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자본가가 되어버린 서글픈 이웃들에게 전하는 철학자의 생각, 철학자의 마음 그는 동서양 철학을 종횡으로 아우르며 냉철하면서도 따뜻한 인문학적 통찰로 우리 삶과 시대를 관통하는 주제들에 다가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그를 ‘사랑과 자유의 철학자’라고 부른다.”



삶의 목적은 무엇인가. 아름다움(knowledge)을 추구하는 것, 즉 사랑이다. 

사랑에는 에로스(로맨틱한 사랑), 필리아(우정), 스토르게(가족의 사랑), 루두스(장난스러운 사랑), 매니아(집착하는 사랑), 프라그마(지속적인 사랑), 필로티아(자기사랑), 그리고 아가페(조건없는 사랑)가 있다. 

필로스(philos, 사랑함)소피아(sophia, 지혜), 즉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낭독하는 사랑의 기쁨Liebesleid을 들어보자. “사랑과 자유가 왜 같은 것인지 사랑을 해보면 알아요. 사랑을 해본 사람만이 자기가 자유로운지 아닌지를 아는 거죠. 부모님 말을 잘 들었던 사람이 맹목적으로 그렇게 해야 되는지 알고 살았는데, 어느 날 사랑하는 대상이 생기잖아요. 그러면 자기가 구속받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요.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는 데 일정 정도 부자유를 감당해야 한다는 사실과 직면하는 거예요. 어쨌든 사랑을 하면, 8시까지 집에 들어가야 하는 규칙을 어기기 시작해요. 그리고 독립을 하려고 해요. 사랑을 하려면 자기 삶의 주인이 자기 자신이 되어야 가능한 거예요. 자유로운 주체로서 상대방을 만나고 싶은 거죠. 마찬가지로 내가 좋아하는 뭔가가 생기면 내가 자유로운 상태인지 자유롭지 않은 상태인지를 알아요. 내가 사랑하는 것을 하고 싶은데 생계가 그것을 가로막고 있어요. 아르바이트를 해서 1, 2년간 모은 돈을 배낭여행 하는 한두 달에 쏟아붓잖아요. 사랑에 빠지면, 자기가 꿈꾸는 것을 이루려 한다면 억압체제에 저항하게 돼요. 왜냐하면 체제에서 하지 말라고 하니까요. 사랑과 자유는 항상 같이 가는 거예요. 인문학의 정신이 사랑과 자유가 아니면 뭐겠어요. 그 두 가지 내용을 가진 것이 인문주의고,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예요. 자유로운 사람만이 사랑을 할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유를 얻을 수 있어요.”

가령 신자유주의가 아름다움을 추구하려는 우리를 자유로부터 구속하고 있는가. 그러므로 에로스의 환상이 매니아로 전의되어 기어이 필로티아의 사랑의 슬픔Liebsfreud을 위로한다. 

미디어에서 조명하는 아름다움(앎)이 ‘「자기 앞의 생」(삶) La vie derant soi’과 다르다는 것에 너와 나의 저널리즘은 사랑과 자유를 선택하지 못한다. 그들은 말한다. ‘넌 네가 사랑하는 그 사람 때문에 미친 거야.’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 말했다. ‘미친 사람들만이 생의 맛을 알 수 있어.’ 우리들-주체nous-sujet의 완성에 있어 나의 자유를 위한 사디즘과 너의 자유를 위한 마조히즘은 정령 불가피한 선택인가,  존재와 무」. “그것은 숨겨진 불이자 즐거운 상처에 달콤한 독약이자 감미로운 비통함이며, 유쾌한 고통이자 상처에 즐거운 격정이고 달콤하면서도 끔찍한 상처이며 부드러운 죽음이지요. 「셀레스티나」”

 

우리가 간과한 것이 무얼까. 응, 사랑의 인사Salut d'amour. 사랑의 결핍은 더 이상 조명되지 않아, 차가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따뜻하게 해서 옷을 벗기는 방법이 있고, 바람을 일으켜서 벗기는 방법이 있는데요. 바람이 불어서 벗겨지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벗을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주는 것, 햇볕을 비추는 방법이 좋겠죠.

확실해? 봄이 오면 너도 나도 다른 사람 되어 있는 거?

황혼이 저물어 미네르바가 그 날개를 펴면 우리의 로빈 굿펠로우가 무사히 신탁을 실행하겠지.  

 

 

고통스러운데 왜 사느냐고? 고통이 완화되는 그 느낌이 행복이거든요.   

부디 행복만! - 아니, 행복은 슬픔의 공간을 채우니까. 

 

작은 일들, 우리는 그 작은 일들을 해야만 해. 우리는 그걸 알고 싶어하는 거야. 왜 그것이 그 무엇보다 어떻게 다른지, 왜 우리는 그것을 그렇게 표현해야 하는지, 왜 일상이 달라야 하는지.. 누구도 너에게 귀기울이지 않았던 것은 너의 자연스러움 때문이지. 우리는 너를 의식하지 않게 돼, 너는 자연스러움이거든.. 인지부조화, 까뮈는 다른 걸 본 거야, 일상적이지 않은 것, 不條理, 이해할 수 없는 것, 우리는 그것을 의식해야 한다는 거지.. 활력은 비스켓과 차와 커피와, 앞서 나열된 이런 것들로 채울 수 있어. 푸르스트가 기억해 낸 것들은 잊혀진 것들이야. 그리고 우리는 활력을 통해 그것을 되찾고자 해. 여기까지가 (부조리없는) 언어(의식)의 흐름이고, 너는 곧 강이야. 바다 中   

 

사랑으로 진리에 도달했어. - 응, 정의로운 Zero State은 작별하지 않는다. 

 

 

니체의 사자는 나뻐? - 어린아이가 혁명에 성공할까. 나쁜 사자는 없어, 아마도.

 

 

Posted by trefres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