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전을 찾아보면 ‘자원’이란 생활 및 경제 생산에 이용되는 원료로 광물, 산림, 수산물, 또한 노동력과 기술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이라고 적혀 있다. 작금의 일상에서 “인간의 사회활동을 유지·향상시키는 원천으로 사용하는 사물”로 등극한 ‘자원’은 미지에 대한 환상을 가지고 있던 인간의 호기심에서 비롯되어, 이제는 우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필수적인 생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자원’은 더 이상 처음 발견한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될 수 없으며, 천연자원이 발견된 영토를 소유한 국가의 전유물 또는 자산이자 특정 기술에 대해 처음으로 주권을 행사한 자가 사용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어떤 가치를 지닌 상품이 되었다. 따라서 자원을 전쟁없이 쟁탈할 수 있는 시대는 이미 지났으며, 오직 무역을 통해 서로 교환하거나 ‘자원’이 지닌 숨겨진 용도나 효용에 대한 추가적인 연구와 개발만이 남겨져 있는 상태다. 분명 ‘자원’은 우리의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어 준 것은 사실이나, 무분별하게 사용된 ‘자원’으로 인해 현재 우리는 기후변화라는 거대한 암초에 부딪쳐 앞으로 진전하지 못한채 깊은 고민에 빠져있는 상태다. 혹시 우리는 ‘자원’을 오독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자원’에 대해 차근차근 다시 살펴보기로 한다.  

중세에는 육류 같은 식자재의 부패를 막기 위해 향신료가 사용했다. 당시 고기 누린내를 없애고 미각을 자극할 수 있던 향신료는 더없이 소중한 자원임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었다. 세계에는 350종류의 향신료가 있다고 알려졌으며, 그 중 후추, 정향, 육두구, 계피는 세계의 4대 향신료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에게 향신료가 쉽게 주어진 것은 아니다. 마르코 폴로가 동양의 비단과 황금의 나라 지팡구, 그리고 향신료가 가득한 섬들에 관한 정보를  「동방견문록」을 통해 세상에 알리기 시작하면서부터 베일에 쌓였던 향신료의 비밀이 서서히 벗겨지며 인류는 15세기 대항해시대의 막을 열었다. 그 후 콜럼버스, 바스코 다 가마, 그리고 마젤란 선단이 대서양과 인도양을 탐험하면서 향신료의 원산지에 대한 수수께끼가 하나 둘씩 풀리게 된다. 결국 유럽 각국은 앞다투어 향신료를 구하기 위한 경쟁에 나서고, 이같은 성행은 각국의 조선 기술을 진화시키면서 제국주의라는 씨앗을 유럽 열강에 뿌리게 된다. 유럽 각국은 향신료를 두고 수십년을 다투게 되는데, 프랑스가 처음으로 정향과 육두구의 모종을 이식하는 데 성공한다. 차츰 원산지보다 묘묙 가져와 이식지에서 생산되는 양이 증가하면서 향신료 전쟁은 종언을 맞이하게 된다.  

향신료로 인해 대항해시대가 열리면서 열강들은 점차 해외 식민지 정책을 펼치게 된다. 그리하여 조선업은 눈부신 발전을 이루고 무역선과 군함의 건조는 지속적으로 늘어나 목재의 부족 현상이 나타난다. 16세기 당시 철을 만들기 위해서는 목재를 사용한 목탄이 사용되었기 때문에 삼림자원은 수요를 감당할 수 없었다. 고고학 문서를 들여다보면 이미 중국은 청동기시대 때부터 석탄을 사용한 것으로 들어났다. 석탄의 단점은 철을 제련할 시 함유된 유황으로 철이 물러진다는 사실이다. 이같은 단점은 영국의 에이브러햄 다비 1세가 공기를 차단한 상태로 석탄을 가열하여 유황 함유율이 낮은 코크스라는 연료를 얻어 해결하게 된다. 날로 석탄의 소비는 증가했지만 석탄을 채굴할 때 탄광에서 솟아나는 지하수를 퍼내는 작업은 결코 쉽지 않았다. 이때 발명된 것이 토머스 뉴커먼의 증기기관으로 물을 가열해 생긴 증기를 실린더에 채운 후 내부에 차가운 물을 분사하고 증기를 응축시켜 진공상태에서 대기압을 눌러 내리며 물을 빼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효율성이 떨어진다고 느낀 제임스 와트(1736-1819)가 분리응축기를 개발해 성능과 범용성을 높혔다. 그 후 리처드 트레비식(1771-1833)이 고압 증기기관을 발명하여 기계구조를 단순화 시켰고, 트레비식은 고압 증기기관을 이용해 자동차와 증기 기관차를 개발했다. 얼마 후 조지 스티븐스(1781-1848)가 탄광의 석탄운송용 증기 기관차를 설계하여 실용화에 나섰고, 첫 기관차는 시속 6.4km로 석탄 30t을 싣고 경사로를 오르게 된다. 석탄을 이용해 시작된 영국의 산업혁명은 국가에 번영을 가져다 주었고, 자원이 번영의 조건이라는 사실을 인지한 세계는 자원 확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기원전 3000년경 이집트에서 미라를 보존하기 위해 사용된 천연 아스팔트는 구약성서에서 노아의 방주 방수제와 바벨탑의 벽돌 접착제로도 사용되었다. 처음으로 아스팔트를 이용해 등유를 만든 사람은 캐나다의 에이브러햄 게스너 박사인데, 그는 2,000회에 걸친 분리실험을 통해 증류를 통한 등유 정제에 성공해 케로신을 양산했다. 하지만 탄갱에서 채굴하는 역청탄보다 좀 더 손쉽고 저렴한 가격으로 등유를 정제할 수 있는 원료가 필요했고,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에서 발견된 오일 크리크를 시작으로 에드윈 L. 드레이크의 암염굴착기술을 이용한 석유 채굴이 성공하여 석유산업은 비로소 서막의 시작을 세상에 알리게 된다. 이로 인해 미국 각 지역에서 오일 러시가 시작됐고, 석유의 가능성을 눈여겨 지켜본 존 D. 롤펠러는 스탠더드오일을 창립하여 수송, 정제, 판매 같은 부분을 하나 둘씩 장악해 나갔다. 하지만 독점을 금지하는 반트러스트법인 셔먼법에 의해 스탠더드오일그룹은 30개가 넘는 석유회사로 해체되어 현재 엑슨, 모빌, 셰브론이 되었다. 이리하여 걸프, 텍사코, 로열더치셸, 그리고 브리티시 페트롤리엄을 포함해 세븐시스터즈가 탄생하게 된다. 고들리프 다일러(1834-1900)와 칼 벤츠(1844-1929)가 처음으로 가솔린차를 세상에 선보인 후 헨리 포드의 T형 포드가 대중에 널리 보급되면서 석유의 수요는 비약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곧 가솔린 내연기관을 탑제한 군함, 전차, 전투기가 속속히 개발되면서 석유는 군사 연료로서의 강한 성격 띠게 되고,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오스만 제국의 메소포타미아 지방에 매장되어있는 풍부한 석유 자원을 중심으로 열강들의 기싸움이 시작됐다. 결국 1920년 8월, 사실상 오스만 제국을 해체하는 세브르 조약이 체결되어 시리아와 레바논은 프랑스로, 팔레스타인과 이라크는 영국에게 분할된다. 또한 이집트는 영국의 보호 아래 두고, 모로코와 튀니지는 프랑스의 보호 아래 두는 것이 조약에 포함된다. 당시 영국은 유대인에게는 국가창설을 약속하는 동시 비밀리에 프랑스와 사이크스 피코 협정을 통해 분할지역을 나누며, 샤리프 후세인에게는 아랍인을 위한 아랍국가창설을 약속하게 된다. 결국 1922년 이후부터 옛 오스만 제국 영토에는 신생국가들이 열강에 의해 탄생하기 시작하는데, 요르단(1921), 이집트(1922), 터키(1923), 예멘(1918), 이란(1932), 이라크(1932), 사우디아라비아(1932), 레바논(1943), 시리아(1946), 리비아(1951), 수단(1952), 모로코(1956), 튀니지(1956), 모리타니(1960),  소말리아(1960), 쿠웨이트(1961), 코모로(1961), 알제리(1962), 바레인(1971), 아랍에미리트(1971), 오만(1971), 지부티(1977),  팔레스타인(2013) 등 여러 독립국가들이 자리를 잡게 된다. 하지만 튀르키예, 이란, 이라크 그리고 시리아에 걸쳐 자리한 (현재 3000만 명) 쿠르드족은 그들만의 국가를 외세로부터 배정받지 못하고 소수민족으로 전락하고 만다. 중동 이슬람국가에는 수니파와 시아파 두 종파가 중심을 이루고 있는데, 당시 열강들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어진 국경들은 이념이 서로 다른 두 종파가 벌이는 시리아 내전, 이라크 내전, 레바논 내전, 그리고 예맨 내전이라는 갈등의 원인이 된다. 30년 전쟁 후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국가를 세웠던 유럽국가들이 전쟁 없이 중동 지역에 자신들과 같은 국가를 건설해주려 했으나, 진심은 대륙진출을 통한 석유 시장 지배에 있었던 것이다. 

1945년 프랭클린 D.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은 얄타회담을 마치자 마자 사우디아라비아를 찾아가 초대 국왕 압둘아지즈 이븐 사우드를 만난다. 당시 미국이 원했던 것은 자신들의 구미에 맞는 원활한 석유 공급 시스템이였고, 사우디가 원하는 것은 안보를 통해 왕조가 안정되는 것이였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미국 자본의 아람코가 석유 이권을 독점하고 있었다면, 이란에서는 영국계의 앵글로-이란 석유가 유전을 독점하고 있었다. 1941년 세계2차대전을 기점으로 다시 영국과 소련에게 유전을 뺏겨버긴 이란으로써는 영국에게 모든 수익이 돌아가는 점에 대해 분노했고, 시간이 갈수록 민중들은 외세에 대한 반감을 더욱 더 키워나갔다. 이에 1951년 모하메드 모사데크 총리가 석유국유화를 추친하자 영국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하게 되지만, 미국이 볼 때 그는 공산주의자라기보다 민족주의자에 가깝고 이란 북부 지역을 간접 지배하던 소련과의 전면전 역시 반드시 피해야 했기 때문에 미국은 영국의 부탁을 쉽게 승락할 수 없었다. 당시 이란과 원자력 협정까지 체결하며 이란의 핵개발을 돕던 미국은 영국과 아약스 작전이라는 CIA의 비밀공작으로 이란 군부의 쿠데타를 부추겨 모사데크를 축출하는데 성공한다. 팔레비 왕조가 다시 권력을 잡았으나 급진적인 서구화와 근대화 정책을 시행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부정부패 일삼아 민심을 잃게 되었으며, 세속주의 정책을 반대하는 성직자들의 불만 또한 샀다. 결국 팔라비 왕조에 반대하는 이란 혁명이 일어나 프랑스와 스위스에서 유학해 국제정세가 밝은 강경파 민족주의자 모사데크가 다시 패권을 잡는다. 그 당시 팔레비 국왕은 이탈리아로 도주했으나 미국은 치료를 명목으로 그의 입국을 허가해 분노한 이란 강경파 대학생들이 국왕의 신병 인도를 요구하며 이란 주재 미국대사관에 난입해 인질 52명을 444일 억류하게 된다. 마침내 팔레비 왕조의 미국 내 자산을 이란에 반환하는 조건으로 인질 전원이 풀려났지만, 이 사건 이후로 미국과 이란은 단교하게 된다. 설상가상 이란은 시온주의자들의 손을 들어준 영국과 미국을 자신들의 이슬람 형제 팔라스타인들을 그들의 땅에서 몰아낸 적으로 간주하며 반감의 감정을 갈수록 키워간다. 한편 영국은 1차대전 당시 유대계 금융자산가 로스차일드 가문의 자본을 빌리기 위해 유대 민족국가 건설을 약속했었고, 미국은 2차대전 당시 그들을 돕지 못했던 홀로코스트에 대한 죄책감과 시온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종말론 때문에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유럽은 1618년 부터 1648년 까지 30년 전쟁을 통해서 로마 교황이 다스렸던 제국을 해체하고 싸움에서 이긴 신교는 베스트팔렌 조약을 통해 국가를 세운다. 유럽은 중동이 자신들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국가를 건설하기 바랐고, 한편으로는 석유와 대륙진출을 통한 이익을 위해 중동과 아프리카에 새로운 지도를 그린다. 하지만 중동은 유럽의 30년보다 긴 70년 간의 참혹한 전쟁들을 치루게 된다. 그리하여 친미국가인 사우디 15명과 이집트 4명의 수니파 청년들이 알카이다를 조직해 911을 실행한다. 그들의 도전을 좌시할 수 없었던 미국은 결국 부시가 지정학적 코드화를 통해 만들어낸 악의 축(Axis of Evil: 2차대전 전범국의 별칭 Axis, 레이건의 악의 축Empire of Evil)을 구호로 내걸며 중동에서의 20년 전쟁을 시작한다. 그러나 서방의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거부한 아랍은 2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근본주의와 원리주의를 주장했고, 이를 지켜보던 오바마는 중동에서 미군을 철수시키는 동시, 이란을 달래기 위해 40년간의 제재해제를 약속하며 핵무기 협상을 진행하게 된다. 미국이 중동에서 ‘갖혀버린 아랍의 봄’을 포기한다면, 국가안보를 위해 아랍을 원상복귀 시켜야 했었던 것이다. 중동에 균형을 잡아주기 위해 영원할 것 같았던 동맹국 미국이 이란과 가까워지자 사우디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공화국이자 주변국들에게 이슬람 혁명을 외치는 이란은 시아파의 맹주이자 종주국인 반면, 절대왕정을 사수하는 사우디는 수니파의 맹주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20년 트럼프는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공식 수도로 인정하는 동시 이스라엘 미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시키고, 다시 사우디와의 관계를 복원시키기에 이른다. 이와같은 미국의 행보로 서방과 이란의 핵무기 협정은 사실상 파괴되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선 후 핵무기 협정이 다시 재개되었으나, 이란에 의해 새로운 내용들이 추가되면서 합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와중에 친미와 반미 사이를 수없이 반복하며 서로 다투던 이란과 사우디는 결국 2023년 비공개 회담을 열어 외교 관계를 정상화하기로 합의한다. 

 

2018년 조사에 의하면 전 세계 석유 매장량의 50%를 중동 국가들이 차지하고 있으며, 천연가스 역시 중동 국가들이 약 38.4%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매장량을 보면 러시아 26.6%, 이란 14.9%, 카타르 14.3%, 사우디 3.8%, UAE 3.4%, 미국 3.0%, 나이지리아 2.9%, 알제리 2.5%, 베네수엘라 2.4%, 이라크 1.8% 등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으며, 인류는 향후 100년간 천연가스를 사용할 수 있다고 한다. 드레이크의 방식으로 석유를 채굴할 때 생산정에는 석유와 함께 전통 석유계 가스가 발생하는데, 액체인 석유에 비해 저장과 운송이 어려워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비전통 가스인 타이트 샌드 가스, 탄층 메탄가스, 바이오매스 가스, 그리고 셰일가스가 등장하면서 천연가스는 석유를 대체하는 연료로 각광받기 시작한다. 셰일가스는 전통 천연가스처럼 한곳에 모여있지 않고 수평으로 퍼져 있기 때문에 기존의 방식과 달리 수평시추, 수압파쇄, 미소진동의 기술을 사용하고 있다. 새로운 연료가 시장에 풀리자 미국은 낮은 비용으로 셰일가스를 생산하며 해외로부터 LNG 수입을 대폭 축소하게 되고, 세계 3위 천연가스 매장량을 소유한 카타르와 러시아는 천연가스를 낮은 가격으로 유럽에 공급하게 된다. 미국의 셰일가스는 대부분 멕시코 해안에 매장되어 있는데, 아시아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수에즈 운하를 이용할 경우 42일, 마젤란 해협을 경유할 시 50일이 걸리므로 병목현상을 줄이고자 100년 만에 파나마 운하를 새롭게 개통하여 LNG를 적재한 선박은 25일 만에 아시아에 도착할 수 있게 되었다. 세계 최대 셰일가스 매장국인 중국 역시 활발한 움직임으로 수출을 위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하지만 석탄보다 비교적 친환경적이라 여겨 천연가스 사용을 증가해온 국가들은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깨져버린 수요와 공급의 균형 때문에 현재 골머리를 앓고 있기도 하다. 

 

은백색 또는 회색의 금속인 희토류는 주로 하이브리드차, 전기자동차, 풍력 발전 모터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네오디뮴 자석에 사용된다. 또한 안정적으로 열을 잘 전달하는 특성을 지닌 희토류는 충전용 배터리, 컴퓨터, 텔레비젼, 전구, 그리고 레이저 등 각종 전자기기와 첨단무기에도 사용된다. 17원소의 총칭인 희토류는 크게 경희토류와 중희토류로 나뉜다. 경희토류는 세계에 널리 분포되어 있어 개발만 진행하면 모두가 충분히 공유할 수 있지만, 중희토류는 주로 이온흡착형 광상에서 산출되며 중국 남부 등 한정된 지역에 편재되어 있어 중국의 공급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세계 희토류 공급에 90%를 차지하는 중국이 외교 카드로 희토류 수출 금지라는 조치를 취하자 세계 각국은 난감을 표하는 상황이다. 현재 세계 자본의 80%는 400개의 대기업들이 소유하고 있으며, 서방기업들은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의 천연자원 75%를 통제할 막강한 권한을 손에 쥐고 있다.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가 서사시집 모두의 노래Canto General에서 미국 다국적 기업들의 남미 자원수탈 역사를 비판했듯이, 우리 또한 후손들을 위해 모두의 노래를 불러야 할 상황이 시작된 건 아닌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Posted by trefresher :