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1943년부터 1944년 초까지 「동물농장」을 집필했다. 당시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었고, 영국과 소련은 파시즘에 맞서 싸우는 동맹 관계에 있었다. 영국 사회는 스탈린의 소련을 영웅적인 동맹국으로 바라보았기에, 오웰이 스탈린 체제를 비판하는 소설을 쓴다는 사실은 매우 민감한 문제로 여겨졌다. 실제로 많은 출판사들이 출간을 주저했으며, 영국의 대표적 시인이자 Faber & Faber 출판사의 편집장이었던 T. S. 엘리엇조차 “이 책은 지나치게 반소련적이어서 지금 시기에는 부적절하다”며 출판을 거절했다. 그러나 1945년 5월 독일의 항복으로 유럽 전쟁이 종료된 뒤, 「동물농장」은 마침내 세상에 나와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 일부에서는 여전히 이 작품을 동맹국 소련을 비난하는 반동적이며 친파시즘적 소설로 의심하였다. 오웰의 정치적 입장은 분명했다. 그는 “나는 사회주의에 동의한다”고 말하며, 자본주의가 낳은 불평등과 제국주의의 위선을 비판했다. 그의 사회주의는 오늘날 유럽 여러 나라가 구현한 민주적 사회주의에 가까웠으며, 그는 레닌과 볼셰비키가 내세운 평등, 노동자 통제, 자유의 이상에 공감했다. 오웰이 꿈꾼 사회는 수십 년 뒤 유럽의 복지국가 속에서 현실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나의 이웃사촌”이라는 사회적 연대, 보편적 사회 안전망, 그리고 평등과 포용의 원칙 자체에는 본질적 문제가 없으나, 예측할 수 없는 전쟁과 기근으로 유입된 망명·난민 인구는 이러한 체제의 지속 가능성을 시험하는 핵심 변수로 작용한다. 나는 이민 자체를 부정하지 않으며, 특히 노동력 부족에 직면한 선진국이 일정한 수준의 이민을 허용하는 정책적 판단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문제는 단순히 수용 가능한 수준을 넘어서는, 사회적 통합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수 없는 급격한 인구 유입, 즉 감당하기 어려운 규모의 인구 폭발에서 비롯된다. 이는 복지국가의 구조적 한계를 드러내며, 이상적 사회 연대와 현실적 정책 실행 사이의 긴장 관계를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한편 러시아 혁명 이후 등장한 소련은 점차 전체주의적 통제 체제로 변모했다. 오웰은 스탈린이 권력을 독점하며 사회를 지배하는 현실을 비판했다. 당시 영국의 윈스턴 처칠은 제국주의적 사고로 나라를 이끌었고, 사회 구조는 지배와 종속, 중심과 주변, 수탈과 착취로 짜여 있었다. 실제로 불평등이 제도화된 경제·정치 체계가 통용되었으며, 국가 권력은 국민을 섬기기보다 통제하는 존재였다. 이와 동시에 소련은 나치의 피해자이자 영국의 중요한 전쟁 동맹국이었다. 그럼에도 오웰은 레닌주의가 초기부터 당 중심의 권력 집중 구조를 내포하고 있음을 간파했다. 혁명을 이끈다는 명분 아래 만들어진 전위당vanguard party은 결국 스탈린의 독재로 이어질 것임을 예감한 것이다.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오웰은 반파시스트 진영인 공화파 편에서 싸웠지만, 그곳에서도 스탈린파 공산주의자들이 트로츠키파 사회주의자들을 숙청하는 장면을 목격했다. 이 경험을 통해 그는 스탈린식 공산주의가 이미 본래의 이상에서 벗어났음을 확신하게 되었다. 진영 논리 때문에 많은 공산주의자들이 침묵을 지키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혁명은 권력의 순환일 뿐”이라고 말하며, 권력이 분산되고 표현의 자유와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사회주의 사회를 꿈꾸었다.
- 돼지, 지식인·지도자 계층: 나폴레옹 — 권력을 장악해 독재자가 된 돼지. 스탈린 상징.
- 돼지, 지식인·지도자 계층: 스노볼 — 혁명의 초기 지도자. 나폴레온에게 쫓겨남. 트로츠키 상징.
- 돼지, 지식인·지도자 계층: 스퀼러 — 나폴레온의 선전 담당. 거짓말과 왜곡으로 동물들을 속임.
- 돼지, 지식인·지도자 계층: 올드 메이저 — 혁명의 사상적 창시자. 마르크스 또는 레닌 상징. 소설 초반에 사망.
- 돼지, 지식인·지도자 계층: 민저리 — 나폴레온을 찬양하는 시를 짓는 시인. 체제 선전 예술가의 상징.
- 말, 노동자 계층: 복서 — 힘세고 성실한 수말. “나는 더 열심히 일하겠다”가 모토. 노동자 계급 상징.
- 말, 노동자 계층: 클로버 — 복서를 돌보는 암말. 따뜻하고 순박한 평범한 대중 상징.
- 말, 노동자 계층: 몰리 — 인간의 사치품(리본, 설탕)을 그리워하며 떠남. 부르주아 계급 상징.
- 양, 대중 —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를 반복하는 순종적 대중 상징.
- 염소, 지식인: 머리얼 — 글을 읽을 줄 아는 염소. 비판적 지식인 상징.
- 개, 비밀경찰: 나폴레옹의 경호견들 — 어릴 때부터 길러진 충성스러운 경호견. 비밀경찰(KGB) 상징.
- 당나귀, 회의주의자: 벤저민 — 냉소적이고 현명한 당나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는 회의주의자 상징.
- 닭들 — 알을 빼앗기자 반란을 일으키지만 처형당함. 스탈린 시대 농민 반란 상징.
- 고양이 — 일은 피하고 혁명 구호만 외치며 이익을 취함. 기회주의자 상징.
- 인간들, 존스 씨 — 농장 주인.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 상징.
- 인간들, 프레드릭 — 인접 농장 주인. 히틀러 상징.
- 인간들, 필킹턴 — 또 다른 인접 농장 주인. 영국 등 서방 자본주의 국가 상징.
“자, 동무들, 우리 삶의 본질이 무엇이오? 우리 외면하지 맙시다. 우리의 삶은 비참하고, 고되고, 짧소. 우리는 태어나서 숨이 끊어지지 않을 만큼만 먹이를 받고, 힘이 있는 자들은 마지막 티끌만 한 힘이 다할 때까지 억지로 노동을 해야 하오. 그러다 쓸모가 사라지자마자 끔찍하고 잔인하게 도살당하지. 영국의 어느 동물도 한 살이 된 이후에는 행복이나 여가의 의미를 모르오. 영국의 어느 동물도 자유롭지 않소. 동물의 삶은 비참한 노예 생활이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자연의 질서일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이 너무나 가난해서 그 땅의 생명들에게 그럴듯한 삶을 보장해줄 여유가 없는 것이오? 아니야! 영국의 땅은 비옥하고 기후도 좋아서, 지금보다 엄청나게 많은 동물들이 산다 해도 먹을 것을 풍족하게 제공해줄 수 있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농장 하나만으로도 말 열두 마리, 암소 스무 마리, 양 수백 마리를 먹일 수 있을 것이오. 심지어 그 동물들 모두가 지금 우리는 거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편안함과 품위까지 누릴 수 있을 테지. 그렇다면 왜 이렇게 비참한 생활을 계속해야 하오? 우리의 노동으로 만들어진 농산물을 인간들이 거의 전부 훔쳐가기 때문이오. 인간은 생산하지 않고 소비만 하는 유일한 생물이오. 인간은 우유를 내놓지도 않고, 알을 낳지도 않고, 힘이 너무 약해서 쟁기를 끌지도 못하고, 달리기가 느려서 토끼를 잡지도 못하오. 그런데도 모든 동물의 주인이야. 인간은 동물들에게 일을 시키고, 동물들이 굶어 죽지 않을 만큼만 보상을 하고, 나머지는 자기가 다 갖는다오. 게다가 우리에게는 이 바참한 삶이나마 수명대로 마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소. 내 처지를 불평하는 것은 아니오. 나는 운이 좋은 편에 속하니까. 열두 살까지 살면서 나는 400마리가 넘는 자식을 두었소. 돼지의 자연스러운 삶을 산 것이지. 그러나 결국 어떤 동물도 잔인한 칼날을 피하지 못하오. 지금 내 앞에 앉아 있는 너희 어린 돼지들, 너희 모두 1년 안에 도살대에서 죽어라 비명을 지르게 될 것이다. 그런 끔찍한 운명은 우리 모두의 것이오. 소, 돼지, 닭, 양, 모두. 심지어 말과 개의 형편도 더 나을 것이 없소. 복서, 당신의 그 힘센 근육이 힘을 잃는 순간 존스는 당신을 폐마 도살업자에게 팔아넘길 거요. 그러면 그는 당신의 목을 베고 당신의 살을 삶아서 여우 사냥개의 먹이로 만들겠지. 개들도 나이를 먹어 이가 다 빠지고 나면, 존스가 목에 벽돌을 하나 묶어 가까운 연못에 빠트린다오. 올드 메이저”
메이저는 동물들에게 당부했다. 어떤 동물도 인간처럼 집 안에서 살거나, 침대에서 자거나, 옷을 입거나,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돈을 만지거나, 거래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그는 사흘 뒤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연설을 들은 동물들은 삶을 새롭게 바라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덩치가 크고 다소 사나운 나폴레옹과, 쾌활하며 상상력이 풍부한 스노볼은 다른 동물들을 가르치며 봉기를 준비했다. 한편 스퀼러는 통통한 몸집에 반짝이는 눈, 민첩한 동작, 날카로운 목소리를 가진 돼지였다. 그는 뛰어난 말솜씨를 지녔고, 꼬리를 흔드는 습관은 묘한 설득력을 더했다. 어느 날 술에 취한 존스 씨가 동물들에게 먹이를 주지 않고 하루를 허비하자, 굶주린 동물들은 참지 못하고 곳간을 부수어 먹이를 꺼내 먹었다. 이를 본 존스 씨가 채찍을 들고 동물들을 내리치려 했지만, 동물들은 얼떨결에 그와 일꾼들을 제압했다. 인간들을 몰아낸 동물들의 봉기는 우연한 계기로 성공했고, 그들은 농장을 완전히 장악했다. 동물들은 자신들을 억압하던 재갈과 코뚜레, 개의 목줄, 돼지와 양을 거세할 때 쓰던 잔혹한 칼들을 우물에 던져버렸다. 고삐, 곁눈가리개, 목에 걸었던 굴욕적인 먹이자루도 마당에 모아 불태웠다. 이제 그들의 세상은 새롭게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동물농장의 일곱 계명
- 무엇이든 두 다리로 돌아다니는 자는 적이다.
- 무엇이든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친구다.
- 어떤 동물도 옷을 입으면 안 된다.
-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
- 어떤 동물도 술을 마시면 안 된다.
-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
-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암소들은 젖을 짜고 다른 동물들은 건초밭에서 추수를 했다. 그러나 도구들은 인간을 위해 설계된 것이어서, 일부 동물들은 그것들을 전혀 사용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돼지들은 문제를 우회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아냈고, 실제로는 일하지 않으면서 다른 동물들을 감독하고 지시를 내렸다. 한편 힘이 센 복서는 탈곡기가 없는 곡식을 발로 밟아 왕겨를 제거하며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그는 늘 “내가 더 열심히 일하겠다!”와 “나폴레옹은 항상 옳다!”를 외치며 일에 몰두했다. 몰리는 발굽에 돌이 박혔다는 핑계로 일찍 일을 그만두었고, 고양이는 할 일이 있을 때마다 모습을 감췄다. 대신 고양이는 항상 그럴듯한 핑계를 대고, 매우 다정하게 목을 울렸다. 벤저민은 늘 자신의 고집스러운 방식으로 일하며, 게으름과 추가 작업을 모두 거부했다. 돼지들은 도구실을 본부로 삼고 동물위원회를 조직했다. 여기에는 달걀 생산 위원회, 암소들의 깨끗한 꼬리 연맹, 야생 동물 재교육 위원회, 그리고 양들의 털을 더 하얗게 만드는 운동이 포함되었다. 동물들은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돼지들은 이미 글을 완벽히 익혔다. 한편 벤저민은 글을 읽을 줄 알았지만, 그 능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개들이 새끼를 낳자 돼지들은 교육을 책임지겠다며 새끼들을 빼앗아 다락에 숨겼고, 동물들은 이 사실을 잊어버렸다. 또한 우유가 매일 돼지들의 먹이에 섞여 나가고, 떨어진 열매들은 돼지들의 복지에 필요하다는 명목으로 수집되었다. 얼마 후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비둘기들을 보내 영국 전역에 자신들의 농장에서 일어난 봉기를 알렸다. 존스 씨는 주변 농장과 사이가 좋지 않았지만, 다른 농장주들은 동물들이 운영하는 새로운 농장이 잘 관리되고 있다는 사실을 두려워했다. 어느 날 인간들이 농장으로 다가오자 동물들은 방어에 나섰고, 그들의 방어는 성공했다. 용맹함을 보인 스노볼과 복서에게는 동물훈장이 수여되었다.
날씨가 추워지자 스노볼은 언덕 위에 풍차를 세워 전기와 난방을 공급하고, 회전톱·짚 절단기·사탕무 절단기·전기 착유기 등을 사용하자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풍차 건설을 반대하며, 식량 생산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견은 방어 문제에서도 이어졌다. 농장을 지키는 방법을 두고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결국 투표가 열렸고, 동물들은 본능적으로 자신들의 복지에 더 이로운 쪽을 따르려 했다. 하지만 회의 도중, 등 뒤에서 거대한 개 아홉 마리가 나타나자 모두 공포에 질렸다. 스노볼은 간신히 문 밖으로 달아났고, 개들은 그를 맹렬히 쫓았다. 이후 나폴레옹이 회의를 장악했다. 스퀼러는 나폴레옹이 모든 동물을 평등하게 대한다며 그를 따르자고 설득했다. 일부 동물들은 스노볼이 외양간 전투에서 용감히 싸웠다는 사실을 떠올렸지만, 스퀼러는 “규율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리하여 스노볼은 반역자로 규정되었다.
동물들은 다시 노예처럼 일하기 시작했고, 나폴레옹은 일요일 오후에도 일을 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풍차 건설은 재개되었다. 존스 시절보다 많이 먹지는 못했지만, 최소한 먹이가 줄지는 않았다. 그러나 파라핀유, 못, 끈, 개 사료, 말의 편자에 쓸 철 등은 농장에서 생산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한편 인간들은 동물농장을 증오하며 풍차가 무너지기를 바랐다. 이 무렵 돼지들은 “조용히 일할 공간이 필요하다”며 존스가 살던 집으로 들어갔다. 곧 나폴레옹이 인간들과 거래하고 침대에서 잔다는 소문이 돌았다. 거센 남서풍이 불던 어느 날, 반쯤 완성된 풍차가 하룻밤 사이 무너졌다. 나폴레옹은 즉시 스노볼의 소행이라며 그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추운 겨울, 식량은 바닥나고 동물들은 혹한에 시달렸다. 결국 나폴레옹은 달걀을 팔기로 결정했으나, 닭들은 반발하며 알을 깨뜨려버렸다. 스퀼러는 “스노볼이 밤마다 몰래 농장에 들어와 파괴 공작을 벌이고 있으며, 핀치필드 농장에 팔려가 우리를 공격하려 한다”고 발표했다. 얼마 후 나폴레옹은 스노볼과 내통한 혐의로 몇몇 돼지들을 처형했다. 혁명 때 불리던 ‘잉글랜드의 동물들’은 폐기되고, 새로운 노래가 만들어졌다. 다시 풍차 건설이 시작되었지만, 노동의 강도는 더 세졌다. ‘동무 나폴레옹’이라는 시가 발표되어, 나폴레옹은 위대한 지도자이자 군주로 찬양받았다. 풍차가 거의 완공될 즈음, 인간들과의 전쟁 소문이 돌았고 스노볼에 대한 비난은 더욱 심해졌다. 결국 전투가 벌어졌다. 동물들은 필사적으로 싸웠고, 복서는 다리에 총알을 맞으면서도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전투는 힘겨웠지만, 승리는 동물들의 것이었다. 전투 후 돼지들은 집 지하실에서 위스키 한 상자를 발견해 밤새 파티를 벌였다. 그리고 얼마 뒤, 일곱 계명 중 다섯 번째는 이렇게 바뀌었다. “어떤 동물도 지나치게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세월이 흐르면서 돼지들의 수는 늘고, 노동은 더 고되며 배급은 줄어들었다. 동물농장은 공화국으로 선포되었다. 늘 성실히 일하던 복서는 결국 쓰러졌고, 마차에 실려 인간 의사에게 보내졌다. 그러나 당나귀 벤저민은 마차에 쓰인 글자를 읽고, 그것이 도살업자의 마차임을 깨달았다. 돼지들은 간판을 바꾸지 않았다고 해명하며 복서가 평화롭게 숨을 거두었다고 발표했다. 세월이 흐르자 혁명을 기억하는 동물들은 하나둘 세상을 떠났다. 농장은 번창했지만, 윤택해진 것은 돼지와 개들뿐이었다. 대부분의 동물은 굶주림과 끝없는 노동에 시달렸다.
이제 돼지들은 두 다리로 걸었다. 그리고 외쳤다.
“네 다리는 좋다, 두 다리는 더 좋다! 네 다리는 좋다, 두 다리는 더 좋다!”
벽에는 단 하나의 계명만이 남아 있었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더 평등하다.”
잠시 프랑스의 현실을 돌아보자.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프랑스 시민들이 왜 그렇게 자주, 그리고 그렇게 격렬하게 시위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 이유는 단순한 경제적 불만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프랑스 사회에서 “부의 재분배” 요구가 강하게 제기되는 것은, 그것이 현대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구조적 불평등의 심층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평등 요구는 단순한 질투나 불만의 표출이 아니라, 존 롤스(John Rawls)가 말한 ‘실질적 평등 substantive equality’, 혹은 ‘정의로운 분배 just distribution’의 철학적 맥락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롤스에 따르면 사회적 정의란 단지 기회의 문을 여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태어날 때부터 주어진 우연적 조건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났다(Born with a silver spoon in one’s mouth)”는 말이 상징하는, ‘타고난 DNA’나 사회적 불평등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차이를 완화하려는 시도다. 이를 구체적으로 생각해보자. 부자가 100달러를 버는 데 필요한 노력과 재능, 그리고 평범한 시민이 같은 금액을 벌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노력과 재능은 과연 동일한가? 두 사람이 모두 같은 운동선수이고, 비슷한 체격과 동일한 훈련 시간을 가진다고 해도, 한 명은 팀의 에이스로 세계적 구단에 입단하고, 다른 한 명은 겨우 기간제 체육교사가 된다. 기회의 문은 열려 있어 보이지만, 출발선의 차이는 이미 ‘타고난 차이’로 인해 불평등하다. 인간이 ‘이기적인 유전자’의 산물이라는 생물학적 사실에만 매달린다면, 우리는 다시 우생학의 환상 속으로 퇴행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왜 차별이 복지의 원리가 될 수 있는가? 이는 역설적으로 들리지만, 복지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차별받는 계층에 집중해야 한다는 원칙을 의미한다. ‘보편적 복지’가 사회 구성원 전체의 최소한을 보장한다면, ‘선별적 복지’는 태생적 불리함, 즉 평범한 DNA나 사회적 약점으로 인해 불평등한 위치에 선 사람들에게 보다 많은 자원을 배분함으로써 실질적 평등을 추구한다. 롤스의 ‘무지의 장막 Veil of Ignorance’은 이러한 논리를 뒷받침하는 철학적 장치다. 이는 개인이 자신의 사회적 지위, 재산, 능력 등을 알지 못한 채 사회의 정의 원칙을 합의하는 가상적 상황을 뜻한다. 이 장막 뒤에서 우리는 자신이 부자가 될지, 가난한 자가 될지, 혹은 사회적 약자가 될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합리적인 사람이라면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 최대의 이익이 돌아가도록 하는 원칙, 즉 ‘차등의 원칙 difference principle’에 동의하게 된다. 프랑스 사회의 부의 재분배 요구는 바로 이러한 철학적 직관에서 출발한다. 단순한 경제 정책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함께 살아갈 것인가’라는 윤리적 물음에 대한 집단적 응답인 셈이다. 프랑스 시민의 시위는 그래서 분노의 폭발처럼 보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의로운 사회 질서에 대한 깊은 사유와 실천의 전통이 흐르고 있다. 따라서 자유(Liberté)와 평등(Égalité)을 지키기 위해 서로와 함께하는 박애(Fraternité)는 필연적이다.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쓴 목적을 단순히 반정부주의로 단정하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적어도 그는 모든 권력에는 감시와 견제가 필요하다는 의미에서 독재와 혁명의 내재적 모순을 조명하고자 했다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흔히 묻는다. 왜 특정 국가의 국민들은 분노하지 않는가, 왜 그 나라에서는 민주화를 위해 봉기하지 않는가라고. 그러나 역사를 면밀히 살펴보면 거의 모든 사회가 「동물농장」이 보여준 경로를 거쳐왔다. 권력자가 국민과 진정으로 평등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드물다는 현실이 이를 입증한다. 대중은 겉으로는 침묵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수없이 외친다. 모두가 평등하지 않으며, 일부는 다른 이들보다 ‘더 평등’하다는 사실을 내재적으로 인식하면서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지켜야 할 가족이 있고, 보호해야 할 재산이 있으며,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삶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오웰이 지식인들을 비판했다고 해서 국가로부터 처벌을 받거나 그의 소설이 금서로 지정된 것은 아니었으며, 이러한 권력의 침묵조차 소중한 자유의 일부임을 시사한다. 볼테르는 이를 단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당신의 말을 싫어한다. 그러나 당신이 그 말을 할 권리를 나는 죽도록 옹호할 것이다.” 이러한 자유는 단순한 권리를 넘어, 사회적 삶에서 지켜야 할 의무이기도 하다. 미국 백악관에서 매년 열리는 기자 만찬(WHCD)은 바로 이러한 자유와 권리의 상징이라 할 수 있다. 1921년 단순한 만찬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1950년대 이후 대통령이 참석하며 유머와 자기 풍자를 곁들인 전통으로 자리잡았고, 리처드 닉슨 이후 본격적인 유머 연설이 정착하면서 오바마, 조지 W. 부시처럼 언론과 대중 앞에서 농담을 주고받는 문화로 발전했다. 해리 S. 트루먼, 드와이트 D. 아이젠하워, 존 F. 케네디, 리처드 닉슨, 제럴드 포드, 지미 카터,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버락 오바마, 조 바이든 등 거의 모든 대통령이 이 만찬에 참석했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번이라도 펜을 들어 자신의 생각을 주장한 사람이라면, 이러한 자유는 마땅히 수호해야 할 의무이며, 민주주의든 공산주의든 전체주의적 방법에 힘을 실어주면 그 방식이 결국 자신에게도 되돌아올 수 있다는 사실을 오웰은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한 민족, 한 국가, 한 지도자”나 “전 세계의 프롤레타리아, 단결하라!”와 같은 슬로건을 내세우는 전체주의, 즉 공동체·국가·이념을 개인보다 우위에 두고 개인을 전체의 존립과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사상과 파시즘 체제는, 언제든 극단으로 치닫거나 독재 정치로 전환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그렇다. 백일몽에 사로잡힌 사회 교사의 지적 탈선은, 지식과 권위를 지닌 사유가 현실의 한계를 넘어설 때, 그 위험이 극한에 이른다.
우리는 이제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임금님이 벌거벗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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