 프랑스 대혁명 후 파리는 혁명의 도시가 되어 있었고, 그로부터 혁명은 언제나 파리에서 시작하게 된다. 1,846년 아일랜드 감자기근으로 곡물 가격이 상승하고 불황이 닥치면서 유럽 노동자들은 생활고에 시달렸고, 그들의 불만이 고조되면서 1,848년 전 유럽에 걸친 혁명으로 발전한 것이다. 1,846년 당시 프랑스에서 시작한 혁명의 바람은 노동자 대책 정부 위원회를 창설하게 되고 노동위원회는 노동 시간의 단축, 실업자 해소, 노동 환경의 개선, 그리고 노동권의 보장등을 논의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유권자는 24만 8천 명에서 960만 명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리고 그 혁명의 불길은 독일로 이어진다. 바덴의 자유주의자, 노동자, 수공업자가 들고일어난 이 혁명은 독일에 새로운 정부를 수립하게 된다. 그리하여 바덴의 북부 지역, 뷔르템베르크, 그리고 헤센-다름슈타트까지 혁명은 확대되고, 결국 오스트리아와 프로인센마져 혁명으로 물들게 된다. 그리고 이같은 노동자들의 승리는 점점 주변국가들로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 혁명의 불길에서 겨우 위기를 벗어난 영국은 적극적인 자세로 노동자들을 위한 개혁을 감행해야 했다. “노동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들은 굶어 죽거나 싸움에 나서야 했다. 그들은 엄청난 폭동으로 응수했는데 이 폭동은 현대를 가르고 있는 두 계급 사이의 최초의 대전투였다. 그것은 부르주아지 질서의 유지냐 파괴냐를 놓고 벌어진 투쟁이였다. 공화국을 가리고 있던 장벽은 찢어졌다. 맑스” 유럽 혁명의 기수는 당연히 카를 마르크스였고, 그의 사상을 집약한 「공산당 선언」은 모든 혁명의 지침서가 되었던 것이다. 그는 ‘붉은 혁명 박사’라는 칭호로 불렸으며, 그는 지배자들에게는 공포와 혐오의 대상인 동시에 노동자들과 피지배자들에게는 천사와 같은 존재였다. *참고.인용: 스토리 세계사 7 - 임영태

유럽의 혁명은 서서히 러시아로 번져나갔고, 농노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찾아 차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인민의 의지’파는 1,879년 8월 알렉산드르 2세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1,881년 3월 차르를 암살하게 된다. 그러나 알렉산드르 2세를 뒤이어 그의 둘째 아들 알렉산드로 3세가 새로운 차르에 오르고, 그는 혁명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혁명 세력들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기 시작했다. 점점 인민주의는 퇴락의 길을 걷게되고 새로운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세력을 넓혀가기 시작한다. 1,915년 독일군과 오스트리아-헝가리군에 점령된 서부 지방을 상실한 러시아의 경제는 제구실을 할 수 없었을 뿐더러 공장의 전시 체제로의 전환은 내수시장 또한 파괴하였다. 전쟁으로 인해 철도수송 체계가 파괴되자 공산품을 받을 수 없는 지역이 늘어나고, 생산물들을 수송할 수단이 없어지자 러시아는 인플레이션과 기근에 빠졌다. 소비자들은 스스로 협동조합을 조직하기 시작했으나 독일 출신 니콜라이 2세는 군주제 이상에 매달려 통치행위를 중단하고 국정을 황후에게 맡겨 버렸다. 많은 사회주의 진영의 지도자들은 망명 중이거나 감옥에 갇혀 있었는데, 레닌(볼셰비키), 토로츠키(국제주의자), 마르토프(멘셰비키)는 제국주의적인 전쟁을 비난하고 나섰다. 1,917년 2월 19일, 군중들은 군주제에 반대하며 차르의 동상들을 쓰러트리고 행정부처에 걸려 있던 니콜라이 2세의 초상화들도 모두 불살라버렸다. 철도 수송체계는 여전히 마비되어 있었고, 식료품을 지급받지 못한 수천 명의 노동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무능한 각료들을 비판하며 그들에게 퇴진을 요구했다. 2월 23일, 수많은 학생들과 사무원이 페트로그라드 중심부를 행진하였고, 오후부터 빵의 부족을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빵을 달라!’고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러시아 혁명의 불씨가 점화된 것이다. 2월 24일, 파업 중이던 15만 명 정도의 노동자들이 도심으로 몰려와 100개의 무리를 이루며 토론회가 펼쳤다. 2월 25일 파업은 확대되었고 시위 군중들은 ‘빵을 달라!’, ‘차르는 물러나라!’, ‘전쟁을 중단하라!’라는 구호를 외쳤다. “혁명이요? 혁명은 무슨 혁명? 노동자에게 빵 1파운드만 주면 파업은 끝날 거요!” 그러나 군의 생각은 달랐다. “내일이 되기 전에 페트로그라드에서 벌어진 무질서를 무력을 동원하여 멈추게 하라.” 결국 2월 26일 기병대와 수비대는 네프스키 대로와 즈나멘스카야 광장을 향하여 발포를 시작해 150명 이상이 사망하고, 군 사령부는 계엄령을 선포하게 된다. 닥터 지바고에서처럼 군이 무고한 시민들에게 발포하기 시작한 것이다. 2월 27일 병사들과 노동자 시위대는 병기창을 점령하고 1만 정가량의 총을 탈취하여 정부군과 대립하기 시작했고, 러시아의 바스티유 감옥인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감옥을 점령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감옥들로 향해 대부분 보통법을 위반한 8만 명 가량의 죄수들을 석방하게 된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제어할 수 없는 군중의 아시아적 폭력을 드러내는 행동들을 혁명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약탈이 시작되었다.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인가? 도대체 예측이 불가능하다. 많은 피가, 이전에 흘린 어떤 피보다 훨씬 더 많은 피가 흐르리라는 예감이 든다. 막심 고리키” 많은 상점이 털리고 부르주아지는 폭행당했다. 이 ‘영광의 5일’ 동안 혁명의 대지도자인 레닌과 마르토프는 취리히에, 트로츠키는 뉴욕에, 체르노프는 파리에, 그러나 체레텔리와 스탈린만이 시베리아에 머물러 있었다. (맑스의 이론을 현실에 적용한 것은 레닌이였고, 그것을 실천해준 혁명가가 바로 레프 다비도비치 브론테인과 트로츠키다. 그러나 스탈린과의 권력 싸움에서 실패한 트로츠키는 멕시코에서 암살당하고 만다.) 그리하여 멘셰비키, 사회혁명당, 볼셰비키, 노동당의 투사 50명이 토리드궁의 12번 회의실에 모여 ‘노동자 대표 소비에트 임시 집행위원회’를 결성하게 된다. 언론의 자유가 허용되었고, 사람들은 어디에서나 정치문제를 둘러싼 토론을 했으며 도시 곳곳에는 토론회, 총회, 회합, 선거를 알리는 벽보들로 가득찼다. 노동자들은 여덟 시간 노동제와 사회보장을 주장했고, 그리하여 그들은 새로운 권리를 획득하거나 자신들의 주장을 당당히 요구하기에 이른다. 4월 4일 페트로그라드에 도착한 레닌은 ‘4월 테제’를 발표하고 경찰, 군대, 국가 관료 전체의 폐지, 대토지 몰수와 토지의 국유화, 노동자의 기업 관리등을 밝히며 세가지 슬로건 ‘전쟁 중지!’, ‘임시정부 타도!’, ‘모든 권력을 소비에트에게’를 발표한다. ‘7월의 날들’이 지나고 볼셰비키들은 일시적으로 정치의 장에서 쫓겨나게 되지만 러시아 혁명은 지속된다. 빵과 실업과 평화와 토지의 대한 본질적인 문제들 중 명확하게 해결된 것이 단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어두운 본능과 함께 날뛰던 볼셰비즘은 치명적인 상처를 입었다. 이는 퍽 다행스런 일이다 ... 그러나 오늘날 부르주아지 세력이 사회주의자 전체에 대항하여 폭발하고 있다. 반혁명은 이제 더는 유령이 아니라, 현실이 되었다. 막심 고리키” 국가의 권력은 혼돈에 빠지고 무정부 상태가 계속되자 병사들은 탈영하거나 자신에게 수모를 준 장교들을 학살하였고, 농민들은 지주를 약탈하거나 그들의 집을 방화하였다. 수많은 왕족이 죽임을 당했고, 1만 헥타르 정도의 토지가 마을공동체에 분배되었다. 곧 ‘10월의 사회주의 대혁명’이 일어났다. “공장, 병영, 마을, 전선, 소비에트와 별도로 혁명은 또 다른  실험실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레닌의 머릿속이었다. 숨어 살 수밖에 없었던 그는 7월 6일부터 10월 25일까지 111일 동안 중앙위원회 위원들과 회담하는 일조차 제한해야 했다. 그는 대중과의 직접적인 대화나 조직체들과의 접촉 없이 혁명의 근본 문제에 대한 자신의 사상에 더욱 과감하게 집중하여 그것들을 마르크스주의의 근본 문제들로 제기했다. 트로츠키” 수비대, 크론슈타트 해병대, 페트로그라드 혁명군사위원회에 가담한 병사 수천 명, 그리고 공장위원회의 볼셰비키 투사 수백명은 10월 사회주의 대혁명에 참여해 쿠데타를 수행했다. “임시정부는 폐기되었으며, 정부의 권력은 페트로그라드 노동자와 병사 대표 소비에트 조직인 혁명군사위원회의 손에 이양되었다. 이 위원회는 프롤레타리아와 페트로그라드 수비대의 수반으로 조직된다. 이것으로 인민이 투쟁을 벌여 온 목표(즉각적이고도 민주적인 평화의 제시, 토지소유제의 폐지, 노동자의 생산 관리, 소비에트 정부 건립)가 달성되었다. 레닌 혁명군사위원회 선언문” 러시아 10월의 혁명은 그 후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날 혁명들의 기폭제 역할을 담당했다. 세계는 제국주의와 제국주의를 위한 전쟁에 지칠대로 지쳐있었던 것이다. *참고.인용: 러시아 혁명 - 니콜라 베르트, 스토리 세계사 7 - 임영태

별이 붙은 베로모를 쓴 혁명가로 유명한 체 게바라는 사실 의대에 다니는 총명한 학생이였다. 의사가 되기 전 라틴아메리카 전역을 자주 여행하던 게바라는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앞에 쓰러져 가는 수많은 국가들을 직접 목격하며 심한 충격을 받게된다. 당시 카스트로는 맑스레닌주의자 호세 마르티(스페인으로부터의 독립을 외친 쿠바의 혁명 지도자)의 정신을 따르며 반식민주의적 민주주의를 외쳤다. 놀라운 암기력으로 변호사 시험에 거든히 합격한 카스트로는 그 후 도미니카 공화국 이민자들의 인권을 대변하게 된다. 전직 군인이였던 카스트로의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들과 쿠바의 대지를 깊이 존중하라는 것을 어려서부터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르쳐왔던 것이였다. ‘횃불행진Marcha de las Antorchas’를 시작으로 1,953년 아바나 대학에서 출발한 쿠바 군중들은 쿠바(타이노 말로 쿠바나칸 cubanacan는 ‘쿠바의 중심’, ‘쿠바의 한가운데’를 의미한다.) 동부에 위치한 산티아고 데 쿠바 시에서 “혁명, 혁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꽃과 깃발의 행진Marcha de la Flor y la Bandera’을 벌이며 국토를 횡단해 마르티 동상 앞에 도착한다. 이후 카스트로는 바티스타에 의해 산티에고 감옥에 수감되지만 그로 인해 불거진 대대적인 파업과 학생 운동으로 인해 곧 특별 사면된다. 당시 카스트로는 자신을 직접 변호하며 '역사가 나를 자유케 하리라'는 웅변으로 수많은 지지자를 확보한다. 그 후 1,955년 카스트로는 멕시코로 망명해 혁명 동지인 체 게바라를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당시 카스트로는 겨우 29세였고 게바라는 27세였다. 그리고 쿠바는 “애국이 아니면 죽음을 Patria o Muerte”이라는 구호을 외치며 비티스타 정권에 대항해 1,956년 쿠바 혁명을 일으킨다. “바티스타 정부가 4년 동안 저지른 부패는 쿠바인 다수를 부정부패와 연고주의에 진저리치는 냉소주의자로 만들었다. 바티스타는 의회와 언론을 철저히 통제했다. 독재자는 북아메리카의 자본이 쿠바 은행의 목을 조르고, 대부분의 설탕 정제소와 담배 회사, 철도 등 공익사업을 소유하도록 허용했다. 미국의 갱들은 도박과 매춘, 포르노 산업을 지배했다... 끊이지 않는 살인, 잔학행위, 투옥은 더 많은 사람들이 바티스타 정권에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경찰과 육군, 해군, 공군 장교들의 모반이 줄을 이었고, 이것은 바티스타의 장악력을 갉아먹었다. 「카스트로의 쿠바 - 그레고리토지안」” 15세기 콜럼버스의 발견 이후 쿠바는 19세기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하지만 미서전쟁 이후 미국 군대의 군정이 실시된다. 1,930년 마차도의 쿠데타 이후 군사 정권이 들어서고, 1,952년엔 바티스타가 쿠데타를, 1,956년엔 바르킨이 구데타를 일으키지만 실패하고, 1,959년엔 카스트로가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켜 쿠바 정권을 장악한다. 젊은 인권 변호사의 호소력있는 목소리와 젊은 의대 지망생의 역동적인 몸짓들은 몇백년간의 외세와 탐욕스러운 독재자들로부터 지친 순수한 사탕수수 노동자, 시거 마는 노동자, 그리고 학생들을 단숨에 열광시킨 것이다. 그들의 열정적인 혁명은 어쩌면 자본주의 중심에 서있는 은행이 이자를 위해서라며, 또 침체해 있는 내수경기를 활성화하고자, 경기를 부양하기 위해서라며 통화량을 늘려 화폐가치를 하락시키고, 통화팽창으로 돈의 가치가 떨어지면 물가는 오르고, 결국엔 그로인해 디플레이션이 찾아오면 돈의 가치상승이 뱅크런을 만들어 통화량이 수축되고 소비는 위축하게 되어, 상품이 넘쳐도 사용하지 못하며, 상품가치 하락으로 은행에 빛을 진 기업들이 파산하고, 생산과 고용은 줄어들어 이자를 갚지 못해 파산을 끝없이 반복하는 ‘콘드라티예프 파동’이 자신들의 삶을 지배하는 것을 진정 거부했던 것인지는 모른다. 어쩌면 자본가가 이윤을 위해 기계를 들여 노동생산을 높이고, 그러므로 늘어난 ‘상대적 잉여가치’가 노동력 착취로 이어져 임금하락과 실업자를 부르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였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치열한 경쟁을 거부했거나 월가시위가 없을 모두가 평등한 유토피아를 꿈꿔왔는지는 모른다. 어쩌면 그들은 ‘노인의 바다’가 만드는 파도로도 충분한 ‘파동’을 느꼈던 것은 아닐까. 거시경제학을 따른 정부가 개입하는 ‘뉴딜정책’이나, 그 후 주장되어온 ‘시장 스스로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는 신자유주의’에서는 결코 명쾌한 해답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참고.인용: 카스트로의 쿠바 - 그레고리토지안, 역사를 살았던 쿠바

사전을 보면 혁명이란 “권력이나 조직 구조의 갑작스런 변화를 의미한다. 이전의 관습이나 제도, 방식(법식) 따위를 단번에 깨뜨리고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급격하게 세우는 일이다.” 제1차 산업혁명은 1,760년에서 1,820년 사이 영국에서 시작된 새로운 제조 공정과 기술의 혁신을 말한다. 당시 봉건제가 해체되어 누구나 자신의 부를 쌓을 수 있었고, 그리하여 면직물의 수요가 증가하자 자연히 대량 생산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제2차 산업혁명은 1,865에서 1,900년 사이 화학, 전기, 석유 및 철강 분야의 기술 혁신을 일커른다. 이 역시 더 편리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은 불가피했다. (세계대전의 원인도 있었다.) 제3차 산업혁명은 현재를 가르키며, 경제의 패러다임 변화로 수많은 가전제품과 인터넷을 포함한 기술 발전을 의미한다. 그리고 인류는 이제 제4차 산업혁명을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에 앞서 기후변화, 인구절벽, 600개의 글로벌도시,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자율주행차, 가상현실(웨어러블), 3D프린팅, 드론, 바이오기술 등의 혁신을 예상하고 있다. 하지만 위에 제시한 다가올 제4차 산업혁명은 한스 로슬링이 말하는 4단계 20억 명 중 극소수를 위한 것이다. 과연 혁명이 가능할 것인가. 그럼 우리는 다음을 질문해야 한다. ‘혁명이 필요한가.’ 기후변화나 인구절벽 같은 경우, 모두에게 해당되므로 산업혁명이 절실하다. 어쩌면 우리는 예상과 기대보다는 혁명을 조직해야 할 것도 같다. 우리는 에펠탑에 올라 베토벤의 영웅을 들어보며, 또 혁명광장을 걸으며 쇼팽의 연습곡 Op. 10, 12을 감상해야 할 것이다. 우리에게는 사회계약론에밀과 「공산당 선언」과 「자본론」이라는 교과서가 필요하고, 배회하고 있는 하나의 ¨앎¨이라는 유령이 우리의 ¨삶¨에 말해주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혹 누가 이 유령(ether)을 사냥하려고 신성 동맹을 맺은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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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쉿! 저것 봐, 유령이 다시 나타났어! 벼락을 맞더라도 한번 막아봐야겠어. 허깨비야, 게 섰거라. 입이 있거든 말을 해봐. 혹시 이 나라의 재앙을 알고 있는 건 아니냐?」  「크리스마스 때가 되면 새벽을 알리는 닭이 밤새도록 울어서 유령들이 얼씬도 못한다는 말이 있어. 그러면 별들도 마력을 잃고, 요정들도 장난기를 거두고, 마녀들도 신통력을 잃게 된다는 거야. 그래서 그때가 되면 정결하고 복스러운 기운이 넘친대.」

 

 

404 - 4

「이 그림을 태워?」 「안돼, 탈 때 냄새가 나네. 내 원고를, 내 정열을 기울인 원고를..」 「또 읽어주려나? 지겨워.」 「아니, 종이는 재로 돌아가고, 시는 다시 하늘로 돌아가네. 이 세상의 큰 손실이다... 로마의 멸망이다...」 흐릿한 어느 날 무성한 풀섶이 모진 바람에 서그럭거릴 쯤, 길을 잃은 곤충들과 생존의 갈래를 떠도는 야생들은 습기가 스며든 나무가지 아래서 혹독한 천둥과 거친 비를 호되게 그었으며, 청명한 어느 날 예전과 똑같은 무더움이 찾아왔을 쯤, 푸른 빛깔을 띤 맑게 갠 하늘은 신기한듯 거세게 타오르는 대지를 나지막이, 그럼에도 침착한 대지를 또 게염스럽게 내려다 보고 있었다. 비로소 높고 넓은 하늘아래 여름의 거대한 대장정이 시작된 것일까. 하여 은하수를 가르는 화려한 유성의 소리가 존재의 자장가가 되어주고, 밤하늘을 이동하는 이슬의 짧은 여행이 깊은 수면에 빠진 생명들의 자명종이 되어주며, ‘빛의 커튼’ 오로라의 발자취를 찾아 차분하게 내려앉은 안개가 하루의 시작인 새벽의 활력소가 되어줄 때, 어느덧 여름의 축이 된 하늘은 무상한 조양에서 이글거리는 정오로 이동하여 생동하는 대지를 조용히 감싸줄 것이고, 낮동안 스며든 더위를 식히는 검은 그림자들은 낙조가 물들이는 금성과 빛나는 별들의 천문으로 더없는 생기를 띠어갈 것이 분명하다. 더러 계절의 거친 호흡이 생명에 수없는 도전을 가져다 주고, 비록 계절의 변덕이 생명에 때아닌 갈증과 피로를 부른다 하여도, 그래서 걱정만큼 수염이 한없이 자라나는 키다리 옥수수와 날카로운 태양의 시선이 부끄러워 붉게 물드는 토마토와 길어진 일조 덕에 목이 아픈 해바라기가 생겨날지라도, 굵은 장대비는 지독한 폭염을 식히고 작열하는 한 낮의 강렬한 햇살은 곡식과 열매에 더없는 성숙을 불러오므로, 모진 계절의 움직임이 그렇게 자연의 성장을 부를 즈음, 여름은 어느세 놀라운 풍광을 자아내여 삶에 지친 우리에게서 새로운 변화를 이끌어 낼 생활의 활엽수가 되어주기도 하는 것이다. 「나는? 시인이오. 무엇을 하오? 쓰세요. 어떻게 사오? 그저. 가난하나 기쁘게 부자같이 지내오. 시와 사랑의 노래, 꿈과 이상의 나라, 아름다운 낙원, 마음만은 백만장자. 빛나는 그대의 눈동자 조용한 내 마음속을 불같이 태우네. 사랑스러운 눈은 지나간 나의 꿈과 나의 애타는 마음을 어지럽게 해도 난 모르고 있다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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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753년에 로마를 건국한 것은 로물루스다. 하늘에서 내려온 마르스가 왕녀와 사랑을 나누어 쌍둥이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얻었는데, 로물루스의 이름을 따서 이름을 지은 것이 지금의 로마다. 또 다른 해석은 테베레 강의 옛이름인 ‘힘’이라는 뜻의 Ruman, Rumendp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다. 둘은 분할통치를 하기로 결정하지만 결국 레무스는 로물루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로물루스는 100명의 장로를 모아서 원로원을 창설한다. 당시 원로들은 정부의 관직이 아니였고 왕에게 조언을 하는 것이 전부였고, 왕은 그것을 승인하거나 부인할 수 있었다. 원로원은 ‘파테르’라고 불리었는데 건국의 아버지라는 뜻이다. 이리하여 로마는 국가의 기본적인 형태를 조금씩 만들어 나갔다. 로물루스의 뒤로 민회의 찬성을 얻어 왕위에 오른 누마는 로마 시민들을 각종 직능별로 분류하여 목수조합, 철공조합, 염색공조합, 도공조합 등에 소속되게하여 부족간의 대립을 막았다. 누마는 백성들의 일상에 질서를 위해 달력도 만들어 12달과 1년의 날수를 355일 정한다. 누마는 혼자서 자주 숲속에 틀어박혀 있다가 나와 새로운 개혁안을 민회에 제출했는데, (사람들은 그가 님프와 대화를 나누었다고 생각했고,) 그 개혁안은 모두 원로원의 만장일치로 승인된다. 제3대 왕 툴루스 후 제4대 왕이였던 안쿠스가 죽자 타르퀴니우스는 스스로 왕에 입후보하여 선거운동을 펼친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타르퀴니우스는 왕으로 선출되기 위해 로마 전역에서 연설을 하고, 자기한테 표를 던져달라고 시민들을 설득하며 돌아다녔다고 한다. 리비우스” 압도적으로 선출된 타르퀴니우스는 원로원의 의원수를 200명으로 늘렸다. 타르퀴니우스의 신임을 얻어 왕이 된 세르비우스는 군제 개혁을 실시한다. 군제 개혁은 곧 세제 개혁이자 선거제도의 개혁이였다. 당신 군역으로 세를 치루는 것이 전례였고, 세를 치룬 시민은 당연히 투표권을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후 세르바우스를 죽인 타르퀴니우스는 제7대 왕이 되어 선왕파로 알려진 원로원 의원을 모두 죽였다. 이런 독재적 전제군주에게도 하나의 재능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군사적 재능이었다. 그렇게 로마의 일곱의 왕을 뒤로 로마는 500년 동안 이어지는 공화국을 건설하게 된다. 250년 동안의 왕정을 정리하고 기원전 509년에 공화정으로 이행한 로마는 왕을 대신할 초대 집정관 2명을 선출할 제도를 창설하고 200명이었던 원로원 의원을 300명으로 늘린다. 그리고 집정관이었던 발레리우스는 정치와 군사에서는 최고 권력자인 집정관이 국가 재정에는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률을 제정했다. 또한 그는 로마 시민은 사법관이 내린 판결에도 민회에 항소할 수 있는 법률을 제정했다. 이러한 그의 행보로 그는 ‘푸블리콜라’라는 별명, 즉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기원전 509년 부터 기원전 503년까지 4번이나 집관정으로 재선된다. 당시 에트루리아인의 유출로 국력을 잃은 로마는 경제력을 회복하기 위해 오스티아의 염전에서 나오는 소금 판매를 국가로 이관하고 소금을 화폐 대용으로 쓰게 된다. 그리고 타국인들의 로마 이주에 적극적으로 나서 그들에게 로마 시민권을 주고 원로원 의석도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기원전 5세기 중엽에 로마는 불문율의 집성이던 로마법에서 글로 표기한 성문법을 만들게 된다. 지배계급은 처음에는 성문법에 대해 반대하였으나 당시 지형상 로마는 주변국과 잦은 전쟁을 치루어야 했고, 시민들의 뜻을 거슬려 그들이 병역을 거부하고 파업을 하도록 지켜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기원전 449년 동판에 새겨진 12표법이 발표된다. 그럼 그 당시 아테네는 어땠는가. 페리클레스(기원전 495년경 ~ 429년)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우리의 정치체제는 다른 나라의 제도를 흉내낸 것이 아니다. 남의 이상을 추종하는 것이 아니라 남들로 하여금 우리의 모범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 소수의 독점을 배격하고 다수의 참여를 수호하는 정치체제, 그 이름을 민주정치라고 부른다. 이 정치체제는 모든 시민이 평등한 권리를 갖는다. 공적 생활에 봉사함으로써 주어지는 명예도 세인이 인정하는 그 사람의 능력과 업적에 따라 주어지는 것이고, 출신 가문이나 성장 과정에 따라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설령 빈곤 속에서 입신했더라도, 나라에 유익한 능력을 가졌다면 가난하다는 이유 때문에 그 길이 막히는 일은 없다. 우리는 어디까지나 자유로이 공사에 이바지할 길을 가졌으며, 또 사적인 생활에서도 나날이 완벽한 자유를 누리며 살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는 의심이나 질투가 소용돌이치는 것까지도 자유라고 말할 만큼 완벽하다. ......그러면서도 나날의 수고를 잊게 해주는 교양과 오락을 만끽하고, 경기와 제전을 해마다 정해진 날에 개최하고, 주거도 쾌적하게 정돈하는 것이 중요함을 잊지 않는다...... 자녀 교육에서도 상호 간의 간격이 크다. 그들(스파르타인)은 어릴 적부터 엄격한 훈련을 실시하여 용기를 함양하기에 힘쓰지만, 우리는 자유의 기풍 속에서 자라면서도 위기가 닥쳤을 때 물러나는 일이 없다. 우리는 시련을 대할 때에도 그들처럼 비인간적인 엄격한 훈련을 받은 뒤의 예정된 결과로써 대하지는 않는다. 우리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한 결단력으로 시련을 대한다. 우리가 발휘하는 용기는 관습에 얽매이고 법률에 규정되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테네 시민 개개인이 일상생활을 할 때 갖고 있는 각자의 형동원칙에서 생겨난다...... 우리는 질박함 속에 미를 사랑하며, 탁닉함이 없이 지를 존중한다. 우리는 부를 추구하지만, 이것은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뿐, 어리석게도 부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일신의 가난을 인정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함은 깊이 부끄러워한다. 우리는 사적인 이익을 존중하지만, 그것은 공적 이익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에서 발휘된 능력은 공적 사업에도 응용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곳 아테네에서는 정치에 무관심한 시민은 조용함을 즐기는 자로 여겨지지 않고, 시민으로서 무의미한 인간으로 간주된다...... 종합해서 말하면, 우리 아테네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의 학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아테네의 시민이라는 명예와 경험과 자질의 종합체로서, 하나의 완성된 인격을 가지게 된다. 이것이 단순한 말장난이 아니라 사실을 바탕으로 한 진실이라는 증거로, 우리의 이런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으로 구축된 국력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참고.인용: 로마인 이야기 I

자연이라는 고립계에서 선의 정돈된 엔트로피나 악의 어질러진 엔트로피는 열역학 제2법칙에서 보면 크게 다르지 않다. 그것은 흡사 각성의 번뇌와 망각의 두절같고, 그것이 잘 정돈되어 있거나 아무렇게 어질러져 있거나 결국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자연은 어떤 경우에서나 늘 아름답다.) 악이라는 것은 선을 따라오는 것이다. 아무 것도 없는 무에서 유라는 선을 펼칠 때 악은 자연히 선의 배경으로 등장한다. 그러고보면 ‘이익이 충동하지 않는 곳에서는 정의에 대한 욕구는 없다’는 말이 참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어떤 행동에 대한 제한이 불문법에서 성문법으로 이동하는 것을 수없이 관찰할 것이다. 그리고 혹자는 그것에 앞서 좀 더 아름다워지려고 무단히 노력할 것이다.) 또 어떤 ¨아름다운¨ 행동이 그 자체로 바람직하다면, 따라서 이성에 부합하는 의지에 꼭 필요하다면 이것은 칸트의 정언명령에 속한다. 그런데 그 아름다움은 행동이나 예상되는 결과와는 무관하다. 그럼 그것이 선인가. 악이라고 단언한다면 그것은 (승자 독식에 의해) 정의되어 있는 어떤 약속이 파괴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그 정의는 애초에 후자의 아름다움을 고려했는가. 후자의 ‘자연적’ 아름다움은 칸트의 그 어떤 경험적 목적에 상관없이 선험적으로 정해지는 ‘순수 실천 이성’일 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고정된 시선이 우리가 배운 윤리와 도덕이라는 틀을 통해 후자의 아름다움을 목격한다는 점이다.) 제국주의 시대와 혁명의 시대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정의는 전체에게 공평하지 못하고 모두에게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없다. 그러나 정의가 공리사회의 가치와 기준에 그같은 작은 모순을 가져온다해도 우리는 다수의 이윤과 목적을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들어난다. 정의란 누구에게는 큰 이익을 가져다줄 수 있는 반면, 또 다른 누구에게는 오히려 피해를 입힐 수 있는 모순을 안고 있다. 누가 어떤 땅에 울타리를 치고 자신이 이 땅의 주인이라고 정의한다면 그 땅의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고 사용하던 그 누군가는 피해를 보게 된다. 그럼 무엇이 선이고 그 선은 누구를 위한 선인가. 벤담은 정의란 최대 다수에게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많을 때 나오는 보편타당성이라고 말한다. 이런 공리주의는 전체의 복지가 불가능하고, 그래서 롤스는 신칸트적 좌파 자유주의인 자유지상주의를 주장한다. 자유지상주의는 자본주의의 폐지를 지향하며 생산수단의 사적소유를 반대하는 동시 공유를 지지한다. 그러나 우리는 유교적 친족간의 관계와 덕의 함양을 주장하면서도 공동체주의가 초래하는 거대한 관료제도에 반기를 들며 무언가 새로운 것이 없는지 주변을 수시로 살핀다. 고대 로마의 과두정치와 2명의 집정관의 1년이라는 짧은 임기, 그리고 1개월씩 번갈아 통치하며 통치하지 않는 달에는 상대 집정관의 정책에 동의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방법이 좋을지도 모른다. (기원전 218년부터 기원전 202년까지 이어진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한니발이 로마의 동맹국과 속주국들, 그리고 식민도시들의 이반을 꾀했어도 쉽지 않았음을 보면 당시 로마 연합의 시스템은 사회가 보았을 때 확실히 정의로웠다. 로마는 기회가 주어지면 노예한테도 시민권을 주고 그들을 사회의 구성원으로 삼았던 것이다. 그리고 로마는 조세나 연공을 받는 프로빈키아보다는 동맹국으로써 전쟁을 함께 수행할 수 있는 관계를 더 선호했다. 승전 후 강화 조치에서도 상대가 수락할 수 있는 한도에서 선을 그어 그들이 훗날 우방이 되는 것을 바랬다. “로마는 소수가 지도하는 과두정 체제를 채택한 공화국이다. 정책을 세워도, 그것이 당장 실천에 옮겨지는 군주제 국가가 아니다. 또한 사전 교섭만 잘하면 가장 짧은 시간 안에 정책을 실행할 수 있는 관료제가 완비된 국가도 아니었다. 공화정 로마에는 지도층이 결집된 느낌을 주는 원로원이 있었다. 이 원로원을 설득해야만 비로소 입안한 정책을 실시할 수 있다. 원로원에서 승부를 결정짓는 것은 오직 변론뿐이었다. 그래서 라틴어의 특징인 간결함과 명료함은 로마인들이 변론을 무기로 삼을 수밖에 없었던 데 따른 결과가 아닐까 한다. 「로마인 이야기 II」”) 그리하여 존 밀은 한 사람을 제외하고 모든 인류가 한 가지 의견이라 하더라도 인류는 그 한 사람을 침묵시키는 것이 부당하다고 말한다. 왜 그런 것인가. 우리의 시대정신은 아직 정의되지 못해서 인가. *참고.인용: 로마인 이야기 II

로마는 기원전 509년에 공화정을 채택하였다. 그렇다고 모두가 평등했던 것은 아니였고 귀족계급과 평민층 사이의 대립 또한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리하여 기원전 367년 리키니우스의 법으로 모든 공직이 평민층에게도 개방되고 평민집회에서 의결된 사항은 국법으로 삼는다는 호르텐시우스 법이 제정된다. 기원전 200년부터 카르타고가 멸망한 기원전 146년까지 로마가 매년 새롭게 선출하는 집정관 수의 합은 108명이었는데 ‘호모 노부스’라고 불리는 신참들은 그 중 8명에 불과했고 나머지는 28개 일족에 집중되어 있어서 로마 시민 사이에서도 기득권을 갖은 일종의 귀족층과 일반 서민층이 자리했다. 사실 원로원의 시작은 왕을 위한 자문기구였을 뿐이었으나 한니발 전쟁을 겪은 후로부터 원로원에 권력이 집중되었다. 원로원에는 속주나 동맹국의 사절을 관리하는 외교권을 갖고 있었고, 비록 주요 공직이 민회에서 선출된다지만 그것을 실질적으로 결정하는 인사권이 원로원에 있었다. 또한 원로원은 속주의 조세제도를 결정하는 재정권도 가지고 있어서 국세청 역할도 병행했던 것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사법권조차 재판의 기관의 장은 원로원 의원인 법무관이었고, 배심원단 역시 원로원 의원이 독점하고 있었다. 집정관 선출권이 민회에 있다고는 하지만 선출된 집정관을 관리하는 것 또한 원로원이 결정했다. 한 기관에 이렇게 많은 권력의 집중에도 불구하고 사회에 불만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하자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같은 시스템에도 문제가 있었다. 원래 농경민이었던 로마 시민들은 국유지를 빌려 밀밭은 1/10, 그리고 올리브밭이나 포도주밭은 1/5의 임대료를 내고 가족 단위로 농업을 했다. 하지만 노예라는 값싼 노동력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해지자 가족 단위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대규모 농장에서 나온 수확물로 인해 피해를 보거나 빚을 지게 되었다. 당시 원로원 의원은 상업에 종사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으나 (로마 시민은 누구나 농업에 종사할 수 있었으므로) 한사람에 제한되는 125헥타르의 농경지를 가족이나 친척의 명의로 임차하여 대규모 농장을 경영한 것이다. 그리하여 차츰 자작농들은 부채로 인해 땅을 몰수당하거나 헐값에 자신의 임차지를 팔고 실업자가 되어 사회 문제로 이어졌다. 당시 로마는 실업자에게 병역이나 직접세를 면제해 주었는데 사람들은 그것을 로마 시민으로써 수치로 여겼다. 그리하여 편법을 금지하는 농지개혁법을 주장하는 의견들이 속속히 등장하게 된다. 그런데 로마 시민에게만 주어지는 토지 임차권에는 또다른 문제가 있었다. 당시 로마에는 투표권과 항소권을 갖은 ‘로마 시민권’과 그렇지 않은 ‘라틴 시민권’이 있었다. 이들은 직접세를 내지 않았으나 ‘로마 연합’ 동맹시 주민들은 ‘이탈리아인’이라고 하여 로마에 직접세를 냈다. 제2차 포에니 전쟁 전까지만 해도 로마 시민은 병역 의무가 가장 무거웠고 병역에 종사하는 동안의 식비도 자신이 부담해야 했다. 반대로 라틴 시민이나 이탈리아인은 무료로 배급을 받았고 전리품에서도 로마 시민과 동등하게 분배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로마 시민에만 주어지던 전시국채는 폐지되었으나 라틴 시민과 이탈리아인들의 조세는 계속해서 로마에 상납되었다. 그리하여 라틴 시민에게 로마 시민 자격을, 이탈리아인에게 라틴 시민의 자격을 주자는 개혁안이 제출된다. 그러나 이같은 개혁안을 제안한 티베리우스와 가이우스는 살해당하고 만다. 그리고 모두에게 공평한 농지법은 자취를 감추게 되고 국유지 임차권의 양도가 법률화되어 소유 상한선도 철폐된다. 그리하여 원로원은 쇄국주의로 제국주의를 꿈꾸며 시민권 개혁법조차 폐기처분해버리고 만다. (그러고보면 전쟁은 라틴 시민과 이탈리아인에게 ¨선¨이였던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로마 시민권이 없는 동맹시들이 불평등을 그대로 지켜보고 있지만은 않았다. 그들은 맹주 로마에 반기를 들었고 한니발이 그토록 원했던 ‘로마 연합’의 해체를 실현하여 ‘이탈리아’라는 신생국을 탄생시킨다. 그리고 로마와 이탈리아는 형제와 같은 상대와의 전쟁 끝에 ‘율리우스 시민권법’으로 ‘로마 연합’에 살던 모두는 로마 시민이 된다. 로마는 이제 국가의 핵심적 도시에 사는 시민을 중심으로 하는 도시국가에서 벗어나 새로운 형태의 국가를 만든 것이다. *참고.인용: 로마인 이야기 III

기원전 6세기 로마는 공화정을 수립하고 명망있는 인물들로 구성된 300명의 원로원 의원과 1년에 한 번씩 지명되는 집정관 제도를 통해 500년간 번영을 누렸다. 또한 로마는 귀족들의 정치 독식에 서민들의 불만이 커지자 기원전 494년 민회를 세우고 호민관이 평민들의 의견을 수렴하여 원로원과 집정관을 견제하게 만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기원전 81년에 술라가 원로원이 승인한 “독재관”이 되어 권력을 휘두르므로써 수백년동안을 이어온 견고한 로마 공화정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독재관이 된 술라는 형사재판의 배심원 자격을 원로원 의원으로 한정시켰다. 당시 귀족들의 부패가 만연했던 로마에서 키케로는 기원전 80년 섹스투스 로스키우스 사건을 통해 법률가로써의 명성을 떨치고 있었고, 디시 가이우스 베레스의 부패를 척결하기 위해 원로원 원단(법정)에 나서게 된다. “내가 여러분 앞에 가져온 이 사건은, 제대로 판단할 수만 있다면 사법 절차에 대해 로마 시민들에게서 잃어버린 신뢰를 되찾고, 우리의 동맹국들로부터도 만족스러운 반응을 얻을 기회입니다. 가이우스 베레스는 공공기금의 횡령꾼이며, 아시아와 팜필리아의 꼬마 폭군이며, 시칠리아의 도시들로부터 권리를 박탈하고 오욕과 폐허만 가져온 강도입니다. 여러분이 신에게 맹세한 그 엄격함과 공정성에 바탕하여 이 인물에게 판결을 내릴 수 있다면, 여러분은 자신에게 마땅한 권위를 계속 지켜갈 수 있을 것이오. 그러나 혹시라도 이자가 막대한 부로 정의를 추구하는 법정의 존엄성과 정직성을 매수할 수 있다면, 그래도 나는 한 가지만은 증명하는 셈이 될 것입니다. 지금 공화국에는 재판정에 세워 마땅한 범죄자나 그런 범죄자를 고발할 용기 있는 검사는 있지만 진실된 판결은 없다는 것을.” 이 사건을 뒤로 키케로는 기원전 63년에 집정관 자리에까지 올라가게 된다. 하지만 암살된 카이사르의 양아들 옥티비아누스가 키케로를 지원하지 않고 얼마 후 그를 블랙리스트에 올리게 되면서 키케로는 죽음을 당하게 된다. 그리고 로마는 500년간의 공화제를 뒤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르 옥타비아누스를 로마 초대 황제로 추대하게 된다. *참고.인용: 세계를 발칵 뒤집은 판결 31 - L. 레너드 케스터

몽테스키는 모든 존재가 자신들만의 법을 갖고 있고 각자의 법은 그것과 상이한 존재들 간 관계이자 상호 관계라고 설명한다. “모든 존재는 그들의 법을 갖는다. 신들도 그들의 법을 갖고 있다. 물질세계도 그것의 법이 있다. 인간보다 우월한 영적 존재들도 그들의 법이 있다. 짐승들에게도 그들만의 법이 있다. 인간들도 그들의 법이 있다. 그리고 법은 그것과 상이한 존재들 간 관계이자 이 여러 존재들 상호 간 관계다. 창조자나 보존인과 마찬가지로 신은 우주와 관계를 맺는다. 즉 신이 천지를 창조했다는 법은 곧 신이 천지를 보존한다는 법에 다름 아니다. 신은 이 법칙을 알기 때문에 그것에 따라 행동한다. 신은 이 법칙을 실행했기 때문에 그것을 안다. 신은 이 법칙이 자신의 지혜나 힘과 관련을 맺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실행했다. 「법의 정신」” 자연법이란 언제 어디서나 자연히 존재하는 보편적 불변의 법칙을 말한다. 하지만 지식과 감정이 있는 생명체는 때로는 자연법을 따르지 않는다. 새로운 지식과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감정이 돌발적인 행동을 만들기 때문이다. 자연법 외 민족 상호 간 관계 속에서 나타는 법을 만민법이라고 한다. 고대 로마는 수많은 외국인들과 로마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래서 로마는 세계적인 대국으로 발전하기 위해 여러 도시와 여러민족의 입장을 대변해줄 수 있는 법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바로 만민법이다. 만민법은 여러 관습들 중에서 공통적으로 존재하고 인정된 규칙과 원칙들만을 규정하여 모든 민족에게 통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만민법은 원래 다음 원칙을 바탕으로 성립한다. 즉 여러 민족은 각자의 참된 이익을 손상하는 일 없이 평시에는 서로에게 최대한의 선을, 전시에는 최소한의 악을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법의 정신」” (각 사회는 만민법 이외에 정치법이 있다. 인간은 서로와 협력하고 더불어 살아야하기 때문이다. 또한 정체에는 세 종류가 있는데 공화정체, 군주정체, 그리고 전제정체가 그것이다. 공화정체는 국민들이 주권을 갖는 정체이고, 군주정체는 한 사람이 제정된 불변의 법에 의거하여 한 민족이나 집단을 다르리는 정체다. 그리고 전제정치는 통치자나 법없이 자신의 의지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만민법의 예를 살펴보자. 2,015년 난민 4,000명이 고무보트를 타고 유럽으로 가려다가 지중해에서 익사 당하는 사건이 있었는데, 해양지 해변에 떠밀려온 죽은 아이들을 보고 세계는 경악하게 된다. 그리고 세계는 그 비난을 절박한 난민들로부터 1,000유로나 수수료를 받고 이동시키는 알선자들에게 돌렸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다. 터키에서 스웨덴이나, 리비아에서 런던으로 가는 항공은 50유로 미만이였고 그들이 공항으로 가는 것은 매우 쉬운 일이였다. 하지만 문제는 유럽연합 회원국이 불법 이민에 대처하는 규정을 정해놓은 2,001년 유럽 이사회 지침 때문이였다. 예를 들어 적절한 서류를 갖추지 않은 사람을 유럽으로 보내 그들을 본국으로 다시 송환할 시 그 모든 비용을 항공사와 선박 회사가 지어야 한다. 그런데 모든 서류를 완벽하게 준비하고 유럽으로 가는 난민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또 다른 문제는 어떻게 탑승 수속 카운터 항공사 직원이 주어진 단 몇분안에 그들을 제네바 협약에서 인정하는 난민인지 아닌지를 구분할 수 있느냐다. 그래서 항공사는 그들을 거부할 수 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들이 8개월을 기다려 비자를 받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항공을 이용하거나 비자를 받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난민 신청을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럼 좋은 배를 타고 갈 수 없을까 생각하게 되지만 사실 유럽연합에 도착하는 난민의 배는 무조건 압수 당하기 때문에 그들은 좋은 배를 타고 유럽으로 건너갈 수 없는 것이다. 참고.인용: 팩트풀니스】 원시인, 문명인, 국가 모두에게 적용할 수 있는 만민법은 과거 이탈리아종족들의 관습들 가운데 만들어져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부분만을 교정한 것이므로 이 법은 최대다수를 위한 정의이며 형편상 어떤 사람에게는 선이 될 수 없기도 하다. “따라서 비록 로마 주변의 다른 국가들에서는 재산양도가 다른 형태로 행해지더라도, 실제 이전이 되도록 한 실제 물건의 양도(transfer), 인도(tradition) 혹은 명도(delivery)는 절차의 일부였다. 이를테면 비록 부수적인 부분일지라도, 로마에서의 독특한 면제나 양도방식이 그 일부였던 것이다. 고대법 - 헨리 S.M.” 따라서 정의는 공동체가 더불어 함께 살아가기 위한 소통의 도구이자 사회가 합의하에 정한 관습과 규칙을 따르는 공동의 표석이 될 뿐이다. “정의의 관점에서 판단한다면 자연은 공정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그는 한 사람은 건강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은 병들게 만들고, 한 사람은 영리하게, 그리고 다른 사람은 바보스럽게 만든다. 사회질서는 자연의 부당함을 완전히 제거할 수 없다. 정의란 무엇인가 - 한스 켈젠” 한스 켈젠은 서로 모순되는 두 가지의 견해 중 무엇이 옳은지를 합리적이고 학문적인 방법으로 결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고 말한다. 아무리 다수를 위한다고 주장하여도 소수의 피해를 묵인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사회가 말하는 다수의 정당성은 상대적이며 절대적 가치가 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404 - 5

 

“만사 끝이 좋으면 다 좋게 되는 법이니 좋은 일이 아니냐. 씁쓸한 지난 일은 다 흘려버리고, 앞으로 달콤한 일들만이 반갑게 찾아 올 거다.” 나: 「어떻게 그리 확신해요?」  「사실 난 똑똑하고 가난하죠.」 나: 「똑똑하고 가난한 건 나지.」  「왜 그리 똑똑하다고 생각하지?」 나: 「당신과 커피는 안 마실 테니까.」  「마시자고 할 생각도 없어.」 나: 「그러니까 멍청하다는 거지.」

“[모든] 사람은 그 자신의 인신(person)이라는 재산을 소유한다. 신체와 재산에 대해 그 자신 이외에는 아무도 권리를 가지지 않는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그의 신체의 노동과 그의 손의 작품은 온전히 그의 것이라고. 그래서 그가 자연이 제공해준 상태로부터 제거하고 자연에 남겨둔 그 무엇이든, 그가 그의 노동을 거기에 혼합하였고, 그 자신의 것인 어떤 것을 자연에 결합했고 그렇게 결합함으로써 그것을 그의 재산으로 만든다. 그가 그것을 자연이 제공한 공통의 상태로부터 제거했기 때문에, 그것은 이 노동으로 인해 그것에 더 보태진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 그 어떤 보태진 이 노동이 그 노동자의 의문의 여지없는 재산이므로 이 사람을 제외한 그 누구도 한 때 결합되어 있던 권리를 가질 수 없다. ... 떡갈나무 아래에서 주은 도토리로 혹은 숲속 나무로부터 채집한 사과로 영양을 섭취하는 사람은, 분명 그것들을 자신에게 전용했다. 아무도 그 섭취가 그의 것임을 부인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묻는다. 언제 그것들이 그의 것이 되기 시작했는가? ... 그 대답은 명백하다. 만약 첫 번째 채집이 그것들을 그의 것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그 외의 어떤 것도 그렇게 할 수 없다. 그 노동이 그것들과 공통의 것을 구분했다. 그 노동이 그것들(도토리와 사과)에게 모두의 어머니인 자연이 한 것 이상으로 어떤 것을 보탰다. 그렇게 그것들은 그의 사적 권리가 되었다. 그가 모든 인류로부터 그 도토리와 사과들을 그의 것으로 삼아도 좋다는 동의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거둔 도토리들과 사과들에 대한 아무런 권리가 없다고 어떻게 말할 수 있겠는가? ... 만약 그와 같은 동의가 필요했다면, 신이 그에게 내린 풍성함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굶주렸을 것이다. 우리는 [협약(compact)에 의해 그런 상태로 남아있는] 공동소유(commons)에서 알게 되는 사실은, 공동의 것으로부터 일부를 취하는 것, 그리고 그 일부를 자연이 남겨둔 상태로부터 제거하는 것이 재산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재산이 없이는 공동소유는 아무 소용이 없다. 존 로크” 

빛이 있어야 어둠이 존재한다. (흼이 있고,) 흼의 부재가 바로 검정이다. 모든 색의 조합은 흼이고, 모든 색의 부재는 검정이다. 알랭 바디우는 이렇게 말한다. “검은 색은 색채의 무이며, 하얀색은 색채의 전체다.” 흼과 앎의 배경은 무無이자 어둠이다. 무는 전체의 필연이다. 로크에게 자연은 공통의 상태다. 그리고 자연이 제공해준 상태에서 노동으로 어떤 것을 공통의 상태로부터 제거했을 경우 그것은 노동자의 의문의 여지없는 재산이므로 그것은 그의 권리가 된다. 자연이 한 것 이상으로 어떤 것을 보탰을 때 그것은 사적인 권리가 인정된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자연법칙이라는 것은 공통의 상태에서 누군가가 어떤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행위에서 비롯된다. 그리하여 자연법(칙)은 무로부터 그의 권리를 보호해준다. 사실 무는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에게 색채라는 권리가 주어지자 무는 그에게 해가 되었다. “자연법(적) 윤리학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을 위해서 ‘선’(goodness)이란 그 유형의 피조물을 위하여 최선의 것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판결을 내린다. 그러므로 ‘선’이란 그 피조물의 속성에 달린 것이다. 인간의 경우에, 자연법(적) 윤리학은 인간의 본성에 있어 최선의 것을 달성하는지 혹은 좌절시키는지에 의해 선악이 결정될 수 있다고 천명한다. {사전에서 ‘자연법’이란 사람들에게 원초의 상태에서 부터 적용된다고 할 수 있는 당연한 권리나 자연적 정의이라고 설명한다.} 자연법은, 그래서, 인간에게 무엇이 최선인지 자세히 밝힌다. 무슨 목적들을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지, 인간의 본성과 가장 조화로운 목적들이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의 본성을 충족시킬 최선의 성향을 지닌 목적들이 무엇인지 자세히 밝힌다. 그래서 중대한 의미에서, 자연법은 인간에게 ‘행복의 과학’(science of happiness)을, 그의 진정한 행복으로 이끌 길들을 제공한다. 「자유와 윤리」” 과연 그의 아름다움은 행복을 제공하는가. 우리에게 무엇이 선하다는 것, 즉 좋다는 것은 그것이 주는 효용, 가치, 만족으로 결정된다. 나의 자유, 곧 자신을 위한 선은 누군가에게 구속을 초래하기도 한다. 만약 토리당의 A정책이 휘그당의 B정책을 맞선다면 토리당이 정권을 잡았을 경우 휘그당 지지자들은 어떠한 불이익을 당하게 된다. 그럼 휘그당 지지자들은 공리주의의 열변인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만족해야 하는가. 롤스는 정의를 위해 두가지 원칙을 제안하고 있다. 첫째는 (정치과정을 참여할 자유, 언론의 자유, 양심의 자유, 인격의 자유, 자의적인 구속과 압수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개인적 재산을 가질 권리에 대한) 최대한의 평등한 자유 원칙이고, 두번째는 최소 수혜자들에게 최대한의 혜택이 돌아가도록 하며 공정한 기회평등의 원칙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는 모두에게 공정한 기회평등을 준다고는 하지만 제논의 역설처럼 제 아무리 뛰어난 아킬레우스라도 거북이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는 구조다. 그럼 어떻게 권력을 나누고 어떻게 서로를 견제하여 더불어 사는 균형을 이룰 수 있을까. 케이크를 선물받은 두 아이가 그것을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은 두 아이 중에 케이크를 나누는 아이와 고르는 아이를 각각 정하는 것이다. *참고.인용: 헌법을 쓰는 시간 - 김진한, 맑스와 정의 - 엘런 E. 뷰캐넌 

“문명이 발달하면서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에 관한 의견이 생겼다. 당위{마땅히 해야 하거나 되어야 하는 것}의 세계가 생겨난 것이다. 당위의 의견은 인간들에게 판단과 행동을 요구하는 힘을 갖게 되었다. 당위에 따르는 인간들의 행동에 의해 세상이 변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만 있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당위의 의견이 현실과 사실을 변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당위’는 세상의 모습이 어떠해야 한다는 가치이고 판단입니다. 옳다, 그르다를 포함해 사람들마다 생각과 양심에 따라 다양한 판단을 하게 되는 것이 당위입니다. 각자 자신의 생각에 따라 다양한 의견들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진실과 거짓은 없습니다. 법학이란 이런 당위를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헌법을 쓰는 시간 - 김진한” 법은 의견이고 당위다. 벌들이 윙윙거리는 호박꽃이 아름답다는 것은 단지 개인의 의견일 뿐이다. (그리하여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행위는 당위를, 다수의 당위는 정의를 이룬다.) 내가 생각하기에 존재할 수 밖에 없는 것, 존재해야만 하는 것, 이루어져야만 하는 것이 당위다. 의견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황적인 우리의 생각에 존재한다. “의견에 진실과 거짓은 존재할 수 없지만, 공정함과 공정하지 않음은 존재한다. 헌법을 쓰는 시간 - 김진한” 다음은 1649년 영국의 국왕 찰스 1세의 당위다. “왕이 신하를 사형시키는 것과 신하가 왕을 사형시키는 것 어느 쪽의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짐은 그대들의 왕임을 기억하라.” 그러나 런던 시민들의 당위는 달랐다.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왕권의 폭정을 반대한 다수의 의견은 350년이 지나도록 영국 의회가 다수를 위한 헌법을 존중하고 민주주의를 실행시킬 수 있는 밑거름이 되어준다. *참고.인용: 헌법을 쓰는 시간 - 김진한, 맑스와 정의 - 엘런 E. 뷰캐넌

인간은 식물이나 동물처럼 본능이나 생물학적 필요성 외에도 의지적인 선택을 한다. 그것은 인간이 이성적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종종 인간은 자연적인 경향성을 따르지 않는 경우가 있다. 그럼 존 맥키의 주장대로 객관적 가치란 존재하지 않고 ‘윤리적 가치, 의무, 정의와 불의의 개념, 경멸받아 합당한 행동들 등은 모두 개인의 주관적인 표현일 뿐’이며 그것을 우리는 객관적인 것으로 만들거나 절대화하는 것은 문제가 되는가. (cf. J. Mackie, Etica) 예를들어 (현인류에서) 인간에게 생명은 선한 것이고 생명을 거스르는 것은 악에 속한다. 인간은 생명이 단지 자신을 위한 선일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있어서도 선이라는 것을 숙지하는데에 엄청난 시간과 피의 대가를 치뤄야 했다. 다수의 인류가 이성적인 판단으로 생명을 선이자 자연법으로 이행하는데는 자고로 수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과연 우리의 모든 행위가 이처럼 윤리성을 지니는가. “간단하게 말해서 선한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행위들이 있는가? 대답은 긍정이기도 하고 부정이기도 하다. 긍정적 의미에서 어떤 행위들은 그 자체로 선한 것도 악한 것도 아닌 것들이 있다. 사실 중립적인 행위들이라고 말하는 것도 구체적으로 보면 항상 특별한 윤리성을 취하고 있다. 말하고 싶은 것은 우리가 일단 중립적인 행위라고 하는 것들을 행하는 경우도 우리의 지향에 따라서 그 행위들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색깔을 칠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자연법, 토마스 스칸드롤리오” 우리가 자동차를 타는 것은 중립적인 행위였다. 그러나 우리가 자동차를 이용하면서 야기되는 대기오염과 지구온난화는 윤리적인 관점에서 악이다. 다시말해 ‘우리’의 ‘양심’은 냉전(冷戰) 때와는 크게 다르다는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목적이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자연법은 시간에 따라 변경되고 변질되는가. 자연법은 인간 본성에 기초하기 때문에 기본 원칙에서 불변하지만 우리가 바라보는 세계-내-존재는 언제고 새롭게 갱신한다. 단지 인간의 본성natura은 언제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때문에 그것을 기초로 한 자연법은 자연적인naturale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토마스 스칸드롤리오는 향락주의가 우리의 습관을 바꾸어 양심을 악하게 만들 수 있고, 그래서 우리의 지성을 어둡게 만들 수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우리에게 주어진 인간 본성에 흠집을 낼 수 없고, 자연법은 그렇게 손상되거나 제거될 수 없는 인간 본성 안에 새겨져 있다는 것이다.)  *참고.인용: 자연법 - 토마스 스칸드롤리오



중세 초기의 권력자들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을 위한 체계적이고 보편적인 법을 만들지 않았다. 【중세란 로마 제국의 몰락(476년)에서부터 근세(1500-1800년)가 시작되기까지의 세기를 말한다.】 그들은 정치적인 권력을 정의하기 위해 법적 제도를 정비했으며, 그리하여 이 시기에 제정된 법은 사회의 구성원들과 모든 영토에 동일한 구속력이 없었다. 그래서 각 지역 사회에 존재한 관습법이 권력자들이 공포한 법령이나 종교법과 동일한 위상을 지니며 당시 법적 시스템이나 체계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같은 영지에서 생활하는 경우라 하여도 개인의 권리와 연관된 원칙은 서로 다르게 적용되었으며, 서로 다른 민족들은 통합하지 않고 자신들의 고유한 사회적인 관습을 따랐다. 관습이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지역이나 민족에 따라 법적 전통이 달랐으며, 따라서 중세 유럽에는 다른 관점에서 만들어진 다양한 법령들이 존재했다. 그래서 중세법 관계자들은 관습을 증명하고 관습을 관찰했으며, 법제를 구성하는 행정관들은 관습을 존중했다. 차츰 성문법의 필요성에 따라 법령을 적기 위해 라틴어가 사용되었고, 민족의 권리는 관습법의 형태로 구전되었다. “그렇게 해서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까지 다양한 법전이 등장했다. 「서고트 법전Lex Visigothorum」, 「부르군트 법전Lex Burgundiorum」이나 클로비스가 프랑크 민족에 적용하기 위해 공포했던 「살리족 법전Pactus legis Salicae」이 대표적인 실례들이다. 이후로 643년에 로타리 왕(?-652, 636년부터 왕)은 「칙령Edictum」(이하 <로타리 칙령>)을 통해서 랑고바르드족의 법적 전통을 법제로 구성했다. 같은 맥락에서 7세기부터 영국 군주들은 유럽 대륙의 전통과 달리 지역의 속어(벙언)를 활용해서 법전을 공포했다. 서고트족의 왕국이나 부르군트족의 왕국에서 법령의 공포는 로마의 법을 참고했다. 예를 들어서 「부르군트의 로마법Lex Romana Burgundiorum」은 180개의 법령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테오도시우스 법전」, 「헤르모게니아누스 법전」, 「그레고리우스 법전」과 파울루스의 「격언Sententiae」과 「가이우스의 책Liber Gai」을 참고로 제작된 것이다. 「서고트의 로마법Lex Romana」은 알라리크 2세가 507년에 공포한 것으로, 갈리아 지방의 프랑크족과 이탈리아의 랑고바르드족에게도 적용되었고, 이후로 오랜 세기 동안 서유럽 지역에서 로마법을 이해하기 위한 중요한 사료로 남아 있었다. 중세 I - 움베르토 에코” *참고.인용: 중세 움베르토 에코

11세기와 12세기 사이 문화적인 번영의 영향으로 도시화와 제조업 활동이 증대하고 농산물의 생산이 늘어나면서 관습법의 한계로 인해 새로운 법적 수단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학자들에 의해서 로마법으로 새롭게 불린 유스티니아누스 대법전이 문헌학적으로 제구성된 「학설휘찬Digesta」, 「칙법휘찬Codex」, 「법학제요Institutiones」, 「신칙법Novellae」로 재발견된다. “11세기와 12세기의 사회.경제적인 변화로부터 새로운 법 규정에 대한 요구들이 나타났으며, 「로마법 대전」의 복구와 연구를 시작으로 볼로냐 주석가들의 학교에서 시작된 이론 작업이 그러한 요구에 부응하고자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대학의 번성을 통해 새로운 법학은 유럽 수준으로 도약할 수 있게 되었으며, 새로운 법률인 ‘보통법common law’의 모태가 되었다. 중세 II - 움베르토 에코”  

“군주제 강화, 법 이론의 실질적인 영향, 교회 입법의 영향력은 중세 후반에 등장한 형법 체계의 근대화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요인이었다. 반면 잉글랜드에서는 12세기부터 기소 형태로 3인 배심원 제도가 등장했다. 13세기 유럽 대륙에서는 로마-교회 재판(소)의 이단 재판을 위한 범례가 확립되었다. 중세 III - 움베르토 에코” 민사재판과 형사재판이 구분된 것이 바로 12-13세기다. 민법이란 개인간의 권리와 의무를 정해주는 법으로 가해자의 위법행위가 피해자에게 물권적인 손해를 주었을 때 그 손해를 보상해주는 법이다. 형법은 민법과 상관없이 재판을 통해 국가가 개인에게 형벌을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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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efresher :

Elephant

2020. 3. 5. 05:47 from 隨筆

2040

 

고통이나 감정과 같은 인간의 의식은 현재 나에게 없는, 그러나 나에게 필요한 것-의식주, 또는 안식이나 사랑같은-, (알지 못하나 이미 알고 있는 것, 호흡의 원리를 모르나 호흡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산소과다증은 천천히 숨쉬며 자신이 내뱉은 공기(이산화탄소)를 다시 호흡하면 되고, 고산지대에서 산소결핍에 처할 경우는 코카차를 마시면 된다. 물에서 산소를 분리해 낼 수도 있지만 쉽지는 않다. 산소는 광합성 작용으로 만들어 지는데 대양의 식물성 플랑크톤과 조류가 75%, 육상 식물이 25% 산소를 만들어 우리에게 공급하는 것이다. 전자를 이끄는 산소가 에너지 대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이화작용으로 APT를 저장하고 분해하며 포도당과 같은 유기물질을 분해해 에너지를 만든다. 이산화탄소는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에서 함류된 탄소와 수소가 산화됐기 때문이다. 산소호흡으로 혈액중의 산소농도가 증가하고, 헤모글로빈 수치가 증가하고, 혈류량이 증가하고, 혈관벽에 불순물을 제거한다. 산소를 공급하기 위해 약 2,000리터의 혈액이 뇌에 유입되고 전체소비량의 산소는 25%를 차이한다.】것을 들어내는 표현이다. 의식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필요한데, (모든 생물들이 갖춘) 본능과 기본욕구를 추월한 인간의 의지가 생이 가져다준 죽음에 주이상스(Jouissance: 무의미한, 고통스러운 즐거움)를 선사한다. 죽어가는 자신은 행복할 수 없는데, 망각으로 인해 삶이 착각되고 한편으론 즐거운 것이다. 그렇게 망각된 사건은 희극이나 비극이 되어 기억의 바다에서 줄곧 회상되고 (여기서 재생된 기억은 피그말리온이라는 환상을 만들어 감성을 자극한다), 잡을 수 없는 크로노스의 뒷머리처럼 현재에 이끌려 시간을 만든다. 시간은 곧 빛인데, 시간이 없는 무는 시시포스(저승의 신 하데스를 농락한 코린토스의 왕)의 영원한 반복과 같은 죽음의 상태다. 욕망이 사랑이라면, 나의 여백을-죽음이라는 실체- 채우기 위한 이같은 에로틱한 행각이 이끌림으로(원자들 사이의 중력, 중력이 없다면 모든 것은 흩어진다) 깨어날 때(믿음이 거울효과Mirror neuron로 각성을 시작하게 되므로) 삶은 다시 시간속에 아름다움을 피워낸다.

 

도덕을 기초로 한 정언명령은 니체가 말했듯이 조물주의 뜻과 다를 수 있다. 도덕의 시초는 이기적인 유전자로부터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소유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후부터 도덕은 사회적 안정이라는 명분으로 이미 형성된 계층을 더욱 곤고히 다져갔다. 한마디로 빈부의 격차는 도덕의 작품이자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사랑에서 비롯됐다. 조물주가 (죽음이 존재하는 삶을) 사랑하라고 가르쳤다면 도덕은 덜 사랑하라고, 반 에로스적인 미덕을 외친 것이다.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가 말한 (루터와 함께 종교개혁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장 칼뱅이 통치한 제네바의 첫 5년은 도덕의 무서운 힘을 보여주었다. 주사위 놀이를 하는 사람이 징역형에 처해졌고, 길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던 사람은 도시에서 추방당했다. 예배를 몇번 이상 빠지면 사형시키고 연극, 춤, 축제, 남녀간의 교제, 적포도주, 친구들과의 선물 교환 같은 모든 형태의 쾌락이 도덕에 의해 금지되었다. 결국 겁에 질린 시민들은 서로가 서로를 감시하는 모순적인 사회체제를 만들어 버렸다. 「*칼뱅 참고: 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 칼뱅 - 나무위키」 조물주의 완전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러므로 신은 사랑하지 않는다. 시공을 초월한 '완전(없는 것이 없는)', 경외의 대상이자 미의 결정체이므로.- 인간의 성격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결정되고, 인간의 태고적 최대의 자질은 원래 사랑이다. 그래서인지 조지 오웰의 1984에서 처럼 '최대다수를 위한' 도덕과 '최대다수를 위한' 행복은 평행을 유지할 수 없는 조건으로 향하고 있다. 허전함을 채우려는 욕망 때문이다.

 

도덕은 정의와는 다르다. 정의란 최대 다수의 행복이 아니라 최대 다수가 더불어 누릴 수 있는 권리다. 쾌락의 총량이 고통의 총량보다 많은 것이 정의롭다면 인간은 감성을 버리고 본능만으로 적자생존을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공리적이기도한 권력은 정의를 정의하기 위해 앎에 취할 수 밖에 없다.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시선과 대상에 주어지는 실존이라는 증거의 실종이다. 실존이 욕구에 의한 복종이든지 자유를 향한 자율적인 의지인지는 삶의 무게가 주는 의미에 달렸다. 모든 것은 변화하고, 그러므로 삶 또한 계속 반항하게 된다. 정의를 실천하기 위한 권력은 앎이라는 귀납적 과정을 철학하고 학습해야 한다. 가까스로 상태를 유지하는 정의'just-ice'는 앎으로 간신히 정의'just-ify'되어 최대 다수의 삶을 정의하는 것이다. 「just: 간신히·가까스로, -ify: 하게 하다, -ice: 상태·성질·행위 *참고: 무엇이 인간인가 - 오종우」 그것은 소유하고 있지 않은, 욕구하나 소유되지 않는 미지의 '아름다움'으로 삶에 중용을 베푸는 일이다. (타자의) 불행이 행복의 기준이 되는 경우는 (아름다움으로의) 환상이 상상으로 이상(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을 목표삼지 않기 때문이다. 잘 사는 것이란 숨결의 일정한 흐름이기도, 낙관적인 자세의 실존이기도 하다. 쇼펜하우어의 허무이거나 까뮈의 이방에서의 하루를 구분하는 것은 삶을 주관하는 '시선에 내리는 대상의 관심'이다. 숨쉬고 사는 것과 호흡이 간절한 것의 차이는 모두 가치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중의) 관심은 약간의 디오니소스적인 쾌락을 요구한다.

 

창조라는 것은 상상으로 (초월된 의지와 각성으로) 암흑(무)에서 빛을 만드는 것이다. 모든 것의 가능성은 무에 있다. 우파니샤드가 설명한 씨앗의 핵심처럼 오감에 감지되지 않는 가능성이 생성과 해체의 핵인 무에 존재하는 것이다. 삶이 결과라면 인중유과론(결과가 원인에 잠재되어 있다는 이론)처럼 이미 먼저된 삶이 나중된 삶의 원인 가운데 들어 있을 것이고, 인중무과설(결과가 원인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에 비유하자면 새로운 삶의 탄생-인생이라는 주체로부터-은 '삶과 죽음'의 원인이자 산물이지만 하나의 완전한 실체가 되는 것이다. 예수나 부처가 매력적인 것은 '너무 인간적인' -호모 사피엔스적, 사회적인- 그들의 박애와 희생정신 때문이고, 그래서 그들은 인간이어야만 했고, 그들은 인간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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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라는 과정에서 '삶'의 엔트로피(entropy: 물질의 상태를 나타내는 양)가 감소(열 에너지 감소)하여도 우주라는 장(field)에서 엔트로피(질서와 균형, 제자리를 찾기 위해 '앎'으로 귀결)는 증가한다. 【문제는 빛을 소모하는 '삶'이 아니라, 빛을 흡수하는 역동적인 블랙홀과 의문에 쌓인 암흑물질에 있다. 인체에는 1000억개의 뉴런, 신경세포가 있는데, 우리 은하에도 1000억개의 별이 있다. 공교롭게도 우리 은하에 존재하는 블랙홀 수는 대뇌피질에 존재하는 뉴런 수와 같은 100억개다. (대뇌피질은 기억, 집중, 사고, 언어, 각성, 의식과 같은 기능을 담당한다.) 블랙홀은 중력이 매우 강한 별이 힘의 균형을 무너트리고 수축되어 한 점으로 집중된 것을 말한다. 모든 은하에 태양질량의 수십만배에서 수십억배에 이르는 초대질량의 블랙홀이 존재한다고 하는데, 우리 은하의 초대질량의 블랙홀은 궁수자리에 위치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 우주가 공간(장)이라면 빅뱅은 빛(빛이 없으면 시간도 없다. 시간은 언제나 상대적이다.)으로 만들어진 삶이라는 계(system)다. '주어진 거시적인 상태에 대응하는 미시적인' 삶(양자역학에서 에너지는 가까운 거리에서 볼 때 점이다. 하지만 멀리서 볼 때 은하수처럼 이어져 있다.)은 이렇게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며, 질서를 위한 도덕률을 요구하는 앎으로 희석된다.

 

'힘에의 의지'란 나를 상실하므로써 자기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의미(자기 밖에서 자기로 영원히 돌아온다는 것)인데, 이 명제는 엔트로피의 에너지 법칙과도 유사하다. 여기서 힘이란 물리학자 톰슨(Joseph J. Thomson)의 자석과 같다. (그는 자석실험을 통해 정삼각형, 정사각형, 그리고 정오각형을 발견했다.) 우주속 삶의 엔트로피가 감소하여도 그것을 무질서로 볼 수 없다. "무질서란 통계학적 관찰의 대상인 낱낱 요소들이 전혀 상관없이 움직이고 있다는 것, 막스 플랑크"이다. 삶이라는 것은 개별 질서들이 사회라는 우주 속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앎이라는 기하학적인 질서를 형성하는 것이다. 인과관계로 비추어보면 삶이라는 결과는 어떠한 원인에 의해 촉발된 것이다. 결과를 예측할 수 있을 때 우리의 행동은 명료하다. 하지만 다가올 결과가 불투명할 때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그래서 인류는 수많은 우연적 경험들을 바탕으로 기술을 쌓고 원인을 찾아가고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형이상학을 다루면서 '모든 인간은 본성상 알고 싶어 하는 속성을 지닌다'고 말했다. 그것은 아마도 현재를 초월하여 투명한 미래로 자신을 던지고 싶은 '기투' 때문일 것이다.) 그리하여 자유의지free will를 담은 삶이라는 가변적인 '길'은 인과적 결정론Causal determinism으로 앎이라는 '숙명적인 공간'을 피력하게 된다.

 

빅뱅이 '완전'한 우연이라면 사물들에게는 주체가 없고 목적을 요하는 생존의식은 구차하며, 삶은 실존적(주체적 존재로 실재하는) 범주에 속하지 못한다. 그러나 우연을 '인위적인 개념'(프리츠 마우트너)에서 보면 아침이 오고 저녁이 찾는 것은 대상에게 있어 극히 필연적인 선택이자 목적을 지향하는 자연현상이다. 어떠한 대상과 우연히 마주쳤다는 사실은 과거 습득한 학습의 인지 가능성과 확률이 포함되므로 인식은 힘에의한 우연한 질서의 개념을 떠받치게 된다. 결국 서로(주체-우주, 실체-별)와의 이해와 적합한 조화 없이는 우연의 탄생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솔베이 회의에서 불확정성 원리를 반대하고 신은 결코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으나, 보어는 왜 신이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지 생각해보라고 그에게 반박했다.) 전자의 위치를 알면 그 운동량을 알 수 없고, 운동량을 알면 전자의 위치를 측정할 수 없듯이 삶과 앎은 서로 보완적(상보성 원리: Complementarity principle)이다. 우연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관찰(시선)이라는 의도적인 계획이 필요하고, 관찰이란 대상에 (빛에 의한) 시각적인 이미지를 부여하므로 우연은 무엇에 목적을 둔 자연적인 결과다. 길을 가다가 번쩍이는 물체를 보고도 모른척 지나친다면 그것은 그저 독립적인 즉자에 불과하다. 반면 자유의지의 도출과 그에 따른 감정적 상황 대처는 반복된 실패 속 계획된 발명이며-필연이 된다-, 인과적 결정론, 즉 연출된 우연에 속하게 된다.

 

루돌프 아른하임(엔트로피와 예술)의 설명처럼 질서는 정보라는 '앎'을 통해 측정되기 때문에 "극도의 질서는 극도의 무질서를 통해 실현된다." 그러므로 역설적이게도 (삶의) 엔트로피 값이 높을 때 질서는 낮고, (삶의) 엔트로피 값이 낮을 때 질서는 높게 나온다. 그렇다면 과연 질서는 파놉티콘을 창안한 법학자 벤담의 도덕과 무관한가. -어제에서 정의된 '나'라는 존재는 질서있게 오늘을 살고, 현재를 보고 내일을 꿈꾼다. 그렇게 수많은 상상을 하지만 그 중 몇개 만이 이상(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으로 남겨진다. 이상의 잣대는 때로는 외골수 사랑을 만든다. 대상이 나에게 절실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경향이라는 프레임을 만든다. 그러나 거울효과로 깨어난 각성은 모든 상상을 소화할 수 없다. 인간은 이웃을, 서로를 의지하며 더불어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이다.- (개별적으로 보관된 각각의 식재료들은 요리를 통해 '이화적 파괴'이자 순수한 형질의 변형, 즉 자신의 질서를 잃는다. 하지만 전체적인 엔트로피는 증가한다. 그리고 '앎'으로 요리된 식재료들은 다시 '삶'에 기여된다.) 여기서 질서(삶의 엔트로피 값이 낮을 때)라는 것은 필연성과 우연성으로 시작되어 앎 속 미적 여백-죽음이라는 실체-을 배치한다. 삶이라는 계가 도덕을 통해 우주라는 장에서 균형을 이룰 수 있고 알맞은 구조를 갖출 수 있는 것은 모두 '힘'에 달려있다. 「전체에서 어떤 부분을 계로 나누어 연구하면 그 계가 우주 전체에 미치는 특성을 놓칠 수 있다. *참고: 막스 플랑크 - 물리철학」 에너지가 불균형할 때 무질서가 발생하고, 삶은 빛을 얻어 -중력을 통해 중심을 잡고- 【중력이란 질량을 가진 두 물체 사이에서 작용하는 힘이다. 중력은 자연계에 존재하는 4가지 힘인 '미시적인' 중력, 전자기력, 약력, 그리고 '거시적인' 강력 중 하나다. 인간에게는 이 4가지 힘, '중력-낙하, 전자기력-화학반응, 약력-베타 붕괴, 강력-핵작용'이 모두 존재한다. 4가지 힘은 '당기는 힘인 인력'과 '밀어내는 힘 척력'을 발휘하는데, 이것은 간단히 말해 서로에게 이끌리는 애로틱한 행동인 것이다. 그렇게 주어진 거시적인 강력에 대응하는 미시적인 중력으로 별은 탄생하게 된다.】 엔트로피는 증가하게 된다. (F=mg, E=mc2, E=hv)

 

이러한 물질과 운동의 분화와 통합이 마지막 단계인 평행상태에 이르는 것을 하버드 스펜서는 "지고의 완전함과 그지없이 온전한 행복"이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힘에 의해 활동하고 나아가 (내게 없는) 아름다움에 끌리는 것은 완전과 행복의 단계에 이르기 위한 변화의 상태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횔덜린이 훼페리온 단편에서 말하듯 "우리는 평화로운 세계의 '하나이자 모두인 것'을 우리 자신을 통해서 생성해 내기 위해 그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중심을 벗어난 궤도"에서 자연과 반목하며, 삶의 투쟁과 삶에 대한 고무적인 호기심에 휩싸여 사고(의식)의 침전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것을 '쾌락 원리의 저편'에서 긴장 감소(혼란속에서 질서를 얻으려는 충동)이자 '무기적 상태로 돌아가려는 생명체의 본능적 욕구'(죽음)로 보았다. 상상속에 갖혀 끊임없이 충족되고자하는 쾌락의 애로스적 충동과 이상으로 향하려는 근원적인 욕망, 이같은 충동과 욕망은 "이전의 상태를 회복하기 위한 살아 있는 유기체에 내재하는 열망적 힘(Drang), 프로이트", 즉 생명체의 목표인 죽음으로 향하는 것이다. 공간속 무의식이 전의식(의식되기 이전의 정신 체계로 무의식을 걸러서 의식 쪽으로 보낸다)을 통해 이상적인 현실 원리인 의식의 길로 회귀하는 것이다. 곧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은 아직 앎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자 (애로스적) 자극과 욕구의 가능성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불로장생이 있다면 "완전성을 향한 충동, 프로이트" 앎은 무의미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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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의 원인은 에너지다. 목적은 아름다움이다.' 아름다움은 오직 삶을 위해서 존재한다. 삶은 아름다워지기 위해 본능적으로 앎이라는 대상을 끝없이 욕구하기 때문이다. 앎을 완전히 소유했다면 더 이상의 아름다움은 없다. 자기애적 아름다움으로 향한 쾌락(쾌적)은 아름다움의 잔향을 칸트가 말한 '제약된 만족', 즉 '감각적 욕구에 의해 제약된 만족'으로 남기는 과정에 불과하다. 객체라는 삶이 주체라는 앎에 저항하는 숭고한 죽음만이 그 노동의 댓가로 오감과 '대상이나 현상을 보고 즉각적으로 느끼는' 직관과 '지성이나 사고의 능력'인 오성으로 빗은 미에 다가갈 수 있다. 여기서 삶은 앎을 향한 숭고를 목격한 도덕이 노동이라는 고통이 안겨주는 부정성에 (생산에 대한 만족과 물질적 보상에 대한 자부심) 긍정이라는 활기를 불어넣으므로써 선이라는 '제약적 만족', 즉 '도덕적 개념에 의해 제약되어 있는 만족'을 얻는다. 아름다움의 잔향은 향수를 불러온다. 향수는 다시 앎으로의 삶을 재촉한다. 아름다움은 시각, 미각, 촉각, 후각, 청각이라는 자극으로 신경에 전달되어 욕망을 부르게 된다. 오감을 만족시키지 못한, 혹 지나친 자극은 고통이나 불쾌와 같은 의식으로 들어나는데, 이것은 쇼펜하우어가 말한 '맹목적인 삶의 의지, 객관적인 의지', 나에게 없는 것을 들어내는 표현인 충동과 투쟁과 욕망으로 발전한다. 선험적이며 후험적인 '오감과 오성'을 종합한 직관intuition(칸트 - 이론이성: 감성과 오성을 바탕으로한 사고)은 이 과정에서 (단조롭거나 복잡한) 아름다움을 느낀다. 삶에 여섯번째 감각이 있다면 그것은 직관일 것이다. 직관이란 감각의 경험을 분석하고 연역적 추론과 경험을 바탕으로 사고한 것이다. 【유전체genome은 후험적인 가능성과 선험적 지식을 간직하고 있다. 감각 기관은 표상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으로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한다. *선험적 - 분석적 판단, 필연성 ∥ 후험적 - 종합적 판단, 우연성】 삶은 빛의 아름다움을 시각, 미각, 촉각, 후각(원자의 진동수)로 느낄 수 있다. 남은 것은 청각 뿐이다. 그래서 삶은 직관적으로 별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삶은 완전이라는 베일에 쌓인 미로 도약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미를 통한 '자유로운 만족', 즉 '상상력의 자유로운 유희'로 완전한 만족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삶은 앎의 중력장에서 미의 궤도를 끝없이 돌게된다. "미에는 은폐가 본질적이다. 투명성은 미와 화합하지 못한다. 투명한 미란 형용모순이다. … 숨김은 미에 본질적이다. … 그러므로 미는 옷을 벗지도, 폭로되지도 않는다. 벗길 수 없음이 미의 본질이다. … 베일에, 덮개에 싸여 있을 때, 은신처에 숨어 있을 때 대상은 아름답다. 덮개가 벗겨지면 그 대상은 무한히 보잘것없게 되어버린다. - Die Errettung Des Schonen(아름다운 구원), 한병철"

 

오스트리아를 패배시킨 비스마르크는 1,870년 독일 통일을 목적으로 보불전쟁을 일으킨다. 이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는 50억프랑의 배상금을 도이칠란트에 지급하게 되고, 철공업국으로의 도약을 꿈꾸던 도이칠란트는 이 자금을 철을 제련하는 기술에 투자하게 된다. 곧 베를린에서 국립물리공학연구소가 세워지고, 연구소 조교로 채용된 빈 키르히호프는 가열되는 온도에 따라 물질이 여러 가지 파장의 빛을 만든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후 키르히호프는 빛이 전달되는 물질은 자신의 빛과 같은 빛의 파장을 흡수한다는 사실을 목격하고, 온도에 따라 여러 가지 빛을 내는 것이 바로 검은 물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청색 - 짧은 파장, 적색 - 긴 파장; 철을 낮은 열에 달구면 빨갛지만 높은 온도에서 달구면 파랗다) 자신의 생각을 확인시켜줄 검은 물체를 찾던 키르히호프는 작은 구멍으로 빛이 들어갈 수 있는 '어두운 검은 상자'를 이용해 자신의 연구를 발전시킨다. 그는 검다는 것은 어떤 파장의 빛이라도 흡수할 수 있다고 믿었다. 실험결과 짧은 파장에서는 자신이 예측했던 결과가 나온 반면, 긴 파장에서는 예상을 빗나가는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1,900년 키르히호프의 연구를 발전시킨 플랑크가 물체가 지닌 에너지의 한계때문에 짧은 파장에게 청색을 돌려줄 수 없다는 원인을 마침내 밝혀내게 된다. 물체가 가지고 있는 에너지가 너무 적으면 덩치가 큰 짧은 파장과 서로 맞교환될 수 없었던 것이다. 이것으로 플랑크는 양자역학이라는 새로운 영역의 관문을 열게 되었고, 이로인해 아인슈타인은 빛이 물체에서 전자를 튀어나가게 하는 광전효과를 관찰하며 광양자라는 입자를 과학에 추가하게 된다. 그리고 양자역학이 발명한 원자로 인류는 천체관측을 통해 얻는 시간 대신, 보다 정확한 원자의 물리반응으로 절대시간을 역사에 기록하기 시작했다. 곧 인류는 밤하늘 반짝이는 별을 보며 별에서 나오는 빛의 스펙트럼(파장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는 빛깔의 띠)을 통해 그 별의 나이, 성분, 온도, 밀도 등을 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도플러 효과(청색 - 파장이 짧다, 적색 - 파장이 길다)를 통해 별이나 눈으로 볼 수 없는 블랙홀과의 거리와 속도(경찰이 사용하는 스피드 건)를 추정할 수 있게 되었다. (참고: 양자역학의 세계 -가다야마 야수히사)

 

2,018년이 되면 인류는 '사건의 지평선'과 '특이점', 즉 블랙홀의 실체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된다. 가속도가 없고 속도가 일정한 '등속운동'이 '가속운동'으로 바뀌면 관성력이 생긴다. 엘리베이터가 위로 가속하며 올라갈 때 정지해 있을 당시에는 느끼지 못했던 아래로 끄는 힘이 바로 관성력이다. 우주인이 무중력 상태에 떠있는 이유도 지구의 중력과 그 중력을 수직으로 도는 우주정거장의 원심력(관성력)이 평행을 이루기 때문이다. 등속원리에 따라 관성력을 만든 가속도는 중력과 같다. 그렇다면 가속이 더해진 좌표계의 시공간은 정지해 있던 좌표계의 시공간과 다르게 되고, 중력에 따라 시공간이 뒤틀리는 것이다. 태양의 10억 배의 질량을 갖은 블랙홀의 사상의 지평선에서 중력으로 인해 시간이 느려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들 수 있다. 예로 위성은 빠른 속도로 움직이기 때문에 지상보다 시간이 팽창하고(특수상대성이론), 고도가 높아 중력의 영향을 적게 받으므로 시간이 지상보다 빨리간다(일반상대성이론). 여기서 질량을 갖은 모든 물체는 빛의 속도를 넘지 못하므로 '탈출 속도'가 광속도를 넘는 블랙홀에 빨려들어가(엔트로피 증가) 가상의 화이트 홀로 빠져 나가게 되는 것(엔트로피 감소)이다. (호킹복사란 열을 갖은 물체는 빛을 내기 때문에 블랙홀 역시 특정한 온도로 열을 방출한다는 것이다. 호킹은 블랙홀이 질량을 잃으면서 입자를 방출한다고 설명했다.) 고대에는 천체의 운행에 의한 시간을 사용해 생활해 왔다. 달의 기조력 때문에 지구의 자전이 차츰 느려져 오늘 날 우리는 365일동안 하루에 24시간을 쓰고 있다. 산호화석을 조사한 결과 4억 1,000만 년 ~ 3 억 6,000만 년 전에는 1년이 400일이였고, 하루는 22시간이였다는 사실을 알게됐다. 어린왕자의 별 B612처럼 하루가 짧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주의 나이가 140억 년이라면 95억 년 전에는 (지구나이 45.43억 년) 시간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주장처럼 광속에는 시간과 공간이 얽혀 있으므로 시간과 공간은 우주의 절대량이 아니며, 이는 우주의 근본적인 속성과 전혀 상관 없을지도 모른다. (참고: 이종필 교수의 인터스텔라)

 

수많은 발견들을 통해 인류는 '별은 어떤 사건이자 현상이고, 별은 삶에 주어진 시간이라는 점'을 깨닮았다. 현상을 관찰하고 측정하여 -우연은 필연이 된다- 그 결과를 계산하는 것은 어떤 목표에 다가가기 위해서다. 또한 과학이라는 연역적 추리와 수단으로 현상이 담고 있는 인과적 원인을 찾아내기 위함이다. 그리하여 발견된 원인은 다시 과학의 도구로 사용되어 새로운 목표를 향해 나아간다. 하지만 목표로의 수단과 성취가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못할 때 삶은 목표를 향한 갈망의 결여로 존재로써의 의미를 잃고 만다. 그렇다면 삶의 목표는 아름다워지는 것인가, 혹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인가. "어떤 수단이든 그 뒤에 살아 있는 정신이 없다면, 그 수단은 무딘 도구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에 목표의 성취를 향한 갈망이 우리 내면에 살아 꿈틀거린다면, 우리는 그 목표에 닿는 수단을 발견하고 그 수단을 행동으로 바꿔놓을 힘을 얻게 될 것이다. - 아인슈타인"

 

상자안에 들어있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는 살아있는 상태와 죽어있는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 이것이 양자중첩이다. 모든 물질은 두 가지 성질, 즉 파동과 입자를 지니고 있는데, 입자성을 관측하려는 동시 파동성(파동함수 붕괴)이 사라진다. 관찰에 의해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죽어 있거나 살아있는 양자택일 상태가 되는 것과 같다.【슈뢰딩거의 실험에 필요한 도구들은 고양이, 방사성 물질, 방사선 측정기, 망치, 독가스 장치가 마련된 밀폐된 상자다. 방사능 물질이 나오면 측정기가 돌고, 기계장치는 망치를 동작시켜 독가스가 든 병을 깬다. 그러면 독가스를 마신 고양이는 죽게 된다. 방사성이 나올 확률이 한시간에 50%라면, 한시간 뒤에 고양이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슈뢰딩거의 실험은 두가지 결과를 갖고 있다. 죽어있는 고양이, 그리고 살아있는 고양이다. 하지만 고양이의 운명은 상자를 열기 전까지 죽지도 살아있지도 않은 상태를 유지한다. 따라서 앎을 쫓는 실험의 원인은 관찰이다.】 과학의 불확정성 원리uncertainty principle라는 것은 관측에 따라 다른 결과를 얻는 것으로, 여러번의 관찰로부터 얻는 통계적인 예측만이 가능하다. 관찰 수단에 작용하는 양자 효과는 관찰하는 현상을 방해해 불확정성을 가져오는 것이다. 현실과 물자체(경험을 초월한 대상, 언젠가 도달할 것이나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 사이에 간극을 두고 빛을 통해 얻은 시선으로 대상을 관찰하는 것, 잊혀진 '레테의 강'을 기억하고 선험적인 의지로 간극 넘어로의 '앎'을 향해 도약해야 하는 삶의 운명, 그것은 '삶을 위해 존재하는 앎을 욕구하는 즉자'(그 자신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태)에 관찰, 즉 시선이 주어지므로 객체는 주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관찰을 간섭하게 되는 것과 같다. 관찰하는 것은 '상상속에 갖혀 끊임없이 충족되고자하는 쾌락의 애로스적 충동과 이상으로 향하려는 근원적인 욕망, 무기적 상태로 돌아가려는 생명체의 욕구'다. 여기서 확인되는 확률이란 숙명적인 공간에서 들어나는 가변적인 우연한 경험들로 종합된 앎으로의 가능성이다. 시작과 끝이 있는 삶은 헤겔의 변증법을 도식화한 정(주제, thesis)반(-대조, antithesis)합(통합, synthesis)과 같다. '정'을 부정하여 모순을 버린 상태를 '반'이라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모순적 면모를 지닌 '반'이 버릴 것을 버리고 취할 것을 취한 상태가 '합'이다. 그러나 '합' 또한 모순적 한계로 다시 '정'이 된다. "합은 정으로의 회귀, 반으로 인해 생긴 상처를 아물게 하는 것이 아니다. '합'은 정확히 반과 똑같은 것이다. 그것의 유일한 차이는 관점의 변환에 있다. - 지젝"

 

"빅뱅은 사실상 절대적인 암흑 속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빛이란 게 아직 없었으니까요. 이상한 소리 같겠지만 그때는 공간 역시 아직 존재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므로 밖이란 건 없었습니다. 그때 존재한 유일한 공간은 내부뿐이었습니다. 그것은 그냥 너무나 작은, 극도로 뜨거운 안개 상태의 에너지였습니다. 그리고 우주의 팽창이 있었죠. 매 순간순간 크기가 커지고 온도는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되는 동안에 우주의 순수 에너지의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했고, 물질이 생성됐는데 무수히 많은 수조 개도 넘는 원자보다 작은 입자 형태였죠. 최초로 생겨난 물질이었습니다. 그리고 중력이 생성됩니다. 빅뱅이 일어난 직후의 우주는 단지 가스에 불과했으며, 우주 공간에 거의 균일하게 퍼져있었습니다. 그 뒤로 2억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중력이 다시 가스를 끌어당기기 시작했고, 처음으로 구조가 만들어졌으며 거기서 다른 모든 것들이 발달하게 되었습니다. 【초기우주에 균일하게 퍼져있던 가스가 '우연한 불규칙성'에 의해 질서를 잃고, 질서의 부족으로 중력이 작용해 현재의 우주를 만들었다.】 ... 지금으로부터 135억 년 전의 우주는 대부분이 수소 가스로 가득했습니다. 그에 합당한 성질대로 중력이 작용을 하면서 수소 가스를 응집시켜 서서히 거대한 구름을 형성합니다. 수소는 가장 단순한 형태의 가스입니다. 그러나 특별한 성질을 갖고 있죠. 그건 엄청난 동력원이라는 겁니다. 1,000만 도 정도가 되게 수소를 가열하면 에너지를 생성하기 시작하는데, 별이 빛나게 만들어주고 우주 공간에 온기와 빛을 공급해준 에너지였습니다. ... 【별과 원소의 탄생과정】 우연히도 별은 간단히 말하면 거대한 공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소 원자들의 융합반응이 일어나면서 헬륨이 만들어지고, 그러면서 별의 에너지가 생산됩니다. 그러나 헬륨은 수소에 비해 약간 무겁습니다. 그래서 헬륨은 별의 중심부로 가라앉게 되죠. 이제 헬륨의 원자가 별의 중앙 무대를 차지합니다. 헬륨끼리 융합이 일어나면서 더욱 많은 에너지를 생산하고, 또 다른 새로운 원소도 형성하게 됩니다. 탄소죠. 모든 생물에 없어서는 안 될 기본 구성요소가 탄소입니다. 이와 같은 과정이 거듭거듭 되풀이되면서 별은 마치 양파와 같이 층을 이루게 됩니다. 별의 중심에 가까울수록 무거운 원소들이 자리하는데 네온, 산소, 그리고 무엇보다 철과 같은 원소가 그것들이죠. 철은 융합이 되더라도 에너지를 생산하지 못하죠. 따라서 연소가 중단이 됩니다. 점점 더 많은 양의 철이 별의 중심부에 쌓여나가다가 결국에는 남아있던 연료의 거의 전부가 바닥나게 됩니다. 【별의 죽음】 이제 중력이 우세해지면서 별이 내부를 향해 찌그러지게 만듭니다. 별의 중심부가 점점 압축이 됨에 따라서 온도가 치솟게 되고 급기야 우리 태양 중심부보다 100배 이상이 되게 상승하죠. 최종적으로는 별이 붕괴되면서 폭발합니다. 이것이 초신성입니다. 이는 별의 죽음이며 동시에 새로운 것들의 탄생이기도 합니다. 100만분의 몇 초인 이 짧은 순간에 엄청나게 강력한 충격파가 별을 관통하게 되는데 그 폭발력이 너무나 강력해서 철의 일부를 융합시키게 되고 더 무거운 원소들이 생성되죠. 그런 경로를 통해 중원소들, 예컨대 금이나 백금 또는 납과 같은 것들이 폭발하는 별의 심장부에서 생성이 되고 단단하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같은 금속은 수십억 년 전에 눈부신 섬광 속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초신성 중심부 깊숙이에서는 중심이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우리가 '중력 우물'이라 부르는 게 형성됩니다. 중력 우물은 별이 한 점으로 찌그러지도록 만들죠. 블랙홀이 탄생한 것입니다. - 스티븐 호킹과 우주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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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어디있지?' '내가 가르쳐주리라. 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였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닷물을 전부 마셔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쓸어내어 버릴 스펀지라도 주었는가? 우리가 이 지구를 해로부터 풀어주었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그것은 이제 어디로 움직이는가? 우리는 어디로 움직이는가?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는가?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뒤로, 옆으로, 앞으로, 모든 방향으로?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는가? 우리는 끝없는 허무 속에서 헤매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빈 공간의 흐름을 느끼지도 못하진 않는가? 계속해서 추워지지는 않는가? 밤이 우리를 점점 궁지로 몰아가는 것은 아닌가? 우리는 아침에도 등불을 켜야 하는 것은 아닌가? 아직도 사토장이들이 신을 땅에 묻고 있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가? 아직도 신이 부패해 가는 냄새가 나지 않는가? 신 또한 부패한다. 신은 죽었다. 'Gott ist tot' 신은 죽은 채로 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우리는 어떻게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 즐거운 학문, 니체"  필연성과 우연성으로 시작되어 (중력에 의해) 끝없이 추락하는 삶은 앎속 미적 여백, 즉 빈 공간에서 추위와 허무(욕망의 빙점)를 느끼며 서로 멀어지고 팽창하면서 각성을 통해 힘에의 의지로 초인이 되고자 한다. 세상이 어두워, 아름다움을 찾을 수 없어서 객체는 낮에도 디오게네스처럼 등불을 켜고 다닌다. 아름다움을 위해 신은 죽어야만 했다. 삶이 아름다움을 피워내기 위해 신은 부패해야만 했다. 【'규칙을 벗어난 돌연변이'는 단백질의 변화를 생성하고 (천재성은 진화에 목적을 둔다), 바이러스는 유전형질 변화를 가져와 초인RNAi을 만든다. RNA(리보핵산)는 DNA가 자체 유전정보로 단백질을 생산하게 만든다. RNAi(RNA 간섭)는 이중나선 구조의 RNA가 Dicer 효소에 의해 siRNA로 전환한 후 mRNA가 특정유전자를 절단, 분해시키는 과정이다. 한마디로 RNAi는 희귀질환이나 바이러스 단백질이 발현하는 것을 억제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바야흐로 삶은 앎을 통하여 (분석된 염기서열과 인위적인 siRNA를 삶에 주입하므로) 인위적인 간섭으로 초인의 초안을 무심코 그려내고 있다. siRNA로 색소 주머니melanosome나 특정한 유전자를 건들인다면 의식없이도 어떤 대상의 흉내나 의태mimicry, 어떤 대상으로부터의 위장camouflage (식물은 자신에게 불필요한 녹색을 반사하고 나머지 색들은 흡수), 발광동물처럼 bioluminescence 열이 없는 냉광을 드러내거나, 완보동물tardigrade 같이 진공상태에서나 10년동안 수분없이 섭씨 151도와 -273도를 버티며 (부동 단백질antifreeze protein), 혹은 냉혈동물cold-blooded animal 같이 외부의 온도에 따라 체온조절이 (인간의 삶은 섭씨 37도다) 가능할지 모른다. 하지만 왜 초인이 되고자 하는가. "그대가 바로 신을 살해한 자로구나! 멈추어라! 신을 죽인자, 신을 살해한 자의 기분이 어떠한지를. 멈추어라! -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신은 죽었다. (결과는 삶이다.) 물(物, thing-in-itself, 이데아Idea)은 초인으로 살기 위해 아름다움을 벗어 던지고 긍정을 부정해야 했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낙타가 사자가 되며, 마지막으로 사자가 아이가 되기 위해서(생존을 위해 자연은 도태natural selection하고, 인간은 인위 선택artificial selection으로 인위 도태를 조장한다. "유전 형질의 급격한 변화를 가져오는 돌연변이는 순종을 낳는다. 그러므로 돌연변이가 진화의 동인이 된다. 수많은 돌연변이들 중에서 생존율을 증대시킬 수 있는 소수만이 선택되므로, 오랜 기간에 걸쳐 생물은 하나의 형태에서 다른 형태로 서서히 변화하게 된다. 그 결과 우리는 새로운 종의 탄생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종의 기원이The Origin of Species요 진화의 실현이다. - 코스모스 , 칼 세이건").

 

미는 스스로를 은폐한다. 그러나 스스로를 들어내려고도 한다. 폭로되지 않지만 아름다움을 발설하려 한다. 은신하지만, 극도의 질서를 벗어나기 위해 극도의 무질서를 실현하며 빛이 연출하는 시선에 자신을 노출시킨다. 삶은 각성Übermensch으로 앎을 파헤치지만, 어느세 망각으로 아름다움에서 멀어진다. 【앎이라는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망각'(anodynia, 신경을 마비시키는 것)은 기억의 바다넘어Lethe 삶으로부터 잊혀진 것을 깨우는 것이다. (고통이 일상이 되어 신경이 무감각, '허무'해질 때 삶은 비로소 초인을 외쳐왔다.) 도덕의 관심과 억압을 벗어나 무의식(uncertainty, '통계적 예측의 심연')으로 가려는 충동, 이전의 평온한 상태(빛이 없는 암흑의 상태)로 회귀하려는 것이 바로 망각인 것이다. 하지만 삶의 중심에서 과거를 회상하는 것, 빛나는 별을 관찰하는 것은 원인에서 결과priori를 향한 시간으로의 기약이자 결과인 삶을 긍정하는 것이다. (중독이란 망각으로 수없이 길들여지는 것이다.)】 삶이란 내게 없는 아름다움을 소유하고자 나의 아름다움을 들어내는 것, 밀어내는 '부끄러운' 애(哀)와 잡아당기는 '열망하는' 애(愛)가 앎의 중력장에서 미의 궤도를 그리는 것trade이다.

 

자신의 나약함을 깨닮은 (먹이사슬의 최상위를 꿈꾸던) 사피엔스는 도구를 발명한다. 앎이라는 사과를 발견한 것이다. X라는 행복을 원했던 사피엔스는 가언명령에 따라 Y라는 운동('운동의 원인은 에너지다. 목적은 아름다움이다.')을 하기로 작정한다. 그리하여 애로스를 따른 부의 축적으로 소유를 보호하고자 명분이란 탄력을 얻은 권력이 탄생하고, 반애로스적인 도덕이 생겨났다. 그리고 사회적인 사피엔스는 모순을 최소화하기 위해 민주적인(공리적, common wealth) 정의just-ify를 도모한다. "어떤 토지에 울타리를 두르고 '이것은 내 땅이다'하고 선언할 생각을 가졌고,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믿을 만큼 단순하다는 사실을 발견한 최초의 사람은 시민 사회의 진정한 창립자였다. - 사회계약론, 루소" 루소의 설명처럼 본래 자연 상태의 인간은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롭고 모든 것으로부터 평등했던 것이다. 전서구라고 불리는 비둘기는 귀소본능이 있는데, 이는 머리뼈와 뇌경막 사이에 있는 자석 조직이 지구자기장과 반능하여 나침반 구실을 하기 때문이다. 머리와 배에 자성을 가진 개미도 몸속 철을 이용해 이주한다. 몇몇 종류의 박테리아, 꿀벌, 도롱뇽, 달팽이, 돌고래, 연어, 거북, 철새들 역시 생체자석으로 지구자기장을 이용하여 방향을 정하고 생존을 위해 이동한다. (*생체자석 참고: 전기기학 편, 김달수) 하지만 진보적 변화를 두려워 하는 사피엔스는 보수적 사회계약으로 (간극을 뛰어 넘을 수 없는, 날 수 없는) 제한적인 이동을 하고, 이는 생물학적 진화과정에 모순을 가져왔는지 모른다.

 

소유라는 행복은 타자의 불행과 불평등을 초래했으므로 사피엔스는 무조건적이며 선행적 목적에 의존하지 않는 정언명령, 즉 도덕으로 사회관계를 구축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 - 정언명령, 칸트" 그렇게 도덕과 행복(부, 아름다움, 앎으로의 과정)은 평행을 유지할 수 없는 조건을 향했고, 삶은 정의로움으로 일상을 만족시킬 수 밖에 없었다. 허전함을 채우려는 욕망, '내게 없는 것을 충족'시키려는 사랑, 즉 무한적인 앎을 갈망하는 유한적인 삶은 단지 미의 일부분이자, 그저 단편적인 앎에 속할 뿐이다. 완전이라는 전체의 일부, 혹은 찰라에 지나지 않는 삶은 앎의 순간을 담은 한장의 사진에 불과하다. 미의 도그마(독단적인 신념)인 사랑은 죽음이라는 3차원적 삶의 패러독스("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 파르메니데스", 세빌리아의 한 이발사는 스스로 수염을 깎지 않는 사람 모두의 수염을 깎고, 그 외의 사람의 수염은 깎지 않는다. 스스로 수염을 깎지 않는 이발사는 스스로 수염을 깎아야 하는가. 러셀의 패러독스 참고)로부터 실존을 외칠 뿐이였다. 3차원적 삶인 실존은 본질을 앞서기 때문이다. 그러나 앎으로의 삶에서 본질은 실존을 앞선다. (끈이론에 의하면 4~11차원이 우주다.) 그리고 남겨진 욕망의 흔적으로부터 예측될 수 있는 것은 비트겐슈타인이 설명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침묵", 3차원 논리로 명제화할 수 없는 미래속에 존재하는 불확정성(양자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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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하다는 것은 나에게(또는 어떤 대상에게) 좋은 것good, 앎(아름다움)이 기다리는 미래로 뻗어가는 것이다. 악하다는 것은 나를 앎으로부터 퇴보, 역행하게 만드는 나쁜 것evil, bad(망각; 중독이란 망각으로 수없이 길들여지는 것이고, 여기서 업karma이 쌓인다)이다. 동양의 음양사상에서 접할 수 있듯이 선과 악은 종종 플러스와 마이너스에 비유된다. 【지구는 자석과 같다. 초기 생성된 별이 핵융합 반응을 일으켜 내부에 철을 쌓게되고, 지구의 자전으로 외핵이 회전하여 물질을 구성하는 '원자' 속 원자핵(+)과 전자(-) 사이 전기력이 발생하여 자기장을 만든다. 《물질(Matter; 나-self)은 분자(Molecule; 물 혹 이산화탄소 혹 포도당 etc)들로 이루어져 있고, 분자는 원자(Atom; 수소 혹 산소 혹 질소 etc)들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속에는 원자핵(Nucleus; 인력)을 도는 전자(Electron; 척력)구름이 있다. 원자핵 속에는 중성자(Neutron)와 양성자(Proton)가 있고, 그 속에는 업 쿼크(Up Quarks)와 다운 쿼크(Down Quarks)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다음이 끈이론(String Theory)이다.》 우주의 기본입자 전자가 띠우는 음전하가 양전하로 철 주위 도선에 흐르면 자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마치 남성의 양기陽氣와 여성의 음기陰氣가 만나 물리적인 압력(자연계에는 4가지 힘 '중력-낙하, 전자기력-화학반응, 약력-베타 붕괴, 강력-핵작용'이 존재한다. 탄성, 점성, 마찰력, 압력은 입자들 간의 전기적 상호작용의 결과다.)에 의해 장(field)을 이루는 것과 같고, 더하고 나누어도 남성의 무의식 인격의 여성적 측면인 '아니마anima'와 여성의 무의식 인격의 남성적 측면인 '아니무스animus'가 끊임없이 작용하는 상태와 같다.(아니마, 아니무스: 카를 융)】 물리학의 상보성 원리처럼 나쁜 것bad은 재고된 앎으로 우월, 정복, 이기를 들어내며 타자와 분쟁하게 된다. 선을 후퇴하게 만드는 악은 '삶'에 중추적 역할을 하는 지엽적 욕망과 말초적 쾌락을 내세우는 것이다. 여기서 악이 선으로 비약되지 못하면 푸코가 설명한 가학적인 광인의 발병으로 이어진다. (이같은 경우 벤담의 판옵티콘이 사용된다.) 그렇다면 선악의 존재유무는 모두 '앎'이라는 사과에서 비롯된 것이다. 앎은 도덕과 정의라는 도구를 사용한다. 사피엔스는 자연에 선하지 못하므로 (e.g. 동식물복제) 도덕과 정의는 자연의 섭리, 생명윤리에 이율배반적이다. 보편적인 정의가 관습적인 윤리etiquette보다 크다는 뜻이다. 사피엔스의 윤리는 미의 희소성에 의해서만 응답하거나 작동한다. 인간중심주의를 표상하는 사피엔스는 자연보다는 자연의 희소성에 반응하는 것이다. '플라스틱은 코끼리 때문이다', '그러므로 플라스틱은 코끼리의 문제다'라고 단정하지만, 희소성이라는 모순을 발견한 사피엔스는 정(주제, thesis)반(-대조, antithesis)합(통합, synthesis)의 원리대로 바이오 플라스틱bioplastic을 만들었다. 그렇다. '폐쇠적이면서 개방적인' 사피엔스는 가끔 엉큼하다.

 

"내-존재(안에-있음) 그 자체, 내-존재란 무엇을 의미하는가? 우리는 일단 이 표현을 더욱 보완하여 '세계 안에서'의 내-존재로 받아들이고 이 내-존재를 '......속에 존재한다'는 의미로 이해하려 한다. 이 어법이 가리키는 것은 컵 '안의 물이라든가 장롱 '안'의 옷처럼, 다른 어떤 것의 '안'에 있는 존재자의 존재양식이다. 이 '안'이라는 말로 생각되는 뜻은, 공간의 '안'에서 어떤 넓이를 지닌 두 존재자가 이 공간에서 그들의 장소에 관련된 상호간의 존재관계이다. 물이나 컵, 옷이나 옷장은, 함께 공간 '안'의 어떤 '위치'에 '있어서' 같은 상태로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존재관계를 넓혀, 예를 들면 강당 안의 의자, 대학 안의 강당, 도시 안의 대학 등에서 '우주공간 안'의 의자에 이르기까지 확장할 수 있다. 이처럼 서로가 '안'에 있는 이들 존재자는 모두 세계의 '내부에' 나타나는 사물로서 객체적 존재라는 동일한 존재양상을 지닌다. 어떤 객체의 '안'에 객체적으로 존재하는 것, 그와 동일한 존재양상을 가지는 어떤 것과 함께 객체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들 모두가 특정한 위치관계의 의미로서 거론되는 존재관계는, 우리가 범주적이라고 부르는 존재적 성격이다. - 존재와 시간, 현존재의 근본틀로서의 세계-내-존재 일반, 마르틴 하이데거" 뛰어나게 감각적이고 지각적인 사피엔스 이외 감정과 의식기능이 미비한insufficiency 동식물들은 비록 우주라는 범주에서 윤리적 주체가 될 수 없지만 지구라는 존재, 지구라는 객체에서 하나의 윤리적인 객체, '세계-내-존재'(가족안의 존재자, 사회안의 존재자, 민족안의 존재자, 세계안의 존재자, 우주안의 존재자, 즉 시간속 과거와 미래의 나를 완성, 나를 실현시키는 '나의 가능성')로 당당히 존재할 수 있다. (*윤리적 주체 참고: 생태학적 세계관과 문명의 미래, 박이문) '신은 죽었다.' 니체, 블랑쇼, 바타유가 말하는 경험이란 "주체를 그 자신에게서 떼어내어 주체가 더 이상 주체 자신이 아니게 되거나, 주체가 자신의 파괴 또는 해체로 내몰릴 지경에 이르게 하는 것, 푸코"이다. 그리하여 앎을 경험하는 윤리적인 객체는 다시 새로운 주체가 되는 것이다. 우주탐사는 '나의 가능성'이라는 계(system)다. 우주(공간, field)가 거대한 블랙홀이라면 특이점(웜홀)으로 이어지는 사상의 지평선이라는 '나의 가능성'은 즉자적대자를 완성시킨다. 그럼 시간이 '흐른다'stretch는 것은 중력 때문이다. 삶은 '완전이라는 전체의 일부', 찰라다. (관찰은 3차원에 멈춰있다.) 시선은 탐구한다. 곧 외계인은 즉자(발전되지 못한 상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깨어 있을 때보다 잠들어 있을 때 더 발병의 징후를 깨닫는다고 말했다. '의식'이라는 현실에서 억압되어 있는 신체적인, 혹은 정신적인 욕구, 감정, 그리고 충동들이 '무의식'을 통해 더 넓고 깊게 지각, '소망충족'되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이중생활을 한다. 하나는 삶이라는 '의식consciousness', 다른 하나는 앎이라는 '무의식unconsciousness'이다. 프로이트가 설명한 '의식'이란 감정을 통해 느끼고 깨닫는 모든 행위와 감각이다. '무의식'이란 욕구와 감정과 충동들이 억압되어 있는, 의식적 사고와 행동을 통제하는 힘이다. 의식과 무의식을 이어주는 '전의식preconsciousness'란 망각이 감각에게 가져다주는 피로감이다. (반의: 완화, 무의식에서 정화된 삶은 다시 의식으로 돌아간다. 피로가 풀리면 잠에서 깨어난다.) 초인이 되고자 각성할 때 엔도르핀이 발생(runner’s high)한다. 엔도르핀은 인체를 쇼크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기분(氣 기운 기, 分 나눌 분)이란 선험적이며 후험적인 '오감과 오성'을 종합한 직관이 직면한 어떤 욕구적 상황을 칸트의 '제약적인' 쾌와 불쾌陰陽로 분류하는 것이다. 기분은 늘 감각을 통하지 않는다. 상상으로도 기분은 전환된다. 망각은 기억의 바다넘어 삶으로부터 잊혀진 것을 깨우는 것이다. 'Che에게 시가는 앎으로의 향수다.' Morphai - 모양을 빚는 자, Morphine - 모르핀, Endogenous Morphine - 엔도르핀, Morpheus - 삶을 앎으로 인도하는 꿈의 신, 그리스 신화의 신 '모르페우스'】 헤겔에 따르면 수면은 활동이 정지된 것이 아니라 혼이 "자신의 단순한 보편성 속에서 자기 자신으로 돌아오는 것이며 자신의 전체성을 회복하고 자기 괴리의 치유, 헤겔의 영혼론 - 메레이 그린"를 의미한다. "인간은 자신의 의식적 정신에서 오래 머무를 수 없으며, 이따금씩은 자기 존재가 뿌리를 두고 있는 무의식적 정신으로 도피할 수밖에 없다. - 바이마르의 로테-괴테의 독백, 토마스 만" '현실'속 상상이 환상으로 이상(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상태)을 목표삼지 않을 때, 초자아(양심, 윤리)는 현실이라는 자아ego(원초아ID와 초자아super-ego 중재)로 원초아(본능)를 구속한다. 반면 '꿈'은 조건없는 상상을 실현한다. 그래서 무의식에서의 초인은 모순inconsequence이 된다. 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의식에서 불가능했던 것을 무의식, 즉 꿈은 실현시켜 준다. 의식은 '길'을 위한 숙명적인 '공간'을 모두 채우지 못한다. 그래서 '앎'으로의 무의식-음陰氣에서 양陽氣으로-은 의식이 충족시키지 못한 '자유의지를 담은 삶이라는 가변적인 길'들을 성취하려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해석처럼 꿈은 수면 중에도 (음에서 양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는 '생각'인 것이다. (기린은 24시간 동안 10분에서 2시간 정도 수면한다.) 무의식은 통상적, 기압(氣 기운 기, 壓 누를 압)으로 인해 억압된 신체(삶으로의)에 반응하고, 의식은 통상적, 기압으로부터 자유로운 정신(앎으로의)에 반응한다. "모든 사람은 꿈속에서 자신의 성격대로 이야기하고 행동한다. 쇼펜하우어" '성격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 윤리와 도덕은 사유하고 의식하는 사피엔스의 의지다. 자유로운 인간은 아름다움을 향한다. 꿈(무의식)은 의식의 화이트 홀과 같다. 꿈이라는 우연한 불규칙성에서 미학적 취향과 도덕적 판단은 질서를 잃는다. "꿈에는 직접 도달할 수 없는 태고적 인간 본성이 작용하고 있다. 니체" 이와 달리 의식으로 돌아온 꿈은 기억이 주관하는 이성의 틀에서 심리적 검열에 의해 소실, 생략, 압축, 편집, 왜곡, 착각되어 다의적으로 해석된다. 삶은 DNA를 수시로 복제하지만 원리를 자유롭게 구상하지 못한다. 【E=hv, 인간은 뉴런(시냅스)를 사용하고, 기계computer는 전하(전기장)를 사용한다. (기계는 DNA의 언어를 분석하고, 삶은 앎이라는 우주comsos의 언어를 분석하고 있다.) 시냅스synapse란 한 신경세포neuron에서 다른 세포로 신호를 전달하는 연결지점을 말한다. 뉴런은 빛(전기의 속도)보다 느리다. 삶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정보DNA는 대락 '1,000권의 책' 50억비트에 들어있고, 두뇌의 정보량은 '2,000만 권의 책' 100조 비트다. 인간이 얻고자 하는 것은 50억비트를 포함한 100조 비트가 상상에 의해 조합되어 만들어낼 수 있는 정보, 즉 앎이다. 이 과정에서 기시현상(dejavu; 이미 본), "무의식에 의한 행동이나 망각된 기억이 유사한 경험으로 되살아 나는 것, 위키"이 일어난다. *DNA 정보 참고: 코스모스】 하지만 꿈은 이성으로부터 자유롭다. 프로이트가 말했듯이 의식은 무의식의 단계를 거치고, (전형적인 일상은 모두 무의식 속에 전개된다) 무의식은 스스로 존재하는 심리적인 것이다. 오늘도 사피엔스는 백일몽daydream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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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피엔스는 어두운 동굴 속에 웅크리고 앉아 그림자 놀이를 하고 있다. "지하의 동굴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상상해 보자. 빛으로 향해 동굴의 폭 가득한 통로가 입구까지 달하고 있다. 사람들은 어릴 적부터 손발이나 목도 속박되어 있어 움직이지 못하고, 쭉 동굴의 안쪽을 보면서, 되돌아 보는 것도 할 수 없다. 입구의 아득한 윗쪽에 불이 불타고 있고, 사람들을 뒤로부터 비추고 있다. 불과 사람들의 사이에 길이 있어, 길을 따라서 낮은 벽이 만들어져 있다. 벽을 따라서, 여러가지 종류의 도구, 나무나 돌 등으로 만들어진 인간이나 동물의 상이 벽 위에 옮겨져 간다. 옮겨 가는 사람들 속에는 소리를 내는 것도 있으면서, 입다물고 있는 것도 있다. - 국가, 플라톤" 누군가의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지동설) 덕에 삶은 알타미라 동굴에 벽화를 그리고 앎을 깨우쳤다. 그러나 삶에게 앎은 여전히 두려운 대상이다. 삶이 본 그림자는 앎의 실체가 아니였던 것이다. 괴테가 말했다. "만약 우리의 눈이 태양의 속성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빛을 볼 수 있겠는가?" 족쇄에 묶여있는 삶은 각성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사피엔스는 무거운 족쇄를 풀고 태양이 내려찌는 동굴 밖으로의 탐험을 나서기에 이른다. 태양의 존재를 의식consciousness한 사피엔스는 아폴론 신전Delphi을 지었고, 무의식적인 동기unconsciousness하에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oracle을 신전 앞마당에 새겼다. ["'그들이 풀려나서 불과 지나가는 물건들 쪽으로 머리를 돌리도록 강요받지만, 눈부심 때문에 똑바로 볼 수도 없다. 그들이 밖으로 끌려가지만, 햇빛을 대할 수 없고, 그들 주변에 있는 자연적인 대상들도 어느 하나 볼 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우선 그것들의 그림자들이나 반사물들을 본다. 그런다음에, 그 대상들을 직접 보고, 별들과 달을 보고, 태양을 본다.' 위쪽 세계의 사물들을 보기 위해 오르는 것을 자네는 혼이 가지적인(옳을 가可 알 지知) 것의 (하늘 위의 신들의 영역, 파이드로스) 영역으로 오르는 (휘페리온의) 여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여겨도 좋을 걸세. - 국가, 플라톤"]《물질(Matter; 나-self)은 분자(Molecule; 물 혹 이산화탄소 혹 포도당 etc)들로 이루어져 있고, 분자는 원자(Atom; 수소 혹 산소 혹 질소 etc)들로 이루어져 있다. 원자 속에는 원자핵(Nucleus)을 도는 전자(Electron)구름이 있다. 원자핵 속에는 중성자(Neutron)와 양성자(Proton)가 있고, 그 속에는 업 쿼크(Up Quarks)와 다운 쿼크(Down Quarks)로 구성되어 있다. 그 다음이 끈이론(String Theory)이다.》 사피엔스는 자신을 알고 싶었다. 결국 나르키소스는 연못을 찾았고, 비춰진 타자를 통해 거울효과Mirror neuron를 얻어 각성하고, 그 결과를 (DNA에) 각인하기 시작했다. (삶은 타자를 통해 나를 부정하고, 다시 나를 긍정DNA replication하는 과정을 수없이 반복하는 것, 바로 경험과 학습이다. 21일 동안 자신의 습관을 바꾸면 DNA 유전자 구조도 변경될 수 있다. "'DNA makes RNA makes protein.' 생물이 지니는 정보는 DNA에 저장되고 복제되어 자손에게 전하여진다. 또 정보를 발현할 때는 DNA의 정보는 먼저 RNA의 형태로 전사되고, 다음에 단백질의 형태로 표현.번역된다. (...) 단백질의 분자는 거대분자다. 단백질은 DNA와 RNA의 정보를 바탕으로 만들어진다. 한편 DNA와 RNA를 만드는 데는 효소작용을 하는 단백질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원시의 지구 위에서 생명이 탄생 하였을 때, 단백질이 먼저 생겼을까? 핵산이 먼저 생겼을까? - 단백질이란 무엇인가, 후지모토 다이사부로") 태양을 보고 양력陽歷solar calendar을 만들던 사피엔스는 기어코 달빛아래 그림자 놀이를 하며 음력陰歷lunar calendar을 고안해냈다. ('해가 뜬다'가 아니라 '지구는 돈다'. 이것이 관습이다.) 망각이 감각에게 가져다주는 피로감에 어둠이 깃들었다. 삶을 비춰주던 태양이 지고 별(칸트가 명명한 섬우주island universe, 'M31')이 빛나기 시작했다. 이제 한창 사피엔스는 아폴론적 세계에서 인상(일출 해돋이)을 배웠으며, 하나의 조각배를 띄우고 신념과 원리와 고독에 사로잡혀 우주력cosmos calendar(cosmos - 질서, chaos - 혼돈)을 찾아 나섰다. 《아인슈타인은 과학에 광자를 추가했다. 빅뱅에서 원시우주의 구성까지의 과정 (10^-33 cm)은 아주 짧은 시간(0초 ~ 10^-43초 사이)인데, 이것을 재기 위해서는 '광자가 빛의 속도로 플랑크 길이를 지나간 아주 짧은 단위의 시간'이 필요하다. 이것을 플랑크 시간이라고 한다. 광자가 전자기력이고, 이웃인 W보손과 Z보손은 약한 상호작용을, 글루온은 강한 상호작용을 한다. 광자, W보손, Z보손, 글루온은 모두 '힘을 매개하는 입자'다.》

 

"(LHC에서) 신의 입자, 힉스(힘을 매개하는 마지막 입자)를 발견했다.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럼 그걸로 뭘 할 것인가? 리사 랜들" 《에너지가 우주라는 장(field)을 자극하면 장의 파동이 만들어져 입자가 생성된다. 에너지가 전자기장(electromagnetic field)를 자극하면 '빛'의 파동으로 광자라는 입자가 생성된다. (질량이 없는 광자는 빛의 속도가 가능하다.) 에너지로 힉스 장(Higgs field)를 자극하면 힉스 보손이라는 입자가 생성될 것이다. (광자 대신 약력 게이지 보손이 약력 전하를 가리면 약력 게이지 보손은 원자핵보다 작은 영역에서 질량을 갖게 된다. 힉스 장은 약력 전하를 띠지만 중성이고, 광자는 약력 전하와 상호 작용하지 않아 중성으로 남는다. '약력 대칭성'이 '긴 거리에서', '저에너지 상태에서' 깨지면 힉스 메커니즘은 고에너지 상태의 입자 질량을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참고: 이것이 힉스다 - 리사 랜들》 힘을 매개하는 입자 '게이지 보손'에서 가상입자 '중력자'를 발견했다. 그럼 '힘'의 마지막 수수께끼, 중력의 원천으로 어떻게 무엇을 할까. (우주선을 가속하면 인공중력을 얻을 수 있다. Interstellar나 The Martian을 보면 우주선이 Inception의 팽이처럼 기울지 않고 끊임없이 돌고 있다. 그래서 우주선에 탑승한 우주인은 무중력상태를 벗어나 내부를 순조로이 걸어 다닐 수 있게 된다.) 전자기력, 약력, 강력으로 사피엔스는 무엇을 이루었나. (대형 강입자 충돌기Large Hadron Collider에서는 암흑 물질 연구도 한다.) 자연에 존재하는 4가지 힘들 중에 가장 약한 중력은 그 위력이 가장 엄청나다. 파도가 치기위해 달이 지구를 도는 '중력'(질량을 갖은 물체가 서로 당기는 힘: 태양의 중력이 미치는 가장 먼 곳이 오로트구름지대, 지구의 평균 공전 속도는 29.783km/s)이 필요하고, 전구를 밝히기 위해 '전자기력'이 필요하고, 원자력을 얻기위해 중성자와 양성자를 변화시키는 '약력'이 필요하고, 원자 속 원자핵이 뭉쳐있기 위해 (분자로 구성된 나를 유지하기 위해) 퀴크끼리 결합시키는 '강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블랙홀의 중력은 빛도 쓸어간다. '힘에의 의지'란 나를 상실하므로써 자기자신에게로 돌아온다는 의미다. '너 자신을 알라'했고, 그리하여 '태양' 계(system)에서 원을 그리는 중력에의 의지란 어떤 미래(삶의 공간, field)를 가져올 것인가. 힉스의 정확한 성질을 알고 중력자를 분석하면 새로운 에너지 혁명이 가능할 것인가. 새로운 '삶의 공간'은 새로운 입자를 생성할 것이다.

 

'운동의 원인은 에너지다. 목적은 아름다움이다.' 삶이 운동하게 만드는 ("근육 및 운동 제어를 돕는" - 뇌과학자 김대식) 신경전달물질 도파민dopamine은 뇌신경세포 흑질subtantia nigra과 뇌의 여러 영역에서 생성된다. 웃을 때 뇌는 기분을 향상시키는 긍적적인 요소 세로토닌, 도파민, 엔돌핀 등을 유발한다. 망각 또한 뇌에 일시적인 충격으로 도파민, 아드레나린, 세로토닌, 옥시토신, 바소프레신을 분비한다. 성욕과 관련이 깊은 세가지 신경물질은 도파민, 세로토닌, 그리고 가바Gaba라 부르는 감마아미노낙산이다. 즐거움은 사피엔스가 모르던 앎이다. 사피엔스가 운동하는 것은 도파민 때문이고, 도파민을 생산하기 위해 웃음과 농담을 상대와 나누고, 그래서 망각과 이성異性에서 쾌락을 보충하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은 에너지다. 에너지가 '삶의 공간'을 자극하면 파동으로 입자가 생성된다. 입자가 공간에 그려내는 인상impression은 사피엔스가 보기에 아름답다. 이 아름다움은 삶이 현재 알고 있는 앎이다. 현재의 앎은 앎의 앎이 아니고, 삶이 아는 앎이다. '세계-내-존재'인 윤리적 객체는 앎이라는 주체를 경험하며 '자아 확장', self-expansion으로 (아바타처럼, 환상통phantom pain처럼 '나의 가능성'에 참여하는 것들 *참고: 인간을 읽어내는 과학 - 김대식) 새로운 주체가 되어가는 것이다. 《사피엔스의 삶은 현재 섭씨 37도다. 그리고 사피엔스의 시선은 가시광선, "보.남.파.초.노.주.빨"에 고정되어 있다. 분자가 진동하면 열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태양의 적외선(사피엔스는 가시광선만 볼 수 있지만 보어뱀류와 방울뱀류는 다른 동물에서 나오는 적외선 열을 감지할 수 있다.)은 공기의 분자를 진동시키거나 물의 분자를 진동시켜 지구의 온도를 높여준다. 사피엔스는 분자들로 이루어져 있다. 분자가 활동을 멈추는 경우는 절대영도Absolute Zero에 도달했을 경우다. 절대영도란 섭씨 -273.15도, 엔트로피는 0이 된다. 절대영도가 가능하다면 객체는 '세계-내-존재'에서의 지위를 상실하는가. '나'라는 기준은 자아에 달렸다. *참고: 빛과 색의 이야기 - 윤실》아름다움을 노출시킨 앎, 하지만 앎은 여전히 자신을 은신한다. 잃어버린 언어는 윤리(인류 윤倫, 다스릴 리理)였고, 나, '사피엔스의 가능성'은 타자의 시선이였다. '성격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환경에 의해 결정되므로' 방언이 생겨났고, 언어의 정원은 앎을 피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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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hiuchus (intermi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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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50

 

몸과 마음의 기능이 경지에 도달하여 완벽하게 발휘된 상태를 덕virtus, 아레테arete라 한다. 미덕(arete; 소크라테스의 덕이란 지행합일, 즉 진리와 지식을 실천하는 것)이란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아는 것, 앎을 의미한다. (앎에는 의무와 행동movement이 뒤따른다.) 플로티노스는 모든 미덕(용기를 가지고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영혼의 아름다움'platonic(정신에 집중해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처럼 사랑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신nous이란 나를 이루는 몸과 영혼과 이성(logos)에서 '신적인 이성'을 말한다. (진위와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이성'이라 한다.) "[영혼 안에] 변함없이 머물러 있는 '정신nous'의 아름다움은 도대체 무엇이라 말해야 할까? - 엔네아데스, 플로티노스" 있었으나 없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회상), 소멸되었으나 다시 생성되는 것에 대한 아름다움(상상), 계절은 변화가, 빛은 어둠이, 소리(진동)는 진공이, 아침이 아름다운 것은 저녁 때문이다. 기쁜 것은 슬픔 때문이고, 그것은 이성이 질료에 부여하는 질서, 우주적 질서인 로고스(이성)에 의해서 이다. [빛의 속성을 갖은 물질(나)은 빛에 의해 쌍생성되어 물질matter과 반물질anti-matter로 나뉜다. 그리고 물질인 전자(-)와 반물질인 양전자(+)가 만나 쌍소멸되어 다시 빛(광자)이 된다. 그 후 빛은 다시 물질과 반물질로 쌍생성된다. 만약 암흑물질과 반암흑물질이 쌍소멸되어 암흑광자를 만든다면, 중력에 반응하는 암흑광자에서 보이지 않는 중력이 무엇으로부터 (암흑물질) 질량을 얻는지 알아낼 수 있다. 그 질량을 알아내면 힘의 마지막 비밀의 빗장이 풀린다. 그리하면 힘을 매개하는 입자 '게이지 보손' 속 가상입자 '중력자'를 추적할 수 있다.]

 

'우리의 눈이 태양의 속성을 갖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떻게 빛을 볼 수 있겠는가.' 우주(주체)에서 물질(삶의 주체이자 우주적 객체)을 제외하면 반물질(질량을 가지고 우주공간의 일부를 차지하는 객체)이다. 나를 제외시키면 나머지는 반물질이다. 미덕을 앎에 대한 삶의 사랑eros이라 하고, (에로스는 부당하지 않다. 에로스는 강제 당하지 않고 어떠한 완력에게도 굽히지 않는다. 에로스는 공정하고 절제심이 있으며, 쾌락을 지배한다.) 물질과 반물질의 질서를 다루는 것을 '신적인 이성', 정신nous이라 가장하자. "그러므로 만일 신을 보고 싶어 하고 또 아름다움을 보고 싶어 한다면, 정녕 처음부터 신을 닮고 또 모두 아름다운 모습으로 태어났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 엔네아데스, 플로티노스" 아름다움(미의 결정체)을 보고 싶고, 또 보려 한다면, 로고스(이성)에 의해 정신에 이르고 '온갖 아름다운 형상들eide'에, 아름다움에 끌리게 된다. 앎의 주체가 되는 빛, 객체가 되는 어둠, 계(system)가 되는 정화, 장(field)이 되는 삶에는 아름다움의 속성이 있다. 아름다움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아름다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어둠이 없다면 밝음은 무의미하다. 일몰과 일출의 쌍소멸 후 찾아든 여명은 앎으로 다가가는 삶의 약동이다. "오로지 신을 보고자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빛이 있고 그와 반대의 경향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있다. - 빵세, 파스칼"

 

아름다움(앎)이 변하면 아름다운 것(지식의 기준)이 변한다. "눈이 어떻게 해서든 태양을 볼 수 없다고 한다면, 눈에는 태양을 닮은 구석이 전혀 없이 생겨났다고 말해야 하듯이 그처럼 영혼도 아름다운 것을 볼 수 없다고 한다면, 영혼이 전혀 아름다운 것으로 태어나지 못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 엔네아데스, 플로티노스" 없음이 있음으로 우주적 질서 로고스를 정의하는 것, 여기서 미덕은 질료를 다듬는 제작자의 이성이다. 시선은 아름다움(형상)을 포착하고 그와같이 아름다워지려는 복제의 기제다. "아름다운 것은 늘 아름답다. 왜냐하면 아름다운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 안에는 결코 머무르지 않기 때문이다. 제각각 흡사하면서도 낯선 지반 위에서 방황하지 않고, 저마다 현재의 그 자리가 곧 존재하는 그것이다. - 엔네아데스, 플로티노스" 아름다운 것은 아름다움에서 발단된다. 앎에는 용기를 가지고 자신을 아는 미덕이 필요하고, 제작자의 시선은 앎이 보여준 아름다움으로 아름다운 것을 창조한다. 향연에서 나오는 신들의 음료 넥타nektar가 '정신적인 물질 hyle noete'이라면 그것이 윤리인가. 「'신의 고결하고 숭고한 향연Symposium을 위해' 반죽되고 부드러워진 빵은 욕망이란 화덕에 알맞게 익혀진 후 비로소 아름다운 연회에 사용된다. 비록 우리가 속한 삶이 '공포로 가득한 광란의 바다 위에서 하나의 작은 조각배만을 의지하며' 고독에 잠기는 아폴론적 세계이거나, 철학(지혜를 사랑함)과 앎을 경험하기 위해 지각을 버리고 슬픔을 지우려 망각에 빠지는 디오니소스적 세계인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다만 지금껏 중용 뒤에 감춰진 '고결하고 숭고한 빵'을 나누며 '비극의 탄생'이 들어나는 향연에 "디오니소스를 심판관"으로 모시지 않을 수 없을 따름이다. 따라서 '착하지 못한 본능'은 슬픔과 고통을 느끼고, '윤리를 품은 권력'은 기쁨과 쾌락을 바라보게 되는 것이다.」 사피엔스는 철학을 철학한다. 소멸과 생성 속 '앎에 대한 지성의 욕망'으로 사피엔스는 (쌍소멸과 쌍생성을 위해 내가 소유하고 있지 않는 것으로의 - 미토콘드리아: 모계, Y염색체: 부계)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y'을 지혜로 사랑한다. (역설적이게도 상스러움vulgar에 매료되는 것〈부조리〉은 질서로 인한 질식과 향수 때문이다. 그리고 질료를 다듬는 제작자는 이것을 상품화하고 소비〈부조화〉하게 만든다. 미래의 '그 무엇'은 현재에 무척 상스러울 것이다. 선험적이며 후험적인 직관으로 앎을 답습하는 과정은 짧아질 것이다. 알지못하는 앎의 부분은 상스러울 것이다. 고전은 여전히 읽힐 것이고, 카뮈는 부조리를 외칠 것이다. 필요한 것은 넥타다.) 요컨대 질서를 다루는 이성과 윤리로써 사피엔스는 '너 자신을 알고', 정신은 사랑platonic love을 한다. 사피엔스가 찾아헤메는 에로스eros, 그것은 조각배에게 등대가 되어준다는 것, (romance, 환상적이고 공상적인 낭만과 로망과) 애정의 시작이고, 그리하여 언젠가 스스로 빛나 바다의 별Stella maris이 되어준다는 것, 영원한 우정을 설명한다. 그렇다면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는 한낮 불장난에 불과한가. 빛의 속성을 갖은 자는 타오르는 심장을 가지고 있다. "City of stars, Are you shining just for me? City of stars, there's so much that I can't see. 별들의 도시여, 그대 나만을 위해 빛나는 것가요? 별들의 도시여, 내가 볼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군요. - 라라랜드"

 

"사진의 기술적인 기원 때문에 그것을 어두운 통로 (암실/어두운 방: camera obscura)의 관념과 연결시키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우리는 밝은 방(camera lucida)을 언급해야 한다. 왜냐하면 시선의 관점에서 보면 '이미지의 본질은 내밀함 없이 전적으로 바깥에 있으나 내면의 사유보다 더 접근할 수 없고 더 신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명시적인 의미는 없지만 가능한 모든 의미의 깊이를 부른다. 그것은 세이렌(반인반어의 요정)의 매력과 매혹을 만들어 주는 그 존재-부재를 지니고 있음으로써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뚜렷하다. 블랑쇼' - 밝은 방, 롤랑 바르트" 앎은 삶의 권리인 동시, 삶에 의무를 요구한다. 세이렌을 향한 율리시스의 시선은 자유롭다. 아름다움을 향한 시선은 자유롭지만 그것에는 주이상스(Jouissance: 고통스러운 즐거움)가 따르고, 자신을 돛대에 묶지 않고는 망각(기억의 바다넘어 삶으로부터 잊혀진 것을 깨우는, "생명이 영원히 고정되는 장소, 즉 세이렌들이 거주하는 바로 그 장소, 레나타 살레츨")이 가져온 매혹적인 세이렌의 유혹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죽음(고통스러운 즐거움)에 대한 자각을 통해 삶을 재구성하려고 시도하는 기투(기투란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로 자기를 내던지는 실존의 존재 방식)를 가지며 스스로 자유로울 책임이 있다. - 사르트르" '밝은 방'light house은 쌍생성하는 것(물질matter과 반물질anti-matter)에서 쌍소멸(어두운 통로를 지나 빛이 되는 것)을 이루며 '존재-부재를 지니고 드러나지 않으면서 뚜렷한' 찰라를 만든다. (예술이란 이 찰라를 담은 인위가 보편성을 뛰어넘어 승화되는 것이다. 메를로 퐁티는 "과거와 현재는 상호 침투하고 그 각각은 에워싸는 것인 동시에 에워싸이는 것이며", 그것 자체가 '살flesh'이라고 표현했다. 유전체는 후험적인 가능성과 선험적 지식을 갖고 있고, 감각 기관은 표상을 통해 추상적인 개념으로 대상을 지각하고 인식한다. 그리고 색채를 다루는 화가는 대상object인 사물을 단순히 지각(시선)하는 것이 아니라, 동시에 주체subject가 되어 '세계-로의-존재', 회상과 이상과 상상이 상호 침투하는 한 덩어리의 '살flesh'을 확대하거나 축소해 보여준다. 이 화가의 시선을 퐁티는 '봄의 나르시시즘'이라 말한다. *퐁티【 세계-로의-존재 etre-au-monde】와 하이데거【세계-내-존재 In-der-Welt-sein】 모두 에드문트 후설의 영향을 받았다.) 빛은 대상을 아름답게 만든다. 즉자에 불과한 대상은 무질서에 빠져있고, 관찰자의 시선, 즉 자유의지와 그에 따른 감정의 돌발은 질서를 요구한다. 질서란 사피엔스의 의무다. 윤리(나의 가능성)의 부재는 무질서를 만들어 이성(진위와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 새로운 것을 정의(just-ify)하게 한다. ['세계-내-존재', 공간 '안'의 어떤 위치에 함께하는 키에르케고어의 "윤리적인 것은 그것이 윤리적인 것인 한에 있어서 보편적인 것이고, 그것이 보편적인 것인 한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것"이다. 일체the whole에 대한 텔로스(완전함teleios을 위한 목적telos)는 자기 바깥에 있지 않으나 자기 바깥에 가지고 있는 목적이다. 윤리적인 것은 늘 보편적인 것인데, 예술이 이 같은 보편성을 뛰어 넘는 경우(승화)는 각성이 진화의 동인이 되어 칸트의 도덕률을 충족시킬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인륜적humanity인 것에 대한 숭고한 변명을 전해야 하는 것은 원칙적인 채식주의자로서 죄책감을 느끼며 고기를 섭취《운동을 위한 부조리, 운동의 원인은 에너지, 목적은 아름다움》하는 아인슈타인의 고뇌《삶은 그에게 아직 창조되지 않은 인류의 양심을 영혼의 대장간에서 벼리어 내라고 주문한다. *참고: 젊은 예술가의 초상, 제임스 조이스》때문이다. 헬레네(아름다움)를 되찾으려 트로이 원정에 나선 아가멤논이 이피게니아를 아르테미스 여신에게 희생의 재물로 바친 것에 비유된다. *아인슈타인 참고: 인생의 발견, 시어도어 젤딘) 객체라는 개별자가 보편적인 세계가 가져다 주는 유혹Anfechtung으로부터 자신을 부정하고 주체라는 보편성을 찾을 때 텔로스는 보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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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승에 있는 다섯 개의 '깊은 강'은 아케론(슬픔과 비통함), 코퀴토스(후회스러운 기억에 대한 탄식), 플레게톤(불로 이루어진 강. 이 강을 지나는 동안 영혼이 정화된다. 인간에게 플레게톤을 뿌리면 올빼미owl가 된다. 한편 '올빼미의 눈을 가진glaukopis' 미네르바<로마식: 미네르바, 그리스식: 아테네>의 부엉이owl는 지혜의 상징이다.), 스틱스("자욱한 안개 속으로 스튁스 강이 느릿느릿 흐르고 강 옆으로 난 이 길로 갓 죽은 망령들, 갓 묘지에 묻힌 인간의 그림자들이 내려간다...... 바다가, 세상의 강이라는 강은 모조리 받아들이듯이 이 저승 궁도 망령이라는 망령은 모조리 받아들인다. - 변신이야기" 오케아노스Oceanus는 3,000개의 강과 3,000명의 딸들을 낳았는데, 오케아노스의 장녀 스틱스Styx는 열망Zelos, 승리Nike, 힘Kratos, 완력Bia을 낳는다. 증오의 강 스틱스는 아킬레우스가 발꿈치만 제외한 나머지 몸을 담가 불멸의 힘을 얻은 곳이다. 그래서 발꿈치는 아킬레우스의 치명적인 급소였고, 트로이 전쟁 당시 트로이 왕자 파리스는 아폴로의 도움으로 그의 급소를 명중한다.), 그리고 망각의 강 레테Lethe다. 흐르는 레테의 강 위로 잠의 신 휘프노스hypnotism<솜누스insomnia>의 궁전이 자리하고 있다. 솜누스의 맏아들이 꿈의 신 모르페우스Morpheus다.

 

나르키소스(강의 신 케피소스의 아들, 나르키소스는 망연지실이라는 뜻)는 스틱스강을 바라보았다. 여기서 나르키소스의 시선은 '봄의 나르시시즘'이다. 나르키소스의 이성(진위와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을 '이성'이라 한다), 즉 직관【칸트의 이론이성; 전두엽은 앞으로 일어날 어떤 사건이나 수의 운동의 결과를 예측한다. 전두엽은 미래를 예측하고 계획하는 기능을 담당하는데, 전두엽은 근심과 불안의 원천이기도 하다. 전두엽을 절개하면 환자의 불안감이 줄어든다고 한다. 아폴론에게서 예언의 능력을 받았으나 그의 구애는 거절한 카산드라는 훗날 파리스가 스파르타에 가면 트로이에 재앙이 올 것을 예언한다. 하지만 아폴론의 저주로 아무도 카산드라의 예언을 믿지 않는다. 얼마 후 파리스는 베일에 쌓인 헬레네(아름다움)를 탈취하게 된다. 그리하여 헬레네로 인한 트로이 전쟁이 일어난다. 《'빛나는 자'(아폴론; 태양신)로 인해 발설된 아름다움은 다시 은신하고자 한다. 미는 은신처에 숨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전두엽 참고: 에덴의 용, 칼 세이건】은 동시적인 오감의 부재로 실재에 적용되지 못한다. 불만족스러운 (욕구불만) 나르키소스는 예민해hysteria진다. "내가 사랑하고 내가 보는 내 사랑에, 나는 아무리 손을 내밀어도 마침내 닿지 못하는구나. - 나르키소스, 변신이야기" -비춰진 타자를 통해 거울효과Mirror neuron를 얻어 각성한- 나르키소스는 슬픔과 비통함에 빠졌고, 후회스러운 기억에 대한 탄식에 젖어들었으며, 사랑의 불길에 자신을 휠휠 태워가고 있었다. 나르키소스의 사랑은 손을 내밀어도 마침내 닿지 못하고, 그의 사랑(나 안의 타자, "[이념으로서의 생명은] 그것을 통해 비로소 생명이 주체가 되는 제 자신의 운동이기 때문에, 자신을 자신의 타자로 만들고...... 자신에게 귀환하고 또 자기로의 귀환을 완수하고자 그 자신에게 대상의 형식을 부여한다. - 자연철학, 헤겔")은 그를 피하며 그를 증오한다. "신들이시여,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내게서 떨어져 나가게 하소서. 아, 슬픔이 내 힘을 말리는구나. 내게 이제 생명의 기운이 얼마남지 않았구나. 나는, 내 젊음의 꽃봉오리 안에서 죽어가고 있구나. 죽음과는 싸우지 말자. 죽음이 마침내 내 고통을 앗아갈 것이니...... - 나르키소스, 변신이야기" 죽어가는 나르키소스는 행복할 수 없었으나 아름다움이 가져다주는 망각으로 (주이상스) 즐거웠다. 내게 없는 것, 소유하지 못한 것을 충족하려는 것은 나를 사랑하는 일Narcissism이다. '앎, 아름다움'으로 도약한 삶의 운명, '삶을 위해 존재하는 앎, 아름다움을 욕구하는 즉자'는 마침내 수선화를 피워낸다. (수선화의 꽃말은 "자기애, 자존심, 자부심, 고상함, 사랑을 다시 한 번"이다.) 그리고 신은 죽었다. 아름다움을 피위내기 위해 (완성을 위해) 신은 죽어야만 했다.

 

고독에 잠기는 아폴론적 세계에서는 '태양을 향하는 꽃' 해바라기가 핀다. 젊음의 꽃은 피워지고, 평화로운 세계의 '하나이자 모두인 것'을 자신을 통해서 생성해 내기 위해 그것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영혼은 '높은 곳을 달리는 자', 휘페리온hyperion(태양신 헬리오스와 달의 여신 셀레네의 아버지)이 된다. 포이니코스(피닉스, 스스로 재생하는 동물)는 아버지의 무덤이자 자신의 요람인 둥우리를 물고 '태양의 도시'(이집트의 헬리오폴리스, "하늘 위쪽의 영역hyperouranios topos - 플라톤")로 날아가 휘페리온 신전 문 앞에서 그것을 태워버린다. (생성에서) 형상이 있으면 그것의 질료가 되는 원소는 자신을 헬리오폴리스 앞에 내려 놓으므로써 (플레게톤으로 정화됨으로써) 오롯이 자신에게 깃드는 것이다. *참고: - 휘페리온, 횔덜린, - 퓌타고라스-불사조, 변신이야기

 

플라톤의 「파이드로스」에서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영혼을 두 마리의 말(욕망과 의지)이 끄는 마차(이성)에 비유했다. 칼 세이건은 이 두 마리의 말을 각각 '생존을 위한 파충류의 뇌'인 R복합체와 '포유류의 오래된 뇌'인 변연계로 보았고, 마부를 '사고와 언어를 당담'하는 신피질로 비유했다. R복합체, 변연계, 그리고 신피질을 합친 것을 영혼triune brain이라고 가정한 것이다. 플라톤의 삼분법은 욕망epithymia, 감성thymos, 그리고 이성logos로 이루어져 있다. '욕망과 의지'는 운동의 목적인 아름다움에 이르기 위해 우주적 질서 로고스를 사용한다. 영혼은 원인인 잠재태(씨앗; 잠재적인 능력 또는 힘)가 목적인 현실태(열매; 실제의 또는 실질적인 작용)로 아름답게 피어나도록 만드는 도구다. "질료는 잠재태이며, 형상은 현실태다. 아리스토텔레스" 질료(앎)가 잠재태(씨앗)이며 형상(삶)은 현실태(열매)일 때 "신체는 영혼의 현실태(열매)가 아니며, {오히려} 영혼이 어떤 신체의 현실태(열매)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원인은 영혼이고 목적은 아름다움(앎)이며, 생물(삶)을 구성하는 '영혼과 신체'의 결과는 고통스러운 즐거움Jouissance(죽음)이다. 아리스트텔레스는 (헤겔 역시 「자연철학」에서) 영양섭취능력, 감각능력, 욕구능력, 장소이동능력, 사유능력 등의 "감각"이 영혼의 능력이라고 보았다. 영혼이 만드는 아름다움의 크기는 나를 이루는 '세계-내-존재', 원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질료는 형상의, 앎은 기억의 소산이다. 다시 (인중무과설에서의 인중유과론) 아름다움이 실현되었을 때 목적은 달성된다. 《몸과 마음의 기능이 경지에 도달하여 완벽하게 발휘된 상태가 덕virtus이고, 이것은 영혼의 힘이라는 뜻을 지닌다. 신기(귀신 神 기운 氣)를 몸을 돌아다니면서 작용하는 양기(볕 陽 기운 氣) 혼(넋 魂)이라하고, 정기(정할 精, 기운 氣)를 농축된 음기(그늘 陰 기운 氣) 백(넋 魄)이라고 하면, 신체를 살아 있게 만들어 주는 혼백, '이성'적 정신(정할 精 귀신 神)은 신체의 변화에 결부되어 있는 '욕망'적 감각(느낄 感 깨달을 覺; sensation)과 '감성'적 지각(알 知 깨달을 覺; perception)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인간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망각(잊을 忘 깨달을 覺)하고 인식(알 認 알 識; cognition)하고 각성(깨달을 覺 깰 醒)한다. *참고 영혼론 입문, 이정우》 "마음이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이고, 합리적인 이성은 마부와 같다. 감정은 이성이라는 마부에 의해 멈춰져야 하는 야생마 같은 존재다. - 파이드로스, 플라톤" 원초아ID와 초자아Ego에서 에너지를 얻어 마차를 끄는 것, 그리하여 '힘에의 의지'에서 지력으로 무엇을 경험하는 것이 프로이트의 해석에서의 이성consciousness이다. 그리고 무의식적으로 unconsciousness 자신을 알고 싶어하는 것이 바로 삶의 동기다. "영혼의 모든 기능과 능력은 하나의 공통된 토대에서 도출된 세 개의 능력으로 환원될 수 있는데, 그것들은 각기 인식의 능력(이성 logos), 쾌락과 고통의 느낌(감성thymos), 욕망의 능력(욕망epithymia)이다. - 판단력 비판, 칸트" 깊은 수면에 빠지면 노르아드레날린과 세로토닌이 중지되고 변연계 부위와 간뇌의 교뇌피개 등이 활성화 된다. 웃거나 움직일 때 세로토닌, 도파민, 아드레나린이 증가하는 것과 대조된다. '삶'을 집행하는 의식이 측두엽 아래 변연계의 억제중추를 켰다면, 무의식속의 '앎'은 활성중추를 작동해 파충류의 뇌인 R복합체를 활성화시켜 사피엔스를 (보는 것 - "상상": 생각 想 형상 狀, "imagination") 꿈꾸게 만든다. *뇌 참고: 에덴의 용, 칼 세이건, 임지원

 

이성은 윤리적이다. 자연과 완벽한 조화를 이루던 시대가 지나고 사피엔스의 앎, '지능'은 윤리적 판단이 두루 통용되면서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600만 년 전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두개강 부피는 430~600cm³였으나, 20만 년 전 발원한 호모 사피엔스의 두개강 부피는 1,100~2,200cm³다. 늘어가는 지식을 수용하기 위해 두개골의 부피가 점차 커졌던 것이다. 실제로 수백만 종의 동물 가운데 인간만이 유일하게 분만의 고통을 느낀다. 【프로메테우스는 제우스의 불을 훔쳐 지상으로 가져가 문명을 이뤘고, 제우스는 불의 댓가로 "모두 자신의 재앙을 껴안으며 마음속으로 기뻐하게 -일과 날, 헤시오도스" 올림포스의 공예가 헤파이스토스를 시켜 판도라를 만들었다. 그리고 '플레게톤'의 불같은 사랑의 정화는 '최초의 여인' 판도라에게 희망을 안긴다.】 어찌보면 그것은 헤스페리데스의 동산Garden of Eden 헤라의 과수원에 열린 '아름다움(앎)의 상징' 황금 사과나무 탓이다. 트로이 전쟁의 발단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고 씌여있는 황금사과를 갖기 위한 올림포스의 세 여신 헤라<유노>, 아테나<미네르바>, 아프로티테<베누스>의 결투로 비롯된다. 파리스가 심판을 보았는데,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가 자신을 뽑아주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여자를 주겠다고 그에게 약속했다. 그 '아름다운' 여자가 바로 헬레네였다. *참고: 일리아스, 호메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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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포이의 명령 '너 자신을 알라' 는 '그대가 얼마나 대단한 존재인가를 알라'는 의미다. 그것은 '인간에게는 바로 그런 신적인 (지적인) 것이 있음을 알라'는 것을 뜻하며, 이 '신적인 것theion'은 인간이라는 유기체가 이성logos과 지성nous을 소유하고 있음을, "신의 선견과 배려에 의해서 '그 안에 혼(생명)을 지녔으며 또한 지성을 지닌 살아 있는 것', 플라톤 - 티마이오스, 박종현 김영균 공동 역주"을 지적한다.【삶은 무질서하고, 신적인 앎은 망각과 각성에서 질서를 다룬다. "신은 언제나 측정하고 있다. 플라톤" '우주를 구성한 이'가 (플라톤의 「티마이오스」에서의 설명처럼) 본(밑, 근본 本)들 가운데서 어떤 영원한 형상,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을 바라보며 어떤 영원한 모상(대상을 본떠서 만든 것)을 만들었다면 (삶을 창조했다면, 그래서 앎이 형태를 갖췄다면), '언제나 존재하는' 이것은 생성을 갖지 않고 '언제나 같은 상태로 있는' 것, '영원'이라는 본성을 따라 '똑같은 방식으로 한결같은 상태로 있는', '합리적 설명과 함께 하는 지성에 의한' "앎"이고, '언제나 생성되는' "삶"은 '참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쌍생성과 쌍소멸을 반복하는 '비이성적인 감각'과 함께하는 의견(판단)의 대상이 된다. '아름다움'을 비유해 부족함없이 '언제나 존재하는 것'이라 하면, 삶이라는 것은 개별 질서들이 무질서한 사회라는 우주 속에서 서로 충돌하면서 앎이라는 기하학적인 질서를 형성하고, 아름다움은 「생의 한가운데」 언제나 존재하게 된다. 무엇이 영원하다는 것은 "신이나 진실성처럼 시간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것, 다음사전"이다. "불은 흙의 죽음을 살며, 공기는 불의 죽음을 살고, 물은 공기의 죽음을, 흙은 물의 죽음을 산다...... 불의 죽음은 공기한테 탄생이고, 공기의 죽음은 물한테는 탄생이다. 헤라클레이토스" 플라톤 입체(모두 정다각형, 모두 합동, 각각의 꼭지점에서 만나는 도형의 숫자가 같다)에서 불은 정4면체(원자, 메탄분자, 암모늄이온), 흙은 정6면체(소금이나 광물의 결정), 공기는 정8면체(다이아몬드의 결정), 물은 정20면체(포진 바이러스)이고, "다섯 번째 것fifth element이 '에테르는 12면체(황도대 12궁)' 남아 있는데, 신은 이것을 우주를 위해, 우주를 다채롭게 그려 내느라 이용하였습니다. 티마이오스"】 그러므로 너 자신을 알라는 것은 '그대는 미천한 존재가 아니라 영혼을 가진 존재다', 즉 그대는 욕망epithymia, 감성thymos, 그리고 이성logos이란 성향과 성분을 지녔으니 이 사유능력(감각)으로 '영혼의 아름다움'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영혼의 아름다움이란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기예에 대한 사랑' philotechnia) 진.선.미를 갖추는 것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진을 과학으로, 선을 철학으로, 미를 예술로 구분했는데, 세 가지 모두 지식과 지혜에 연관되어 있다. 'science'는 지식이라는 라틴어 scientia에서, 'philosophy'란 사랑이라는 의미의 '필레인'과 지혜라는 의미의 '소피아'의 조합어이며, 'art'란 학문과 지식과 지혜라는 라틴어kunst '알고있다'(ars, techne: 기술, 솜씨)에서 기원했다. "철학은 [......] 배울 수 없으며, 이성과 관련해서는 기껏해야 철학함을 배울 수 있다. 칸트"

 

"이 슬픔은 「우리는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밀란 쿤데라" (실체의) 원인은 영혼이고 목적은 아름다움이며, 나를 구성하는 '영혼과 신체'의 결과는 주이상스다. 인상(일출 해돋이; 시간)을 배운 (타인지향적) 「고독한 군중」의 지성(nous; 정신, 영혼)은 슬픔이였고, 아름다움은 행복이였다. 그리고 "영혼의 아름다움 - platonic",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잠재적 고도성장 사회 : 전통지향형 → 인구성장기 사회 : 내부지향형 → 인구감퇴 사회 : 타인지향형)

 

'욕망과 의지' 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는 "우리로 하여금 살게 하고, 감각하게 하고, 생각할 수 있게, 아리스토텔레스" 한다. 따라서 영혼은 형상(형식)이 되고, 앎(질료)을 사용할 수 있는 삶(형상)은 현실태가 된다. "실체(어떤 대상의 진정한 정체)는 '형상, 질료, 그리고 그 두 가지로 구성된 것'의 세 가지 의미로 말해질 수 있다. 이 가운데 질료(앎)는 잠재태potentiality(씨앗)이며, 형상(삶)은 현실태actuality(열매)이다. 그 두 가지로 구성된 것은 '영혼을 가진 것'(앎에서 삶으로 운동하는 것)이므로, 신체는 영혼의 현실태(열매)가 아니며, {오히려} 영혼이 어떤 신체의 현실태(열매)이다. 아리스토텔레스" 신체는 영혼의 형상이 아니며, 영혼이 신체의 형상이다. 건강하다는 것은 형상이다. 그러므로 우주의 원인은 삶이고, 목적은 아름다움이다. "영혼은 살아 있는 신체의 원인이며 원리이다. 이것들은 여러가지 의미로 말해진다. 그러나 영혼은 우리가 구분했던 바와 같이 세 가지 의미에서 {신체의} 원인이다. 왜냐하면 영혼은 '운동 그 자체는 어디로부터(능동인 또는 작용인)', 무엇을 위해(목적인), 그리고 '영혼을 가진 신체의 실체로서(형상인)' {라는 의미에서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 「파이드로스」에서 "스스로 움직이는to hauto kinoun" 혼은 사멸하지 않고 불멸한다. [정신spirit(nous)은 사멸하지 않는다. 정신에는 생성과 소멸이 없지만, 정신(앎)을 따르는 "자기 안에서 자기로부터 운동의 원천을 갖는 물체, 파이드로스" 삶에는 생성과 소멸이 존재한다.] 신들의 말들(욕망epithymia, 감성thymos)과 마부(이성logos)는 모두 훌륭하고 혈통이 좋지만, 다른 종족들의 말들은 뒤섞여 있다. [플라톤은 '사멸하는 부류의 혼'을 몸통 위쪽에 자리한 흉강(감성)과 몸통 아래쪽에 자리한 복강(욕망)으로 보았고, '불사의 혼'을 뇌(이성)라고 보았다.] 사피엔스의 마부(이성)가 모는 한 쌍의 말 중 한 필은 훌륭하지만, (앎으로의 욕망,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욕망,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의) 다른 한 필은 그와 반대여서 (격정thymos에 끌려) 혼의 날개를 오그라들고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한마디로 "fly", 영원으로의 각성이 힘들어지는 것이다. "날개는 본래 무거운 것을 신들의 종족이 거주하는 곳으로 높이 들어 올리는 힘을 갖고 있으며, 따라서 몸에 속하는 것들 중에서 신적인 것에 가장 많이 관여한다네. 그런데 신적인 것은 아름답고 지혜롭고 훌륭하고 그런 종류의 자질들을 모두 구비하고 있어서 이런 것들에 의해 혼은 날개가 무럭무럭 자라고 커지지만, 추함과 사악함 같은 그와 반대되는 자질들에 의해서는 혼의 날개가 오그라들고 사라진다네. - 파이드로스" 온전한 날개로 높이 날기 위해 (그래서 행복이 슬픔의 공간을 채우도록) 휴식을 취하는 말들에게는 암브로시아(신들이 먹는 음식, 불멸의 능력을 지녔다)와 넥타르(신들의 음료 넥타nektar가 '정신적인 물질 hyle noete'이라면 그것이 윤리)가 필요한데, 이것을 섭취하지 못한 말은 (지식만을 쫓아, 아름다움만을 쫓아) 생을 살고 (정신을 전승시키지 못한체) 혼을 잃는다. "하늘 위의 영역은 혼의 키잡이인 지성에 의해서만 볼 수 있고 모든 참된 지식이 관여하는 실재다. 혼은 회전운동에 따라 같이 돌며 정의 자체와 절제 자체와 지식 자체를 본다. - 파이드로스" 혼(두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은 진실로 실재하는 진정한 지식을 보고 즐긴 뒤, "가시적인 세계에서는 빛과 이 빛의 주인을 낳고Hyperion, 가지적(옳을 가可 알 지知)인 세계에서는 스스로 지배자가 되어 지성과 진리를 제공, 국가, 플라톤"한 후 집에 도착해 넥타르를 마신다. 그리하여 자연의 법칙을 따라 "(원상태로) 되돌아가는 것은 도道(마땅히 지켜야 할 이치)의 움직임이다. 도덕경, 노자" 장자 역시 "도와 덕의 힘을 입어" "정신"이 쓸모 있음(탄생 → 삶)과 쓸모 없음(죽음 → 앎) 사이에 처하는 것, (있는 것, 있지 않는 것, 있음과 있지 않음 사이에 있는 것platonic. 국가, 플라톤) '너 자신을 알고' "자기를 귀하게 여기는 것"이 바로 삶의 '일정한 목표에 이르기 위한' "방법"이라 설명한다. (도道 참고: 중국철학사 - 펑유란) "모든 사물이 변하는 상태에 있고 (삶을 살고) 아무것도 머물러 있지 않는다면, 앎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어불성실이라네. 앎이 그것이 앎이라는 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항상 앎으로 머무르고 (이데아 - 모든 사물의 원인이자 관념이자 정신nous, 아름다움 - 목적) 앎일 테지만, 앎의 바로 그 본성이 변한다면, 그것은 앎과 다른 본성으로 변하고 더는 앎이 아닐 테니까 말일세. 그리고 변화가 계속해서 있다면, 변화가 일어나는 때에는 앎이 있지 않을 것이고, 이런 견해에 따르면 아는 사람도 없고 알려지는 것도 없을 것이네. (그러나 삶이 있고 신은 죽었고 각성으로) 아는 사람과 알려지는 것이 항상 있다면, 그리고 아름다움과 좋음과 여타 모든 것이 존재한다면, 나는 이것들이 우리가 조금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아름다움이라 이름한 것이 항상 아름다운 것인지) 변화의 과정(흐름이나 움직임)을 닮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네. 크라튈로스, 플라톤"

 

신(진리)은 죽었고, '삶은 존재하고 고로 삶은 생각한다'(존재론). 삶은 아름답고(방법론), '앎은 생각하고 고로 앎은 존재한다'(인식론). 영혼의 아름다움이란 '지혜에 대한 사랑philosophia', 철학으로 현실을 사랑하고Actuality, 과학으로 운동의 가능성을 보고Possibility, 예술로 아름다움의 필연성을 깨닮는 것Necessity이다. (원인되는) 삶이 아름다운 것은 노동이 "미"에 값을 지불하기 때문이다. (현실성, 가능성, 필연성 참고 - 생명이론, 군지 페기오-유키오 "철학은 생성의 현실성에 닻을 내린다. 과학은 가능성에 닻을 내린다. 예술은 필연성에 닻을 내리는 장치다.") 「무엇을 함으로써 어떤 상태가 되는 것, 무엇을 함으로써 열이나고 어떤 상태가 되는 것, 무엇을 알고 빛이있어 열이나고 아름답게 살아가는 것, 무엇이 지나치고 빛이있고 열이나고 살아가며, 무엇이 모자라고 빛이있고 열이나고 목마름에 살아가고, 무엇을 사랑하고 빛이있고 열이나고 목마르고(nektar) 살아가고, 너를 사랑하고 빛이있고 열이나고 목마르고 희로애락을 살아가고...... 봄의 지나침pleonexia은 여름이고, 가을의 모자람endeia은 겨울이다. (너는 나의 가능성이다), 겨울에서 나는 너의 여름이고 싶다. 존재와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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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정할 精 기운 氣)를 농축된 음기 "백"이라 하고, "신"기(귀신 神 기운 氣)를 몸을 돌아다니면서 작용하는 양기 "혼"이라 하면, "정신"은 (빛으로 쌍생성하고) "자기 안에서 자기로부터 운동의 원천을 갖는 삶", 원인은 에너지 목적은 아름다움, 즉 신체의 변화에 결부되어 있는 감각과 지각으로 "혼백"(넋 魂 넋 魄)이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망각하고 인식하고 각성하여 (쌍소멸하고 빛이되어) "올바름과 절제와 절대적인 앎"을 보게한다. 그것은 존재가 '자기 안에서 생각하는 것', {신(진리)은 죽었고, '삶은 존재하고 고로 삶은 생각한다'(존재론). "생각하는 존재자들 이외에 다른 것은 없으며, 우리가 직관에서 지각한다고 믿는 여타의 사물들은 단지 생각하는 존재자들 안의 표상symbol들일 뿐이겠고, 사실 이 표상들에는 생각하는 존재자들 밖의 어떠한 대상도 대응하지 않는다. - 형이상학 서설, 칸트, IV289, 백종현" 삶은 아름답고(방법론), '앎은 생각하고 고로 앎은 존재한다'(인식론). "우리에게는 사물들이 우리의 밖에 있는, 우리의 감관(감각기관)들의 대상들로 주어져 있으며, 그러나 우리는 그것들 그 자체일지도 모르는 것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단지 그것들의 형상들, 다시 말해 그것들이 우리 감관들을 촉발함으로써 우리 안에 결과하게 한 표상들을 인지할 뿐, - 형이상학 서설, 칸트, IV289"}, 신["진리"]은 죽었고 (관념론: 사물은 정신의 산물) 삶은 존재하고 (실재론: 인식하는 대상이 의식이나 주관과 관계없이 독립적 존재하는 것, 즉 관찰없이 절대적인 실재가 존재하는 것) 고로 삶은 생각한다["존재론": Cogito ergo sum] 그러므로 삶은 아름답고["방법론": 일정한 목표에 이르기 위한 길] 앎은 생각하고 (유물론: 정신은 물질의 산물) 고로 앎은 존재하는["인식론": 인식의 기원과 본질], 모든 사물의 원인이 되는 이데아idea(물자체 - 만물 物 스스로 自 몸 體, thing-it-self)다. 【실재론realism이란, real(실제의; 진리) -ism(이론, 주장, 주의), 거울을 통해 "나 안의 타자"를 보고, 자신에게 귀환하고자 자신에게 대상의 형식을 부여하며 진리를 보려 노력, 실존(진리주의)하는 것이다. 과학적 실재론의 지지자 아인슈타인은 '내가 달을 보고 있지 않아도 달은 존재한다'고 말했다. *실재론 참고: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진정한 앎이 관련되어 있는 바로 그 존재가 남네. 이것은 색도 행태도 없고 만질 수도 없는 본질이고, (신체를 살아 있게 만들어 주는 혼백) 혼의 안내자인 정신에만 보일 수 있네...... 순환 속에서 (빛의 쌍생성과 빛의 쌍소멸이라는 순환의 논리circular reasoning에서 삶은 앎의 기준이, 아름다움은 삶의 기준이 되어 시간을 형성; 나의 기준은 시간속 과거와 미래의 나를 완성, 나를 실현시키는 "나의 가능성"들) 혼은 올바름과 절제와 절대적인 앎을 보네. 이 앎은 사람들이 존재라 부르는 생성이나 관계의 형태로 있지 않고, 절대적인 존재 안에 있는 앎이네. 파이드로스" 이데아(플라톤)인 "미"는 형상(아리스토텔레스)이고, 있으면서 없고(니체), 포괄적(야스퍼스)이며, 은폐(하이데거)하고, 물자체는 "움직이므로" 알 수 없다(칸트). 아름다움은 누군가의 아이디어다. ('불의 이데아, 공기의 이데아, 물의 이데아, 흙의 이데아'가 앎에서 비롯됐다면, '무엇'의 이데아는 아이디어, '앎을 소유한다는 것'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사랑의 이데아는 아름다움에서 비롯된다. 'Let there be Light') 쓸모 있음과 쓸모 없는 사이에 처하고, 있는 것(포로스)과 있지 않은(페니아) 사이에 있는 것(에로스: 미와 사랑의 여신 '아프로티테'의 생일 축하연 계기로 부유, 풍요, 방책의 신 '포로스'와 궁핍, 가난을 뜻하는 그리스어의 의인화 형태 '페니아' 사이에서 잉태 - 향연), 정신(혼)이 앎(아름다움)을 사랑platonic하는 것, 삶이다.  

 

 

1741년 셀시우스Celsius는 스웨덴의 웁슬라 왕립학회에서 물의 끓는 점(비등점)을 0도로, 어는 점(빙점)을 100도로 정했다. 【들룩1727-1817은 실험장치를 통해 물의 비등점을 105도까지 올린다. 얼마 후 그는 끓인 물을 플라스크에 담아 밀봉한 뒤 4주간 쉴새없이 흔들어 공기를 빼내고 (흔든 탄산음료가 폭발하는 것과 같은 원리), 다시 그 물을 가열하여 비등점을 112도까지 올렸다. *등산시 저기압에서 물을 끓이면 비등점이 낮아진다.】 그러나 1745년 식물학자 린네에 의해 편의상 물의 비등점을 100도로, 빙점을 0도로 바꾸어 정의하게 된다. 셀시우스 당시 온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추운 것을 의미한다. 신체는 추우면 열을 내고(온도가 올라가고, 삶을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여 열을 내고), 더우면 체온을 식힌다. 인간의 삶은 섭씨 37도다. 앎의 온도가 내려가면 삶은 뜨거워지고, 더워지면 삶의 온도는 반대로 내려간다. 기후의 변화로 인간은 고뇌(괴로울 苦 괴로워할 惱)하기 시작했다. "지나친 열뿐 아니라, 지나친 추위도 우리에게 고苦를 낳는다. - 인간지성론, 로크" 우주는 춥고 광활한 공간이다. 그러므로 인간은 고뇌Le Pensevr한다. (빛이 있었고, 중력이 존재했고, 지구는 돌고, 인간은 고뇌하기 시작했다. 달의 로망은 대지였고, 파도는 로맨틱했다. 하루[중용]가 지나고 샛별[Venus - 아프로티테]이 빛났다. 에로스[넋]는 고뇌[슬픔]하므로 쾌락[행복]을 지배한다.) 삶의 비등점water boyles vehemently은 아름다움(열전도)이다. 그러나 아름다움은 늘 0도에서 끓지 않는다. *비등점 참고: 과학, 철학을 만나다, 장하석 "여보게. 우리는 모두 자기의 고뇌밖에 모르는 거야...... - 인간의 조건, 앙드레 말로"

 

"우선 형이상학(metaphysisch: 초자연적/초물리적/초감성적/영혼)적 인식의 원천들에 관해서 말하자면, 그것들이 경험적일 수 없음은 이미 그 인식의 개념 속에 들어 있다. 그러므로 형이상학적 인식의 원리들-이에는 그 원칙들뿐만 아니라 기초개념들도 포함된다-은 결코 경험에서 취해질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형이하적(physisch: 자연적/물리적/감성적)이 아니라 형이상적인, 다시 말해 경험 저편에 놓여 있는 인식이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래적 물리학의 원천을 이루는 외적 경험도 경험 심리학의 토대를 이루는 내적 경험도 형이상학적 인식의 기초에 놓이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이상적 인식은 선험적 인식, 바꿔 말해 순수 지성과 순수 이성으로부터의 인식이다. - 형이상학 서설, 칸트 1783" 그럼 '1기압하에서 물의 비등점은 100도다'라는 명제는 경험 전 보편적 인식을 통한 '선험적 종합판단'이 되고, '기압에 따라 물의 비등점은 달라진다'라는 것은 경험을 통한 '후험적 종합판단'이 된다. 여기서 형이하적 삶의 비등점이 아름다움(앎)이라면 선험적인 필연성과 후험적인 우연성, 즉 물자체의 순환논리circular reasoning가 설명된다. 반면 공간과 시간을 경험이전의 형식인 선험적 형식【칸트철학에서 공간과 시간은 경험 이전 "인간이 파악할 수 있는 타고난 능력, 나무위키"이며, 지식을 넓혀가기 위한 '순수한' 매개체이자 모두에게 공통된 조건이다. 칸트에 따르면 '오감과 오성'을 종합한 직관intuition들에서 모든 경험적인 것들을 제거한 순수 수학과 순수 자연과학은 선험적 종합인식이 가능하다. "무릇 사람들이 물체들과 그 물체의 변화들(운동)에 대한 경험적 직관들에서 모든 경험적인 것, 곧 감각에 속하는 것을 제거할 때, 그래도 '공간과 시간'(현상들의 순수 형식)은 남아 있고, 그러므로 그것들은 저 경험적 직관들의 기초에 선험적으로 놓여 있고, 그래서 그 자체가 결코 제거될 수 없으되, 그러나 바로 공간과 시간이 선험적 순수 직관들이라는 사실을 통해, 공간과 시간은 모든 경험적 직관, 다시 말해 현실적 대상들의 지각에 선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 형이상학 서설, 칸트"】으로 보아도 특수상대성이론1905에서 ("운동하며 경험하는" 관찰자에 따라) 이것은 뒤집힌다. 현재 특수상대성이론은 선험적 종합판단이다. 미래 이 이론(앎)은 후험적 종합판단(삶)이 (신은 죽었고 삶은 존재하고 고로 삶은 생각한다 그러므로 삶은 아름답고 앎은 생각하고 고로 앎은 존재하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세계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으나 무한하고, 모든 것은 단순하지만 합성된 것이고, 자유에 대한 원인들이 있으나 모든 것은 자연이고, 원인들에는 필연성이 있으나 그것들은 우연에 의해서다. * 형이상학 서설, 우주론적 이념들에 네 가지 순수 이성의 변증적 주장들 참고 IV340) 칸트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란, '해가 뜬다'가 아니라 '지구는 돈다'. 그렇다면 돌고 있는 지구 안에 관찰자가 경험하는 시간과 공간은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라 다시 코페르니쿠스적 전회, 「순수이성비판」이 필요해진다.

 

(무엇을) 사랑하고 있다는 슬픈 기다림은 행복했다. 이데아는 슬픔에서 행복을 그렸고, 너를 아는 슬픔은 행복에 이르렀다. 또 그런 (한숨섞인) 시간은 아름다웠고, (상실된) 우리의 슬픔과 행복의 공간에 정신이 남겨졌다. 내가 바라는 것은 네가 바라는 것이다. "너의 자유로운 사용이 보편적 법칙에 따라 어느 누구의 자유와도 공존할 수 있도록, 그렇게 행위하라. -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원리, 칸트 {너가 타자(이웃)에서 바라는 것(권리)을 너도 타자(이웃)에게 하라(의무).} 너를 타인들의 한갓된 수단으로 만들지 말고, 그들에게 동시에 목적이 되어라. - 윤리형이상학정초, 칸트" 정언 명령, 슬픔에서 행복은 "동시에 의무인 목적, 자신의 완전함[성]과 남의 행복, - 덕이론의 형이상학적 기초"이다. "마치 너의 행위의 준칙이 너의 의지에 의해 보편적 '자연 법칙'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그렇게 행위하라. - 윤리형이상학정초" 나의 슬픔에 너의 행복과, 나의 행복에 너의 슬픔으로 우리는 자유롭다natural. 나에게 행복할 의무는 없다. 나의 목적은 아름다움이고, 그것은 나의 윤리("나의 가능성")다. '너의 완전함'은 너의 윤리("너의 가능성")에 달렸고, 너의 윤리가 아름다움으로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너없이 나의 행복할 권리는 없다.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한숨을 짓네 나 자유 위해. 나 한숨 짓네 나 한숨 짓네 나 자유 위해. 울게 놔두오 내 슬픈 운명. 한숨을 짓네 나 자유 위해. 고통의 끈을 끊어 주소서. 내 이큰 고통 다 끊어 주소서. 자비를 내려 다 끊어 주소서. - 헨델, 울게하소서"

 

로크는 "인식의 기원과 본질"인 인식론을 "이성보다 경험이 지식의 원천"인 경험론으로 본다. "같은 사물이 있으면서 없는 일은 일은 있을 수 없다. It is impossible for the same thing to be and not to be. - 인간지성론, 로크" 존재하므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와 반대로 "이성을 지식의 제일의 근원"으로 보는 합리론이 있다. 생각하므로 존재하는 것이다. (이성이란 진위, 선악을 구별하는 능력이다.) "Cogito ergo sum. 데카르트" 그런데 같은 사물이 있거나 없을 수 있으므로 "나의 가능성"이라는 질문(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이 발생한다. "만약에 '존재하는 것은 존재한다'와 '같은 사물이 있으면서 없는 일은 있을 수 없다'고 하는, 두 명제가 생득적(타고난, 천성적)으로 각인되어 있다고 한다면, 아이(백지)들은 이들 명제를 모를 리가 없다. - 인간지성론, 로크" ("우주의 상태로 보아 분명히 있어야 하는 질량이지만 아직 관측되지 않은, 나무위키" 암흑물질은 있으면서 없다.) 삶은 아름다워야 하므로 생득적 각인(뇌가 얻은 지식이 DNA에 각인되기 앞서)은 "환경변화"(지동설로 앎은 새로운 앎이 된다)에 정의just-ify된다. 따라서 아름다울 진리만 각인된다. "원리는 검토되어야 한다. [...] '같은 사물이 있으면서 동시에 없을 수는 없다'는 (만약 타고난 원리나 그 무엇이 있다면) 절대 확실하게 타고난 원리이다. - 인간지성론, 로크" 원리는 검토just-ify되어야 하고, 타고난 원리, 즉 타고난 관념(이데아)은 절대 확실한 "앎"이다. (삶은 로크의 "백지"에 "아이디어"를 적는다. 그렇게 삶은 "하루"에 "인상"을 그린다. 어제가 더해진 오늘의 "하루"는 어제의 "하루"와 분명 다르나 같은 "백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의 비등점은 선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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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으로부터 받는 에너지가 많으면 공기(빌 空 기압 氣)의 밀도가 낮아져 기압도 내려간다. 【저기압 - 공기가 팽창하고, 수증기가 상승하고, 비가온다. 1기압 - 100kPa, 정기(정할 精 기운 氣)를 농축된 음기 "백"이라 하고, 신기(귀신 神 기운 氣)를 몸을 돌아다니면서 작용하는 양기 "혼"이라 하자.】 기가 파동을 감지하는 것이다. 분명 오감없이 직관을 사용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느낄 수 있다', 직관인가, 아니면 산소가 희박해서, 그렇다면 과다 이산화탄소 증상인가. 그럼 기7는 오감5과 직관6없이 파동을 감지할 수 있는가. (어떤 순간변화율, 미분이 필요한가.) 힘의 정의, 힘이란 '물질'을 움직이게 하는 작용이다. 따라서 시간이 (수축하거나 팽창하는, 상대성이론) 생긴다. 고뇌하는 것은 힘에의 의지다. 그렇다면 '암흑물질'을 움직이게 하는 작용은 무엇인가. "그렇지만 우리는 반드시 추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우리보다 완전한 지식과 커다란 행복을 지닌 것인 (신체와) 다른 영들은 우리가 지닌 사상전달의 방법보다 (기호나 음) 완전한 방법을 반드시 갖지 않으면 안 된다. - 인간지성론, 로크" 무선인터넷, 라디오, 전자렌지, 음악 등의 파동들이 삶에 간접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100Hz - 1초에 100번 진동, 2.4Ghz - 1초에 24억 번 진동, 도레미 "도" - 1초에 263Hz, 가시광선 - 1초에 600조 번 진동, 빨간색 - 1초에 460조 번 진동) 물을 냄비에 끓인다는 것은 (달궈진 냄비가) 간접적으로 물을 데우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렌지(파동)로 물을 데운다는 것은 물의 분자를 전기장의 움직임으로 회전하여 다른 물분자와 충돌시켜 열을 발생시키는 것이다. (삶을 유지하기 위해 생명은 운동하여 열을 낸다.) 우주만물의 본질은 파동이고, 인간은 37도를 유지하기 위해 운동하여 각자 고유의 파장을 발산하고 있다. 모든 물질은 파동과 입자(양자중첩)를 지니고, 입자성을 관찰시 파동성이 사라진다. 그런데 사피엔스는 입자성을 확보하려다 보니 '같은 것이 있으면서 없다'. (플라토닉이 있으면서 없다.) 슈뢰딩거가 말했다. 'To be, or not to be,' 로크의 독백은 다음과 같다. 'It is impossible for the same thing to be and not to be.' '나의 가능성'을 짐작해 본다.

 

(삶은 아름답고,) 정신은 꿈을 꾼다. '영혼과 육체'를 매개하는 정신은 "무의식" 속 실현 불가능한 헛된 공상을 꿈꾼다. "내가 나비 꿈을 꾼 사람인가, 아니면 지금의 꿈을 꾸고 있는 나비인가. 장자" 【꿈속에 투영된 현실성reality은 삶에게 무다. 그렇다면 꿈속에 투영된 영성spirituality, 즉 '정신적 경향이자 신성'은 유가 된다. '그는 잠들었다. 그러나 그를 잊지 않았다.' 플라톤은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 '아(a)'와 잠의 신 휘프노스의 궁전 아래로 흐르는 '망각의 강(lethe)'을 합쳐 알레테이아(a-letheia), 잊지않는 것(하이데거: 비은폐성), '진리'로 불렀다.】 한편 육체는 "의식" 속 실현 가능한 아름다움의 나래를 마음껏 펼친다. (따라서 현실에 투영된 영성은 무가 된다, "망각은 기억의 바다넘어 삶으로부터 잊혀진 것을 깨우는 것") 그리하여 아름다움은 다시 (전승, "문화의 깊이") 정신이 된다. "순진무구함은 무지다...... 무는 불안을 낳는다. 순진무구가 동시에 불안이라는 것, 이것이 순진무구함이 갖는 심오한 비밀이다. 꿈을 꾸면서 정신은 꿈속에 자신의 현실성을 투영한다. 그러나 이 꿈의 현실성은 무이므로 다시 이 무는 스스로의 밖에서 쉴 새 없이 순진무구함을 보는 것이다...... 정신이 적을수록 불안도 역시 적기 때문이다...... 불안이 크면 클수록 그 문화는 깊이를 갖게 된다. - 불안의 개념, 키에르케고르" 순진무구하다는 것은 (아직) 욕망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유(중력에 끌리는 자유)를 거부하는 삶은 모순이고, 무엇을 욕망하는 것, 앎을 욕망하는 것은 현재 없는 것에 대한 불안을 가져온다. (시험에 앞서 불안한 이유는 앎을 욕망, 합격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싶고, 행복하고 싶은 삶(물질)의 욕망은 빛을 향해 공전하는 원운동과 같다. (행복하기 위해 어떤 의식이 필요했다. 일주일이 만들어졌다.) "욕망은 불안함이다. 로크" 평온serenity, 정적, 침착에서 기원하여 앎으로 (빛이 있으므로) '고뇌pensiveness하는 '슬픔에 잠긴' 삶은 생동적이다. (참고: 로버트 플루칙, 감정의 수레바퀴) 태양의 입자가 자기권, 자기장을 빗겨나 대기 중 분자와 반응하는 것, "잃어버린 모든 불안들이 거기에 다시 놓여 있는 것이다. 이불 가장자리에서 빠져 나온 털실이 딱딱하다는, 마치 철로 된 바늘처럼 딱딱하고 날카롭다는 불안감. 내 잠옷의 단추가 내 머리보다 훨씬 크고 무겁다는 불안감. 지금 내 침대에서 떨어지는 빵 부스러기가 유리같이 조각조각 아래에 떨어져 있을 것이라는 불안감과, 그렇게 해서 모든 것이 영원히 부서져 버릴 것 같은 걱정스러움. 찢어진 편지 조각이 아무도 알아서는 안 되는 금지된 것이고 형용할 수 없이 귀중한 것인양, 책상 안에 두고도 도저히 안심이 안 되는 불안감. 잠이 들 때면, 난로 앞에 있는 한 웅큼의 석탄을 내가 삼켜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 내 뇌 속에 있는 어떤 숫자가 점점 자라나기 시작해서 마침내 내 몸 속에 더 이상 자리가 없을 것 같은 불안. 내가 누워 있는 곳이 화강암이라는, 회색 화강암이라는 불안. 내가 고함을 지를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사람들이 달려오고, 결국 문을 부수고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불안. 비밀을 누설할 수도, 내가 무서워하는 모든 것을 말해 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은 불안. 혹은 어떤 것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불안. 그 밖의 불안, 불안들, 「말테의 수기」" 오로라를 만든다. 빛 주위를 공전하는 자유로운 원운동은 낮과 밤을 만드는 아름다움이다. 무엇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이 생동적이기 때문이다. (운동하는 물질은 에너지가 필요하다. 운동하는 삶은 에너지를 외부로부터 공급받아야 한다. "완벽의 상태에 있는 것들은 운동하지 않은채 자신의 선함을 유지한다. - 하늘에 관하여, 아리스토텔레스") 무의식unconsciousness 속 정신은 현실성이 없는 이상을 상상한다. 꿈 속에 투영된 현실성은 무지(없을 無 알 知)고, 아는 것이 없으므로 앎을 추구하는 순진한 삶은 불안해지는 것이다. 삶은 코기토로 의식하고 앎으로 무의식에 빠진다. 그러므로 진공상태(에너지가 0인 상태, 압력의 차이를 없애주는 상태)이자, 「숨결이 바람 될 때」, 무중력상태인 우주의 '그 무엇인가'가 불안하다는 것은 자연법칙에 따라 '무지'를 설명할 수 있다. 【사실 진공은 양자역학에서 말하는 바닥상태ground state인 영점에너지zero-point enery 로 채워져 있다. 비록 열역학 절대영도에서 엔트로피는 0이지만, 파동적 성질 때문에 가장 낮은 에너지 상태인 바닥 상태에서도, 즉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진공상태에서도 운동(카시미르 효과)이 일어날 수 있다.】

 

화학자 파울 에를리히는 '생명은 하나의 화학적 사건이다'라고 말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생물이 절묘하게 조립된 기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물활론animism은 모든 자연 현상에 생명과 영혼이 있다고 인정한다. 무엇이 '자연적인 것'은 물활론이 설명하는 자연계에 속한 4원소나 계절같은 모든 자연 현상들을 뜻한다. '인위적인 것'은 '자연적인 것'과 마찬가지로 물리적인 힘이 작용하나 생물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것이고, 이것은 생기론이 주장하는 '생물에는 무생물과 달리 어떠한 목적을 실현하는 생명력이 있다'는 활력설로 해석될 수 있다. '화학적 사건'인 생물, 사피엔스를 구성하는 원소로 산소, 탄소, 수소, 질소, (단백질, 지방, 탄수화물), 칼슘, 인, 포타슘, 유황, 나트륨, 염소, 마그네슘, 그리고 미량의 불소, 옥소, 붕소, 규소, 비소, 브롬, 바나듐, 철, 아연, 망간, 구리, 니켈, 코발트, 은, 칼륨 등이 있다. "진화(정향진화orthogenese: 생명체의 형태 변화가 정해져 있는 어떤 방향을 향해 나아가면서 보다 완성된 형태를 갖도록 점차적으로 개선되는)란 곧 생명의 약동이자 {우연적으로} 인간에게 도달하게 될 것이 예정되어 있던 것도 아니었다 -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고 하나, 원인(혼백)이 있으므로 삶은 어떤 목적인("운동 그 자체는 어디로부터")이나 작용인("무엇을 위해")을 갖게 된다. 진화를 '창조자체를 위한 창조'로 표현한 베르그송은 생명의 본질적인 자발성을 거부하고 삶에는 목적이 없으며, "진화란 어떤 목적인이나 작용인도 갖지 않으며, 결코 인간을 목적{아름다움, 앎이란 필연적인 이유}으로 지향하여 이뤄지지 않았다 - 자크 모노, 우연과 필연"고 덧붙인다. 【이중나선인 디옥시리보스 핵산DNA는 리보오스 핵산RNA에 비해 산소원자 하나가 부족하다. 외가닥인 RNA는 -OH를 하나 더 가지고 있어 화학적 반응성이 DNA보다 높다. 두 가닥double helix으로 조직되어 있는 DNA는 손상시 반대사슬이 상보적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다시 복구될 수 있다. 그와 달리 RNA는 불안정한 핵산을 가지고 있어서 변이가 쉽고, DNA에서 부분적으로 복사되어 단백질을 만든 후 사라진다. 돌연변이란 단지 표준을 벗어났다는 것이고, 변이는 진화의 동인이 된다. (변이를 갖은) 핀치새는 변화에 적응해야 했다. "한 사람의 질병이 다른 사람의 정상 상태라면, 누군가에게는 강화라고 여겨지는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해방이라고 여겨질 수도 있다. -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자연선택, 즉 진화론이라면 RNA가 먼저 존재한다. 돌연변이가 너무 많으면 정보가 손실될 수 있으므로, 원본을 보호하기 위해 이중나선 핵산이 만들어진 것이다. 단백질이 핵산 전에 존재하지 않았다면 DNA는 해독될 수 없고, 그럼 단백질을 생산할 수 없다. 단백질이 없으면 DNA는 스스로 복제될 수 없다. '의식'은 생각한다, 고로 앎AUGC과 삶ATGC 사이에 생이 존재한다. '무의식'(생각의 억압된 부분, 프로이트)은 존재하고, 고로 정신은 혼과 육체로 고뇌한다. (그리하여 불안하므로 '있으면서 없는 것'이 설명된다.) 결국 단백질이 먼저인가. 주체가 되고자 하는 '나'에게 라깡은 "당신의 사고냐, 아니면 당신의 존재냐", 결심하라고 외친다. "생각하면서 존재하는 것은 같은 주체가 아니다. 존재하는 우리는 생각하는 우리가 아니며, 더 나아가 존재하는 우리는 궁극적으로 결코 주체가 아니다...... 생각하는 것은 오직 무의식일 뿐이다. - 믈라덴 돌라르, 무의식의 주체로서의 코기토"】 삶, 생명이란 광합성(photo-sysnthesis)을 통해 에너지를 얻어 유지된다. 식물은 이산화탄소(6CO2)와 물(H2O), 그리고 빛(photon)으로 설탕(C6H12O6)과 산소(6O2)를 동물에게 공급한다. 당(C6H12O6)은 에너지를 제공하고, 지방(C6H32O2)은 에너지를 저장한다. 단백질(NH2CHRnCOOH)n은 "생화학적 과정의 속도를 촉진하고 통제하는 생명 세계의 배전반 역할을 함으로 생리학 화학반응을 일으킨다. -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그리고 혈액의 산소운반자 헤모글로빈(C3032H4816O872N780S8Fe4)은 때에 따라 산소와 결합하거나 산소를 풀어놓는다. 이와같은 생명의 사건에 가장 중요한 매개체는 빛이다. 그럼 빛은 파동인가, 아니면 입자인가. 어떤 의식으로 길들여지는 것, 아름다워지기 위해 삶이 앎의 궤도를 돌고 있는 것, 시간, 그것은 고뇌의 시작이다. 그리고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아름다워지고자 진리로 다가서는 선은 미에게 악이다. 「선악을 넘어서」,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 Verweile doch! du bist so schön! 파우스트' (잊는 것lethe, 빛이 없는 것,) 무엇이 아름다운가. (참고: 유전자의 내밀한 역사, 싯다르타 무케르지)

 

삶을 '의미하는 것'(기표, signifiant)은 삶이 '의미되어진 것'(기의, signfie)으로 나와 너의 외시적denotation 기호를 만든다. (삶이 의미하는 것이 분명 생이라 믿지만, 삶이 내포하고 있는 것은 객관적이다.) 낯설은 나를 의심하는 나는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거울을 통해 자신을 수시로 확인한다. (내가 변하지 않았나), 나의 현재가 과거의 나와 무엇이 다른지 확인하는 작업이다. 거울에 비춰진 나의 오른손은 나의 왼손이다. 나는 왼손을 보고, 타자는 오른손을 본다. 만족할 수 없는 나는 타자의 시선을 쫓는다. 타자의 시선은 미를 요구한다. 너의 시선, (빛이 있으므로), 곧 앎은 공시적connotation 기표가 된다. (코끼리를 보고 느끼는 것은 데노따시옹이고, 코끼리를 이해하는 것은 꼬노따시옹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르네 마그리트의 「이미지의 배반」" 이것은 모자가 아니다.) 공시적 앎이 의미하는 것과 공시적 앎이 의미되어진 것은 다시 하나의 공시적 "기호"가 된다. 이것이 바로 정신이다. (기호 참고: 롤랑바르트의 의미작용단계, 거울 참고: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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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자가 뭐가 무섭다는 거니?"

 

- 생텍쥐페리

 

 

"아이가 꽃병을 넘어뜨렸고, 고양이가 꽃병을 살펴보고 있구먼." 어머니는 다음과 같은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는 절묘하게 모두 빠져나갔습니다.

l 고양이가 꽃병을 넘어뜨렸다.

l 고양이가 꽃병에서 뛰쳐나와 아이에게 달려들었다.

l 고양이에게 쫓기던 아이가 탈출용 밧줄을 들고 서랍장 위로 올라가려고 했다.

l 도둑 고양이가 집에 들어오자 누군가가 고양이에게 꽃병을 집어던졌다.

l 고양이는 꽃병 속에 미라 상태로 들어 있었는데, 아이가 마법의 밧줄로 건들리자 오랜 잠에서 깨어났다.

l 꽃병을 매달아 놓았던 밧줄이 끊어졌고, 고양이는 꽃병을 다시 조립하려고 노력중이다.

l 꽃병이 폭발하자 아이와 고양이가 달려왔다. 아이는 꽃병이 또 폭발할까 봐 보호 차원에서 모자를 쓰고 있다.

l 뱀 1마리를 잡으려고 아이와 고양이가 뛰어다니다가 마침내 아이가 뱀을 잡았고, 그 뱀으로 매듭을 만들었다.

 

- 위험한 과학책, 랜들 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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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이 움직이면 면이 생기고, 점이 움직이면 선이 생긴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아리스토텔레스" "{미분}, 예컨대, 평면은 물체적 공간의 한계이고, 그러면서도 그 자신 한 공간이고, 선은 평면의 한계인 한 공간이며, 점은 선의 한계이고, 그러면서도 언제나 공간 안의 한 장소이다. (형이상학 서설 A170), 양립할 수 없는 두 명제, {칸트의 이율배반이란}, 1 - 세계는 시간적으로도 시초가 있으며 공간적으로도 한정된 것이다. 2 - 세계는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무한이다. {시선은 (양자를) 탐구한다.}" 빅뱅, 점이 움직이면 선이 생기고, 선이 움직이면 면이 생기고, 면이 움직이면 입체가 생기고, 입체가 움직이면 춤추는 별이 된다. "모든 사물의 근거와 배후를 보려면 자신을 넘고 올라가야 한다. 위로, 저 위로, 그대가 바로 별 위에 올라갈 때까지! 그대들에게 말하노니, 춤추는 별을 낳으려면 자신의 내면에 아직 혼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슬프구나! 인간이 더 이상 별을 낳지 못하는 때가 오다니. 슬프구나! 나 자신과 나의 가장 은밀한 의지를 준비하도록. 자신의 화살을 찾아 욕정에 불타는 활처럼, 자신의 별을 찾아 욕정에 불타는 화살처럼. 자신의 정오를 맞을 준비를 한 성숙한 별처럼, 모든 것을 초토화시키는 태양의 화살 앞에 이글거리며 꿰뚫린 행복한 별처럼. 승리를 위해 초토화할 준비를 하는 태양 자체와 무자비한 태양의 의지처럼! 오, 그대 의지여, 역경의 전환이여, 그대 나의 필연이여! 하나의 위대한 승리를 위해 나를 보호해 다오! - 니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가상의 가상, - 니체, 비극의 탄생 4"에서 (무의식에서 꿈꾸듯) 고독을 제거하고 공포를 극복한 '아름다운 상을 관장하는 빛나는 자'der Scheinende는 자신의 별을 찾는다. 아주 오래 전 어느 (한 개 이상의, 쌍성) 초신성의 몸부림, 초인이 되기위해 각성하는, 뛰어넘을 超-새 新-별 星이 (고통스러운 즐거움Jouissance으로) 폭발하여 흩어진 기체들이 회전하고 모양을 갖추면서 지금의 태양이 생성된다. 우주의 모든 것, 지구의 모든 물질은 초신성 안에서 만들어진다. 과거 동료별(쌍성)을 가졌던 태양은 수소 원소를 모두 소진한 후 러브록의 「가이아」속 표현처럼 "찬란한 불꽃의 섬광"을 밝히며 폭발했고, 우주로 산산히 흩어진 파편들은 성간 먼지와 구름들을 형성한 뒤, 주위 가스 덩어리들과 서로 혼합되고 수축되어 지금의 태양과 여러 행성들의 기초를 만들었다. 성간 먼지와 구름들을 형성하는 것들을 분광학적으로 분석하면 생물을 구성하는 물질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는데, 러브록은 "생물이란 개방적 또는 연속성의 시스템으로서 외부 환경으로부터 취한 자유에너지와 물질을 사용, 더불어 이의 분해산물을 체외로 배출시킴으로써 자신의 내부 엔트로피를 감소시킬 수 있는 기능을 갖는 구성원"이라고 설명했다. 생물이란 에너지를 소모하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행태를 구성하거나 변형시키는 존재인 것이다. 생물과 유사한 별 또한 에너지를 소모하고 수명을 다하면 빛을 잃는다. 즉 운동하는 물질은 아름다움으로 삶의 엔트로피를 감소시키고, "불확실성을 감소시키는 것, 불명료함을 감소시키는 것, 불명료함을 적게 하는 것, 가이아", "나를 상실하므로써 자기자신에게로 돌아오는, '힘에의 의지'"에 따라 우주의 엔트로피는 증가된다. "사망의 운명mortality은 생물체가 개체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지불하는 대가이다. 가이아"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르면 (운동하는 삶은 37도이므로) '정신Zeitgeist'이 깃든 공간(우주)은 폐쇄 시스템(고립계)이 된다. *참고: 제임스 러브록 - '살아있는 생명체로서의 지구' 가이아

 

초신성이 되려면 동반성.쌍성을 거느리거나 태양질량의 10~20배(홑별)가 되어야 한다. 중력적으로 서로에게 속박되어 있는 쌍성은 조석력은 물론, 상대로부터 가스와 에너지를 주고 받는다. 점점 팽창하는 태양은 결국 붉은거인(적색거성)이 되는데, 핵융합과정을 마치고 다 타버린 태양은 백발난장이(백색왜성), 즉 (백색왜성이 식어 흑색왜성이 되면 내부의 탄소들이 결정화되어) 지구만한 거대한 우주의 다이아몬드가 된다. 이 백발난장이는 헤라의 우윳길Milkyway에만 240억 개나 있다. 대다수의 별은 짝을 지어 궤도를 도는데, 그 중 하나가 죽어 백발난장이가 되면 남은 별은 상대에게 물질이 흡수되어 초신성이 된다. 쌍성 초신성과는 달리 홑별 초신성은 많은 원소를 만든 후 수소를 헬륨으로, 헬륨에서 탄소로, 다시 탄소에서 산소로 바뀌기 때문에 백발난장이가 되지 않는다. 연금술사인 초신성은 쌍성으로 철을 만들고, 홑별 초신성은 무거운 원소인 금, 은, 우라늄을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가장 무거운 원소 우라늄이 깨져 2개의 가벼운 원자핵이 되면 사피엔스는 '핵분열 에너지'를 만들 수 있고, 가장 가벼운 원소 수소의 핵 2개가 결합해 무거운 원소의 핵이 되어 질량 결손이 생기면 '핵융합 에너지'를 얻는다. 보통 초신성이 폭발해 질량이 태양의 2배 이상이면 블랙홀이 되는데, 【별의 표면에 미치는 중력이 강해지면서 빛조차 이탈할 수 없게되고, 이 단계에서 사건의 지평선이 형성된다. 그리고 별 주변의 공간이 휘고, 블랙홀이 생겨난다. *참고: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질량이 태양의 2배 미만인 경우 펄서(푸른 광선)를 만드는 우주의 등대 중성자별이 되고, 그것이 쌍성계이면 태양 질량 40배인 마그네타가 된다. 우주에서 가장 강력한 천체이자 자석인 마그네타는 티스푼 하나에 10억 톤의 질량을 가지고 있다. 요컨대 이무익비以无翼飛, 날개가 없음(망각과 비움)으로 날기(도약과 각성)에 에너지는 충분하다. 직면한 문제는 (덧차원을 옮겨 다니는) 중력graviton, "별 위에 올라갈" 탈출속도다. 【리사 랜들이 비틀린 5차원이라고 말하는 세계를 덧차원이라고 하는데,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은 공간을 3차원이라고 하고, 시공간을 4차원이라고 한다. 랜들의 ADD 모형은 중력이 4차원 막을 둘러싸고 있는 5차원 세계에 속한 힘이기 때문에 4차원에서는 중력이 약하고, 덧차원에서는 두 차원 사이 곡률 때문에 중력이 강하다. 블랙홀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강력한 중력이 필요한데, 덧차원이 있다면 플랑크 에너지를 낮출 수 있어서 블랙홀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참고: Discovery Channel - Supernovas, 블랙홀과 고에너지 현상 - 고야마 가쓰지 / 미네시게 신)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다. 내가, {또 우리가 고통스러운 즐거움으로} 세상에 남긴 흔적{시대정신Zeitgeist}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우연(변이)에서 필연(자연선택)으로}, 그렇게 지고한 행복을 예감하며 나는 지금 최고의 순간을 맛본다. 파우스트"

 

양자역학의 "양자"란 '입자와 파동'이라는 두 성질을 의미하며, "역학"이란 '힘의 학문'을 뜻한다. 양자론에는 관찰자가 필요하다. 그래서 본래면목, "너는 누구인가"라고 질문한다. 그럼 직관적 통찰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존 휠러는 관찰자 '슈뢰딩거'가 대상 '고양이'의 속성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그 대상의 세계에 개입하므로, 관찰자 대신 참여자를 제시했다. 데이비드 봄은 우리가 참여하고 관찰하는 부분들이 모여 전체상을 담고 있고, 전체라는 우주는 대상들을 품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우주를, 들꽃 속에서 천국을 보려거든, 그대 손바닥 손에서 무한을, 한 시간 속에서 영겁을 붙잡으라. 윌리엄 블레이크" (*참고: 홀로그램 우주 - 마이클 텔보트) 삶들이 모여 앎이 되고, "너 자신을 알라"는 삶 속에 앎(양자얽힘quantum entanglement)이 존재한다. 불교에서 만물은 상호의존하는 존재(제법무아, 제법무상)이며, 우파니샤드에는 "그에게서 하늘과 땅과 대기가 엮어지고 바람과 목숨 있는 모든 생명이 엮어진 것을 하나의 영혼인 그 만이 알고 있네"라고 적혀있다. 대상과 관찰자의 구별이 사라지고, 주체와 객체가 통일되는 것이다. "이완성(풀려 느슨한 성질)이 있는 곳은 말하자면 하나가 다른 것을 보고, 하나가 다른 것을 냄새 맡고, 하나가 다른 것을 맛보는 곳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바로 자기 자신이 되는 곳에서는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본단 말인가?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냄새 맡는다는 것인가? 무엇에 의하여 무엇을 맛본단 말인가? 우파니샤드" *동양사상 참고: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나를 바라보며 대칭을 이루는 거울속 관찰자 나는 상대적이다. 빛의 속도로 빛이 빗여낸 형상, 거울에 비춰진 나의 오른손은 나의 왼손이다. 관찰자 나는 나의 과거를 보고있다. 아인슈타인의 이론처럼 시간과 공간은 관찰자에 의해 상대적이다. 그러므로 고전 물리학의 절대 시간과 절대 공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양자"의 삶들이 모인) 앎이 관찰하는 삶과, 삶이 관찰하는 (삶 속에 존재하는) 앎은 상대적이고, 신체와 영혼 또한 상대적이다. 화엄경은 정신과 육체, 그리고 주관과 객관 사이에 더는 구별이 없는 해탈의 경지를 시공이라 강조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Form is nothing other than emptiness;Emptiness is nothing other than form (색form - 물질, 공emptiness - 성질), 시간이 없는 공간이나 공간이 없는 시간, (EPR 역설의) 비국소non-locality 연결로 삶의 "가능성"이 되는 앎, 즉 앎이 없는 삶이나 삶이 없는 앎은 상상할 수 없다. 입자의 위치를 구하면 파장의 확산을 증대시켜 운동량의 불확정성이 더욱 커진다. 입자와 파장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에 대해서 무지하게 되는 것이다. "색은 공이요, 공은 곧 색이다, 불경", 즉 대상을 사물이나 실체가 아닌 "사건"으로 여기면 그 무엇인가가 불안하다는 것은 자연법칙에 따라 "무지"를 설명할 수 있다. (*화엄경 참고: Suzuki, Mahayana Buddhism, 동양사상 참고: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그림자란 3차원 공간에 있는 점들이 2차원 평면 위에 투영된 것이며, 그래서 그 길이는 투영의 각도에 따라서 달라질 것이다. 마찬가지로 움직이는 물체의 길이는 4차원적인 시공 속에 있는 점들이 3차원 공간에 투영된 것과 같으며, 그것의 길이는 관계 구조에 따라서 달라진다. - 프리초프 카프라, 현대 물리학과 동양사상" 그럼 덧차원에 있는 점들이 힘과 물질이 통일된 4차원적인 시공에 투영된 것이 바로 중력인가.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라 속도가 빠르면 시간이 팽창하고, 속도가 느리면 시간이 빠르게 흐른다. 일반상대성이론 따라 중력이 강하면 시간이 천천히 흐르고, 중력이 약하면 시간이 빨리간다.)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웠다', "슬픔"은, ("우렛소리 희미하고, 만요슈" "슬픈 너, 비 위로 내리는 비의 슬픈 소리, 밀로즈의 시", "음악은 음표 안에 있지 않고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 안에, 모차르트" 있고, "언어"langue는, word, 여백 안에 있다. "가능성", 진리는 침묵parole과 침묵 사이에 존재한다. ("아름다움"을 위한) 질서는 필연성과 우연성으로 시작되어 앎 속 미적 여백을 배치한다. "{공간 두기, ま['공간적인' 사이, 間, 간격], 사이의 범주, 공간과 시간을 관통하는} 물질 사이에 공간이 없다면 모든 인간은 골무(비좁은 공간) 안에서 지내는 것입니다. 롤랑바르트" 괴테의 짧은 '시와 진실'은 롤랑바르트의 '진리의 유도체'다. 블량쇼는 침묵과 침묵 사이의 "존재"langue를, 롤랑바르트가 말하는 '언어의 공', "부분에서 부분으로 넘어가는, {언어란,} 아무런 혼란도 없이 전체적이고, 조용하고, 은밀한, 결국 통일된 빛{앎}, 그리고 그 어떤 특수한 것도 무한을 파괴하지 못하는 공간의 창조, 모든 것이 소위 허무 속에서 현전하는 공백의 공간의 창조, 즉 장소 외에 그 무엇도 발생하지 않게 하는 장소의 창조"라고 했다. "소를 싣고, 조그마한 배가 강을 건너네, 저녁 비를 맞으며, 쉬키(하이쿠)" 하이쿠(일본 정형시)란 우연성의 예술contingere이다. 우연이란, 아름다워서 "우렛소리 희미하고",【아름다움은 うつろい퇴색된.한창때가 지난, "활짝 핀 벚꽃이 아니라, 만개한 벚꽃이 시들어 가는 순간, 롤랑바르트", 행복은 슬픔을】, (빛이 있으라, 기압이 내려가고, 공기가 팽창하고, 수증기가 상승하고) 필연이란, "더럭더럭 운다, 8月 소나기. 늙은 부처가 낮잠을 깬다, 김명배", 비가 내린다.

 

태초에 카오스Chaos가, 그 다음 가이아가, 그리고 에로스가 있었다. (참고: 신통기) 베일에 쌓인 '예수가 취한 길, 헤겔이 부른 퇴각의 길 "아름다운 영혼"'*해겔, 찰스 테일러, 사피엔스는 행복하기 위해 질서Cosmos를 정한다.

 

열반경涅槃經은 말한다, 군맹무상. 무리 군群 소경 맹盲 어루만질 무撫 코끼리 상象.

 

2045

눈먼 플루토스Plutos는 왜 평화의 여신Eirene(행운의 여신Tyche)의 품에 안겨 있는가. 좋은 것이 부富라면 그것은 "눈먼 부가 아니라 지혜sophia와 함께하는 시력이 날카로운 부 - 플라톤, 법률 631c"다. 건강hygeia, 아름다움kallos, 체력ischys은 부의 의뜸인 지혜sophia를 통한 절제, 용기, 정의에 의해 결정된다. 나쁜 것은 없는 것, 채워지기 전, 비워진 상태死다. 비워진 상태란 모음과 자음이 만나기 전, 그리하여 언어의 구개음화, "자음이 다시 분명하게 이해되도록, 모음이 다시 열리도록, 그렇게 해서 {매질인} 자음과 모음이 완벽하게 울리도록(울림), 그 말들이 다시 내 입술 위를 거쳐 갈 수 있도록(숨결), 파괴된 최초의 관계들이 복구되도록, 그리고 문제들이 해결되도록 하기 위해, {그리하여 마음이 담긴 말의 파편들(입자들)이 되도록} - 말리나" 한마디가 쓰여지고 언어가 완성되도록 만드는 문제의 발단, 어떤 시점이다.

언어의 기원은 혼에 있으며, (부르크하르트) 언어는 정신의 표현이자 정신의 가장 특별한 발현이다. 언어는 정신의 이상적인 상이며, "정신적 삶의 실체가 특히 위대한 시인과 사상가들의 단어들 속에 적혀 있는 지속적인 기록 - 세계사적 고찰, 부르크하르트"이다. 플루토스盲의 언어가 의미하는 것signifiant과 플루토스盲의 언어가 의미되어진 것signfie에서 정신7은 명시적인 데노따시옹으로, 또 암시적인 꼬노따시옹이 되어진다. 그런데 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여백이다. 아름다움富의 침묵은 공간을 의미하고, 양자화 자아Quantified self에서 나타나는 뉘앙스로 그것이 담은 외시적, 공시적 은유를 짚어볼 수 있다. '생각이 상대적이라면, 은유가 담긴 한마디는 미묘하거나 불확실하다.' '아니오'에 담긴 베드로의 부정, 거기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그의 "의지와 열망은 '눈이 멀어'盲 있어야만, 그러니까 자기 자신만을 위해 자신의 내적인 힘에 따라 살고 행동할 경우에만 완전히 발전한다. 그래야만 미래가 형성된다. 미리 알게 된 미래란 일종의 자가당착이다. 세계사적 고찰, 부르크하르트" 그렇다면 자가당착自己矛盾에 빠진 '예'는 어떻게 사용되어 지는가. 노자의 말처럼 직관6이란 "밝은 길은 어둑한 듯하고, 앞으로 나가는 길은 물러나는 듯하며, 평평한 길은 울퉁불퉁한 듯하고, 가장 훌륭한 덕은 계곡 같으며, 정말 깨끗한 것은 더러운 듯하고, 정말 넓은 덕은 부족한 듯하며, 건실한 덕은 게으른 듯하고, 정말 참된 것은 변질된 듯하고" 안인 듯한 것이 밖인 듯하다. 랑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롤, "의문의 여지"가 남겨진다.

핵심은 "질문"이다. '정의가 행복인가.' 부를 예기Elpis(미리 예豫, 기약할 기期; 희망, 사변적인 '지혜')라고 말한다. 고통의 예기를 두려움으로, 쾌락의 예기를 자신감이라고 한다. 길들여지는 것을 즐거움으로, 길들여지지 않는 것을 괴로움으로, 그 중 어느 것이 좋고 나쁜지를 헤아리는 것이 플라톤의 "법률 644d"이다. "그러한 인식은 언어{혹 이성logos, 그리스인들은 언어와 추론을 나타낼 때 로고스를 사용}를 통해 주장하므로", 그것은 인간이 "자연적으로(by nature)" "자연에 따르는 것(according to nature)", 바로 즐거움과 괴로움을 구별하고, 정의로운 것과 정의롭지 못하는 것을 가려내며, 좋은 것과 나쁜 것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언론의 자유'이자 "생존하려는 욕구로 최선의 방식"을 찾는 "언어에 대한 그의 능력,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입문,  J.A. 스완슨, C.D.쾨빈"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행위를 명상, 금식, 금욕이라 하면, 여백Space이란 아름다움富의 침묵을 찾는 것이다. 본질을 이해하는 과정에 따른 침묵은 죽음死이다. 그러나 자유Free-falling롭지 못함을 느끼는 침묵은 음표와 음표 사이에 존재하는 침묵이다. "바로 이때, 우리의 직관이 깨어나기 시작하고 세상을 좀 더 명료하게 바라보며 현재에 보다 충실하게 됩니다. 스티븐 잡스" 그리고 깨어난 직관은 질문을 던진다. 파이안(아폴론 찬가)과 뒤튀람보스(주신 디오뉘소스의 탄생), '시인은 괴로움과 즐거움 중 어떤 언어choros를 재현nomos해야 하는가.' "내 가슴은 쑤시고, 나른히 파고 드는 마비에 감각이 저린다. 마치 방금 독당근 즙을 마신 듯, 또는 어지러운 아편일랑 찌꺼기까지 들이키고 망각의 강쪽으로 가라앉은 듯이, 이는 너의 행복한 신세가 샘 나서가 아니오, 오직 너의 행복에 도취되는 나의 벅찬 행복에서 솟는 아픔이란다. 나이팅게일에게 바치는 노래, 존 키츠" 피로한 (연로한) 그는 흐르는 피처럼 붉은 바카스 주신의 잔을 받아, {혼7의 의기소침을 털어버리고, 혼이 불속에 넣은 무쇠처럼 부드럽고 유연하게, 플라톤 법률 666b} 옳고 그름의 기로에서 '한잔에 침전과 두잔에 기백과 석잔에 철학으로' 감상에 젖고 망각에 빠진다. "두려움"과 "자신감"은 "잔가에 방울방울 구슬진 거품"처럼 증발해 버린다.

"괴롭고" "즐거운" 언어 사이에 조화롭지 못한 불협화음이 있다. (플라톤 법률 689b) 제피로스의 서풍과 호라 여신의 기운이 비너스의 모피를 벗겨낸다. 마조히즘의 즐거움이 계절따라 식상하는가. 죽은 시인의 사회가 유토피아다. '(미래를 사는 너의) 행복에 도취된 나의 벅찬 행복에서 (오늘의) 아픔이 솟는다. 언어langue quantum, 미래(앞으로 될 것)를 사는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카르페 디엠seize the day, 미래avenir(앞으로 닥칠 것)에 대한 믿음은 최소한으로 해두고"', 상기anamnesis(생각 상想, 일어날 기起)하는 것, "혼이 몸과 더불어 한때 겪었던 것을 몸 없이 혼 자신이 홀로 가능한 한 확실하게 되살릴 때, 필레보스, 플라톤 34b", 영혼이 머물렀던 이데아idea계를 떠올리는 것, 그것은 "유출된 지혜의 유입, 플라톤 법률 732c"이자 'Götter-dämmerung신들의 황혼'이고, '신은 죽고, 삶은 존재하고, 고로 삶은 생각하는', 혼7이 모든 사물의 원인이 되는 이데아를 얻는 과정이자, 지나간 일들을 다시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게 "신화는 하나의 파롤parole, 현대의 신화, 롤랑바르트"이 된다. 

(플라톤 법률에서) 정부politeuma라는 최고 권력Force은 다수(just-ify)인 mg,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 정체polity다. 국가의 통치 형태에는 가장 이상적인 철인정체("현상을 초월하는 이데아를 인지할 수 있는자, 플라톤 국가")에서 시작해 명예정체(전사의 지배), 과두정체(소수의 귀족, 부자의 지배), 민주정체(자유롭고 평등한 자들의 지배), 참주정체(1인의 독재자, 힘센 자의 지배), 혼합정체(군주제, 귀족제, 민주제가 혼합된 정치 체제)가 있다. "본래 그 누구도 권력을 점유하지 않는다. 그것은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겨나며just-ify, 그들이 다시 흩어지자마자 사라진다. 하버마스, Philosophiscb-politische profile" (물리학에서) 권력力이란 헤아릴 양量과 만유인력이다. '가까스로 얻은just-ify' 아름다움(앎)을 향한 "권력"의 행위를 행복을 향한 슬픔, 사랑이라고 한다. 그럼 인간이 자연적으로 자연에 따르는 것, 그것은 언어의 질량과 언어의 광속, 즉 "데노따시옹, 느끼고", "꼬노따시옹, 이해할 수 있는" 언어의 당기는 힘이다. 그러므로 권력은 (질량 에너지 동등성에 의해) 사랑, 에너지가 된다. (F=ma, E=mc2, ma=mc2, F=E)

사랑하는 자父(에라스테스)는 사랑받는 자子(에로메노스)를 친애(필리아)한다. 그래서 에로메노스가 행복하기를 바란다. 행복하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어야 하는데, 에라스테스는 에로메노스를 간섭한다. 에로메노스는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서 아직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랑받는 친구(필리아, 사랑)가 성립되려면 "앎"을 가져야 한다. '좋은 것과 좋은 것'a, '나쁜 것과 나쁜 것'b,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과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c들은 상대에게 얻을 것(앎)이 없으므로 친구가 될 수 없다. 나쁜 것은 친구가 될 수 없으므로 '나쁜 것과 좋은 것'd은 친구가 될 수 없고,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과 나쁜 것'e 역시 친구가 될 수 없다. 남은 것은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과 "훌륭한 것"의 조합이다. 그럼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인 몸은 '나쁜 것'이자 적인 질병 때문에 '훌륭한 것'이자 친구인 건강을 위해 "훌륭한 것"인 의술과 친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과 "훌륭한 것"이 친구가 되려면 반드시 '나쁜 것'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건강은 "훌륭한 것"을 위해 '나쁜 것'이자 적인 질병과 친구가 되고, 의술은 단지 "나쁜 것을 위해서" 질병과 친구가 된다. 결국 의술scientia과 몸이 친구가 되기 위해서는 '나쁜 것'virus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혼에 나쁜 것, 괴로운 것은 분노, 무서움, *사랑, 그리움, 비탄, 질투, 악의 등등이다.) 그래서 "아름다움"을 향한 것을 (d, 모순, 패러독스를 무릅쓴) 행복을 향한 슬픔이라고 한다. "그런데 적이 떠나가 버리면, 참으로 친구인 것은 더 이상 우리에게 친구가 아니고, 플라톤 뤼시스" 나쁜 것이 소멸되면 아무 것도 더이상 다른 것에게 친구가 될 수 없다. ("각 사물은 자기와 비슷한 것이 아니라 반대되는 것을 욕구하므로, 건조한 것은 습한 것을, 찬 것은 뜨거운 것을, 쓴 것은 단 것을, 날카로운 것은 무딘 것을, 텅 빈 것은 채움을, 꽉 찬 것은 비움을 욕구하고, 뤼시스 215e"), 이같은 "욕구"는 빼앗긴 것, 자신에게 속한 것, 가까운 것을 되찾기 위해 발생하고, 그러므로 문제의 발단, 어느 시점에서 시작되는 "욕망"은 '내게 없는 것을 충족'시키려는 사랑이다. (인용, 참고: 플라톤 뤼시스, 강철웅 옮김)

【빅뱅 후 135 억 년 전의 우주는 수소 가스로 가득했고 응집된 수소 가스가 거대한 구름 형성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46억 년 전 암석덩어리가 혜성과 충돌해 물과 가스를 생성한 후, 대기에 수증기, 이산화탄소, 일산화탄소, 질소, 염소, 수소 등이 형성되었다. 그 후 녹조류가 물을 분해하여 지층과 지표면에 산소와 오존층을 만들었다. 붉은 별을 거친, 푸른 별pale blue dot의 기원이다. 그리하여 35억 년 전에서야 비로소 생명체가 숨쉬기 시작했고, 핵산이 단핵세포로, 이중나선의 핵산은 생명체의 구조와 기능을 결정하는 유전자로 진화했다. 그 뒤 자연환경에 잘 적응하는 변이가 자연선택의 과정을 겪거나 환경 조건에 의해 유전자 발현으로 살아 남아 지금껏 번식해 왔다고 본다. 지난 1만 년의 세월동안 농업혁명과 산업혁명을 거친 인류는 풍부한 자원으로 물직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이뤄냈다. 그러나 인류는 짧은 기간에 변화한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고 환경과 유전자의 "조화와 균형"을 무너트렸다. 빙하기를 거친 인류는 온난해진 기후로 농사짓기가 수월해져 수렵채집 보다 안정된 집단거주를 선택했으나, 숲을 목초지로 개간하여 생태계를 교란함으로써 새로운 병원체를 얻거나 밀폐된 구역에서 목축을 함으로 동물과의 접촉이 늘어 병원균이 전파되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었다. 외부 환경으로 유전적인 변화나 생물학적 방어기전이 나타나는 생물학적 진화는 몇 천 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따라서 수렵채집 생활을 하던 시기에 맞춰져 있는 현인류의 대립유전자는 1만 년이라는 짧은 문명 이후 등장한 새로운 감염균을 대응하는데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몸을 구성하는 세포수는 10조이며, 몸 안에 있는 미생물과 세균은 100조에 이른다.) "술은 1만 년 전쯤에 농경 사회로 진입하면서 생산된 새로운 물질이고, 사람들이 술을 그 이후에 처음 접하기 시작했다면 우리의 유전자는 술에 대하여 적응이 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이렇게 적응이 되지 않은 물질이라면 술은 많이 마실수록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술을 소량 마셨을 때 건강에 좋은 결과들이 나타난다면 이는 술에 대해서 이미 유전자의 적응이 있었던 것을 의미한다." 수렵채집인에서 농경목축인으로 도약한 인류는 부락을 이루어 군집 생활을 시작하면서 지배와 피지배 계급을 형성("권력")했고, "삶"("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은 미지에 대한 호기심, 즉 "앎"("훌륭한 것")을 얻기 위해 권력으로 이웃 국가를 정복하거나 침략하면서 새로운 환경을 맞거나 새로운 환경(감염성질환, "나쁜 것")을 전파했다. 그리고 산업화 과정에서 도시화가 빨리 진행되었고, 생산품을 교역하는 지역은 감염성질환(인간을 숙주로 삼은 병원균)에 취약했으며, 새롭게 등장한 여러 "화학물질"들을 적응할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았다. 삶은 변화된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유리한 '유전자 변이'가 살아남는 자연선택 과정을 거치지만, 유전자는 급격한 변화와 낯설은 환경에 부적응하게 되어 곧 "질병"으로 이어졌다. 예로 중세에 유행한 페스트의 경우 숙주인 쥐와 페스트균이 서로와 안정적인 관계를 유지하지 못해 (야생쥐는 자연적인 병원균의 숙주로 서로 적응되었으나 야생쥐와 만난 집쥐가 병원균을 옮겨왔다.) 거대한 재앙을 불러온 것을 들 수 있다. "그들 스스로의 변화, 위키", '후생유전학적 변화'란 환경 노출로 DNA가 메틸화되는 정도에 따라 유전자를 보호하면서 세포 안에서 유전자 발현을 조절하여 유전자 세포는 같아도 세포의 모양과 기능이 서로 다른 경우다. DNA만이 오직 유전정보의 주체라는 관념을 깬 후생유전학적 변화는 유전자 변이에 비해 유연성은 크나 안정적이지 못하다. *인용, 참고: 질병의 탄생, 홍윤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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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움 자체는 '한정되지 않은 것'이다(플라톤 필레보스). 그럼 즐거움의 기준이란 무엇인가. 정의로움just-ify이 참된 즐거움, "적도(맞을 적適 법도 도度, to metrion)의 기준"으로 합당한가. 우주 속에 존재하는 '한정되지 않은 것', 더 뜨거움과 더 차가움, 더 건조함과 더 습함, 더 많음과 더 적음, 더 빠름과 더 느림, 더 큼과 더 작음, 더 강력함과 더 유약함에는 서로와 대립되는 불화 상태를 멈추게 하는 균형과 조화(한정자, to peras)가 필요하다. 이 같은 한정되지 않은 온냉건습을 일정 비율로 조합하는 것을 '혼합된 것'(to meikton), '혼합된 부류'(to meikton genos)라 한다. 그리고 이 혼합된 것이 생성되고 유지되는 원인은 질서짓고 배열하는 '지성과 지혜'(앎)다. 몸이나 혼의 상태와 관련해 생기는 세 종류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다. 몸과 관련된 괴로움이란 몸 속에 있는 조화 상태가 해체되어 느끼는 배고픔이고, 즐거움이란 다시 체움의 먹는 행위로 몸의 조화가 이루어질 때다. (갈증이란 '내게 없는 것을 충족'하는 것이 아니라, 와해이자 괴로움에서 오는 내게 없는 것의 채워짐에 대한 욕구, 회복, 채워짐에 미치게 되는 혼의 기억이다.) 혼과 관련된 즐거움이란 즐거움에 앞서 예상하게 되는 혼의 즐겁고 고무된 상태며, 괴로움이란 괴로움에 앞서 예상되는 혼의 무섭고 고통스럽거나 두렵고 괴로운 상태다. 몸과 혼에 관련된 즐거움과 괴로움이란 기억에 의해 채워짐을 혼이 기대하며 즐거워하지만 비어있음을 몸이 괴로워하는 것이고, 몸이 비워져 있고 혼의 기억에 의해 채워지리라는 기대조차 없는 경우다. ("그 외에도 몸에는 즐거움이 있으나 혼에는 괴로움이 있는 경우가 있고, 몸에도 혼에도 동시에 즐거움이 있게 되는 경우가 있다. 플라톤 필레보스, 이기백 옮김") 거짓된 즐거움에는 세 종류가 있다. 첫째, "옳은 판단과 지식에 뒤따르는 참된 즐거움"과 상반되는 "거짓과 무지에 뒤따라서 우리들 각자에게 종종 생기는 즐거움"을 말하며, 이것은 과거, 현재, 미래avenir에 대한 기대와 착각에서 발생하는 즐거움, (혹은 미리 괴로워하는 일)이다. 둘째, 몸은 괴롭지만 혼은 욕구가 충족될 것이라 기대하는 즐거움이다. 셋째,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무료한} 중간적인 삶"에서 괴롭지 않은 상태를 즐거움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가장 큰 즐거움을 살펴보고자 할 경우, 건강이 아니라 질병 쪽으로 향해서 찾아야 한다. 몸이나 혼의 좋은 상태(arete)에서가 아니라, 어떤 나쁜 상태(poneria), 열병에 걸린 사람들과 그런 유의 질병에 걸린 사람들이 더 목말라하고, 더 추워하고, 더 크게 결핍을 느끼며, 채워질 때는 더 큰 즐거움을 갖는다. 플라톤 필레보스" 따라서 혼과 몸의 좋은 상태가 아니라 나쁜 상태에서 더 큰 즐거움과 더 큰 괴로움을 느끼게 된다. 괴로움과 혼합된 즐거움이란 비극적인 장면을 관람하면서 동시에 즐거워하는 것, "비탄과 그리움 속에 있는 괴로움과 섞인 즐거움"이다. 위에 거론된 즐거움 외, 플라톤은 세 가지 종류의 참되고 순수한 즐거움이 있다고 말한다. 언제나 그 자체로 아름다운 (자연적으로 자연에 따르는) 모양들의 아름다움, 냄새와 같은 "덜 신적인(hetton theion) 종류의 즐거움", 그리고 배움(mathema, 앎episteme), 즉 "배우는 것에 대한 굶주림과 관계가 없고, 배움에 대한 굶주림에서 비롯된 고통과도 관계가 없는 즐거움, {비록 망각을 통해 앎을 상실하여도 고통이 없는 것}"이다. "즐거움만을 지닌 삶이란 인간 이하의 삶일 것이요, 다른 한편 사유 내지 지성만을 지닌 삶이란 비인간적 내지 {모든 삶 중에서도 가장 신적인 삶}, {초자연적이고} 초인간적인 삶일 것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적도 상태를 유지하는 "양쪽을 다 겸비한 충족적이고 택함직한" 혼합정체, 진실성이 있는 훌륭한, 즐거움과 분별을 지닌 삶, "옳은 판단과 지식에 뒤 따르는 참된 즐거움"을 '가장 좋은 삶'이라고 주장한다. (*인용, 참고: 플라톤 필레보스)

"{지각은 (우리에게) 언제나 있는 것, 앎이 틀리지 않는 한 152c, '(우리가) 지각을 통해 어떤 것이 영혼의 가슴에 찍혀 표시가 될 때, 그의(우리의) 영혼 안에 있는 밀랍이 두껍고 널찍하며 보드랍고 적절하게 무른 것일 경우' (밀랍 서판 191d), 그것은 대상에 감각이 있어도 기억이 빗맞힘hamartanein이 없고, 기억상과 감각상의 엇맞춤parallage이 없으며 '지혜로운 자이자 있는 것이 되고', 알고 있으나 착각으로 인한 거짓된 판단(새장의 비유 197c)과 "은유"와 물체의 우유적 속성을 지닌 이름에 어떤 대상의 우유적 속성을 부여하는 것(우유적 속성·우유성: 사물이 일시적으로 우연히 가지게 된 성질)이 없는 한,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앎은 지각aisthesis이다." 지각은 감각5에서 시작해 직관6으로 대상, "움직이고kinesis 변화하고alloiosis 운동하는phora, 152e" 삶을 인지하는 것이다. "앎은 참된 판단doxa이다." 오늘은 어제와 내일의 척도이다. ('플라톤은 테아이테토스의 척도다.' 감각5이 주관적 경험이기에 아포리아aporia가 생긴다. 그래서 '정의just-ify'가 필요하다.) (오늘은 행복이 존재한다고 슬픔이 생각하는 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은 행복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슬픔이 생각하는 곳에 존재한다. *인용, 참고: 신화의 알리바이, 롤랑바르트) 행복에 도취된 미래avenir(앞으로 닥칠 것)에 대한 믿음보다, 미래futur(앞으로 될 것)를 사는 오늘은 언제나 슬픈 것, "인간은 만물의 척도, {판단의 상대주의, 믿음의 상대주의}이다. 있는 것들에 대해서는 있다고, 있지 않은 것들에 대해서는 있지 않다고 하는 척도이다. 152a" 따라서 오늘의 "정의just-ify"는 어제와 내일의 척도이다. 다수의 행복에 슬프다는 것self-application, (삶은 산고를 겪는, 148c) 행복을 향한 슬픔(욕망, 내게 없는 것을 충족시키려는 사랑)이다. 어제와 내일의 척도는 생성의 과정에 있는 오늘의 흐름 "크거나 희거나 뜨거운 그런 것, 154b", 즐겁거나 괴로운 삶의 온도(상태)에서 비롯된다. 그러므로 "앎은 설명logos을 {언어logos를} 동반한 참된 판단이다." 환기hypomnesis(부를 환喚 일어날 기起), 즉 '기억의 적바림'memo에 의존하는 인간은 '감각할 때 사용하는 수단5'과 '감각적으로 깨달음을 가능케 하는 능력6'을 모아 삶은 아름답고('자음과 모음'인 음소와 '음의 높낮이·길이·세기'인 운소가 음운이되고), "고상하고 건장한 산파이신 파이나레테Phainaarete(덕arete) 149a"로 여러 감각(운소)들이 "어떤 하나의 종idea(음절: 하나의 종합된 음), 혼 {또는 정신7}"이 되어 앎은 생각하고 고로 앎은 존재한다. (*인용, 참고: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삶"神이란 있을 수 없다. 설령 "삶"이 있어도, 그것을 지각할 수 없다. 설령 "삶"을 지각할 수 있어도, 그것을 (타인에게) 설명할 수 없다. 첫째, "앎"이란 결코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살아가는 것" 또한 "살아남기" 위해서는 (DNA) 영원해야 하고 그렇게 되면 한계가 없어지기 때문에 다시 아무 것도 "앎지 못하는 것"이 돼버린다. 둘째, 인간은 "알지 못하는 것"들을 생각한다. 날개달린 인간, 바다 위를 달리는 마차는 "앎"이지만 사고되는 것이다. "앎"이 인식된다면 반대 개념인 "삶"은 인식될 수 없다. 또한 순수하고 완전한 이성이 있을 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완벽한 지식은 모든 것을 기억해야 하는데 인간은 개별적이고 유한한 존재이므로 절대적이고 보편적인 지식을 가질 수 없다. 따라서 인간 인식의 어떤 것도 참되다고 할 수 없다. 셋째, 인식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살아간다" 하더라도 전달 수단인 언어 자체가 실존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재를 전달해주지 못한다. 로고스(logos)는 내적본질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과 감각의 구성물 즉 '언어'이다. (귀신 신神, 말할 화話는 하나의 파롤이다.) 따라서 언어를 뛰어나게 구사하는 수사학은 현실에서 가장 중요해진다. (*인용, 참고: 고르기아스 - 존재하지 않는 것 혹은 자연에 관하여; 비존재 - 앎, 존재하지 않는 것 - 알지 못하는 것, 존재 - 삶, 존재하는 것 - 살아가는 것)

"눈{삶}이, 그 눈{삶}에 들어맞는 것들 가운데 접근해 오는 다른 어떤 것과 함께, 흼白{앎}을 그리고 그것과 '쌍생'하는 지각을 낳을 경우(뒤의 이것들은 앞의 것들 중 한쪽이 다른 것과 만났더라면 결코 생겨나지 못했을 것들인데), 그때에는 눈{삶}으로부터의 봄{살아가는 것}과, 눈{삶}과 짝을 이루어 색깔{미}을 출산해 내는 것으로부터의 흼{앎}이 그 사이에서 운동하게 되지. 그리하여 눈{삶}은 봄{살아가는 것}으로 가득 차게 되어 그때서야 보게 되고{생을 살아가게 되고}, 단순히 봄{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보는 눈{생을 살아가는 삶}이 되며, 눈{삶}과 짝을 이루어 색깔{미}을 낳는 것은 흼{앎}으로 가득 차게 되어 그 역시 흼{앎}이 아니라 흰 것{아름다운 것}으로 되네." (156e) 코기토 에르고 숨, 삶은 존재하고 고로 삶은 생각한다 그러므로 삶은 아름답고 앎은 생각하고 고로 앎은 존재하며, "작용을 가하는 쪽{앎}에 대해서도 작용을 받는 쪽{삶}에 대해서도 그것들을 따로따로 취해서 어떤 것으로 있다고 단정적으로 사유하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일세. 157a" 삶으로부터의 살아가는 것과, 삶과 짝을 이루어 미를 출산해 내는 것으로부터의 앎이 그 사이에서 운동하므로, 그것은 '생겨나는 것', '만들어지는 것', '그리고 '소멸하는 것'과 '변화하는 것'이고, 운동의 원인은 사랑이고, 힘의 목적은 아름다움이다. (*인용, 참고: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지혜, 건강, 부가 "좋은 것"이고, 좋은 것과 반대되는 것을 "나쁜 것"라고 한다. 그런데 "중간적인 것"은 "어떤 때는 좋은 것에 참여하고 어떤 때는 나쁜 것에 참여하며 어떤 때는 어느 쪽에도 참여하지 않는 것들, 이를테면 앉는 것이나 걷는 것, 달리는 것, 항해하는 것,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돌이나 나무 등과 같은 그런 것들"을 말한다. 그런데 "중간적인 것", 즉 "훌륭하지도 나쁘지도 않은 것"인 삶은 아름다움이라는 목적을 출산하고자 걷고 달리고 항해하고 운동하고 산고를 겪는다. 그리하여 삶은 질병을 얻고, 삶은 좋은 것인 앎으로 가득차 "가장 큰 즐거움"을 얻는다. (*인용, 참고: 플라톤 고르기아스 468a)

"그런데 뭔가를 보고 자기가 본 것에 대해 아는 자{환기}로 된 사람이, 만일 눈을 감고 나면 그것을 기억은 하지만 보지는 못하네{상기: 정신7, 영혼이 머물렀던 이데아를 떠올리는}. 그렇지? 그런데 '그가 본다'는 게 정말 '그가 안다'는 것이라면, '그가 보지 못한다'는 건 '그가 알지 못한다'는 것이네." 그런데 삶을 살고 자기가 살아온 것에 대해 아름다움을 느낀 사람이, 만일 침묵死하면 그것을 기억은 하지만 살아갈 수는 없네. 그런데 '그가 살아가는' 게 정말 '아름다운' 것이라면, '그가 살아갈 수 없다'는 건 '그가 아름답지 못하다'는 것이네. 164a "뜨거움이나 흼 또는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의 생성에 대해 그들이 이런 어떤 식으로 주장한다고 우리가 말하지 않았던가요? 이것들 각각은 작용을 가하는 것{앎}과 작용을 받는 것{삶} 사이에서 지각과 함께 운동을 하며, 작용을 받는 것{삶}은 지각이 아니라 지각하는 것{앎episteme이 아니라 배우는 것mathema, "앎은 지각이다"}으로 되고, 작용을 가하는 것{앎}은 성질이 아니라 어떤 성질의 것{미가 아니라 아름다운 것}으로 된다고 말입니다. 작용을 가하는 것{앎}은 뜨거움도 흼도 아니라 뜨거운 것이나 흰 것으로 되며, 다른 모든 것들의 경우도 그런 식으로 됩니다. 그 자체가 그것 자체로 하나인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이는 작용을 가하는 것{앎}이나 작용을 받는 것{삶}의 경우도 그러한데, 이 양자Quantium가 서로 어울림으로써 '지각들과 지각되는 성질들'{삶과 살아가는 것, 미와 아름다운 것}을 출산해 내며, 그렇게 태어난 지각되는 것{살아가는 것, 아름다운 것}들은 어떤 성질의 것들로 되고 지각들은 지각을 하는 것들로 된다고 말입니다." 182a 그러므로 어떤 것을 살아가지 않는 것이라고 하기보다 삶이라고 불러서도 안 되며, 어떤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님이라고 하기보다 다른 어떤 앎이라고 불러서도 안 됩니다. 모든 것들이 온갖 방식으로 운동하는 한에서는 말입니다. 182c 만일 모든 것들이 운동한다면, 무슨 물음을 대상으로 해서든 '그렇다'고 하는 답변이나 '그렇지 않다'고 하는 답변이나, 또는 (언어의 양자, 그것들을 말로 정지시키지 않으려고 '된다'는 표현을 쓰길 원하면) '그렇게 된다'는 답변이나 '그렇지 않게 된다'는 답변이나, 모든 답변이 마찬가지로 옳은 것으로 드러나게 됩니다. 183a (*인용, 참고: 플라톤 테아이테토스) 

모든 사고의 근원은 감각5이고, 어떤 대상의 움직임이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5을 자극하면 환상이 생긴다. 미에 대한 감각의 의도가 앎으로 가득하여 대상을 욕구하거나 욕망하는 것, 선을 예상하는 것을 아름다움이라 하고, 침묵으로 삶을 거부하는 것을 악이라 한다. 그런데 움직이는 물체에 끌어당기는 중력, 욕구나 욕망이 없으면 관성에 의해 물체는 영구히 움직인다. 중력에 의한 어떤 대상의 운동, 움직이고kinesis 변화하고alloiosis 운동하는phora, 즉 건조한 것과 습한 것, 찬 것과 뜨거운 것, 쓴 것과 단 것, 날카로운 것과 무딘 것, 텅빈 것이나 꽉 찬 것, 즉 감각으로부터 흐려지는 것,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희미해지고 '쇠퇴해 가는 감각'을 '환상', '상상', '기억' 또는 '상상이 환상으로 이상'을 빗여낸 것이라고 하고, 그 대상의 기억을 '경험'이라고 한다. 그러나 감각으로부터의 이상을 목표삼지 않으면 초자아(양심·윤리)는 현실이라는 자아로 원초아(본능)를 구속한다. 한편 조건없는 상상을 실현하는 꿈은 감각기관을 흐리게 할 수 있는 움직이는 대상이 없으므로 생각은 더욱 명료해 지고, 수면 중 신체의 상태나 잠들기 전 정신상태에 따라 (대적할 적)敵의 영상을 만든다. 사고의 흐름에는 두 종료가 있는데, 하나는 유도하지 않고, 의도도 없으며, 일정하지도 않은 열정적인 사고의 결여이며, 두 번째는 욕구와 의도가 지배하는 사고다. 욕구와 의도가 지배하는 사고를 고대 로마인들은 '통찰력', 혹은 '탐구력'이라 불렀으며, 통찰과 탐구를 통해 과거를 재검토하는 것을 '회상', 혹은 (플라톤의) 보는 것을 통해 기억하는 '환기'(후천적인 미), 기억은 하지만 보지 못하는 것을 '상기'(선천적인 미)라고 불렀다. 그리고 기억을 통해 결과를 예측하는 선견지명을 '분발력', 혹은 '지혜'sophia라고 부른다. "현재만이 {자연적으로 자연에 따르는, 느끼고 이해할 수 있는} 자연 속에 존재하며 과거는 기억 속에서 존재하고, {행복에 도취된} 미래avenir는 아직 실재하는 것이 아니다. {'앞으로 될 것'인} 미래futur는 과거 행동의 결과가 현재의 행동에 적용되어 나타나는 마음속의 {슬픔}·허구일 뿐이다." 예측이 기대와 맞아떨어지는 것을 분별력, "과거의 경험을 통해 집약된 미래에 대한 추측"이라고 할 수 있으나 그것은 가정일 뿐이고 미래의 사건을 만들 수 있는 것을 섭리{자연계를 지배하고 있는 원리와 법칙}라고 하며, "예언은 오직 신富에게서 나오는 초자연적인 것"이다. (기적), 예측을 하기 위해서는 예측에 필요한 징후, (원인), 즉 앎을 많이 소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미래는 현재의 기적이고, 현재는 과거의 기적이다.) "그리고 인간의 정신에는 감각·사고·사고의 흐름 이외에는 그 어떤 운동도 없기 때문에, 이런 능력은 모두 언어가 발명됨으로써 생긴 것이다. 진정한 지식을 얻고자 한다면, 지금까지 내려진 정의를 검토하고, 소홀하게 규정된 것이 있을 경우 정정하거나 스스로 새로운 정의·{justice·definition}를 내릴 필요가 있다." 직관6이라 함은 욕구와 정념으로 인해 지혜로운 것이 두려울 수 있고, 잔인한 것이 정의로울 수 있고, 낭비가 아량이거나, 한편 위엄이 어리석어 보일 수 있는 것이다. 그럼 온냉건습을 다스리는 혼합정체, 비록 리바이어던은 상대적인 강함을 억제하기 위해 권력으로 불가피하게 존재하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부터의 정의로움just-ify이 참된 즐거움, 적도로 합당하다. 자유롭지 못함을 느끼는 묵시적 침묵에서 명시적으로 저항하는 것, 자유인으로써 움직일 힘과 지력으로 자신이 원하는 자유富를 추구하는 것, 그리하여 새로운 정의의 열정, 발견된 (그리고 소외되었던, "지구는 돈다"라는) 새로운 아름다움은 시대정신으로 격상된다. (*인용, 참고: 토마스 홉스 리바이어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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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이란 "얼어붙은 순결을 비밀스럽게 휘젓는 열정이자, 생물학과 미, 토마스 만" 나를 상실하므로써 자기자신에게로 돌아오는 '힘에의 의지'다. 나의 과거를 상실함으로써 나의 장래futur에로 향하는 영원회귀, "순간 안에 서있는 나는 두 방향 HG vol.43, p48"으로 '시작과 변화를 상징하는 야누스'적인 삶을 산다. "지난날의 장미는 이제 그 이름{정신7}뿐,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 덧없는 이름{헤겔의 절대정신}뿐. 움베르토 에코, 장미는 이유 없이 존재하며, 장미는 꽃이 피기 때문에 꽃이 핀다. 안젤루스 실레시우스" 오늘의 삶은 어제로부터 독립된 주체이고, 내일은 오늘의 앎으로부터 분리된 개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그러나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고, 하늘은 더 이상 하늘이 아니다. (수소는 수소고 산소는 산소다. 그러나 let there be light, 산소는 더 이상 산소가 아니고, 수소는 더 이상 수소가 아니다.) "생명은 태양 광성의 변환이다." 삶은 앎의 변환이다. 생명은 '한계가 없는' 永<길 영永 - 시간이 길다> 세균(미생물; 병균을 포함한 상위 계념)이고, 세균이 아닌 생명은 세균인 생명에서 진화하여 세균 연합체를 이루었으며, 합병된 세균은 원생생물에서 균류, 식물, 동물, 포유류로 진화하여 질병(미생물; 병균), 그리고 죽음이라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을 맞이한다. 원생생물은 노화되어 세포자멸사Apoptosis하는데, 성性 구분이 있는 개체로 진화하는 과정에서 죽음死 또한 진화되었고, 그것은 의식있는 생물에서 ('정신'을 남기고) 다시 한계가 없는 미생물 상태로 돌아가는 것, 바로 질병이다. 아이번 월린의 제안처럼 "질병과 관련 있는 생물인 세균이 종의 기원에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 공생과 종의 기원"한 것이다. "동일한 상태로 머물기 위해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자기 생산의 핵심이다. 이는 세포뿐만 아니라 생물권에도 적용된다. 종에 적용되면 진화가 일어난다." 위벽은 닷새마다, 지방조직은 3주마다, 피부는 6주마다, 간은 2개월 마다, 혈구재생은 3개월마다, 뼈는 200일마다, 몸을 구성하는 원자들은 해마다 98퍼센트 교체된다. (그럼 이같이 활발한 재생가운데 무분별하게 촉발하는 질병이란 무엇인가. 질병이란 새로운 병원균에 유전자가 아직 적응되지 않은 것이자, 앎으로 향하는 삶이 중용을 벗어나 '유전자 변이와 후생유전학적 변화'의 속도를 월등히 추월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질병은 신호다.) 생명이란 그리스 어근에서 나온 "자기 생산autopoesis", 자기(auto)와 만들기(poiein)다. 블라지미르 베르나드스키는 모든 생물이 물질적으로 하나가 된 장소, 하나의 거대한 유전체이자 생물권에 살고 있으며, "지구의 생명체는 별의 에너지가 생물로 전환되는 물질계이자", 생물이란 생물권에 '살아 있는', 어떤 사건이나 과정이라고 설명한다. DNA와 바이러스는 '살아가지만' 물질대사를 못한다. 바이러스는 숙주 안에서 증식하고 살아가지만 "끊임없이 또는 단속적으로 재배열되고, 파괴되고 재생되고, 부서지고 수선되면서 이루어지는 활기찬 자기유지"가 없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했듯이 "자연은 생명없는 물체로부터 동물로 조금씩 옮겨가므로" 일부 작은 생명들이 전체와 유사한 형태를 이루는 것을 '프랙털'fractal이라 하고, 아서 케스틀러의 표현처럼 보다 큰 전체를 이루는 작은 생물들의 공존을 '흘러키'라 일컬으면 대지는 "가이아"이자 "생물권 전체가 연결되어 있는 전위 예술"이다. "예컨대, 흙은 죽어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스러진 바위, 꽃가루, 곰팡이의 균사, 섬모층의 포낭, 세균의 포자, 선충류를 비롯한 여러 미생물들이 뒤섞여 있는 혼합물이다." (*인용, 참고: 생명이란 무엇인가 -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한정되지 않는 것, 욕구로부터 비롯된 '힘에의 의지'로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seize the day, 오늘을 즐길 것인가. 진화가 있다면 퇴화가 있겠고, 과연 오늘이 그 기준인가. 그럼 오늘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생명의 기준을 푸름이라 하고 삶의 기준을 오늘이라고 하면, 망각이 필요한 삶에 "앎"은 기준이 될 수 없다. "걱정"은 ("잠이 들 때면, 난로 앞에 있는 한 웅큼의 석탄을 내가 삼켜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불안"으로 충분한가. 【식물(이산화탄소6CO2와 물H20)이 "빛"을 받으면 당C6H12O6과 산소6O2가 된다. 당C6H12O6은 에너지를 제공하고, 지방C6H32O2은 에너지를 저장한다. 그러나 한정자to peras가 없으면 당분C6H12O6은 발효되어 알코올2C2H5OH(환각)이 되고, 다시 효소분해(미생물, 균, 발효, 환각)된 알코올2C2H5OH은 아세트산CH3COOH(식초)이 된다. "균류는 다양한 환각제와 독소를 구비하고 있어서 동물의 신경계를 자극하고 속이고 혼란시킬 수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언어란 디오니소스적 쾌락을 동반한 진통제(anodynia; 망각)이고, 그리스어로 "치료"와 "독"를 의미하는 파르마콘pharmakon(글 쓰는 일, 플라톤 파이드로스)이다. 세균들의 과두제는 한계에 도달한 (망각된Lethe) 삶의 부富를 해체하고 부식시킨다. 삶이 '살아가도록' 치유되는 이 과정에서 (대지와 혼합된) 정신이 남겨진다. 그것을 슈뢰딩거의 언어가 표현한다. 그것을 해석하는 것은 ('Bread and Game'에 길들여진) 오늘의 몫이다. 그리하여 오늘의 "정의just-ify"는 어제와 내일의 척도가 된다. 

"새는 알에서 나오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누구든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데미안, 헤세, {詩, 정신에서는 한정되거나 한정되지 않고 새로운 기준이 된다.}" 문명 속의 아폴론적 불만은 (지리학적 공평하지 못한 "앎", 광자photon로 인해) 증식되는 C6H12O6에서 비롯된 일탈을 넘어선 디오니소스적 2C2H5OH이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소비되는 CH3COOH가 아니다. "생명은 피할 수 없는 열역학적 평형의 순간(죽음)을 무한정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거칠고 난폭한 물질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 린 마굴리스, 도리언 세이건" '길잃은 자본'富은 미지에 튜유립을 심지만, 삶은 생을 살아가지 않고 "열역학적 평형의 순간을 무한정 연장하기 위해" 앎을 얻으려 한다. 대공황 때 자본은 부를 불태웠다. 그 모순은 삶의 본성이였고, 여전히 유효한 현재진행형이다. 결과인 '살아가는 것'에 나쁜 영향을 준다면 유전자는 원인에 앞서 있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을 향한 휘페리온이 부(광합성)를 거부하는 것은 '살아가지 않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원자는 광합성 의존에 자유를 부여했다. 광합성 식물에 의존하지 않는 "삶"이라면 꿈과 무의식, 그리고 그의 thesis는 족히 실현 가능하다. "지금 나는 정말 나인가, 아니면 나비가 꿈에서 내가 된 것인가. 장자" 정신이 나비라면 삶은 "주말"이다.) "현존하는 문명들 가운데, 다수 계층을 억압해야만 소수 계층에 만족을 줄 수 있는 단계를 벗어난 문명은 하나도 없다. 게다가 문명은 억압당한 계층의 노동을 통해서만 존립할 수 있음에도, 그 문명이 소유하고 있는 부에서 그 계층이 차지한 몫은 너무나 적다. 억압당한 자들이 문명에 대해 강한 적의를 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부에 대한 금지와 박탈, 본능을 충족시킬 수 없는 상태를 문명 속의 좌절, 불만, 불행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이 가져다 준 언어logos의 해택을 고려할 때 '문명은 벗어던져야 할 멍에'는 아니다. 다만 문명의 발전으로 질병이 줄어들고 수명이 길어지면 생명의 핵심인 리비도性도 (원생생물이 진화하는 과정의 산물인 사디즘과 마조히즘 역시; 앎을 얻고 삶을 잃는 것, 에로스에서 죽음으로, 곧 주이상스다. "특히 쇼펜하우어는 아름다움을 '의지의 초점'으로부터의 구원자, 성으로부터의 구원자로 찬미한다-미 속에서 그는 '생식 충동'{리비도}이 부정되고 있다고 본다...... 도대체 어떤 목적 때문에 아름다움은 자연의 소리와, 빛깔과, 향기가, 율동적인 움직임 속에 깃들어 있는 것일까? 무엇이 아름다움을 나타나 보이게 만드는 것일까? 1889, 니체, 우상의 황혼, 어느 반시대적 인간의 탐험 22") 점차 사라지게 된다. (*인용, 참고: 프로이트, 환상의 미래Die Zukunft einer Illusion, 문명 속의 불만 Das Unbehagen in der Kultur)

사바나에서 기원한 인류는 기후에 맞춰 차츰 이주해 나갔다. 지역에 따라 머리 위로 쏟아지는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멜라닌 색소가 늘어났고, 몸을 식히기 위해 땀샘이 더 많은 쪽으로 차츰 진화되거나 피부에 털이 줄어들었다. 역동적인 기후는 시간을 구분했고, 파도치는 온도의 변화는 선과 악을 구별하게 만들었다. '선하다는 것은 좋은 것, 앎이 기다리는 미래로 뻗어나가는 것이고, 악하다는 것은 앎으로부터 퇴보, 역행하게 만드는 나쁜 것이다.' 성선설이란 인간의 본성은 선척적으로 착하다고 믿는 것이고, 선악설이란 인간의 본성은 악하기 때문에 학문과 수양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선과 악이라는 것은 홍익인간, 도덕을 기초로 한다. 도덕이란 예의바름, "Morality"이다. 현인류의 진화가 기구를 사용하거나 서로 돕는 수렵채집인에서 비롯되었으므로, 도덕률을 기초로 삼는 것은 정당하다. 반면 식물과 동물의 대다수는 영장류(사람, 고릴라, 침팬지, 오랑우탄 등의 대형 유인원)인 인간과는 달리 단순하다. 식물과 동물에게 악이란 단순히 생명을 위협하는 것이고, 선이란 생명을 보호하고 유지하는 것이다. (인류가 그리는 선악의 벤 다이어그램Venn diagram은 생명이 그리는 선악의 벤 다이어그램과 완연히 다르다.) 사피엔스에게서 악이라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면 자기에게 지나치게 좋은 것, 아름다운 것에 너무 깊이 심취하는 성향을 찾을 수 있다. 더 뜨겁고, 더 습하고, 더 많고, 더 빠르고, 더 크고, 더 강력한 것에 매료되는 상태는 '한정되지 않은 것', 즉 우주적 속성이다. 이 상태를 '생겨나는 것',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학문, 예술, 운동, 오락 등에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우주적 속성에 맞추어 열심히 살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나에게 선이고 타자에게는 악이다. 무엇에 대한 열정, 무엇에 대한 욕망은 삶이 생명의 '아름다움'과 짝을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자 '알아가는 것'이다. 우주의 리듬에 맞춰 춤추는 생명은 복잡한 관계의 생명권을 이루는 하나의 유기체이자 삶이다. 더 차갑고, 더 건조하고, 더 적고, 더 느리고, 더 작고, 더 유약함 역시 우주적 속성인 '소멸해가는 것'이자 '변화하는 것'이다. 냉정하거나 무관심한 것은 '살아가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타자에게 선이고 나에게 악self-application이다. 공인의 열정, 공인이 지닌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선에서 우리는 선을 '기대'한다. 기대는 사실 선을 바라는 마음이지만 시선의 대상은 선도 아니고 악도 아닌 부의 원인이다. 시선의 대상이 타자를 위해 자신이 축적한 부를 나눌 때 그것을 공리에 대한 선이라 하고, 부의 결과라고 한다. 누가 선하다는 것은 열정에 비례해 자신의 몫을 챙기지 못하는 것이거나 열정이 부족한 탓이다. 누가 악하다는 것은 열정이 지나쳐 사리를 구분하지 못하거나, 아직 부에 이르지 못한 것이다. 강한 유전자를 다음세대에 전달해야 하는 것이 생명의 본분이다. 그래서 부는 선이되거나, 그래서 부는 악이 된다. '너는 너 자신에게 선하다. 그래서 보기 좋다'는 것이 바로 유행trend이다. 다른 동물보다 복잡하고 민감한 인간의 감정은 타인의 열정이 부른 유행에서 흥을 느끼고 행복해 한다. (이 흥이 자신의 미래futur를 기대하는 금요일이다.) '유행한다trending', 유행을 따른다는 것은 자신의 무리에 속한 어떠한 대상이 자신의 유전자와 비슷한 매력을 충분히 타집단에게 과시하고 있다는 것을 인증하는 것, "정신적 동질성mental homogeneity"과 유대감, 집단의 만족과 공감, 그로부터 얻는 "감정의 고양이나 강화exaltation or intensification of emotion(*인용: 프로이트, 집단 심리학과 자아 분석Massenpsychologie und Ich-Analyse)"다. Trending하는 나르키소스가 행복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하면 부는 이기적인 성향으로 건너간다. Trending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bullying을 만드는데, 자타가 공인한 소크라테스, 니체, 고흐의 삶이 그렇다. "가장 강하고 가장 행복한 자들도 조직화된 가축떼(군축) 본능을, ...... 적으로 돌릴 때에는 약한 것이다. [유고 II. 11. 128, 니체]" 자신의 유전자를 자신의 무리에 속한 상대가 대변하지 못하는 것은 지적해야할 대상이 아닌 그가 아직 부에 도달하지 못한 상태일 뿐이다. 자신을 가꾸는 것, 자신을 꾸미는 것은 정령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에게 '너는 중요한 사람이다'라고 함구하는 의미다. 자신이 비춰진 타자의 모습에서 만족을 느끼는 것, 타자의 유전자의 우월성을 존중해주는 것이다. 따라서 앎은 삶에 가죽옷을 입혀주었다.     

무엇을 정의just-ify하는 한정자는 생명을 생장하고, 물질대사를 하고, 움직이고, 닮은 개체를 생산하는 생식기능있고, 외부 자극에 반응하는 것으로 구분한다. 그런데 "불"이 살아있고, 생식 능력이 없는 "mule"가 있고, "바이러스"는 성장하지 않는다. 생물은 객관적인 시각으로 생명을 정의한다. (그것이 사상ism 혹 "주인 주主, 옳을 의義"이다. 그리고 행복하거나 슬픈 신세계nature를 보고 노래하는 것이 시다. ism은 공간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e.g. Foot vs. Meter) 인류가 그리는 생명의 벤 다이어그램은 mule를 포함한다. 그럼 물, 공기, 불, 흙의 언어가 정의하는 "무엇이" 인간을 포함하는가. "새가 없다면 빈 종이일 뿐이나 새를 한 마리 빈 종이에 그리면 그것은 하늘이 된다. 원효의 기호학적 통찰과 예술적 변용, 이도흠" (언어는 죽음을 질병으로 양자화시킨다. 언어는 편의상 범주를 만들어 '살아가는 것, 식물과 모든 생명을 포함한', 동물을 자웅동체, 자웅이체, 강장, 극피, 선형, 연체, 절지, 척추, 편형, 환형, 두족류, 부족류, 복족류, 수관계, 외투막, 다지류, 갑각류 등등으로 나누었다. 시선에 담긴 태양은 8분 전의 빛이다. 그러므로 언어로 표현된 태양은 왜곡Quantified된다. "고정되고 동일하지 않은 세계神를 고정되고 동일한 언어기호로 표현하려 하니 그것 자체가 왜곡이 될 수밖에 없다. {'진여(절대의 진리)의 절대적 의미'란 있을 수 없는 것}, 원효의 기호학적 통찰과 예술적 변용, 이도흠" 비트겐슈타인의 설명처럼 '지붕으로 올라간 뒤에는 사다리[세계神의 실체], 즉 언어를 던져 버려야 한다'.) 생물을 탄소로 이루어진 유기체라고 하는데, 생물은 에너지와 물질을 필요로 하고, 체온을 조절하거나 산성도와 알칼리도를 조절하는 항상성이 있다고 하며, 세포로 이루어져 있다고 하고, "나쁜 변이를 솎아내고 좋은 변이를 보존하는, 다윈" 진화가 있다고 말한다. 물物-자체는 빛이 있어야 가능하다. (특수 상대성이론은 시간팽창과 길이 수축만 있다.) 첫째, 하나의 "운동"을 관찰하는 같은 공간의 두 관찰자에게 시간(빛)은 똑같이 흐른다. 둘째, 하나의 운동을 관찰하는 다른 공간의 두 관찰자에게 시간은 다르게 흐른다. 단 관찰자가 (빛의 속도로) 움직이는 공간에 있을 경우다. 사실 (빛의 속도인 경우) 관찰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일반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빛에 대한 시각과 촉각"으로 시간(빛)을 판단하는 것은 어떤 전달대상, 매개체光合成가 필요한 "청각, 후각, 미각"과 별 다르지 않다. 결국 빛은 직관6으로 이해된다. 【리처드 도킨스는 「눈먼 시계공」에서 "빛과 소리는 모두 그것에 상응하는 감각 기관5에서 번역되어 최종적으로는 신경 자극이라는 동일한 것"이 되고, 신경은 그것이 빛에 관한 시각, 촉각, 청각, 후각, 미각에 관한 것인지는 분간할 수 없다고 말한다. "시각이나 청각, 후각이 서로 다른 이유는, 뇌가 내부 모형을 사용할 때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 냄새나는 세계에 각각 다른 종류의 모형을 사용하는 것이 편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박쥐는 시각이 아닌 청각, 소리를 통해 사물을 인식한다. (인간의 시각 2, 독수리 5, 타조 25)】 그런데 앞서 말한 빛은 앞으로 가기만 (시간팽창) 한다. 말하지 않은 것은 앞으로 가지 않는 빛이다. "그 대상"이 어디에나 가능하다고 정의just-ify는 생각한다. 그 대상은 대상의 "길이를 '찟어지게' 팽창"시킨다. 셋째, '모든 가능성'物自體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의 가능성'은 열역학적 평형을 유지해야 한다. 삶이 탈출속도라면 사상의 지평선은 진화론의 이중나선(약한 인류 원리Weak Anthropic Principle, 지구가 갈라파고스 제도라면 나머지 오대양 육대주Goldilocks Zone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한다. 지구가 오대양 육대주라면 갈라파고스 제도Goldilocks Zone의 흔적이 발견되어야 한다.)을 설명하고, 신은 죽었고 삶은 존재하고 고로 삶은 생각한다, 그러므로 삶은 아름답고 앎은 생각하고 고로 앎은 존재한다. "'신이 죽었다'라는 것은 니체에게는 신이 없다는 무신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신이 인간을 비롯한 존재자 전체를 지배하는 힘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니체와 하이데거, 박찬국" (The Double Helix, 의미되어진 것signfie은 의미하는 것signifiant이 되고, 기표signifiant는 다시 기의signfie를 만나 외시적denotation 기호가 되며, 외시적 기호인 공시적connotation 기표는 공시적 기의를 만나 다시 공시적 기호7가 된다.) 그래서 넷째, '모든 가능성'은 전부를 포함해야 하고, 그렇지 않은 '모든 가능성' 역시 포함해야 한다. "어떤 과학적 사실도 100퍼센트 확실하게 입증될 수 없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어떤 것이 가능성이 매우 높아서 합당한 의심을 뛰어넘어 입증된 경우 이것을 사실로 보는데, 진화는 이 기준에 맞는다. 진화가 일어난 과정을 굳이 의인화한다면 어떤 사람이 적당할까? 그는 설계하는 자가 아니라, 변화에 금방 싫증을 내거나 만족하지 못하여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하는 진화자가 적당할 것이다. 누가 되든, 그가 {다양한 가능성}들을 시도하고 있는 사람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지적 설계자가 아니라, 서투르지만 '일관된 진화자', 혹은 '적응적 변화자'가 더 적당하다. 사실 딱 맞아떨어지는 해석은 물론 진화다. 리사 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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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유령이 삶을 배회하고 있다. 앎이라는 유령이.' A spectre is haunting Europe — the spectre of commun"ism". 앎을 사용하기 위해 삶을 이해할 필요는 없다. 앎을 사용할 수 없을 때 삶을 이해해야 한다. 행복이 없을 때 슬픔을 돌아본다. "이 슬픔은 「우리는 종착역에 도착했다」는 것을 의미했다. 이 행복은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프롤레타리아(피지배계층)는 항구적인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를 말하고, 첫째, 하나의 운동을 관찰하는 같은 공간의 부르주아지(지배계층)에게 시간은 똑같이 흐른다. 능동적인 언어의 경우, 둘째, 관찰자에 따라 그것은 의미되어진 것과 의미하는 것이 된다. '서로가 안에 있는 이들 존재자는', 셋째, 모든 가능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나의 가능성은 열역학적 평형, 윤리적("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해택, 롤스")이여야 한다. 공시적 기호7는, 넷째, 부르주아지의 부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맑스의 "부르주아로서의 인간"을 포함해야 한다. 포이어바흐에 (미래철학의 원리들) 따르면 절대적인 앎은 삶 속에 재배치 되었고, 개체적 유한성의 한계는 "무한자를 유한자 속에 두는 것", 순수한 사고나 이성만으로 사물을 인식하는 "사변철학의 역전, 술어가 주어로" 바뀌는 것, (맑스의 표현처럼 "과거가 현재를 지배하지만, 현재가 과거를 지배하는"), "그것은 자신이 분리시키는 것과 다시 동화되지만, 오직 분리되고 매개된 방식으로만" 가능하다. (富, 라틴어에서 파생된 '형태를 갖춘'informare, 고대그리스 form이란 모양morph, 모양을 빚는자morphai, 모르핀morphine) ism은 공간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주어가 술어로 바뀌는 것을 「방드르디 태평양의 끝, 미셸 투르니에」는 다음과 같이 묘사한다. 시간아 멈추어라, "소모적인 방향으로 기울어지기를 그치고 그의 본질로 되돌아와서 모든 속성들과 마음껏 개화시키며, 그들 자체의 완성 이외에 다른 어떠한 이유도 찾지 아니하며, 순진하게 그 자체로만 존재하는 것", 무죄의 순간이다. 공간에 적합한 것, 부에 따라 변질되는 것이 ism이다. (문학의 아름다움은 우유성이 있는 한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언어의 변이[전자기파, 방사선, 화학물질, 외부.내부 유전자 등]는 문학의 기교[은유; 우유성], 혹 ism에 달려있다. 그렇다면 생명은 ism에 갖혀 있는가. 생명의 정의를 묻는 것이다. Objection, '관성inertia, 기계는 하나의 문門이 되었다.' 역域, Domain, 계界, Kingdom[1865-1900], 문門, Phylum, Division, 강綱, Class, 목目, Order, 과科, Family, 속屬, Genus, 종種, Species. 슬기로운 사람Homo Sapiens의 언어는 수렴진화인가, 열역학적 평형에 따라 혹 우주적 공진화coevolution의 산물인가.) 의식과 무의식의 구분은 lucrative langue, 언어도단이다. 'A, B, D, F, G, I, J, K, L, M, N, O, P, Q, R, S, T, U, V, W, X, Y, Z가 이 유령을 쫓아내기 위해 신성한 동맹을 맺었다.' All the powers of old Europe have entered into a holy alliance to exorcise this spectre.

문학은 '무'에서 사물의 '고유한 존재와 진리'를 들어나게 함으로써 '의식'을 만든다. (*참고: 하이데거, 예술작품의 근원) 그러나 물은 물이다. 롤랑바르트는 '언어는 압제적인 체계이고 문학은 언어의 대한 반역'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시인의 열정은 수소와 산소의 성격을 언어로 표현한다. 이제 꽃은 더 이상 꽃이 아니다. (문학에 의해 언어가 된) 분자 H2O은 문학의 반역으로 원자를 표현한다. "존재자는 알레테이아alētheia다." (진리는 그리스 낱말로 알레테이아alētheia, 라틴어 베리타스veritas, 독일어 바르하이트Wahrheit) 망각(lethe)하지 않는 것(a), 존재자는 비은폐적(alētheia)이고 비은닉적이다. 존재자는 인지하고 의식한다. 존재자의 무의식은 예술을 통해 의식으로 확장된다. 색을 출산해 내는 것, 예술은 '보는 작용', 이데인idein이고, 존재자의 인식은 '보이는 것', 이데아idea다. '살아가는 것'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에이도스to see고, 삶과 짝을 이루어 색깔을 낳는 것은 앎으로 가득 차게 되어 그 역시 앎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 영혼의 눈으로 보는 플라톤의 에이도스to see가 된다. "본질, 즉 이데아는 통-찰{美}된다. 통-찰하는 것(Er-sehen)은 끄집어-내는 것(Hervor-bringen)이고, 빛 아래에 가져오는 것이며, 시야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그런데 끄집어-내는 것{무의식, 앎}은 끄집어-내어지는 것{의식, 삶}에 근거하면서 통-찰된 것을 근거로서 정립한다. 이렇게 본질을 통-찰하는 것은 그 본질을 근거 짓는(begrunden) 어떤 작업도 허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본질{idea} 그 자체가 근거이기 때문에 그것을 근거 짓는 작업은 본질의 품격에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본질을 파악한다는 것은 본질을 끄집어-내는 것Hervor-bringen이며 이는 그리스적인 의미에서 앞으로-꺼내어 놓음Hervor-holen이다. 박찬국, 니체와 하이데거-본질 파악의 진리에 대한 하이데거의 해석, Ibid, p96" 무의식에서 의식을 현출하는 것, 꿈에서 예술로 표현되는 것, "앞으로-꺼내어 놓음Hervor-holen Ibid, p96", 살아가는 아름다운 것이다. (예술, 자연에서) 경이Er-staunen와 경외awe를 느낀다는 것은 다시 꽃이 꽃으로 존재한다는 의미다.

샤갈의 작품들은 초현실주의와는 달리 무의식이 의식에 의해 조절되고, 남성의 무의식 인격의 여성적 측면인 아니마anima와 여성의 무의식 인격의 남성적인 면인 아니무스animus를 표현하는 "인격의 전체성을 실현하기 위한 대극쌍들의 결합", 곧 살아가는 아름다운 것, 무의식과 의식이 상호교류에 의해 서로와의 정서적 관계를 맺는 성격을 띤다. 자신을 '의식적-무의식적 화가'라고 부른 샤갈은 보는 이로부터 정서적 공감을 유발하는 「도시 위에서」 세상과 무관한 자신과 벨라, 무의식을 상징하는 염소와 의식을 상징하는 사람이 별개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의 정신을 이루는 기하학적 「나와 마을」, 회색빛 도시 「비테프스크 위에서」 날아다니는 슬픈 방랑자, 「파란 서커스」에서 무의식의 몽확적인 면을 표현하는 꽃다발을 든 물고기와 북치는 수탉과 달의 바이올린 연주와 우주를 유영하는 여인, 사람과 동물이 공존하고 일체를 이루는 「곡예사」 손에 걸쳐진 암시적 시계, 평화시 문을 닫고 전쟁시 문을 열어두는 야누스의 시작과 변화를 상징하는 「두 얼굴의 신부」, 원근법을 벗어난 「당나귀가 있는 (휘어진) 에펠탑」, "날개를 달고 비상하는 붉은 염소, 허공에 떠 있는 녹색 얼굴, 꽃다발 속에 요정처럼 숨어 있는 한 쌍의 남녀, 뱃속에 송아지를 품은 채 공중에서 회전하는 염소, 신성과 세속, 물질세계와 정신세계, 과거와 현재가 하나의 공간에 동시에 공존하고 모든 만물이 구별 없이 일체를 이루며, 심지어는 동물의 머리를 가진 인간과 인간으로 형상화된 동물이 서로의 역할을 교환하고, 세속의 인간이 신을 대신하고, 반대로 신이 세속의 인간을 대신하는 등 꿈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장면"들로 "현대인의 의식이 접촉을 잃어버린 무의식의 언어", 즉 의식이 지녀야 할 결핍된 무의식을 화폭에 담아내고 있다. 융은 "무의식 속 아직 의식에 도달하지 못한 정신의 씨앗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하며, 인류의 정신이자 철학을 표현하는 집단무의식은 예술을 통해 "시대정신"의 성숙과 미래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그리하여 "정신의 균형을 꾀하고자하는 무의식의 의도를 전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분명 무의식은 모든 가능성이 내재되어 있으나, 현실에서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는 샤갈의 작품에서 처럼 무의식과 의식이 서로 상호작용할 경우에 가능하다. (*인용, 참고: 샤갈Chagall 작품에 나타난 무의식의 상징에 관한 연구 - 강미화)

정념이란 "강하게 집착하여 감정에서 생겨나는 생각"이다. 테카르트는 영혼과 몸의 결합 현상이 바로 정념이고, 정념이 곧 지각이라고 말한다. (앎은 지각aisthesis이다.) 지각이란 감각을 통하여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이다. 지각은 경험에서 시작한다. 생명이 깨어나면 삶은 정신과 결합하고, 삶은 앎을 의식하여 의욕을 불태워 지각하고 운동한다. "영혼이 몸과 결합하기 시작했을 때 영혼이 갖는 최초의 정념은, 생명의 원리인 열을 유지하는 데 대단히 좋은 영양소였던 피나 어떤 즙이 심장 안으로 들어갈 때 생겨났어야만 하는 것으로 본다. AT XI, 407, 정념론" 데카르트의 첫 번째 정념은 "경이"를 통해 어떤 대상을 선한 것과 악한 것,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 기쁨과 슬픔으로 구분한다. "영혼이 몸에 해로운 것과 몸에 유익한 것을 즉각적으로 경각시키고 알리기 때문이다. 이 경각을 통해 처음에 슬픔이 생기고, 이어서 이 고통을 일으키는 것에 대한 미움이, 그리고 세 번째로 이 고통에서 해방되려는 욕망이 생긴다." 데카르트는 두 종류의 "의지"가 있다고 해석한다. 하나는 대상을 정신적으로 "사랑"하는 경우고, 다른 하나는 대상을 물질적으로 원하는 (운동의) 경우다. "영혼이 관념적이지 않고 상상적인 어떤 생각을 결정하기 위하여 의지를 사용할 때, 이 생각은 뇌에 새로운 인상을 만든다. 이것은 영혼 안에서는 정념이나 상상이라고 고유하게 불리는 작용이다. AT IV, 311. 정념론" 미래futur의 정념과 미래avenir의 정념은 다르다. 경이를 통해 얻어진 정념은 미래avenir를 가능케 하지만, 모든 가능성에서 분리된 환상은 미래futur를 상상한다. 의식하지 않은 나머지 행동들이 잠재의식이고, 전의식(이용가능한 기억)으로 정화된 무의식이 의식이다. 지각이 감각에서 가져오는 활력(살아 움직이는 힘)이 (잠에서 깨어난) 의식이고, 망각(잊어 버림)이 감각에게 가져다주는 피로가 (잠으로 빠져드는) 무의식이다. (태초, 창발ermergent property[기존 요소의 재편성, 수소와 산소가 결합하여 물이 생기는 경우], 지각이 감각에서 가져오는 활력은 무엇인가. 정신이 있었다면 "내가 나비인가." 삶의 목적이 정신이라면 생명은 살아남아야 하고, 질병은 죽음에 가까워진다. 새로운 질병은 발견일 뿐이다. 마지막 질병이 죽음이다.) 초인이 되고자 각성할 때 엔도르핀(Endogeneous Morphine, 모양morph, 모양을 빚는자morphai, 모르핀morphine, 잠의 신morpheus)이 발생(runner’s high)한다. 어둠에 반응하여 눈의 레티나, 위장관, 피부에서 생성되는 "멜라토닌"은 세로토닌에 의해 제 3의 눈으로 불리는 "송과선"에서 만들어지고, "빛"에 반응하여 생성되는 행복을 관장하는 "세로토닌"은 "긍정적인 도파민 신경"과 "부정적인 노르아드레날린 신경" 사이에서 삶의 평온함을 유지시킨다. (몸이나 혼의 상태와 관련해 생기는 세 종류의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다.) 작은 솔방울과 비슷하여 솔방울샘이라고 불리는 송과선은 사춘기가 시작되면 일정한 크기에 머물러 질량만 확대되고 석회화(몇몇 연구결과 치매와 알츠하이머 환자에서 더 높이 측정)가 진행된다. 데카르트는 송과선을 '영혼이 위치하고 있는 자리'라고 믿었다. (*인용, 참고: 데카르트에서 무의식, 이진화) 

과학은 우연을 길들인다, 언어는 우연을 길들인다. 대상을 의식하는 순간, 대상은 무의식이 된다. 언어는 의식을 무의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대상이 언어가 되는 순간(1AU, 8분 19초), 언어에 모순이 발생한다. 언어는 원자다. 원자핵(+)과 전자(-)가 전기력을 만들고, 언어는 자기 모멘트magnetic moment를 형성한다. 자기장magnetic field은 어떤 대상을 당기고 밀어낸다(인력과 척력). 시선에 의해 분리된 타자(쪼개진 자석)는 더이상 이전과 같은 대상이 아니다. 언어, 원자란 원자핵을 돌고 있는 전자궤도orbital를 말한다. 윌리엄 블레이크는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았다. 알은 세계다. "새장에 갇힌 한 마리 로빈새는 천국을 온통 분노케"하므로,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눈을 깜박이다'라는 것은 (빛차단과 안구 건조증), 망각이 감각에게 가져다주는 피로다. (감각적응sensory adaptation이란 감각기관의 피로다. 감각은 변화에 지각하도록 되어있다.) 이것으로 멘델라예프는 주기율표를 완성하였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은 상대성 이론을 정립한다. 지성은 감각에서 가져오는 활력으로 하루라는 의식을 치룬다. 의식tradition.celebration이 반복되면 의식에서 무의식의 전환이 점점 빨라진다. 장인은 "기술과 타이밍을 익히기 위해 의식적인 노력과 집중이 필요하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기술과 신경표상neural representation이 신경계에 깊이 스며들어 제2의 천성으로 자리 잡는다. 올리버 색스, 의식의 강" (신경표상이란 신경세포들이 정보를 나타내는 양식이다.) 의식이 반복되면 습관은 제2의 천성이 된다. 이것이 경지에 이르면 시간에 대한 의식은 압축되거나 확장되고, 무의식에 갇힌 기술은 기교에 자리를 내어준다. 기교가 무르익으면 (결정론에 따라) 그것은 다시 기술이 된다. (죽음은 질병이다. 질병이 없다면 꿈도 없다. 죽음이 없다면 잠도 없다는 것이다.) 예술의 기교와 우유성은 의식의 반복에서 발생한 무의식으로 발견한다. 그러므로 문학의 아름다움은 우유성이 있는 한 자연선택을 통해 진화한다. "인식의 문을 깨끗이 닦는 순간 모든 것은 우리에게 있는 그대로 무한히 드러난다. 잠, 베르나르 베르베르" 언어는 날숨, 언어는 들숨, 그 숨결이 현현하다. 【윈스턴 처칠,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마릴린 먼로, 빈센트 반 고흐, 마르셀 프루스트, 버지니아 울프, 윌리엄 워즈워스, 찰스 디킨스, 마크 트웨인, 마가릿 대처, 아이작 뉴턴, 토머스 에디슨, 셰익스피어는 불면증에 시달렸다. 뇌파에는 명상, 무의식 상태의 델타파 0.2-0.3.99Hz | 졸음, 잠에 빠져드는 세타파 4-7.99Hz | 휴식, 안정적일 때 알파파  8~12.99Hz | 불안, 긴장, 활동할 때 베타파 13~30Hz | "고뇌", 극도의 각성과 흥분하는 감마파 30~45Hz가 있다. *참고: 잠 1, 베르나르 베르베르】


직관6은 오감5의 굴절된 이미지를 경험한다. 생명의 공간frame이란, "(공간은) 정신7이 세계를 보는 방식이다. {물질}7은 공간 속에 절대적으로 연장된 것étendue은 아니지만 그 속에 펼쳐져 있다는 것s'étend"이다. 우리는 "생명적 흐름 자체"가 아니라 이미 원자들로 이루어져 있는 분자, "물질의 영결된 부분들로 채워져 있는 흐름"이다. 【베르그송의 공간에서 물질, 즉 종Species은 기하학적 질서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시간의 다양한 순간들" 위에서 각 종들은 완벽하게 유사하지 않다. 베르그송의 지속적인 시간은 공간에 담기는 것이고, 아인슈타인의 시간은 움직이는 공간 속 상대적인 시간이다. 아인슈타인은 베르그송과 시간의 개념에 대한 논쟁 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과학자의 시간과 철학자의 시간은 서로 다른 모양이다." 원자 시간 vs. 플랑크 시간, 하나의 운동을 설명하는 같은 공간의 두 관찰자가 만났다. 마침맞게 하나의 운동을 관찰하는 다른 공간의 두 관찰자에게 시간은 다르게 흘렀다. 그리고 열역학적 평형을 위한 나의 가능성과 모든 가능성이 남았다.】 멘델레예프는 주기율표를 보았다. 베르그송은 '지성은 의식을 향해 본능은 무의식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지성"의 간절함은 부동적인 것, 즉 불연속적인 것을 바라고, 지성은 생명이 없는 무기적인 것(활력이 없는 것)을 명확하게 표상한다. 능동적인 "의식"이란 "본능"이다. 본능의 채워짐에서 우리는 피로하다. (본능이란 의미욕구, 자기표현욕구, 안전욕구, 지속욕구, 생존욕구를 가르킨다. 매슬로우의 욕구로는 자아실현의 욕구, 존경의 욕구, 소속과 사회적 욕구, 안전의 욕구, 생리적 욕구가 있다.) 이제 욕망하지 않는 망각들은 "무의식"으로 사라진다. "따라서 지성은 무슨 일을 하든 간에 유기적인 것{organism, 생물}을 무기적인 것으로 분해한다. 왜냐하면 지성은 자신의 자연적 방향을 뒤집지 않고서는, 스스로를 비틀지 않고서는 {Double Helix} 진정한 연속성과 실제적 운동성, 상호 침투 그리고 한 마디로 말해 생명 그 자체인 이 창조적 진화를 생각할 수 없기 때문이다. {비물질적인 생명력vital impetus, 생은 약진한다 élan vital.} 지성은, 밖으로 시선을 두고 자기 자신에 대해 외화된 생명이다." 미래futur는 제 2의 멘델레예프를 기다린다. 진화가 생명의 기원이라면 기계는 감정과 자아를 얻게 될 것이다. 기계가 자아의식을 갖추면 인간은 더 이상 노동하지 않는다. 【우연에는 변이가 있고, 우연에는 자연선택이 있으며, 지성에게는 우유적 진화라는 우연이 존재한다. 그런데 "질료"로 사유하여binary 진화하는 지성은 (무한한 시간이 주어졌을 경우) 원래 "형상"에 주어질 필연적인 운명인가. 지성이 필연이라면 우리는 초인이 되어야 한다. ("질료는 잠재태이며, 형상은 현실태다. 아리스토텔레스" 초인이 현실태라면 정신은 그에 걸맞는 잠재태가 필요하다.) 그러나 지성이 우연이라면 생명은 mule다.】(*참고, 인용: 창조적 진화, 앙리-루이 베르그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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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력에 의해 변형된 물체가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을 탄성이라하면, 탄성이란 레테를 건너는 것, 가소성이란 "살아가는 것", 살아가는 것은 살아있는 것ecology을 필요로 하고, 살아가는 정신이란 표현형 가소성이 외력인 자연선택을 받는 라눈쿨루스 아쿠아티쿠스Rammculus aquaticus(매화마름과 비슷한 종)와 같은 것이다. (겉으로 성질을 들어내는 "표현형"Phenotype의 반대는 "유전형"Genotype이다.) 그럼 C < rB가 진화의 산물이거나 본성이라고 가정할 때, 이타성이 본성이라면 가이아를 넘어선 원인이 분명히 있다는 것이고, (호혜적 이타성이란 개념에 따라 이기적인 것이다. 비록 인간은 개미와 벌들의 사회같은 강한 집단선택, 즉 이타주의적 집단인 유토피아를 꿈꾸나, 결국 한 집단의 협동은 궁극적으로 개인의 보상과 이득을 위함이다. 시대적 감성, 지역, 그리고 문명에 따른 변이와 자연선택이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가진 지성은 특별하므로, 범사회적 집단의 구성원들이 가진 적합도는 비슷하거나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이며, 진화는 약한 집단선택으로 기운다.), (캄브리아기의 시작과 끝은 5억 4500만 년 전과 4억 9000만 년 전, 구지 541백만년 전 캄브리아기의 대폭발을 강조하지 않아도) 포괄적으로 무엇이 "살아가는 것, 존재하는 것"은 반드시 (우리가 현재로써 알고 있는) 살아있는 것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곳, 시계와 달력의 저편에 영원히 존재하는 완벽한 고요, 시간에 쫓겨 허덕이던 인간적 존재가 조용히 머무는 곳, 시간의 한복판에 버티고 있는 이 작은 비시간적 공간이여! 한나 아렌트, 정신의 삶" 

정신을 진화의 유산이라하고, 시간을 산파라고 가정하자. 하면 정신을 뺀 나머지를 나라고 말할 수 없다. 따라서 나란 신체와 정신을 합한 것이다. 지성이 필연이라면 우리는 초인이 되어야 하고, 초인이 현실태라면 정신은 그에 걸맞는 잠재태(앎)가 필요하다. 영웅hērōs, 초인이란 반신半神이다. 헤로스hērōs란 에로스erōs로부터 태어났고, 우리가 초인이 되고자 하는 것은 대상을 이해하기 위해, 사랑하기 위해 질문erōtan(erōs)하기 때문이다. [프쉬케(정신)는 지각이 감각에서 가져오는 활력으로 사랑했고erōs, "아름다움"을 범한 프쉬케는 결국 망각이 감각에게 가져다주는 피로로 수면에 빠져든다. "정신은 생명의 산물이고, 생명은 정신 속에서 진정한 삶을 영위하는 거야. 정신과 생명은 서로에게 의지하지. 서로에게서 삶의 자양분을 얻는 거야. 로테, 바이마르에 오다, 토마스 만"] "헤로스hērōs는 에로스erōs-바로 이 에로스(사랑)로부터 영웅들이 태어났네-의 이름에서 조금 변형된 형태임이 자네한테 분명해질 테니까. 그들이 영웅들이라 불리는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거나, 아니면 영웅들hērōes은 질문erōtan하는 데 능숙한 지혜로운 자이자 능란한 연설가이고 변증술 전문가들이었기 때문이네. 크라튈로스 398c-398d, 플라톤" 사랑하는 우리는 질문erōtan한다. '나를 움직이게 하는 것이 혼인가. 신체를 움직이는 것이 정령 정신인가. 생을 살아가는 것이 자연을 따르는 것이고 자연에 순응하는 것인가. 자연이 자연스럽기에 운동하는가. 자연스러운 것이 아름다움인가. 그렇다면 삶은 자연의 지배를 받는가, 자연의 아름다움을 지배하는가. 영웅hērōs의 생은 비록 제한적이나 능히 우주적 속성(지나친 것)을 발휘하는가. 우리는 생명(가이아)의 지배를 받는가, 아니면 이제 곧 생명을 지배하려 드는가. 정신은 자연을 지배하는가.'

정신과 시대정신은 다르다. (태초에 빛과 진화가 있었을 것이고)우선 정신은 유전자를 필요로 한다. 주어진 초기값이 어떤 정신으로, 그리하여 정신들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공진화하고, 정신은 신체를 만드는 유전자에 따라 초기와는 다른 값을 제시한다. 정신은 시대정신의 주류로 스며들거나 새로운 줄기로 진화하여 삶은 아름답고(음소와 운소가 음운이되고), "고상하고 건장한"시간은 여러 감감들(운소들)에 의해 어떤 하나의 종(음절)이 되고, 앎이 필요한 정신(종種, Species)은 새로운 문(문단)이 되며, 문은 강(문장)이 되고, 강은 목(구절)이 되고, 목은 과(어절)가 되고, 과는 속(단어)이 되어, (질료가 잠재태이며 형상은 현실태일 때), 생겨난 새로운 종(형태소, morpheme, morph모양, -eme최소단위)은 새로운 씨앗(잠재태)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자신의 정오를 맞이할 각오를 지닌) 초인의 삶(부동의 원동자, ho ou kinoúmenon kineî, "움직이지 않는채 움직이는 자")을 구성해 나간다. "시간은 나를 이루고 있는 본질이다. 시간은 강물이어서 나{unique, 유일한, one of kind}를 휩쓸어 가지만, 내가 곧 강이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hērōs에게 시간은 찰라의 아름다움을 제공하는 에로스의 금화살이다. 강물이란 멈추지 않는 생을 살아가는 삶이다. "그대는 같은 강에 두번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크라튈로스 402a" 여기서 강이 플라톤이 말하는 "이름"이고(앎), 흐르는 강을 "아름답다"라고 말한다. ("앎"이란 "정의"된다.) 어떤 순간, 어떤 찰라를 우리는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러나 영웅의 사랑erōs, 앎을 알아가는 것은 빙켈만의 비유처럼 '엄밀히 아름다운 것이 아름다운 것은 단 한순간'일 뿐, 아름다움은 덧없다는 것Götterdämmerung(고대 노르드어 라그나로크Ragnarǫk/Ragnarøkkr는 '황혼'이라는 뢰크røkr/røkkr, 혹은 '어둠이 자라다'라는 뢰크바røkkva)이다. 【코기토 에르고 숨, '너 자신을 알라', 곧 '너 자신을 보라'는 플라톤의 명령은 맞은편 상대의 눈동자에 비춰진 나 자신, 눈부처를 통해 '나는 생각하고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것, 나를 의심하는 나 (거울을 보고), 시선을 통해 '나 안의 타자'를 보는 것이다. 붓다가 불타로, 불타가 부텨로, 부텨가 부처가 되었고, 부처(부처 불佛, 험할 타陀)란 깨달은 사람을 뜻한다. 눈부처란 라틴어 pupilla에 어원을 둔 눈동자pupil를 의미한다. 나 자신을 보는 것, "들여다보는 사람의 영상 113a"은 질문erōtan하는 것, "단순히 봄이 아니라 보는 눈이 되는" 흰 것으로 된다. "그러니 눈은 눈을 보면서, 특히 눈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자 눈이 보는 수단으로 삼는 바로 이것을 들여다보면서, 자기 자신을 볼 것일세. 알키비아데스 I 133a"】 "정말이지 어떤 앎도 어떤 상태를 전혀 유지하고 있지 않은 것에 대한 앎은 아니네. 그러나 크라튈로스, 만약 모든 사물이 변하고 아무것도 지속하지 않는다면 앎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도 않네. 만약 앎 그자체가 앎임을 잃어버리지 않고 지속한다면 앎은 언제나 지속할 것이고 그래서 앎이 있게 될 테지만, 앎의 형상 자체가 변한다면 그것이 앎의 형상과는 다른 형상으로 변하는 순간 앎은 있지 않을 태니까 말이세. 크라튈로스 440a-440" 플라톤은 국가에서 '어떤 앎도 그 앎의 대상이 어떤 상태를 전혀 유지하고 있지 않다면 그것(대상)을 알지는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아름다움의 효소enzyme가 삶인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앎, 아름다움에는 입자와 파동이 있다. 

감각은 크게 "특수감각"과 "일반감각"으로 분류된다. "표면감각"과 "장기감각"을 합하여 "일반감각"이라고 한다. 우리가 "의식할 수 있는 감각"에는 12쌍의 뇌신경과 관련된 "특수감각"인 시각·청각·후각·미각 외에도 "표면감각"인 촉각·압각·온각·냉각·통각, "장기감각"인 공복감·오심·장기통각, 그리고 "특수감각"에 속한 "평형감각"인 회전·가속도·직선 가속도가 있다. 척추동물에 있어서 장-뇌gut brain는 제 2의 뇌라고 할 수 있는데, 작은 창자에만 1억 개의 신경세포가 있다. 장은 척수나 두뇌의 지시없이도 상황에 따라 반사적인 반응을 일으키는 고유의 신경계를 가지고 있다. (행동과 결정을 조절하거나 통제할 수 있는 자유의지가 있다는 의미다.) 장에 분포하는 신경세포는 척수신경세포보다 많고, 말초신경계 전부를 합한 것보다도 많다. 장의 신경계에는 내장감각신경과 부교감신경, 그리고 내장신경절의 내장신경이 돌림근 주위에서 근육층신경총과 장막밑신경총을 형성하고 있다. 두뇌와 유사성이 매우 강한 장-뇌는 두뇌에서 사용되고 발견되는, 현재까지 알려진 200가지 이상의 신경물질들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한 화학물질창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나 다름없다. 흔히 알려진 화학물질로는 아세틸콜린, 도파민, 노르에피네프린, 세로토닌, 엔케팔린, 클루타메이트, 가바 등등이 있다. 반면 "의식할 수 없는 감각"에는 근의 길이·근의 장력·동맥혈압·간정맥혈압·폐의 팽만·두부의 혈액온도·동멱혈의 산소분압·뇌척수액의 수소이온 농도·혈장의 삼투압 및 포도당의 동정맥혈차 등으로 분류된다. 「뇌과학 공부」에서 저자는 "개별 감각은 각각의 형식인 고유한 에너지 양식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시각은 빛 에너지를 감지하고, 청각은 공기 분자에 의한 압력 에너지를 감지하고, 후각은 공기 속 화학 분자를 감지하고, 미각은 액체에 용해된 분자 에너지를 감지"한다. 따라서 "표면감각"(체감)에 속하는 촉각·압각·온각·냉각·통각은 (내수용기interoceptor, 즉 근육·건·관절·내이inner ear을 통한 자극의 고유수용기proprioceptor와 통증·공복감·목마름·질식감·충만감·오심을 통한 자극의 내장수용기visceroceptor으로부터; 삶은 우주적 속성이므로) 내부 에너지를 감지한다는 것이다. 펑유란은 이것을 마땅히 지켜야 할 이치, (항상성을 유지하는 것), 즉 길-도道라고 말한다. (펑유란의) 도道란 어떤 사물이 극단에 이르면 반대로 언제나 되돌아간다Der Wille zur Macht는 자연의 법칙이다. 잊고 싶었으나(망각) 다시 알고 싶은 것(각성), 비만 관련 호르몬인 오렉신orexin은 수면을 억제하는 물질인데 수면 연구자들은 이 호르몬을 하이포크레틴hypocretin이라 한다. 【사람의 마음은 세 가지 신경전달물질에 의해 형성된다고 하는데, 그것을 도파민, 옥시도파민(노르아드레날린), 세로토닌(빛의 세로토닌은 운동하게 만들고, 어둠의 멜라토닌은 수면을 유도; 세타파에 빠져 델타파로 렘수면Rem하려면 렘온세포Rem-On가 켜져 노르아드레날린이 줄어들어야 한다. 렘온세포Rem-Off는 노르아드레날린을 만든다.)이라고 한다. 주위를 집중하고 각성할 때 뇌에 노르에피네피린이 분비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 거의 분비되지 않아 꿈은 기억되기 힘들다. 도파민(쾌락, 긍정, 성욕, 식욕)에서 옥시도파민(노르아드레날린: 흥분과 불안, 부정, 스트레스)이 만들어지고, 옥시도파민에서 매틸옥시도파민(아드레날린: 흥분과 분노)이 생성된다. 반대로 메틸옥시도파민에서 생성효소인 단백질의 작용으로 도파민과 옥시(산소)도파민이 생성된다. "생성효소인 단백질은 거대 분자이기 때문에 만드는 데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따라서 단백질을 탈락시키고 점차 노르아드레날린과 도파민 위주로 신경계를 구성하면 에너지 관점에서 이득이 된다. 그래서 포유류, 특히 인간에서 {미를 추구하는 속성} 도파민이 주요한 신경물질이 되었다는 가설이 있다. 「뇌과학 공부」"】 사물이 극단으로 치닫는 것을 미에 대한 강한 애착이라 할 수 있다. 그럼 뇌는 뇌밖, 즉 장-뇌gut brain라는 환경에 자극되어 감정을 느끼게 하는 외수용기(extroceptor, 시각·청각의 원격수용기teleceptor와 미각·후각·피부감각의 접촉수용기contact receptor)에서 직관을 얻고 정신을 생산한다. 삶은 자양분인 앎(입자와 파동)을 감지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크라튈로스440a-440에게 말하는 앎은 지속하는 입자이면서 상태를 유지하지 않는 파동이다. 【미에 대한 감각의 동경이 감정이고, 그 간절함에서 삶은 살아가는 것으로 가득차게 되어 그때서야 진정 생을 살아가게 된다. 그것은 단순히 봄이 아닌 흼을 보는 눈이 되고, 보는 눈은 (산파인 시간의 도움으로) 색깔을 낳아 흼으로 가득 차게 되어 눈이 보는 것은 흼이 아니라 흰 것이 된다. (테아이테토스 156e) 감각에 각각의 형식인 고유한 에너지 양식이 존재한다면 이제 우리는 그것을 쉽게 정신(앎)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따라서 비록 피상적이던 사고는 추상적인 의미를 갖게되고, 관념은 우리로 하여금 대화하고 텍스트를 남기게 만든다. 그리하여 열의에 찬 담론은 언어로 정의된다.】 위와 같은 과정을 고려하면 과학혁명을 토대로 진화에 걸린 시간의 척도에서 언어는 아주 최근 생긴 것이라 볼 수 있다. 데카르트는 언어 사용이 인간을 동물과 구분시키는 결정적인 속성으로 보았다. 가령 다섯가지 감각만 존재한다면 현생인류는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의 균형이 재배열된 것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늘 감각이 있었고, 언어학자 촘스키의 의견처럼 비교적 최근 갑작스러운 대약진으로, 즉 특정한 감각의 축소나 확장으로 인해 인간은 "한없이 창의적인 사고의 토대를 제공"받은 것이다. 촘스키의 대약진이란 담론을 통해 범주화된 미의 새로운 발견, 새로운 (각도에서의 지각 항등성과 색채 항등성, 혹은 공감각) 발전으로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의식의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을 사는)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제 3의 뇌 존재여부다. (인용.참고: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 - 촘스키, 뇌 100가지 새로운 지식 - 모리 아키다네, 뇌과학 공부 - 박문호)

"생각은 언어로 표현된 기억이며, 꿈은 시각으로 표현된 기억이다. 생각은 언어로 표상되고 꿈은 이미지로 표상된다. 생각은 언어로 구성되며 언어는 상징이고, 상징은 그 자체로 존재하지 않는 환각과 같다. 생각은 현실을 반응하는 환각이란 관점에서 꿈과 같고, 나아가 생각은 언어에 의한 상징적 표상이므로 실제가 없는 환각과 같다. 결국 내면에만 몰입된 생각과 꿈은 실제 감각입력이 배제된 환각의 세계다. 지각은 그 자체로 세계를 내면화하는 과정에서 뇌가 만들어낸 환각이며, 대상에 대한 지각을 상징인 언어로 표상하는 과정이 생각이다. 그렇다면 생각도 그 자체로 환각이다. 생각에는 생각나기와 생각하기가 있다. 상상은 생각나기고 회상은 생각하기다. 생각은 언어로 표상된 지각의 한 형태다. 뇌과학 공부 - 박문호" 눈부처로 나는 타자의 시선 속 나를 본다. 나를 의미하는 것은 네가 의미되어진 것으로 우리를 만든다. 그러므로 코기토 에르고 숨, (라캉의 설명,) 하나의 의미하는 것(기표)은 다른 의미하는 것들(공시적 기표)에 대해 주체를 표상(외시적 기호)한다. "나의 무의식 또한 나의 바깥, 즉 내가 정서적으로 의존하는 타인 속에 존재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것은 너의 있는 모습 그 자체 때문이 아니라, 네가 네 안에 가지고 있는 나의 이 부분 때문이다. 무의식은 반복이다, 장-다비드 나지오" 뇌는 렘수면에서 시각 주도적 의식 상태로 (흼이 아닌 흰 것을) 생각하고, 뇌는 생을 살아가는 가운데 감각이 반영된 청각적 언어로 생각한다. 각성하는 생각(모양morph, 모양을 빚는자morphai, 형태소, morpheme)은 언어로 표현되는 기억이고, 망각하는 꿈, 즉 물리적 감각이 사라지고 자신만의 가상세계에 몰입하는 생각은 시각이 주도하는 생각이다. 지각한다는 것, 생각은 감각으로 의식하지만 이미지로 표상된 꿈은 감각이 없는 무의식이다. ["의식"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어떤 사건에 주어진 시간 동안 "감각적 표상을 맡고 있는 뇌의 영역에 의미 있는 정보를 기호화"하는 것이다. *인용: 신경망 정보 처리 과정 모델의 주요한 요소들 - 랄프 호프만] 고고학자 스티븐 미슨에 의하면 사피엔스는 자연지능, 언어지능, 사회지능, 도구기술지능이 서로 격리된 상태에서 개별적으로 발달하다가 어느 시점에서 이들이 상호연결된 후, (행위자로써 자신의 주관적 생각을 상대와 공유할 필요성을 느끼므로), 대략 3만년 전부터 '인지의 유동성'으로 "정의"의 "상징"인 "언어", 즉 "상호간의 합의"가 출현하여 문화를 이루었다고 말한다. "생각은 언어로 구성되며 언어는 상징이고", 여기서 상징이란 개별의 것들이 정의된, 담론을 통해 범주화된 미를 의미한다. 이 "아름다움"을 뇌과학에서 '돌출성'salience, '눈에 확 들어오는 자극'이라고 한다. 우리가 지각하고 행동하게 되는 것은 우리가 모르는 것, 눈에 확 들어오는 자극인 '현저성'에 의해서다. 보편성을 띤 언어에 의한 상징적 표상은 실제를 확인할 수 없으므로 분명 환각이다. 그러나 감각의 교란이 없는 정신을 '생각하기'는 '생각나기'를 위한 것일 뿐, 생각은 격정적이고 도발적인 우주적 지나침을 추구한다. "우리는 현재 실행되고 있는 우리의 과거{이마엽을 통한 일화기억episodic memory}이다. 실재란 시간 속에서 반복의 골격을 이루는 미지의 것이다. 실재는 미지의 과거이자 미지의 미래이다. 실재는 과거 무한대이고 미래 무한대이다. 무의식은 반복이다, 장-다비드 나지오" 생각나기를 실행하는 것은 생각하기를 재해석하는 것이다. "생각은 계획이다. 다윈의 물고기 - 존롱" 계획이란 "감각입력을 통해 행위를 산출, 다윈의 물고기 - 존롱"하는 생각하기다. 디오니소스적 생각나기는 '현실속 상상이 환상으로 이상'을 아폴론적 생각하기다. 그것은 종種을 정의하고 각성하기 위함이다.

베르그송의 순수 기억souvenir pur이란 데자뷰Déjà Vu(이미 기旣, 볼 시視, 느낄 감感)를 의미한다. 데자뷰는 의식 중 언어로 표현된 기억이자 무의식(Rapid Eye Movements, 의식되지 못한 기억) 중 시각으로 표현된 기억이다. 언어로 표현된 기억은 생각하기고, 시각을 통해 이미지로 표상하는 것이 생각나기다. 【대략 5만년 전부터 시작된 인류의 문화는 뇌 크기와 관련된 마이크로세팔린과 ASPM 언어 유전자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리고 약 2만년 후부터 인지의 유동성이 발탁되어 Fox2유전자를 필요로 하는 현재의 언어로 발전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언어의 의미는 라캉의 "언어 없이는 무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언어가 무의식의 전제 조건이다"라는 것이 아니라 언어의 조건에 있어 무의식은 '미를 추구하고자 하는 속성'을 바탕으로 한 '언어의 실제적 조건', 즉 쾌락신경이라는 A10신경을 자극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자면 감각기관을 통해 도파민이 생성되어야 한다. 예컨데 마이크로세팔린과 ASPM 유전자의 변화가 "진화"이고, A10 신경의 "발달"이 경험에 의해 변화하는 신경가소성(혹 뇌의 가소성)인 대자적 "공진화"다. 즉자적 "발달"이란 후생유전이다. "발달과 진화 둘 다 시간에 따른 변화현상이지만 두 변화는 같지 않다. 지나치게 단순화하자면, 발달에서 변화하는 것은 유전체가 아니라 유전체가 만드는 것이다. 이에 반해 진화에서 변화하는 것은 유전체 자체다. 유전체에서 변화가 일어나 진화적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방법은 그 변화가 정자나 난자에서 일어나{A10}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것뿐이다. 「다윈의 물고기」"】 생각하기는 의식하기이며, 의식하기는 생각나기를 위한 관찰하기다. 앎을 추구하고자 하는 생각은 이상을 표상하기 위해 행위에 앞서 (souvenir pur, 잠재적 무의식을 감각적 성질들이) 기억하고 의식하는 것이다. 연역적 추론에 따라 시각적 이미지는 빛나는 것이다. 라틴어 이마고imago, 즉 이미지image란 어떤 것을 닮아 있거나 본뜬 것, 물건의 생김새나 모양을 의미하는데, 베르그송의 이미지는 "우리 의식의 상태"인 동시 "우리로부터 독립적인 실재"다. 의식의 상태란 (독립적으로) 빛나는 것, 반사된 것, photosynthesis, 즉 아름다운 것이다. 그가 말하는 의식함에서의 순수 기억, 순수 과거, 순수 생명은 공간 속에 절대적으로 연장되어 있지 않으나, 감각으로 여과된 삶이라는 '의식의 흐름'을 따라 목적지향성이 사라지고 어떠한 귀납적 내지 논리적 전제 조건도 성립되지 않은 상태, 이를테면 감각입력이 차단되고 일화기억이 반영되지 않는 "무의식"으로 이어진다. 베르그송은 「창조적 진화」에서 앎(지성)은 의식을 향해 삶(본능)은 무의식으로 방향이 정해져 있다고 말한다. 공교롭게도 베르그송의 원뿔 「물질과 기억, 1889」은 특이점 「창조적 진화, 1907」을 지나 피라미드 「사유와 운동, 1934」로 이어진다. 들뢰즈가 「존재의 함성」에서 거론한 시간(영원한 생성, 永遠回歸)은 베르그송의 이 흐름Stream of consciousness처럼 이중창조의 형태로 자기 분열하는 것이다. 생각하는 나Cogito는 타자인 생각나는 나를 정의하지 못하며, 그러므로ergo 삶은 아름답고 앎은 생각하고 고로 앎은 존재해야sum 하는 것이다. "실제로 근래의 위대한 이론적 발견을 통해서 물리학자들은 파동{유기체, 생명체}과 입자{무기체, 물체와 닫힌 체계} - 나의 표현을 빌리자면, 운동과 실체{물질의 흐름flux; 크라튈로스 440a-440, 양자역학 1926} - 사이에 일종의 융합을 가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유와 운동」" (진동수가 높아질수록 파동은 입자를 닮아가고, "진동자의 입자적 성질이 주로 관찰"된다. 그런데 빛의 정지질량은 0이다. 파인만의 강의) 현재라는 시점은 수축된 "과거"를 포함하므로 의식되는 것은 무의식의 산물이 된다. (가령 사르트르의 개별적인 과거 그 자체Le passé 가 있고,) 순수 과거는 시간이 전개됨으로써 수축되고, 시간은 흐르므로 물질(신체)은 팽창하게 된다. '나란 신체와 정신을 합한 것', 주관적인 무의식(잠재)과 객관적인 물질적인 세계(현실) 가운데 존재하는 의식(삶)은 정신과 물질로 이루어져 있고, "정신은 지속의 수축과 긴장의 경향이고 물질은 지속의 팽창과 이완의 경향, 「배르그송의 잠재적 무의식」"을 보인다. 베르그송은 "공간이란 정신이 수를 구성하는 질료이며, 정신이 그것을 위치시키는 장소"라고 말했으나 「지속과 동시성」에서 "단 하나의 시간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며 정신과 정신사이Relative의 통속적 시간과의 타협(아인슈타인과의 대화)은 하지 못했다. 「배르그송의 잠재적 무의식」에서 저자는 이것1889을 "지각된 물질세계가 바로 나의 신체를 꼭짓점{singularity}으로 하여 둥글게 말리면서 원뿔의 부풀어 가는 내면을 형성"한다고 설명한다. 물질로 현실적인 것actuel을 의식하면서 잠재적인virtuel 무의식 상태(즉 souvenir pur)를 향하는 것이다. 생각하기는 뇌-신경체계가 기억의 현실화를 돕는 도구고, 생각나기는 현실화된 기억을 이미지로 만드는 것이다. 뇌-신경체계의 손상이란 기억이 소멸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기억의 현실화를 돕는 능력(운동 -도식이schéma-moteur란 반복을 통해 신체에 각인된 행위 습관, 즉 "지각과 운동 사이의 연결 습관", 「배르그송의 잠재적 무의식」)이 약화되어 생각하기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브로카 중추의 손상 없이도 실어증이 있을 수 있으며, 실어증의 가장 핵심적 요인은 일반적인 지적 능력의 축소에 있다. 피에르 마리 - 해부학적 증명, 피에르 자네 - 신경쇠약 연구" 뇌의 좌반구에 위치한 "베르니케 영역"은 청각피질과 시각피질로부터 전달된 언어정보를 해석한다. 뇌의 좌반구 전두엽에 위치한 "브로카 영역"은 말을 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실제로 푸르스트가 생자크라는 조가비 모양의 짧고 통통한 과자 '프티트 마들렌'를 보기만 했을 때에는 아무런 생각도 떠올리지 못했다. (시각을 통해 얻는 정보의 비율은 87%이고, 청각이 7%, 촉각이 3%, 후각이 2%, 그리고 미각이 1%이다.) 그러다 과자 조각이 섞인 홍차 한 모금이 푸르스트의 입천장에 닿는 순간schéma-moteur 마들렌은 그의 기쁨이 되었고, 그는 "정신에게, 사라져 가는 감각을 붙잡을 수 있도록 좀 더 노력해 달라고 부탁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이제 그는 콩브레에서 일요일 아침마다 레오니 고모가 차에 살짝 담가 건네주던, 매주 반복적으로 만난 수많은 마들렌의 범주화된 맛의 형태를 접한다. 곧 푸르스트에게 잊혀져 있던 집 정원의 모든 꽃들, 스완 씨 정원의 꽃들, 비본 냇가 수련이 형태와 견고함을 갖춘 기억의 고리로 되살아난다. 베르니케 영역으로부터 마들렌이라는 감각언어가 해석되었고, (감각적 정보를 분석한 해마에서 신경회로의 활성으로, 신경활성에서 대뇌피질로 전달되어 되살아난) 사건기억과 사실기억을 통해 갑자기 모든 기억이 그 본연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브로카 영역은 푸르스트로 하여금 언어를 통해 시간을 되찾게Le Temps retrouvé 해주었다. 만약 뇌-신경체계의 손상으로 현실화의 길이 차단되었다면, 피상적 일상을 반복하는 푸르스트가 마들렌이 가져다준 맛과 향을 일반화했을 것이고, 그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가지 못했을 것이다. (인용.참고: 물질과 기억 - 앙리 베르그송, 베르그손의 잠재적 무의식 - 김재희)

현재의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과거의 나는 존재한다. 그러나 '과거의 나'를 정의한 '현재의 나'는 이미 '미래의 나'다. 현재의 나는 수축하는 과거를 보고, 미래의 나는 팽창하는 과거를 본다. 나는 공간 속에 절대로 연장되어 있지 않고 그 속에 펼쳐져 있다. 데카르트의 시간은 정지되어 있고, 시지프스는 라이프니츠의 순간화정신을 ("자신의 과거를 전혀 보존하지 않는 의식, 「정신적 에너지 」") 표상하고, 「기억의 영속」은 늘어져 있다. 【정조(뜻 情, 잡을 操)affection란 신체내부에서 느끼는 감정과 감각, 즉 쾌와 불쾌다. 따라서 정신 활동인 정조는 "몸 안"에 있고, 물리적인 상像을 지각하는 현재는 "몸 밖"에 있다. 촉각도, 청각도, 후각도, 미각도, 시각도 몸 밖에서 물질을 (개별적인 신경특수에너지가 있다지만, 외연적 의미에서의 자극,) 만지는 것이다. "어떻게 색깔이 물질 세계에 존재하는가?" 그렇다면 스피노자의 "제국 속의 제국"은 공간 속에 절대적으로 연장된 것은 아니지만 정신7과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 따르면 눈의 영혼은 시각이다.】 지나간 것의 현재, 현재적인 것의 현재, 다가올 것의 현재 이 세가지가 아우구스티누스가 고백한 것이다. 그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지나간 것의 현재, 직관 속에 존재하는 현재적인 것의 현재, 기대 속에 존재하는 다가올 것의 현재가 있다고 말한다. 회상은 지나간 것의 현재고, 지각은 현재를 위한 현재고, 상상은 다가올 것의 현재라는 의미다. 흘러간 시간이 과거이고, 흐르는 시간이 현재이고, 흘러갈 시간이 미래다. 현재는 과거에 기울어져 있고 미래를 침범하고 있으며, 나의 현재라는 심리적 상태는 "동시에 직접적 과거의 지각이자 직접적 미래의 결정, 「물질과 기억」"이다. "과거란 지각된 한에서 감각, 「물질과 기억」"이며 "직접적 미래는 스스로를 결정하는 것인 한에서 행동, 「물질과 기억」" 또는 운동(물질의 흐름flux)이다. "현재의 감각"이 시작되는 순간 "순수" 기억(, 활자로 각인된 "과거 한 순간적") 기억은 멈춘다. 그것은 더이상 "이미 본"Déjà Vu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의 "순수 기억"이 될 뿐이다. "우리는 지금의 현재에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며, 현재들을 가지고 과거를 재구성하는 것도 아니고, 단번에 과거 자체 안에 위치해 버린다. 들뢰즈 - 푸르스트와 기호" 들뢰즈는 과거와 현재라는 두 요소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공존한다고 보고, 현재는 끊임없이 지나가며, 계속해서 즉자적으로 존재하는 과거는 무의식적인 기억을 통해 변함없이 존재한다고 해석한다. 들뢰즈에 의하면 현재는 과거라는 원자와 미래라는 원자가 공존하는 분자인 셈이다. "{Déjà Vu,} 저 세 그루 나무를 어디서 보았었지? 작은 길이 저런 식으로 뚫려 있는 곳은 콩브레 부근에는 한 곳도 없었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푸르스트는 세 그루 나무가 "생각나는 상상"인지, 혹 "생각하는 기억"인지 혼동하고 비자발적인 기억의 모순에 빠진다. 이것을 (들뢰즈가 말하는) 푸르스트의 기억의 착오라고 보기보다는 "의식되지 못한 기억"으로 설명될 수 있다. 

과거와 미래, "두 가지 경우 모두에 있어서 양자는 둘이 아니라 하나가 있는 것이 되니까 말입니다. 플라톤 - 소피스트 243e" 페레퀴데스Pherekydes에 따라 있는 것은 세 개이고, 현재에 어제와 내일이 있다면 그것은 습한 것과 마른 것, 뜨거움과 차가움, 즉 둘이 아니라 하나(적도to metrion)가 있는 것이 된다. 빛의 정지질량은 0이므로 빛은 없는 것이다. 모든 수는 있는 것이고 플라톤의 "있지 않은 것들"은 하나의 수에 덧붙여질 수 없다. 있지 않은 것은 "그 자체로 올바르게 언표될 수도, 말할 수도, 사유될 수도 없기, 플라톤 소피스트238a-238c" 때문이다. 있지 않은 것을 올바르게 언표될 수 없는 "참된 것이 아닌 것"이라 함은 "참된 것"을 믿기 때문이고, 따라서 Cogito, 삶은 존재하므로 "거짓인" 상image을 만드는 빛은 비존재absolute nonentity가 된다. "하나는 하나에 대한 이름이고, 그리고 역으로 하나는 그 이름에 대한 것입니다. 244d"그래서 빛은, 단지 빛에 대한 빛이라서, 그 자체가 또한 이름에 대한 빛이다. (이름은 단지 이름일 뿐이다. 역자 이창우) 아름다움을 통해 어떤 식으로 앎이 있다면, 그것은 앎과 동일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고, 그래서 모든 것은 앎보다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와 반대로, 아름다움이 앎에 의한 아름다워짐 때문에 전체가 아니라면, 그러나 전체 자체는 있다면, 아름다움은 자기 자신을 결여한다는 점이 뒤따른다. (소피스트 245b) 살아가는 것, 존재하는 것은 지각되지 않아도 존재할 수 있는가. 플라톤이 말하길, "있지 않은 것이 있지 않은 것으로서 진정으로 있다. 254d" 그럼 삶은 살아가는 것으로 가득차 생을 살아가고, 단순히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생을 살아가는 삶이 되며, 삶과 짝을 이루어 색깔을 낳는 것은 앎으로 가득 차게 되어 그 역시 앎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된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것이 뒤따릅니다. 즉 만약 '있는 것'(모든 것)들이 운동하지 않는 것이라면, 어떤 것 안에도 어떤 것과 관련해서도 어디에서도 지성은 없습니다. 소피스트 249b" 어떤 이들은 운동이 있다고 하고, 또 다른 이들은 모든 것이 진정으로 정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소피스트 252a) 운동하는 삶은 정지된 앎을 말하고 있다. 그것은 물질의 흐름이고, 과거의 지각이자 미래의 결정이다. 그러나, "확실히 운동과 정지는 다른 것도 아니고 동일한 것도 아니다. 254e" 아름다움에 대비되는 것("아름답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것이 아닌 것"), "즉 있는 것들 중 어떤 하나의 유로부터 분리된, 그리고 다시금 있는 것들 중의 어떤 것에 대해 대비된, 소피스트 257e", 유(앎)에 속하고 하나의 유가 되는 것이다. 

신경 과학에서 "물질적인 뇌가 비물질적인 데카르트적 마음을 대신, 「신경과학의 철학」"하는 것은 데카르트의 정지된 시간이 아우구스티누스의 '현재를 위한 현재'에 머물러 있는 까닭이고, 언표될 수도, 말할 수도, 사유될 수도 없는 "있지 않은 것들", 즉 존재가 비존재를 말할 수 있는 까닭은 과거에 기울어져 있는 현재가 미래를 침범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플라톤은) 있는 것은 운동하고 있다고 하고, 있는 모든 것은 진정으로 정지되어 있다 말하고, 그것은 있는 것과는 다른 아름다운 것이자, 또한 있지 않은 것이 있지 않은 것으로서 있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연을 합목적적인 행위로 규정하고 "목적이란 직접적인 것이자 동시에 스스로 움직이는 것"이라 말했으며, 움직이지 않고 스스로 움직여지는 주체, 즉 목적이 실현되고 현실에 반영되는 것을 운동(아름다움)이자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것, "자기를 벗어나 있는 상태에서 자기 자신에 머무르는 완전한 즉자대자적An und für sich; 정기(정할 精, 기운 氣; Ether)"이라고 「정신현상학」은 해석한다. (헤겔은 에테르를 학문이라 하고, 이것은 우리-신체와 정신-가 "느끼고자" 하는 것의 결론이다.) Gott(주어) ist tot(술어). (헤겔은) 존재와 본질이 일치하고 있는 그대로의 정신이 곧 정신의 대상이 되는 것, 그리하여 추상적인 지와 진리(알 지知, 참 진眞, 다스릴 리理)의 장을 넘어서 자아의 대상인 실체가 운동하는 것, "결국 이 운동은 점 그자체가 스스로 행하는 운동이 아니라 주어에 관한 {지식을 소유한 자가 행하는 운동}이 된다. 「정신현상학」" 여기서 존재의 운동이란 "스스로가 자기 자신에 대해 타자가 되는 것"이다. 「신경과학의 철학」은 정신을 통해 (생득적 능력은 이미 DNA를 통해 주어지고 순수 기억은 시간에 모순되므로) 신체가 합리적 관성synapse을 획득한다고 본다. "지각하는 자와 지각하는 대상 사이의 인지적 관계", (정보를 얻는 과정; 운동하는 대상에 적용하는 algorithm,) 즉 "지각하는 것"이란 물질의 흐름flux 속에 형성되는 관성이라는 것이다. (리벳 실험의 자유의지는 의식에 국한되어 있고, 나의 관성은 이미 자유의지를 표출한 상태다.) "나라는 것은 일련의 "신경세포들이 펼치는 활동일 뿐"이라는 사실이 쉽게 믿어지지 않는다. 프랜시스 크릭" 정신의 성향, 경향, 기질은 감각, 인지, 사고가 필요로 하는 힘이므로, (눈의 영혼이 시각이라 하면) 관성은 힘에 의존한다. 이중 슬릿 실험에서 입자(무기체)는 일정한 무늬를, 파동(유기체)은 간섭무늬를 만든다. 입자가 일정한 무늬를 만들어야 하는데, 삶은 감각과 인지와 사고가 필요하므로 "실체"는 간섭무늬로 나타난다.

낮과 밤, 운동은 정립되고 폐기된다. 지금이 무엇인가. 지금은 (낮의 타자) 밤이다. 지금An und für sich은 낮도 되고 밤도 된다. (지금) 운동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되돌아온다. "'지금'은 '이 지금'으로 명시된다. 그러나 이렇게 명시되는 순간 그것은 존재하기를 그만둬 버린다. 지금 있는 '지금'은 명시된 '지금'과는 다른 '지금'이며, 따라서 '지금'이란 지금 있으면서 더 이상 지금이 아닌 것임이 판명된다. 우리에게 명시되는 '지금'은 벌써 지나가 버린 '지금이었던 것'으로서, 이것이 '지금'의 진리이다. 그런 '지금'은 '있다'라는 존재의 진리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이 있었다는 것은 진리다. 하지만 또 지나가 버린 지금이었던 것은 사실은 지금의 본질이 아니다. 그것은 이제는 있는 것이 아니다. 한데 '지금'의 본질은 당연히 '있음'에 깃들어 있어야만 한다. 「정신현상학」" Sight, Hearing, Touch, Taste, Smell, 정의를 앞서가는 "학문"은 쾌와 불쾌다. (헤겔에게 있어서 쾌와 불쾌는 선과 악이다. 그에 따르면 선한 부는 우리가 모든 가능성을 보는 것이고, 악한 부는 그저 자기 가능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낭만적인 것은 그가 종을 교양Art으로 본 것이다. 또 그는 선과 악이라는 두 실재는 "지금"의 진리[앎]가 되지 못하고 운동 속에서 서로 전도된다고 덧붙인다. 따라서 헤겔이 「법철학」에서 말하는 합리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합리적이라는 논제가 성립된다.) 지금은 학문인가. 느끼다, 의식함은 간섭무늬를 만든다. 대상은 자기동일성을 유지하나, 의식은 가변적인 결과를 출력한다. (물체.대상이 흡수하고 남은 빛-질량은 0, 표현되고 자신에 속하지 않은 자아-으로 상이 맺히기 전까지 출력이 아닌 표출이다.) 실체, 그것을 파악하는 타자가 진리를 경험할 때 진리의 개념은 사라지고 의식의 대상은 즉자적으로 표상된다. "즉자적으로 있다는 것도 어디까지나 그것을 파악하는 타자, 즉 의식이 있음으로 해서 그렇게 있는 것이다. 「정신현상학」" 느끼고 의식하고 운동하므로써 실체는 자기 안에서 해체되고 (헤겔의 정신) 무기체가 아닌, 죽어 있는 것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가능성", 헤겔의 인륜적 세계(절대정신)는 피안(진리를 깨닫고 도달할 수 있는 이상적 경지)과 차안(삶과 죽음이 있는 세계)으로 분열된 세계, 아폴론적 몽환과 디오니소스적 도취 사이에 펼쳐져s'étend 있다. 이 정신은 "나의 가능성"으로 외화되어 (삶에 스며들어) 피안과 대립하고, 피안은 (앎과) 현실의식에 따라 차안과 대립하게 된다. 이 정신의 현상을 헤겔은 "언어의 음절", 즉 개성을 종(독일어 Art, 씨 종種)이라 부르기에 알맞으나 에스페스(불어 Espèce; 직역 - species)와는 구분을 둔다. "에스페스는 온갖 별명 중에서도 가장 가슴 아픈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중간하다는 뜻이며 가장 심한 경멸을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정신현상학」" 느끼는 것, 그리고 의식하는 것, "운동하는 것은 정신이다. 「정신현상학」" 정신은 아름다움의 주체다.


"신념은 관찰자에게 사치일 뿐이다. 뷰티풀 마인드"

 

우리가 알고 있는 과학은 아직까지 확실한 정체를 알 수 없는 우주의 95.1%의 암흑 에너지와 물질과 대조해 84.5%를 차지하는 암흑물질을 뺀 나머지 4.9%를 자유자제로 다룰 수 있는 매우 근접한 시점에 와있다. 쾌속적 과학 발전의 발단은 403년 전 발생한 뉴턴의 철학에 근거한다. 분명 고대 수학이나 아카데메이아의 기초없이는 현재의 학문이 가능할 수 없다. (헤겔은 에테르를 학문이라고 한다.) 과학이 딸 우주Daughter Universe와 다중우주론인 거품Bubble을 논하고 지구에 근접한 소행성들과 화성 자원에 시선을 돌릴 수 있는 이유도 모두 14세기부터 16세기 사이 르네상스 중심에서 꽃을 피워낸 케플러의 노고와 그외 많은 "관찰자"들의 덕임은 자명하다.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의식한다는 것은 5가지 감각이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어떤 파동의 주파수에 맞춰진 경우다. 누군가가 어떤 색을 좋아한다는 것은 그 색이 지닌 파동에서 기쁨과 평온을 느낀다는 의미다. 양자역학의 파동-입자 이중성에서 어떤 대상에 관찰자가 있을 경우 이를 (유기체이자 생명체인) 입자로 분류하여 (무기체이자 물체와 닫힌 체계인) 두 파동이 만났을 때 간섭무늬는 나타나지 않는다. (쌍둥이) 광자가 "이중 슬릿을 통해 나아가는 것은 실재의 물질이 아니라 확률에 불과하다. 바이오센트리즘, 로버트 란자" 파동이라는 잠재적 공간은 관찰을 통해 입자라는 존재의 "상"을 만든다. (언어는 "상징"이다. 코끼리 상象, 부를 징徵, 모양 상像, 상象은 코끼리를 옆에서 본 모양을 본떠서 만들었다.) 요컨대 무지개의 존재는 관찰자가 있어야만 가능하고, 카메라의 경우, 조리개의 노출 시간과 렌즈의 초점거리에 따라 피사체를 담은 이미지는 제각기 다른 결과물을 초래한다. 따라서 어떤 대상을 판가름하는 것은 저마다 개성있는 감각과 오성이고, 그 대상의 이미지는 본디 실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상대성 이론에 따라 서로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두 관측자는 상대의 시간이 지연되거나 팽창된다고 느끼고, 양자역학은 두 관측자의 감각과 오성에 따라 대상을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에서 구분된다. 반면 동일한 것은 구분의 기준이 무엇에 대해 의식하는 바로 "나"self라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달을 보지 않을 때에도 달이 거기에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고 말했다. 가스로 이루어진 목성은 만질 수 없으나 볼 수 있다. 산소는 만질 수도 볼 수도 없지만 숨·쉬므로 그 존재를 확신한다. 우리는 어떤 대상의 복잡한 실체를 5가지 감각으로 세분화하여 정의하는 환원주의의 편협함에 빠져있을지 모른다. "시각은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 촉각 역시 마찬가지로 우리의 의식이나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현상이다. 바이오센트리즘, 로버트 란자" 느낀다는 것5은 시상이 수용체(외수용기exteroceptor와 내수용기interoceptor)로부터 감각정보를 받아 대뇌피질 해당부분에 신호를 보내 지금까지의 순수기억과 대조하는 행위다. 고민한다는 것은 느낀다는 것, 하지만 '고민 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헤겔의 변증법으로 위의 담론은 4.9%를 알고 있다고 믿는 존재의 편견에 불과하다. 우리는 "목적"을 위해 시인의 시각을 구한다. 정신과 물질을 분리한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대해 횔덜린은 우리가 느끼는 실체란 정신적으로 구성되었거나 비물질적인 것(파동)이라 구분한다. 횔덜린은 여신에게 "한 여름 만 주소서, 한 가을 만 주소서. 운명의 여신들에게"라고 말하여 삶의 아름다움으로 영혼의 안식을 되찾기 바란다. 목적론을 말하는 칸트는 물질(입자), 즉 존재에는 의도가 있다고 말한다. 그의 목적은 분명 기쁨이나, 사실 그것은 아름다움이다. (테아이테토스에게, 또 존재에게) 생명의 성질은 아름다움이다. (물질적인) 존재는 입자를 구하는 파동이다.

 

"시간이란 시계로 측정하는 대상이며, 우주는 자로 측정하는 대상이다. 공간이란 자를 들고 측정할 수 있는 대상을 의미한다. 아인슈타인" 우리의 시간은 선형적이나 "지구는 돈다". (그렇다면 열역학적 기준에서) 모래시계의 모래는 사라지지 않는다. 경험이 없으면 시간은 느리게 흐르고, 따라서 운동이 없으면 시간은 영원하다. 정의할 수 없는 낙조나 오로라를 신기하다, 미묘하다, 괴상하다, 기이하다, 절묘하다, 오묘하다라고 일컫는다. 분명 삶에서 정의되지 못한 것이 아름답다. "인간의 언어와 관념은 사물의 경계를 결정한다. 바이오센트리즘, 로버트 란자" 양자장론은 "너"를 정의하라고 한다. 양자장론은 관념이 눈을 뜨고 대상을 보고 정의하여 사물의 경계를 결정하라고 종용한다. "내"가 정의될 때 나는 더 이상 삶이 아니다. 빛의 속도로 다가갈 때 시간은 점점 느려지고, 299 792 458 m/s로 이동할 때 비로소 시간은 멈춘다. "시간아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 파우스트" 중첩된 양자(쌍원자)는 한번도 분리된 적이 없는가. 존재의 공통분모가 쌍원자인가. "그렇다면 기다린 보람이 있어. 그대로부터 궁극을 빼앗아 냈나니, 진실로 신은 모든 원소{한 종류만의 원자로 구성된 물질} 안에 머물러 계시도다! 괴테" 나는 카메라고, 빛이 있으면 필름이 제작된다. 【힌두교에서 요가는 실천이고, 베다는 이론이다. 이같은 상Image을 만드는 것Veda을 그리스어로 이데아Idea라 하고, 라틴어로는 비디오Video(I see)라고 한다. 아유르베다Ayur-Veda(삶-앎)는 생명 혹은 장수라는 아유르와, 지식 또는 과학이라는 베다를 합친 것이다. 아유르베다는 신체에 공기의 기질인 '바타'와, 불의 기질인 '피타'와, 물의 기질인 '카파'라는 세 가지 근본적 생명력이 있다고 보고, 이것을 부패를 뜻하는 '도샤'라고 일컫는다. 두 원소로 구성되어 있는 세 가지로 바타는 공기의 매개체인 '에테르', 피타는 불의 매개체인 '물', 카파는 물의 그릇인 흙으로 균형을 이룬다. 요가와 관련된 것이 일곱 차크라인데, 차크라는 원, 혹은 바퀴를 의미한다. 물라다라 차크라는 흙 원소, 스와디스타나 차크라는 물 원소, 마니푸라 차크라는 불 원소, 아나하타 차크라는 공기 원소, 그리고 비슈다 차크라는 에테르(정할 정精, 기운 기氣; 의사소통, 정신에너지) 원소와 관련이 있다. 남은 두 개는 "제 3의 눈이자 명령의 중심"을 뜻하는 아갸냐 차크라와 '천 개의 연잎'을 뜻하며 "우주적 참나{참 진眞, 나 아我; 진짜 나}이자 신성한 실재"인 사하스라라 차크라가 있다. 인용.참고: 배다 입문 - 데이비드 프롤리】

 

존재에게 탁월함arete이란 어떤 대상에 대한 최고의 선이다. 신체는 감각을 통해 현상을 보고, 정신은 지성을 통해 형상eidos를 본다. 형상, 다시말해 상image이란 대상의 어떠한 상태고, 몸과 마음의 기능이 경지에 도달하여 완벽하게 발휘된 상태인 '탁월함'이다. 플라톤은 메논에게 다음과 같이 질문한다. "둥긂은 형태인가, 아니면 형태의 일종인가? 흼은 색깔인가, 색깔의 일종인가? {끈 이론,} 곧은 것{직선}이 형태인 것처럼 둥근 것{면}이 형태이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라는게 바로 자네 주장이네. 메논 74b-75e, {관찰자에 따라 조리개의 노출 시간이 짧거나 길어도 결국 동일하게 하나의 상이 완성된다. 여기서 시간의 역설이 들어난다. Thus, 빛은 시간을 만든다.}" (텅 빔blank, 흰빛blanc, 검음black, 불꽃flame은 모두 같은 어원, *참고: 흰 - 한강) 플라톤은 "사물들 가운데 유일하게 항상 색깔에 수반되는 것"을 형태라 하고, 형태는 입체의 한계라고 한다.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색깔이란 시각에 들어맞고 지각될 수 있는, 형태들의 유출물{필름}이라는 걸 말일쎄. {여기서 현상과 형상은 의식이고 무의식이다.} 메논, 76d" 정의를 앞서가는 "학문"을 탐구와 배움이라 하고, 탐구는 생각나기고 배움은 생각하기다. "탁월함에 관해서든 다른 것들에 관해서든 영혼이 어쨌든, 메논, 81d" 상상으로 상기anamnesis(생각 상想, 일어날 기起)하는 것이 탐구고, 회상으로 배움을 얻는 것도 상기다. "탐구와 배움은 결국 모두 상기니까 말일세. 81d" 플라톤은 메논의 전기가오리(변증술사)에 대해 (기하학을 모르는 아이에게 확신만으로 문제를 풀게하여) '너 자신을 알라'(베다와 같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는 사람 속에서 그가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참인 확신들이 있는 거지? 85c {헤겔은 「정신현상학」을 통해 지양relève("부정하면서 동시에 보존하는 것, 헤겔")의 이중적 의미, 즉 긍정적인 것에서 부정적인 것을, 부정적인 것에서 긍정적인 "사변적 사유"(경험의 도움없이 순수 이성으로 생각나기)에 이른다. 사변적 사유는 물리학에서도 사용한다. *참고: 헤겔의 사변과 데리다의 차이, 조홍길}" (루소의 에밀에 대해) 나(우리)의 의도는 학문이고, 나의 의도는 기쁨이다. 플라톤은 여기서 "인식"을 빛의 산파(탁월함에 교사가 없다는 것이 아닌, 올바르게 인도하는 것,)라고 한다. "그러므로 탁월함이 영혼 속에 있는 것들 가운데 하나이고 필연적으로 유익하다면, 그것을 앎이어야만 하네. 왜냐하면 영혼에 관련된 모든 것들은 그 자체가 그 자체에 있어서 유익하지도 유해하지도 않지만, 앎이 더해지느냐 무지가 더해지느냐에 따라 유익하게도 유해하게도 되기 때문이지. 88d" 앎은 빛이지만 아름다움에 있어서 (운동함에 있어서) 지와 무지에 따라 정의의 척도가 결정된다.  

 

헤겔의 「논리학」의 유-무-생성은 앎-삶-운동이다. 부정하면서 동시에 보존하는 것이 언어다. 까닮은 학문을 탐구와 배움이라 하면 탐구는 생각나기고 배움은 생각하기이기 때문이다. 언어는 관념적인 것이 실재적으로 나타난 것이고, (생각하는 나Cogito는 타자인 생각나는 나를 정의하지 못하므로,) 데리다는 운동이 있으므로 (음성언어에서) 문자화된 언어에 차연(차이diffèrence와 지연deferment)이 있다는 것이다. "차연에 도달하고자 할 때 우리는 흔적들을 따를 수 있을 뿐이다. 데리다 평전, 제이슨 포웰" 따라서 정신에 도달하고자 할 때 우리는 정신의 흔적 따른다. 언어가 문자화 되기 위해서 삶은 앎을 반드시 목격해야 한다. 현상과 형상사이 (헤겔 왈 절대자, 앎으로) 승화되지 못한 정신이 데리다의 유령, 찌꺼기다. 맑스의 주관적이고 고립적인 5'즉자적 유령'은 아름다움을 위한 '대자적 존재'를 의미한다. 그리고 헤겔의 정신은 슈뢰딩거의 상자 속에 담겨져 있고, 빛은 시간을 만듦으로 관찰은 공간의 계념으로 확장된다. 입자를 구하는 존재는 현상을 관찰해 형상(공간)을 정의할 수 밖에 없고, 대상을 보고 있지 않으면 대상은 실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파장은 가시광선380~770㎚ 정도다.) 내가 '알고 있는'5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이다. 거울 속 나는 현전적인(나타날 현現, 앞 전前) 의식을 지닌 (운동하는) 존재다. 여기서 내가 순수 기억으로 언어화되면 나는 과거가 묻혀 비현전(아닐 비非)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코기토는 현전적이여야 한다.) "''나'는 처음부터 항상 필멸의 일시적인 '표현'이고, 필연적으로 그것은 사용되는 매 순간에 ¨나는 죽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데리다 평전" 데리다는 드만의 회상rememberance를 통해 '나'는 나를 기억하는 상대의 상像을 위해 존재하는 '기억의 장소', 즉 정신이라고 말한다. "그를 넘어서 살아남는 것, 그리고 이것의 타자성은 '영혼'이라는 것 속에 있는 기억이라 불리는 그에 대한 상像일 뿐이다.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 의해 요구되는 한에서만 오로지 한 사람 또는 하나의 영혼{정신}이다. 데리다 평전" 표지binding이자 균열crack인 언어에 차연이 있고, 그래서 언어의 흔적이 상징象徵이라는 것이다.

 

"만물은 자신이 가장 천천히 늙는 곳에서 살고 싶어하며, 중력은 만물을 그곳으로 이끈다. 「인터스텔라」, 킵 손" 천천히 피는 꽃, 아름다움이 아주 느리다는 것이고, 그것은 당기는 힘이 크므로 (트램펄린; 시공간), 앎의 무게로 삶은 침전된다. 삶과 앎의 사이 아름다운 휨, "휨이 휨을 낳는다. Warping begets warping." 휨이 휨을 낳기 위한 이무익비以无翼飛란, 중력 새총 비행gravitational slingshot을 통한 랑데부(우주상의 두 물체가 서로 만나는 것)다. 여기서 아름다움이 쫓는 것은 현상이고, 얻는 것은 형상이다. (눈의 영혼은 시각이고, 예컨데 아름다움의 시선이 영혼이다. 현상이 형상을 얻는 것이다. 기억이라는 것은 신체 감각의 지나간 과거의 행위를 들춰내는 것이다. 무의식은 의식적으로 반복되는 행위의 관성이다. 따라서 감각 기관의 영혼은 오감5이다. 직관6은 이성과 본성DNA을 포함한다.) 앎의 무게로 생겨난 초공간(벌크, bulk)이 존재한다면 거기엔 정신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4차원 공간에서 5차원 공간과의 공통 분자를 찾는다.) "인터스텔라에서 책들이 떨어지는 것을 머프는 5유령의 탓으로 돌리는데, 그런 현상이 중력이상gravitational anomaly이다. {−− −−− ·−· ··· · (space) −·−· −−− −·· ·}, 킵 손" 상대를 끌어당기는 중력, 한 대상이 다른 대상에 의해 받는 중력에 의해 생겨나는 기조력의 갑작스러운 변화는 5차원 중력이상 때문에 발생한다고 킵 손은 설명한다. 그는 만약 앎의 무게로 특이점이 형성되면, 벌크美의 공간은 반드시 휘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이 중력은 형상이고 현상이다.

 

"있는 것들 각각에는 그것들을 통해서가 아니면 앎이 생길 수 없는 세 가지가 있고, 앎 자체는 네 번째 것입니다. 앎의 대상이며 참으로 있는 것인 것 자체는 다섯 번째로 놓아야 합니다. 하나는 이름이요, 두 번째는 정의요, 세 번째는 모상이요, 네 번째는 앎입니다. 플라톤 - 일곱째 편지 342a" "원"이라는 것이 "이름"이고, 구형이고 둥글고 어느 가장자리에서나 중심까지의 거리가 같다는 것이 "원"에 대한 "정의"이고, "그려지거나 지워지며 돌림판에서 돌려 만들어지거나 부서지는 것, 342c"이 원의 모상이고, 앎 자체는 네 번째 것이고, "앎의 대상이며 참으로 있는 것인 자체는 다섯 번째"로 놓여야 하는데, 그것은 능동적인 것poiēma(현상)과 수동적인 것pathēma(형상; 기쁨같은 감정 또한 형상이다)에 관련된 것을 포함한 것이여야 하므로 말과 글을 포함한 "언어"는 불확정성과 불확실성을 가진 "예컨대 튀는 불꽃에서 댕겨진 불빛처럼 갑자기 혼 안에서 생겨, 341d"나는 것이다.  

 

"또 어떤 것들은 바탕이 되는 것 안에 있지만, 바탕이 되는 것에 대해 말해지지 않는다. 여기서 [바탕이 되는 것 안에 (있다)]는 어떤 것 안에 있지만 한 부분으로서 들어 있지 않고, 또 그것이 있는 곳과 따로 (떨어져) 있을 수 없는 것을 뜻한다. 아리스토텔레스 - 범주들 1a 25" 수동적인 기쁨같은 형상(형상 형形, 코끼리 상象)은 그 바탕이 되는 운동하는 능동적인 현상(나타날 현現, 형상 상像) 안에 있지만, 형상(감정)이 현상(휨)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말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현상(아름다운 것, 살아가는 슬픔)이 없으면 형상(기쁨)은 있을 수 없다. 기쁨은 아름다운 것에 있지만 아름다운 것을 (슬픔의 공간을 채우는) 기쁨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슬픔은 형식이었고 행복은 내용이었다." 현상現像(developing)하는 현상現狀(paused)으로부터 "언어"는 추상적인 상징(코끼리 상象, 부를 징徵)이다. (이 범주가 소요학파의 언어이고, 따라서 이 불확정성 또한 아카데미학파의 언어이다.) "예를 들어, 흼은 바탕이 되는 것 안에, 즉 이 물체 안에 있으며, 이 바탕이 되는 것에 대해 서술된다. 물체는 희다고 말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흼의 뜻은 결코 그 물체에 대해 서술되지 않을 것이다. 2a 30" (중력렌즈 효과로, 앎으로 휘는) 삶은 아름답다고 말해진다. 슬픔은 삶 안에 있고, 삶은 슬프다고 말해진다. 그러나 슬픔의 뜻은 결코 그 삶에 대해 (슬픔의 공간을 채우는) 기쁨을 제외한 채 서술되지는 않을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제1 실체를 으뜸 실체라 하고, 제2 실체를 버금 실체라고 한다. 그럼 수많은 상들 가운데 어떤 꼴(정신, 일반적인)이 으뜸 실체인가. 상象을 제 3 실체로, 상像을 제2 실체로 한다면 생각하는(생각나는) 상상(생각 상想, 형상 상像)은 이상(헤겔의 정신ein Ideal; 다스릴 이理, 생각 상想)으로 나아간다. "으뜸 실체는 다른 모든 것들의 바탕이 되기 때문에 가장 본래적인 뜻에서 실체라 불린다. 2b 35"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체(그것이 무엇이 되었든지)는 '더와 덜'이라는 정도의 차를 허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사람을 보았을 때 누가 더 사람이지도 덜 사람이지도 않다는 그의 주장("사람은 이전보다 지금 더 사람이라고 말해지지 않으며, 3b 35 - 4a")은 플라톤의 필레보스나 테아이테토스의 적도to metrion에 따라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앉자 있음, 4a 35'을 동의하고, 다윈이 진화론을 주장했으므로,) 사피엔스가 되거나 네안데르탈렌시스가 될 뿐이다. 이 의미는 앎이 커질수록 실체는 계속 새로운 으뜸 실체를 정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곧 현재라는 특이점(공통된 경계, 5a 10)이 정해지면 미래와 과거가 나뉘지는 것과 같다. 상像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양(5a 35)처럼 시간에 객관적이나, (빛이 시간을 관장하므로,) 우리가 으뜸 실체로 보는 특이점은 반대되는 것이 (아직까지는) 없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관계, 6a"에서 '다른 임의의 방식으로hospōsoun allōs'을 설명하는데, 이것은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객관적인 시간이 있다면 관성계에 따라 "더 큰 것은 더 작은 것보다 {상대적으로} 더 큰 것이라고, 더 작은 것은 더 큰 것보다 더 작은 것, 6b 30"이라고 말해진다는 것이고, calvus clavati cavus, clavatum est clavo clavtum, 이 상호작용 관계의 범주에 드는 것은 서로 맞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앎의 대상이 없으면 (관찰이 없다면) 앎은 없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양자얽힘을 설명한다. "그것이 무엇에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는지를 전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이 어떤 것에 어떤 방식으로 얽혀 있다는 것조차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8b" 정신을 겪어 관성이 생긴다는 것 - , 물질의 색은 빛을 겪기 때문에 생기고, 다시 물질은 빛을 발하게 된다. "반대되는 것들 중 하나가 질이면, 나머지 것도 질이다. 10b 20" 따라서 (모순되지만) 정의라는 것은 관찰자의 범주에 달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색즉시공色卽是空, 빛色을 통해 상태空를 느끼는感) 기쁨의 형상은 (형상 형形 코끼리 상象, 즉 추상적인 모양,) 감각(느낄 감感, 깨닭을 각覺)이고, "물질이 곧 비었고 빈 것이 곧 물질이니, 반야심경", (공즉시색空卽是色, 현상이 형상을 얻는) 휨warping의 현상은 (나타날 현現 모양 상像, 즉 구체적인 모양,) 예술(재주 예藝, 재주 술術)을 보는 것이다. 삶은 현상을 관찰하고 시선을 통해 형상을 맺는다. 아름다움은 (언어로 표현되고) 상징되어야 하므로 파동은 입자가 되고, 간섭무늬는 나타나지 않게 된다. 표현하지 않는 것은 느끼지 않는다는 것이므로 상징될 수 없으며, 따라서 상은 파동으로 남게 된다. 가다머는 「진리와 방법」에서 언어를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우나 모상에 가깝다고 설명하며, 언어(로고스, 이성)는 "불가사의한 방식으로 '모사된 대상das Abgebildete'과 결부"되어 그 대상의 존재에 귀속된다고 덧붙인다. 삶의 아름다움은 앎에 귀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입자는 무기체이다. 공기의 밀도 변화, 파동은 유기체다.) 프리초프 카프라에 의하면 그림자란 3차원(사실 4차원) 공간에 있는 점들이 2차원 평면 위에 투영된 것이고, 덧차원에 있는 점들이 4차원 시공에 투영된 것은 {−− −−− ·−· ··· · (space) −·−· −−− −·· ·}이다. (후자는 사변이다. 사변이란 경험의 도움을 받지 않고 칸트의 순수한 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이다.) 중력이상gravitational anomaly이 있다. 이것을 기초로한 사변은 연역적 추론에서 귀납적 추론으로 이어져야 하고, 따라서 다윈의 귀납적 추론으로 상대론의 연역적 추론을 사변할 경우, 우리는 진리내지는 으뜸 실체를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 (사전의 연역적 추론이란 "이미 알고 있는 판단을 근거로 다른 판단을 유도하는 추론 방법"이고, 귀납적 추론이란 "개별적인 사실이나 현상에서 공통점을 찾아내어 그것을 전제로 일반적 원리를 이끌어 내는 추론 방법"이다.) 헤겔은 종을 교양으로 본다. 여기서 종은 형태소(morpheme, morph모양, -eme최소단위)를 말한다. 그리고 교양Bildung에는 Bild(image; 상像)이 들어 있다. 라틴어에서 파생된 '형태를 갖춘'informare, 고대그리스 form이란 모양morph, 모양을 빚는자morphai, 모르핀morphine이고, 가다머는 Bidung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formatio(형성)이라고 설명한다. "Bildung{교양; 라틴어 eruditio는 교육.학습.지식.학식}에 해당하는 라틴어는 formatio(형성)이고, 외국어에서, 예컨데 영어에서 이에 상응하는 것은 form과 formation이다. 독일어에서도 forma 개념의 파생어들, 즉 Formierung과 Formation이 있는데, 이것들은 오랫동안 Bildung이라는 낱말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진리와 방법」" 형성(형상 형形 이룰 성成)이란 헤겔의 절대정신(absoluter Geist, absolute spirit)이다. 느끼고 깨닮는 감각5은 어떤 형태를 갖추어informare 형성formatio, 즉 종이 된다. 그리고 사변을 통한 직관은 (아직은 막연하나) 지식을 기초로한 순수이성에 의하여 인식하고 절대정신으로 설명된다. Gaia, from legend to myth- 랑데부Rendezvous의 중심에는 중력이 있다. (이것은 개별적인 사실이고, 402-, 우리는 중력의 원리Principia를 이끌어내야 한다.) 색空이 공간을 휘게 만든다. (중력장.) 현상이 형상을 얻으면 공空의 새로운 장의 공간(토포스topos)은 휘게된다. ¨그리고 살아가는 슬픔, 아름다운 기쁨. 거센 파도는 새하얀 포말들을 개워낸다.¨ 가다머의 세계-내-존재In-der-Welt-sein는 이해Verstehen다. "그렇게 보면 어떤 형태의 이해든 간에 이해를 하는 사람은 어떤 가능성을 향하여 자기 자신을 기투한다고 할 수 있다. 이해라는 것은 현존재의 근원적인 실현형식, 세계-내-존재이다. 「진리와 방법」" 독일어에서 이해Verstehen라는 것은 어떤 일을 해낼 수 있는 능력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에 대한 "가능성"이고, 기투Entwurf란 '현재를 초월하여 미래에로 자신을 내던지는 실존방식'이다. 예컨데 살아간다는 것은 형식(형상 형形 법 식式)을 의미했고, 「우리는 함께 있다」는 것은 내용(지평Leerhorizont, 가다머; 형성形成)이었다. "(언어는) 자신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는다. 대신에 어떤 것과 관련해서 탄생한 그 지식에 대한 전체를 갖는다nihil de suo habens, sed totum de illa scientia de qua nascitur. 「진리와 방법」" 언어는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형식이다. 그리고 나아가 정신을 형성한다.

 

가다머는 (전자electron의) "현상"(나타날 현現 코끼리 상象)을 알고자 관찰하는 이유를 되집어 보고자 한다. "질문을 한다는 것은 문제를 보는 시야를 열어둔다는 뜻이다. 그리고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가 미지의 가능성으로 열려 있다는 것은 해답 역시 미리 정해져 있지는 않다는 뜻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도 결정적 판단을 내리기 전까지는 불확실하다. 물음의 핵심적 의의는 이처럼 과연 무엇이 문제인지도 의문인 채로 열어두는 것이다. 예: 플라톤의 대화편들, 「진리와 방법」" 물음의 본질은 현상에 대해서 제시되는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이다. 시선에 주어진 형상은 현상의 현현(본질적인 것이 외적으로)이다. 의의-, 사진을 찍는 이유는 "형상"을 얻고자 함이다. *가다머는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서로를 이해하는 것을 뜻한다'는 명제에서 '서로를 이해한다는 것'을 '상대방의 생각 속으로 들어가서 이해한다는 것'(상대가 되어 상대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것)으로 해석Hermeneutics한다. 이 텍스트의 헤겔적 해석은 이 상황이 이미 경험을 넘어 사변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헤겔의 언어로 예술은 앎의 가상이다. "경험적인 것은 그것을 종합적으로 파악하면 사변적 개념이다. 헤겔" 휨의 현상을 보는 것, 예술이 가상을 산출하는 것이 헤겔의 "표상의 표상"이다. "그려진 사자는 우리에게 표상의 표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헤겔" 예컨데 추상적인 형상이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는 것, "이념(선.진.미)의 감각적 현현, 헤겔"이 바로 현상이다. "내용은 사상이며, 형식은 감각적인 것, 형상적인 형태이다. 헤겔" 살아간다는 것은 형식이고 감각적인 것이며, 공즉시색, 느끼고 깨닮는 감각은 어떤 형태를 갖추어 형성되는 것, 곧 형상적인 어떤 형태이다. (낭만적인 자기-내-존재das Insichsein로 부터) 세계-내-존재는 내용이자 사상이며, 따라서 현상이 형상을 얻는 과정인 예술은 (인륜적인) 생래적 "정신"을 통해서다. 헤겔은 자유로운 예술가A Ս B를 형상적bildend이라 하고, 상징적 예술가Ac Ո B = B \ A를 상상적einbidend라고 규정한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표상과 더불어 형상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여기서 자유로운 예술가는 "우리에 대해 현상하는 것이므로" 즉자대자적이고 완결적이다. 그러나 상징적인 예술가는 "내용"을 표현하기 위해 상징Parole을 사용함으로써 자신을 한정짓지 못하고 상상에 머문다. 생각나는 상상이 이상ein Ideal으로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 4차원에서 초입방체 테서랙트를 보는 듯, 관찰자는 머리속에 그려지는 형상으로 상징Langue을 말할 뿐이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은 A △ B 전제 하에 단독적인 Ac = U \ A  A Ո B 이다. (A Ո B 는 Justice다.) 헤겔은 엔치클로페디에서 정신이란 "정지해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절대적으로 동요하는 자요, 순수한 활동"이라 밝혔고, 피히테 역시 존재는 "행위하는 자인 동시 행위의 산물"이자 "활동하는 자인 동시 활동에 의해 산출되는 자"라고 지적한다. (로타 엘라이는 피히테의 코기토는 바로 "사유의 사유, 자기에 관계하는 활동"이라고 덧붙인다. 피히테는 나아가 사유가 없다면 존재도 없으며 교차관계인 둘은 동시에 존재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사유의 사유"는 일반적인 사유가 아닌 "존재의 사유"다.) 피히테가 「전 학문론의 기초」에서 언급한 첫번째 동일성의 원칙은 A = A 이고, 두 번째 근거의 원칙은 -(-A) = A 다. A를 나(자아)라고 하면, 비아(나 밖의 모든 것)가 아닌 것은 바로 나다. 세 번째 '자기의 형식에 따라 제약된 원칙'은 "자아로서 스스로 활동적인 자아"이자 현상이고 형상이다. 현상을 보는 A는 형상을 얻는다. 그리고 (시간이 있고 칸트의 순수이성에 따라 순수정신이 있고,) 형상은 반드시 표상되므로 A Ո B 는 성립된다.

 

현상 형상이다. "바다는 바다이고, 공기는 공기이며, 달은 달이다. 헤겔" 그럼 "내가 나비인가. 나비의 꿈胡蝶之夢" 색불이공色不異空,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다), 관자재보살. 슈뢰딩거는 무엇을 보았나5. 뉴턴의 "아름다운" 운동법칙에 따라 4차원 두 물체가 충돌하여 주고받은 충격량의 합은 0이어야 한다. 라이프니치에 따라 "어제를 등에 업고 내일을 뱃속에 넣은 오늘" 우리의 상像은 추론에서 직관6으로 84.5%를 가늠하고 있다. 추억은 상.쾌.했던 관성의 그림자다. (여기서 상上은 객관적이다.) 우리는 달을 보고 있지 않으면서 월광 소나타에 취되어 있다. 쑥-대강이 '전전반측 잠 못 이뤄 호접몽을 어이 꿀 수 있나'. 이상(다스릴 이理, 생각 상想)이란 꿈꾸는 것이다. 현상과 형상 사이 교량이 인연생기因緣生起다. 불확실성에서 플라톤은 (되려) 질문한다. ¨불재하처(떨칠 불拂 있을 재在 어찌 하何 곳 처處)? 자, 견지망월(볼 견見 손가락 지指 잊을 망忘 달 월月)? 다시, 달은 달이다.¨ 공중무색空中無色이란 공 가운데 색이 없다는 것이다. 다시말해 아무 것도 없는 무색色인 상태空다. 그러나 이러한 즉자존재(데미안의 아브락사스, 즉 자기 충족적인 존재)를 관찰함으로써 인연이 맺여져 휨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피히테가 설명하는 인간의 언어는 가다머와 다르지 않다. 가다머는 언어가 "모상"에 가깝다 했고, 피히테는 언어란 초감각적인 감각을 포착한 인간이 상대에게 전달하는 "일종의 감각적 그림"이라 설명한다. 피히테가 말하는 "초감각적인" 감각이란 물은 물이고, (물은 수소와 산소이며), ether, 즉 "이 감각"은 물과 불과 공기와 흙이라는 것이다. 형상形象- "이 그림이, 학생들 자신의 독립된 활동에 의해 작성하되 결코 수동적으로 파악된 것이 아니고, 또 학교에서 배운 것을 모사한 것이 아닌가 하는 여부를, 또 그 그림이 명확성과 생명으로 승화되어 있는가의 여부를, 이 교육이 앞서 다른 문제에 대해서 동일한 방향에서 정확한 판단을 내린 것과 같은 방법으로, 충분히 결정할 수 있을 것이다. … 우선, 이 인식이 실제로 ¨참다운 사랑¨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 영원히 상주할 ¨촉감각적 세계 질서의 그림¨도, 마찬가지로 학생의 독립 활동에 의해서 그의 마음속에 그리게 하여 그로 하여금 그 필연적인 성질을 깨닫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 이데(Idee, 이념)는 독일어의 게지히트(Gesicht, 환상, 환영)과 동일한 감각적 그림을 나타내는 것으로, 루터가 성서의 번역에서 '너희는 환영을 볼 것이다. 너희는 꿈을 꿀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상징¨이다. 독일국민에게 고함, 피히테" 여기서 (기수는 현상을 보여주고,) 학생은 "교양"morpheme을 배운다.

 

야스퍼스는 운동(분열) 속에서 생겨나는 모든 것은 "현상"現象일 뿐이며, 색은 형상形象을 위한 것이고, 객관적으로 파동, 즉 현상이 있을 뿐이라고 해석한다. "색깔은 객관적인 것이 아니라 전자파가 감각기관에 작용함으로써 주관적 현상으로서 나타나는 것이다. 객관적으로는 다만 파동이 있을 뿐이며 세계 자체는 색도 없고 빛도 없다. 야스퍼스, 철학학교" 물질 표면에 들어나는 색은 빛이 물질을 통과할 시 자신이 가지고 있지 않은 색을 흡수하고 반사하는 나머지 색을 말한다. 우리는 빛의 파장이 가시광선400-700nm 안에 들을 경우 시각을 통해 물질이 반사하는 색으로 사물을 구분하고, 촉각으로 볼 수 없는 자외선과 적외선 또한 느끼며, 청각으로 소리의 파동을 감지하고, 후각과 미각을 동원해 신경이 물질을 감지하여 만든 전자파장을 뇌로 보내 상像을 떠올린다. 따라서 존재란 색, 야스퍼스의 말대로 주관적인 대자존재이며, 빈 것이 곧 물질色이다. 색불이공色不異空이란 색이 곧 공이요, 공이 곧 색이라는 것, 달리 말해 물질form이 아니라면 그것은 빈 것, 공空이다.

 

"신들조차 그 순간을 체험하기 위해 스스로 영원한 행복을 버리고 인간이 되지 않았던가? 빌헬름 마이스터 수업시대, 괴테"

 

403

Monad1, 뉴턴은 백광실험을 통해 빛(emptiness)이 색(form)을 만들고 물질(form)이 모여 다시 성질(emptiness)이 된다는 것을 깨닮는다. (반야심경에서 이것을 백즉시색 색즉시백이라 한다.) 삶의 항상성은 우리에게 주어진 현재, 끊임없이 알고자 자신을 재촉하는 오늘이다. 시간은 “각”5(깨닮을 각覺)이 기지개를 펴는 듀이의 “경험”「경험으로써의 예술, 듀이」이 제시한 아름다움에 반비례한다. 여기서 경험이란 꽃이 씨앗「단자론monad, G. W. 라이프니츠」에서 아름다움을 피워내는 것이다. 시간을 살아가는 생生은 망각과 각성을 오가며 (특수상대성 이론에 따라,) 수축하기도 팽창하기도 한다. 각에는 특수감각과 일반감각이 있다. 특수감각이란 빛 에너지를 감지하는 1시각, 압력 에너지를 감지하는 2청각, 화학 분자를 감지하는 3후각, 그리고 분자 에너지를 감지하는 4미각이다. 일반감각이란 표면감각, 장기감각, 그리고 평형감각을 말한다. 쉽게 촉각·압각·온각·냉각·통각, 공복감·오심·장기통각, 회전·가속도·직선 가속도 등이다.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 중 「기억의 지속」에서 녹아내리는 시계는 각성으로 내일을 쫓는 욕망에 따른 어제의 구속과 촉박함을 풍자한 망각의 기이함을 토로한다. (이것을 아인슈타인의 ‘시간의 왜곡’이라고도 한다.) 유년은 아득하기만 하다. 유년이 느리게 흐르는 것을 개화에 비유할 수 있다. 그것은 마치 경쾌한 요한 스트라우스의 「봄의 왈츠」와 흡사하다. 사물이 극단에 이르고 “마땅히 지켜져야 할 이치”, 곧 “마땅히 와야할 세상”은 필레보스의 한정되지 않은 것to apeiron이 한정자to peras를 통해 정의로워지는, 유년의 각이 기지개를 펴는 것이다. 연륜이란 직관이 관성으로 거듭나는 자유로운 것이고, 노년의 추억은 상”쾌”했던 관성의 그림자다. 라이프니츠는 이것1을 “어제를 등에 업고 내일을 뱃속에 넣은 오늘”이라고 말한다. 삶은 현실적인 의식actuel과 잠재적인 무의식virtuel이 “뒤틀린 목재”다. 삶은 앎을 향해 스스로를 복제한다. 각은 다시 “현상”되고 의식과 무의식의 과정으로부터 “형상”을 얻는다. (“현상”에서 “형상”이 플라톤의 우주적 속성, 즉 내재적 편향이다. 생물학적 결정론은 이것1에 내재적 편항이 있다고 하지만 DNA의 ACGT염기배열은 무작위이며, 오히려 양자정보 처리에 가깝다는 것이다. 물론 형상은 현상으로의 ‘확률 밀도 함수’를 소지하고, 관찰자는 ‘침묵한 유전자gene silencing’에서 변이를 발견한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슈뢰딩거는 유전자 분자에 ‘양자도약’이 일어날 때 돌연변이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물리학의 ‘양자도약’, 또는 전이transition란 원자나 분자가 불규칙적이고 불연속적이며 불확실하게 광자에너지5를 흡수하거나 방출하는, 즉 “테아이테토스의 흰 것”인 경우다. 다시말해 에너지의 흡수나 방출이 시간의 경과에 따라 연속적이며 완만한 경사를 이루지 않고 계단을 뛰어넘듯이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앎에 가까워질수록 시간은 제각기 왜곡된다. 황혼에 추억을 생각하는 나는 더 이상 생각나지 (Primer) 못하고 결국에 “나”를 정의한다. 프루스트의 다시 고쳐야 하는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처럼 대자존재로써의 “나”의 (가능성이라는) 정의는 무엇인가를 기억할 때 처럼 미묘하게 ‘재고착’(프로이트의 소급작용)하는 기억의 뉴런 구조다. 앎ATP이 없으므로 동화작용이 없고, 라이프니츠의 내일은 이화작용하지 못하게 된다. 【DNA 정보는 우선 RNA 형태로 전사되며, 그 후 단백질 형태로 번역된다. 그 단백질 분자가 우리다. 외가닥 RNA는 산소-OH를 하나 더 가지고 있어서 화학적 반응이 DNA보다 높고, 불안정하므로 변이가 쉽다. 그러나 이중나선 DNA는 반대사슬이 상보적 정보를 가지고 있어서 손상시 본원될 수 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생명이란 데옥시리보 핵산에 새겨진 생득적 “관성”으로써의 특수감각과 데옥시리보 핵산에 새겨진 생득적 “관성”으로써의 일반감각이 일상에서 얻은 “정신” 교육과 습득으로 발달하는 “정신 속에 자기 몸을 던져서 실체 그 자체로 춤출 수 있는”, “나”의 “가능성”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나의 가능성”을 품은 생명은 린 마굴리스와 도리언 세이건이 말했듯이 “피할 수 없는 열역학적 평형의 순간(죽음)을 무한정 연장하기 위해 자신의 방향을 선택할 수 있는 거칠고 난폭한 물질”이다. 한편 ‘역열학적 평행상태’의 미소입자는 브라운 운동에 따라 액체나 기체 분자와의 충격에서 오는 불균형으로 불규칙한 운동을 하게 된다. 열에너지를 통한 상전이phase transition와 광자에너지를 통한 양자학적 전이transition가 있다. 그리고 생명에너지를 통한 생물학적 천이Ecological succession가 있다. 전이transition에는 열에너지, 화학에너지, 전기에너지, 소리에너지, 혹 빛에너지가 필요하다. 

“앎”은 정의horismos(분리하다, 나누다, 경계를 갖게 하다, 묶다, 즉 운동)되어야 하므로 기로Double-slit에 놓인 삶은 “그것이 존재하는 것이거나 존재하지 않는 것이거나, 또는 존재하면 존재하지 않는 것, 아리스토텔레스”이라고 주장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존재하지 않는 것”도 “존재하는 것”만큼이나 “실존”하고, “비존재”가 “비존재”이고 “존재”가 “존재”라면 사물들은 “존재하는”esti 만큼이나 “존재하지 않는 것”ouk esti이라 한다. (있다esti, 있지 않음ouk esti) 화엄일승법계도에서 이것을 일중일체다중일 일즉일체다즉일, 즉 일체가 하나에 들어가고 하나가 일체에 들어간다고 말한다. 이에 파르메니데스의 말을 빌어 슈뢰딩거 왈, 어떤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입자이거나 파동이거나, 입자가 입자이고 파동이 파동이며, 또는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 말이 상대론적 시각에서 오늘이라는 것이 어제이기도 내일이기도 하다는 것만큼 애매한 것이고, 사실 지“각”하는 것이란 물질의 흐름flux 속에 형성되는 관성일 뿐이라는 것이다. 참으로 쉽고도 애매한 것은 존재하는 현상에서의 존재하지 않는 형상이다. (소크라테스는 이데아를 낮에 비유하면서 서로 다른 곳에 존재하는 두 개의 양자가 동시에 존재할 수 있음을 파르메니데스에게 손쉽게 증명한다. 그럼 이데아, 즉 선 자체, 아름다움 자체, 정의로움 자체가 대상에 참여되는가 아니면 분리되는가. 주위 기울여야 할 것은 파르메니데스가 제기한 참여나 분리가 아닌 현상과 형상 사이의 "각"이다.)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에 따라 (테아이테토스의 척도, 즉) 한정성이 “존재의 조건”이 되는데, 경계가 명확한 것은 오직 “앎” 뿐이다. 이것으로 이사도라 덩컨 춤의 두가지 모형, “정신 속에 자기 몸을 던져서 실체 그 자체로 춤출 수 있는 디오니소스”와 “무용의 정신을 말없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자로 춤출 수 있는 {열역학 제1법칙; 고립계 내에서 에너지는 사라지지도 생겨나지도 않지만 그 형태는 바뀐다} 아폴로”가 설명된다. 디오니소스적 생각나기(미리 예豫 느낄 감感6)는 '현실속 상상이 환상으로 이상'을 아폴론적 생각하기(돌아올 회回 생각 상想 , recall)다. 나쁜 사자는 없다, 그러나 장미가시에 찔려 죽은 시인은 있다. “장미여, 아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그 많은 눈꺼풀 아래에서 누구의 잠도 아닌. 릴케” 

색은 물질의 속성이 아닌 우리의 지각이 만들어낸 속성이다. 산란된 빛은 망막에 3원색의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추상체와 간상채의 색소 물질에 화학 반응이 일어나 물리적 신호가 뇌신경에 전달되는 것으로, 우리는 이를 통해 자연의 “미”를 판단한다. 은빛에 비춰진 줄리엣의 진심을 보고 확신에 가득찬 로미오는 “축복받은 저 달을 두고 맹세”하기도 한다. 이같은 은빛, 비록 흡수되지 않고 산란된 색, 자연이 겉으로 들어내는 색깔을 향유자의 관점에서 “미”라고 한다. (관찰자는 아름다워지고자 하는 자연 현상을 아름다운 형상으로 간직한다. 분명 그에 대한 그의 신념은 사치다.) 듀이는 향유자에게 비춰진 (야누스의 일각,) 이와같은 활동을 ‘자연의 극치’라고 설명한다. 향유자는 아테나의 푸른 눈과 성스런 화한을 쓴 데메테르의 기태를 목격하기도, 황금의 날개를 지닌 이르스의 몸짓과 판의 자연 모든 형태와 테르프시코레의 자연스러운 현상에 주시한다. (참고: 무용에세이, 이사도라 덩컨) 이러한 향유자의 활동이 바로 “취미”다. 단지 취미를 통해 자연의 입자성이 획득되면 물질의 파동성은 붕괴하고 만다. “요리에서처럼 명백히 탁월한 솜씨는 요리사의 것이지만, 이와 반대로 취미는 [예술을 향유하는 자]의 것이다. 경험으로써의 예술, 존 듀이”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 삶을 살아가는 것, 곧 매개변수, “눈과 짝을 이루어 색깔을 낳는 것은 흼으로 가득 차게 되어 그 역시 흼이 아니라 흰 것, 테아이테토스”이 된다. 흼에서 가시광선으로의 상전이相轉移가 흰 것이다. 

무엇의 현저성salience이란 어떤 현상이 무엇보다 두들어지고 독특하다는 것이다. 현저성이란 해양생물학자 레이첼 카슨이 지적했듯이 빛의 역동적인 순간을 담은 모네의 「인상: 해돋이」와 같은 것이다. “사슴{현저성}을 ‘보호’하자는 캠페인, 포식자가 사라지자 사슴은 급속도로 증가했고, 곧 사슴의 먹이가 바닥나버렸다. 먹을 것을 찾아 나선 사슴은 나무의 새순까지 뜯어먹었지만 먹을거리는 계속 부족했고 포식자에게 잡아먹히는 수보다 굶어죽는 수가 더 많아지게 되었다. (...) 문제는 우리가 천적 구실을 하는 동물을 모두 죽인 후에야 비로소 그 동물이 맡고 있던 조절 기능을 깨닫는다는 사실이다. 침묵의 봄” 그리고 현저성에 의한 감상(느낄 감感 형상 상像)은 다다dada(취미)로 이어진다. 우리는 감상感賞(느낄 감感5 상줄 상賞)하고, 감상感想(느낄 감感5 생각 상想)을 적고, 감상感像에 빠진다. 중요한 것은 앎을 향하는 삶이 과연 아름다울 수 있느냐다. 취미라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향유자의 관점이고, (자정능력이란,) 향유자가 형상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듀이는 향유자의 관점이 바로 ‘취미’라고 말한다. 그리고 푸르스트는 향유자로써 (문학의) 맛을 형상화taste한다. 【후각은 화학분자를 감지하고 미각은 분자 에너지를 감지한다. 프루스트가 마들렌에서 얻은 후각과 미각은 해마 조직에 각인된 지워지지 않는 흔적이다. 프루스트는 그것을 빛 에너지로, 청자는 거기서 압력 에너지를 감지한다. 기억이 조정되는 곳은 신경돌기들이고, ”각”을 통해 소환된 기억은 CPEB로 기억을 변형시킬 수 있다. 전사 RNA들은 신경돌기에 있고 이것이 활성화되면 기억은 변경된다. 이 전사 RNA를 활성화할 수 있는 세포가 CPEB 단백질이다. (인용.참고: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 조나 래러)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나의 몸 안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깨닫고, 뭐라고 형용키 어려운 감미로운 쾌감이, 외따로, 어디에서인지 모르게 솟아나 나를 휩쓸었다. 그 쾌감은 사랑의 작용과 같은 투로, 귀중한 정수로 나를 채우고, 그 즉시 나로 하여금 삶의 무상을 아랑곳하지 않게 하고, 삶의 재앙을 무해한 것으로 여기게 하고, 삶의 짧음을 착각으로 느끼게 하였다. 아니 차라리 그 정수는 내 몸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나 자신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범용한, 우연인,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존재라고는 느끼지 않게 되었다. 어디서 이 힘찬 기쁨이 나에게 올 수 있었는가?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다다소퍼Dadasopher라는 애칭을 얻은 라울 하우스만의 ‘소리-시’ 「ABCD」는 청각적인 요소를 시각적으로 형상화 했다. 【온실가스란 수증기(즉 구름), CO2, N2O, CH4, 오존O3, CFC를 말한다. 지구가 평균 14-15도를 유지하는 이유는 온실가스가 태양복사를 흡수하고 지구복사도 흡수하기 때문이다. “지구가 발하는 적외선을 지구복사라고 하고, 복사란 ‘빛처럼’ 공간을 가로질러 열이 전달되는 방식”이다. (우주의 평균 온도는 -270도다. 일교차가 심한 날은 구름이 없고 건조해 온실효과가 없다. 예로 사막은 밤에 춥다.) 탄소배출권 거래란 공장이 많은 나라(또는 기업)가 공장이 적은 나라로부터(혹 환경을 개선시킨 나라나 기업으로부터) 배출 권한을 사는 행위다. 온난화의 가장 큰 원인은 구름과 CO2이며, 온실가스가 늘어 기온이 상승할수록 바다와 강은 더 많은 양의 수증기를 생산한다. 이 과정에서 공기 기둥의 무게가 다른 ‘연결된 두 장소’의 기압차로 바람이 형성되고, 자전 또한 이 복잡계에 한 몫을 거든다. (에베레스트 산 0.33기압/364hPa, 지표면 1기압/1013hPa) *참고: 기상 구조 교과서 - 후루카와 다케히코, 오키 하야토 저.신찬 역】

무의식은 의식에게 상징(코끼리 상象, 부를 징徵)을 준다. 전체적 이데아(‘입자’나 ‘파동’이 아닌 ‘입자와 파동’)에서의 상은 “하나가 동시에 하나이자 여럿이며 하나도 아니고 여럿도 아니며, 139d, 파르메니데스”, 시간에 참여하는 물질은 운동하고 존재한다. 형상(무의식)은 존재하지 않고, (늘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므로,) 현상(의식)은 관찰된다. (우리가 정의하는) 인류에게 (무의식은 언제나 존재했고,) ‘의식’은 이제 막 깨어난 새로운 것이다. 인류는 코기토 전에 즉자였다. “의식은 자연이 최근에 새로 손에 넣은 것이라서 아직 ‘실험적’ 상태에 머물러 있다.... 이른바 문명화된 의식은 기본적인 본능으로부터 점점 분리돼 버렸다.... 따라서 본능은 신경증에 수반되는 생리적 증상, 설명하기 어려운 기분, 갑작스러운 망각 현상, 뜻밖의 말실수 등등 여러 모습의 돌발 사태로 나타난다. 카를 구스타프 융” 융이 설명했듯이 무의식을 통한 망각은 관성(버릇 관慣, 성품 성性)에서 각성을 향할 “의식에 새로운 인상과 관념(볼 관觀, 생각할 념念)이 들어설 여지”를 남겨주는 유익함이다. (비록 그것이 유익하다면.) 잠재적으로 이미 주어있는 것을 깨닮는다는 것이 취미다. 「자연학 소론집」, 아리스토텔레스 말이, 감각한다는 것은 배움의 행위가 아닌 앎의 실행이다. 감각은 현재고, 감각은 생각하기다. 감각이 제공하는 것이 ‘미’고, 감각은 의식이다. 무감각하다는 것은 망각되어 버린, 의식하지 않는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배움의 행위이자 미학이고 생각나기다. 유리알 유희(놀 유遊, 놀 희戱)의 장인은 현상을 표현하는 특출한 재능과 현상의 성질에 대한 “특이한 감수성”을 갖춘 생산자이고, 그에 취미를 얻는 것은 향유자의 몫이다. 의식을 무의식에 심는 반복은 장인을 낳는다. 다윈과 과학의 증언이 맞다면 장인은 무의식을 문명과 바꾼 것이다. 【진흙탕을 좋아하는 코끼리는 수생 조상이 있다고 한다. 한편 인류의 조상을 바라보는 주류의 시선은 사바나 가설이 정설이라고 확신한다. 그런데 정설을 부인하는 수생 유인원 가설이 있다. 인체의 체액 화학적 성분의 비율은 바닷물과 비슷하고, 해양에는 우리 뇌가 필요로 하는 도코사헥사에노산DHA, 오메가 6, 그리고 오메가 3이 풍부하다. 유인원에게 털은 온도 유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현존하는 원숭이와 유인원 193종 중 유일하게 인간만이 털이 없다. 인간은 다른 포유류에 비해 지방이 10배나 많다. 어린 포유류는 체온 저하를 위해 갈색지방이 많은데, 아기는 3-4월 사이에 모든 갈색지방을 백색지방으로 변환시킨다. 이같은 백색지방은 해양 포유류에게 보온과 부력 유지를 제공한다. 다원이 주장하는 우유성 진화의 과정은 “자연선택”이다. 우주배경복사가 우주팽창을 설명하므로 자연은 현재까지 그냥 흐르는 것이고, 존재는 ‘변이’라는 주사위를 이제껏 무수히 던져왔다. 그럼 “유인원”에 속한 “인류”를 돌아볼 때 작지만 “수렴진화”가 보이고, 시간을 거슬러 생명이 처음부터 다시 주사위를 던질 수 있다면 생명의 설계가 필연임을 확인할 수 있겠다. [“사이먼 콘웨이 모리스의 관점에서 보면 수렴진화는 진화가 특정 생태적 조건에 적응해야 할 필요성에 의해 거의 예측 가능한 경로를 따를 때가 많았다는 의미다. 이것을 바꿔 말하면 진화는 적응 공간을 탐험하면서 똑같은 생태적지위niche를 여러 차례 걸쳐 다시 발견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의 「진화의 주문」에는 먹이 섭취, 걷기, 헤엄치기, 날기에 필요한 기관뿐만 아니라 시각, 후각, 미각, 청각 같은 감각을 만들어내는 기관까지 다양하게 포함되어 있다. 그의 요점은 수력학, 광학, 음향학 같은 물리적 제약들이 특정한 생태적 지위에서 생명체들이 마주하는 문제에 대한 성공적인 해법의 가짓수를 제한하기 때문에 진화는 이런 해법들을 여러 번 반복해서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본능 - 케네스 밀러” 곧  케네스 밀러의 결론은 생명이란 “생명의 궁극적 잠재력, 즉 자기 자신에 대한 앎을 체화한 존재”라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다면 생명은 생물학적 지적 평등의 조건을 갖춘 셈이다.] 한가지 조건은 인류의 “지금”이 the moment이여야 하고, 그것을 확인할 방법은 화석으로 남은 공룡일지도 모른다. “혼돈, 순전한 우연, 돌연변의 주사위와 ‘유전적 부동’의 포커스”라는 기무라 모토의 중립 진화 이론에 첨가되지 않은 변수는 다윈이 말했듯이 “자연선택이 종의 변에 주된, 하지만 독점적이지는 않은 수단”, 곧 “의식”悟性인지도 모른다. ‘모든 길은 로마via Salari로 통한다.’ *인용.참고: 호모 아쿠아티쿠스 - 일레인 모간, 하얀 황금, 소금의 경제사 - 홍익희, 소금의 미래를 열다 - 채점식,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 조나 래리】 “진화란 오히려 방랑하는 한 예술가와 비슷하다. 그는 세상을 떠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서 실 한 가닥, 깡통 한개, 나무 한 토막을 주어 그것들의 구조와 주위 사정이 허락하는 대로 그것들을 합친다. 그가 그렇게 합치는 데는 특별한 이유가 없다. 그저 그렇게 할 수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그가 떠돌아다니면서 서로 어울리게 연결해놓은 부분들이나 형태들로부터 온갖 복잡한 형태들이 생겨난다. 여기에는 어떤 계획도 없으니, 그저 자연스럽게 표류하는 가운데 생겨날 뿐이다. - 앎의 나무, 마투라나”

상(코끼리 상象)은 육서의 상형이다. 인(사람 인人)은 육서의 지사다. 상형은 형태가 있는 물체의 형상을 본뜬 글자이고, 지사는 점과 선을 이용해서 “상징”(코끼리 상象 부를 징徵)되는 부호로 만든 글자다. 인人과 상象이 회의(모일 회會 뜻 의意)하여 만든 것이 형상 상像이다. 형상(형상 형形, 코끼리 상象)을 본뜨는 것이 현상(나타날 현現, 형상 상像)되는 것이다. (þ = th in Ireland, þe = ye & þū = thou) 우리가 어떠한 상象을 볼 때 우뇌는 언어를 이해하고 좌뇌는 언어를 분석한다. 우뇌는 빛의 파장을 지각(400-700nm)하고 좌뇌는 고뇌(30-45Hz)하는 것이다. 무의식 상태에서 뇌파는 0.2-3.99Hz이다. 흥미로운 것은 주파수f(Hz)는 파장λ(nm)과 역수의 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인용.참고: 글자풍경 - 유지원, 나는 내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 - 질 볼트 테일러) 【우리가 볼 수 있는 가시광선 파장은 400-700nm이고, 볼 수 없는 적외선은 780-1,000nm이다. 자외선은 100-400nm이고, 라디오 전파는 100,000,000,000nm(100m)이다. FM은 주파수가 높고 파장이 짧으며, AM은 주파수가 낮고 파장이 길다. 음파 주파수f(Hz)(진동수)가 높다는 강음은 파장λ(nm)이 짧고 진폭(파도의 출렁임 높이)의 차가 크며, 발음시간이 짧다. 의식 상태에서 고뇌한다는 것은 뇌파(진동수)가 높음을 의미한다. 음파 주파수f(Hz)(진동수)가 낮다는 약음은 파장λ(nm)이 길고 진폭의 차가 작으며, 발음시간이 길다. 무의식 상태에서 명상한다는 것은 뇌파(진동수)가 낮음을 의미한다. 우리가 들을 수 있는 주파수는 대략 100~8000Hz(29979245.8-37474.05725m, 100m = 100,000,000,000nm)이다. 두 파장을 비교하면 전체 감각 비율 87%를 차지하는 시각 파장이 400-700nm, 전체 감각 비율 7%를 차지하는 회화영역의 청각 파장이 3,000,000,000-37,474,057,250,000nm이다. 두 파장 간에 큰 차이가 있고 음파는 매질(공기나 물)이 있어야 한다. “사방의 지역마다 자연의 풍토가 다르다. 따라서 지역마다 사람의 발성과 호흡도 달라진다. 그러니 언어가 달라지고, 이에 따라 글자 또한 서로 달라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억지로 같게 만들려고 하면 조화에 어긋난다. 구텐베르크 1398년경-1468” “그리고 국어란 그대로 문화의 체계이기 때문에 각각에 국어에 의해 사람들을 둘러싼 세계의 사물에 관한 분류 방식, 절취 방식은 반드시 같은 것은 아니며, 따라서 세계를 파악하는 방식도 달라지게 된다. 토포스, 나카무라 유지로” “정음(바른소리라는 뜻)은 글자의 모습과 소리가 이탈되어 있는 상태{당시 한자가 통용되었고 구텐베르크의 말처럼 자연과 풍토와 지역을 고려해 음성과 문자, 즉 상징 또한 통합되는 것이 유익하므로}에서 다시 본연의 관계를 되찾아 주어 만물의 속정을 소통하는 소임을 하기위해, 세종대의 음성학 - 한태동” 세종(1397-1450)이 집현전(런던 왕립학회와 비슷)에서 만들었다. 정음(바른소리)은 집현전 학자들이 음성의 변화가 민감한 점을 고려, 인간의 음성구조에 정확히 대등되는 세피리(ㄴ, 2/3입인두 : 3/2성대), 향피리(ㅁ, 1입인두 : 1성대), 당피리(ㅇ, 4/3입인두 : 3/4성대)를 기준으로 만들었다. 쉽게 사람의 사상인 생각과 사고가 조음기관(발성기관)을 통해 조음기관의 모양을 상징하는 활자로 들어난 것이 정음이다. “‘ㄱ’은 [K]소리를 낼 때 혀뿌리가 목구멍을 닫는 꼴을, ‘ㄴ’은 [n]소리를 낼 때 혀가 윗잇몸에 닫는 꼴을, ‘ㅁ’은 입술소리[m]을 내는 입의 모양을, ‘ㅅ’은 [s]소리를 내는 이의 모양을, ‘ㅇ’은 [0, zero]의 소리값, 즉 목소리를 내는 목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물‘ㅇ’ → 나무,싹‘ㆁ’ → 나무,비탈‘ㄱ’ → 나무,성장‘ㅋ’ → 나무,노장‘ㄲ’. 하늘과 땅이 처음 사귄다는 의미의 ‘ㅗㅜ’, 하늘과 땅의 작용이 사물에 피어나되 사람을 기다리는 의미의 ‘ㅓㅏ’ (‘·’ 하늘을 본뜸, ‘ㅡ’ 땅을 본뜸, ‘ㅣ’ 사람을 본뜸) *정음은 표음문자이지만 활자의 상징에서 표의문자가 된다.}” *참고.인용: 세종시대의 국어학 - 김석득 (음성이란 둘숨과 날숨을 통해 형성된 폐기압이 호흡기관과 성대를 지나 이동하다 생겨나는 것, 즉 폐에서 들숨을 통해 압축된 공기가 날숨으로 기관을 지나-기압의 차이가 생겨-벽을 진동시켜 폐기압이 생긴다. 음성학에는 양순음, 순치음, 치음, 치조음, 치조경구개음, 경구개음, 연구개음, 후음이 있다.) [‘바른소리’ 정음이 갖는 문자로서의 특징은 크게 도상성, 자질성, 비선형성이다. 도상성이란 해당 글자를 발음할 때 그것이 발음기관의 모양과 상관관계에 있다는 것이다(따라서 형상에서 현상으로써의 상징의 낮은 오차값을 얻는다). 자질성이란 비슷한 음소(자음과 모음)들이 비슷한 모양을 가지고 있다는 것(ㄱㅋㄲ, ㄴㄷㄸㅌ, ㅁㅂㅃㅍ, ㅅㅈㅉㅊ, ㅇㅎ, ㅣㅓㅔㅖㅏㅑㅐㅒ, ㅡㅜㅢㅟㅝㅞ), 다시 말해 배워야 할 글자수가 적다는 것이다. 비선형성이란 사각형 안에 “모아쓰고” “모아 읽기” 때문에 누구나 쓰기 쉽고 읽기 쉽다는 것(인간의 시각은 극히 제한적이므로)이다. 과학이 그렇듯 정음의 창제 배경에는 음절문자인 한자, ‘네모난 글자’라는 명칭의 몽골어(즉 파스파 문자), 자음자와 모음자가 비선형적으로 결합하여 음절을 이루는 인도 산스크리트어(음소음절문자), 그외 위그르 문자, 페니키아 문자가 거론된다. *참고.인용: 일반문자학에서 바라본 훈민정음 -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강음은 강한 빛(자외선, X선, 감마선)처럼 파장이 짧다. 그러므로 언어-소리는 빛의 형태를 답습한다. 세종은 고유한 빛을 의식하여 고뇌했고, 그는 빛을 마시고 명상했으며, 그에 따른 합당한 ‘바른소리’를 적었다. “살아 있다면, 감각의 재능을 받았다면 그 누가 사랑하지 않겠는가. 그를 감싸고 펼쳐진 공간, 그 모든 찬란한 현상 중에서도 만물을 기쁘게 하는 빛을 - 그 빛깔과, 그 뻗어나감과, 그 일렁임을. 우리를 일깨우는 빛의 부드러운 편재를. 그것이 생명 가장 깊은 곳에 깃든 혼인 양, 휴식을 모르는 별들의 거대한 세계는 빛을 들이마시고, 그 푸른 물결 속을 춤추며 헤엄친다. - 불꽃을 품은 채로 영원히 쉬는 광물도, 헤아리며 흡수하는 식물도, 야성으로 불타오르는 다형의 동물도 빛을 들이마신다. - 밤의 찬가, 노발리스”】

“From the New World, Op. 95, 내게는 회백색으로 보여..... 내가 보기에는 황갈색이야. 하지만 다른 각도에서 보았을 때는 회색이었어. 「퍼스트 맨」” 아폴로는 고요의 바다에 하나의 조각배를 띄웠다. 그가species “누구든 그자체로서 온전한 섬”이 되었다. 열역학 제 2법칙을 수호하는 그에게 명분은 사소한 멍에의 핀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였다. 353, “‹우리가 달에 가야 할 이유는?› 인간이 달에 착륙했다가 돌아오는 게 이 우주비행의 ¨명확한 목적¨입니다.. 그게 ¨목표¨입니다. ‹우리가 달에 가야 할 다른 철학적인 이유는 없나요?› ..도전에 직면하려는 게 인간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내면 깊은 마음의 본질이죠. 연어가 강을 거슬러 올라가듯 우리는 이런 일들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퍼스트 맨」” 내재적 편향에서 우유적 속성을 지닌 것이 정념에 사로잡힌 인간의 본성이였다. 명분을 뺀 나머지가 의문 속에 고스란히 남겨졌다. 

말소리를 기호로 나타낸 문자가 ‘바른소리’ 곧 표음문자이고, 사물의 모양을 흉내내어 나타난 글자가 ‘기호’ 곧 표의문자다. 따라서 언어로 ‘시각적인 존재’가 표시되는 것이 ‘기호’signifiant이고, 언어가 ‘청각적인 존재’를 표시하는 것이 ‘바른소리’signifie다. 현존재Dasein에서 ‘바른소리’는 “들린 소리가 아니라 소리의 들린 존재, 데리다”다. 결국 ‘기호’는 시각적인 존재의 상象이다. 아즈텍인들의 표음주의적 기의와 프로이트의 무의식적 기표의 기로에서 논의될 것은 기표로 표시한 기의(그러나 표시될)와 기의로 표시된 기표(그러나 표시할)다. 루소는 이것을 기표의 놀이, ‘재현적 관념의 놀이’라고 설명한다. 관념이란 어디까지나 어떤 일에 대한 자신의 견해나 생각이며, 그로부터 비롯된 현상학적 은유는 ‘관념’像과 ‘관념의 대상’象 사이의 관계에 아무런 하자가 될 수 없다. 데리다가 「그라마톨로지」에서 밝혔듯이 “정념의 기표는 본래의 것”이고 단지 판단의 오류가 있을 뿐이다. 분명 그 판단에는 (파동성의 붕괴, 즉 취미로 인한 사유와 운동, 그 계기로 발화될 신경물질에는) 기억(혹 문자)에 의존하는 환기적hypomnesis 가치와 기억에 의존하지 않는 상기적anamnesis 기준이 요구된다. “나에게는 회백색으로 보여.. 내가 보기엔 황갈색이야.” 언어의 모순은 “운동하는 나”로부터 시작되었다. (이에 관념적인 아름다움은 추상적인 ‘달빛’으로 표현된다. 그럼 듀이의 말이, 과학은 정말 자연의 사건을 행복한 결과로 유도하는 시녀인가. 그가 옳다면 “텍스트”는 월인천강月印千江다.) 루소는 「언어의 기원」을 말하고 있다. “문자 언어란 음성 언어의 대리 재현에 불과하다. 그런데 정작 대상물보다 그 이미지를 결정짓는 데 더 많은 배려를 한다는 것은 기묘한 일이다.” 표음문자와 표의문자의 공통분모를 찾기 앞서 푸르스트의 후각적이고 미각적이며 촉각적인 언어의 토템이 전해줄 감각을 상상해 본다. 아-, 그것이 우마미うま味(감칠맛C5H9NO4, 이케다 기쿠나에)인가. “L-글루타메이트C5H9NO4는 생명을 구성하는 가장 중요한 아미노산이고 단백질 분해 과정-죽음, 부패, 요리 과정을 가리키는 점잖은 용어-에 의해 생명체로부터 방출된다. 프루스트는 신경과학자였다, 조나 래러” 데리다는 언어를 고정시켜야 하는 문자 언어가 ‘대리 재현’으로 모사되고 묘사될 때 언어의 특질을 변화시킨다고 지적한다. 또한 (정음의 방점傍點: 글자 옆에 찍는 점으로 ‘높은 소리’ ·거성, ‘높아가는 소리’ :상성, ‘낮은 소리’ 평성이 있다) 그는·Ḋėṙṙi̇́ḋȧ 문자 언어에서 힘, 어조, 억양 등은 개념속에서 상실된다고 덧붙인다. (그렇다면 활자를 접하는 푸르스트의 의식의 흐름을 믿어본다.) 그러나 사이먼 콘웨이 모르스의 관점에 따라 삶이 생태적지위像를 여러 차례 걸쳐 다시 발견하는 경향이 있다면 언어의 변질은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나르키소스의 의식은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새로운 것이다. 데카르트는 겨우 세 단어로 그것을 검증해 냈고(dubito, ergo cogito, ergo sum), 플라톤의 ‘아름다울 이론’은 ‘이기적 유전자’를 추월하게 되었다. 「이기적 유전자」는 질문한다. “어느 수준의 이타주의가 바람직한가?” 혹자, 아름다움을 위한 운동의 크기만큼이 더없이 족하다 말한다. 아름다움은 장미라는 이름으로 불려진다. 우리는 그 장미가 지닌 어떤 교양species을 지향한다. 로미오의 선언은 종을 정의하고자하는 (헤겔이 지적한) “허영”과 “위선”에 저항한다. “우리가 장미를 다른 어떤 이름으로 부르든 여전히 달콤한 향내가 나지 않겠어? 로미오와 줄리엣” 에머슨의 장미들은 더 아름다운 장미들을 참조하지 않고, 스타인의 “장미는 장미, 는, 장미, 는 장미, 는 장미이다.” 헤겔은 자연적인 것은 (즉 자연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다고 전한다. 그런데 자연이 자유롭고 자신 또한 자유롭다는 것을 알게된 나르키소스의 “자유 의지”에서 욕망, 충동, 경향은 욕망하는 것, 충동하는 것, 경향되는 것, “운동하는 것”으로 발전해 데카르트의 사유는 지각하는 대상을 ‘교양에 따라 정의로운 사자’로, 즉 “자신을 만물의 근거로 보는 추상적인 자기-확실성(abstract self-certainty), 「Philosophy of Right」”에 의해 분류되게 만든다. 헤겔은 자연적인 것을 “교양”을 통해 의식하고 자기 것으로 만들려는 “운동”이 ‘자유 의지’를 발설하는 자신에게 타당성과 현실성을 부여한다고 「정신현상학」에서 밝히고, 천성이 아닌 습득된 개성은 종(Art)으로 부르기에 알맞으며 종(Art; Species)은 “어중간한” 교양espèce이 아니라 “나름대로 좋다in seiner Art”라는 겸연쩍은 해석을 덧붙인다. (독일어의 종Art은 “나름대로 좋다”. 프랑스어의 종Art은 “어중간하다”. 그리고 과학의 종Art은 돌연변이다.)

헤겔의 공감각이 프루스트의 입술에 번지는 강렬한 기쁨, 그것은 들숨으로 하여 감미로운(달콤한 아름다움)이 즉자에 현현되고 날숨에서 또 잊혀진 시간의 자락을 떠올리게 만든다. 신선한 기쁨에 새로운 종(교양)이 의당 요구되었다. 기쁨(도파민, 세로토닌)은 운동의 근원이 되고, 대자적(대답할 대對 스스로 자自; 스스로에게 거리를 두는) 데카르트는 직관6하고 → 표상하며 → 사유하여 “정신”을 촉발시킨다. 반포지효, 예술은 정신의 표상re-present이 되었다, 예술은 진리를 담았다. 아, 사유와 성찰이 순수예술 위에 자신들의 날개를 덮어 버렸다Uberflugeln.. - 진리가 있다면 정신이 따르고, 그 이념은 이상das Ideal이 예술로 현상하고, 곧 예술이 형상화되는 것이다. 기교에 있어 (재주 기技 공교로울 교巧, 재주 예藝 재주 술術) 대상을 인식하는 것에 감각이 출현해야 하나 칸트의 신적인 오성, 즉 본원적이고 생산적인 “직관적 오성”과 헤겔의 “자기표출적인 정신의 형식 속에서 신적인 것이 삼투하여 작용”됨으로 다윈의 발자취를 따르기에 생득적 관성이 몹시 불가피하다. 분명 칸트의 “내재적인 목적에 준거한 쾌”와 헤겔의 “무관심적인 쾌”의 공통 분모는 생득적 관성의 기준이다. - (참고: Ästhetik, oder Die Philosophie der Kunst) 어둠이 있어야 했다. 그래야 미네르바의 부엉이가 날개를 펼 수 있다. “저기 비치는 빛은 무어지? Welch Licht leuchtet dort? 「Götterdämmerung」” ..레이첼은 외투를 건네는 호라이Ὧραι를 그렸고, 헤겔이 봄의 서풍을 선물한 제피로스Άνεμοι를 적으며, 랭보는 여름 아침을 껴안았다. ‘아직은 빛을 발하지 않은 수많은 아침놀이 있다’, (위대한 ·정·오를 준비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 더 이상 우리는 (판테온에서) 그 앞에 무릎을 꿇지 않는다. 「Ästhetik」” 헤겔은 눈먼 시계공이 설계한 섭리1를 비판한다. (질문한다.) 계의 엔트로피가 정말 0에 수렴되는가. 셸링이 말했다. ‘바로 저 순간 안에 놓여 있는 미를 현상해냄으로써 그것을 시간에서 끌어내리는 것, 그것은 시공을 초월한다.’ (사변적이지만) 생명은 “아름다움의 보다 높고 진화된 완성, 「아름다움과 악, 손호현」”을 위해 ·시·계·공 놀이가 필요했다. 

철학이 죽었음을 선포한 스티븐 호킹은, 설계될 삶은 “우아할 것”이며, 설계된 앎은 “자의적이거나 조정 가능한 요소들을 거의 포함하지 않을 것”이고, 삶과 앎은 “기존의 모든 관찰들에 부합하고 그것들을 설명할 것”이며, 만일 그 모형 의존적 실재론model-dependent realism이 “틀렸을 경우에 모형을 반증할 수 있는 미래 관찰에 관한 상세한 예측들을 {곧 상象} 내놓을 것”이라 한다. 살아갈 유기체에 필수적인 탄소와 이산화탄소의 양, 알맞게 조절된 핵력과 전자기력의 강도, 정확하게 떨어지는 우주 상수 등, 스티븐 호킹이 설명하는「위대한 설계」에는 시계공의 아름다울 섭리가 필요하다. “이론의 아름다움은 그것이 가진 간결함, 즉 대칭에서 온다. 올바른 이론은 적합한 대칭성을 갖는다. 이런 이론은 아름답다. 결국 아름다움은 진리다. 떨림과 울림, 김상욱”

XY는 이중성을 표한다. 그리고 XX는 잠재된? 선험적 이중성에 답변한다. 나탈리 앤지어는 XX를 “아이를 낳지 않은 어머니의 몸 속에 든 아이를 낳은 어머니”라고 비유한다. (X는 가장 큰 염색체이며, Y는 가장 작은 염색체 축에 속한다. XX는 X자 모양의 구조물을 23쌍, 즉 46개를 가지고 있다. 그 중 1쌍만이 성염색체이다. 반면 XY은 하나의 Y염색체를 제외한 45개, XX와 동일한 나머지 22쌍의 염색체를 가지고 있다.) D.H.로렌스는 그것이 감지된 그 무엇이며 그것은 기쁨으로 가득찬 절묘함 또는 공감되어진 절묘감이라고 표현한다. 그것은 상대적이고, 정의되지 못한 그것은 신기하다, 미묘하다, 괴상하다, 기이하다, 절묘하다, 오묘하다라고 일컫는다. 시간이 있자면 시계공이 필요하다. 요컨데 시간이 존재하므로 운동은 불가피하다. (케플러는 그 아름다운 운동을 처음으로 도식화한 인물이었다.) 생명은 ‘보다 높고 진화된 완성’을 위해 (그렇다면 내제적 편향이) 1,2,3,4,5를 발달시켜 절묘한 비율을 구했다. 로렌스 말이, 감각이 제공하는 것에 절묘함이 있었고, 코기토 이후 그 절묘할 비율은 표상에 갇혔다. 로렌스는 제창한다. ‘앎에서 구해지는 묘함(미美 ← 각覺)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에게 질문한다. 생명의 최고 비율이 시각87%, 청각7%, 촉각3%, 후각2%, 나머지 1%의 미각인가. 그런데 ‘자연 선택’이 옳다면 풀어야 하는 문제가 또 있다. 나탈리 앤지어의 예리한 지적, 우연히도 운명적으로 수렴 진화Darwin된 XX의 생식 수명450~480이다. “아난다미드Anandamide를 신호 전달 분자로 사용한 것은 순수한 우연의 일치, 분자적 다용도 적응이다. 하지만 그것은 멋진 우연의 일치이다. 카나비노이드cannabinoid는 베아에 환상 속에서만 즐거움을 누리는 비법을 경화로 제공한다. 깨달음으로 가는 길, 마음대로 광경을 만들어내는 정신과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으로 가는 길을 말이다.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 나탈리 앤지어” 어떤 기원을 적당히 송과선이라 둘러대자면 이 시기를 (관찰되지 못한) 생득적이라 하자. 

니콜라이 하르트만은 미학은 예술이 아니라 관조의 작용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라고 한다. 곧 심미적 태도는 미학자의 태도가 아니며, 그것은 예술적 관조내지는 취미라는 것이다. 다시말해 미학자는 아름다움을 생산하는 자도, 그것을 향유하는 자도 아닌 미적관조자, 즉 감각이 제공하는 것에서의 절묘함을 “관찰하는 자”일 뿐이다. 철학이란 지혜를 사랑하는 행위인데 하르트만은 미적 직관이 철학의 기관이 되어야 한다는 셸링에 급구 반대하며 미의 법칙의 의식이란 없으며 그 본질은 의식의 표면에 나타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술은 우리가 감격Begeisterung이라 부르는, 지극히 내적인 심정과 정신의 힘의 생생한 움직임에서만 생겨납니다. 셸링” 하르트만의 해석은, 묘한 것이 “그가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것이다. 그럼 향香의 「향연」에서 무엇을 관조할 것이며, 그렇다면 어떻게 분석할 것인가. 1%.. 열대산 후추, 계피, 육두구, 정향, 올스파이스와 같은 협의의 향신료가 있고, 열대와 아열대와 온대지방에서 생산 건조된 신물의 종자, 과실, 꽃, 봉오리, 줄기, 수피, 근괴와 같은 광의의 향신료가 있다. (그 외 유럽 등의 온대 지역에서 재배하는 파슬리, 월계수, 바질, 타임에 속하는 허브 및 향초, 그리고 고추, 마늘, 생강, 계피, 산초, 파, 부추, 깻잎 등등이 있다.)  2%.. 여기 사향musk, 양묘향civet, 헤리향castoreum, 그리고 용연향ambergris이 포함될 것이다. 단지 이 「향연」에 참석한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시인들에는 아직 점성, 탄성, 부착성, 기하특성 내지 역학적 특성, 피막감을 “관조”할 식감이 제공되지 않았다. (향료기술 용어집 인용.참고) “두 종류의 관조는 서로 어우러지면서 이어진다. 하나는 감성을 통하여 실재적인 것으로 향하고, 또 다른 하나는 오직 관조하는 우리에게 ·대해서만 존립하는 별개의 것으로 향한다. 미학이란 무엇인가, 니콜라이 하르트만” 셸링과 헤겔은 벗이니 두 사람 모두 미학이 이데아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데아의 감성적 현상”에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당연하며, 휘덜런 역시 그들에게 동의할 것이다. 덧붙여 셸링은 감정만이 언젠가 사라질 존재가 관조할 수 있는 최고의 실재성을 정신적으로 산출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분명 셸링은 휘페리온을 읽었을 것이다. 코기토, “후자의 경우 무한자가 유한자 안으로 들어온 경우에, 무한자는 유한자 그 자체를 (스스로) 무화하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예증을 통해 무화하기 위해 존재하며, 또 그렇게 해서 두 세계의 한계를 분명히 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후자의 경우에 세계의 이념은 신이 인간으로 됨과 신의 죽음(Menschwerdung und Tod Gottes)이다. 예술철학, 셸링” (공교롭게도 하르트만은 미학 설명에 있어 색채와 명암의 대조를 강조하는 렘브란트에서 그 예를 든다.)

존재에게 시간이 주어지는 것을 현실성(실현될 수 있는 성질)이라하고 이어 현존재는 어떠한 개념(사물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을 지닌다. 예컨데 장미의 개념은 꽃을 피우는 것이다. 「미학, 헤겔」에서 미는 자체 안에서 무한하고 자유로우며, 장미의 개념은 독자적인 법칙을 내세우지 않고 미와 조화를 이루며 이념의 통일성, “자연”을 이루는 것이다. 이념Idea이란 개념있는 존재가 “영혼을 스스로에서서 드러내는 것”, 형상을 ‘의미 심장하게sinnvoll’ 보고 현상하는 것(“미는 이데아 그 자체가 아닌 이데아적 감성적 현상”)이다. 요컨데 이념이 감각적으로 표현된 것을 헤겔의 뜻대로 미적이라 말하자면, 하르트만은 아라베스크는 “선의 유희를 들어내고 완결성과 기하학적 도형과 균정”에 있어 그림과도 동일한 “미적 자주성”을 띤다고 설명한다. 3%.. 요컨데 장미의 (의미 심장한) 언어는 가시다. 「미학」은 존재가 자신das Ich 스스로를 위해 이념적인 성격을 밖으로 표출하는 것을 예술이라고 말한다. 장미의 의미 심장한 발언이 즉자적인 행위였다면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념은 현실성으로 이행해 나가야 하며, 그 개념에 맞는 현실적인 주관성을 띠고 이념적으로 스스로를 위해 존재할 수 있을 때 비로소 진정한 현실성을 획득한다. 「미학」” 시클리드의 습성은 무척이나 흥미로우며, 생리활성물질Biological Response Modifiers대한 깊은 이해는 불가피하다. 【헤겔의 예술은 무한한 현존성, 자유로운 한계성, 그리고 독자성을 지닌 이상Ideal의 피규정성Bestimmtheit(적극성)으로 예술을 관조하는 관객들과의 향유, 즉 파토스(공감, 감성)를 형성해야 한다. 따라서 시인은 작품을 관찰하는 관객의 “교양”을 이해해야 한다. 이상을 감각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고, 외적으로 들어난 현상의 내적인 의미가 헤겔의 이상, 즉 절대이념die absolute Idee이다. 예술 형식에 결함이 있다는 것은 이념에 결함이 있음을 뜻한다. “예술은 다름 아닌 이상理想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술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술작품을 관조하고 향유하는 우리들을 위해서, 즉 관객을 위해서 존재한다.. 이상적인 예술작품은 내적인 정신이 외적인 형상들을 지닌 실제성으로 드러내야 할 뿐더러, 절대적(즉자대자적)으로 존재하는 진리와 현실의 합리성도 외적으로 현상하도록 해야 한다.「예술미의 이념 또는 이상, 미학」” (곧 호메로스의 격동적인 신들과도 같이) 미의 외적인 형상을 쫓는 윤리와 정의는 동시대에 맞서 개성있고 주관적이여야 하며, 정신의 찰라를 현상하는 예술은 반드시 자연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으므로 절대정신(예술)으로의 이상은 그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는 사상을 그려낸다. “예술작품은 정신적인 것을 눈으로 보고 들을 수 있도록 집적 현존재로 만들어져 나온 것이다. 「예술미의 이념 또는 이상, 미학」”】

표현될 적합한 대상이 고려되지 않은 채 아름다움이라는 무한이 표현되려는 시도가 헤겔의 일반적인 숭고이며 일반적인 “정신”이다. 자연미라는 것은, 장미는 장미는 장미는 장미는 장미이다. 전체성에서 선악은 없으므로 숭고함이란 없다. 그러나 “순수한 모순”으로써의 ¨das Anundfürsichsein¨ 장미는 숭고하다. “이제 즉자대자적인 존재das Anundfürsichsein가 감각적인 현재, 즉 경험적이고 외적인 개체성으로부터 처음으로 단호하고 확실하게 벗어날 때 들어나는 것이 바로 숭고함Erbabenheit이다. 「미학 제 2부」” 「판단력비판」에서 장미는 “향연”을 위한 것이다. 칸트의 “정의”는 “밤하늘에 빛나는 로미오의 별들 -Allegorie”과 도덕적 법칙이다. 원문은, “본래의 숭고함은 어떤 감각적인 형태 속에서 보존되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성적인 이념과 관계된다. 그 이념은 물론 그에 알맞게 표현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바로 이념 자신을 감각적으로 표현하기에 부적합한 그것에 자극되어 우리의 심정에 불러일켜지는 것이다. 「판단력비판」” 청자의 “날이 선 -die Metapher” 상상력은 자기외적인 존재Außersichesein가 대자적으로 자유로운 현존재가 되게끔 인도한다. 자연미에서 벗어나 “우리는 상상력이 지닌 숭고함과 신성함을 만나게 된다. 「미학 제 2부」” (자기외적인 존재는 즉자다. “존재는 존재한다. 존재는 그 자체로 존재한다. 존재는 있는 모습 그대로 존재한다. L’ tre est. L’ tre est en soi. L’ tre est ce qu'il est. 「존재와 무」” 철학이 과학에 예술을 질문한다. ‘대자즉자적 존재는 실존한다.’)

벽의 장식, 도기, 유리, 금속공예, 제본, 도서, 카펫 등에 식물의 줄기와 잎을 도안해 기하학 무늬로 배합한 것이 바로 아라베스크다. 재현주의적 표현을 금기시한 이슬람은 필사Calligraphy를 통한 “추상적인” (뽑을 추抽, 코끼리 상象) 형태의 문양들을 예술로 전승시켰다. 「미학」에서 헤겔은 아라베스크를 자연형상들로 구분하고 무늬에 상징성이 없다면 그것은 단지 상상의 유희라고 규명한다. “사실 아라베르크 무늬는 유기적인 것의 형태 면에서나 역학 법칙과 관련해 볼 때도 자연에 어긋난다. 그렇지만 이런 식으로 자연에 어긋나는 것은 대체로 예술의 권리일 뿐더러 심지어 건축의 의무이기도 하다. 「미학 제 3부, 건축」” 미술작품을 보는 순간 그것은 머리속에 모사된다. (본뜰 모/모호할 모模, 베낄 사/부릴 사使) 하나 형상을 현상하는 것은 묘사다. (그릴 묘描, 베낄 사/부릴 사使) 이미 묘사된 것을 감상하는 것이 “표상에 대한 표상Vorstellung von einer menschlichen Vorstellung”이다. 원문은, “예를 들어 내가 실제로 살아 있는 사자라는 동물을 바라보면, 그 사자의 특수한 형상은 나에게 모사abgebildet된 것과 똑같은 ‘사자’의 표상을 제공한다. 그러나 그 모사 속에는 더 많은 것이 들어 있다. 즉 그것은 그 형상이 표상 속에 들어 있었고 현재 보이는 모습은 원래 인간정신Menschengeist과 그의 산출행위 속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단지 어떤 대상에 대한 표상이 아니라, 인간의 표상에 대한 표상을 얻게 된다. 그러나 이제 본래 예술의 욕구는 사자, 나무 또는 어떤 다른 개별적인 대상을 이렇게 재 산출하는 데 있지 않다. 반면에 우리는 예술, 그것도 특히 조형예술이 그런 대상들을 가상화 하는 주관적인 능숙함을 보여주기 위해서 그것을 표현하는 것을 보았다. 원래 관심사는 객관적인 직관, 즉 보편적이고 본질적인 사상을 자신과 타인들의 눈앞에서 직관시키려는 데로 나아간다. 그러나 한 민족이 갖고 있는 그같은 관념은 우선은 추상적이고 스스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그러므로 이제 인간은 이것을 표상하기 위해서 역시 추상적인 것, 즉 어떤 특정한 형상은 될 수 있어도 스스로 구체적이고 참된 정신적인 형상은 될 능력이 없는 물질 자체, 즉 무거운 덩어리의 물질에 손을 뻗친다. 「미학 제 3부, 건축」”  ¨추상¨은 ¨정신¨이다. 헤겔은 벌크와 입방체가 필요하다. 

추상은 정신이고, ¨정신¨은 ¨역동¨한다. 7%.. 음이란 사물의 운동Bewegung을 청각화 모사하고 비로소 묘사된 것이다. 예술에서 향유자는 외화(바깥 외外, 될 화化)된 감각적 요소를 얻는다. 「미학」의 주체(생산자)는 “정신”을 회화나 건축으로 표현(외화)하는 데 있어 그 감각적 성질이 공간과 화합하지 못한다. 헤겔(1770-1831)의 「미학」을 들어보자. “그러나 내면은 이미 회화의 원리에 들어 있듯이 실제로 스스로를 주관적인 내면성으로서 드러내야 한다면, 이에 참으로 적합한 질료는 여전히 {스스로를 위해 존속하는 성질}을 지녀서는 안 된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객관성}이 공간적인 형상으로서 감각적인 요소 안으로 들어가 그 안에서 지속되려고 고집하지 않는 외화방식을 얻게 되므로, 자기의 타자를 위해 존재하면서 불안정하게 생성되어 존재했다가 곧 다시 사라지는 {질료}가 필요하다. 이처럼 하나의 공간적인 차원이 사라질 뿐만 아니라 대체로 총체적인 {공간성이 사라지는 것}, 즉 내면은 물론 외화의 측면에서도 이같은 주관성 안으로 완전히 회귀하는 것을 성취하는 것이 바로 두 번째의 낭만적인 예술, 즉 {음악}이다. 이런 점에서 음악은 원래 주관적인 것 자체를 내용과 형식으로 삼는 표현의 중심이 된다. 왜냐하면 음악은 예술로서 물론 내면을 전달하지만, {그 객관성 자체 속에서도 여전히 주관적으로 머물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음악은 {조형예술}처럼 결정된 외형 자체를 자유로이 놓아 두어 그것이 그 자체로 {고요히 존속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이를 {객관성}으로 지양한다. 그리하여 외적인 것이 우리 눈앞에 외적으로 확고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드러나도록 허용하지 않는다. 「미학 제 3부」” 음이란 매질인 공기(질료)를 진동해 생기는 파동이다. 결코 “주관적”이지 못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학」은 “수렴”된다. 

정신은 “내면적으로 직관되기 위해 분명하게 외적으로 현상된 형상, 「미학」” 과정을 거쳐야 하고, “음”은 정신을 “행복한 결과로 유도하는 시녀, 「경험과 자연」”다. 따라서 헤겔이 설명하는 “사유는 그 자체로는 텅비어 있다.” 헤겔의 “절대”이론은 “사유”를 “운동으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그 “운동 속에서” “사유”를 해방시키는 것이다. 주체는 사유고, 느낌은 기술할 (قرأ 낭송하다) 뿐이다. “시는.. 숭고한 사명을 띠고 있다. 즉 그것은 정신을 느낌으로부터 해방시키는 일이 아니라 바로 그 느낌 속에서 해방시키는 일이다. 「미학 제 3부」”

【“언어는 문명의 시초야. 사람들을 하나로 만들어 주고, 싸움이나 분쟁에서 처음 사용된 무기이기도 하지. 어라이벌 中” 유량악보는 음의 높음과 낮음(율정틀), 그리고 음의 길이(틀장단)를 표현할 수 있는 악보를 말하며, 오선지(오선보)에 기보법을 적용한 유량악보는 13세기 후반에 만들어졌다. 기보법의 유래는 9세기 처음 네우마에서 발견된다. 5음계는 피타고라스(BC 582-497)가, 12 옥타브를 사용하는 평균율은 16세기 후반에 완성된다. 프톨레마이오스(83-168)의 순정율에는 조옮김과 조바꿈의 문제가 있었고, 따라서 바흐(1685-1750)의 제안으로 평균율이 적용되었다. 동양 최초의 유량악보, 즉 정간보는 세종(1397-1450)이 최초로 발명했다. 12율명으로 구성된 정간보는 서양의 12율계와 같은 황(C, E♭), 대(C#, E), 태(D, F), 협(D#, G♭), 고(E, G), 중(F, A♭), 유(F#, A), 임(G, B♭), 이(G#, B), 남(A, C), 무(A#, D′♭), 응(B, D′)을 사용한다. 바둑판처럼 생긴 세종악보(정간보)는 오선보와 같이 쉼표, 붙임표, 숨표 등등의 기보법을 응용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악보가 오테카톤(1501)이라면, 세종악보(1472)는 세계 처음 활자로 인쇄된 악보다. 훈민정음은 용비어천가(서사시.교향시 → 오페라)와 같은 시기에 편찬되고 간행되었으며, 그러므로 정음에 자연스레 음악의 이치가 고려되었다. 용비어천가를 만들기 전에 표준음(12음을 내는 율관panpipe)을 개발하고, 같은 시기에 말소리의 표준음을 설정하여 정음의 표기법이 창제된 것이다. 또한 정음과 세종악보는 피보나치 수열에서 제시된 2:3의 황금비율 구조를 틀장단과 율정틀을 통해 보여준다. 자연의 소리가 악기소리고, 구음이란 “악기소리를 입으로 흉내낸 말소리”다. 언어가 자연의 소리를 타자에 전달하는 소통의 도구라면, 우리는 조금이나마 정신의 기원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참고.인용: 훈민정음과 세종악보, 훈민정음은 음악이다 - 최종만, “예조가 아뢰기를, ..... 승도(僧徒) 및 회회인(回回人)들이 뜰에 들어와 송축(頌祝)하고 끝나면 판통례가 꿇어 ‘예를 마쳤다.’고 아뢰고, 통찬이 예를 마침을 창하면, 전하가 좌에서 내려오고 풍악이 울린다. ...... 「세종실록」, 세종 즉위년(1418) 9월”】

아도르노의 미학은 헤겔의 정반합에서 안티테제만을 사용하는 부정의 변증법을 구사한다. 그러나 사실 아도르노에게 음악이란 들어나는 동시에 숨겨져 있고, 예컨데 율리시스가 청중이라면 바다요정들은 예술가다. 요컨데 그의 말은 요정들의 유혹이 미메시스(Mimesis, 형상을 현상하는)고 밧줄이 “정의”(계몽)라는 것이다. 단자론을 인식한 아도르노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음악이 생각하는 것은 신적 이름의 형상이다.. 신을 부정하는 것은 그 자체가 제거할 수 없는 모순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앎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는 유리알 유희를 “사회에 대한 안티테제”로 분류한다. 한편 음악에는 협화음과 불협화음, 즉 조성과 무조성(12음 기법)이 있다. 조성이란 하나의 으뜸음을 중심으로 화음을 이루는 현상이다. 아도르노의 안티테제는 조성을 버린 쇤베르크1874-1951의 12음 기법이나 다름없다. 일찍이 니체1844-1900가 「비극의 탄생」에서 그(앎) 성질을 ‘조각가의 예술과 비조형적 음악 예술’로 설명했고, 이사도라 덩킨이 실제로 무용을 통해 “정신 속에 자기 몸을 던져서 실체 그 자체”를 보여주는 디오니소스와 “정신을 말없이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자” 아폴론을 재현했다. 내일은 “현재”가 되고, “새벽과 황혼”이 공존하는 속도는 465.11 m/s이다. 403, 우리는 「인형의 집, Henrik Ibsen」에서 기적을 기다리다.

“통발은 물고기를 잡으려는 수단이기 때문에 물고기를 얻었다면 통발은 잊는다. 올무는 토끼를 잡으려는 수단이기 때문에 토끼를 얻었다면 올무는 잊는다. 말은 뜻을 잡는 수단이기 때문에 뜻을 얻었다면 말은 잊는다. 나는 어디서 말을 잊은 사람을 얻어서 그와 말을 나눌 수 있단 말인가? 장자, 외물” 장자가 피력하는 바는 칸트가 “지금 바로 이 순간 이곳에 무언가가 있다.”라고 말할 때 어떤 숫자를 떠올리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이미 장자는 ‘나무는 나무다’라고 주장하는 피히테의 장자가 아니다. 전자는 베르그손의 기다리고 기대하는 ‘상대론적 미래’고, 후자는 레비나스의 ‘중력으로 자전하는 늘 현재의 미래’다. 과연 그 사람은 무엇을 떠올리고 있는가. 칸트의 감성과 직관은 이렇게 말하라고 지성을 부추긴다. “알 수는 없지만 무언가 바깥에 존재한다.” 고정되지 않는 세계에서 비트겐슈타인의 사다리는 던져버려야 하고, (언어를 던져버리므로) 말할 수 없음에 우리는 침묵한다. 그러나 우리는 원자에 들뜸과 바닥상태가 반복되는 것을 인지한다. 결국 우리는 침묵을 깨운다. “과자 부스러기가 섞여 있는 한 모금의 차가 입천장에 닿는 순간 나는 소스라쳤다.” (Caesium, 1초는 세슘 원자에서 방출하는 특정한 파장의 빛이 국제기준 주파수에서 9,192,631,770 번 진동하는데 걸리는 시간이다. “완벽한 자를 만드는 것은 원자와 분자에 의해서 방출된 빛의 파장과 비교해 균일하고 표준적으로 간격을 띠우는 것이다. 「블랙홀과 시간여행」”) 

87%.. 맨 눈으로 볼 수 있는 우주의 물질은 2004년 나사의 관측 위성 더블유맵WMAP의 결과에 따라 4%에 불과하고(2015년 플랑크 위성 관측 결과: 물질 4.8%, 암흑 물질 25.9%, 암흑 에너지 69.1%, iii), 나머지 96%는 정체불명의 수수께기 물질과 에너지다. (반물질은 물질에 속하고 물질의 입자 전하가 -1일 때 그와 반대되는 전하가 +인 물질의 짝이다. iv) 이 96%를 우리는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 우리가 알고 있는 우주의 성분은 멘델레프 주기율표에 표시된 4%에 불과하며, 암흑 물질 22%와 암흑 에너지 74%가 그 나머지다. “dark matter란 이름 때문에 암흑 물질을 검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암흑 물질은 어떤 유리보다 더 완벽하게 투명한 물질이므로, 빛을 반사하지도 흩뜨리지도 않는, 차라리 '투명 물질'이 더 적당한 이름일 것이다. iii” 현재 우주는 계속 팽창하고 있다. 그리고 우주를 가속 팽창시키는 원인을 암흑 에너지라고 추측하고 있다. (여기서 팽창은 감속이 아니라 가속이다. 가속 팽창을 관측하기 위해 밝기가 일정한 우주의 촛불 Ia형 초신성이 사용된다. 아직 단정지을 수 없는 이 팽창의 힘의 영향은 은하단 단위에만 적용되므로 태양과 지구의 거리가 멀어지지는 않는다. 중력이나 원자로 구성하는 힘이 팽창하려는 힘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암흑 에너지는 우주 초기와 비교해 월등히 증가해 왔다. “초기 우주에서는 99%의 암흑물질과 1%의 양성자와 중성자들[바리온 물질: 세 개의 쿼크로 이루어진 강입자]의 혼합으로 되어 있었다. ii” 양의 압력을 갖은 일반 물질과 달리 압력이 음수인 암흑 에너지는 우주 팽창과 함께 증가되었다. 세월이 흘러 우주는 상전이를 겪은 것이다. “이런 기묘한 우연의 일치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만 일어나는 일이라서 특히 주목할 만하다. 오직 현재에만 보통의 물질과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라는 세 성분이 비슷한 비율을 이루고 있다. v”) 물질들이 만드는 중력에 맞서 우주 공간을 바깥쪽으로 밀어내는 척력을 암흑 에너지라고 가정해 보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팽창하지 않는 우주를 제시하기 위해 ‘우주 상수’를 도입했으나 허블이 ‘허블 상수’로 우주 팽창을 증명하자 ‘우주 상수’를 철회했다. 그런데 알고보니 ‘우주 상수’가 우주 팽창에 기여하는 암흑 에너지였던 것이다.) 한편 은하단에 있는 물질의 중력으로만은 은하단을 유지시킬 수 없으므로 은하단에 존재하는 암흑물질의 중력이 은하를 끌어당긴다고 여겨진다. 이러한 중력이 없이는 은하는 은하단 밖으로 날라가 버린다. (지구 → 태양계 → 4,000억 개의 별로 이루어진 우유길 은하 → 3,000개 이상의 은하들의 집합인 은하단 → 1,000만 개의 초은하단) 밝고 짧은 파장의 푸른 별은 질량이 크고, 긴 파장의 어둡고 붉은 별은 질량이 작다. 그런데 별의 밝기로 판단된 질량보다 큰 머리털자리 은하단이 1933년 프리츠 츠비키에 의해 발견된다. 물론 1932년 얀 오르트Oort가 은하수에 보이지 않는 물질의 존재에 대해서 발표한 연구가 츠비키의 주장에 이정표가 되었다. “머리털자리 은하단에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있다. 은하단의 은하는 이 보이지 않는 물질의 중력 덕분에 은하단에 머물고 있다. i” 얼마 후 츠비키는 1936년 아인슈티인이 발표한 중력 렌즈로 암흑물질의 질량을 측정할 수 있다고 추론하게 된다. 이것을 계기로 자연스레 암흑물질의 가능성을 예측되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이것을 “잃어버린 질량 i”으로, 다시 ‘암흑 물질’로 불려진다. 태양계의 행성들은 중력원인 태양에 가까워질 수로 공전의 속도가 빨라진다. 은하도 그와 마찬가지다. 그런데 1970년대 베라 “쿠퍼” 루빈은 안드로메다은하에서 새로운 발견을 한다.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는 물질이 은하 전체에 퍼져서 가스에 중력을 미치기 때문에, 중심에서 멀리 있는 {안드로메다 주위에서 회전하는 나선 형태의 원} 가스도 중심에 가까운 가스와 같은 정도의 속도로 회전하는 것이다. i” 이 또한 암흑 물질의 가능성에 지평을 열어주는 계기가 된다. 본다는 것은 물체가 반사하는 가시광선이다.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긴 적외선(TV Remote)과 전파(방송)는 파장이 길어 더 많은 범위에 미칠 수 있고, 가시광선보다 파장이 짧은 자외선은 높은 에너지로 인해 피부를 검게 그을린다. 천문 위성은 감마선으로 블랙홀을, X선으로 초신성 폭발의 잔해를, 자외선으로 은하를, 적외선으로 암흑 성운을, 그리고 전파로 퀘이사(은하 중심의 거대 블랙홀 발광체)를 관측한다. 같은 원리로 관측하면 지구로 다가오는 천체는 파장이 짧아 청색으로 이동하고, 지구로부터 멀어지는 천체는 파장이 길어 적색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어떠한 빛으로도 보이지 않는 암흑 물질은 예외다. 질문한다. 무엇이 “시간”을 정의하는가. “우주의 온도가 내려간 결과, 원자가 생겼다. 암흑 물질이 원자로 되어 있는지 아닌지는 우주 초기에 암흑 물질의 총량을 충족시킬 만큼의 원자의 재료(양성자와 중성자)가 존재했는지를 조사함으로써 추측할 수 있다. i” 조사에 의하면 “암흑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진 물질이 아니다. i” 또한 “암흑 물질은 어떤 물질과도 충돌하지 않고 빠져 나간다. i” NASA가 관측한 탄환 은하단을 통해 암흑 물질은 다른 물질과 부딪치지 않고 빠져 나간다는 것이 확인된다. 우리는 고민했고, 혹 암흑물질이 모든 물질을 빠져나가는 중성미자(뉴트리노, 뜨거운 암흑 물질)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결국 도쓰카 요지가 우주의 우주 전체에서 차지하는 중성미자의 총 질량을 밝혔고, 그 결과를 암흑 물질의 총질량과 비교해 암흑 물질의 총 질량의 15분 1밖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파생된 연구에 따라 암흑 물질이 은하를 낳는 씨앗일 수 있다고 짐작하게 된다. “{태초}, 보통 물질이 은하 규모의 천체와 별의 씨앗을 형성할 시간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암흑 물질에 편승해야만 했다. 만일 암흑 물질이 붕괴를 개시해 주지 않았다면, 별들은 현재의 개수와 분포에 도달하지 못했을 것이다. iv” 요컨데 암흑 물질은 어떤 물질과도 충돌하지 않으며, 어떤 종류의 빛도 관찰되지 않는다. 빛을 방출하지도 흡수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또한 암흑 물질의 총 질량은 은하에서 보이는 물질의 5배나 많다. 암흑 물질의 후보로 초대칭성 입자 중 하나인 뉴트랄리노는 양성자의 1,000배 정도의 질량m을 가지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대형 하드론 충돌형 가속기LHC가 빅뱅을 재현해 뉴트랄리노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E=mc2}, 고정 표적에 충돌할 때와 빔{+-입자가 빛의 속도 c}과 빔{+-입자가 빛의 속도 c}이 충돌할 때의 알짜 에너지{E} 차이는 훨씬 커지게 된다. v” 빅뱅은 엄청난 에너지다. 충돌에 선호하는 입자(물질)는 양성자로, 질량m은 전자보다 2,000배 크다. 흥미로운 점은 입자(바를 정正)와 반입자(되돌릴 반反) 쌍의 전하가 합(합할 합合)하면 물리학에선 0이 되고 철학에서는 “새로운 합”이 된다.】 그러나 LHC에서 만들어지는 암흑 물질은 “원시 핵합성, 우주 배경 복사, 항성, 은하의 진화와 구조, 은하단 충돌 iii” 등을 설명해야 한다. 한편 LHC는 시간을 포함한 추가 차원을 설명하는 칼루차–클레인 이론을 검증해 낼 수도 있다. 시간을 포함한 4차원에서 중력은 약한 상호 작용이지만, 추가 차원에서는 중력자가 비틀린 기하 속 강한 상호 작용을 하게 된다. 간단한 고찰이라면 추가 차원에 우리의 시간과 같은 “변수”가 존재하느냐는 것이다. 암흑 물질의 또 다른 후보로 질량이 매우 가볍고 속도가 0에 가까운 차가운 엑시온이 있다. “엑시온은 보손이다. 이것은 그것이 물질입자가 아니라 광자와 같이 힘 운반체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엑시온의 질량은 매우 작다. ii” 뉴트럴리노와 반대로 액시온의 질량은 양성자의 100조분의 1 정도다. 비-바리온 물질에 속하는 윔프(WINP: 약하게 상호 작용하는 무거운 입자들) 역시 차가운 암흑 물질에 속하는 또 하나의 후보다. “WINP의 쌍소멸이 은하수 공륜(“둥근 영역, iii”구멍 공空, 바퀴 륜輪, 후광)에서도 일어날지도 모른다. ii” 그럼 (비대칭 암흑 물질 모형), 암흑광자에서 중력이 무엇으로부터 질량을 얻는지 확인할 수 있을지 모른다. “잃어버린 질량”에 시간의 도움이 절실하다. 사라진 시간을 찾아 별을 쫓는 모형 구축자model builder자의 육성을 들어본다. “그러나 또 다른 유망한 탐색 전략은 암흑 물질 입자가 암흑 물질 반입자와 소멸하여-스스로 소멸할 수 있는 종류일 때는 자신과 같은 종류의 입자와 함께 쌍소멸하여-그 에너지가 다른-바라건대 눈에 보이는-물질로 변형될 때 발생하는 신호를 찾아보는 것이다. 만일 암흑 물질 소멸이 일어난다면, 과학자들은 지상이나 우주에서 간접 검출 기법을 사용함으로써 소멸에서 생성된 입자들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탐색은 소멸하는 암흑 물질 입자들이 사라진 뒤에 생성되는 입자들을 찾아본다. 우리가 운이 좋다면, 그렇게 나타난 입자들 중에는 전자와 그 반입자-즉 양전자-쌍 혹은 광자 쌍과 같은 표준 모형 입자들이 포함되어 있을 것이다. iv” (참고.인용: i.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 우주의 96%를 차지하는 미확인 질량과 에너지, ii. In Search of Dark Matter - Ken Freeman, iii. 우주의 빈자리, 암흑 물질과 암흑에너지, iv. 암흑 물질과 공룡, 리사 랜들, v. 천국의 문을 두드리며, 리사 랜들, vi. 블랙홀과 시간여행, 킵 손)

「소피스트」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다. “또 존재하지 않는 것이 존재한다면 존재하는 것은 존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암흑 물질이 나선 은하 소용돌이의 고삐를 당기다. iv’ ‘암흑 시대’에 적합한 투명하여 존재하지 않고도 존재하는 암흑 물질, ¨에테르¨를 암시하는 것인가. “‹¨우주상수¨는 어떤가?›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 비트겐슈타인 ‹침묵하라고? 소리 높혀 말하라!›, 「4퍼센트 우주」” 젊은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물리법칙보다 더 아름다운 이론을 바랐다. 킵 손은 그의 고찰을 대자와 즉자로 정리한다. “내가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당신의 공간과 시간의 혼합체이고, 당신이 공간이라고 부르는 것은 나의 공간과 시간의 혼합체다.” 뉴턴 물리학 법칙에서 빛의 속도는 ¨에테르¨가 정의한다. “아인슈타인의 관점에서 맥스웰의 법칙들은 어떤 좌표계, 즉 ¨에테르¨ 좌표계{¨절대 시간을 위한 절대 공간, 아무도 모르는 어떤 힘, vi¨}에서는 복잡하고 보기 흉했다. 물리학의 토대를 재구성하면서 상대성 원리에 따라 아인슈타인은 맥스웰의 법칙을 모든 관성기준좌표계에서 하나이고 동일한 단순하고 아름다운 형식을 가지게 할 수 있었다. iv” 빛을 정의하고자 혼돈의 중심에 ¨에테르¨가 놓이고 혈기 방장한 아인슈타인(Newton~1905)은 절대 광속의 원리를 외친다. 이 사건은 천문학자와 천체물리학자와 실험물리학자들이 숭배할 상대론의 서막이자 촉매를 담을 성배였다. 

【“천문학은 ‘제왕의 학’이라고 했다. 천문은 글자 그대로 하늘의 학문이고, 나라의 학문이었다. 하늘의 뜻을 알고, 자연의 이치를 깨달으며, 그 오묘한 모습에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는 일은 곧 사람의 도리를 알고 행하는 것이 된다. 하늘의 과학, 즉 천문·역산학에 대한 세종의 생각은 여기서 출발하고 있다.” 1434년 세종은 왕립 천문대인 ¨대간의대¨(경희루)와 ¨소간의대¨(경희궁)를 출현시켜 일식, 월식,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 혜성, 신성, 그리고 유성을 관측케 하였다. “혜성은 그 출현 일시, 수도의 위치 및 이동 상황, 몸체의 크기와 색, 꼬리의 길이, 소멸 일시 등에 대하여 관측하고 기록과 그림을 겸하여 쓰도록 했다. 5행성의 운행에 대해서는 행성과 달과의 사이에서 일어나는 현상, 행성과 혜성 상호간에 일어나는 현상, 행성 특히 금성이 낮에 보이는 현상 등이 주로 관측되었다.” 이러한 천체 현상, 즉 “백홍관일, 백홍관월, 일운(햇무리)과 월운(달무리), 지동과 지진, 강수 현상 이외에 구름과 서리·이슬·안개·무지개·번개·우박·눈”의 관측도 철저하게 이루어졌다. 1395년 제작된 ¨천상열차분야지도¨를 보면 1,457개의 별이 그려져 있다. 세종은 천문시계인 ¨혼천의¨를 제작하여 별자리를 측정하고 ¨천상열차분야지도¨를 갱신했다. ¨혼천의¨는 지구본과 유사하나 은하를 기술한 것이다. 해시계들로 으뜸인 ¨양부일구¨ 외, ¨현주일구¨, ¨천평일구¨, ¨정남일구¨가 있고, “밤낮으로 시간을 아는 기기”라 하여 밤낮으로 시간을 측정하는 기기 ¨일성정시의¨, 자동인형으로 종과 북과 정을 치는 ¨자격루¨, 또한 신하 장영실이 세종의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제작하여 세종께 헌정한 ‘임금의 물시계’ ¨옥루¨가 있다. “그 자동 장치는 11세기 송나라의 소송이 제작했던 거대한 천문 시계와 원대에 순제의 명에 의해서 제작된 궁정 물시계, 그리고 아라비아의 알 자자리(Al-Jazari)의 자동 물시계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뚜렷하다. 그러나 ¨자격루¨의 자동 시보 장치의 추진 방식과 격발 방식은 이들 자동 시계의 것과는 뚜렷하게 다르다.” 세종실록을 보면 흥미로운 휴대용 물시계 ¨행루¨가 등장한다. “흐린 날에는 시각을 알기 어려움으로 ¨행루¨를 만들었는데, 몸체가 작고 제도가 간략하다.”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과학」】

“예를 들어, 동일한 하나의 별을 가지고서 저녁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또 새벽별이라고 부리곧 하는 것 처럼, 발생하고 있는 것과 이야기되는 것은 같은 것이다. 「감각의 논리」 파르메니데스에서 하이데거에 이르기까지 똑같은 목소리가 계속되고 있다. [......] 하나의 유일한 목소리가 ¨존재의 함성¨을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차이와 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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