癸卯 - 穀雨

2023. 4. 20. 12:59 from 六十干支

 

아롱거리는 청묘한 계절의 관성, 또 다른 계절은 아사리느니 되풀이되는 자연의 이적에 눈먼 감성은 놀란 가슴 맞추고 잿빛의 거리 이저리 쏘다녀 푸석한 대지에 흩뿌린 봄비와 같은 눈물을 적시네. 파릇한 너의 활기, 생기 있는 너의 해맑은 발돋움, 그지없이 쏟아지는 평온과 되찾은 중력은 너의 미소에 애증을 서리어 나는 꽃바람에 취하고 봄바람에 휘청거리네. 하사하신 당신의 순수는 계절의 기교를 맞이한 나에게 첫 걸음마를 내딛는 아이의 단조로움을 알리고, 그대의 곁을 맴도는 훈향은 점점 퍼져나가 비로소 눈뜬 야생이 봄의 제전을 위한 촛불을 하나둘 밝혀가네. 물결치는 봄볕에  살랑거리는 상록수 가지를 보노라면 이에 질세라 올망졸망 새잎을 틔우기 바쁜 벚나무에 시선이 빗맞고,  수척한 강물이 시내를 재촉하며 갓 떠오른 새싹들이 강파른 하늘에 기우재를 올릴 무렵 우리는 무럭무럭 자라나는 풀잎의 유년에 애잔한  향수를 떠올려 망울진 우리의 앳된 봄꽃을 피우려 하네. 

 

아사리느니: 희미하게 움츠려드니 

“사랑이란, 거꾸로 들고 끝에서부터 읽은 책.  「사랑이란」, 원태연”

“어쩌죠, 까맣게 잊었더니 하얗게 떠오르는 건. 「어쩌죠」, 원태연”

“어룰없이 지는 꽃은 가는 봄인데 어룰없이 오는 비에 봄은 울어라. 서럽다, 이 나의 가슴 속에는! 보라, 높은 구름 나무의 푸릇한 가지. 그러나 해 늦으니 으스름인가. 애달피 고운 비는 그어 오지만 내 몸은 꽃 자리에 주저앉아 우노라. 「봄비」, 김소월”

어룰없이: 얼굴 없이, 덧없이 

“봄은 가나니 저문 날에, 꽃은 지나니 저문 봄에, 속없이 우나니 지는 꽃을, 속없이 느끼나니 가는 봄을. 김소월”

“나는 그 사람이 아프다.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푸른 우산 가지고 꾀죄죄한 양 떼 몰며, 치즈 냄새 풍기는 옷을 걸치고, 호랑가시나무나 참나무나 모과나무 지팡이를 짚은 너는 간다, 저 언덕의 하늘 향하여. 털 빳빳한 개와, 퉁겨 나온 등허리에 색 바랜 물통을 지고 가는 나귀를 따라가는 너. 너는 여러 마을의 대장간 앞을 지나, 흰 덤불덩이 같은 네 양 떼 풀을 뜯을 향내 나는 산으로 돌아가리라. 거기서는, 안개가 옷자락 끌며 산봉우리 가리고, 거기서는, 털 빠진 독수리 떼가 하늘을 날고, 이내 따라 저녁 연기 불그레 타오른다. 거기서, 너는 저 광막한 천지 속에 하느님의 정령이 떠돎을 조용히 바라보리라. 「푸른 우산 가지고」, 프랑시스 잠”

 

“벗은 설움에서 반갑고 님은 사랑에서 좋아라. 딸기꽃 피어서 향기로운 때를 고초의 붉은 열매 익어가는 밤을 그대여, 부르라, 나는 마시리.  「님과 벗」, 김소월”

허공을 채우는 푸르름, 광야를 얼룩지게 하는 흙먼지와 봄비의 결연, 풀 향기에 슬픔 아시우고 고아한 봄빛에 발랄한 표정지으며 활기를 찾아가는 정오의 화원에, 가파른 언덕을 구르며 냉랭한 시냇가로 스미는 빛의 알갱이가 이어서 펼쳐질 오후의 정원을 조용히 장식하네. 화단을 가다듬는 봄의 정령들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는 꽃바람이 거치른 골목과 수선한 거리의 가로수를 매만지면, 봄 향기에 취해버린 너의 일상 한바탕 평온이 휘감고, 편견에 빠져버린 그대의 감성은 고집스레 신기루 같은 봄의 기운을 두 눈에 오롯이 담아내네.  

들판에 유채꽃이 물들고 양떼같은 구름들이 지평선을 향하면 부지런한 풀벌레는 이슬과 입맞추고 봄의 혈관을 채우는 꽃향기는 휘늘어진 오전을 나직이 보듬는다. 푸른 언덕에 오른 목동이 휘파람을 불러 젖히고 그의 충실한 보더 콜리는 배고픈 한 무리의 벗들을 촉촉한 초원으로 인도하면, 고즈넉한 들녁에 물결치는 대지의 숨결이 행렬의 등줄기를 가만가만 어루만지네. 포플러 나무에 기댄 그가 만약 무료함으로 풀피리를 불기 시작한다면 마을 어딘가에서는 ‘복숭아꽃들 밑에서 화사한 햇빛에 섞이는 주름 장식 같은’ 금발의 소녀가 낡고 검은 물통으로 은빛 은방울들을 끌어올릴까. 그렇다면 지붕에 드리운 하늘의 푸름은 토토로의 숯검댕이처럼 하늘로 떠오르고 ‘경련하는 지평선 아래 나무들은 게으르게 일렁이겠지.’ 아마도 봄을 입은 황금빛 날개의 나비가 어리광을 부릴 줄 아는 은빛 플라테로의 두 귀와 어울려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어떤 날에.  프랑시스 잠의 정오의 마을 오마주hommage

갇혀버린 우리의 봄, 저 너머 햇빛은 쏟아지고 있는데 저기 자라나는 것은 너의 눈물을 먹고 자라나 나의 한숨을 피워내는 것인가. 봄은 희망인가, 슬픔에 빠진 희망은 눈멀고 귀먹어 벙어리가 되어 버렸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20만명 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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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refres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