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16개 주로 구성된 연방국가로, 각각의 주는 자체 헌법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 조직에 있어서도 커다란 자치권을 누리고 있다. 재통일과 함께 유럽에서 독일의 ʻ무게감’ 역시 커졌다. 35만 7천 제곱킬로미터의 면적과 8,3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독일은 유럽연합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나라다. 또한 2019년 독일의 GDP는 유럽연합 28개국 GDP의 20%에 해당하는 3조 4,360억 유로를 기록하면서 독일을 유럽 대륙 최고의 경제대국이자 세계 4위의 경제대국 자리에 올려놓았다. 독일 경제의 기적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치즘의 유산은 독일이 지정학적 야심을 갖지 못하도록 만들었고 따라서 독일은 오로지 경제적인 힘만을 추구할 수 있었다. 통일 이후 게르하르트 슈뢰더 정부의 개혁은 경제 발전을 가속화했고 임금 비용의 감소는 수출을 용이하게 했다. 독일의 경제적 성공은 자국의 주요 산업 그룹과 역동적인 중소기업, 그중에서도 특히 자동차, 기계,화학, 제약제품 분야에서 보인 기록적인 무역수지 흑자(2019년 기준 2,240억 유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하지만 아시아, 그중에서도 특히 전자, IT, 섬유 제품의 주요 공급 국가인 중국과의 교역에서는 여전히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독일 수출의 59%와 수입의 66%가 유럽연합을 상대로 이루어진다. 전 독일 국방부 장관이자 2019년 이후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우르줄라 폰 데어 라이엔에 따르면, 이러한 사실이 냉전이 종식된 이래로 독일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럽의 중심에 있는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유럽의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지리적 위치와 경제적 힘이 더해지면서 독일은 이웃 유럽 국가들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다. 이에 반해 프랑스와 이탈리아는 보다 뒤처져 있으며 영국은 끝내 2020년에 유럽연합을 탈퇴했다. 「지도를 보아야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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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역사에서 앙겔라 메르켈은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유럽의 중심에 있는 강대국” 독일을 이끈 지도자다. 하지만 2015년 난민 위기 당시의 정책 결정으로 정치적 부담이 커졌고, 결국 2021년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메르켈은 총 5,860일, 즉 만 16년간 독일 총리로 재직하며 역대 독일 총리 중 가장 뛰어난 지적 능력을 가진 인물로 평가받는다. 라이프치히 공대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그녀는 박사 논문으로 “양자화학에서 전기화학적 반응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를 작성했다. 한편 에너지 정책에서는 원자력 발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프랑스인들은 메르켈에 대해 경탄하고 그를 존경하지만 프랑스에서라면 메르켈은 총리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라는 말은 그녀의 중도적이고 조율적이며 실용적 타협을 중시하는 안정적인 리더십 스타일 때문일 것이다. 그녀는 여성, 신교도, 그리고 동독 출신이라는 독특한 배경을 지녔으며, 2005년 당시 임대료가 평방미터당 20유로인 임대주택에서 거주하는 등 청렴함을 보여주었다. 1990년 시민운동단체 ‘독일의 각성’을 시작으로 기민련에 통합되었고, 빠른 속도로 당내 고위직을 거쳐 여성청소년부 장관, 환경부 장관을 역임했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기민련 당대표를 맡았으며, 2005년부터 총리로서 과학적 근거와 사실에 기반한 정치로 독일과 유럽의 안정과 통합에 크게 기여했다. 그녀는 권위보다 정확한 지식과 실용적 해결책에 집중하며, 특히 난민 위기 대응과 유로존 위기 극복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러시아 화가 드미트리 부루벨의 「형제의 키스」로 유명한 베를린 장벽

1950년대 말에서 1960년대에 걸쳐 서독은 ‘라인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급속한 경제 성장을 경험했다. ʻ한강의 기적’도 여기서 유래됐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의 피해와 낮은 출산율, 그리고 동독과의 분단으로 인한 인구 손실로 인해 특히 3D 업종에 속하는 광산, 건설, 간호에서 심각한 노동력 부족에 직면했다. 이에 서독은 1955년부터 이탈리아, 스페인, 터키 등과 게스트아르바이터(Gast·arbeiter, 외국인·노동자  아르바이터Arbeiter ⟶ 아르바이토アルバイト ⟶ 아르바이트 ⟶ 알바) 고용 협정을 맺었고, 한국도 이 연장선에서 노동자를 파견하게 되었다. 한국 정부는 1960년대 초 독일에 광부를 보내기 전부터 독일어 교육을 실시하고, 체력·기술·학력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엄격한 선발 절차를 마련했다. 당시 서독 정부와 기업은 “한국인 노동자는 성실하고 교육 수준이 높다”는 평가를 내렸으며, 이를 근거로 한국인을 위험하고 힘든 광산·간호 업무에 적합하다고 보았다. 특히 냉전 시기 서독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분단국가였기에 양국은 반공 진영 내 우방으로서의 연대감을 공유할 수 있었다. 그 결과 1963년부터 1977년까지 약 8천 명의 광부와 1만 1천 명의 간호사가 서독에서 일하며 외화를 벌어들였다. 같은 시기 한국은 베트남 전쟁에도 깊이 관여했다. 1964년부터 비전투 공병·의료단을, 1965년부터는 전투부대를 파병하여 최대 5만 명 이상을 주둔시켰고, 이를 대가로 미국으로부터 군사·경제 원조를 확보했다. 이렇게 서독 파견 인력과 베트남 파병을 통해 확보한 외화는 국가 경제 개발의 핵심 자금원이 되었고, 그 대표적 성과가 경부고속도로 건설(1968~1970)이었다. 총 공사비는 약 249억 원으로, 당시 국가 예산의 약 4분의 1에 해당하는 비교적 적은 금액이었다. 특히 용지비가 전체 비용의 4.6%에 불과했고, 민간 건설사의 저가 입찰, 미군 및 군 장비 활용, 초고속 토지 수용 등을 통해 일본 동일 길이 고속도로보다 8배 이상 저렴하게 지었다. 완공 기간도 일본보다 8년 이상 짧았다. 이처럼 경부고속도로를 저비용·단기간에 완공한 덕분에 한국 정부는 절약한 외화와 시간적 여유를 다른 분야로 돌릴 수 있었다. 실제로 이 자금과 여유분은 ʻ유신헌법十月維新’ 이후 새마을운동의 농촌 개발, 주요 산업단지와 발전소 건설, 수출 산업 기반 확충, 항만·공항·철도 개량같은 도시 인프라 확장 등으로 이어졌다. 권위주의적 통치 방식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판단을 배제한 채 역사적 사실만으로 평가할 때, ‘성공한 독재자’로 꼽히는 사례에는 싱가포르의 리콴유, 대한민국의 박정희, 그리고 중국의 덩샤오핑이 있다. 참고로 「내가 걸어온 길 The Singapore Story」은 리콴유의 자서전으로, 많은 지성인들이 추천하는 책이다. (조심스럽지만, 개인적으로 존 톨랜트의 저서를 깊이 있는 역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되는 좋은 자료로 추천한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책 읽어주는 남자’ 리스트에도 포함시켜보고 싶다.) 2025년 가치로 환산하면 경부고속도로를 일본보다 훨씬 저렴하고 8년 빠르게 완공한 덕분에 약 2조 9,631억 원의 건설비 절감과 2조 1,281억 원의 운용·이자 효과를 합쳐 총 약 5조 원 규모의 재정 효과를 거둔 셈이다. 비록 초기 설계와 시공의 한계로 잦은 보수가 필요했지만, 당시로서는 ‘속도와 저비용’ 전략이 경제 개발의 시급성을 충족시킨 현실적 선택이었다.  

[참고·인용: 위대한 문명사, 서울대 김태유 명예교수]

 

칸트의 비판철학에서 헤겔의 변증법적 이상주의, 니체의 가치 전복과 초인 사상, 하이데거의 존재론적 탐구에 이르기까지, 독일은 헤르만 헤세와 프리드리히 실러 같은 문학적·철학적 사상가들을 많이 배출했다. 그런 독일에는 ‘철학자의 길 Philosophenweg’이라는 특별한 산책로가 있는데, 특히 하이델베르크의 네카Neckar 강변을 따라 조성된 이 길은 많은 철학자와 사상가들이 자연 속에서 깊은 사유와 영감을 나누며 걸었던 곳으로 유명하다. 한편 임마누엘 칸트는 자신의 일과와 산책을 철저히 규칙적으로 지켰으며, 매일 거의 정확한 시간에 같은 길, 특히 쾨니히스베르크의 다리를 건너 산책했다고 전해진다. 그의 엄격한 시간 준수 덕분에 당시 쾨니히스베르크 시민들은 칸트가 지나가는 시간을 기준으로 시계를 맞추거나 그 시간을 확인하곤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독일어 원본이 1927년에 출간되었지만, 내용이 매우 어려워 “독일어 버전은 언제 나오냐”는 농담 섞인 질문이 나오기도 한다. 「존재와 시간」은 그의 스승 에드문트 후설의 사상, 즉 ‘현상학’과 「내면 시간의식에 대한 강의」를 많이 참고하고 발전시켜 독창적으로 재구성한 것으로 보는 게 맞다. 「존재와 시간」에서 말하는 “세계-내-존재 Dasein”는 세상과 분리된 ‘나’가 아니라, 세계 속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존재를 뜻한다. 즉 하이데거가 말하는 “우주 속의 나”는 혼자 덩그러니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세계 안에서 의미를 찾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는 ‘나’를 의미한다. 또한 그가 언급한 “강당의 의자”는 단순히 ‘앉는 물건’이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도구’로서 우리에게 특별한 의미를 지닌 것임을 강조한다. 다음은 독일 출신 유대계 영화음악 작곡가 한스 짐머가 만든 영화 「인셉션」의 주제곡 ‘시간 Time’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내 가슴을 놀라움과 경외감으로 가득 채워주는 두 가지가 있으니, 하나는 내 위에서  빛나는 별을 보여주는 하늘이며, 다른 하나는 내 마음속의 도덕법칙이다. 이마누엘 칸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독은 마셜플랜 지원을 바탕으로 경제 재건을 추진하면서, 기본적으로 시장 원리를 존중하는 한편 전략적으로 중요한 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책적 지원을 병행하는 방식을 취했다. 즉 자유시장경제의 틀 안에서 산업 재건과 경제 안정, 기술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 특정 산업군에 보조금, 세제 혜택, 연구개발 지원, 저리 융자 등 다양한 지원책을 제공했다. 대표적으로 자동차 산업에서는 폭스바겐이 정부의 중점 지원을 받았으며, 기계 산업과 화학 산업 역시 국가 차원에서 집중 육성되었다. 서독 정부는 전후 경제 재건 과정에서 철강, 전자, 기계공업 등 전략 산업에 대해 가격 통제, 생산 조정, 수출 촉진 정책을 펼쳤다. 예를 들어 중공업 부문의 설비 투자에 저리 자금을 대출해 주거나 마셜플랜 자금을 기반으로 산업 현대화 자금을 지원하는 등 적극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지원은 개별 기업에 대한 직접적 통제보다는 산업군 차원의 경쟁력 강화와 균형 있는 성장을 목표로 하였으며, 시장의 자율성과 정부의 전략적 조율이 조화를 이루는 모델로 평가받는다. 특히 산업 전반에 걸친 공급망 안정화, 기술 표준화, 인프라 구축에 정부가 적극 참여해 산업 생태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한 점이 특징적이다. ‘미텔슈탄트 Mittelstand’는 독일 경제를 대표하는 아주 중요한 개념으로, 독일 경제의 근간을 이루는 중견·중소기업 그룹을 의미한다. 미텔슈탄트는 독일 경제의 안정성, 혁신성, 고용 창출에 핵심 역할을 하며, 독일이 경제 위기를 비교적 잘 극복하는 원동력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반면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일본의 급격한 엔화강세 속에서 한국 정부는 재벌 중심의 ‘선택과 집중’ 정책을 통해 특정 대기업에 자금과 정책 지원을 집중했다. 정부는 시중은행에 압력을 가해 재벌에 저리 대출을 하도록 유도하고, 직접 정책금융기관을 통해 대규모 자금을 지원했다. 그 결과 재벌 기업들은 대규모 설비 투자와 기술 개발을 추진할 수 있었다. 또한 정부는 재벌의 대형 프로젝트에 대해 직접 보증을 서주고, 세금 감면 등 각종 세제 혜택을 제공해 자본 부담을 줄여 공격적 사업 확장을 가능하게 했다. 수출 주도형 산업 육성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여 재벌의 수출 확대에 다양한 인센티브와 지원책을 마련했다. 아울러 규제 완화와 신규 사업 허가 신속 처리도 재벌의 산업 다각화와 시장 지배력 확대를 돕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더불어 재벌 핵심 산업 분야에 정책 자금을 투입하고 연구개발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산업 고도화와 첨단기술 확보를 촉진했다. 이러한 지원 아래 재벌은 급속히 성장했으나, 지나친 부채 경영과 무리한 확장으로 인한 비효율, 불량 자산 누적 등의 문제도 발생했다. 1997년 태국에서 시작된 동남아시아 금융위기가 주변 국가로 확산되면서 국제 금융시장은 신흥국에 대한 신뢰를 급격히 잃었고, 투자자들은 한국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을 인지해 대규모 자본을 회수하는 ʻ캐피탈 플라이트 Capital Flight’가 일어났다. 이로 인해 외환시장이 크게 흔들렸다. 위기 초기 한국 정부는 외환 위기의 심각성을 과소평가했고, 외환 보유액이 부족한 상황에서 금융시장 신뢰가 급락했다. 결국 위기가 확대되며 IMF 구제금융을 받았고, IMF는 구조조정과 긴축 정책을 강력히 요구했다. 이는 단기적으로 경제 침체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사실 당시 한국은 개발도상국이라기보다는 막 “중진국의 함정Middle-Income Trap에 빠져 들던 시기”로, 적어도 5~10년간 체급 관리가 절실했으나 오랜 세월 가난과 무시, 압박 속에서 ʻ물리적 결과물’을 기대해 온 베이비붐 세대는 빠른 경제 성장과 함께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려는 강한 열망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한국은 1996년 12월 12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정식 가입하게된다. OECD 가입은 한국 경제에 국제적 신뢰와 선진국 수준의 기준 준수를 요구하는 동시에, 다양한 경제 분야에서 정책 개선과 개혁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OECD 회원국은 무역, 환경, 노동, 금융 안정성 등 여러 분야에서 협력과 책임을 공유한다. 혹자가 주장하는 “대기업의 수출이 국가 경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으나, 예를 들어 핀란드의 대표기업 노키아가 쇠퇴하기 시작하자 핀란드 국민들 역시 이같은 상황을 몹시 우려했으나, 이는 오히려 중소기업과 스타트업들이 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재벌 중심 경제 구조가 가진 장단점을 잘 보여주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참고·인용: 위대한 문명사: 서울대 김태유 명예교수, 법무법인(유한) 율촌 전문위원 최준영 박사의 독일의 경제 모델 ‘미텔슈탄트’]

 

“신자유주의 사회는 더 이상 강제하지 않는다. 스스로를 착취하도록 만든다. 「피로사회」, 프리드리히 실러 대학교 Friderich Schiller Universität Jena 한병철 교수”

 

요한 볼프강 폰 괴테(1749–1832)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과 「파우스트」로 독일 문학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했으며,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와 함께 고전주의 문학을 이끌며 「빌헬름 텔」과 「오베론」 같은 작품을 남겼다. 20세기 대표 작가 토마스 만(1875–1955)은 「마의 산」과 「부덴브로크 가의 사람들」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고,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데미안」, 「싯다르타」, 「유리알 유희」를 통해 동서양 정신세계의 조화를 탐구했다. 또한 독일어권 체코 출신인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변신」 ⏏ 등으로 독일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다.

독일을 대표하는 시인 ʻ프리드리히 횔덜린, 변증법 철학의 대가 ʻ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자연철학과 독일 관념론의 선구자 ʻ프리드리히 빌헬름 요제프 셸링’은 튀빙겐 신학대학 시절 한 방을 쓰며 토론과 독서, 음악, 산책을 함께한 ‘튀빙겐 동맹’의 주역이자 삼총사The Three Musketeers였다. 이들은 고대 그리스의 예술·철학·정치가 조화를 이룬 공동체 이상, 프랑스 혁명의 자유·평등·박애 정신, 종교개혁의 완성을 통한 인간 정신의 해방을 공동의 목표로 삼았다. 1790년대 초 프랑스 혁명의 열기 속에서 기숙사 뜰에 ‘자유의 나무’를 심고 혁명가의 복장을 한 채 노래를 부르며 자유와 인류 해방을 기원한 사건은 당시로서는 위험한 정치행위로 여겨졌다. 「휘페리온」을 쓴 횔덜린은 시와 소설로 그리스적 이상과 자유를 노래했으나 정신질환으로 요절했고, 헤겔은 변증법과 역사철학으로 인간 자유의 이성적 실현을 체계화했으며, 셸링은 자연철학과 신비주의를 결합해 낭만주의 철학의 중요한 축을 세웠다. “노란 배들이 주렁주렁 달리고 야생 장미로 가득한 그 땅이 호수로 드리워져 있네, 아, 사랑스러운 백조들이여, 입맞춤에 취해 거룩하고 맑은 물속에 머리를 담그고 있구나. 아아, 겨울이 오면 나는 어디서 꽃을 얻고, 어디서 햇빛과 땅의 그늘을 찾을 것인가? 성벽은 말없이 차갑게 서 있고, 바람 속에서 깃발이 쨍그랑 울린다. 「반쯤 인생 Hälfte des Lebens」, 횔덜린”

 

「파우스트와 메피스토의 만남」, 1846 조제프 페이

1943년 5월 토마스 만은 「파우스트 박사」 집필을 위해 작품 구상 메모를 남겼다. 그는 나치 제국의 파멸과 그것이 초래한 파시즘의 광기, 그리고 독일인의 운명에 대해 깊이 성찰했으며, 이러한 문제의식은 이미 중편소설 「마리오와 마술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파우스트 박사」에서 그는 이중적 시간 구조를 통해 주인공의 일대기와 현실 사건을 다성적으로 직조했다. 메모에서 그는 “정신적·영혼적 파시즘, 인간적인 것의 폐기, 폭력과 피의 욕구, 잔혹, 진리와 정의에 대한 디오니소스적 부정, 본능과 일체의 구속을 벗어난 ‘삶’에의 몰입. 이러한 삶은 본래 죽음이다. 비록 그것이 삶의 형태를 띠더라도, 그것은 악마의 작품이며 독이 낳은 삶에 불과하다. 파시즘은 악마의 힘을 빌려 시민적 생활양식에서 일탈한 상태로 고양되며, 그 일탈은 도취와 자만, 초인의 모험을 거쳐 뇌기능 마비와 정신적 죽음, 나아가 육체적 죽음에 이른다. 결국 그것은 ‘죄의 대가’를 치르는 길이다.”라고 적었다. 토마스 만의 「파우스트 박사」는 괴테의 「파우스트」를 현대 역사와 철학적 맥락 속에서 재해석한 작품이다. 괴테의 「파우스트」가 인간의 내면적 갈등과 영혼 구원, 삶과 죽음의 문제를 고전적·낭만적으로 다룬 반면, 토마스 만은 20세기 나치즘과 파시즘 시대를 배경으로 ‘악’과 ‘도덕적 타락’의 현실적 문제에 집중한다.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는 메피스토와 “만약 내가 어떤 순간에 만족해 ‘시간이여, 멈추어라’라고 말한다면, 그 순간 내 영혼을 가져가라”는 내기가 있다. 그러나 죽기 직전 파우스트는 개인적 쾌락이 아니라 인간들이 서로 자유롭고 안전하게 사는 미래를 상상하며 이 말을 한다. 이때의 “시간이여 멈추어라, 너는 정말 아름답구나”는 인류 전체의 번영을 향한 기쁨으로, 메피스토가 노린 이기적 순간이 아니기에 그는 패배하지 않고 천사들로부터 구원받는다. 괴테는 이를 통해 진정한 만족은 자기 완성보다 남을 위한 행동 속에서 온다는 메시지를 전하며, 고대 그리스적 폴리스 이상, 기독교적 봉사와 구원, 근대적 진보 신념이 결합된 장면을 완성했다. 파우스트는 지식·쾌락·권력을 좇던 초기와 달리 마지막에 공동선 속에서 영원을 발견하며, “멈추어라”라는 말은 정지된 시간이 아니라 의미로 가득 찬 영원성을 뜻하게 된다.

[참고·인용:  「오직 하나의 독일을」, 독어학자·독문학자 이덕형]

 

18세의 시온주의 운동가 한나 아렌트와 35세의 나치당원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가 나눈 금지된, 은밀하며 위험한 사랑

마겐부어스트Magenwurst는 우리가 잘 아는 소시지로, ‘마겐Magen’이 ‘위장’을, ‘부어스트Wurst’가 ‘소시지’를 뜻한다. 원래 돼지 위장을 소시지 껍질로 사용해 만들었으나 현재는 천연 또는 인공 케이싱을 쓰는 경우가 많다. 보통 삶아서 먹으며 부드럽고 담백한 맛과 약간 크리미한 질감이 특징으로 특히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역에서 인기가 많고, 샌드위치에 넣거나 따뜻하게 데워 먹는 경우가 많으며, 독일 정육점이나 슈퍼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한편 햄버거는 독일 함부르크Hamburg라는 도시 이름에서 유래했으며, 19세기 후반 독일 함부르크에서 ‘함부르크 스테이크Hamburg steak’라는 다진 소고기 패티 요리가 유럽과 미국 이민자들을 통해 알려졌다. 미국에 이민 온 독일인들이 이 함부르크 스테이크를 빵 사이에 끼워 먹는 형태로 발전시키면서 지금의 햄버거가 탄생했다. 즉 햄버거는 독일 함부르크에서 유래한 고기 요리가 미국에서 빵과 결합해 현재의 형태가 된 것이다. 커틀릿cutlet은 프랑스어 ‘작은 갈비côtelette’에서 유래했으며,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 프랑스에서 돼지나 송아지 갈비를 얇게 저며 튀기거나 구워 먹던 요리에서 시작되었다. 동시에 이탈리아 밀라노 지역에서는 얇게 저민 고기를 튀기거나 구운 ‘밀라네제milanese’와 ‘오소부코ossobuco’ 같은 요리가 발전했으며 이들이 커틀릿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19세기 후반부터 스페인에도밀라네제Milanese 스타일의 요리가 소개되었으며, 주로필레Filete’ 또는에스칼로페Escalope’라는 이름으로 불렸다한번은 스페인 여행 중 화가 고야가 일했던 곳이자 헤밍웨이의 소설 「해는 또다시 떠오른다」에 등장하는 마드리드의 보틴 레스토랑Sobrino de Botín에서 커틀릿Veal Cutlets을 먹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자식을 잡아먹는 사투르누스 Saturno devorando a su hijo’를 방금 보고 와서인지,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았다. 이후 19세기 유럽 전역으로 퍼져 독일의 ‘슈니첼Schnitzel’ 등 여러 지역별 변형 요리가 생겨났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 일본이 메이지 유신을 통해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던 시기에 프랑스와 독일식 커틀릿이 일본에 소개되었고, 일본인들은 이를 돼지고기로 변형해 빵가루를 입혀 튀기는 ‘톤카츠豚カツ’로 발전시켰다. ‘톤豚’은 돼지고기, ‘카츠’는 커틀릿cutlet의 일본식 발음이며, 일본에서는 두껍고 바삭한 튀김옷을 입힌 돈가스를 주로 먹고 소스도 따로 개발해 함께 즐기는 문화가 형성되었다. 프레첼Pretzel의 기원은 중세 유럽 7세기경의 수도원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수도사들이 세리머니나 기도 시간에 사용할 ‘기도의 팔’을 형상화해 반죽을 꼬아 만든 빵이라고 한다. 프레첼은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발전했으며, 독일 남부 바이에른 지역에서 전통적인 간식으로 자리 잡았다. 그 모양은 세 번 꼬인 독특한 형태로 행운과 영원함을 상징한다고도 전해진다. 

 

Oktoberfest는 독일 바이에른주 뮌헨에서 시작된 세계 최대의 민속 축제로, 1810년에 처음 열렸다. 원래는 바이에른의 왕자 루트비히 1 세와 테레제 공주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10월에 개최된 경마 행사와 축제에서 유래했으며, 이후 매년 가을에 맥주와 전통 음식, 음악을 즐기는 축제로 발전했다. 축제는 점차 규모가 커져 전 세계에서 수백만 명이 모이는 대형 행사로 자리 잡았고, 바이에른 전통 의상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대표적인 행사가 되었다. 역사적으로 독일 맥주에는 품질을 관리하는 검사원이 존재했다. 맥주 순수령 시기는 주로 중세 후반부터 근대 초기, 15세기부터 19세기 사이였다.

독일 오페라에 있어서 대표적인 작곡가 중의 하나인 빌헬름 리하르트 바그너Wilhelm Richard Wagner의 「니벨룽겐의 반지 Der Ring des Nibelungen」는 4부작으로, 「제1부라인의 황금 Das Rheingold」「제2부: 발퀴레 Die Walküre」「제3부지크프리트 Siegfried」, 제4부신들의 황혼 Götterdämmerung」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독일 신화와 전설을 바탕으로 고대 신들과 영웅들의 운명을 서사적으로 그린 대작이다. 루터교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는 초기에 바그너와 긴밀한 관계를 맺으며 그의 음악과 사상에 깊은 영향을 받았으나, 이후 사상적 차이로 결별했으며 니체의 저서 「우상의 황혼 Götzen-Dämmerung」은 바그너와의 관계 단절과 비판을 담고 있으며 인간이 기존 가치들을 넘어서는 초인Übermensch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이 작품은 총 연주 시간이 15시간 이상에 달하는 방대한 규모와 음악과 드라마의 복합적 결합으로 클래식 음악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지만, 일부에서는 그 길고 심오한 내용 때문에 지루하다는 평가도 받는다. 음악 자체가 낯설고 무거운 분위기를 지녀 쉽게 접근하기 어려운데, 15시간이 넘는 공연 시간 때문에 “인생 중 하루를 바쳐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다. 나 역시 오래 전 니체 자료를 조사하며 잠들기 전 바그너의  「니벨룽겐의 반지」를 틀어놓았는데, 깨어 보니 클라이맥스가 담긴 제4부「신들의 황혼」은 퇴근 후에나 시작될 정도였다.

 

신데렐라를 기다리며 알프스 산자락에 우뚝 선 도이칠란트의 노이슈반슈타인 성

현재 러우전쟁으로 인해 독일이 심각한 에너지 문제를 겪고 있지만, 독일은 강력한 기술력과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을 바탕으로 빠른 에너지 전환을 추진하고 있어, 장기적으로는 경제가 회복되고 더욱 지속 가능한 성장궤도에 오를 것으로 전망된다.

 

 

 

 

 

Posted by trefres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