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경제는 북부와 남부의 구조적 차이가 뚜렷하며, 그 뿌리는 통일 이후의 역사적 맥락과 맞닿아 있다. 북부는 19세기 후반부터 산업화가 빠르게 진행된 지역으로, 밀라노는 금융·패션·디자인의 세계적 중심지로 부상했고 토리노는 피아트FIAT를 비롯한 자동차 산업의 본거지로 자리 잡았다. 베네치아와 베네토 일대는 화학·제약·유리 공업이 발달했으며, 볼로냐는 포장기계와 정밀기계 산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브레시아와 베르가모를 비롯한 롬바르디아 북부는 제조업과 중공업의 핵심지로 ‘유럽의 공장’이라 불릴 만큼 생산력이 집중되었다. 중부의 토스카나와 움브리아는 르네상스 유산을 바탕으로 한 관광 산업과 와인·올리브유 같은 농산물 산업이 발달했다. 반면 남부의 칼라브리아, 시칠리아, 사르데냐 등은 통일 당시 상대적으로 낙후된 농업 중심 경제 구조를 유지하면서 북부와의 격차가 심화되었고, 현재도 농업과 관광이 주요 산업이며 일부 지역에서는 재생에너지와 석유화학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 이처럼 북부가 산업화와 고용 창출에서 앞서 나가는 반면 남부는 만성적인 실업과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며 ‘메차조르노 문제’라 불리는 지역 불균형을 보여준다. 이탈리아는 또 예술과 함께 살아온 나라로, 르네상스의 화폭에서 시작해 건축·음악·조각에 이르기까지 예술은 곧 국가의 정체성이었다. 이러한 기질은 자동차에도 스며들었는데, 독일 자동차가 출퇴근과 실용성을 위해 태어났다면 이탈리아 자동차는 사랑과 열정을 위해 태어났다고 할 수 있다. 독일차가 험난한 도로를 견디도록 설계되었다면, 이탈리아 차는 미적 감각과 한계를 넘어서려는 인간의 욕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치적으로 이탈리아는 흔히 “세계에서 가장 자주 정부가 바뀌는 나라”라 불린다. 1946년 6월 2일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한 뒤 지금까지 68번이나 정부가 교체되었으며, 현재 2022년 10월 출범한 조르자 멜로니Giorgia Meloni가 이끄는 내각이 제68대 정부이다. 이탈리아 정치사는 제1공화국과 제2공화국으로 구분되는데, 제1공화국 시기에는 기독교민주당이 반세기 가까이 정치 중심을 잡았지만 내각은 평균 1년 남짓밖에 유지되지 않았고, 알치데 데 가스페리, 줄리오 안드레오티 같은 인물이 여러 차례 총리를 맡는 일이 반복되었다. 제2공화국 시기에는 1990년대 초 부패 스캔들 ‘탕젠토폴리 Tangentopoli’로 기민당이 몰락한 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같은 강력한 정치인이 등장했으나, 여전히 정당 연합의 불안정성과 불신임으로 내각의 수명은 짧았다. 정부 교체가 잦은 이유는 비례대표 중심 선거제도로 인한 군소정당 난립과 연립내각 구조, 대통령의 중재 권한, 남북 격차와 지역 정당 분열이라는 정치문화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 전체가 흔들리지 않은 것은 행정관료제와 대통령제의 완충 장치, 그리고 유럽연합 틀 안에서의 정책 연속성 덕분이었다. 현재 멜로니 내각은 이미 이탈리아 역사에서 네 번째로 장수한 정부로 기록될 만큼 안정성을 보이고 있으며, 총리 직선제 개헌을 추진하고 있어 만약 실현된다면 ‘잦은 교체’라는 이탈리아 정치의 고질적 문제를 바꿀 분수령이 될 수 있다.

 

“이탈리아 와인의 시조는 고대 그리스인과 에트루라아인이다. 물론 이전에도 포도 재배와 이를 통한 와인 생산이 이루어졌다는 고고학적 증거가 있지만, 체계적이라 볼 수 없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자국에서 발전시킨 포도재배와 와인 양조 기술을 이탈리아반도 곳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전파했기 때문에 진정한 와인의 조상이라 일컬을 만하다. 또 다른 민족인 에트루라아인은 로마인보다 앞서 이탈리아반도에 독자적인 문화를 남긴 민족이다. 이들은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있어서 꽤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음주가무를 즐기는 향락적인 민족으로 유명했다. 토스카나 지역 곳곳의 무덤에서 발굴된 증거에 의하면, 기원전 7세기부터 3세기까지 애트루라아인들이 만든 와인은 이탈리아 남부나 골족에게 수출될 정도로 퀄리티가 높았다고 전해진다. 또한 그리스의 유명한 작가들은 그들이 만든 와인의 우수한 품질에 대해서 언급하기도 했다. 후에 고대 로마가 이탈리아반도를 지배하면서 반도에 살고 있던 에트루라아인과 그리스인들을 흡수했고, 자연스럽게 그들의 선진화된 와인 양조 비법을 물려받게 되었다. 지중해의 패자로 등극한 로마인들은 점령지마다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만들어 마셨다. 이른바 유럽 와인의 근간을 마련한 셈이다. 로마의 전치가 카토는 기원전 200년경 라틴어 최초의 포도 재배 기록이라 할 수 있는 「농업론」을 편찬했는데, 여기서 그 당시의 포도재배와 와인생산이 사회에 얼마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는지 확인할 수있다. 「농업론」에 따르면 당시 로마인들은 1년에 1억8,000만 리터의 와인을 소비했다고 한다. 이는 로마의 모든 남녀노소가 하루에 0.5리터씩 와인을 마셨다는 의미다. 「이탈리아 와인 여행」”

 

에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는 20세기와 21세기 음악사의 거대한 별이자, 영화 음악을 예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로마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트럼펫을 배웠고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작곡과 지휘를 공부했으며, 원래는 현대 클래식과 아방가르드 음악에 심취하기도 했지만 1960년대 영화 음악을 맡으면서 영화음악의 전설이 되었다. 특히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스파게티 웨스턴’ 삼부작「황야의 무법자 A Fistful of Dollars」, 「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 「석양의 무법자와 함께 For a Few Dollars More」은 총성과 휘파람, 일렉트릭 기타, 하모니카, 합창을 파격적으로 결합해 서부극의 정의·운명·고독을 단숨에 상징화했고, 모리코네의 이름을 세계에 각인시켰다. 스파게티 웨스턴이란 1960년대 주로 이탈리아와 스페인에서 제작된 서부극을 가리키는데, 본래 미국 헐리우드의 전통 장르였던 웨스턴을 이탈리아 제작자들이 저예산으로 유럽 촬영지를 활용해 새롭게 만들어낸 것을 뜻한다. 이후 그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언터처블」, 「시네마 천국」, 「미션」 등 걸작들에 음악을 입히며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영화의 영혼을 창조하는 작곡가로 자리매김했다. 평생 약 500편 이상의 영화·TV 음악과 100편이 넘는 순수음악을 남겼으며, 영화 음악계의 거장이면서도 자신을 ‘영화와 무관한 작곡가’로 불리길 원했는데 이는 대중 예술로서의 영화 음악을 사랑하면서도 순수 음악의 가치를 놓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스카상은 말년에야 주어져 2007년 아카데미 공로상, 2016년 쿠엔틴 타란티노의 「헤이트풀8」으로 경쟁 부문 첫 수상을 했다. 생애 내내 명성과 화려함을 경계하며 로마를 떠나지 않았고, 세상을 떠나며 “나는 죽음을 받아들이며 겸허히 떠난다”라는 자필 고별사를 남겼다. 그의 음악은 휘파람 한 소절, 하모니카 한 음만으로도 세계 관객을 사로잡는 ‘음악적 아이콘’을 창조했으며, 영화와 음악이 하나로 결합해 인간의 감정을 건드릴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 점에서 모리코네는 단순한 영화음악가가 아니라 20세기 문화사에서 “영화가 스크린을 넘어 귀로도 기억되는 예술”임을 입증한 작곡가라 할 수 있다. 한편 이탈리아 음악사의 맥락 속에서 보면 그는 팔레스트리나의 교회음악, 몬테베르디의 오페라, 비발디(1678~1741)의 기악, 로시니(1792~1868)의 희가극, 베르디(1813~1901)의 민족주의 오페라, 푸치니(1858~1924)의 낭만적 오페라를 잇는 계보 위에 서 있으며, 20세기 영화 음악을 통해 새로운 장르에서 또 하나의 ‘이탈리아 음악 거장’으로 자리 잡은 존재였다.

 

단테 알리기에리 Dante(1265~1321)는 이탈리아 르네상스 초기의 시인이자 피렌체 귀족 가문 출신으로, 대표작 「신곡」에서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지옥과 연옥을 지나고, 연인 베아트리체의 인도로 천국에 이르는 영혼의 여정을 서사시로 그려냈다. 「신곡」에서 중요한 상징 가운데 하나는 별이다. 별은 인간 영혼의 여정을 비추는 핵심 모티프이며,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의 마지막 구절에 모두 등장한다. 지옥Inferno에서 단테는 지옥을 빠져나와 “그리고 우리는 다시 별들을 보러 나왔다”라고 말하며, 절망 속에서 희망으로 나아감을 보여준다. 연옥Purgatorio에서는 정화를 마친 단테가 “나는 순수해지고 별들을 향해 오를 준비가 되었다”라며 영혼의 상승과 준비를 나타낸다. 천국Paradiso에서는 단테가 신적 빛을 체험하며 “태양과 다른 별들을 움직이는 사랑”이라 선언하며 신적 질서와 우주의 원리를 강조한다. 이렇게 별은 지옥에서는 희망, 연옥에서는 정화와 준비, 천국에서는 신적 사랑과 우주의 원리를 나타내며, 작품 전체의 마지막 단어 역시 “별들 stelle”로 끝나 영혼의 궁극적 지향점을 상징한다. 단테는 별자리 묘사를 통해 작품 속 시간과 공간을 표시하며, 독자에게 중세 우주관과 천문학적 질서를 느끼게 한다. 한편 단테는 피렌체에서 어린 시절 짝사랑했던 베아트리체Beatrice를 「신곡」 전체의 영적 여정의 중심 인물로 삼았다. 베아트리체는 단테의 이상적 사랑과 신적 계시의 매개체로, 지상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영혼의 정화와 천국으로 나아가는 길에서 영적 지침으로 기능한다. 피렌체에는 베아트리체가 기도를 드렸다고 전해지는 작은 교회가 남아 있어 단테의 사랑과 문학적 영감이 현실과 연결된 흔적을 보여준다.

 

피렌체는 르네상스 미술의 중심지로, 수많은 걸작들을 만날 수 있는 도시이다. 피렌체를 대표하는 미술관 중 하나인 우피치 미술관에는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이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은 신화 속 여신 비너스가 바다에서 탄생하는 장면을 화려하고 우아한 선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르네상스 회화로 인류 예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피렌체 아카데미아 미술관에는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원본 조각상이 전시되어 있다. 이 작품은 청년 다비드가 골리앗에 맞서기 전의 긴장된 순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걸작으로, 르네상스 조각의 절정을 보여준다. 한편 시뇨리아 광장에는 이 진품 조각상의 복제본이 세워져 있어 누구나 도시 한복판에서 다비드를 감상할 수 있다. 피렌체에는 이외에도 수많은 예술작품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의 쿠폴라 내부에는 브루넬레스키의 건축적 천재성과 함께, 조토와 그의 후계자들이 장식한 프레스코화가 있으며, 산 로렌초 성당과 메디치 리카르디 궁전에서는 미켈란젤로, 도나텔로, 기베르티 등 다수 예술가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여기서 ‘두오모Duomo’는 이탈리아어로 ‘대성당’을 뜻하며, 사람들은 종종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을 피렌체의 두오모라고 부른다. 또한 팔라초 피티와 보볼리 정원에서는 르네상스 이후 바로크, 로코코 시기의 회화와 조각, 정원 조형까지 폭넓게 경험할 수 있다. 피렌체는 단순한 미술관과 조각상 이상의 도시로, 도시 전체가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처럼 건축, 회화, 조각이 녹아 있다. 이탈리아는 로마라는 거대한 제국의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어, 피렌체 역시 역사적 흔적과 예술적 유산을 보존하기 위한 복원 작업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맥락은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에서도 언급되며, 과거와 현대, 예술과 일상, 기록과 복원이 맞닿아 있는 피렌체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3세기 이후 베네치아는 아시아 향신료와 동방 직물 무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이 과정에서 갤리선은 단순한 군함을 넘어, 경제적 수송과 군사적 활용을 동시에 담당하는 핵심 수단이었다. 갤리선은 노와 돛을 함께 사용했기 때문에 바람이 불지 않아도 이동할 수 있었고, 얕은 항로에서도 운항이 가능하여 속도와 기동성이 뛰어났다. 당시 해상 무역과 전쟁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갤리선은 공격과 방어 모두에 적합한 구조를 갖추고 있었다. 베네치아 상인들이 사용한 갤리선은 지중해 무역망을 효율적으로 연결하며, 유럽과 동방 간 향신료, 직물, 금속 등의 교역을 활성화했다. 결과적으로 대항해시대(15~17세기)가 시작되기 전 이미 베네치아는 500년 이상 조선 기술을 축적해 왔으며, 이러한 기술력은 이후 대서양과 세계 무역망 개척에 큰 영향을 미쳤다. 베네치아는 갤리선의 설계와 대량 생산에서 주도적 역할을 했고, 다른 유럽 국가들은 베네치아식 갤리선과 조선 기술을 모방하거나 변형하여 사용했다. 유럽 국가들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로 진출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러한 선박 기술과 항해술이 핵심적 역할을 했다. 대항해시대의 항해사와 상인들은 갤리선을 비롯한 조선 기술을 기반으로 새로운 항로 개척과 세계 무역 확장에 나설 수 있었던 것이다. 위의 삽화는 콘라트 그뤼넨베르크Konrad Grünenberg라는 독일 기사이자 여행가가 1486년에 작성한 순례기 Pilgerfahrt ins Heilige Land에 포함된 그림이다. 이 그림의 주제는 「베네치아 갤리선 Venetian galley」으로, 그는 1486년 콘스탄츠에서 출발해 베네치아를 거쳐 예루살렘까지 순례 여행을 다녀온 뒤 이를 세밀하게 기록하고 삽화를 남겼다. 

 

베니스는 약 100여 개의 섬 위에 세워진 도시로, 원래 자연 지형은 늪지대와 석호이다. 오늘날 곤돌라가 다니는 운하는 대부분 바다나 자연에 의해 형성된 것이 아니라, 인공적으로 물을 들여보내 배와 곤돌라의 운송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만든 수로이다. 도시의 지반 대부분은 진흙으로 이루어져 있어, 초기 베니스 사람들은 그 위에 나무 말뚝을 박아 건축 기초를 세우고 그 위에 건물을 올리는 방식을 사용했다. 베네치아의 대표적인 대운하Grand Canal 역시 사실상 인공 수로로, 자연 수로 일부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대부분 계획적으로 파낸 것이다. 운하 양쪽으로 늘어선 건물들도 모두 말뚝 기초 위에 지어졌으며, 이 운하는 도시 구조의 핵심 역할을 하고 있다. 전기, 수도, 통신, 가스 등 현대 도시 인프라는 물속에 건설할 수 없으므로 바로 아래 얕은 지하에 묻어 설치되어 있다.

“베네치아는 역사상 가장 놀라운 도시국가의 탄생 과정을 보여주는데, 이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라구나 습지대에서 시작되었다. 롬바르드족의 침입을 피해 베네토 평원의 주민들이 아드리아해 연안의 작은 섬들로 피난한 것이 베네치아의 시작이었다. 이 섬들은 바닷물이 드나드는 석호지대에 위치하여 천연의 방어벽 역할을 했으며, 이는 후에 베네치아가 천 년이 넘도록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은 주요 원인이 되었다. 초기 정착민들은 나무 말뚝을 진흙 속에 박아 넣어 건물의 기초를 만들었는데, 이는 놀랍게도 해수에 잠긴 나무가 석화되어 더욱 단단해지는 자연현상을 활용한 것이었다. 이러한 건축 방식은 후에 베네치아의 상징적인 건축 양식이 되었으며, 리알토 다리나 산마르코 광장과 같은 웅장한 건축물들의 기초가 되었다. 아드리아해의 북쪽 끝에 위치한 베네치아는 유럽과 동방을 연결하는 무역의 교차로였다. 초기에는 소금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는데, 라구나의 염전에서 생산된 소금은 당시 육류 보존에 필수적인 물품이었다. 베네치아 상인들은 이 소금을 내륙으로 운송하여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또한 목재 무역도 중요한 수입원이었는데, 특히 조선에 필요한 질 좋은 목재를 달마티아 해안에서 조달했다. 이러한 기초 물자의 무역을 통해 축적된 부는 후에 더 큰 규모의 동방 무역을 위한 초기 자본이 되었다. 베네치아의 해상 지배력은 그들의 뛰어난 조선 기술에 기반을 두었다. 베네치아의 아르세날레는 당시 세계 최대의 조선소였으며, 혁신적인 생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특히 갤리선의 제작에서 베네치아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는데, 이들은 전투와 무역에 모두 적합한 설계를 발전시켰다. 베네치아의 갤리선은 속도와 기동성이 뛰어났으며, 얕은 흘수로 인해 연안 해역에서도 효과적으로 운용될 수 있었다. 이러한 기술적 우위는 베네치아가 해상에서 군사적, 경제적 패권을 유지할 수 있게 한 핵심 요소였다. 「중세 이탈리아 해상 공화국과 지중해 상권」”

 

사순절 시작인 재의 수요일 전 열흘 전을 전후하여 전통적으로 카톨릭 국가들에서는 카니발Carnival, 즉 한국어로 사육제가 열린다. 사육제四肉祭라는 말 자체는 “고기를 먹지 않는 축제” 또는 “고기를 사양하는 축제”라는 뜻으로, 사순절이라는 금욕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마지막으로 고기와 풍성한 음식을 즐기며 축하하는 날을 의미한다. 사순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절을 준비하며 금욕과 절제를 실천하는 기간으로 특히 육식을 자제하는 풍습이 있다. 이에 따라 카니발은 문자 그대로 “고기를 잠시 멀리한다”는 의미를 가지면서도, 금욕의 엄격한 시작 전에 즐거움과 해방감을 만끽하는 축제적 기능을 수행해왔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3대 카니발은 각기 독특한 문화적 특색을 지닌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카니발은 삼바 퍼레이드와 화려한 의상, 대규모 군중 참여를 통해 축제적 에너지를 극대화하며, 관람과 참여가 결합된 역동적 집단 경험을 제공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카니발은 정교한 가면과 복식을 중심으로 발전했는데, 가면 무도회는 르네상스 시대 귀족들이 신분과 사회적 제약을 잠시 벗어나 자유를 즐기기 위해 시작한 행사로, 반복되고 격식에 얽매인 무도회가 지루해지면서 새로운 흥미와 자유를 제공하기 위해 가면이 도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당시 가면은 얼굴과 신분을 숨겨 평민과 귀족, 남성과 여성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연애, 농담, 풍자, 정치적 논쟁까지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익명적 장치였으며, 금박, 깃털, 진주 등으로 장식되면서 단순한 얼굴 가림을 넘어 예술적·문화적 상징이자 귀족 사회의 시각적·사회적 과시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프랑스 니스 카니발은 거리 퍼레이드에서 꽃과 색채, 풍자적 요소를 활용하며, 시민 참여와 유머가 결합된 지역적 특색을 보여준다. 따라서 카니발과 가면 무도회는 단순한 축제를 넘어 사순절 전 금욕과 사회적 규범 속에서 인간의 창의성과 자유, 쾌락을 체험하고 표출하는 문화적·사회적 장치라 할 수 있다.

 

마피아Mafia는 본래 시칠리아 마피아를 가리키는 말이었으나, 시칠리아 마피아와 유사한 방법과 목적으로 활동하는 다른 조직들까지 포괄하는 의미로 확장된 것이다.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는데, 하나는 사들의 구호였던 “Morte Alla Francia Italia Anela!”, 즉 “프랑스인의 죽음을 이탈리아는 원한다”의 이니셜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며, 다른 하나는 도적들에게서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부재 지주들이 만든 소규모 사병 조직 ‘채석장 mafie’에서 유래했다는 설, 또는 ‘기세등등하다 mafioso’라는 단어에서 비롯됐다는 설이다. 시칠리아는 수차례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법과 질서를 따르지 않는 은둔 세력들이 많았고, 사람들은 그들을 일종의 자경단으로 여기며 정의로운 집단으로 취급했다. 오늘날에도 악명을 떨치는 갱단이나 마약 카르텔 역시 대부분 자경단에서 시작되었으나, 훗날 조직화되고 범죄 중심으로 변질된 것이다. 영화 「대부」에서는 시칠리아계 이민자를 중심으로 한 가족 조직이 주인공으로 보스를 중심으로 계층화된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혈연과 조직이 결합된 ‘패밀리’ 개념, 배신을 금하는 ‘침묵의 법칙’(오메르타 Omertà), 폭력과 정치·사업을 혼합한 권력 확장, 명예와 의리에 따른 복수와 협상 등 인간적 갈등과 서사를 강조한다. 이는 20세기 초 미국에서 실제로 활동하던 이탈리아계 마피아와 직접 연관된다. 오메르타는 시칠리아 마피아의 규칙이자 일종의 마피아 십계명으로, 조직원에게 배신을 금하고 충성을 강제하는 핵심 규율이다. 현실의 미국 마피아는 19세기 시칠리아에서 시작해 미국으로 이주하며 범죄와 정치·경제적 유착을 통해 권력을 확대했으며, 특히 1920~1933년 금주법 시대에는 주류 밀매를 통해 엄청난 부와 영향력을 쌓았다. 이 시기 미국 마피아의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알 카포네로, 그는 시카고에서 금주법을 악용하며 압도적인 자금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암흑가를 제패했다. 영화 「대부」는 이러한 현실 마피아를 배경으로 하면서 가족 중심 서사와 인간적 고민, 명예와 의리를 강조한 과장된 드라마적 묘사라 볼 수 있다. 서양사회에서는 남자들의 대부분이 「대부」의 대사를 외우다시피 하며 일상에서 종종 인용하는데, 이는 동양에서의 「삼국지」나 「손자병법」과 비슷하게 남성 세계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것이다. 나의 어린 시절에도 가부장적 문화가 있었고, 아버지는 자녀에게 유산을 물려주거나 정신적 가르침을 주는 역할을 중요하게 여겼으며, 특히 아들에게는 미래의 재목으로 성장하도록 리더십과 지혜를 배우게 하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나 역시 퇴근길에 아버지가 「삼국지」와 「손자병법」 을 구입해 오셨고, 당시 중학생이던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책들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는 음식, 와인, 역사, 패션 브랜드 등 다양한 테마 여행이 가능한 나라지만, 그중 많은 사람들이 손꼽는 매력은 바로 건축이다. 오랜 역사 속에서 시대별로 독창적인 건축 유산을 남겼는데, 고대 로마의 콜로세움은 석재와 콘크리트를 활용한 거대한 원형 경기장이자 로마 제국의 상징이며, 판테온은 완벽한 비례의 돔과 중앙의 오큘루스로 건축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한 로마 수로Aqueducts는 아치 구조를 활용해 도시로 물을 공급한 대표적 토목 기술의 산물이다. 중세에는 로마네스크 양식의 피사의 사탑과 화려한 고딕 양식의 밀라노 대성당이 세워졌으며, 르네상스 시기에는 브루넬레스키가 설계한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대성당 돔과 미켈란젤로가 참여한 성 베드로 대성당, 그리고 궁전 건축의 전형으로 꼽히는 팔라초 피티가 대표적이다. 이어지는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에는 영화 「로마의 휴일」에 등장하며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트레비 분수와, 베르니니가 설계해 성 베드로 대성당 앞에 웅장하게 펼쳐진 산피에트로 광장이 걸작으로 남아, 이탈리아 건축의 역사와 미학을 오늘날까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탈리아인의 삶에서 가족이 갖는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이탈리아에서 가족은 당신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고, 당신의 고용주이며, 당신의 부탁을 들어주고 또 당신이 부탁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일상에서도 이탈리아인들은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그들에게 가족은 나의 뿌리이자 사회의 기반을 마련해준 소중한 존재다. 이탈리아의 사업체 중 다수는 가족이 경영하는 가족기업으로, 창업자는 그 아들이나 딸에게 물려준다. 이탈리아인들은 가족을 매우 소중하게 생각하며, 어린 시절부터 알아온 누군가가 있다면 그 또한 가족의 일원으로 여긴다. 한 외국업체가 수년간 부진한 실적을 낸 이탈리아의 유통업체와 계약을 종료하자, 이탈리아 업체의 대표가 흥분해서 이렇게 항의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 4살 때부터 당신을 알아왔잖아요! 당신이 저희 아버지와 협상할 때 전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있었다고요!” 이 말인즉슨, “가족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요?”였다. 「세계 문화 여행, 이탈리아」❞

 

성서와 과학이 늘 맞부딪히는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창조론과 진화론이다. 나는 진화론을 믿으면서 동시에 창조론도 믿는다. 오래전 쓴 글에서 이같은 나의 견해를 밝힌 바 있다. 요약하자면 창세기의 기록처럼 동물들도 아담과 마찬가지로 본래는 ¨각성¨된 존재였다. “하느님께서 너희는 동산에 있는 어떤 나무 열매도 따 먹지 말라고 하셨느냐? 너희는 결코 죽지 않는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 너희 눈이 열려 하느님처럼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하느님께서 아시고 계신다.” 그러나 어느 시점 이후 인간을 제외한 모든 생명은 ¨망각¨ 속으로 빠졌고, 다만 그때의 흔적이 본능이라는 형태로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개미나 벌의 집단을 보면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인간보다 더 ¨각성¨된 듯한 행동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위의 관점을 떠올리며 생각해보면, 그러한 현상 또한 어느 정도 납득이 된다. 공룡이 존재하던 시기, 인간과 유사한 포유류는 눈에 띄지 않게 살아가고 있었다. 그때 인간은 신의 섭리에 따라 ¨망각¨ 속에 있었으며, 공룡이 ¨각성¨된 존재로서 오랜 세월 지구를 지배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공룡이 살았던 중생대 역시 ❝진화❞의 한 과정일 수 있으며, 트라이아스기·쥐라기·백악기에 걸친 공룡의 존재 또한 ❝창조❞의 한 과정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어느 시기가 곧 ‘안식일’인가 하는 점이다. 식물들조차 서로 소통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드러난 오늘, 같은 맥락에서 동물들 또한 저들만의 방식으로 대화하고 있거나, 혹은 과거 ¨각성¨시 충분히 그러했을 것이라 본다. 모든 동물에게 가장 큰 의문은 ‘모성애’다. 그러나 그것이 ❝창조❞에서의 ¨각성¨ 후 ❝진화❞과정에서의 ¨망각¨이라 여기면 모든 것이 이해된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심리학자 윌리엄 제임스가 “우리는 우리의 잠재능력 중 일부만을 사용한다”라고 말한 것, 그리고 “아인슈타인이 인간은 뇌의 10%만 사용한다”라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다. 실제로 인간의 뇌는 항상 100%가 동시에 활성화되는 것은 아니다. 만약 어느 순간 뇌가 50%, 혹은 75%까지 더 높은 수준으로 ¨각성¨한다면,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지도 모른다. 만약 우리가 위에서 제시한 ❝창조❞와 ❝진화❞의 시간 개념이 불편하다면, 최고의 지성이라 불린 스티븐 호킹이 제안한 허수 시간imaginary time을 떠올려 보자. 그 속에서 모든 힘은 하나의 초힘으로 통일되었다가, 플랑크 시간(≈ 5.39 × 10⁻⁴⁴초)이 지나면서 중력·전자기력·약력·강력으로 각각 분리된다. 이처럼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찰나刹那나 중생대의 긴 시간도 창조주에게는 순간일 수도, 영원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 인구 약 800명에 불과한 바티칸 시국에는 세계 유일하게 ATM에 라틴어 사용 옵션이 있을 정도로 독특한 면이 있다. 바티칸은 로마 한복판에 있지만 이탈리아에 속하지 않는 독립국으로, 1929년 라테라노 조약을 통해 이탈리아 왕국과 교황청이 합의하여 주권을 인정받았다. 국경선조차 뚜렷하지 않아 ‘도시 속의 나라’처럼 보이지만, 이탈리아 정부의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운영된다. 군대 대신 교황을 지키는 스위스 근위대가 있고, 유로화를 쓰지만 자체적으로 발행하는 희귀한 유로 주화도 존재한다. 흥미롭게도 이탈리아 사람들은 바티칸을 엄밀히 독립국으로 인식하면서도 동시에 자국 문화권의 일부라고 여겨 자부심을 가지는데, 이런 정체성은 음식 문화에서도 엿보인다. 미국에서 피자에 파인애플을 올리자 “이탈리아 음식에 대한 모욕”으로 여겼던 반응이나, 최근 MZ세대가 긴 스파게티 면을 반으로 잘라 끓이는 것을 전통에 대한 파격으로 보고 혀를 내두르는 모습이 그것이다. 베네치아 상인의 아들로 태어난 마르코 폴로는 동방을 여행한 뒤 그 경험을 피사 출신 작가 루스티켈로 다 피사에게 구술하여 훗날 「동방견문록」으로 알려진 기록을 남겼다. 피렌체는 니콜로 마키아벨리가 태어나 공직생활을 하며 「군주론」을 집필한 도시이며, 나폴레옹은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광장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응접실”이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파리 로댕 미술관에 ‘지옥의 문’이 자리한다면, 피렌체의 두오모 세례당에는 미켈란젤로가 ‘천국의 문’이라 극찬한 로렌초 기베르티의 청동문이 있다. 학자들 다수는 셰익스피어가 실제로 베네치아를 방문한 적은 없었다고 보지만, 그의 희곡 속 베네치아 상인은 놀라울 만큼 생생하게 묘사된다. 아마도 이는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처럼 이탈리아가 이미 인류 문화의 중심에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도 인류의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탈리아 피사에 가면 ‘그래도 지구는 돈다’라는 진리를 깨닫게 된다는 점이다.

 

 

 

 

Posted by trefres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