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은 현재 공화국으로, 과거의 입헌군주제 체제는 2008년 왕정 폐지 이후 종료되었으며, 양원제를 포함한 연방 민주공화국 체제를 운영하고 있다. 네팔Nepal이라는 이름은 고대 네와르 왕국을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네파 Nepā’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유력하며, 이는 ‘네의 나라’ 혹은 ‘네 민족의 땅’으로 해석될 수 있다. 네팔의 수도는 카트만두Kathmandu이며, 2021년 인구조사 기준으로 약 29,164,578명이 거주한다. 인종 구성은 몽골계Tibeto-Burman와 인도아리아계Indo-Aryan가 주요 집단이며, 네와르Newar, 타루Tharu, 구룽Gurung, 라이Rai, 림부Limbu, 셰르파Sherpa 등 다양한 민족이 존재한다. 인구의 상당수는 농업에 종사하며, 지형적으로 산악지대, 분지, 계곡 지역에 거주한다. 주산작물로는 쌀과 보리가 있으며, 가축으로는 소와 양 등이 키워진다. 카트만두는 전통적으로 많은 힌두사원과 불교사원이 도시 곳곳에 위치해 있어 “사원의 도시 Temple City”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네팔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라나Rana 가문의 사실상 과두 지배로 매우 폐쇄적인 통치를 유지했으나, 1950–51년 트리뷴 왕의 망명과 민주세력의 반발을 계기로 라나 전제가 붕괴했다. 이후 여러 정치적 격변을 거쳐 2008년 5월 공식적으로 왕정이 폐지되었고, 2015년 제정된 새 헌법을 통해 연방민주공화국으로 전환되었다. 새 헌법은 7개 주로 구성된 연방제와 지방자치 강화를 규정하며, 의회는 양원제를 채택한다. 연방 의회는 하원 275석(165석 단순다수 FPTP + 110석 비례대표)과 상원 59석(주별 선출 56석 + 대통령 임명 3석)으로 구성되며, 의원 임기와 선출 방식은 헌법과 선거법으로 규정된다. 지형 특성상 농업과 축산이 많은 가구 생계를 지탱하며, 농업의 GDP 기여는 약 24% 내외지만 고용 비중은 약 60% 수준으로 추산된다. 경제적으로는 이주 노동과 송금에 크게 의존하며, 2023년 기준 송금 규모는 약 110억 달러(USD, GDP의 약 26~27%)로 평가되며, 해외 근로자 수는 집계 방법에 따라 약 400만~590만 명으로 추정된다. 송금 채널은 전통적 은행과 Western Union 등, SWIFT와 께 eSewa, Khalti, IME/IME Remit 같은 핀테크·전자지갑 경로가 빠르게 확산 중이며, SNS는 송금 지시, 연락, 훈디같은 비공식 네트워크 연결 수단으로 자주 활용된다. 정치·사회적 변화도 최근 매우 급격히 진행되고 있다. 2025년 9월, 정부가 26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등록 규제 미준수 등의 이유로 금지하면서 젊은 세대, 특히 Z세대를 중심으로 전국적인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다. 소셜미디어 금지가 발단이었지만, 시위는 nepo‐kids라 불리는 정치권 자녀들의 특권, 권력 남용, 불투명한 정부 운영, 20%이 넘는 청년 실업률 등의 문제를 쟁점으로 삼았다. 시위 과정에서 의회 건물, 정부청사, 경찰서 등이 방화 또는 파괴되었고, 경찰·군이 진압에 나섰으며 최소 72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부상했다. 이 압력으로 당시 총리 KP 샤르마 올라가 사임하고, 이후 수실라 카르키가 임시 총리로 임명되며 여성 리더십이 부각되었다. 네팔은 이렇게 역사적·정치적 격변과 다양한 민족, 경제적 특수성을 동시에 지닌 나라로, 산악지대와 평야,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복합적인 사회 구조를 갖추고 있다.

네팔의 역사와 지정학을 이야기할 때 시킴왕국을 간과할 수 없다. 그것은 히말라야 동부, 현재 인도의 서벵골 주와 접한 소규모 왕국으로, 청나라와 티베트, 인도 왕국들과 외교적 균형을 유지하며 자치적 통치 체제를 이어갔다. 주요 경제 활동으로는 차, 약초, 가축 생산이 있었고,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티베트와 인도·중국 사이를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다. 18~19세기 영국 동인도회사가 인도를 장악하면서 시킴의 전략적·경제적 중요성이 부각되었으며, 영국은 히말라야 완충지대 확보와 티베트·중국과의 무역, 차 산업 개발을 목표로 접근했다. 1817년 틸푸리아 조약으로 시킴은 영국의 보호를 인정하면서도 내부 자치권을 유지했으나, 1861년 텐크야 조약을 통해 외교권과 국방권을 상실하며 사실상 영국 보호국으로 편입되었다. 이후 영국은 시킴의 차 산업과 교역망에 영향력을 확대하고 내부 정치·사회 구조에도 점진적으로 개입하였다. 시킴은 독립 왕국으로서 일부 권한을 유지하면서도, 영국에게는 티베트·중국과의 외교·무역에서 중요한 전략적 교두보가 되었으며, 위로는 티베트, 양옆으로는 부탄과 네팔이 위치했고, 현재 인도의 한 주에 속하지만 주로 티베트계 부티아인과 네팔계 민족이 거주한다. 한편 네팔의 공산주의 운동은 1949년경 시작되었으며, 점진적 개혁과 민주적 참여를 강조하는 네팔 공산당UML, 1996~2006년 내전에서 마오이스트 게릴라 활동을 주도한 마오이스트센터, 소규모 통일사회주의 등 여러 계파로 구성된다. 1990년대 민주화 이후 공산당 계열 정당들은 여러 차례 정권을 잡거나 연정에 참여했으며, 2008년 공화국 전환에서도 마오이스트가 큰 역할을 했다. 현재 UML과 마오이스트센터는 네팔 의회에서 중요한 좌파 세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사회·경제 정책과 정부 연정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외교적으로 네팔은 1955년 중국과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이후 인도와 중국 사이의 전략적 완충국 역할을 수행하며 균형 외교를 추구하고 있으며, 중국은 도로·철도·수력 발전·관광 인프라에 투자하고 일대일로BRI 프로젝트를 통해 경제적·군사적 협력을 확대하며 티베트 문제와 관련한 정치적 영향력도 행사한다. 네팔과 인도의 관계는 역사적·문화적·경제적 유대가 깊고 국경·무역·에너지·인프라에서 긴밀히 연결되어 있으나, 중국과의 관계 강화로 인해 전략적 긴장이 때때로 발생한다.

“네팔 땅은 가로 세로가 850 곱하기 250킬로미터로 동서로 긴 직사각형 모양이다. 북쪽에는 동서로 길게 히말라야산맥을 경계로 티벳이 있다. 네팔 중심부에 서서 북쪽 히말라야산맥을 바라다보면 가장 높은 에베레스트는 동쪽에, 안나푸르나는 서쪽 방면에 자리하고 있다. 남으로 내려오면서 펼쳐지는 평야와 정글을 지나면 남쪽 경계에서 인도를 만난다. 우리는 동고서저 지형인 데 반해 네팔은 북고남저인 셈이다. 지구상에는 8천 미터 급 봉우리가 14개 있다는데, 그중 8개가 네팔에 있다. 네팔에서는 4천 미터 이하의 산은 산도 아니란다. 산이 높고 골이 깊어서일까. 소수민족은 60여 개. 사용하는 언어도 서로 알아들을 수 없을 정도로 제각각이다. 동서와 남북의 거의 중간 지점에 수도인 카트만두가 있는데, 평균 고도는 1,300m~1,400m 정도로 주변엔 3,000m 높이의 산으로 둘러싸인 사방 20km 분지에 도시가 형성되어 있다. 적당한 해발고도, 풍부한 수자원, 비옥하고 넓은 토지, 산으로 둘러싸인 안전성, 티베트와 인도를 잇는 교통의 중심 등 천혜의 지리적 환경 덕에 카트만두는 기원전부터 네팔의 중심도시가 되었다. 18세기 말, 왕정시대 후기에 카트만두, 파탄, 박타푸르 3개의 왕국으로 분할되어, 경쟁하듯 예술과 문화를 발전시키며 지금의 모습을 갖추게 된다. 카트만두 계곡을 중심으로 왕궁, 사원 등 총 7개 구역이 분포되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다. 카트만두에는 인도의 갠지스강처럼 네팔의 성스러운 강, 바그마티 강이 흐른다. 강가에 자리한 네팔 최대의 힌두교 사원인 파슈파티나트 사원. 인도대륙에 있는 4대 시바사원 가운데 하나다. 어둑해질 무렵 사원에 도착했는데 안개와 연기가 섞인 것 같은 매캐하고 뿌연 공기가 우리를 감아돌았다. 힌두신자들은 이곳에서 화장을 하고 그 재가 바그마티강에 뿌려지면 윤회의 고리를 끊고 극락세계로 간다고 믿는다. 「네팔, 눈을 감고 만나라」”

2025년 들어 네팔을 비롯한 일부 동남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청년 주도의 시위가 잇따라 발생했다. 네팔에서는 정부가 9월 초 26개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규제·차단하자 젊은 층의 불만이 폭발했고, 정치 엘리트 자제들의 과시 문화와 결합해 전국적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시위는 SNS와 온라인 해시태그를 통해 빠르게 확산되었으나 완전한 ‘무지도자’형태라고 단정할 수 없으며, 일부 조직자와 정치세력의 관여도 보고되었다. 시위 과정에서 방화와 공격, 충돌이 발생했으며, 보도별 집계 차이는 있으나 초기 사망 약 19명과 이후 더 높은 수치가 공존하는 등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이에 당시 총리가 사임하고 임시내각이 구성되며 정부는 진상조사위원회를 설치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의원 특권과 경찰 폭력, 경제 불안이 겹치면서 학생·노동자·시민단체 중심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8월 말부터 이어졌고, 일부 지역에서는 폭력과 사망자가 보고되자 정부는 의원 혜택 축소 등 일부 대응을 약속했다. 필리핀에서는 대형 인프라·홍수 방지 사업 등에서의 광범위한 부패 의혹이 폭로되며 중·하순 마닐라를 중심으로 수만 명의 반부패 집회가 열렸고, 경찰과의 충돌과 대규모 체포가 발생하며 독립적 조사와 책임자 처벌 요구가 커졌다. 동티모르에서는 의회가 의원용 SUV 구매 계획과 평생 연금안을 논의하자 학생들이 거리로 나와 항의했고, 의회는 차량 구매 계획을 철회하고 연금 문제에 대해 후속 약속을 내놓았다. 태국에서는 방콕을 중심으로 총리 퇴진 요구와 정치적 갈등이 재점화되었으며, 중반 이후 대규모 집회와 헌법재판소 판결, 정국 교란 등이 이어져 정국 불안정성과 군·사법 대응이 향후 사태 전개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미얀마는 공개적 대규모 ‘청년 시위’와는 결이 다르게 군부와 다양한 저항·민병대 세력 간의 무력 충돌이 계속되고 있으며, 최근 군의 공습과 학교 공격 등으로 민간인 피해와 난민 발생이 심각한 인도적·안보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이들 사례는 공통적으로 세대 갈등과 청년층의 주도성, 부패·불평등·청년 실업 등 구조적 불만이 배경에 깔려 있으며, 겉보기에는 소셜미디어 규제, 의원 예산, 차량 구매 등 사소해 보이는 정책이나 사건이 도화선 역할을 해 폭발을 촉발했다. 다만 각국의 맥락과 세력 구조, 폭력화 정도, 정부의 타협·탄압 선택, 국제적 파장 등은 크게 달라서 이를 하나의 동시다발적 혁명으로 일반화하기보다는 국가별 연결 고리와 차이를 함께 살펴보는 접근이 타당하다.

네팔의 불교 전통은 미얀마나 스리랑카에서 주로 발달한 테라바다(소승) 불교보다는 티베트 불교(라마교)에 뿌리를 둔 대승불교와 금강승의 영향을 더 많이 받고 있다. 네팔은 석가모니의 탄생지인 룸비니를 품고 있지만, 네팔 불교 자체는 고대 토착 샤머니즘, 특히 보닐교와 키라트 신앙 등과 결합되어 독특한 성격을 띠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종교적 배경 속에서 발라크리슈나 사마(1903–1981)는 네팔 근대 문학의 대표적 인물로, 흔히 “네팔의 셰익스피어”라 불리고 있다. 그는 시, 희곡, 소설 등 다양한 장르를 남겼으며, 특히 서정시와 극작에서 탁월한 성과를 보이고 있다. 사마의 문학 세계에서는 크리슈나 신화적 모티프가 등장하지만, 이는 단순한 종교적 숭배를 넘어 신화와 예술을 결합하여 인간 존재와 미학을 탐구하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가령 시 「노래」에서는 “사랑과 예술의 상징”하는 피리를 부는 젊은 크리슈나와 “정치적 질서와 정의의 상징”하는 적을 제압하는 지혜롭고 용맹한 크리슈나를 중첩시켜 보여주는데, 이는 네팔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사례로 볼 수 있다. 사마는 힌두 신화의 상징을 빌려 인간적·사회적 주제를 탐구했기 때문에, 그의 시에서 크리슈나의 이중적 형상이 하나로 결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크리슈나, 홍거운 가락으로 피리를 부네. 마투라의 읍에서 어느 집 어느 방에서나 누구나의 마음결마다. 사위(四圍)에 파동쳐 나는 피리 소리 크리슈나는 홍거운 가락으로 피리를 부네. 숨어지지 입에서는 꿀물이 떨어지고, 물고기는 물 밖으로 튀어 나오네. 공작새는 명상의 날개를 드리우고, 백구기와 나이팅게일도 자신의 발톱으로 가슴을 펼쳐 피리 소리에 맞춰 나뭇가지에 내리앉네. 크리슈나는 홍거운 가락으로 피리를 부네. 목장의 처녀는 행복에 웃고, 강물은 춤출 듯 흘러 가네. 크리슈나의 드디어 웃음짓네. 온 우주는 황홀히 잠기고, 천지가 서로 밀착하고, 신녀의 빛발 긴 손끝에 취하며, 크리슈나는 홍거운 곡조로 피리를 부네. 「노래」”

네팔의 쿠마리Kumari는 ‘살아 있는 여신 Living Goddess’으로 불리는 독특한 전통 신앙이다. 네팔 힌두교와 일부 불교 문화에서 나타나며, 쿠마리는 특정 조건을 만족하는 어린 소녀를 여신으로 숭배한다. 왕실과 마을 공동체에서 중요한 종교적·문화적 상징 역할을 한다. 주로 히말라야 지역, 특히 카트만두 계곡에서 숭배되며, 신격은 힌두교의 칼리Kali 또는 두르가Durga 여신의 화신으로 간주된다. 쿠마리는 어린 소녀 중에서 정해진 신체적·정신적 조건을 갖춘 이를 힌두교 사제들이 ‘16가지 장애물’ 또는 ‘32가지 결점 없음’을 확인하는 의식을 거쳐 선발한다. 선발된 소녀는 왕궁이나 사원 내 전용 거처에서 생활하며 외부 세계와의 접촉이 제한된다. 그러나 중요한 축제, 신년 행사, 길거리 순례 등에서는 여신으로서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어 공동체에 복을 내리는 역할을 한다. 대표적인 축제로는 카트만두에서 열리는 인두자트라Indra Jatra가 있다. 이때 쿠마리는 길거리 순례를 하며 군중에게 신성한 존재로서의 축복을 전한다. 또한 신년 행사나 왕실 의례에서는 왕이나 지방 지도자가 쿠마리에게 경의를 표함으로써 신성한 권위를 상징한다. 주민들은 가정이나 사원에서 쿠마리를 만나면 손을 만지거나 눈을 바라보며 복을 기원한다. 쿠마리는 사춘기가 되면 퇴임한다. 이는 여신으로서의 신성함과 어린 소녀의 순수함이 연령과 함께 사라진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퇴임 후에는 일반 시민으로 살아가지만, 여전히 신성함의 상징으로 존중받는다. 쿠마리 제도는 네팔 힌두·불교 문화의 독특한 융합을 보여준다. 역사적으로는 17세기경부터 카트만두 계곡의 뉴아르족 문화 속에서 왕실과 연계되어 발전했다. 뉴아르족은 네팔 힌두교와 티베트 불교가 혼합된 전통을 유지한다. 왕조 시대에는 왕실 권력의 정당성을 신의 권위로 강화하는 상징으로 쿠마리를 숭배했다. 또한 쿠마리를 믿는 신도들은 일정한 절차를 거쳐 접견하고 축복을 받으면 행운이 온다고 믿는다. 1955년경에는 당시 국왕이 왕자와 함께 쿠마리의 축복을 받으러 갔으나 쿠마리가 왕에게는 축복을 하지 않고 왕자에게만 축복을 준 일화도 전해진다.

이번 네팔의 사례처럼 분노한 젊은 세대들이 거리로 나설 때, 우리는 다시 한번 역사가 반복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그 이유는 혁명이나 개혁을 외치며 권력을 잡은 사람들이 결국 지배층이 되어 소수 기득권에게만 이익을 분배하고, 부정부패를 일삼으며 국민들의 삶을 무너뜨리기 때문이다. 네팔의 경우 전제 군주를 몰아내기 위해 공산당과 손을 잡았고, 이 과정에서 구 소련식 정통 맑스-레닌주의가 아니라 중국의 마오주의를 표방하게 되었다. 이는 마오이스트 공산당이 봉건적·왕정적 질서를 전복하고 사회주의 국가를 세우려 한 혁명적 정치 세력이었기 때문이다. 마오쩌둥은 레닌과 맑스와 달리 도시의 산업 노동자보다 농민이 혁명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주장했으며, 당시 중국의 인구 구조를 고려해 농민을 핵심 혁명 세력으로 조직하는 전략을 제시했다. 네팔에서도 대다수 경제활동 인구가 농업에 종사하고 있어 이 전략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이론은 현실에서 시행하는 과정에는 한계가 있었지만, 본질적으로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외된 노동자와 민중에게 권력을 되돌리고, 생산수단의 공공 소유를 통해 불평등을 줄이며, 사회적 안전망을 강화하고 계급 간 격차를 해소하는 장점을 지닌다. 또한 사회적 연대와 협력을 강조하며 교육·보건·주거 등 기본적 생활 조건의 평등한 제공을 목표로 삼아, 개인의 자유와 권리와 더불어 공동체의 복지를 균형 있게 실현할 수 있는 사상적 틀을 제공한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농민과 노동자를 관리하고 불평등을 완화할 의무가 있는 권력자들이 소셜미디어를 차단하며 허위 정보를 막는다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네팔 청년들이 네포키즈 형태의 특권층을 비판하는 목소리를 차단하려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번 사건이 네팔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적어도 “독립적인 정치인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주를 이루는 것으로 보아, 네팔 청년들은 아직 희망을 버리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시위대는 이번 운동이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고 말하지만, 사상자도 발생했고 많은 네팔의 유산들이 손상되었다. 그러나 세계 곳곳의 시위와 혁명을 보면, 분노한 군중이 폭력을 분출하는 사례가 흔히 반복된다. 결국 사건이 종결된 후 누가 얼마나 더 잘못했는지 따지기보다, 우리는 ‘왜 부정부패가 지속되는가’를 질문하며, 이를 개선할 방법을 청년들과 논의하고 새로운 변화를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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