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랍에미리트UAE 사람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베두인 부족 사회에서 비롯된 역사적 뿌리를 가진 정치·사회 구조 속에서 자신들이 아랍 문명과 이슬람 전통의 계승자라는 점에 강한 자부심을 가진다. 초기에는 부족과 혈통이 국가 정체성보다 중요한 사회적 기반이었으며, 대표적으로 약 20개 부족으로 구성된 바니 야스 연합에서 알 나흐얀 가문과 알 막툼 가문이 등장해 현대 정치 체제의 핵심 기반을 이루었다. 이러한 부족들은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등지의 이동한 베두인 집단과 연결되었고, 아와미르, 바니 카브, 바니 키탑 등 여러 부족이 이 지역을 오가며 정치적·군사적 네트워크를 형성했다. 7세기 이후 이슬람 확장 과정에서 중동, 북아프리카, 중앙아시아, 이베리아 반도까지 진출했지만, 초기 이슬람 제국은 비무슬림 공동체에 지즈야 세금을 부과하며 점진적 개종을 허용했고, 단순한 강제 개종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오스만 제국은 16~17세기에 걸프 서부와 이라크, 아라비아 일부로 세력을 확장했으나 오늘날 UAE에 해당하는 걸프 동남부 해안은 제국의 직접 행정 구역으로 편입되지 않았고, 영향은 주로 외교적·간접적 차원에 머물렀으며 현지에서는 부족 연합과 해상 세력이 실질적 지배를 유지했는데, 특히 카와심 해상 세력은 18~19세기 페르시아만과 오만만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영국과 충돌하였다. 이러한 해상 분쟁 이후 1820년 일반 해양 조약과 이후의 휴전 협정을 통해 이 지역은 트루셜 국가 체제로 재편되었고, 이는 식민지라기보다 외교와 해상 안보를 영국이 담당하고 내부 통치는 각 토후가 유지하는 보호령 구조였으며, 19~20세기 오스만 제국의 권력 약화와 유럽 제국주의 확장 속에서 아랍 지역 대부분이 영국과 프랑스의 보호령 체제에 들어갔고, 오늘날 UAE 지역 역시 영국 보호령인 트루셜 스테이츠 체제 아래 놓였다. 1958년 아부다비와 1966년 두바이에서 상업적 석유가 발견되면서 경제 구조가 급격히 전환되었고, 1968년 영국의 걸프 철수 선언 이후 1971년 여섯 토후국이 연방을 수립, 1972년 라스알카이마가 합류해 현재의 7개 에미리트 체제가 완성되었다. 초대 대통령 셰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은 부족 전통과 연방 구조를 결합한 정치 체제를 구축했고, UAE는 석유 수익을 기반으로 금융, 항공, 물류, 관광, 첨단 기술 분야로 경제를 다각화하며 세계적 허브로 성장하였다. 또한,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 문제 때문에 이스라엘을 인정하지 않았던 아랍 국가들과 달리, 2020년 미국 중재 아래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해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며 관광, 기술, 무역, 안보 협력을 확대했는데, 이는 중동 정치 질서의 중요한 변화로 일부 분석가들은 이란 영향력 확대에 대응한 지역 전략의 일부로 평가한다. 한편, 이슬람 신앙에 따르면 신의 메시지인 꾸란은 천사 가브리엘이 무함마드에게 전달한 계시(와흐이, waḥy)이며, 많은 무슬림들은 꾸란이 “명확한 아랍어”로 내려졌다고 믿어 아랍어가 이슬람 신학과 예배에서 특별한 지위를 갖는다고 이해한다. 꾸란의 언어가 아람어라는 일부 현대 학자의 가설은 전통적 교리와 주류 학계에서는 받아들여지지 않으며, 중세 이슬람 전통에서 퍼진 “천국의 언어가 아랍어일 것”이라는 견해 역시 후대 신학 전통의 신앙적 해석으로 이해된다.

“아랍에미리트는 부족사회이다. 그러나 이들 부족을 지리적 또는 역사적 기준에 의거해 일목요연하게 설명하고 정리하는 것은 어렵다. 그것은 중동지역 부족의 독특한 특징이자 아랍에미리트 부족들의 특징에 기인한다. 첫째, 부족 영지의 범위가 협소하다. 아랍에미리트의 부족들은 dar 또는 dira로 불리는 영지를 각각 소유했다. 아랍에미리트 부족들은 당시 아라비아 반도의 자연환경과 기후조건을 고려해서인지, 가급적 오아시스 근처의 야자수 숲을 영지로 점유하였다. 따라서 특정 오아시스 근처에 많은 수의 부족들이 군락을 형성하여 공동생활을 할 수 있었다. 부족의 영지는 분명 특정 부족의 영역 표식이 될 수 있었으나, 그 범위가 매우 협소하여 영지에 따른 부족 현황과 그 분포를 정리하기는 어렵다. 둘째, 부족 영지의 점유가 비항구적이었다. 아랍에미리트 부족들이 소유한 영지는 협소했을 뿐만 아니라 점유가 비항구적이었다. 부족의 영지는 방목 조건, 용수 공급, 교역로, 부족 간 연합 등에 따라 변했다. 즉, 영지의 위치가 변화 또는 분할 가능했으며, 심지어 소멸되기도 했다. 이처럼 아랍에미리트 부족 영지의 잦은 변동성은 영지에 따른 부족 현황과 분포 조사를 어렵게 만든다. 셋째, 역사상 부족 간 연합과 와해가 부단하다. 아랍에미리트 부족은 주로 정치적 헤게모니와 경제적 이권에 따라 부족 간 연합과 와해를 끊임없이 이행했다. 부족은 보다 큰 단위의 부족 연합으로 확대되거나, 동시에 보다 작은 단위의 씨족 또는 확대 가족으로 전락하기도 했다. 그 만큼 부족은 단일 공동체와 혈통을 유지하기 힘들었다. 오히려 부족들은 지리적 근접성 또는 동일한 생계활동 등을 기준으로 이합집산을 거듭했다. 때문에 수백 개에 달하는 아랍에미리트의 모든 부족의 생성 기원과 발전역사에 대한 정리작업은 마치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실타래를 푸는 것과 같다. 부족은 공동의 언어, 문화, 혈통 등에 입각한 특정 집단을 의미하며, 부족주의는 부족 집단의 조직, 문화, 신념 또는 충성심과 정체성에 대한 열정적인 감정 등을 가리킨다. 이와 달리 중동의 부족과 부족주의의 개념은 위의 일반론과 일정한 차이가 있으며, 보다 협의적인 의미이다. 중동 특히 아랍에서 부족은 ʻ동일한 조상을 가진 사람들의 집단’이란 사전적 의미로 해석된다. 한편 부족주의에 상응하는 용어는 존재하지 않지만 아랍의 부족주의는 보편적으로 ʻ사막에서 부족이 공격을 받았을 때 부족원이 아주 굳건히 단결되는 것을 볼 때 확연히 드러난다’는 주장을 고려하면, 부족주의는 부족집단을 위한 강한 충성심, 연대감 더 나아가 정체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요약하면, 중동의 부족은 무엇보다 혈통이 중시되며, 부족주의는 고유의 혈통을 보호, 유지하기 위해 갖는 연대감과 정체성이다. 아랍 역사학자‘이븐 칼둔’은 ʻ연대의식으로 뭉친 부족들만이 전야에서 생존가능하며, 연대의식은 혈연집단이나 그에 상응하는 집단으로부터 나온다’ 주장한다. 즉, 부족주의는 혈연에 근거한 부족 구성원의 사활과 부족의 존폐와 직결된다. 그러므로 부족주의는 부족의 생명력을 유지, 연장하기 위해 혈연 간 단결을 목적으로 부족 내 의사결정과 체제구축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근접한 이웃 또는 혈연적 근접성이 확인된 친인척과의 결혼과 협약을 통한 연합을 추진하는 등 넓은 의미의 정치행위에 활용된다. 「아랍에미리트의 부족주의 연구」”

“아부다비와 두바이 사람들은 원래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국경 지역에 있는 리와 오아시스 지역을 중심으로 살던 바니 야스 부족 연합 출신이다. 바니 야스는 ‘야스의 아들들’이라는 뜻으로 200여 년 전 현재의 아부다비 지역에서 여러 가문이 이룬 부족 연합을 지칭한다. 당시 바니 야스 부족 연합을 이룬 부족 중에 알 팔라히와 알 팔라시가 있었는데, 현재 아부다비의 통치자인 알 나흐얀 가문은 알 팔라히의 한 갈래이며, 두바이 통치자인 알 막툼 가문은 알 팔라시에서 나왔다고 한다. 여하튼 1833년경 부족 간 갈등으로 한 집단이 북부 해변 지역으로 이주하여 두바이에 정착했고, 이들이 현지 주민들을 보호하며 보호세를 받는 지배 집단으로 성장했다. 이는 오늘날 두바이 왕가인 알 막툼 가문의 기원이 되었다. 한편 당시 아부다비 사람들은 리와 오아시스 지역을 중심으로 대추야자 농사를 지으며, 여름철에는 아부다비 섬으로 이동해 인도 상인들을 대상으로 진주 채집을 했으나 1920년대에 이르러 일본의 진주 양식 성공과 세계 대공황으로 경제에 큰 타격을 입었다. 하지만 1958년 아부다비에서 석유가 발견되면서 상황은 바뀌었다. 석유 수출을 시작으로 경제적 번영의 희망이 생긴 것이다. 이 무렵 아부다비 제2의 도시인 알아인 시에는 캐나다 선교사에 의해 최초의 현대식 병원이 설립되었고, 지금도 오아시스 병원이라는 이름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국민의 삶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석유 수출로 나라에 많은 돈이 들어왔지만 당시 40여 년간 아부다비를 지배해오던 통치자인 세이크 샤크부트 빈 술탄 알 나흐얀이 재정 수입을 국민과 국가 발전을 위해 쓰는 데 대단히 보수적이었던 것이다. 오랜 논란 끝에 1966년 그의 동생 세이크 자이드 빈 술탄 알 나흐얀이 통치자가 되면서 석유 수입을 국민에게 공평하게 배분하고 국가 재정을 인프라 개발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세이크 자이드의 지도 아래 아랍에미리트는 작은 부족들의 연합 국가에서 강력한 독립 국가로 발전했다. 그는 국민에게 신망을 얻으며 아랍에미리트를 현대화하고 발전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시기부터 돈이 활발히 유통되었고 도요타, 벤츠 등 외국 자동차가 수입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수입권을 빠르게 확보해 부유해진 기업가 집안들이 탄생했다. IKEA, Hertz, Zara 같은 브랜드 유통을 담당하는 알 푸타임 그룹, 현대자동차 수입과 쇼핑몰 까르푸를 운영하는 마지드 알 푸타임 그룹 등이 손꼽힌다. 「있는 그대로 아랍에미리트」”

도널드 트럼프가 아랍에미리트를 방문했을 때 공항 환영식에서 흰 전통 의상을 입은 여성들이 긴 머리칼을 좌우로 흔드는 장면이 화제가 되었는데, 이는 단순한 퍼포먼스가 아니라 아라비아반도에서 오래 이어진 전통 공연인 알 아이알라의 한 요소로 이해된다. 알 아이알라는 UAE와 오만 지역에서 전승된 집단 민속 공연으로, 북(드럼)과 합창 리듬에 맞추어 남성들이 두 줄로 서서 막대기나 칼을 들고 전진하며 전통 시가를 노래하고, 그 앞이나 사이에서 여성들이 긴 머리를 좌우로 크게 흔들며 리듬을 강조하는 동작이 특징인데, 이 머리 흔들기 동작은 전통적으로 “나아샤트 na’ashat”라고 불리는 여성 참여 부분으로 공동체의 환영·기쁨·결속을 상징한다. 공연의 기원은 부족 사회의 전투 승리 축하나 공동체 결속 의식에서 발전한 것으로 해석되며, 오늘날에는 결혼식·국가 행사·문화 축제 등에서 귀빈을 환영하는 상징적 의전으로 활용되고 있고,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목록에도 등재되어 있다. 환영식에서 함께 보이는 복장 역시 전통적 의미가 있는데, 남성들은 보통 흰색 긴 로브인 칸두라와 머리 스카프인 구트라를 착용해 지역 정체성과 전통을 드러내며, 이러한 공연은 일상적 인사 방식이라기보다 국가 의전이나 문화 행사에서 외국 정상에게 아라비아 문화유산을 보여 주기 위해 연출되는 상징적 환영 의식이라는 점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UAE는 2022년 약 35억 달러(약 4조 원) 규모의 계약을 통해 한국의 중거리 지대공 요격미사일 체계인 천궁‑Ⅱ(M‑SAM II)를 10개 포대 규모로 도입했으며, 이 계약은 당시 한국 방산 수출 역사상 최대 규모 중 하나로 평가된다. 체계 생산은 국내 방산업체인 LIG넥스원이 총괄하고 한화시스템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레이더, 발사대 등 핵심 장비를 제조하는 구조로 이루어졌으며, 최근 중동 긴장 상황 속에서 UAE에 배치된 천궁‑Ⅱ는 실제 공격에 대응해 실전에서 가시적 성과를 보였는데, 보도에 따르면 통합 방공망 일부로 운용되던 천궁‑Ⅱ는 이란이 주변국을 상대로 발사한 탄도·순항미사일과 드론 공격을 격추하는 데 투입되어 약 60발의 요격미사일이 발사되는 동안 96% 이상의 지정 목표 요격 성공률을 기록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러한 실전 운용 사례는 천궁‑Ⅱ의 첫 가동성능 평가로 여겨지며, UAE 정부는 추가·조기 납품을 요청할 정도로 현지 수요가 커지고 있으며, 한국 정부와 UAE 측은 인도 시점을 앞당기는 방안을 논의 중이고, UAE는 미국·이스라엘산 방공체계(예: 패트리엇, 애로)와 함께 천궁‑Ⅱ를 통합 운용하여 전방위 위협에 대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성과는 천궁‑Ⅱ가 실전 환경에서 높은 요격률을 보였다는 점에서 한국 방산 기술의 신뢰성을 높이고 중동을 포함한 해외 수출 경쟁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며, 동시에 UAE가 기존 체계 외에도 한국산 요격미사일에 대한 전략적 의존도를 확대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아랍에미리트연합 문화의 핵심에는 종교와 언어가 자리 잡고 있으며, 이슬람교가 국교로서 일상생활과 사회규범 전반을 관통한다. UAE에서 대부분의 토착민(에미라티)은 수니파 이슬람 전통을 따르며 꾸란과 예언자 무함마드의 가르침이 법, 교육, 의례, 축제 등 거의 모든 사회적 활동에 영향을 미친다. 아랍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종교적·문화적 정체성의 심볼로 여겨지며, 특히 꾸란 낭송에서 중심 역할을 한다. 전통 복장은 문화와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표현으로, 남성은 보통 긴 흰색 로브인 칸두라Kandura와 머리에 두르는 구트라Ghutrah를 검은 끈인 아갈Agal로 고정하고, 여성은 집 밖에서는 어두운 아바야ʿabāyah를 두르고 히잡Hijab 또는 샤르르Shāl로 머리를 가리는 복식을 착용한다. 이러한 복장은 공식 행사, 결혼식, 공공장소에서도 강한 사회적 규범으로 자리 잡고 있다. 역사적으로 UAE 사회 구조는 부족(tribe) 기반으로 형성되었고, 부족과 혈통은 신분과 권력 구조에 영향을 미쳤다. 대표적 부족 연합인 바니 야스Bani Yas에서 아부다비의 알 나흐얀 가문과 두바이의 알 막툼 가문이 나오며 현대 UAE 정치·사회 조직의 중심축 역할을 했다. 전통 예술과 축제도 여전히 중요한 문화 자산인데, 대표적 민속 공연인 알 아이알라(Al-ʿayyalah, 통칭 Al-Ayyala)와 유울라Yowlah 무용은 축하와 환영, 승리의 의미를 담아 다양한 행사에서 남성·여성이 참여하며 연주와 춤을 선보인다. UAE의 전통 스포츠인 매사냥falconry, 낙타 경주camel racing, 전통 어로·보트 경주와 같은 활동은 유목 및 사막 생활의 역사적 맥락에서 발전해 오늘날에도 문화적 상징으로 중요하게 지켜지고 있다. 동시에 UAE는 두바이, 아부다비를 중심으로 국제 비즈니스와 관광, 미술·영화·패션 등 글로벌 문화 허브로서의 역할을 확대하며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독특한 문화적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에미리트 사회에서 우정과 사회적 관계는 전통적 규범과 종교적 가치에 의해 상당 부분 규정되며, 특히 성별에 따른 사회적 경계가 뚜렷하다. 아랍에미리트의 전통적 공동체에서는 남성과 여성 사이의 사적인 우정이 제한적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으며, 이는 이슬람 문화권 전반에서 발견되는 성별 분리 관습과 관련이 있다. 이러한 문화적 맥락 속에서 다른 아랍 국가 출신 사람들은 언어·종교·관습의 유사성 때문에 에미리트인과 비교적 쉽게 친밀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으며, 그들 역시 신 앞에서 평등한 이슬람 공동체(움마, Ummah)의 구성원이라는 의식을 공유한다. 에미리트인들은 우정을 가볍게 여기지 않는 경향이 강해 관계 형성에 상당한 시간과 정성을 들이며, 신뢰와 충성심을 중시하는 태도를 보인다. 겉으로는 개방적이고 친근한 태도를 보이지만 관계의 깊이를 신중하게 조절하기 때문에 때로는 일정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모습이 외국인 방문객에게는 다소 모순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 사회적 인식 속에는 국적이나 문화권에 따른 고정관념이 존재하는데, 서구 출신 외국인이 남아시아나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보다 사회적으로 더 정중한 대우를 받는 경향이 있다는 점은 여러 인류학 연구와 중동 지역 노동 구조 연구에서 지적된 바 있다. 전통적인 인사 방식으로는 가족이나 가까운 친구 사이에서 코를 가볍게 맞대는 인사인 일종의 ‘코 키스’가 사용되기도 하며, 이는 부족 문화와 베두인 전통에서 유래한 친밀성의 표현이다. 외국인이 이러한 아랍식 인사를 시도할 경우 대부분의 에미리트인들은 이를 문화에 대한 존중으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으로 반응하는 편이다. 일상적인 인사말로 널리 사용되는 “살람 알라이쿰 Salām ʿalaykum”은 “당신에게 평화가 있기를”이라는 뜻이며, 이에 대한 응답은 “와 알라이쿰 살람(당신에게도 평화가)”이다. 또한 “알함두 릴라 Al-ḥamdu li-llāh”는 “신께 감사한다”라는 의미로 일상 대화에서 자주 사용되는 표현이다. 공식적인 서신이나 연설, 특히 종교적 또는 전통적 맥락이 강한 자리에서는 “비스밀라히르 라흐마니르 라힘 Bismillāh al-Raḥmān al-Raḥīm”, 즉 “자비롭고 자애로운 신의 이름으로”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관습이 널리 알려져 있다. 환대(hospitality)는 에미리트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미덕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며, 이는 역사적으로 사막 환경 속에서 형성된 생존 문화와 깊이 연결되어 있다. 베두인 사회에서는 낯선 여행자에게 음식과 쉼터를 제공하는 것이 공동체의 명예와 직결되는 도덕적 의무로 간주되었으며, 장거리 무역과 이동이 잦았던 지역 특성상 이러한 환대 문화는 오늘날까지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따라서 식사나 모임 자리에서 예상보다 일찍 떠나는 행동은 때로 주인의 환대를 충분히 존중하지 않은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초대를 받았을 경우 작은 선물을 준비하는 것이 예의로 여겨지지만, 전통적으로 음식이나 술을 가져가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특히 술은 이슬람 규범과 관련된 민감한 요소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선물로는 향수, 고급 차, 대추야자, 장식품 등이 더 무난한 선택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관습들은 현대의 국제적 도시 환경 속에서 점차 완화되고 변화하고 있지만, 에미리트 사회의 문화적 기초를 이해하는 데 여전히 중요한 단서가 된다.

'書評'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시빌라이제이션 XLIX - 중앙아프리카 공화국 République centrafricaine (2) | 2026.03.10 |
|---|---|
| 시빌라이제이션 XLVIII - 세인트빈센트 그레나딘 Saint Vincent and the Grenadines (1) | 2026.03.09 |
| 시빌라이제이션 XLVI - 이란 이슬람 공화국 .جمهوری اسلامی ایران (1) | 2026.03.03 |
| 시빌라이제이션 XLV - 그리스 (1) | 2026.03.03 |
| 시빌라이제이션 XLIV - 덴마크 왕국 (1) | 2026.02.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