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카 항은 전략적 요충지로서 동양의 향신료와 직물이 서방으로 운송되는 중요한 환적항이었다. 이 지리적 이점을 바탕으로 아랍 상인들은 예멘 고원지대에서 자란 최상급 커피를 독자적으로 재배하고 거래하기 시작했다. 500년 이상의 커피 재배 역사를 지닌 예멘은 세계 최초로 커피가 재배된 지역 중 하나이며, 그 독특한 풍미로 명성을 얻었다. 예멘 커피는 주로 소규모 가족 농장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재배되며 화학 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키운다. 그 결과 초콜릿, 말린 과일, 계피, 카다멈 등의 풍미가 어우러지고 와인처럼 복합적인 산미가 느껴진다. 이 지역에서는 아라비카 종이 주로 재배되며 마타리, 히라지, 다마리 등 다양한 품종이 존재한다. 아라비아반도 전역에 걸쳐 안정적인 유통망이 구축되면서 모카 항의 커피 거래량은 오스만 제국 전체 커피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수백 척의 다우선(전통 아랍 범선)이 항구에 정박했고, 커피를 저장하는 창고들이 들어섰다. 내륙 산악지대에서 수확된 커피는 베두인족의 보호와 안내를 받아 항구까지 운송되었고, 도착 후 전문가들의 품질 평가를 거쳐 창고에 보관되었다. 이후 아랍 상인들은 유럽 상인들과의 거래에서 중개인 역할을 하며 금화, 은화, 유럽 직물, 유리 제품 등과 물물교환을 성사시켰다.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며 모카는 국제적인 도시로 발전했고, 숙박업과 수공업, 음악과 예술, 요리가 융성했다. 상인들은 거래 전 커피를 함께 마시는 관습을 통해 정보와 문화를 자연스럽게 교류했고, 이는 커피가 사회적 의례이자 지적 교류의 매개체가 되었음을 보여준다. 16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의 수도 이스탄불에는 최초의 커피하우스가 등장했고, 지식인과 시인, 학자들이 모여 문학과 철학을 논했다. 이곳에서는 페르시아 고전문학이 낭독되고 오스만 시가가 창작되었으며, 정치와 경제 동향에 대한 정보도 공유되었다. 톱카프 궁전에서는 매일 아침 술탄의 커피 시음회가 열렸고, 궁정 바리스타들은 ‘카펠리 칼파’라는 직위를 가진 장인으로 수십 년 수련 끝에 커피 제조 비법을 전수받았다. 커피는 최상급 원두로 로스팅되고 정밀하게 추출되어 83도의 온도로 제공되었으며, 7명의 시향관이 시음 후 장미수로 입을 헹구는 의식을 거쳤다. 추출에 사용된 도구는 총 40가지에 달해 오스만 제국의 예술성과 기술력을 보여준다. 일반 순례자들도 메카에서의 ‘타와프’ 후 커피를 나누며 교류했고, 이는 교파와 관점을 넘어선 포용과 이해의 계기가 되었다. 이처럼 커피는 동서양을 잇는 실크로드에서도 실물 상품을 넘어선 문화적 교류의 매개체가 되었고, 페르시아 상인들은 커피를 운송하며 독자적인 무역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예멘의 모카항에서 출발한 커피는 이스파한, 바그다드, 다마스쿠스, 알레포에 이르기까지 전파되었고, 복잡한 운송과 수수료로 인해 가격은 수배로 뛰었다. 이 과정은 페르시아의 회계 시스템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시리아와 레바논 지역의 커피 재배는 오스만 제국의 경제적 중추였으며, 이 지역의 농민들은 독특한 생활양식과 경제구조를 형성했다. 레반트 지역의 커피 농가들은 대부분 소규모 가족경영 형태를 취하였는데, 이들은 산악지대의 계단식 농장에서 커피를 재배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커피나무는 3년에서 4년이 지나야 첫 수확이 가능했기에, 농부들은 그동안 다른 작물을 함께 재배하며 생계를 유지했다. 레반트 지녁의 커피 농가들은 이러한 혼작방식을 통해 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였으며, 이는 오스만 제국의 농업정책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오스만 제국의 커피 관련 세금제도는 레반트 지역 농민들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제국은 커피 생산량의 10분의 1을 현물세로 징수하였으며, 이는 ‘우슈르’라고 불렀다. 농민들은 이외에도 토지세와 거래세를 납부해야 했는데, 이러한 삼중과세 체계는 농가의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켰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은 커피 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때로는 세금 감면 정책을 실시하기도 하였다. 특히 자연재해나 흉작이 있을 경우, 제국은 탄력적인 세금정책을 통해 농가를 보호하였다. 이러한 정책적 배려는 커피 산업의 안정적 성장을 가능케 하였으며, 레반트 지역이 제국의 주요 커피 생산지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였다. 농민들은 세금납부를 위해 조합을 결성하여 공동으로 대응하기도 하였는데, 이는 후일 농민조합의 시초가 되었다. 「인간의 역사와 문명, 아라비아 커피 무역과 오스만 문화생활」”

17세기 초 최고급 모카 커피는 유럽에서 금에 필적하는 가치를 지녔고, 홍해와 아덴만 일대의 해적들에게 주요 표적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무역선을 보호하기 위해 군함을 건조하고 화포를 장착하는 등 해상 방어력을 강화했다. 해군은 정기적으로 해적을 감시하며 순찰했고, 포르투갈 해적선과의 전투도 벌어졌다. 하지만 내부적으로는 커피의 정치적 의미가 문제가 되었다. 술탄 무라드 4세는 커피하우스가 반정부 세력의 온상이 될 것을 우려해 커피 금지령을 내렸고, 이는 명분상 사치 억제였지만 실질적으로 커피 무역에 큰 타격을 주었다. 커피 무역이 확대되며 농장에 대한 노동력 수요도 급증했고, 예멘과 에티오피아의 대규모 커피 농장에는 수많은 노예들이 투입되었다. 대부분 동아프리카 출신의 노예들은 가축보다 못한 대우를 받으며 혹독한 환경 속에서 하루 종일 노동에 시달렸다. 오스만 제국은 이러한 비인도적 처우를 묵인했고 할당량을 채우지 못한 노예들에게는 가혹한 처벌이 가해졌다. 이에 노예들은 소극적 저항으로 커피나무를 훼손하거나 수확을 방해했으며, 18세기 초에는 에티오피아 출신 노예들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커피 산업의 이면에는 이처럼 억압과 고통이 존재했고, 그 화려한 교역과 문화적 번영의 뒤편에는 잊혀진 이들의 희생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교역 중심지였던 베니스는 오스만 제국과 긴밀한 무역 관계를 유지하며 커피 문화를 유럽에 전파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베니스 상인들은 단지 커피 원두만을 들여온 것이 아니라 오스만 특유의 커피 문화까지 함께 소개했다. 17세기 초 이들은 커피의 수익성과 독특함을 간파하고, 자신들이 보유한 고도로 발달된 해상 운송 시스템과 금융 네트워크를 활용해 커피 무역의 효율성을 극대화했으며, 나아가 커피 무역을 위한 특별 신용장 제도까지 도입해 유럽 커피 산업의 기반을 마련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럽의 지성인들은 카페에 모여 문학, 예술, 정치에 대한 토론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는 근대 유럽의 공론장 문화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 실제로 20세기 초 프랑스에서는 지식인들이 카페에서 커피나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활발한 토론과 사상 교류를 이어가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 또한 당시의 베니스를 배경으로 하여 상업과 금융, 인간관계를 조명한 작품으로 오늘날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다음은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명한 대사다. “마가에게는 눈이 없소? Hath not a MAGA eyes?”

커피 한 잔의 여유
커피의 기원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에티오피아의 염소치기 소년이 발견했다는 이야기이고, 다른 하나는 예멘의 이슬람 사제가 처음으로 음용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어느 쪽이 진실인지를 입증할 만한 확실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커피의 진정한 원조를 단정짓기는 어렵다. 다만 커피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형태로 발전한 데에는 무슬림들의 공이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12세기 예멘에서 시작된 커피는 15세기 말 무렵 메카에 이르렀고, 이후 점차 다른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유럽에는 1600년경 처음 소개되었으며 차가 유럽에 전해진 1610년과 비교하면 거의 같은 시기다. 피 재배의 확산에는 네덜란드인들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들은 아랍 지역에서 커피 묘목을 들여와 자국 식민지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피를 즐기는 방식도 시대에 따라 진화해 왔다. 원래는 원두를 갈아 물에 끓여 마시는 터키식 방식이 일반적이었지만, 1685년에 이르러 필터를 사용하는 방법이 개발되었다. 이 시기부터 사람들은 커피에 우유와 꿀을 넣어 마시기 시작했다. 미국에서는 1775년 보스턴 차 사건 이후, 차에 대한 반감으로 인해 커피가 빠르게 대중화되었다. 현재 커피를 마시는 방식은 매우 다양하다. 터키식, 필터식, 프렌치 프레스(플런저식), 퍼콜레이터식, 모카-나폴리타나식, 에스프레소, 인스턴트커피, 향 커피, 캔커피, 캡슐커피 등 여러 방식이 존재하며, 이는 각 문화와 시대의 기호를 반영한다.

유럽은 1618년부터 1648년까지 이어진 30년 전쟁을 통해 로마 교황이 상징하던 신성로마제국 중심의 질서를 해체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한 신교 세력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각국이 독자적인 주권과 종교 선택권을 갖는 근대 국가 체제를 수립하는 데 성공했다. 반면 중동은 이와 같은 내부적 역사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외세에 의해 강제로 재편되었다. 오스만 제국은 전쟁에서 독일과 동맹을 맺고 참전했으나 1918년 패전과 함께 군사적으로 붕괴되었고, 연합국인 영국·프랑스·이탈리아 등에 의해 영토 분할이 이루어졌다. 그보다 앞선 1916년 영국과 프랑스는 전후 중동 분할을 사전에 계획하기 위해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비밀리에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프랑스는 시리아·레바논·터키 남동부를, 영국은 팔레스타인·요르단·이라크·페르시아만 일대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했으며, 러시아에는 동아나톨리아 일부가 할당되었다. 그러나 이 협정에서는 쿠르드족의 정치적 미래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1차 대전 직후 연합국과 패전국 오스만 제국은 1920년 세브르 조약을 체결했으며, 이 조약은 쿠르디스탄의 자치 혹은 독립 가능성을 명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터키 민족주의자들의 격렬한 저항과 무력 투쟁 끝에 해당 조약은 무효화되었고, 1923년 체결된 로잔 조약에서 현재 터키의 국경이 확정되었다. 이로써 쿠르드족은 터키, 이라크, 시리아, 이란 등 네 개 국가에 걸쳐 국가 없는 민족으로 분산되었고, 민족적 자결권은 박탈당했다. 이후 오스만 제국의 잔여 지역에 설정된 국경선은 자연적·민족적 경계가 아니라 열강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따라 지도 위에 자로 긋듯 설정된 것이었으며, 오늘날 중동 지도 곳곳에서 확인되는 직선에 가까운 경계선들이 그 결과물이다. 이러한 인위적인 국경 설정은 단지 중동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라 아프리카 대륙에서도 제국주의 분할의 흔적으로 뚜렷하게 나타난다. 현재 쿠르드족은 여전히 국가를 갖지 못한 채 각국에서 상이한 상황에 처해 있다. 터키와 이란에서는 정치적 탄압 속에서도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지속되고 있으며, 이라크에서는 헌법상 인정된 쿠르드 자치정부KRG가 존재하고, 시리아 북동부에서는 내전 이후 사실상의 자치지역Rojava이 형성되어 운영되고 있다.

1920년 영국 위임통치령으로 이라크가 형성되었고 1932년 형식적 독립을 선언했지만, 이라크는 쿠르드족, 수니파, 시아파 등 서로 다른 민족과 종파가 열강의 석유 이권을 위해 하나의 국가로 인위적으로 묶인 결과였다. 이는 훗날까지 민족·종파 분열과 갈등의 씨앗으로 남게 된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미국은 사담 후세인 정권에 정보, 군수 장비, 이중용도 기술을 제공하며 간접 지원했다. 정치학자 헨리 키신저는 “미국 외교는 자선사업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후세인 정권이 쿠르드족을 학살하도록 사실상 방치했다. 1988년 레이건 정부는 후세인 정권이 쿠르드족이 거주하던 할라브자에서 사린, 머스터드 가스 등 화학무기를 사용해 약 5,000명을 학살한 사건에 침묵했고, 유엔 조사마저 방해했다는 정황도 포착되었다. 1991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은 걸프전 직후 시아파와 쿠르드의 봉기를 지지했지만, 정작 후세인의 반격이 시작되자 개입하지 않아 수많은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것을 방관했다. 1990년대 클린턴 정부는 터키의 쿠르드노동자당 토벌을 지원하며 F-16 전투기와 무장 헬기 등 군사장비를 대량 제공했고, 터키는 이를 바탕으로 동부 쿠르드 지역을 공격했다. 2000년대 아들 부시 정부는 터키군의 국경 너머 북이라크 쿠르드 지역 공습을 승인하거나 묵인했으며, 2019년 트럼프 정부는 시리아 북부에서 미군을 철수시켜 터키가 ‘IS 격퇴전의 핵심 파트너였던 시리아 쿠르드’를 공격하도록 사실상 허용했다. 같은 해 10월 16일, 백악관에서 이탈리아 대통령 세르지오 마타렐라와의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다음과 같이 발언하며 동맹이었던 쿠르드계 민병대를 사실상 토사구팽兎死狗烹했다. (2014년부터 2019년까지 시리아 북부의 쿠르드 민병대인 인민수비대YPG는 ISIS 격퇴 작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YPG가 주도한 다민족 연합군인 시리아민주군SDF은 미국의 무기 지원과 공중지원을 받으며 작전을 수행했다. 이들은 2017년 라카 함락, 2019년 바구즈 전투 등 주요 전투에서 ISIS를 격퇴하는 데 중추적인 기여를 했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는 불과 두 달 전까지 함께 싸웠던 쿠르드 동맹을, 작전이 끝나자마자 숨을 고를 틈도 주지 않고 내치는 ‘토사구팽’의 전형을 보여줬다.) “쿠르드족은 지금 훨씬 더 안전한 상태다. 하지만 그들은 싸우는 법을 알고 있으며, 내가 말했듯이 그들은 결코 천사들이 아니다. The Kurds are much safer right now. But the Kurds know how to fight, and as I said, they're not angels. 그쪽엔 모래가 아주 많다… 그들이 갖고 놀 수 있는 모래가 정말 많다. They’ve got a lot of sand over there … there’s a lot of sand that they can play with.” 이러한 발언은 쿠르드를 보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힌 것으로 해석되었고, 미국 내에서는 “쿠르드가 배신당했다”는 비판 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미국 의회는 트럼프 대통령의 시리아 철수 결정을 초당적으로 비판하는 결의안을 354대 60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켰다. 트럼프의 “그들은 천사가 아니다”라는 발언은 쿠르드가 도덕적으로 결백하거나 완전무결한 존재는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동맹으로서 반드시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논리를 드러낸 것이다. 또한 “그들이 갖고 놀 수 있는 모래가 많다”는 표현은, 시리아라는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전략적 무관심과 “이제 너희들끼리 알아서 하라”는 냉소적 태도를 상징한다. 이러한 행보는 트럼프 행정부가 필요할 때는 언제라도 동맹을 버릴 수도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는 사례이며, 앞으로의 동맹 정책이 얼마나 불확실한지를 드러낸다. 또한 ‘미 의회와 미국 법률은 기축통화를 무기 삼아 친구를 협박하는 독재 정부에게는 아무런 제약을 가하지 못한다’는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유럽 동맹국들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더 많이 내야 한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나토 내 부담 분담 요구는 쉽게 말해, ‘최신 무기를 다루는 최정예 용병을 빌려줄 테니 그에 합당한 사용료를 내라’는 말과 같다. 국방에 진심인 천조국千兆國이 “국방비를 GDP의 5%까지 올려야 한다”는 요구 역시, ‘트럼프의 병사들은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돈으로 움직이며, 그 대가를 지불해야 싸워준다’는 선언이나 다름없다.

코끼리를 위한 변명: 정치 프레임의 심리학
2025년 Forbes에 따르면 전 세계 억만장자 3,028명 중 약 30%가 미국 국적이며, 이는 단일국가 중 압도적인 1위다. 같은 해 4월 기준 명목 GDP 역시 미국이 약 30.5조 달러로 세계 1위이며, 과학기술·군사력·스포츠·노벨상 수상자 수·연구개발 투자 등 다방면에서 미국은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한다. 특히 노벨상 수상자의 약 40%가 미국인이며, 미국 대학은 여전히 세계 대학 순위 상위권을 휩쓴다. 이러한 미국을 두고 “한때 위대했으나 무너졌다, 내가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라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상 프레임 정치의 전형적인 사례다. 이는 미국의 언어학자이자 인지과학자인 조지 레이코프George Lakoff가 말한 바와 같이, 정치적 언어는 단순한 표현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프레임이다. 그의 저서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에서 말했듯,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는 순간 사람들은 오히려 코끼리를 떠올린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Make America Great Again”라는 구호 역시 같은 작용을 한다. 미국은 이미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인데, “다시”라는 단어를 넣는 순간 미국의 쇠퇴를 전제로 만들고, 유권자들의 감정적 반응을 유도한다. 또한 “미국이 다른 나라와의 무역에서 손해를 봤다”는 주장은 경제적 맥락을 고려하지 않은 정치적 레토릭(rhetoric: 설득을 위한 언어 사용 기술)일 가능성이 높다. 추수감사절에 미국 중산층 가정에 초대되어 함께 식사하고, 그들이 어떻게 소비하고 쇼핑하는지 직접 경험해 보면 알 수 있다. 미국은 소비 측면에서도, 무역 질서에서도, 여전히 세계 경제의 중심에 있다. 미국이 “손해 본다”고 느끼는 감정은 종종 경제 구조의 복잡성이나 산업 재편에 대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지, 실제 손익계산서상의 결과와는 다르다. “바이든은 무기력하고 무능하다”고 말하는 순간, 그가 이룬 성과는 논의의 장에서 사라진다. 이것이 바로 프레임의 힘이다. 특정 표현이 반복될수록 사람들의 사고는 그 틀 안에 갇히게 된다. “기침하지 마세요”라는 말을 반복하면 오히려 청중은 기침을 떠올리고 참으려다 더 불편함을 느끼는 것처럼 부정적 프레임은 그 자체로 강력한 인지적 지배 장치가 된다. 즉 “무기력하다”는 프레임을 쓰는 순간, 바이든 행정부가 이끈 미국의 고용 회복, 반도체법, 인플레이션 감축법, 우크라이나 및 NATO 리더십, 동맹 복원 등 실제 정책 성과는 그 자리에서 흐릿해진다. 이런 프레임은 사실 여부와 무관하게 인지의 중심축을 바꾸는 효과를 낳는다. 구스타브 르 봉의 「군중 심리」에서 설명했듯이 개인일 때와 달리 군중에 속하면 개인의 이성적 판단력이 약해지고 감정과 충동에 더 쉽게 휩쓸리게 된다. 따라서 정치인은 이러한 군중의 심리를 이용해 의도적인 프레임을 만들고, 특정 집단(예: 지역감정은 근대 이후 특히 민주화 과정과 선거 정치가 발전하면서 정치인들에 의해 조장되었고, 그들은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표를 모으기 위해 지역주의를 이용해 ‘우리 지역’ vs ‘저 지역’ 구도를 만들고 강화함)으로 나누어 분열을 조장한다. 군중의 익명성과 감정 전염은 집단 내 결속을 강화시키고, 복잡한 논리 대신 단순하고 강렬한 구호나 이미지에 반응하게 만든다. 이 과정에서 군중은 “우리 집단이 위대하다”는 집단적 최면 상태에 빠지며, “만들어진 갈등과 편견”으로 상대 집단에 대한 배타성과 공격성을 키운다. 대한민국의 2024년 총지출 예산은 약 657조 원, 미화로 약 5100억 달러에 달한다. 한편 알파벳Alphabet Inc.의 2024년 연간 매출은 약 3,500억 달러였다. 이는 대한민국 2024년 전체 예산의 약 70%에 해당하며, 핀란드, 포르투갈, 콜롬비아, 말레이시아, 이집트, 체코, 베트남, 방글라데시 등 여러 국가의 2023년 명목 국내총생산(GDP)과 같거나 맞먹는 규모다. 그럼 Alphabet은 누구인가? Alphabet Inc.는 구글Google LLC의 모회사로, 유튜브YouTube, 자율주행차 기업 웨이모Waymo, 생명과학 기업 베릴리Verily, 클라우드 서비스인 구글 클라우드Google Cloud, 생명 연장 연구를 하는 캘리코Calico 등 다양한 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미국의 빅테크 기업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는 말은 바로 이런 상황에 어울린다.
뇌피셜로 쉬어가기
도널드 트럼프는 뉴욕 퀸스에서 태어나 맨해튼을 기반으로 활동한 부동산 재벌이다. 그는 부자 감세 정책을 추진하며 미국의 무역 구조가 “미국에 불리하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가 말하는 ‘무역 손해’는 과연 어떤 기준에서 비롯된 것일까? 많은 사람들은 뉴욕 맨해튼의 화려한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 트럼프를 미국 최상위층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롱아일랜드 햄프턴스에 거주하거나 별장을 소유한 테크 산업 및 금융계 억만장자들과 비교하면 트럼프의 위치는 상대적으로 낮다. 그는 부동산 자산을 기반으로 한 전통적인 부자이며, 2024년 기준 Forbes에 따르면 그의 순자산은 약 25억 달러로 평가된다. 반면 엘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 마이클 블룸버그 등은 수십~수백억 달러에 달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들은 자산의 유동성과 글로벌 영향력 측면에서도 트럼프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이처럼 트럼프는 매우 부유한 인물이지만, 초국적 자본을 움직이는 미국의 최상위 초엘리트 계층과 비교하면 ‘중산층 억만장자’ 정도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가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미국의 손해’란 사실상 자신과 같은 산업 기반 부유층이 글로벌 기술 및 금융 자본의 헤게모니 앞에서 느끼는 상대적 박탈감과 더 큰 부를 향한 욕구를 반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또한 연방준비제도의 금리 인하는 그의 부동산 사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며, 자본이득세 폐지 등 세제 완화 정책을 통해 주택 시장 활성화를 꾀하려는 의도로도 볼 수 있다.

“이자라(al-ʾijārah) 거래는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따라 이자(ribā) 거래를 하지 않는 대신 투자 수익 획득을 통해 이윤을 증대하는 이슬람 은행의 투자 방식들 중 하나이다. 이슬람 은행을 포함한 이슬람 금융기관이 수익을 창출하기 위해 이용하는 투자 방식은 크게 협업을 통한 금융거래와 상품 매매를 통한 금융거래로 구분할 수 있다. 협업을 통한 금융거래로는 사업 시작 시점에는 존재하지 않는 무형의 이익 창출을 목표로 하는 무다라바, 무샤라카, 무자라아, 무가라사, 무사까 방식이 있다. 상품 매매를 통한 금융거래로는 무라바하, 살람, 이스티스나, 타크시트 방식이 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방식 어디에도 포함되지 않는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이자라 거래 방식이다. 현대 사회에서 이자라 거래는 상품의 매매거래를 통하지는 않지만 상품을 매개로 진행된다. 이슬람의 이자라 거래는 그 유형이 우리의 민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임대차 거래와 기본 개념에 있어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임대차 거래는 당사자 가운데 한 쪽(임차인)이 상대방(임대인)에게 임차료를 지불하고 어떤 물건(자산)을 계약기간 동안 자산의 효용을 획득하는 거래를 말한다. 일반적으로 임대의 형태는 운용리스(operating lease)와 금융리스(financing lease)가 대표적이다. 여기서 운용리스는 임차인이 자산을 약정 기간 동안 이용하고 기간이 종료되면 리스 회사에 반환하는 단기 임대차 계약이다. 금융리스는 임차인이 필요로 하는 기계나 장비 등을 대출 측이 구입해서 임대하는 해약 불능의 장기 임대차 계약이다. 대출 측은 금융상의 책임만을 지며, 임차된 자산의 유지비나 세금 등의 비용은 모두 임차인이 부담한다. 이슬람 금융기관이 운영하는 임대차 계약 역시 이와 유사하며 각각 이자라 타슈길리야(al-ʾijārah al-tashghīlīyah)와 이자라 탐윌리야(al-ʾijārah al-tamwīlīyah)라고 부른다. 여기서 이자라 타슈길리야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활용하는 운용리스와 이자라 탐윌리야는 금융리스와 구조적으로 같다. 이와 같은 전형적인 임대차 거래 외에 이슬람 금융기관이 운영하는 또 다른 임대 거래 방식이 있다. 이 방식은 계약기간이 만료되는 시점에 임차된 자산의 소유권이 임차인에게 이전되는 임대 방식이다. 이자라 문타히야 비 타믈리크(al-ʾijārah al-muntahīyah bi al-tamlīk)가 그것으로 우리말로는 ‘소유로 완료되는 이자라’ 또는 ‘차감형 임대’로 해석할 수 있다. 이슬람 사회에서 이자라 거래의 역사는 예언자가 생존했던 초기 이슬람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슬림들은 초기 이슬람 시대부터 일용직 노동자에게 품삯을 지급하고 필요한 노동력을 빌어왔으며 이런 사례들이 이슬람 금융거래의 한 유형인 이자라 거래의 원형으로 볼 수 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부항을 뜨고 부항을 떠준 사람에게 삯을 지불했다. 예언자 무함마드는 ‘고용한 일꾼들에게 그들의 땀이 마르기 전에 품삯을 지불하라’고 말했다. 예언자는 아부 바크르와 메디나로 여행할 때 안내인에게 비용을 치루고 안내인을 고용했다. 이슬람 초기 시대부터 무슬림 사회에서 애용되던 이자라 거래는 이슬람 은행이 출현하면서 이슬람 금융 거래 방식의 한 유형으로 정착하게 되었다. 1986년 10월 11일부터 16일까지 요르단 암만에서 개최된 국제 이슬람 율법 회의에서 이자라 방식에 대한 파트와(fatwa)가 나온 것을 볼 때, 소유로 완료되는 이자라 방식은 1980년대 후반부터 무슬림 사회에 확대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자라 방식이 이슬람 은행이 가장 많이 운용하는 이슬람 금융 상품은 아니며 일반적으로 무라바하(al-murābaḥah) 방식을 가장 많이 사용한다.「ISIS이후 아랍세계의 변화와 이슬람포비아 현상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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