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이후 아메리카는 유럽 열강 간의 치열한 경쟁 무대가 되었다. 19세기에 아프리카 대륙이 열강에 의해 분할되었던 것처럼 유럽 국가들은 아메리카를 앞다투어 탐험하고 점령하며 제각기 식민지화를 추진했다. 당시 유럽을 떠나 신대륙에 정착한 이들의 동기는 다양했다. 어떤 이들은 황금을 찾아 떠났고, 어떤 이는 미지의 땅에서 상업적 영향력을 넓히기 위해, 또 어떤 이들은 범죄로 인한 투옥이나 사형을 피하려 도피했으며, 일부는 종교적 박해를 피해 자유를 찾아왔다. 어떤 사람들은 단순히 모험을 위해 아메리카에 발을 디뎠다. 스페인은 북아메리카 남서부와 미시시피 강 유역을 중심으로 탐험과 정복을 추진했고, 프랑스는 대서양 연안과 캐나다 지역에 정착지를 세웠으며, 영국은 17세기부터 북미 동부 해안선을 따라 13개 식민지를 건설하면서 세력을 확장했다. 이들 식민지는 시간이 지나며 자치와 독립 의식을 키워갔고, 결국 1776년 미국은 독립선언을 통해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고 새로운 국가로 태어났다. 그러나 독립 이후의 미국은 산업화와 농업 경제 사이의 긴장, 인종 차별과 노예제를 둘러싼 갈등 등으로 인해 심각한 내부 균열을 겪게 된다. 이러한 모순과 충돌은 향후 미국 사회의 방향과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 쟁점으로 작용했다.
“오랫동안 영국 식민지들은 본국과 똑같은 도량형과 화폐를 사용했다. 아메리카 식민지 최초의 화폐는 1652년 보스턴에서 존 훌과 로버트 샌더슨이 주조한 한 면에 테두리를 따라서 매사추세츠라는 글자와 가운데 선박 돛대로 사용되었던 소나무가 새겨진 ʻ파인 트리 실링’으로 불렀던 동전이었다. 그리고 30년 후인 1682년 식민지 정부에 의해 폐지되었다. 어쩠든 본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수출보다 훨씬 많았기 때문에 금화나 은화인 정화가 크게 부족하면서 식민지 내의 교역은 물물교환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북아메리카의 영국 식민지 가운데 지폐를 처음 발행한 것은 매사추세츠 베이 식민지였다. 1690년의 퀘벡 원정에 대한 실패가 이 식민지 정부에 많은 부채를 안겨 주었다. 그와 같은 부채를 상황할 목적으로 1690년 실링 및 펜스로 표시된 지폐를 발행했다. 1741년 5월 1일 발행된 2실링짜리 지폐를 살펴보면, 지폐의 상단에는 THE BANK BILL이라고 인쇄되어 있으며, 그 바로 밑에는 권종 표시 즉 Two Shillings, 한 줄을 여백으로 남기고 WE로 시작되는 지급 보증 문구가 여러 줄로 인쇄된 밑에 발행자 4명의 서명이 있다. 「미합중국, 그 삶의 이야기」”

식민지 시대의 교역은 영국 본국과 유사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해안이나 강가에 위치한 마을의 상인들은 지역 생산품을 수집해 외부로 수출하고, 외국이나 다른 식민지로부터 필요한 물품을 수입하여 주변 지역에 재판매했다. 이러한 교역 구조 덕분에 보스턴, 프로비던스, 뉴욕, 필라델피아, 찰스턴 등은 상업의 중심지로 성장했다. 이들 도시는 점차 상업 활동의 중심지가 되었고, 이후 제조업 시대가 도래하면서 산업화가 본격화되었다. 특히 보스턴은 초기부터 금융과 무역의 중심지로서 입지를 다졌으며, 산업 자본의 축적과 함께 북동부 대도시권의 주요 산업·금융 허브로 발전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북미 13개 식민지 전반에서 비슷하게 나타났다. 남부의 리치먼드와 사바나 역시 농산물과 노예 무역을 중심으로 한 상업 활동의 거점이었고, 중부 식민지의 볼티모어는 곡물 교역과 조선업 등을 기반으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각 식민지의 경제 구조와 주력 산업에는 차이가 있었으며, 북부는 상대적으로 제조업과 무역이, 남부는 대농장 기반의 농업과 플랜테이션 경제가 중심이 되었다.
“1775년 5월 필라델피아에서 열린 두 번째 대륙회의Continental Congress는 곧 혁명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했다. 버지니아에서 워싱턴, 제퍼슨, 위스, 해리슨, 리 가문Lees, 메사추세츠의 새뮤얼과 존 애덤스, 게리와 핸콕, 펜실베이니아의 프랭클린과 모리스, 델라웨어의 리드와 로드니, 코네티컷의 로저 셔먼과 올리버 울콧 등 거의 모든 혁명의 뛰어난 지도자들이 기나긴 협의의 과정에 참여했다. 그곳의 대표들은 거의 모두 실질적이고 사무적인 시민들이었다.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56명 중 8명은 상인, 6명은 의사, 5명은 농부, 25명은 변호사로, 버크가 동포들에게 경고했던 학식 있고 논쟁적인 직업군에 속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 대부분은 지방 정치의 기술에 대해 배웠고, 식민지 의회에서 활동한 이들도 많았으며, 대다수는 영국 정책에 반대하는 선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고, 거의 모두가 정치 운영에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평범한 민간인이었다. 이들 중에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처럼 불안한 시대에 모험을 갈망하는 오랜 가문의 들떠 있는 아들도 없었고, 올리버 크롬웰처럼 전장과 토론장에서 폭풍을 일으키기 위해 기다리는 광신자도 없었으며, 보나파르트처럼 권력을 잡을 기회를 노리는 직업군인도 없었고, 당통처럼 프롤레타리아를 선동하여 동료들에게 대항하는 선동가도 없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대륙회의의 정신은 군사적이라기보다는 시민적이었다. 「미국 문명의 역사」”

“아메리카 혁명과 제퍼슨 민주주의의 승리로 대중의 승인을 받은 위대한 정치 사상은 19세기가 진형되면서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 속으로 더욱 깊숙이 파고들었고, 삶과 노동, 정부의 새로운 문제들이 고려의 대상으로 떠오르면서 점점 더 넓은 의미의 영향력을 발산했다. 국가의 경제 구조에 큰 변화가 없었다면, 새로운 사회 세력이 국가 무대에 등장하지 않았다면, 혁명적 유럽으로부터의 추가적인 영향이 없었다면, 건국의 아버지들이 공언한 인권과 인간 평등이라는 위대한 개념은 철학, 문자, 예술의 지적 풍토를 바꾸어 놓았을 것이다. 그러나 제퍼슨 시대의 국가가 확장되고 울려 퍼지는 음표 위에 기술과 응용 과학이 만들어낸 혁명의 날카로운 진동이 더해져 이전 세기의 모든 격변과 르네상스보다 더 오래된 사색의 패턴을 깨뜨리고 민주주의를 위한 끝없는 진보의 풍경을 펼쳐 보였다. 18세기 후반에 기계의 시대가 열렸고, 워싱턴은 수력으로 구동되는 회전하는 방추를 볼 수 있었지만, 기계 공정은 잭슨과 링컨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큰 탄력을 받게 되었다. 산업혁명이 본격적으로 가동되자 지적 관심사, 미적 감상, 지식 유통을 위한 제도 등 문화에 미치는 영향은 신속하고 누적적으로 나타났다. 그 압박과 긴장으로 인해 사회 구조 전체가 재편되었다. 해운과 무역으로 벌여들인 오래된 재산에 섬유, 철강, 철물, 도자기, 철도에서 벌어들인 수많은 재산이 더해졌다. 이제 대중 교육을 위해, 아들과 딸들에게 여가를 제공하고 문자, 과학, 예술을 후원하기 위해 대가족 영지에 세금을 부과해야 했다. 해가 뜨면 그림자가 따라다니듯, 중간 계급이 확대되면서 사회와 정부에 대해 급진적인 성향을 가진 산업 프롤레타리아가 생겨났다. 이와 함께 공장, 제분소, 상점에서 일하는 많은 여성 노동자들이 생겨났고, 이는 가정과 관계된 법과 관행에 급속한 영향을 미쳤다. 「미국 문명의 역사」”

19세기 중반으로 접어들며 미국은 북부와 남부 간의 경제 구조 차이가 점점 뚜렷해졌다. 북부는 빠르게 산업화되어 자본 중심의 경제체제로 전환하여 보호무역을 지지했고 임금노동이 중심이었다. 반면 남부는 면화Cotton 중심의 대규모 플랜테이션 농업에 의존하고 있었고, 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흑인 노예 노동력이 필수적이었다. 또한 남부는 면화를 유럽에 수출해야 했기에 자유무역을 선호했다. 이러한 경제적 이해관계의 충돌과 함께 서부 확장에 따라 새로 편입되는 주州들이 자유주인지 노예주인지 여부를 두고 갈등이 심화되었으며, 이는 정치 권력의 균형 문제로도 번졌다. 북부는 노예제 확산에 반대했지만 남부는 이를 자신들의 생존 문제로 여겼고, 마침내 1861년 남부 11개 주가 연방 탈퇴를 선언하면서 남북전쟁이 발발했다.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전쟁 초기에 연방의 유지Union Preservation를 최우선으로 하였지만, 1863년 ‘노예해방선언’을 통해 전쟁의 도덕적 정당성을 확보하며 유럽의 개입을 차단하고 북부의 결속을 강화했다. 결국 이 전쟁은 단순한 노예제 문제가 아닌 산업 자본주의와 농업 노예제라는 두 경제 체제의 충돌이자, 국가 정체성을 둘러싼 총체적인 내전이었다. 남북전쟁 이후 미국은 서부 개척과 철도 확장, 산업혁명을 통해 빠르게 경제적·영토적 성장을 이루었다. 20세기에 들어서며 미국은 세계 강국으로 부상했고, 1차 세계대전과 2차 세계대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국제질서 재편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그러나 급속한 산업화와 도시화는 노동자 착취, 빈부 격차, 이민자 차별 등의 사회 문제에 당면했고, 1929년에는 뉴욕 증시의 붕괴로 시작된 대공황이 미국과 전 세계를 경제적 혼란에 빠뜨렸다. 이때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통해 대규모 공공사업, 금융 규제, 사회보장제도 등을 도입하면서 미국 역사상 최초로 정부가 경제에 적극 개입하게 되었고, 이는 현대 복지국가의 기초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미국은 유럽 열강의 식민지로 출발해 내전과 경제위기, 세계대전과 산업화라는 굵직한 변곡점을 거치며 시대마다 다른 대통령들의 리더십과 정책적 실험을 통해 끊임없이 구조를 재편하고 성장해온 국가로 거듭난다.

대공황 시기인 1930년, 미국의 하원의원 윌리스 C. 호레이와 상원의원 리드 스무트가 주도한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제정하였다. 이 법은 20,000개 이상의 수입 품목에 대해 평균 약 40%의 높은 관세를 부과했으며, 일부 품목은 60~100%를 넘거나 최고 400%에 달하는 관세율이 적용되었다. 이러한 조치는 단기적으로 미국 내 농업과 산업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으나,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 주요 교역국들의 보복 관세를 불러왔고, 결과적으로 전 세계 무역이 급격히 위축되어 글로벌 무역량은 약 66%나 감소하였다. 이로 인해 대공황이 더욱 심화되었으며, 보호무역주의의 한계가 명확해졌다. 이에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대통령은 1934년 ‘상호무역협정법’을 제정해 행정부에 관세 인하를 위한 협상 권한을 부여하고 양자 간 무역협정을 확대하며 점차 자유무역으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1944년 브레튼우즈 회의를 통해 고정 환율제도와 국제통화기금IMF, 국제부흥개발은행(IBRD, 현재 세계은행)을 설립하여 달러를 중심으로 한 국제 금융 및 무역 질서를 구축하였다. 1948년 국무장관 조지 마셜의 주도로 시행된 ‘마셜 플랜’은 서유럽 16개국에 약 130억 달러를 지원해 전후 유럽 경제 재건에 큰 기여를 하였으며, 이는 미국의 수출시장 확대는 물론 소련의 영향력 견제라는 정치·전략적 목적도 담고 있었다. 전쟁 기간 군수 생산에 집중했던 독일과 일본 역시 미국의 원조와 시장 개방을 통해 일상소비재 중심의 산업으로 빠르게 전환하였고, 자동차·전자·철강 등에서 경쟁력을 회복하였다.

1950~60년대 미국은 GATT(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 1947년 출범) 체제 하에서 다자간 자유무역을 본격 확대하며 관세를 점진적으로 인하했으나, 섬유·철강·농산물 등 노동집약적이고 정치적으로 민감한 산업은 예외적으로 보호무역 조치를 유지하였다. 1970년대 들어 오일쇼크, 스태그플레이션, 일본과 서독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로 미국 산업이 위협받으며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부상하였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는 자유시장 원칙을 내세웠지만 자동차·반도체·철강 등 주요 산업에서 일본에 수입자율규제Voluntary Export Restraints를 요청하고 슈퍼 301조 등 강경한 무역보복 조치를 시행하였다. 특히 1985년 미국, 일본, 서독, 영국, 프랑스 5개국이 체결한 ‘플라자 합의Plaza Accord’는 달러 가치를 낮추고 일본 엔화를 강세로 유도해 미국 무역적자 개선에 기여했으며, 일본 내 거품경제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에는 조지 H. W. 부시와 빌 클린턴 대통령 하에서 자유무역 확대가 지속되었고,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출범과 1995년 WTO 설립으로 다자간 무역 규범과 분쟁 해결 체제가 강화되었다. 2001년 중국의 WTO 가입은 세계 제조업 중심지를 중국으로 이동시키는 계기가 되었고, 미국은 저렴한 소비재 수입과 물가 안정의 이득을 보았지만 동시에 제조업 공동화 문제에 직면하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보호무역주의와 경제민족주의가 다시 부상하였으며,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 고율 관세 부과, 중국산 제품에 대한 무역전쟁을 본격화하였다. 중국은 ‘쌍순환 전략Dual Circulation Strategy’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ECP’로 대응했으며, 일본, 캐나다, 호주는 미국 없이도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를 유지하며 자유무역 질서의 균형을 꾀하였다. 2020년대 조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시기의 일부 관세 조치를 유지하면서도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산업 육성 및 과학기술 투자 법안 CHIPS and Science Act’ 등을 통해 국내 첨단 산업 육성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에 주력했다. 이러한 전략 아래 한국, 대만, 베트남, 멕시코, 인도 등은 중간재 생산기지이자 전략적 파트너로 부상하였고, 미국은 이들을 중심으로 중국과의 경제적 대립각을 본격화하였다.
세계 금융시장을 마비시키고 세계 경제를 장기 침체에 빠뜨린 리먼 브라더스 사태

미국의 주택시장은 1990년대 말부터 이례적인 호황을 맞이했는데, 이는 클린턴 행정부가 추진한 ‘모든 미국인의 주택 소유 American Dream of Homeownership’ 정책에 힘입은 것으로, 저소득층과 소수인종의 주택 구매를 적극 장려한 결과였다. 이러한 정책 기조 아래, 정부 보증을 받는 주택저당기관인 패니메이Fannie Mae와 프레디맥Freddie Mac은 대출 기준을 완화했고, 연준Fed의 저금리 정책 또한 시장의 활황에 일조했다. 이후 2000년대 초 닷컴버블 붕괴와 2001년 9·11 테러로 미국 경제가 침체에 빠지자 연준은 기준금리를 역사적으로 낮은 수준까지 인하했고, 이로 인해 주택담보대출 수요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부동산 가격은 급등하기 시작했다. 금융기관들은 이 기회를 활용해 신용등급이 낮은 차입자에게도 대출을 해주는 서브프라임 모기지 상품을 적극 개발했고, 소득이나 직업이 불안정한 사람들에게도 형식적인 심사를 거쳐 대출을 실행했다. 이와 함께 금융기관들은 해당 대출 채권을 기초로 모기지담보부증권MBS을 발행하고, 이를 다시 여러 등급으로 나눈 부채담보부증권CDO이라는 파생상품으로 재구성해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판매했다. 높은 수익률을 제공하는 이 금융상품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을 끌었고, 금융기관들은 대출 자산을 유동화하면서 위험을 외부로 이전하고 더욱 공격적인 대출을 확대해 나갔다. ‘금융혁신’이라는 이름 아래 구조화된 부실 대출은 금융 시스템 전반으로 확산되었고, 결국 미국의 주택시장은 정점을 지나 하락세로 돌아서면서 문제가 본격화되었다. 주택 가격이 하락하자 차입자들은 주택을 팔아도 대출금을 상환할 수 없는 역모기지 상태에 빠졌고, 연준의 금리 인상은 이자 부담을 가중시켜 채무불이행 사례가 급증했다. 담보가치 하락과 함께 금융기관들의 손실이 커졌고, 시장에는 주택 매물이 넘쳐나며 가격 하락과 수요 감소의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모든 미국인의 주택 소유’라는 정책 취지 자체는 긍정적이었지만 금융기관과 파생상품에 대한 감독과 규제의 부실은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그 결과 금융기관과 투자자 모두 과도한 위험에 노출되었고, 미국 주식시장의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최고점 대비 50% 이상 하락했으며, 전 세계 증시에서 수천조 원 규모의 자산이 증발했다. 당시 메릴린치Merrill Lynch와 베어스턴스Bear Stearns 같은 대형 금융기관은 파산 직전까지 몰려 각각 뱅크오브아메리카와 JP모건체이스에 헐값에 인수되었으며, 세계 최대 보험사였던 AIG는 심각한 유동성 위기로 인해 미국 정부로부터 약 1,8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지원받게 되었다. 금융 시스템의 붕괴는 곧바로 실물경제로 전이되어 미국 실업률은 10% 가까이 치솟고 전국 평균 주택 가격은 30~40% 이상 폭락했으며, 수백만 명의 미국인이 가계 파산과 주택 압류를 겪었다. 이러한 충격은 전 세계로 확산되며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글로벌 경기침체로 이어졌다. 특히 2008년 9월 15일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 리먼 브라더스가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사태는 절정에 달했고, 그 직후 48시간 동안 전 세계 금융시장과 주식시장은 공황 상태에 빠지며 미국 금융계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파가 현실화되었다.

아름다운 나라를 위한 비가悲歌
전 세계적으로 평등과 인권을 부르짖던 마틴 루터 킹 주니어,
대법원 여성 판사로 전 세계 여성 인권 운동의 상징인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노예제 폐지 운동과 사회 정의 실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레더릭 더글러스,
근대적 국가 정체성 확립하며 정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보여준 에이브러햄 링컨,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는 살아있는 지성 미셸 오바마,
장애를 극복하고 교육과 장애인 권리 신장에 헌신한 헬렌 켈러,
대공황과 세계대전의 위기 속에서 국민을 이끈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버스에서 인종 차별에 맞서 시민권 운동을 촉발한 로자 파크스,
여성 참정권 운동의 선구자 수전 B. 앤서니,
비폭력 시민권 운동의 상징이자 평생 인권과 평등을 위해 싸운 미국의 용기 있는 지도자 존 루이스,
시민 불복종과 자연주의 사상을 통해 비폭력 저항과 개인의 자유를 옹호한 철학자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침묵의 아름다움春」을 노래하며 —

¨아름다운¨ 천조국千兆國의 현재
현재 미국의 총 인구는 약 3억 3,200만 명이며, 이 중 약 13.9%는 외국에서 태어난 직접 이민자이다. 부모나 조상이 이민자인 2세, 3세까지 포함하면 전체 인구의 70% 이상이 이민자의 후손으로 추정된다. 반면 미국 대륙의 원래 주민인 원주민은 전체 인구의 2%도 되지 않는다. 따라서 현재 미국 인구의 약 98%는 ‘원래 미국에 살던 사람들’이 아닌, 이민자이거나 그 후손이다. 백인, 흑인, 아시아계, 히스패닉 모두 이러한 이민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집단인 것이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재집권 후 행정명령 14159호(13768호)를 통해 강도 높은 이민 단속 정책을 본격화했다. 이 명령은 이민세관단속국ICE의 권한을 대폭 강화하여 재판 없이 신속하게 불법 체류자를 추방할 수 있도록 했으며, ‘Operation Safeguard’라는 이름의 대규모 전국 단속 작전을 통해 뉴욕, 시카고, 로스앤젤레스 등 주요 도시에서 수천 명이 체포되었다. 또한 지방경찰이 ICE의 업무를 함께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287(g) 프로그램도 크게 확대되었고, 수백 개의 지역 정부가 이 단속에 참여하고 있다. 단속은 이제 국경을 넘어 학교, 병원, 교회, 직장 등 이민자들의 일상 공간까지 확장되었으며, 그 결과 이민자들은 자녀를 학교에 보내거나 병원에 가는 것조차 꺼리는 상황에 놓이고 있다. DACA 프로그램을 통해 합법적으로 체류 중이던 하버드대학교 학생이 신분 확인 문제로 조사를 받고, 추방 위기에까지 놓인 사건은 이러한 단속이 단순한 법 집행을 넘어 교육받고 성장한 청년들까지 위협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미국(美國)을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었던 핵심 법 원칙 중 하나인 ‘출생 시민권’조차 흔들리고 있다. 최근 일부 지역에서는 미국 내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이 단속 대상이 되어 부모가 병원에서 출산한 직후 체포되고 아이는 위탁가정으로 보내지는 일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는 바로 “태어나는 순간부터 정치의 대상이 된 아이들”이라는 비판을 낳고, 미국 헌법 14조가 보장하는 시민권의 의미와 미국 사회의 정체성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ʻ작은 정부Small Government란 정부가 경제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것을 지양하되, 시장 실패와 경제 위기 상황에서는 최소한의 개입으로 안정을 도모하며, 완전한 자유방임laisez-faire을 피하고 개인과 시장의 자립을 지원하는 이념이다.’

“한 국가가 같은 양의 자원을 투입해 다른 나라보다 더 많은 양의 상품을 생산할 수 있다면, 그 국가가 그 상품에서 절대우위를 가진다. 「국부론」” 오늘날 미국은 A.I.와 소프트웨어 같은 첨단 기술, 제약·바이오, 군사 기술, 문화 콘텐츠, 농업 생산성 등 여러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높은 생산성과 경쟁력을 바탕으로 절대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동일한 자원을 투입하더라도 대부분의 국가가 미국만큼 효율적으로 생산하거나 수출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며, 예컨대 미국의 기술 생태계는 전 세계적으로 압도적인 수준이기 때문에 대부분의 국가는 미국에 A.I. 기술을 수출하기보다 오히려 미국산 기술을 수입하게 된다. 반면 미국이 더 이상 주도하지 못하는 산업들도 존재하는데, 조립 제조업, 섬유·의류 산업, 배터리 생산, 희토류 채굴 및 정제, 고속철도 및 대중교통 기술, 중저가 자동차 시장, 통신 인프라, 상선·조선 산업 등은 과거에 미국이 경쟁력을 가졌던 분야였으나 현재는 높은 인건비, 엄격한 환경 규제, 기술 진화에 따른 산업 구조 변화 등으로 인해 중국, 일본, 한국, 대만, 베트남, 멕시코 등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들로 산업 중심이 이동하였다. 이는 산업의 쇠퇴라기보다는 미국이 자국이 가장 생산성이 높은 고부가가치 산업에 집중하고, 나머지 산업은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들과의 무역을 통해 조달하는 전략을 선택한 결과이며, 이는 리카도가 주장한 비교우위 이론을 실질적으로 적용한 사례라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첨단 기술 기업은 IT 서비스나 콜센터 업무를 인도로부터 아웃소싱하고 완성된 기술 제품을 인도에 다시 수출하거나, 반도체는 한국이나 대만에서 수입하고 최종 조립은 베트남이나 멕시코에서 진행한 뒤 전 세계에 판매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미국은 자국이 절대우위를 가진 분야에 집중하는 한편, 다른 자원이나 생산 공정은 비교우위를 가진 국가들과의 분업과 무역을 통해 확보하고 있으며, 이러한 국제 분업 체계는 각국이 자신이 상대적으로 효율적인 분야에 특화하고, 나머지는 상호 교역을 통해 충당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참여국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결과를 낳는다. 정리하자면 애덤 스미스의 절대우위 이론은 “더 높은 생산성을 가진 상품에 특화하라”는 것이며, 데이비드 리카도의 비교우위 이론은 “더 낮은 기회비용으로 생산할 수 있는 상품에 특화하라”는 원리를 제시한다. 만약 어떤 국가가 모든 분야에서 절대우위를 가진다면(예: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뿐 아니라 농업과 첨단 기술까지 효율적으로 생산하며 인건비도 낮은 경우), 굳이 외국으로부터 수입할 필요 없이 자국 내에서 모든 것을 자체 생산할 수 있겠지만, 현실에서는 모든 국가가 자원, 기술, 인구, 제도, 환경 등의 측면에서 서로 다른 조건을 지니고 있어 전 분야에서 절대우위를 확보하는 국가는 존재하지 않으며, 따라서 무역은 비교우위에 기반한 자원 배분의 효율성을 실현하는 핵심 수단이 된다. 다만 최근 미국의 관세 정책을 보면 무역의 이익이 양국의 상대적 수요에 따라 결정된다는 밀의 “상호 수요의 법칙”이 주로 유형재 교역에만 적용되는 경향이 있으며, 사실상 소프트웨어, 문화 콘텐츠, 지식재산 등 무형 자산은 공식 무역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자국 수요가 크고 교역조건에서도 유리하다는 인식을 갖게 되는 측면이 있다. [참고.인용: 위대한 문명사, 서울대 김태유 명예교수]
“K-콘텐츠는 팔리는데, 한국의 수출엔 없다”: 무형 자산과 통계의 괴리
무형 자산이 무역 통계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전통적인 무역 통계가 물리적인 ‘재화good’ 중심이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선박, 항공편 등으로 국경을 넘는 물건만 무역 실적으로 잡히기 때문에 소프트웨어, 콘텐츠, 특허 같은 무형 자산은 통계에 직접 반영되기 어렵다. OECD나 IMF 등은 이런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서비스 무역 통계를 따로 집계하지만 여기도 문제는 많다. 저작권, 상표권, 스트리밍 서비스, 클라우드, 소프트웨어 같은 무형 서비스는 집계 방식이 불완전하고, 국가마다 기준과 처리 방식이 다르다. 특히 다국적 기업들은 기업 내부 거래로 수익을 이전하거나 조세 회피 목적의 회계 조작을 통해 실제 가치 흐름과는 다른 방식으로 수치를 만들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의 K-드라마나 K-팝이 해외에서 큰 수익을 올려도 무역 통계에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이나 아티스트가 벌어들인 일부만 잡힌다. 넷플릭스, 유튜브 같은 외국계 플랫폼이 가져가는 수익은 통계상 보이지 않는다. 반면 애플이 수출한 아이폰은 실물 수출로 명확히 잡히지만, 반도체 설계 특허에서 나오는 사용료 수익은 ‘서비스 수입’이나 ‘기타 투자 수익’ 항목에 숨어버려 실제보다 부풀려지거나 왜곡되기 쉽다는 점이다.
“권력은 부패하는 경향이 있고,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 「정부론, 존 애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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