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卯 - 立秋

2023. 8. 6. 23:59 from 六十干支


오후로 스미는 햇살이 궁핍한 하루의 공복을 채우며 혼미한 일상의 선와에 태풍의 눈같은 고요를 안기고, 오늘의 어떤 의미와 같잖은  ‘살아 있음’을 비추어 작은 소신을 연상하게 한다. 불타버린 감정의 잔허 속 남겨진 어제의 표상은 들판에 불어오는 경향에 회색빛 일색의 도시를 자아내고, 후두둑 비꽃이 내리는 검푸른 언덕으로 질곡의 세월은 기어이 오채의 생을 피어보려 거듭 몸부림친다. 희극과 비극으로 치닫은 폭풍우가 끈적한 눈물을 훔쳐 달아나고, 어제의 영광스런 망령들을 뒤로한 해맑은 청공이 다시금 네메아의 사자의 용맹함을 대적하도록 우리를 부축이는 그런 날, 나는 그대에게 그렇게 물어본다. ‘당신의 한 여름 밤의 꿈은 어떠셨습니까.’ “고된 일로 기진맥진했던 농부들이 깊은 잠에 빠진 채 꿈길이 구만리이고, 활활 타다 남은 장작은 벌겋게 남은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처량하게 누워 있는 환자라면 부엉이 울음소리에 수의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겠지요. 내 빗자루와 함께 먼저 여기에 온 이유는 먼지 수북한 궁전 뒷마당을 쓸기 위함이니...... 온 세상을 하늘거리는 불빛으로 밝혀주리라. 졸 듯이 꺼지는 모닥불 주변에서 꼬마 요정, 큰 요정 가리지 말고 모두들 나와 덤불 속을 뚫고 나온 새처럼 경쾌하게 춤추고 노래하라. 나를 따라서 신나게 노래도 부르고, 발걸음도 가볍게 춤을 추어라.”

 

“오오, 찬란하다. 자연의 빛 해는 빛나고 들은 웃는다. 나뭇 가지마다 꽃은 피어나고 떨기 속에서는 새의 지저귐. 넘쳐 터지는 가슴의 기쁨. 대지여, 태양이여, 행복이여, 환희여, 사랑이여, 사랑이여, 저 산과 산에 걸린 아침 구름과 같은 금빛 아름다움. 그 기막힌 은혜는 신선한 들에 꽃 위에 넘친다. 한가로운 땅에. 소녀여, 소녀여, 나는 너를 사랑한다. 오오, 반짝이는 네 눈. 나는 너를 사랑한다. 종달새가 노래와 산들바람을 사랑하고 아침의 꽃이 공기의 향기를 사랑하듯이. 뜨거운 피 설레며 나는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게 청춘과 기쁨과 용기를 부어라. 새로운 노래와 댄스로 나를 몰고 간다. 그대여, 영원히 행복하여라. 나를 향한 사랑과 더불어. 「내가 죽으면」, 괴테”

 

나는 봄을 품었고, 너는 여름을 피웠고, 우리는 가을을 가슴에 담는다.  그대의 지향과 나의 결탁과 우리의 향유, 다시금 일상을 뒤흔드는 치명적인 계절의 매력에 빠진 우리의 일과는 정련된 감정의 기복으로 문득 찾아온 애상에 나의 초라한 어제를 경쾌한 너의 오늘에 고백한다, 우리의 숲은 다사로이 우리의 지난 계절을 사소한 나뭇잎에 허심탄회 젂어내고 있기에, 지친 대지는 또 시의적절 하염없이 편지를 기다리는 어느 날이면.  

 

잎이 진다,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들듯 저기 아득한 곳으로 떨어진다. 거부하는 몸짓으로 잎이 진다. 그리고 밤에는 무거운 지구가 모든 별들로 부터 고독 속으로 떨어진다. 우리 모두가 떨어진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진다. 다른 것들을 보라 떨어짐은 어디에나 있다. 하지만 이 한없는 추락을, 부드럽게 두 손으로 받아주시는 어느 한 분이 있다. 「가을」, 라이너 마리아 릴케

 

별을 노래하던 그대 어디 쯤에, 은하수에 담긴 별빛으로 충만하던 그대의 초롱한 눈동자에 순백의 별꽃 개화하고, 새벽에 안긴 달빛이 그대의 내일 그윽이 비추던 그런 날이 시나브로 밝아오면, 나는 바람을 타고 하늘거리는 코스모스 언덕길에 서서 다소곳이 그대 더없이 기다려 보기로 작정합니다. 기다리다 기다리다 가슴은 까닭없이 저며 오고, 바람과 한숨과 설움의 시간에서 지쳐 방황하는 나의 영혼 울분을 호소하면, 스며드는 소추立秋의 고아한 정취를 배회하는 빛바랜 추억들이 가만가만 우리의 기억들 넌지시 거슬러 당시의 희열을 차분히 보습해 옵니다. 

 

“오, 거센 서풍 ― 그대 가을의 숨결이여, 보이지 않는 네게서 죽음 잎사귀들은 마술사를 피하는 유령처럼 쫓기는구나. 누렇고, 검고, 창백하고, 또한 새빨간 질병에 고통받는 잎들을, 오 그대는 시꺼먼, 겨울의 침상으로 마구 몰아가, 날개 달린 씨앗을 싣고 가면, 그것들은 무덤 속 시체처럼 싸늘하게 누워 있다가 봄의 파란 동생이 꿈꾸는 대지 위에, 나팔을 크게 불어 향기로운 꽃봉오리를 풀 뜯는 양떼처럼 공중으로 휘몰아서 산과 들을 생기로 가득 차게 만든다. 거센 정신이여, 너는 어디서나 움직인다. 파괴자며 보존자여, 들어라, 오 들어라! .. 나로 너의 거문고가 되게 하라, 저 숲처럼 내 잎새가 숲처럼 떨어진들 어떠랴! 너의 힘찬 조화의 난동이 우리에게서 슬프지만 달콤한 가락을 얻으리라. 너 거센 정신이여, 내 정신이 되어라! 네가 내가 되어라, 강렬한 자여! 내 꺼져 가는 사상을 온 우주에 몰아라. 새 생명을 재촉하는 시든 잎사귀처럼! 그리고 이 시의 주문에 의하여 꺼지지 않는 화로의 재와 불꽃처럼 인류에게 내 말을 널리 퍼뜨려라. 내 입술을 통하여 잠깨지 않는 대지에. 예언의 나팔을 불어라! 오오, 바람이여, 겨울이 오면 어찌 봄이 멀 것이랴? 「서풍의 노래」, 퍼시 비시 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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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efres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