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가지 이스라엘 - 김진태

2023. 4. 27. 12:59 from 書評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교회는 그리스로 이동해 철학이 되었고, 로마로 옮겨가서는 제도가 되었다. 그 다음에 유럽으로 가서 문화가 되었다. 마침내 미국으로 왔을 때 교회는 기업이 되었다. 미국 상원의 채플 목사 리처드 핼버슨 

 

천사와 싸우던 야곱은 하느님으로부터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그의 아들 12명은 이스라엘 백성의 12지파가 된다. 옛 애굽은 현재의 이집트인데, 모세가 노예살이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향했던 곳이 바로 가나안 땅, 즉 지금의 팔레스타인이다. 현재 바위의 돔이 자리한 모리산에서 하느님(삼위일체는 하나가 아니다. 천주는 ‘하늘’이며, 공동번역에서 합의한 한국 표준어의 바른 표기법은 ‘하눌님과 같은 ‘하느님이다.)의 명을 받들어 아들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했던 곳이 ‘세계의 화약고’ 예루살렘(기초를 둔다는 뜻의 ‘예루Jeru’와 히브리어 ‘샬롬shalom’의 합성어, ‘예루살라임Jerushalayim’, ‘평화의 나라, 평화의 터, 평화의 도시’라는 뜻)의 성전 터(모리산)이며, 거기서 다윗이 단을 쌓아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고 훗날 솔로몬이 하느님의 황금성전을 세웠던 곳이 바로 예루살렘의 성전 터이다. 그 후 바벨론 포로생활을 마치고 그곳에 파괴된 성전을 다시 지은 것이 스눕바벨이고,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던 헤롯이 정치적 의도에서 모리산에 15층에 달하는 화려한 성전을 추가로 세운다. 하지만 다시 성전은 파괴되고 그곳에 들어간 이슬람이 이삭을 바친 바위 위에 돔을 짓는다. 우마이야 왕조의 칼리프인 아브드 알마리크의 명령에 따라 691년에 완공된 이슬람 성전은 1015년 한번 무너진 후 1022-1023년에 다시 재건된다. 이슬람에는 3대 성지가 있는데, 이슬람의 마지막 선지자 무함마드(이슬람은 무함마드가 모세라고 주장한다)의 무덤이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히자즈 지역의 메디나, 무함마드가 태어나고 아담과 이브와 아브라함이 살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주에 위치한 메카, 그리고 모함마드가 가브리엘 천사로부터 하느님의 말씀을 듣다가 황금바위을 딛고 하늘로 올라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예언서 코란을 듣고 내려온 곳이 예루살렘 성전산(모리산)이기도 하다. 또 예수가 자주 찾아가 기도한 곳이 황금문 쪽으로 위치한 겟세마네 동산이기도 하며, 성전을 찾아가 장사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분노하신 교회가 바로 모리산 위에 재건된 솔로몬의 황금성전이다. 구 예루살렘에는 성벽으로 둘려 쌓여있는 4지역이 있는데, 오스만 제국의 박해를 받으며 아르메니아 대학살로 인해 전세계로 뿔뿔이 흩어져 있던 아르메니아인들이 모여 살며 수도사 생활을 해왔던 지역(Armenian Quarter), 335년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 헬레나 황후의 지시로 예수의 발자취를 보존하기 위해 거주하는 크리스찬들이 모여 사는 지역(Christian Quarter), 로마에 의하여 파괴된 성전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옛 성전의 서쪽 벽이자 유대인들이 모여살며 2번째 성전의 페허됨을 통곡하는 ‘통곡의 벽’이 자리한 지역(Jewish Quarter), 그리고 모하메드가 승천하며 발자국을 남겼다는 성전산 성지를 관리하고 지켜내려는 아랍인들이 모여사는 지역(Muslim Quarter) 등이 있다. 1947년 11월 29일 유엔안전보장이사회는 예루살렘은 국제법상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지역을 지정했으며, 현재 많은 유대인과 팔레스타인들이 함께 거주하며 공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이같은 예루살렘을 재임 중 이스라엘 공식 수도로 인정하는 동시, 많은 이슬람 국가들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반대 성명에도 불구하고 미대사관을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전하기로 공식발표한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오바마 행정부와는 반대로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의 정치적 부상을 도우며 사우디의 앙숙인 이란의 핵무기 협상을 포기하기에 이른다. 이미 핵무기를 보유한 이스라엘은 앙숙인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전혀 달가워 할 이유가 없는, 네오콘의 망령이 실소할  완물상지玩物喪志가 아닐 수 없는 대략난감大略難堪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전 세계로 흝어진 유대인들은 다시 자신들의 나라를 되찾을 필요가 있었고, 1948년 5월 14일 이스라엘 나라의 건국을 선포하게 된다. 유대인은 이것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 왔다. 나라를 선포했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다. 자신들이 나라를 세우려고 하는 팔레스타인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유대인이 그곳에 자신들의 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내쫓아야 한다. 유대 국가 건설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이주와 혼란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유대인은 이것을 위해 제1차 세계대전 때 기회를 잡게 된다. 여기에는 영국의 이상한 외교가 등장하는데, 영국은 미국을 참전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유대인에게 팔레스타인에 유대인을 위한 민족국가 건립을 제안한다. 영국은 이것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벨푸어 선언을 하게 된다. 실제로 이 선언 후에 팔레스타인 영토로 이주한 유대인의 수는 급격히 증가한다. 하지만 벨푸어 선언은 2년 전인 1915년 아랍 민족에게 약속한 맥마흔 선언’과는 상충되는 것이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게 되면 아랍민족에게 팔레스타인의 독립을 보장했었다. 이상한 이중적인 선언 때문에 UN의 개입이 필요하게 되었고 1947년 11월 팔레스탄인 내에 아랍 국가와 유대 국가를 각각 세우는 결의안을 채탁하게 된다.” 영국은 아랍과 맥마흔 서한을 맺은 후 프랑스와 피코 합의를 하고 이스라엘을 위해 벨푸어 선언을 한다. 그 후 이스라엘은 이집트(1979년), 요르단(1994년), 아랍에미리트(2020년 8월), 그리고 바레인(2020년 9월)과 수교를 맺는다. 

 

가자 유대인 정착촌에서 쫓겨나게 된 이스라엘 아이는 마당에 자리한 올리브 나무에 매달려 정착촌 철수를 집행하는 군인이 와도 요동치 않으며 엉엉 통곡한다. 여기는 야훼가 우리에게 주신 땅이야. 

 

철장이 둘러쳐진 건너편에서 이웃인 유대인 가족이 즐겁게 바베큐를 하는 장면을 목격한 팔레스타인 아이가 눈물을 글썽이며 그들을 넉없이 바라본다. 저기는 알라가 우리에게 주신 땅이야. 

 

참고·인용: 인남식 교수 중동학개론

 

 

오늘날 랍비는 유대인의 정신적 지주와도 같아서 유대인들이 모여 있는 커뮤니티에서는 반드시 랍비가 존재한다. 랍비rabbi는 선생이라는 의미로, 성경의 내용을 잘 아는 자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랍비라고 불리는 것은 존경의 대상이 된다. 과거와는 다르게 지금의 랍비가 종교적인 역할만 하는 것은 아니다. 랍비는 유대인이 살고 있는 곳에서 여러가지 문화적·행정적 조치를 취할 때 도움을 주기도 하고, 율법의 해석에 조언을 하는 멘토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종교에만 몰두하는 목회자의 모습이 아니다. 이런 랍비의 모습도 어느 유대교의 파에 속하느냐에 따라 다르다. 과거에는 사두개파·바리새파·에센파·개혁파가 있었다면, 지금은 극정통파·정통파·보수파·개혁파가 있다. 하지만 이들의 모습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 특히 율법을 지키는 모습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그래서 어느파를 설명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유대인 설명이 된다. 오늘날 유대인은 과거 바리새파 출신의 유대인이 이어져 온 자들이다. 로마를 대항하여 독립 전쟁을 할 때 바리새파를 제외한 나머지 교파의 유대인들은 거의 다 전멸하게 된다.

 

성지 예루살렘을 이슬람교도들로부터 탈환하기 위해 시작된 십자가 전쟁은 여러모로 다른 의도를 가진 세력들이 모여 새로운 영토지배를 향한 야망, 경제적 이익을 도모하려는 욕망, 또는 전쟁 참가를 통해 신분 상승을 추구하려는 소망으로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흥분해 있던 십자군은 신의 명령이라는 명분하에 난폭하고 거칠게 유대인 마을을 습격하고 약탈했다. 여기에는 유럽의 상권을 점령한 유대인들에 대한 미움과 증오 역시 빼놓을 수 없었으며, 더욱이 예수를 죽인 민족이 유대인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결국 예루살렘을 탈환한 십자군은 이슬람교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목적과는 상관없는 유대인들까지 무참하게 짓밟았다. 전전긍긍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돌아다니던 유대인들은 이와 같이 여러나라에서 수많은 고생과 수난을 겪으면서 우생학 이론을 주장하는 나치에 의한 홀로코스트로 600만 명이 목숨을 잃는다. 부자들이 후원을 많이 하는 이유는 부의 불평등 원인의 비난을 피하기 위함인데, 당시 유대인들은 지역 상권을 자신들이 장악하는데에만 주력하고 있었고, 자신들이 거주하는 국가의 경제에는 무관심을 보였다. 당시 기독교 문화에서는 이자를 받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이슬람교 또한 어음 이외 이자를 받는 돈거래를 할 수 없었다. 따라서 그들의 중간 매개체 역할을 한 것이 고리대금업을 하는 유대인이였고, 이러한 이유에서 부를 누리는 유대인들이 비교적 많았다.  

 

유대인은 과거 유럽에서의 탄압을 버티지 못하고 미국이라고 하는 새로운 땅으로 이주를 하게 된다. 1600년대에는 스페인과 포루투갈에 있던 유대인들이 먼저 이주하게 되는데 이들은 세파르딤Sephardim이라고 부른다. 1800년대에는 독일의 유대인들이 이주를 하게 되고 이들을 아슈케나짐Ashkenazim이라고 부른다. 미국은 신대륙 개척으로 알게 된 땅으로 유대인에게는 유럽에서의 상황과 너무나 다른 미래가 예비되어 있었다. 미국은 자본이 필요한 상황이었고 아슈케나짐은 기존의 유대계 자본이 미국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중계인의 역할을 했다. 더 원활한 자본의 유통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투자은행들을 세우게 된다. 이후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이주를 하게 되는데 그들 중에는 자본가, 지식인, 과학자들이 많았다. 유대인은 미국으로 이주를 하게 되면서 휠씬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들은 더 이상 게토ghetto와 같은 유대인 강제 거주 지역에 고립될 이유가 없었다. 부와 지식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미국이라는 국가는 너무나 좋은 조건을 제공하는 곳이며, 유대인은 전 세계적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민족이 되었다. 유대인은 미국이라는 국가에서 자신들의 힘을 더 키우게 된다. 무엇보다 정치적인 영향력을 키우게 되는데, 미국의 대통령 후보는 반드시 유대인 모임에 가서 지지 연설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현실이 되었다. 유대인은 AIPAC이라는 미국의 유대인 로비단체를 통해 미국선거에 영향을 미친다. 이 단체는 미국 의원들이 유대인에게 얼마나 우호적인 자세를 취하는지 그 순위를 발표하여 미국 정치에 압력을 넣는다.

 

100명이 이야기를 한다면 100가지의 답변이 나올 수 있다.정통 유대교 교리를 따르는 하브루타Chavrusa는 탈무드를 공부할 때 짝을 지어 질문하고 함께 토론하는 유대인의 정통학습 방법이다. 유대인은 이같은 과정을 통해 다층적으로 지식을 이해하고 문제의 실마리와 해결점을 찾아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함께 토론하고 여러 가지 쟁점들에 대해 상대와 논쟁하는 방식은 혼자 공부하는 것보다 훨씬 더 효율적일 것이다. 분명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이 완성되는 세 번째 이스라엘을 만드는 약속이 남아 있다. 하브루타는 아람어와 히브리어로 우정또는 동반자 관계를 의미한다. 전 세계가 바라던 Two States는 아직도 진행 중인 논쟁이다. 그들은 분명 하브루타를 통해 Zero State이나 United States를 토론하고 티쿤 올람Tikkun olam을 통해 세상을 개선하며, 후츠파Chutzpah의 강한 도전 정신으로 체다카righteousness를 실천하여 혼돈에 빠진 세상의 질서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곤란한 일일수록 재미있다고 우선 생각하라. 무엇이든 어려운 일일수록 재미가 증가하는 법이다. 탈무드 

Posted by trefreshe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