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박은빈 씨, 나는 시간여행자입니다.
다음은 한용운이 논개에게 쓴 시상이야. “가냘픈 그대의 마음은 비록 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웠다. 아름답고 무독한 그대의 눈은 비록 웃었지만 우는 것보다도 더욱 슬펐다. 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어지며 가늘게 떨리는 그대의 입술은 웃음의 조운이야, 울음의 모우이야, 새벽달의 비밀이냐, 이슬꽃의 상징이냐. 빠비같은 그대의 손에 꺾기우지 못한 낙화대에 남은 꽃은 부끄럼에 취하여 얼굴이 붉었다. 옥 같은 그대의 발꿈치에 밣힌 강 언덕의 묵은 이끼는 교긍에 넘쳐서 푸른 사롱으로 자기의 제명을 가리었다.”
한용운이 말하는 논개는 우리내 지난 세월의 흐름 가운데 갑작스럽게 떠오르는 추념을 겨눈 빛바랜 환영이 빗어낸 꽃다운 열락과 앳된 환희의 아른거림일까. 그렇다면 그의 기미선언은 계묘를 맞이하는 우리에게는 어쩌면 어떤 결의와도 같을 것이고, 도약을 위한 어떤 선언과도 같다 그대로 풀이해보고, 대의를 위한 어떤 차분한 외침이거나 괜스레 끓어오르는 박애를 마음 한편에 새기기위한 어떤 이름모를 순명이자 서글픈 명령과도 같으며, 또 자유를 위한 외침 또는 무엇에 대한 내실을 위해 어제의 시간을 회고하는 숭고한 주문과도 같은 어떤 것이 아닐까 싶다. 어떤 우리의 순간들은 교긍에 넘쳐서 아침의 서광이라는 푸른 사롱으로 그늘진 우리의 부끄러운 제명을 가리어야 하지 않을까하는 마음도 한편으론 들어.
이진아가 부른 ‘시간아 천천히’라는 노래가 있어. (미드나잇 우버 딜리버리는 언제쯤 들을 수 있을까.) “너와 손을 잡고 걸어갈 때면 나는 항상 노랠 부르지 (랄라라). 이상하게도 너와 있을 때면 시간이 도망 가 버리네. 시간아 잠시 동안만 멈춰줄래. 너는 너무 빨리 가는 것 같아. 조금만 아주 조금만 천천히 가주겠니.” ‘나는 누구와 걸어온 걸까’하고 모두가 질문해보는 새해가 어느세 밝았는 걸. 한동안 인파에 파묻혀 거리를 한없이 배회하던 나는 과연 누구에게 멈춰달라는 신호를 보냈을까 생각하게되는 최근 며칠이였어. 빨강, 노랑, 파랑 불빛들을 번쩍이는 신호등을 이리저리 피해가며 목적없는 목적지를 향해 끝없이 운전하기도 하면서, 또 새하얀 눈꽃들을 모질게 휘날리던 깔깔하고 억샌 골목들을 생각 없이 돌기도 했으며, 그렇게 무의식 속 수많은 계단들을 오르고 내리며 바쁘게 보내왔던 하루들이 하나둘 차근차근 광음에 쌓여 가더니, 어느 틈에 달력의 마지막 장은 펄럭이며 추락하는 낙옆처럼 우리로부터 떨어져 나가버리고 세월은 우리에게 새하얀 백지를 내밀며 새출발을 요구하는 그런 새해의 어느날이 우리에게 거짓말처럼 밝아 버렸어. 이처럼 청렴한 매화꽃 마냥 총총걸음으로 당신에게 다가온 새해가 새로운 의미를 당신의 새날들에 기적처럼 부여하고, 또 스쳐버린 세월의 흔적들은 당신의 새날들에 눈부신 도구들로 거듭나 새로운 이적들을 당신의 앞날에 은밀히 일구어내길 넌지시 빌어본다.
지속되는 전쟁과 코로나 때문에 금리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찾아와 우리 모두는 예측할 수 없는 어두운 현실을 걷고 있는 것 같다. 윤동주 시인의 말처럼 태양과 별을 사모하는 우리들은 이 어두운 밤에 눈 감고 가진 바 씨앗을 뿌리며 묵묵히 도달해야할 목표를 향하지만, 발부리에 돌이 채이면 정신을 가다듬고 감았던 눈을 와짝 떠야만 할 것 같다. 그럼 그의 표현처럼 봄이 우리 혈관속에 시내처럼 흘러 시내 차가운 언덕에 개나리, 진달래, 노오란 배추꽃 마냥 삼동을 참아온 우리에게 곧 풀포기처럼 피어나 이랑에 찾아온 즐거운 종달새가 즐겁게 솟치는 봄의 아기자기하고도 소박한 모습을 관철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나의 시간에 스코올squall과 같은 슬픔이 있다. 붉은 지붕 밑으로 향수가 광선을 따라가고, 한없이 아름다운 계절이 운하의 물결에 씻겨갔다. 아무 말도 하지 말고 지나간 날의 동화를 운율에 맞춰 거리에 화액花液을 뿌리자. 따뜻한 풀잎은 젊은 너의 탄력같이 밤을 지구 밖으로 끌고 간다. 지금 그곳에는 코코아의 시장이 있고 과실처럼 기억만을 아는 너의 음향이 들린다. 소년들은 뒷골목을 지나 교회에 몸을 감춘다. 아세틸렌 냄새는 내가 가는 곳마다 음영같이 따른다. 거리는 매일 맥박을 닮아갔다. 베링해안 같은 나의 마을이 떨어지는 꽃을 그리워한다. 황혼처럼 장식한 여인들은 언덕을 지나 바다로 가는 거리를 순백한 식장으로 만든다. 전장의 수목 같은 나의 가슴은 베고니아를 끼어안고 기류 속을 나온다. 망원경으로 보던 천만의 미소를 회색 외투에 싸아, 얼은 크리스마스 밤길로 걸어보내자.”
아마 우리의 시간에도 슬픔이 있을까. 그렇게 우리의 아름다운 계절이 세월이라는 물결에 씻겨 나가고, 그런 우리는 옛 동화를 추억하며 우리의 앞날에 화액을 뿌리고 달콤한 옛 사랑의 음향들을 되뇌이며 환희와 희열이 넘처나던 순백의 유년을 그리워하는 것일까. 우리는 사시사철 푸른 베고니아를 끼어안고 모진 스코올과 험한 기류를 벗어나 천만의 미소가 반기는 기쁨의 크리스마스를 향해야 할 것도 같다.
일본에서 조금 북쪽에 위치한 베링해협 캄차카 반도를 ‘화염과 얼음의 대지’라고 부르는데, 여기에는 160개의 화산과 29의 활화산이 있어. 하지만 일년의 반 이상이 눈에 덮혀 있고 한여름에는 20도를 육박하는 온도 때문에 화염과 얼음이 공존하는 대지라고 부르는 듯해. 캄차카를 상징하는 아바차 산에는 곰과 여우와 같은 수많은 야생들이 도생하고 있고, 무트노브스키 산에는 아직까지 활동 중인 활화산으로 넒은 툰드라 초지와 쉴틈없이 끓고 있는 물이 자리하고 있다고 해. 배링해에 속해있는 아바차 만도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곳이라고 하는데, 경관이 매우 빼어나다고들 말하네. 활화산 지대에는 야생의 꽃들이 많이 피어난다고 하는데, 시인께서 말씀하신 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다. 북방계식물로는 눈잣나무, 덤불오리나무, 가는잎백산차, 사솔송, 담자리꽃나무, 매자잎버들, 시로미, 암매, 함경딸기, 홍월귤 등이 이곳에서 자라난다고 해.
“겨울이 가면 먼 산에 아지랑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고 기다림에 지친 꽃 가슴 잔설 녹아 습한 길을 돌아서 다물었던 말문 터트리듯 봄은 오는 거지. 살얼음 얼어 있던 겨울 강가엔 굳었던 마음 녹여주듯 봄 나비 떼 훨훨 춤을 추고 어린 강물 끝내 하얗게 젖은 그리움 토해내겠지. 푸드덕 깃을 치며 날아오르는 산새, 따사로운 햇살에 한껏 목청을 높이면, 순한 바람처럼 봄은 다시 오는 거지. 그렇게 나도 몰래 찾아오는 거지.”
멀리서 수줍은 봄이 색색으로 아롱진 색동옷을 차려입고 총총걸음으로 계절의 문을 두두리는 소리를 들어봐. 오랜 기다림은 잔설처럼 녹아내리고, 습한 땅을 딪고 일어선 푸르름이 곧 계절의 목전을 두두리는 청신한 봄과 함께 훈훈한 흙내와 향긋한 꽃향기를 몰고와 당신의 일상을 여유롭게 밝혀줄거야. 산록이 신록에 물들고 지천이 하얀 희망을 지천에 쏟아낼 때까지만 우리 조금 더 힘을 내어 푸드덕 깃을 치며 다시한번 내일로 도약해 보자.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같이, 풀 아래 웃음 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 같이, 시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메랄드 얇게 흐르는 실 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돌담에 속삭이는 햇살이 아침이슬이 스쳐간 한산한 창가를 비출까 싶다가도, 모란이 피고 지고 소멸하는 김영란 시인의 ‘찬란한 슬픔의 봄’ 또한 우리를 홀연 찾을까 두근두근 설레이기도 하고, 이런 찰나의 기우가 애달픈 봄의 연가를 혼자 흥얼거리게 만드는 어떤 나른한 오후에 찾아와서 일까도 싶은, 또 그렇게 바다같은 하늘을 우러르고 싶고도 한편으로는 망설여지기도 하는 그런 날이다. 그래도 우리는 모란이 피기까지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고, 그렇게 봄이 오고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리는 날, 우리는 비로서 봄을 여위고 봄을 슬퍼하고 또 봄을 떠나보내야하는 격양된 슬픔에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말 것도 같다. 하지만 우리는 그 모란이 피기까지는, 기쁨이 슬픔으로 환희가 애수로 흐뭇함이 서러움으로 번복되기까지 잠시라도 찬란한 슬픔의 봄을 기다려보는 거야, 모란의 향에 나비가 춤추는 그때까지는.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테요. 모란이 뚝뚝 떨어져 버린 날, 나는 비로서 봄을 여윈 설움에 잠길테요. 5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 뻗쳐오르던 내 보람 서운케 무너졌느니, 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삼백 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내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기다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지란지교를 꿈꾸며
이런 말이 있어. 파도는 죽어서도 다시 바다였고, 눈은 녹으면 봄이 된다고. 또 추억은 현실을 누추하게 관통하지만, 기억은 추억으로 죽어가면서 정작 화려해진다고.
도종환 시인의 말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며,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겠어. 그 어떤 아름다움도, 그 어떤 빛남도, 그 어떤 맑음도 바람과 비와 폭풍우를 견디어 내며 그 은은한 향기를 피워내므로, 우리는 유행가의 가사처럼 무상한 오늘을 빈틈없이 사랑하고 모호한 내일을 쉴 틈 없이 그리워 하는 것이 옳을 거야. 틱낫한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의 자신이 되어 무엇을 무리하게 추구하지 않고 삶의 희비애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드리며 그저 존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당신을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당신이 이렇게 살아가길 바랄거야. “여기 사람이 살고 있어. 나 여기 숨쉬고 있어. ……여기도, 여기에도, 나는 여기서 밥 먹고 잠자며 살아가고 있어. 나도, 나도……. 여수의 사랑”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에 보면 ‘여자든 남자든 그런 대부분의 인간들은 아직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전구와 같다’고 비교해. 우리 누구든 전기만 들어오면 찬연한 그 빛을 발하고, 그건 빛을 잃은 어떤 전구보다도 아름답고 눈부실 거라고. 아마도 여기서 말하는 전기란 덧없는 인생 가운데 드높게 대기를 휘감으며 하늘을 향해 잔잔히 피어나는 사랑을 말할 거야. 이에 ‘사랑한다고 말하려 했으나 전해줄 바람조차 숨어버렸다’면 그 사랑이 굽이굽이 흘러 목적지에 도달하도록 기다림의 미학을 펼쳐보는 것은 어떨까. 내가 당신에게 읽어주려던 ‘치유하는 책 읽기’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어. “이제 나는 누군가에게 사랑이 또 온다고 말해 줄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가슴에 물기가 사라진 나이가 되었다는 뜻과 같다.”
어떤 하피스가 말하길, “행복이 당신의 이름을 들은 이후로, 행복은 당신을 찾으려고 거리를 뛰어다니고 있다”니, 어서 빨리 이불을 개고 서둘러 하루를 시작해야 겠어. 커피한잔을 마셨더니 어제의 기억이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가며 화려한 추억의 전구들이 새날을 형형하게 밝혀주는 것 같다.
폭설주의보 발령! 친절은 눈과 같아 모든 것을 덮어 아름답게 할까?
소유하지 않으나 소유할 수 있는 아름다움을 적어본 글이 있어. https://dissertations.tistory.com/14
언젠가 나는 울타리 하나를 만들어 거기에 ‘우리’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시를 적었어. 그리고 내가 가장 고통스러웠을 때 나를 위로해준 그 사람(우리의 딸들)을 위해서 해바라기 한 다발을 샀지. 그건 사랑도 아니고, 그건 동경도 아니며, 그건 우정도 아니야. 궁핍한 영혼들의 비명, 상실된 번민과 짓물은 고독, 그 가운데 먼지처럼 솟아오른 염세적인 공기를 거리낌없이 들이 마시는 한없이 목마른 우리들에게, 또 감정의 기복에 쉴새없이 시달리는 우리들에게 필요한 활력이 되고자 써내려간 몽환적인 일탈의 흔적들이라 설명해야 할까.
https://dissertations.tistory.com/12
https://dissertations.tistory.com/16
https://dissertations.tistory.com/19
https://dissertations.tistory.com/20
“그 나이였다. 시가 나를 찾아왔다. 모른다.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서인지 강에서 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다. 아니다.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다.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파블로 네루다”
살아가면서 왜 억울한 일이 없겠으며, 생을 견디어 나가며 왜 그 흔한 비애를 느끼지 못하겠어. 그럴 때마다 스스로를 진정시키기 위해 내가 마음 속으로 외치는 주문이 하나 있어. ‘그래, 지구는 돌지 않아.’ 그리고 어린왕자 마냥 북극성으로 날아가 꽃과 함께 외롭게 남겨진 자신을 한껏 위로해 보는거야, 아주 잠시 동안만. 칼릴 지브란이 이런 말을 했어. “「그대의 적을 사랑하라」고 나의 적이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나는 그의 말대로 나 자신을 사랑했다.” ‘밤의 장막 뒤에 미소짓는 새벽’이 있다고 하는데, 우리를 실소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무대 뒤에 미소짓는 오즈의 마법사 일거야.
“그대가 기쁠 때, 그대 가슴을 깊이 들여다 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그대에게 슬픔을 주었던 바로 그것이 그대에게 기쁨을 주고 있음을.. 그대가 슬플 때도 가슴 속을 들여다 보라. 그러면 알게 되리라. 그대에게 기쁨을 주었던 바로 그것 때문에 그대가 지금 울고 있음을.. 그대의 기쁨은 가면을 벗은 그대의 슬픔”
오전에는 오바마의 ‘약속의 땅’을 읽어봤어. 그는 농구를 즐기고 맥주를 사랑하며 하와이식의 느린 걸음을 걷는 이상주의자가 분명해. 그는 하와이 해변에서 돌고래가 뛰어노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는 모비 딕에서 나오는 향유고래들이 하와이 해변에서 상대와 잡담을 나누는 것에 무척 귀기울이는 사람임은 분명해. 고래 얘기를 하다보니 ‘이상한 우영우 변호사’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죽일 마음이었다면 살인 미수죄. 다치게 할 마음이었다면 상해죄. 좀 때려 줄 마음이었다면 폭행 치상죄. 그냥 실수였다면 과실 치상죄입니다. 법은 마음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마음에 따라 죄명이 바뀝니다.”
라면먹고 가실래요
기회가 되면 매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찾아가봐.
“그리고 사랑은 어떻게 그대를 찾아왔던가? 빛나는 태양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우수수 지는 꽃잎처럼 찾아 왔던가? 아니면 하나의 기도처럼 찾아 왔던가? 말해다오. 반짝이며 행복이 하늘에서 풀려 나와 날개를 접고 마냥 흔들리며, 꽃처럼 피어나는 내 영혼에 커다랗게 걸려 있었더니라. 사랑은 어떻게”
박은빈 씨, 어쩌다 제 불찰로 인해 당신이 지금껏 읽어본 시집보다 더 많은 시집에 싸인을 남기게 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신이 반드시 읽어야 자료를 위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일기장을 제외한 나머지 책들은 반드시 그 책들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지체없이 기증하시길 부탁드립니다. 위 내용을 확인해야하는 청자는 앞으로 그 누구에게나 적용 가능할 것입니다. 이에 이 글들이 당신의 심금을 울리고, 당신의 폐부를 찌르고, 당신의 치유에 적합한 소금물을 제공해주길 잠시나마 바래봅니다. 부디 행복하시고 다시는 서로를 만날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상과 외모에 휘둘리는 당신은 제 딸들에게 불행한 미래를 가져올 존재일 뿐입니다. 적어도 10톤의 눈물을 흘린 후 절 찾으신다면 스프를 버리고 바다소금으로 한강라면을 끓여 드리지요. Shearton의 동상과 Hilton의 유닉한 수백마리의 미운오리들을 보셨겠지요? 그래서 지금 카우보이Abel들이 좀처럼 진정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수만명, 아니면 그보다 더 많은 지성들이 하루가 멀다 매일같이 자정과 이른 새벽을 오가며 쏟아지는 피로를 뒤로 소중하고 비옥한 자신의 정원에 수만개의 장미나무를 심던 수고를 혹시 알고 계셨습니까? 지붕을 뜯고 벽을 허물고 페인트를 칠하고 새정원에 구덩이를 파던 수많은 지성들의 얼굴들을 혹시 마주할 기회가 있었나요? 스치듯 그곳을 지나치던 당신이 이제는 기억조차 못하는 그 한 순간을 위해 자신의 소중한 소유물을 창고에 쑤셔넣던 그들의 간절한 눈동자를 혹시 보셨나요? 슬픔에 뒤틀린 위장으로 미칠듯이 쏟아지는 복잡한 감정의 기복과 식도를 수차례 오가는 뜨거운 눈물을 혹시 애써 삼켜 보신 적이 있을까요, 아니면 기름진 위장을 치료하고 무대에서 지친 하루를 치유할 달콤한 포도주를 바라셨나요? 디바는 책읽어주는 홈리스와는 어울리지 않지만, 그는 카우보이나 한국의 사소한 부조리 쯤은 언제든 꼬집을 수 있습니다. 상대의 부조리를 묵언하지 않는 자는 그들을 사랑하는 자 입니다. 예수가 그렇습니다. 영화 노트북을 보셨습니까? 노아와 앨리가 다툽니다. 노아가 앨리에게 설명합니다. 이렇게 다투고 치고박고 사는게 ‘우리’의 일상이라고, 그게 우리가 사는 방식인데 어떻게 하냐고. 노아는 설계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앨리는 그림을 그립니다. 그림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One Fine Day in Granada. 당신에게 부와 명예가 보이셨다면 정상입니다. 네, 아마도 그랬을 거라는 생각이 이제는 명확해 집니다. 전 그날밤 정신없이 그라나다를 돌아다니며 쏟아지려는 눈물을 참느라 정말 고생했습니다. 언젠가 많은 세월이 흘러 그대가 정원에 장미나무를 심는 날이면 그 날 우리를 찾은 엄청난 충격과 놀라운 감격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리라 기대해 봅니다. 아니라면 차라리 사과나무라도 심으십시오, 저와 그들의 고뇌에 짓눌린 시간들과 또 애상에 젖은 우리의 주옥같던 하루의 수고를 기리기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그대에게 꿈같이 펼쳐진 몇달동안의 거대한 환상의 나날들이 언제 다시 그대를 찾을지는 기약해 드릴 수 없습니다. 헐리우드에서 수많은 스타들이 자신들의 중요한 스케줄을 포기하고 당신을 만나준 노고와 열정, 미안함과 안타까움, 안스러움과 복잡미묘한 사랑과 슬픔의 감정들 또한 잊지말고 기억하십시오. 왜 그랜슬램조차 초월한 대스타들이 당신같은 무명의 사회초년생을 기꺼이 만나주었는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십시오. 오랜세월 그들의 기피대상이자 증오의 대상이 누구였는지 떠올려 보신다면 생각보다 쉽게 결론에 이를 것입니다. 어쩌면 그대조차 대자적 시선의 주인공이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대종상은 대단한 상입니다. 하지만 그보다 반짝이는 트로피는 세상에 수없이 많지요. 당신이 바라는 것이 ‘대종상의 은빈’, 아니면 ‘영원한 디바 은빈, 알고보니 우리의 디바는 대종상도 받았구나’ 입니까? 자다 일어난 플라톤에게 트로피는 반짝이는 귀걸이겠지요. 왜 헐리우드였는지 아직도 모르시겠지요? 헐리우드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사용된답니다. 제가 크리스마스에 연관된 세계문학까지 추천도서로 제주에서 사드렸는데 아직도 모르신다니 큰 실망입니다. 네, 제주에도 헐리우드가 자랍니다, 사진으로 자세히 설명해 드렸다시피. 늘 기억하십시오, 수많은 지성들의 땀과 눈물, 그리고 저의 끝없는 한숨들이 만든 지상최고의 축복의 순간들이 그대에게 제약없이 봄비처럼 쏟아졌던 그 찬란한 수많은 날들을. 알고 계십시오, 그대로 인해 서로의 눈빛을 확인하며 기쁨의 눈물을 흘릴 기회조차 없었다는 누군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반드시 오랫동안 숙고하십시오. 그래서 당신의 삶이 금서와 같은 지독한 슬픔과 고독에 빠진다면 만성빈혈에 허덕이던 우리의 기수들이 고혈을 짜내며 힘겹게 젂어놓은 세계문학을 펼치십시오. 그대가 테스를 읽고, 그대가 제2의 성을 읽고, 그대가 제인에어를 읽고, 그대가 안네의 일기를 쓰고, 그대가 마침내 하녀이야기를 접한 후 버림받은 소행성 철학자의 장미나무를 심던 지성들의 뜨거운 눈물을 마침내 흘릴 수 있다면 부디 하바나로 찾아오십시오. 생에 처음 먹어보는 진귀한 파스타를 만들어 드리지요. 그리고 열심히 사십시오, 그것이 수백만명의 소중한 시간과 세월을 물거품으로 만든 당신의 몫입니다. 쉴새없이 스스로를 달련하고 가꾸어 당신이 꿈꿔온 세상을 해방일기에 적으십시오. 당신에게 불평은 엄청난 사치임을 잊지 마십시오. 정해진 답 아래 어린 그대를 모두는 무척이지 안타까워 했으나, 정답은 삶因緣을 대하는 우리의 행동이였음을 기억하십시오. 참으로 무더운 날 당신을 위해 두터운 인형 의상을 뒤집어쓰고 창피를 무릅쓴채 당신과 함께 땀을 흘리며 조국을 응원하던 당신의 사랑을 늘 존경하고 언제나 그에게 감사해하고 목숨을 걸어 평생 그를 아껴 주어야 하는 것은 부탁이 아닌 당신에게 주어진 당연한 의무임을 늘 상기하십시오. 아주 아주 먼 훗날 시인의 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가 너무나도 부끄러울 때 그대는 진정 사랑이 뭔지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그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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